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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역사

불어로 커피(Coffee)를 카페라 하는데, 이것이 “커피를 파는 집”이라는 뜻으로 변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카페는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는 공간으로 인식되는데요. 과거에는 조금 의미가 달랐습니다. 17~18세기 무렵 영국 런던의 경우 3천여 개의 카페는 문인·정객들이 이용하는 클럽으로 일종의 사교장 구실을 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처음에는 서양풍의 고급스런 커피숍이나 조그마한 Bar 형태의 술집을 카페라고 불렀는데요. 그 뒤에 이런 카페는 여급있는 술집으로 변모, 커피 등 차를 파는 집은 다방 또는 커피숍이라고 불렀습니다. 1. 전 세계 최초의 카페 이름은 '가누스 카프베' 로 오스만 제국 때 이스탄불에서 오픈 2. 1645년 베네치아에 유럽최초의 카페가 오픈 3. 1689년 프랑스 최초의 카페가 오픈. 이름은 '르 프로코프' 4. 가장 오래된 카페는 이탈리아의 '플로리안' 으로 1720년에 오픈한 이 카페는 지금도 성업 중. ※ 첨부한 사진들은 이 플로리안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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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을 거부하는 공장개조 카페 BEST 10
이런 인테리어 실화냐? 많고 많은 이색 카페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공장 또는 창고를 개조한 카페. 옛 공장의 빈티지함과 거친 매력을 그대로 물려받은 공장개조 카페들을 모았습니다.  1. 세종 에브리선데이 농협창고를 개조해 만든 세종시에 있는 에브리선데이 빈티지 인테리어로 유명한 메르시엠 인테리어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로스팅룸도 따로있고 다양한 스페셜티원두를 맛볼 수 있다.인기에 힘입어 최근에2호점도 오픈했다. 2. 담양 서플라이 창고를 개조해서 높은천장과 넓은공간으로 자칫 삭막한 분위기를 낼법한데 초록식물들과 네온사인으로 깔끔하면서 세련된 인테리어를 보여주며 화분을 판매하기도 한다. 다양한 더치커피를 맛볼 수있다. 3. 서울 성수동 어니언 넓은 공간과 거친느낌의 마감처리가 옛공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베이커리카페. 베이커리 카페인 만큼 다른곳에서 찾아볼수 없는 독특한 빵들을 만날수 있으며 팡도르와 롱패스츄리는 베스트셀러이다. 성수동일대와 카페안뜰을 볼수있는 루프탑도 이용해보자. 4. 제주 앤트러사이트 상수동 본점으로 시작하여 제주에도 전분공장을 개조해 만든 핫한 카페 옛공장터를 그대로 살려 인테리어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내부 천장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맞거나 야외테이블에서 커피를 즐겨보는 것과, 독특한 이름을 가진 블랜딩 커피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5. 제주 볼스카페 귤농장 창고를 개조해 만든 베이커리카페 2층에서 빵을 직접 만드는 빵공장이 있으며 감귤밭앞에 놓인 테이블에서 커피를 즐길수있다. 다양한 시그니쳐 음료와 베이커리를 맛볼수있으며 애견동반까지 가능하다. 6. 부산 테라로사 부산 수영에 자리잡은 테라로사는 고려제강의 철강제품을 만들던 공장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로 공장의 옛 골격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철강공장이었기 때문인지 굵은 철사로 만들어진 인테리어들이 많이 사용되었고 넓은 카페 구석구석 예전에 사용하던 설비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커피를 마셨으면 옆에 있는 중고서점으로 이동해 책을 보는 것이 추천 코스 7. 대구 빌리웍스 일제강점기 최초의 공단지역이었던 대구의 북구 침산동에 위치한 빌리웍스는 옛 공장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한 리모델링으로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카페 공간이다. 카페의 남아있는 호이스트는 내부는 바뀌었지만 아직 긴 시간동안의 정체성이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커피와 함께 맛있는 빵도 함께 즐겨보고 베틀그라운드를 하고싶게 만드는 루프탑도 꼭 들러보도록 하자  8. 군산 틈카페 군산은 근대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옛건축물들이 많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일제시대 때 미곡창고로 쓰이던 건물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개조만 해서 사용하는 틈카페는 모던한 내부를 가진 다른 리모델링 카페와는 달리 내부또한 고풍스런 모습을 유지하며 꾸며져 있다. 맛있는 커피와 함께 20세기의 낭만에 젖어보고 싶은 사람에겐 강력추천하는 카페. 9. 서울 성수동 대림창고 건물에도 새옹지마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정미소와 물류창고를 거쳐 현재는 가장 힙한 카페로 떠오르고 있는 대림창고는 옛 이름을 그대로 차용하여 빈티지한 멋을 더했다. 높고 넓은 탁트인 공간이 좁고 어두운 프랜차이즈 카페에 실증을 느낀 사람들에게 묘한 매력을 준다. 망원동과 연남동을 거쳐 성수동까지 이렇게 늘어나는 새로운 명소들로 주목을 받게될지 생각이나 했을까?  10. 남양주 플랜트202 공장 개조카페보다는 반려동물과 입장 가능한 카페로 더 많이 알려졌다. 그래서 인지 방문리뷰를 보면 유독 동물 사진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넓은 공간과 멋스러운 분위기를 자랑하지만 도시 외각에 위치한 탓에 차가 없는 뚜벅이들에겐 가기 쉽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차가 있는 애견인이라면 시간내어 방문해 볼 만한 카페 ▼아래 그림을 누르시면 [구글 플레이] 다운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다운을 원하신다면 눌러주세요
[펌] 냉혹한 대일본제국의 희생정신 썰
옛날 옛적 중일전쟁 시절의 이야기다 상하이에서 중꿔와 일본이 멱살잡고 드잡이하던 시절 존나게 웃긴 주작질이 있었드랬다 기세도 등등하게 상하이 상하이 상하이에 트위스트를 추면서 처들어온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상하이를 지키는 중국군은 지금까지의 오합지졸 븅딱들이 아니라 독일에서 온 나치훈련교관한테 착실하게 훈련받은 파워 짱깨였던고로 일본군은 피떡이 된다 가장 일본군을 괴롭힌게 중국군이 치밀하게 깔아둔 철조망이었는데, 독일식 철조망 진지라 굉장히 튼튼했다 철조망이 개같으면 철조망을 치워야지 일본군은 철조망을 조지러 갈 자원자를 뽑기 시작했다 옛날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나온 파괴통이라는게 있음 길쭉한 원통 안에 폭탄을 넣어서 멀리서 구조물 철거하는데 써먹을 수 있는 신통한 물건이다 이렇게 여러개 이어서 길쭉하게 만들어서 철조망이나 지뢰밭에 넣고 도화선 불 붙여서 터뜨리고 안전하게 진군하는 거다 말로 설명하면 감이 안 잡힐테니까 움짤로 보면 됨(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는 뱅갈로어라고 부른다) 겨우 철조망 뚫자고 쓰기엔 좀 비싸 보이는 물건인데 그래도 병사의 목숨은 소중하니까 앵간한 나라는 다 들고 다녔다 물론 인권을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대일본제국의 자랑스런 육군에도 당연히 파괴통이 없지 설마 있을 거라고 생각했음? 일본군은 철조망이 있으면 사이오닉 정신에너지로 뚫고가라는 프로토스들인데 파괴통 같은게 제식 장비로 있겠냐 그래서 나온게 이 현지급조파괴통(대나무제)다 일본 대나무도 아니고 상하이 현지에서 대나무 짤라다 폭약 채우고 도화선 쑤셔박은게 끝인 조잡한 물건이다 생짜 대나무를 짤라 만든 물건이니 당연히 길이 조정 기능 따윈 없다 도화선도 조잡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라 설치 후에 땡기는 게 아니라 미리 땡겨놓고 달리는 거다 그러니까 농담 아니라 이거랑 똑같다 저 존나 길쭉하고 무거운걸 3명이서 발맞춰서 존나게 달리면서 터지기 전에 던지고 돌아와야 됨 놀라운건 저 병신짓을 자원자를 받아서 처리했다는 건데 위의 3명이 그 자원자들이다. 각각 다케지, 스스무, 이노스케라는 엑스트라같은 이름이 있지만 그냥 개또라이 1호기 2호기 3호기로 통칭하자 이런 개또라이짓에 자원했으니 틀림없이 개또라이들이 분명하니까 이 개또라이 트리오가 그나마 보여준 상식은 딱 하나였는데 이딴 짓을 밤에 했다는 거다. 낮에 했으면 100% 총맞고 죽었을건 분명하고 개 쪽팔렸을 거다 헛둘헛둘헛둘 야밤의 상하이를 트위스트를 추면서 3명의 개또라이가 나아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맨 앞에 가던 개또라이 1호기가 진흙에 미끄러져 트위스트를 추면서 넘어져버린 것이다 호엑! 