mono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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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014 Samos -> De Fereiros (Day 27)

이른 아침, 사모스 수도원을 나선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돈다.
마치 오늘의 길에서 느껴지는 아침이 매우 새롭게 느껴지는 느낌이다.
수도원 너머 언덕을 건너면 초록색이 우거진 오솔길이 나온다.
그 오솔길 중간에 물길이 얕게 지나가고 있는 숲을 보게 되었다. 햇살이 떠올라 나무 사이로 따스함을 전달한다. 그 광경에 사로잡혀 혼자 멍하니 배낭 어깨끈을 잡고 쳐다보고 있었다.

멈춰서서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오늘 정말 멋있죠?"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마드리드 출신 순례자 아저씨도 지나가다가 이 풍경을 보고 함께 말없이 서있었다.

그냥 좋다는 말 그 이상의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안정감이 들었다.

그 이후에 보는 풍경들은 전부 새로운 삶을 부여받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언덕을 넘어가면 드디어 SARRIA라는 곳이 나온다. 이곳부터 까미노 까지는 100km 남았다. 시간이 없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이곳부터 까미노를 시작한다고 한다. SARRIA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까미노 증서를 주는 것 같다.
언덕 햇살에서 얻은 에너지를 가지고 열심히 걸었다. 싱글벙글 거리면서 계속 걷는데, 뭔가 허전했다. 알고 보니 내 카메라의 커버가 없어진 것이다. 뒤로 100m를 돌아가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하도 사진을 많이 찍고 다니니 누군가 내 캡을 주워다 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SARRIA에 도착해서는 카메라 캡을 찾아야 하니 계단 위에 있는 까페에 자리잡기로 했다.
테라스로 자리 잡았더니 기봉이도 금방 만날 수 있었다. 까페 콘레체를 마시며 "기봉아! 혹시 내 카메라 캡 봤어?"라고 물으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래도 누군가 반드시 가져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멀리 프란체스카가 뒷따라 왔다.

"프란체스카아아아!!! 내 카메라 캡 혹시 본 적 있어?"
그녀는 베시시 웃으며 내게 내밀었다.

"요거 맞지? 히히"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누군가 내 캡을 기억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누군가 그걸 주워다 주다니 온몸이 찌릿해졌다.

"역시이!!!! 누군가 가져올 줄 알았다니까!" 그러면서 프란체스카가 짐도 풀기전에 이 사진과 순간을 반드시 찍어야겠어서 그 순간을 사진에 담았다. 너무 고마운 나머지 그녀에게 까페콘레체 한잔을 샀다.

솔직히 예상을 했긴 했지만 소름이 끼쳤다. 아침부터 걷는 길이 뭔가 행복하더라니 오늘은 행복함이 아침부터 내내 감돈다.

그렇게 기봉이와 나 프란체스카가 히히덕 거리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아직도 가슴을 부여잡고.. 진짜 엄청난 경험이라고 신나했다. 신나게 까페콘레체를 다 비워내고 슬슬 출발하려고 하는데 저 멀리서 또 익숙한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에 봤던 베트남 친구인 투위다. "어어 지금 출발하려는거야?"하면서 우리를 불러 세웠다.

"사실 나 오늘이 마지막 까미노야." 트위는 일정때문에 다시 돌아가야 한단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나무 지팡이를 건네었다. 그 지팡이는 프란체스카가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잠깐 봤지만 너네 너무 첫인상이 좋았어. 완주할때까지 건강하길 바랄께"하며 투위는 안녕을 고했다. 언제나 이별은 익숙치 않다. 하지만 내가,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에게 인생에 있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것 자체는 참 감사한 일이다.

우리도 트위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잘됐음 한다며 인사했다.


SARRIA의 마을 중심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다. 장난기 있지만 정말 독실한 신부님인줄 알게 된 포르투갈 신부님들도 만나 인사하며 서로 완주하자고 격려했다.

드디어 100km 남았다구!!
마을을 지나면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또 내가 지금까지 700km 나 걸었다니 스스로가 참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프란체스카와 함께 걸으면서 만났던 오른쪽의 친구는 미국에서 온 마이클. 어제 미사의 기도를 맡아서 했던 신부님이다. 평소에는 우리와 같은 순례자와 다름이 없었는데 아직도 그가 어제 미사를 진행하고 향로를 흔들면서 보여준 경건함과 진지함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아 - 마이클 어제 미사는 진짜 기억에 많이 남았어! 대단했어 정말!"
"아 그래? 나도 기회가 되서 한거였는데,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

이렇게 대화를 하면서도 어제의 그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종교 혹은 신의 영향이 이렇게 대단한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걸으며 느꼈던 그에 대한 첫인상은 매우 쾌활하고 긍정적이었다.
날씨가 따듯하니 순례자들은 제대로 쉬면서 천천히 걷는다. 저 멀리 손을 흔들길래 봤더니 프랑스 데니스 아줌마와 크리스티앙 아저씨가 나무 그늘에 앉아서 쉬고 계신다. 오호라 보기 좋다.
오늘 걷는길은 정말 즐겁다.
"프란체스카! 오늘 날씨 너무 좋다. 빨래하면 금세 마를 것 같어!"

