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ngMoon
a year ago10,000+ Views
호오포노포노에서는 자식을 향해 거는 기대, 간섭, 잘해주고 싶은 마음조차도 정화의 대상이라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그것 조차도 ' ~ 이렇게 되어야 한다. ' 라는 메타프레임, 믿음이기 때문이지요.
사실 사람에게 기대를 하고 개입을 하는 것이
'~이러한 것이 옳다''~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없으면 행동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누구나 한두번쯤은 부모로부터 방치,학대를 경험합니다.
그것이 신체적인 것이든 감정적인 것이든,
(기저귀 갈다가 잠깐 한눈 판것 조차도 아이에게는 학대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자라면서 '나는 저렇게 되지 않아야지, 나는 내 아이에게 잘해줘야지' 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부모가 되면 똑같이 되풀이 하게 됩니다.

설령 그 방식은 다를지언정, 그 마음은 같습니다.
나의 부모 역시, 지금 내 심정과 같은 것이지요.
나의 자식 역시, 그 때 내가 겪었던 심정과 같을 것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업의 패턴, 기억의 체험은 그 집안의 대를 이어서 계속해서 전해져 내려가게 됩니다.다.
본디 하와이의 무당(샤먼)인 카후나는 이러한 집안의 대를 이어 내려오는 업을
정화하고 끊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어머니와의 갈등을 정화하며 보였던 내용입니다.

성인이 된지 한참된 건장한 청년을 자식으로 둔 부모가 있었다.
그녀의 우니히필리(우니히피리)를 만나러 갔다.
그녀의 우니히필리(우니히피리)에게는 그녀의 자식이 아직도 마냥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마냥 느껴졌다.
내면의 기억이 있다면 보여달라고 하자 어린시절 느꼈던 두려움이 느껴졌다.

엄마에게 느낀 두려움, 사랑받지 못한 것에 대한 갈구.
그것을 아이를 통해 보상받고 싶었고 보상해주고 싶었다.
그것이 아이를 자신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것을 어떻게 정화하면 좋을지 묻자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이 보호해주어야하는,
그래서 전전긍긍하게 되는 모습이 아닌 자신의 아이가 훤칠하게 다 자란 모습이 되었다.

그래서 어안이 벙벙하고 한편으로는 내심 아쉽고 마음 한켠이 허전한듯 했지만
이내 받아들이고서 마음을 달리했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이 보호해주어야하는 아들이 아니었다.
그저 뒤에서 그가 하는 것을 묵묵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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