호에에엑! 일제히 패닉을 일으키는 상하이 트위스트 3인조. 자원했을 때의 깡은 어디갔는지.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거 도화선에 미리 불 붙이고 달리는 물건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물건이니 뭐 겁에 질린 건 이해가 간다만 그 뒤의 행동이 또 코미디다 자빠져버린 개또라이 트리오가 도화선을 꺼버리곤 본대로 복귀해버린 것이다 장렬하게 짱깨의 방어선을 작살내고 돌아왔어야 할 개또라이 트리오가 맨몸으로 복귀하자 부대장은 기가 막혔다 당연히 오지게 깨졌다 얼마나 깨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개또라이 트리오가 겁에 질려서 다시 대나무 파괴통을 들고 도로 방어선으로 달려갈 정도는 깨진 모양이다 부대장의 개지랄을 피해 다시 개또라이 3인조는 방어선을 향해 돌격한다 헛둘 헛둘 상하이 상하이 상하이 잠시 후 요란한 폭음이 울려퍼졌다 다시 말하지만 폭파 타이밍 조절 기능 따위 없는 물건이었다. 불 땡기고 터뜨리러 갔다가 자빠져서 돌아오는 시간이 짧았겠냐 이미 타들어갈 대로 타들어간 도화선은 이 빡대가리 3인조와 함께 그대로 폭사했다 1932년 2월 22일의 머저리같은 콩트였다 여기까지만 해도 더이상 ㅄ같을 수 없단 생각이 들겠지만 진짜 ㅄ짓은 이제 시작이다 상하이 사변을 취재하러 온 일본 기레기가 기레기 만랩 스킬을 터뜨린 것이다 아사히 신문에서 온 이 일본 기레기 새끼가 이 작전을 지휘했던 장교를 취재했는데, 당연히 무의미하게 병사를 꼬라박았다고 할 수는 없으니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3명의 위대한 육탄용사들이 대나무 폭탄을 껴안고 적진으로 뛰어들어 카미카제를 시도했다는, 듣기만 해도 엄청난 뻥카 인터뷰가 튀어나온 것이다. 개또라이 3인조는 어느 틈엔가 구국의 용사가 되었다. 얼타다 자빠져서 호에엑 거리던 폐급들은 즉시 2계급 승진한 것은 당연하고 그 뒤의 일이 더 가관이다. 오사카 아사히 신문을 통해 중국을 날려버린 감염된 테란 3인조의 영웅담이 전국으로 흘러나가니 온사방에서 자폭찬양이 울려퍼졌다. 심지어는 죽은 병사들을 기린답시고 육군에 기부금이 쏟아져들어왔다. 정말 일본스러운 상황이군 개또라이 3인조는 맥주 광고에 나오기도 하고 조선 학교에서 어린이 논술문제로 출제되기도 했으며(내용: 개또라이 3인조는 어떤 심정으로 꼬라박을 했을지 서술하시오 초우셴징) 결국에는 동상까지 세워진 것이다 물론 당연히 개또라이 3인조를 주인공으로 한 군가도 만들어졌다 과연 대일본제국이다 정말 대-단해 부실한 병신 무기 만들어놓고 닥돌하라는 일본군이나 하란다고 그걸 자원해 하는 또라이들도 븅신이지만 저렇게 자폭 자체를 신성시하면서 몸 흔드는 일본 국민들이야말고 최종병기 아닐까 이렇게 감염된 테란 3인조는 50년 넘게 찬양받다가 뜬금없이 2007년에 아사히 일보가 아 그거 구라였음 ㅈㅅ 정정보도를 내면서 정체가 까발려지고 만다 진짜 개쪽팔렸겠다 상하이 상하이 상하이 트위스트 추면서 [출처 - 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
스팀팩 맞은 나치
http://www.racontemoilhistoire.com/2016/12/pervitine/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인들이 스팀팩을 맞고 싸웠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스팀팩 이름이 뭘까? 이 또한 주말 특집. 답변은 어떻게 보면 쉽다. 우리에게 친숙한 명칭 히로뽕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우연히 발견/발명한(참조 1) 이 마약, 메스엠피타민(methamphetamine)은 1900년대 초 서유럽과 미국에도 제조법이 퍼진다. 미국은 Benzedrine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은 Pervitin이라는 이름이었다. 다만 이 링크 걸린 글의 주제는 나치의 마약 사용이다. 이 Pervitin은 1939년 당시 독일에서 처방 없이 아무나 일종의 각성제로 살 수 있었으며, 심지어 초컬릿에 섞여서 영양식품으로 판매되기도 했었다. 독일 내 제조사인 Temmler는 원래 코카콜라의 대용품을 만들려고 했었는데 결과는 히로뽕. 수요자는 거의 모든 국민이었다. 노동자는 물론 애새끼(…) 때문에 힘든 어머니들, 시인, 나치당 당수(…참조 2)에 이르기까지 인기가 드높았다. 그런데 친구들은 나치가 카페인을 싫어했음을 이미 알고 계실 것이다(참조 3). 독일에게는 역시 커피보다 수 백 배는 더 강력한 각성제가 필요했었다. 유럽을 점령해야 하니까. 그래서 전쟁 초기, 폴란드와 프랑스 전선에서부터 독일은 병사들에게 Pervitin을 투여한다. 스팀팩 맞은 군인들은 사흘을 쉬지도 않고 행군했고, 두려움도 없었으며, 배고픔과 피곤함도 몰랐다. 그야말로 전격전을 펼칠 수 있었던 것. 말 그대로 전격전은 약빨이었다. (그러니 전격전의 전설을 믿지 맙시다. 응?) 여담이지만 이쯤 되면 울펜스타인 게임의 나치 괴물들이 가짜가 아니었던 셈이다. 자, 문제는 나치 독일이 전쟁 초기에 대승리를 거뒀다는 점이다. 정말 약빨인가? 이제 군대에 몰빵하자, 싶었던 독일은 1941년부터 주부와 청소년, 노년층에게는 Pervitin의 복용을 금지한다. 당시 전쟁에 동원된 독일군은 300만 명이 넘었었다. 하지만 마약중독이 서서히 군대 내에서 나타났으니… 마약중독은 더 강력한 마약을 원하게 마련이다. 1944년의 독일은 Pervitin과 다른 마약을 섞은 더 센 마약을 실험한다. 쉽게 말해서 히로뽕과 코카인, 몰핀을 섞었으며, 이를 강제수용소(Sachsenhausen)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테스트했다. 어차피 이들도 약에 취해서 노동을 시켜야 했다. 그 부작용 때문에 학자들은 지금이라도 중단해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지도부는 약 공급을 계속 유지시켰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독일 녹색당의 창업자에 가까운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이 군인이던 시절, 부모에게 보낸 편지를 보자(참조 4). „Schicke mir, wenn möglich, bald ein paar Pervitin“ / “가능하시면 페어비틴 몇 개 좀 제게 빨리 보내주세요.” 노벨 문학상 수상자도 중독에 빠뜨릴 정도이니 전쟁 이후에는 마땅히 금지해야 하잖았을까? 그러나 전쟁으로 얻은 기억은 쉽사리 잊을 수 없는 법이다. 독일 월드컵 팀은 Pervitin을 복용하고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우승했으며(참조 4),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 또한 60년대까지 약을 복용했었다고 한다(참조 5). 독일 연방군 또한 “비상시”를 대비하여 1970년대까지 Pervitin을 비축했고, 비행기 조종사들은 1988년까지 메스암페타민이 들어간 약을 처방 받았다(참조 2). 미국은? 최근의 이라크 전쟁 때 때 흥분제가 사용됐다는 주장이 있다(참조 6). 스팀팩을 투여한다는 군대 문화가 거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다. 스팀팩은 지금도 스타크래프트에 주요 기능으로 잘 보전되어 있다. -------------- 참조 1. 1888년 도쿄대학의 나가이(長井長義) 교수는 감기약을 만들려다가 메스암페타민을 제조해버렸고, 이것이 각성제에 효과가 있음을 알았다. 이 화학조합은 후에 “히로폰”이라는 상품명으로 나왔다. The pH Levels of Different Methamphetamine Drug Samples on the Street Market in Cape Town(2011년 6월 26일):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189445/ 2. 알베르트 슈페어는 히틀러가 마약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히틀러의 Pervitin 복용은 1942년부터였다. 처음에는 아침에 한 알씩이었다가 하루 수 회로 점점 늘어났다고. Methamphetamin : https://de.wikipedia.org/wiki/Methamphetamin 3. 디카페인 커피의 탄생(2019년 1월 6일): https://www.vingle.net/posts/2552321 4. Peppige Panzerschokolade(2006년 12월 28일): https://taz.de/!336058/ 5. „Die Welt wird verrückt“(2017년 2월 11일): https://www.spiegel.de/spiegel/print/d-149533944.html 6. 'Go' pills for F-16 pilots get close look / Amphetamines prescribed in mission that killed Canadians(2003년 1월 4일): https://www.sfgate.com/news/article/Go-pills-for-F-16-pilots-get-close-look-2687644.php 언급된 GO 약은 메스암페타민은 아니고 암페타민 계열이다. 암페타민에서 메스암페타민이 나왔으며, 암페타민은 각성제에 (정식으로?) 쓰이는 화합물 중 하나다.