프란체스카도 신이나서 오늘은 빨래나 할까? 하며 거들었다. 예전에 길을 걸었을때 근처 밭에서 뿜어대는 스프링쿨러가 있으면 얼굴을 대며 까르륵 거리고 싶어지는 그런 날씨였다.
이곳부터 시작하는 순례객도 많아서 조금씩 못보던 사람들도 많다.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다양하다. 처음에 내가 '올라'라고 인사를 하면 대꾸를 안하는 사람도 있고,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관광형 순례객도 있다. 그들의 특징은 '올라-''부엔까미노~'류의 인사에 인색하다는 것인데,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앗 페이크 펠레그리노!(가짜 순례객!)라고 했다.
뭐 그래도 여러가지 이유로 걷고는 싶지만 여기서부터 걸을 수 밖에 없을수도 있기 때문에 페이크 펠레그레노라고 부르는건 다소 무례한 표현이다라는 걸 깨닫기엔 그리 오랜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드디어 이 표지석 이후로 100km
그리고 곧 도착하게 된 De Fereiros. 이곳의 공식알베르게도 20개의 베드가 준비되어 있어 매우 비좁다. 씻고 들어오니 스페인 패밀리 페드로 아저씨를 비롯해 예전에 만났던 분들이 고대로 계셨다. 반가움의 포옹을 하고 우리는 기봉이와 함께 빨래를하고 말리며 식사준비를 했다.

식사를 준비하는데 만난 귀여운 꼬마친구. 우리 앞에서 씩씩하게 걷던 친구였는데, 바르셀로나에서 부모님과 함께 온 13살 친구였다. 사람들과도 곧잘 지내서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던 친구라서 우리랑 함께 라면스프 파스타 만들기에 동참했다.
기봉이가 가지고 다니는 스프에 파스타를 볶아내면 꽤 그럴듯한 맛이 나는데, 우리는 슈퍼가 멀리 있을경우에는 이렇게 해결하곤 했다.
이 꼬마친구는 우리 음식도 곧잘 먹고 우리를 정말 잘 따랐다. 붙임성도 좋고 성격도 좋은 친구라서 알베르게의 모든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독차지 했다.
식사를 하고나니 갑자기 맑았던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소나기가 엄청 쏟아졌다. 우리는 완주기념 맥주를 마시지 못해 기봉이와 함께 알베르게 앞 가게에 가서 맥주를 시켰다. 마침 프란체스카도 합세하여 같이 빗소리를 감상했다. 알베르게가 꽉차 다른곳으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SARRIA 부터 시작하는 순례객들도 꽤 많다보니 부디 앞으로 알베르게가 충분하길 바랄 뿐이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도 서두르는 수 밖에 없으니까. 늘 800km 의 알베르게에는 약간의 경쟁도 피치못하게 감내해야 한다.

시간이 비가 도저히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디건을 껴입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하려고 하니 그 꼬마 친구가 우리 침대에 와서 마지막 인사를 한다. "부엔까미노-"

기봉과 나는 번갈아 이 꼬마친구의 순수함에 귀여워서 웃으며 "부엔까미노-"로 대답했다.

우리가 만나서 까미노에서 교감했던 이 추억이 그 꼬마아이의 인생에서 잊혀지지 않는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한다. 부디 아까 약속했던 것 처럼 건강히 완주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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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숲길 달려가고 싶네요.
호미숙님은 왠지 자전거를 끌고 멋지게 달려가실 것 같네요 ^^
말로만 들어본곳인데 사진으로보니 정말 좋아보이네요 종교는없지만 가보고싶네요
종교가 없으신 분들도 정말 많은 것을 얻어 오실 수 있는 길인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너무 멋있어요~~~~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바빠서 업데이트 주기가 늘어지는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ㅠ
프란체스카가 찾아줬군요. 짜릿했겠어요^^ 기봉봉의 저 코믹한 표정이라니^^
네 ㅎㅎㅎ 정말 누군가 가져오겠지 했는데 진짜 가져왔을줄은 몰랐어요 짜릿!
부엔까미노~~~스페인어 공부시작했어요.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까미노가 가까와오네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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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가 다가온다니 매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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