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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정리) 진짜 전쟁날 수도 있겠다 싶은 이유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전쟁위협 예측글입니다.

앞으로 일주일간이 북한을 폭격할 가능성이 가장 큰 기간입니다.

잠자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미국이 북한 주요 시설을 크루즈 미사일로 폭격했다는 속보를 볼수있습니다.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근거는 크게 12가지 입니다.

1. 미국 중국 정상회담 종료.

이자리에서 트럼프는 중국에게 북한문제 협력에 대한 최후통첩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제2의 가쓰라테프트 밀약이란 생각과 다르게 정상회담 끝나자마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통화했습니다.
미국 중국 정상회담에서 남중국해보다 북한문제가 더 우선 거론되었다는 방증입니다.

2. 북한의 핵실험 임박.
북한의 핵실험 징후는 3월 말경 미국의 북한전문 웹사이트 38노스에서 처음 거론되었습니다.
현재는 주요 대선후보인 문재인 후보마저 돌아올수없는 다리라며 우려를 표하는 상황입니다.
현재 많은 국가와 언론에서는 북한이 곧 핵실험을 진행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3. 시리아 정부군 폭격.

미국은 지속적으로 화학무기사용 경고만 해왔던 시리아 정부군에게 '선을 넘었다' 라며 폭격을 가했습니다.
미국이 북한에게 한 마지막 논평은 '이젠 할말이 없다' 였습니다. 다음 도발 후 논평은 '선을 넘었다.' 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이 시리아를 포격한 때는 트럼프가 시진핑과 저녁식사 도중이었습니다. 중국과 힘의 차이를 과시한 것이라 봅니다.

4. 북한의 기념일 퍼레이드.
4월에는 북한이 중시하는 꺽어지는 해 기념일이 많습니다. 김정은 취임 5주년, 김일성 대원수 25주년, 김일성 생일 105주년
북한은 기념일만 있으면 축포를 쏘아대는 병적인 기념일 매니아 입니다.
더군다나 올해는 '꺽어지는 해', 5주년, 10주년 으로 딱 맞아떨어지는 기념일이 4월 초순에 몰려있습니다.

5. 기후적 관점.
기후적 관점으로 한반도는 6월 중순 이후로는 장마철에 들어갑니다. 7월 ~ 9월까지는 지속적으로 태풍영향권에 들어갑니다.
(이건 첨부안해도 되겠죠)
이 경우 북한 폭격 목표물에 대한 감시 및 타격에 대한 악영향을 받습니다. 이후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계절풍이 북풍입니다.
(이것도 첨부 생략)
폭격이후 북한의 화학전, 핵낙진 등이 있다면 북풍시 민간인에 대한 2차 피해가 아주 심각합니다. 그러므로 결말이 5월 내로 나야합니다.
6. 대한민국의 대선일정.

대한민국은 닭을 탄핵했습니다. 미국의 관점에서 보기엔 새로운 집권세력은 북한에 강경한 세력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안보라인을 이끌고 있는 김관진-한민구 라인은 수년째 발맞추고 북한에 강경하고 경력도 오래되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입맛에 맞고 베테랑을 데리고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 하겠지요.
7.  트럼프정부 고위관계자의 발언.
트럼프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중국과의 정상회담 직전 북한관련 발언으로서 시간이 매우 촉박하다(The clock has run out)고 했습니다.
이것이 북한을 폭격할 준비는 다했는데 미국이 중국을 설득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라 판단 됩니다.

8. 교회력의 중요일.
미국은 신실한 신교도들이 세운 국가입니다. 대통령 취임식때도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하죠,
기존 미국이 큰 공습한 날을 보면 유대력의 특별한 날짜들이 택일 됩니다.
유월절은 Passover day 4월 11일, 부활절은 Easter day 4월 16일. 교회력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절기입니다.

9. 훈련의 변화.

미국은  한번 화제 되었듯이 한반도내 자국민 대피훈련을 진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건 1994년 부터 매년 진행되었지요.
그런데 중국을 살펴보면 최초로 작년부터 북한 정권붕괴 대비 난민시설 확보 및 관련 훈련을 진행 하였습니다.
추가적으로 일본이 최초로 한반도 급변사태를 대비해 올해 초 미군 요청으로 미국 민간인 구출훈련을 진행하였습니다.
10. 미국 전쟁물자.
이미 미국의 전쟁물자는 사드에 눈이 쏠린사이  매우 많이 들어와있습니다.  모든 전략무기가 다 들어와있습니다.
한미연합훈련이라는 명분으로 들어와있다가 잠시 나갔던 전략무기들이 다시금 돌아옵니다.
현재 한반도 근처에는 항모전단 2개가 배치된것 입니다. 핵항모전단내에는 미사일순양함, 이지스함, 핵잠수함 등이 있습니다.

11. 무시할수없는 북한의 핵 위력.

북한의 핵실험 위력이 점점 증가 하고있습니다. 플루토늄에서 고농축우라늄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습니다.
무시할수없는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핵무기인데 이번 6차 실험에서 위력이 5차의 10배 이상이라고 예상되고있습니다.
있지도않은 대량살상무기로 이라크를 박살낸 미국이 이런게 실제적 위협이 된 북한의 핵무기를 가만냅두기 힘들겁니다.

12. 북한의 핵무기 운반전략무기.

아무리 강력한 핵탄두가 있더라도 추가적으로 그 핵탄두를 목표물에 정확히 박히게 하는 기술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미 북한은 SLBM, ICBM 기술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실전배치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봅니다.
특히나 SLBM과 함께 핵잠수함이 실전배치된다면 북한은 아무도 막을수없는 국가가 됩니다. 미국이 원치 않겠죠.
위와 같은 이유로 앞으로 1주~2주간 한반도의 긴장은 최고조에 이를것으로 예상되며 4월 4주차가 지나간다면 다시 소강상태가 되리라 봅니다.
북한과 단절된 한국정부가 쓸수있는 북풍 수준은 닭이 지난총선 보여줬듯이 탈북민 공개정도였습니다.
이건 대선에 쓸 북풍이 아니라 진정 한반도의 긴장입니다.
그저 비상식량 잘 구비하시기 바랍니다.

(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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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견입니다만, 트럼프가 미국의 주 수입원인 군수산업으로 돈 벌려고 기를 쓰는것으로 보입니다.
8번은 설득력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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