[펌] 냉혹한 중세 전염병의 세계
역사에는 진짜 별별 전염병이 다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원톱 뽑으라면 누구나 고를만한 질병계의 아이돌이 있다 이건 엄청 유명하고 이름도 간지나는지라 영국이 섬인줄 모르는 멍청이들도 이름은 들어봤을 거다 이야기는 1347년의 어떤 공성전에서 시작된다 말 덕후만 잔뜩 모인 몽골, 정확히는 킵차크 칸국이 이탈리아의 식민 도시인 '카파'를 후드려패고 있던 것이다 근데 그 천하의 무적몽골치곤 기세가 좀 많이 비실비실했다 카파의 유럽친구들이 성벽 밖으로 내다보니 이 칭챙총들이 뭔 병이라도 걸렸나 정신을 못차리고 비틀거리고 있다 어떤 놈은 온몸이 시꺼멓게 변했고 어떤 놈은 24시간 내내 피똥을 싸갈기고 있었거든 당연히 카파 친구들은 저 머저리들이 임질에 걸렸나보다 이러면서 매우 신이 났다 실제로 몽골인들 사이에서는 전염병이 돌고있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죄다 전염되어가는 상황이어서 공성전은 개뿔 집에 살아돌아갈 수 있을 지도 애매한 판국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말 덕후들은 성벽 위에서 낄낄대면서 축제를 벌이는 유럽 새끼들이 존나 꼬왔고, 인류평등의 정신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내가 좆같으면 니들도 좆같아야 해 호모 사피엔스 역사에 깊이 새겨진 그 유우명한 정신 말이다 그리하여 몽골 말 덕후들은 투석기에 돌덩이 대신 병으로 죽은 동료들의 시체들을 장전하고 쏴갈기기 시작했다 카파 시내 곳곳에 썩어서 팅팅 분 시체들이 철퍽철퍽 떨어지기 시작했다 새로 칠한 지붕 위에 주렁주렁 널린 팔다리내장을 본 유럽 친구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썩어들어갔으니 너도 좆같고 나도 좆같았다 마침내 인류평등이 실행되었다 기분만 평등해졌을까? 물론 아니지 유사이례로 금수저건 흙수저건 남녀노소 불문하고 평-등하게 적용되는 원칙이 하나 있다 흑사병 걸리면 누구나 한 방에 훅간다는 거 말이야 몽골 말 덕후들이 가져온 질병은 중앙아시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던 그 유명한 흑사병이었다 카파에서는 순식간에 발병이 시작되었고 이렇게 세계 역사를 영영 바꿔버린 대전염병 흑사병의 대학살쇼가 개막된다 흑사병은 진짜 뭔 병의 신 같은 병신새끼가 대놓고 인간 멸종시키려고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악랄한 물건이다 제일 악랄한 점은 치사율이 미쳐돌아가는 주제에 잠복기까지 있다는 거다 병에 걸려도 사흘에서 일주일 정도는 걸린 본인도 지가 걸린줄 모른다 엌ㅋㅋㅋ 나 운 존나 좋은듯ㅋㅋㅋㅋ 이러고 안심하고 있을 무렵에 응 아니야~외치면서 활동 시작하는 미친놈이다 발병하면 어떻게 되느냐 일단 몸이 개 추워서 얼어뒤질 것 같은 오한이 온다 근데 정작 몸은 펄펄 끓는 고열에 시달린다 어 독감걸렸나? 싶어서 병원에 가려고 하면 그때부터 끔찍하게도 고추 부근에 주먹만한 종기가 생기기 시작한다 작게는 계란 크기에서 크게는 사과 크기의 종양은 하필 겨드랑이와 고간 같은 부근부터 생기기 시작하는데 이게 건드리기만 해도 존나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드러눕게 된다 하필 계란이랑 사과라니... 당연히 이렇게 혼자서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헬프 외치고 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들고가겠지? 그럼 얘네도 감염임 이런 식으로 인간 사이에 퍼지기 쉽게 악랄하게 증상이 디자인된 놈인데 치사율도 엄청 높다 저렇게 고추 사이에 종기 생긴 후엔 기침이 시작되고 피 토하면서 으겍켘켘거리다가 손끝 발끝부터 시꺼멓게 썩어들어가기 시작한다 얼마나 빨리 썩냐면 아직 살아있는 환자가 지 고추 썩어가는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코가 아직 덜 썩었어야 가능하겠지 그러다가 고통스럽게 죽어버리는데 그게 며칠 걸리냐면 빠르면 하루도 안 걸리고 보통은 5일이면 뒤졌다 그러니까 흑사병은 정확히 사람 사이에 퍼질 수 있을 정도로 간 좀 보다 갑자기 발병하고 발병한 후에도 최대한 전염시키려고 지랄을 떠는대다 그러면서도 발병 후에는 존나 빨리 죽여버리는 개새끼라는거지 이런게 퍼지기 시작했으니 이젠 더이상 공성전이 문제가 아니다 카파 시내에 시꺼멓게 썩어가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하자 아직 살아남아있던 유럽인들은 고향으로 필사의 빤스런을 시작함 카파가 이탈리아 식민도시였기 때문에 많은 선원들은 이탈리아 제노바로 빤스런을 했는데 문제는 이 새끼들이 빤스만 입고 간 것이 아니라는 거다 선원들의 빤스창고에는 당연히 쥐새끼들이 우글거렸고, 그리고 그 우글거리는 쥐새끼들의 털 속에는 벼룩도 득실거렸다 흑사병으로 죽은 환자 피를 듬뿍 빤 벼룩들이 말이다 이렇게 유럽에 흑사병이 상륙하게 된다 그것도 하필이면 전 유럽에서 제일 사람이 바글바글대는 상업 도시 제노바에. 흑사병 입장에선 이지모드에서 치트키 치고 하는 상황이다. 결국 지 살겠다고 빤스런한 이 카파 빤스쟁이들은 자기는 물론이고 2억명의 유럽 새끼들을 같이 저승으로 끌고간다. 빤스런은 예전부터 심각한 폐혜였다. 이건 흑사병이 중앙아시아에서 시작해서 온사방을 뒤덮는 과정이다 전유럽이 초토화될 때까지 5년도 안 걸렸다. 그 정도로 중세 유럽은 흑사병이 퍼지기에 최고의 환경이었다 원래 흑사병을 가져온 말 덕후 몽골인들은 유목민이라 인구밀도도 낮고 기동성도 좋아서 전염병에 대처하는 데에는 유리했다 근데 유럽은 도시를 짓고 존-나 많은 사람들이 존-나 좁은데서 우글거리면서 모여산다 뷔페가 따로 없었다 흑사병에 감염된 벼룩은 쥐새끼 버스를 타고 이리저리 쏘다니면서 신나게 에슐리 무료이용권을 소진했다 순식간에 제노바에서는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고 기겁한 보균자들은 몸에 벼룩을 단 상태로 또 빤스런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다른 뷔페로. 1347년에 시작된 카파 공성전이 1348년이 되자 유럽 남부를 통째로, 제노바, 나폴리, 마르세유 등의 모든 항구도시를 감염시켰다 겨우 1년만에 과장 하나도 안 섞고 진짜 하루에 수천명씩 죽는 세기말 아포칼립스가 도래한 상황이다 듣도보도 못한 질병들이니 의사 새끼들도 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걸리면 걍 죽어야 하니 중세인들은 흔히 하는대로 "아 ㅅㅂ 이거 지져스가 우리 좆같다고 벌주나벼 우리 모두 반성하자" 이 지랄떨면서 회개 모드에 들어갔다 죽기 전에 천국가고 싶어서 성당들이 고해성사 받으려는 빡대가리들로 꽉꽉 들어차서 또 다른 뷔페를 만들었다 천국가고 싶어서 줄서서 기다리는 유럽인들의 종아리는 벼룩들에게 존나 물어뜯겼고 결과적으로 성당 갔다온 친구들은 그날 밤 정말로 천국으로 갔다 흑사병에게는 진짜 의미로 천국같은 세상이었다 거기다 중세 시대라 흑사병-벼룩-쥐-인간 테크를 이해하지도 못했다 흑사병은 벼룩을 타고, 벼룩은 쥐를 타고 빠르게 이동하는데, 이 쥐를 잡아먹어서 그나마 병을 억제하는게 중세의 고양이들이었다 그러나 제정신이 아니었던 유럽놈들은 평소에도 불길하게 여겼던 고양이들이 병을 옮기는 마녀의 사역마들이라고 선언하곤 고양이를 족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더 좃되어가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대흑사병 고객서비스는 이걸로 멈추지 않았으니, 흑사병의 확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채찍고행단이라는 마조 집단도 있었다 뭐하는 새끼들이냐면 흑사병은 신의 징벌이 분명하니까 우리가 반성하는 기색을 보여주면 물러갈거임 이러면서 지들 등짝을 징박힌 채찍으로 후려갈기면서 돌아다니는 새끼들이었다. 이들은 알몸으로 지져스에게 죄송죄송을 외치며 온 유럽을 떠돌아다녔다. 이 새끼들은 진짜 흑사병한테 표창장이라도 받고 싶었던 게 아닌가싶다 거기다 고행단원들 사이에선 누가누가 더 아프게 때리나 경쟁심리까지 붙어있었다. 스스로 줘패는 강도가 점점 더 강해지면서 사방에 피가 터지기 시작했고 당연히 이 중에는 보균자의 피도 있었으니 채찍고행단 하나가 순식간에 거대한 전염병 덩어리로 바뀌었다. 설상가상으로 채찍고행단 대부분은 "우리 반성해야 되는데 일할 시간도 없음요 ^^"를 외치는 백수들이였다. 이 새끼들이 어떻게 먹고 살았냐면 아무 마을이나 쳐들어가서 회개하라!를 외치고 창고를 털어먹는 것이었다. 일단은 신한테 죄를 비는 새끼들이라니 어떻게 말릴 수도 없는데 순 강도들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강도가 맞는 경우도 있었다. "오 저 새끼들 아무도 안 건드리네?"싶어서 강도들이 웃통만 벗고 채찍고행단 사이에 슬쩍 끼어들어가서 마을을 털어먹는 일도 존나 흔했다. 총체적 난국이다 그런데 그 총체적 난국은 의외로 금방 해결됐는데, 빨갱이 서기장 동무가 말했듯이 인간이 없으면 문제도 없기 때문이다. 이윽고 흑사병이 발병하자 채찍고행단이고 강도고 마을사람이고 몽땅 평등하게 죽어버렸다. 스탈린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보면 흑사병 그 자체보다 인간이 더 죽고싶어서 안달이 난 거 같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해결해보려고 노력한 의사들이 있긴했다 하나같이 쓸모없어서 그렇지 흑사병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도대체 이 새끼가 어떻게 퍼지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700년 전의 중세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건 알지도 못했고 벼룩같은 좁쌀만한게 지들을 죽일 수 있을 거라 믿지도 않았다. 그래서 의사들은 흑사병의 원인을 지목했는데 쌩뚱맞게도 악취라는 것이었다 왜냐면 흑사병 걸린 새끼들의 공통점이 몸이 썩어가면서 악취를 풍긴다는 거였는데, 그걸 보고 아 악취를 오래 맡으면 병이 생기나벼 이런 결론을 내린 거다 병에 걸렸으니까 악취가 나는거지 악취가 나서 병에 걸린게 아닌데 말이지 중세라 현미경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으니 어쩔 수 없다만 결국 의사들의 삽질만 장대하게 이어지게 된다 여기서 그 유명한 흑사병 의사 마스크가 탄생한다 이 무섭게 생긴 가면의 부리 부분에는 꽃이나 향신료등이 잔뜩 들어가 있다 이걸 쓰면 아무튼 악취는 막을 수 있었으니 의사들은 이걸 쓰고 흑사병 환자를 진료하러 갔다. 물론 흑사병은 쥐뿔도 신경 안썼다. 의사들도 다 평등하게 죽어나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럽인들은 의사 따라한답시고 꽃을 들고 다니면서 수시로 냄새를 맡고 다니기 시작했다. 돈 좀 만진다는 금수저들은 이 무렵에 향수제조에 존나 돈을 투자하는데 이게 나중에 향수산업의 밑거름이 된다 근데 힙스터들은 향기 산업이 대세가 되자 오히려 반대방향으로 가기 시작한다 똥을 빨기 시작한 거다 농담이 아니라 물리적인 의미로 똥을 빨았다. 운좋게 흑사병에서 살아남았거나 아예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의 똥오줌이 비싼 가격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존나 상상을 초월한다 오줌으론 골든샤워를 했고 똥으로는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다니거나 심지어는 처바르고 다녔다 여전히 효과는 전무했다. 정말 여러가지 의미로 ㅈ같은 시대다. 하여튼 재미를 실컷 본 흑사병은 1350년 말에 갑작스레 사라져버린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 숫자로 따지면 수천만명에서 최대 2억명까지다. 이 전염병으로 역사가 바뀌는데 그건 지루하니까 얘기하지 않겠다. [출처 - 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
eye-maps : 이태원편
Editor Comment 한국 전쟁 이후 미8군 용산 기지로 인해 위락지대로 번창하며, 오늘날 외국인들은 물론 내국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가 된 이태원. 평일에는 소슬하고 고요하지만 주말을 포함해 특히 금요일에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미 내로라하는 맛집의 관문은 마쳤고, 이름을 날린 곳은 지겹다. 혼자 사색에 빠지기 좋은 프라이빗한 공간부터 2~3인, 4인 이상 모임 장소로 충분한 이태원 일대의 ‘인원별’ 하루 코스의 서막을 열어보자. 순서는 밥, 카페, 술집, 번외로 클럽까지. 1~2인 1~2인의 추천 코스로는 북적이는 이태원 초입을 피해 경리단 뒤쪽 조용히 입지를 다지고 있는 소월길로 선정했다. 바람 그리고 시간과 나란히 보폭을 맞춰 거닐기 좋아 혼자라도 문제없다. 또한 이 골목은 남산을 옆구리에 끼고 있으며 예술 감각이 깃든 외곽까지 감싸져 있어 둘도 없는 친구 혹은 사랑하는 연인과의 데이트 루트로 근사하겠다. 밥집 장꼬마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외진 언덕을 오르고 올라 주택가 골목에 당도하기까지 여러 번 숨을 골라야 하지만, 간결한 한상차림을 맛보면 그만한 호사가 또 없다. 옛날 궁중에서는 장독대 옆에 집을 짓고 간장을 지키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를 ‘장꼬마마’라 일컬었다. 이 타이틀을 따서 약 3년 전에 오픈된 가정식점 장꼬마는 현시대 주방 상궁을 꿈꾼다. 한식을 조금 더 젊은 감각으로 선보이길 원하고 여기에 정갈한 플레이팅을 더해 할머니 집 밥과 같은 푸근한 음식을 대접한다.  대표 메뉴 육회비빔밥, 명란버터라이스 1인 추천 메뉴 장똑똑이 덮밥 주소 서울 용산구 소월로40길 53 영업시간 평일 12:00 – 22:00 / 브레이크 15:00 – 17:30 / 라스트 오더 21:00 주말 12:00 – 22:00 / 브레이크 15:00~17:00 월요일 휴무 카페 오지힐 배도 두둑이 채웠겠다, 경리단길을 따라 내려오자. 호주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 셋이 모여 ‘호주 집’을 모티브로 새 지평을 연 카페가 반갑게 맞이해준다. 그 이름도 서울 속 작은 오스트레일리아 언덕 ‘오지힐’. 특별한 간판이 없어서 어쩌면 그냥 지나칠지도 모른다. 그만큼 험블하지만 스페셜한 공간이라 자부한다. 이와 같은 비밀의 방을 지닌 오지힐은 모든 디저트를 아침에 직접 엄선해 추린 싱싱한 재료로 만든다. 혼자 방문한 손님이 주문할 때 추천 음료 세트는? 바블로바와 탐탐모카의 따끈한 조합. 대표 음료 탐탐모카, 오지아이스 1인 추천 메뉴 탐탐모카 + 바블로바 주소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34-8 영업시간 평일 12:00 – 22:00 / 라스트 오더 22:00  주말 10:00 – 24:00 주점 orgasmfrog 낮술 시전은 물론 지나는 길에 잠시 머물러도 좋은 칵테일 바, 오르가즘프로그. 이름이 다소 선정적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가게의 컨셉이 바로 힙한 섹슈얼리티이기 때문이다. 요즘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몰트 바 보단 가볍고 캐쥬얼 바 보단 다양하게 갖춰졌으며, 클래식보단 특이하지만 편안함을 준다. 푸른 조명의 몽롱하고 오묘한 실내 분위기는 동네 주민부터 패션계 종사자, 인플루언서까지 다양한 고객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한다. 애견 동반도 가능한 이곳은 감각적인 가게 무드만큼이나 선곡 센스가 인상적. 대표 칵테일 키스문, 디사론노 사워, 코스모폴리탄 1인 추천 메뉴 키스문 + 참치 크래커 주소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13나길 33 영업시간 평일 17:00 – 02:00 (낮 예약은 따로 문의)   금요일 17:00 – 03:00 토요일 14:00 – 03:00 일요일 14:00 – 02:00 3~4인 조금 더 넓게 보자. 3~4인을 수용하려면 가게에 마련된 자리는 충분해야 한다. 너무 작아도 답답할 수 있으며 너무 넓으면 민망하게 휑할 수 있다. 이태원에서 모임 약속이 있다면 이번엔 한남동에서 시작해보자. 경리단길에 비해 맛과 서정적인 정취를 지닌 가게가 포진해있다. 밥집 라운드어바웃 타이트한 사회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마음을 진정시키며 쉬어갈 수 있는 소박한 일본 전통 카레집 라운드어바웃. 위안을 줄 수 있는 밥상을 모토로 삼았다. 그에 맞서듯 가정식하면 떠오르는 기존의 단아한 플레이트를 벗어나 실제로 일본 현지에서 즐기고 있는 다양한 음식을 라운드어바웃만의 스타일로 제공한다. 그럴싸한 일본 가정식 콘셉트만 내세운 레스토랑이 아니라는 것을 맛으로 증명한 셈. 대표 메뉴 쉬림프반반카레, 소시지야끼카레, 히모가와우동 3인 추천 메뉴 소세지야끼카레, 히모가와우동, 에비가츠정식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59-1 영업시간 평일 11:30 – 22:00 카페 more than less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세계의 커피집 25’ 중 당당히 선발된 모어댄레스. 첫 번째 연남동 편집숍에 이어 두 번째 한남동 공간으로 성공적인 확장을 이뤘다. 카페의 슬로건이자 상호명인 ‘more than less’는 그들이 지향하는 미니멀라이프 및 문화적 만족감에 더할 나위 없이 부합한다. 베를린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보난자 커피(Bonanza coffee)의 한국 지점이며, 편집숍 안의 숍인숍 형태로 있음에도 커피에 대한 자세가 진지하고 추출 결과물이 좋아 전문 바리스타들도 자주 찾는다. 대표 음료 필터커피, 크림커피, 피콜로라떼 3인 추천 메뉴 필터커피, 크림커피, 피콜로라떼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49길 24 영업시간 매일 10:00 – 22:00 주점 PIKE 맥주 애호가가 지천이라 단정 지을 순 없는 한국이라지만 맥주를 탐미하는 이들이 다수 집결된 지역, 이태원. 카레로 1차 배를 채우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수다 열전을 펼쳤다면 3차로 맥주 한 잔 걸쳐 화룡점정을 찍자. 갓 구운 따뜻한 프레즐과 맥주의 조화 ‘프맥’을 권장하는 파이크는 가볍게 들러 다양한 생맥주를 즐길 수 있는 펍이다. 다양한 맥주를 맛볼 수 있는 맥주 샘플러 제공은 덤. 대표 맥주 더블 IPA, 모카스타우트, WIT ALE 3인 추천 메뉴 프레즐, 페페로니 피자 + 더블 IPA, 모카스타우트, WIT ALE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4길 58-7 지하 1층 영업시간 평일 17:00 – 24:00  주말 15:00~24:00 월요일 휴무 4인~단체 연말 모임에 임하기 앞서 고려해볼 4인 이상의 단체 식당? 일단 인원이 많다. 무작정 넓고 사람이 붐비지 않는 장소를 찾고 있다면 일찌감치 포기하자. 그래도 무드는 포기 못하는 이들을 위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한식 밥집부터 새벽에 더 진가를 발휘하는 3차 주점까지 송년회 풀코스를 준비했다. 밥집 빠르크 “집에서 엄마가 쓰는 재료 그대로 사용해 정직하게 요리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직접 전한 말이다. 엄마가 해준 음식이 최고라고 자부하는 아들이 젊은 요리사들과 의기투합하여 가정집 레시피를 고수한 한식당, 빠르크. 화학조미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은 칠첩반상의 푸짐한 음식이 제공되고 당장의 자극적인 맛엔 안주하지 않는다. 대표 메뉴 미국산 블랙 앵거스 LA 갈비구이, 제육볶음 & 해초쌈, 통영굴 해장국, 횡성 더덕구이 4인 추천 메뉴 개인 메인 메뉴 + 치즈 바삭 감자전, 명란 달걀말이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5가길 26-5 영업시간 매일 11:30 – 15:30 / 17:30 – 22:00 월요일 휴무 카페 사유 마냥 카페라고만 단언할 수 없는 복합문화공간 사유. 1층은 카페, 2층은 초콜릿 존, 3층 미디어아트 공간 등 층마다 각기 다른 콘셉트의 공간으로 구성해 다양한 감성을 느끼게 한다. 1층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지하 1층을 제외한 모든 층을 이용해보자. 이와 더불어 사유만의 메리트는 계절에 따른 시즌 음료를 많은 테스트에 거쳐 출시한다는 점이다. 올겨울에는 말차를 바탕으로, 커피와 초콜릿이 블렌딩된 카카오 말차 드링크가 론칭됐다. 포토존 팁은 바깥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5층 영국풍 루프탑. 대표 음료 카카오 드링크, 멜로우 4인 추천 메뉴 말차 카카오, 멜로우, 카라멜마끼야또, 폰도모카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4길 5 영업시간 평일 11:00 – 23:00 금, 토요일 11:00~23:00 주점 겸상 밥 먹고 커피도 마셨다고 이대로 끝나면 아쉽다. 술이 빠졌다. 식후 모임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볍게 한잔하러 가기 딱인 공간을 물색 중이라면 부담 없는 안주와 맥주, 밤이 깊을수록 서로가 아름다워 보이는 분위기까지 고루 정비한 이태원 겸상으로 향하자. 분야와 장르가 다른 사람들이 한데 모여 그야말로 ‘겸상’할 수 있는 주점, 겸상. 클래식함, 힙한 2가지 공간으로 내부를 빼곡히 채워 오너의 자전적 소망을 실현한 공간이다. 인디펜던트 크레이티브 에이전시 WTFM(What the Fun Man)의 ‘Nothing really matters’란 메시지를 담은 콘크리트 벽은 공장이나 베를린 장벽처럼 거칠지만, 또 한쪽에 위치한 바와 테이블은 팬시함, 내추럴 무드를 두루 갖췄다. 대표 안주 겸상전골, 대구강정, 항정살구이 4인 추천 메뉴 차돌 고추장찌개 + 대구강정 + 항정살구이 + 겸상 비빔면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27가길 50 지하 1층 영업시간 평일 19:00 – 02:00  주말 19:00 – 05:00 클럽 붐바 음악 장르 22:00 – 24:00 컨템퍼러리 알앤비, 팝 24:00 – 03:00 힙합(한국 힙합 포함) 03:00 – 05:00 알앤비 특징 넓은 스펙트럼의 선곡, 주기적으로 환기, 금연 클럽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11 한남빌딩 2층 영업시간 금, 토요일 22:00 – 05:00 토스트 음악 장르 다종의 힙합 특징 토스트 빵을 연상케 하는 네모 심볼을 찾는 재미 주소 서울 용산구 보광로 124 지하 1층 영업시간 목, 금, 토요일 22:00 – 05:00 소프 서울 음악 장르 퓨처베이스의 하우스 힙합 특징 퓨트디럭스(Pute Deluxe)의 세심한 기획 공간, 금연 클럽 주소 서울 용산구 보광로60길 14-9 지하 1층 영업시간 목, 금, 토요일 22:00 – 05:00 더 자세한 내용은 <아이즈매거진> 링크에서
따발총을 든 소녀
이 사진은 도대체 누구인가? 1956년 헝가리 혁명을 아마 알고 계실 텐데 당시 11월 초 부다페스트 거리에서 촬영한 반소련 저항군 일원 중 하나이다. 이름은 Szeles Erika Kornélia, 셀레시 에리커 코르넬리어(참조 1)이다. (헝가리어는 성씨가 앞에 오는 거 알고 계실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진은 어디에 실렸는가? 덴마크의 오래된 주간지, Billed Bladet의 1956년 11월 13일자로 나와 있었다고 한다. 촬영자는 Vagn Hansen. 문제가 있다. 잡지가 나온 11월 13일은 이미 셀레시 에리커가 목 뒤로 총을 맞아 사망한 이후였다(참조 2). 일단 셀레시 얘기부터 해 보자. 그녀는 1941년생이고 유태계 가족에서 태어났었다. 그래서 잠시 세이브더칠드런 덴마크 지부로 보내서 살려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덴마크어를 좀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당연히(?)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사망했고 어머니가 무남독녀로 홀로 키워낸다. 당시 사정에 맞게 크고 나서는 고등학교까지 진학하지는 않고 조리학교에 들어간 다음, 한 호텔에 보조 요리사가 된다. 그당시 서너살 위의 한 오빠와 사귀면서 사상전향(?)이 일어난다. 유태계 집안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머니는 상당한 공산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딸인 에리커는 급격한 반공주의로 바뀐다. 그래서 당시 소련의 억압에 대해 반항했고 급기야는 반항군에도 들어간 것. 어차피 헝가리군을 당시 소련이 해체시켰기에 반항군은 군 출신도 많았다. 이때가 10대 중반, 헝가리 혁명의 시기인 1956년이다. 다르게 보면 스탈린 사망 이후, 헝가리가 간이 커졌다고 볼 수도 있을 텐데, 아직 너무나 어린 나이인 15세여서 반항군 내에서는 에리커가 전투병을 하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나 하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간호 보조로 역할을 바꾼다. 바로 그당시 Vagn Hansen을 포함한 덴마크 저널리스트들이 멋대로(외교관 차량을 위조(!)해서 들어갔다, 참조 3) 헝가리에 들어갔었고, 아직 편제가 바뀌기 직전의 에리커를 촬영했던 것이다. 그러나 에리커는 수 일 후, 적십자 마크를 달고 쓰러진 반항군을 구하러 다니다가 소련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11월 7일이었다. -------------- 1956년 당시 에리커의 사진이 나온 잡지를 본 Henning Schultz는 이 소녀에 대한 동경과 사랑의 감정이 휘몰아쳤다. 도대체 이 따발총을 들고 다부진 표정을 한 소녀는 누구일까? 문제는 잡지 사진에 이름만 덩그러니 있다는 점이었다(참조 4). 과연 그 때 살아있기는 했을까? (답: 사망했다.) 에리커 사진에 대한 집념을 갖고 있던 그는 지리학자로서 은퇴한 이후인 2000년대 후반부터 그녀를 찾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그 잡지를 여러 권 갖고 있던 그에게 있어 그녀는 일종의, 헝가리 혁명의 상징(참조 4)이었다. 슐츠는 헝가리 언론사와 정부, 박물관 등 여러 군데에 의뢰를 했고 그제서야 초등학교 동창, 포크댄스 그룹의 일원 등등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때에서야 자세한 신원을 알 수 있었다(참조 5). 2008년, 슐츠의 도움을 통해 사진 촬영가였던 Vagn Hansen은 공식적으로 이 사진을 포함한 헝가리 혁명 당시 촬영한 사진들을 헝가리 역사 박물관 측에 기증한다(참조 6). 그리고 그녀는 정말로 헝가리 혁명의 상징 중 하나가 됐다. -------------- 참조 1. 한국에도 알려져 있는 인물이기는 하다. 자유를 향한 '혁명의 순간' 사진으로 남았다(2016년 11월 7일): http://naver.me/FcUMXfsQ 2. The heroes of 1956: The girl, who was already dead when her photo went around the world (2016년 10월 17일): https://dailynewshungary.com/heroes-1956-girl-already-dead-photo-went-around-world/ 3. »Pressefotograf var det værste. Jeg ville være fin portrætfotograf på femte sal”(2005년 5월 25일): https://journalisten.dk/pressefotograf-var-det-vaerste-jeg-ville-vaere-fin-portraetfotograf-pa-femte-sal/ 4. "Vörös hajú, szeplős, zsidó származású kislány volt" - Rábukkantunk a forradalom titokzatos jelképére!(2008년 11월 2일): https://mazsihisz.hu/hirek-a-zsido-vilagbol/archiv/voros-haju-szeplos-zsido-szarmazasu-kislany-volt-rabukkantunk-a-forradalom-titokzatos-jelkepere 5. https://hu.wikipedia.org/wiki/Szeles_Erika_Korn%C3%A9lia 6. AJÁNDÉK DÁNIÁBÓL(2008년 3월호): http://fotomuveszet.net/korabbi_szamok/200803/ajandek_daniabol
[펌] 공무원들을 쥐어짜냈던 중국의 흙수저 출신 황제
출생, 1328년 원나라 말기 심한 기근에 각지에서 도적들이 들끓는 막장 상태의  사회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넷째 아들로 태어남. 이름 중팔. 소작농인 부모와  농사일, 목동일을 하면서 지독한 가난을 겪음 유년기, 끼니도 제대로 못 먹는 상태에서 천연두까지 걸렸으나 이겨내고 살아남.  얼굴이 곰보로 모두 얽어버림. 10대 초반, 지주의 소를 치던 중 너무 배가 고파 친구들과 송아지 한마리를 잡아먹음.  자신이 대표로 몽둥이로 개맞듯이 맞음. 17세, 심한 가뭄과 전염병으로 부모, 형 전원 사망. 마지막까지 막내 중팔과 함께  살아남았던 중팔의 형은 13알의 마지막 볍씨로 풀죽을 쑤어 중팔에게 주었고  형 자신은 배를 곪다가 사망. 재산이 없어 부모와 형의 묘를 세울 땅도 없었고 유계조라는 사람에게 땅을 빌어  귀퉁이의 땅을 얻음. 찢어진 옷 몇벌을 겨우 구해 시신을 덮고  손수 부모와 형의 시신을 매장하고 장례를 치룸. 17세 이후, 절에 가면 밥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을 듣고,  머리를 밀고 황각사라는 절에 들어감. 절에서 마당을 쓸고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등  허드렛일을 하고 죽을 얻어먹음. 그곳에서 글을 배울 수 있었고 서적을 읽음. 절이 어려워지자, 탁발승(당시에는 거렁뱅이 취급)을 하며 전국을 4년동안 떠돌아다님.  민심이 흉흉하던 때라 바가지로 물을 맞거나 침을 맞는 수모를 당하기도 함. 24세, 곽자흥의 홍건군 휘하에 말단 병졸로 들어가 공을 세우며 승승장구. 2인자의 자리까지 오름. 처음 홍건군에 투신하였을 때, 외모 때문에(...) 첩자로 의심받아 포박 당하여 끌려갔으나  곽자흥이 그의 담력과 총명함을 알아보고 천거함.  곽자흥의 양녀 마씨와 당시 기준으로 늦은 나이에 결혼. 27세, 곽자흥이 죽자 곽자흥이 이끌던 홍건군 군단의 지도자로 추대됨 28세, 남경 점령. 남부의 대 군벌 중 하나로 부상 35세, 최대의 라이벌 진우량을 파양호 대전에서 격파. 36세, 진우량의 세력을 모두 흡수하고 스스로 '오왕'의 자리에 오름. 39세, 또 다른 군벌 장사성을 격파하고 남부 패권 장악 40세, 25만의 대군으로 북벌 단행, 원나라 잔존 세력과 군벌들을 모두 격파하고  베이징 (대도) 점령. 원나라의 잔존세력을 만리장성 이북으로 몰아내고 명(明) 건국. 그 이름 명태조 홍무제 주원장. 중국 역사상 평민으로부터 시작해서 황제가 된 인물들은 있지만, 대부분 젊은시절에도 세력을 키울만한 기본적인 밑천은 가지고 있었다.  평민에서 황제가 되었다는 한 고조 유방조차도 말단이나마 관직이 있었고,  장인이 지역 유지였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징기스칸과 누르하치는 젊은 시절 고생을 겪었지만 유목세계에서 귀한 혈통을 이었으며 둘 다 부족장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주원장은 가난한 천민에 가까운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홍건적에 투신하기 전까지는 세력도 배경도 아무것도 없었다. 황제가 된 이후, 부모의 묘자리를 내어준 유계조에게 엄청난 포상을 내렸으며 절에서 있던 시절, 가장 힘들었던 일이 사천왕상의 다리 사이에 있는  먼지를 청소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모든 절의 사천왕상은 청소하기 편하도록 반드시 한 발을 들게 만들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이러한 출신 성분과 이후의 치적으로 백성들 사이에서는 명군이란 평가를 받기도 하였지만,  신하들 사이에서는 폭군이란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는 개국 공신들을 쥐 잡듯이 족쳤기 때문이다.  백성들에겐 명군인데 신하들에겐 폭군이라고 엇갈린 평가를 받는 이유는, 아무래도 역사를 쓰는 사람들이  신하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도자의 권력 한계상 백성과 신하 둘 중 하나만을 챙길 수밖에 없는데,  신하들은 자기들이 잘 살아야 태평성대라고 봤기 때문이다. 또한 엄청난 워커홀릭으로 유명했다. 그 자신부터 관리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신념을 유지했는데, 이것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그 자신조차 죽을 때까지 20년 동안 엄청난 양의 업무를 소화했다.  태어날 때부터 황실에서 태어나 귀하게 자란 그 아들들이나 손자부터는  생전 주원장의 그 업무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보조하는 신하를 두기 시작했고  이것이 사실상의 승상제도처럼 변해버렸다.  그런데도 주원장은 죽을 때까지 승상을 두지 않고 본인이 업무를 맡았다.  기록에 따르면 한번은 얼마나 업무를 처리하는지 계산을 해봤는데  8일 동안 3,391건의 문서를 처리했다고 한다. 대략 하루에 처리한 것이 400건이 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이라서 누가 글자는 1만 5천자나 되는데 내용은 쥐뿔도 없고 쓸데없는 문서를 올렸다. 주원장은 노발대발하며 그를 숙청해버렸다. 건국군주임에도 후비를 많이 들이지 않은 군주로도 유명한 주원장은,  당시 황후와의 의리를 지킨 점 때문에도 당시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주원장은 자신이 쥐뿔도 없던 시절부터 뒷바라지를 해 주던 마 황후가 사망하자  그녀의 죽음을 매우 비통해 하였으며, 약 일주일 동안이나 식음을 전폐하며  마 황후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한다. 그리고 평생 후비를 들이지도 않았으며 일에 몰두했다. 숙청과 후계 구도 실책으로 후대 신하들에게도 엄청나게 부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대 백성들에게는 영웅으로 추앙받던 황제였다고 한다.
[펌] 냉혹한 히틀러 암살 시도 썰
교양있는 이들은 모두 알겠지만 2차머전은 히틀러가 암살당하면서 사실상 끝난다 사악한 독재자 히틀러 히틀러의 머리통에 권총탄을 박은 용감한 어쌔신 아돌프 원래는 화가가 되고 싶었던 착한 청년 아돌프가 어떻게 히틀러의 벙커를 돌파하고 히틀러의 대갈통에 발터를 쏴갈겼는지는 현재까지도 미스터리며 우리의 아돌프조차도 히틀러와 죽음과 자신의 목숨을 맞바꿔야 했을 정도로 히틀러의 암살은 어려운 일이었다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시도는 30번이 넘게 있었는데 그 중 아돌프 빼고 성공한게 하나도 없는 것만 봐도 그렇다 당연히 2차대전 최고의 기행국 영국도 히틀러를 암살하려 시도한 적이 있었다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는 오랜 지병 고혈압은 아니고 연합군에게 두들겨맞고 쓰러졌다 자세한 점령 내용은 우주갓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우주갓드라마 밴드오브브라더스를 참고하도록 하시오 하여튼 무수히 많은 나치들이 영미 연합군에 포로로 잡혔다. 자아 오징어밥풍 그린소스가 왔습니다 차라리 고문을 해라 개새끼들아 그런데 영국 밥을 먹다 차라리 죽여달라며 애원하던 나치 포로들 중 하나가 엄청난 정보를 털어놓게 된다 다름 아닌 히틀러가 지금 별장에 놀러갔다는 정보였다. 그게 뭔 대단한 정보냐 싶겠는데 이 포로는 '베르크호프'라 불리는 히틀러 별장의 경비원 출신이었다, 여름마다 별장에 놀러와서 빈둥거리는 히틀러의 생활사이클을 완전히 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엄청난 정보를 들은 영국은 발칵 뒤집어지고 곧이어 SOE, 영국 특수부대작전집행부가 통째로 출동하는 대사건으로 발전한다 히틀러가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정확히 안다면 총알 한 방으로 전쟁 조지는 것도 농담은 아니다 이리하여 영국군의 히틀러 암살 작전인 '폭슬리 작전'이 시작된다 계획의 골자는 단순했다. 히틀러가 별장에 놀러온 순간 조져버리는 것이다 나치포로놈의 콧구멍에 장어파이를 쑤셔넣다가 알아낸 바로는 히틀러 새끼는 하루도 빠짐없이 정확히 오전 10시에 산책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것도 경호원도 없이 산책을 하는데 그 코스까지 숲속 루트를 타서 밖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제발 암살해달라고 애원하는 수준이다 이제 중요한 건 그 방식이다 생각하기도 귀찮은데 화끈하게 바주카로 날려버리죠? 가장 먼저 의견을 제시한건 히틀러를 별장째로 날려버리자는 폭탄마들의 의견이었다 이 계획은 폭탄이랑 바주카를 주렁주렁 매단 폭탄마들을 잠입시켜서 히틀러 새끼가 별장에 올 때 열차를 터뜨려버리고, 열차에서 안 뒤지면 기다리고 있다가 바주카로 조져버리고, 바주카가 빗나가면 그때는 별장 자체를 날려버리자는 화끈한 방식이었다 암살(목격자 없으면 암살임) 와 그것 참 등신 같네요! 님들 폴란드 새끼들이 그 지랄하려다 어떻게 됐는지 잊었음? 그런데 폭탄마 암살은 많은 반대에 부딪쳤는데, 전쟁 초기에 폴란드 븅딱들이 폭탄으로 히틀러 날려버리려다 실패한 사례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폴란드 레지스탕스는 히틀러를 날려버리려고 히틀러가 타고오는 기찻길에 폭탄을 깔았는데, 히틀러가 열차 일정을 변경해버리는 바람에 다른 열차를 폭파시켜버렸다. 결과적으로 애꿎은 430명의 민간인만 조져버렸다. 당연하지만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기백명의 민간인 피해는 미친짓이었다. 폭탄파들은 찌그러지고 그 다음에 고려된 것이 독살파였다 독살파들의 지론은 모름지기 암살은 조용하고 섬세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귀에다 속삭이게? 효과 직빵이네 100% 즉사일듯 아니 독 쓴다고 독 ㅆㅂ아 SOE는 물질 1이라고 불리는 무색무취의 독약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걸 별장에 있는 히틀러한테 먹이겠단 계획인 것이다 이걸 위해서 SOE는 포로의 코에 피시앤칩스를 쑤셔넣으면서 히틀러의 홍차 취향까지 알아내는데 성공하는데, 히틀러는 언제나 우유 먼저 넣고 홍차를 위에 붓는 부먹충이라는 걸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뭔가 존나 쓸데없어보이는 정보였고 실제로 그랬다 다 좋은데 그래서 누가 히틀러 우유에 독 탈 거임? 그리고 히틀러가 그날은 커피 마시고 싶어지면 어쩔려구? 독약은 준비됐는데 정작 독약을 넣을 에이전트가 하나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히틀러는 입맛이 존나 변덕스러운 걸로 유명한 놈이라 그 새끼가 뭘 마실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이 새끼는 생활패턴이 개판이라 식사를 번번히 건너뛰었던 것이다. 그럼 기차 물탱크랑 별장 물탱크에 통째로 다 부어버리자 일단 마시면 히틀러 포함해서 다 뒤질 거 아냐 아니 ㅄ아 그럼 폴란드 새끼들이랑 뭐가 다른데 조용함 조용히하세요! 독살파도 만만찮게 병신같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폭슬리 계획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뭐든지 기본에 충실한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떠올린 영국은 가장 오소독스한 암살방식을 고르게된다. 바로 저격이었다 별장 근처에 대기타고있다가 총알 한발로 히틀러 짝부랄을 없부랄로 만들겠음 그랬다가 잡히면 너도 없부랄이 될텐데 그래서 안 들키게 독일군으로 변장하고 있을 거임 벌써 독일말 잘하는 폴란드애들까지 섭외했음 그리고 총알 빗나가면 바주카로 쏴죽일 거다 아싸 최종적으로 채택된 암살방식은 저격파와 폭탄파를 믹스한 방식이었는데, 저격수 2명, 바주카 2명을 낙하산으로 별장 근처에 잠입시킨 뒤에 독일군 군복을 입히고 대기 타다가 히틀러를 쏴죽이든 터뜨려죽이든 하겠다는 것이다 암살에 성공한 뒤에는 꽁지빠지게 도망가서 근처에 있는 레지스탕스들에게 합류하는 탈출 계획까지 완성되자 SOE는 의기양양하게 처칠에게 이 계획서를 가져가고 처칠은 일단 저격해보고 안 되면 바주카로 쏜다는 화끈한 계획서를 받아들게 된다 존나 병신같은 생각이네 ㅋㅋㅋㅋㅋ 당장 하자 콜이 떨어졌다. 드디어 처칠의 인증까지 받은 폭슬리 작전의 실행일까지 잡혔다. 폭슬리 작전은 1944년 7월 14일로 작전 실행일을 결정한다 누군가 참 상식적인 딴지를 걸기 전까지 작전은 탄탄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여기까지 올 때까지 아무도 이 질문을 안 한게 존나 이상하긴한데 우리 왜 히틀러 죽이려고 그러는거임? 아니 전쟁 중이잖아 왜 당연한 걸 가지고 그럼 근데 히틀러 뒤지면 전쟁 더 잘하는 새끼가 독일대빵되는거 아님? 어? 존나게 설득력있는 딴지였다 간신히 궤도에 오른 폭슬리 계획이 또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히틀러뽕 다 빠진 전쟁 후반에 들어서면 연합군들의 히틀러 평가는 대충 이런 수준이었다 "이 새끼 전쟁 좃같이 못하는 새끼다" 거기다가 당시의 히틀러는 마약 처먹고 말도 안 되는 명령만 연이어 내리는 정신병자였지면 죽은 히틀러라면 이야기가 또 다르다 나치가 죽은 히틀러 대갈통을 십자가에 걸어놓고 유물로 모시면서 광폭화 버프를 받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생각해보니 암살을 안 하는 것만 못하게 된 상황이라 SOE 친구들은 누가 그만두자고 총대를 맬지 눈치게임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눈치 없는 처칠이 문제였다 암살대 보냈음?? 언제 보낼 거임?? 빨리 히틀러가 짝부랄에서 없부랄이 되는거 보고싶은데 ;;;;;;;;;;;;; 히틀러 구멍난 대갈통은 나한테 기념품으로 보내줄거지? 표정 왜 그럼? 처칠한테 인증마크까지 받은지라 폭슬리 계획은 도저히 취소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영국군은 나서지나 말걸 후회하면서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드디어 운명의 7월 14일이 다가왔고 작전이 결행되는 순간이 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뭐 어떡하냐 좋아 가는 거야 히틀러 집에 갔음 냉? 집에 갔다고 영국이 아옹다옹하는 동안 늘어지게 별장에 누워있던 히틀러는 작전결행 당일 아침 일찍 베를린으로 돌아가버렸다 닭 쫓던 개꼴이 된 영길리들은 벙쪄있다가 주섬주섬 퇴근했다 영국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힝힝 ㅠ 처칠은 폭슬리 작전이 취소된 것 때문에 무척 슬퍼했다고 한다 그 문제의 별장은 빡친 처칠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영국 공군이 폭격으로 개아작을 내버렸다 결국 영국스럽게 시작되고 영국스럽게 진행됐다가 영국스럽게 끝난 이 비밀암살작전은 그 동안 쭉 기밀문서로 보관되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야 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