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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의 정체

우리글 진리의 서 28장 그릇의 정체
인간마다 각자 타고난 달란트(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재물을
누구에게는 지식을
누구에게는 지혜를
누구에게는 재주를
누구에게는 체력을
등등...

해서 주어진 그릇의 내용물이 넘치게 되면 빼야 하는 것이며 또한 모자라게 되면 채우려 해야 하는것이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입니다.

양심이 없는 자라는 것은 주어진 그릇이 넘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빼려고 하지 않는 자와
비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채우려 하지 않는 자를 칭하는 것입니다.

남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돈과 재물이 들어오고 있다면 이 자는 애초에
재물 그릇을 가지고 온 자인 것입니다.
전적으로 본인의 애씀과 노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할만하니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허나 애씀과 열심의 힘으로 돈과 재물을 불린 자는 
욕심의 힘으로 돈과 재물을 모은 꼴인지라
훗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애씀과 열심으로 인해 비롯되게 된
스트레스와 육체적 손상으로 인해 각종 부작용
즉 발병을 할 확률도 그만큼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본인의 그릇 크기와 종류를 잘못 인식하였으므로 인해 그만큼 모순되고 불균형스러운 상태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해서 뱁새가 황새를 쫓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지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의 본 의미는 이번 생에 주어진 
각자의 경험과 달란트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결국 뱁새는 뱁새의 삶을 사는 것이
곧 하늘의 뜻을 따르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칫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뱁새로 산다는 것은 실은 훗날 황새로 살아야 함을 의미하거나 혹은 이미 황새로 살아 봤음을
의미하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해서 뱁새로 살아가는 상태를 절대로 아쉬워하거나 속상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하로 살아봤으면 반드시 왕으로 살아보게 되어 있고 왕으로 살아봤다면 반드시 신하로도 살아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입장과 심정을 경험해 봐야 하니까요. 
해서 이러한 상황에 처했음을 다만 이번 생에 주어진
나의 체험의 상태가 바로 뱁새의 상태였음을
인정하시고 속 편하게 경험을 하시면 그만인 것입니다.

또한 남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살아왔는데도 불구하고 지식이나 지혜가 넘치고 있는 자는
그만큼 앎의 그릇을 가져온 자인 것입니다.
애씀과 열심의 힘으로 공부를 해 지식을 늘린 자들도
결국은 욕심의 힘으로 지식을 늘린 꼴이므로
인해 훗날 그 부작용을 반드시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꾀에 스스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했으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화를 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어진 달란트라는 것은 크게 애를 쓰지 않아도 얻어지게 되는 것들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한 현재 하고 있는 일 그 자체가 바로 이번 생에
경험을 해야 할 직능이자 달란트일 확률이 큰 것입니다.
왜냐하면 온전한 내 달란트라는 것은 억지스러운 애씀과 열심으로 얻어지게 되어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할만한 것들이 나의 직능이자 달란트인 것이지 힘들게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해야 하는 일들은
나의 달란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돈을 더 벌기 위해 무엇인가를 억지로 하고 있다면 이것은 더더욱 달란트가 아닐 확률이 큰 상태인 것입니다.
또한 그릇이 비었는데도 불구하고 안 채우려 하는 자들에게는 주어진 그릇은 채워보라는 의미에서
어쨌든 합당한 환경과 조건이 형성해주게 됩니다.

때론 책을 보라고
때론 일을 해보라고
때론 재주를 부려보라고
때론 쉬어보라는 식으로 즉 반강제적으로
상황이 연출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못해 해야만 하게 말이죠.

이처럼 각자에게 주어지게 되는 그릇의 종류라는 것은 참으로 다양하기도 한 것이오니 절대로 남을
부러워하거나 시기를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소를 키우는 것도 하나의 직능이자 달란트인 것이고
청소를 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본인이 과거에 해왔던 일을 반추해 보면
자기가 경험을 해야 할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대략 눈치를 챌 수 있습니다.

실은 눈치를 챌 필요도 없습니다.
내 삶에 주어지고 펼쳐지는 것들에 대해 불평, 불만 없이 하는 상태가 바로 나의 직능이자 달란트를 구현하고 있는 상태일 확률이 크다는 것입니다.

달란트라는 것이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님을
이해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청소부부터 대통령까지가 다 달란트의 한 종류일 뿐이라는 것을 일단 받아들이셔야 하는 것입니다.

크게 본다면 두 가지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서로 간에 역할 대행 극중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연극배우의 본래 정체란 것은
개인의 상태일 때가 진실의 상태인 것이지
극 중에 맡았던 배역 중에 하나였을 뿐인
신하나 왕의 상태가 진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것은
단지 잠시 스쳐가는 사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애씀과 열심으로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게 될수록 본인의 달란트에서 많이 어긋난 것을
원하게 되어 있고 또한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욕심과 화의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을 내고 있다는 거 자체가 실은 혼(귀신)의 장난에 놀아나고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심한 콤플렉스의 발현 상태라는 것입니다.
해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욕심이 없는 상태에서
해야만이 지혜로운 자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추구하고 있는 어리석음의 최고 상징인 바벨탑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애씀과 열심이었던 것입니다.
바벨탑이란 결국 애씀과 욕심이 불러오게 되는
각종 모순과 부작용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즉 무너지게 될 허무한 것들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주어지고 이루어지는 것들만이 온전히 내가 경험을 해야
할 달란트가 되는 것입니다.
해서 오는 자 막지 말고 가는 자는 잡지 말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삶이란 이처럼 흐름을 타는 것이지
억지로 애를 써가며 열심히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애를 쓰고 열심히 살았을수록 오히려 훗날 그에 따르는 사건, 사고와 병을 필수적으로 경험하게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삶이란 결국 사건, 사고와 병을 경험해 보라는 것이 아니었음을 이해해야 하는 측면도 있으므로 
누구는 어쩔 수없이 애를 쓰며 열심히 살아보기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맛을 봐야 실체를 안다는...)
허나 이러한 치열한 삶의 방식은 어린 영혼 혹은
젊은 영혼들의 몫이니 늙은영혼들이나 하강해온영혼들은 
후배들에게 그만 양보하시고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빠지셔야 하는 것입니다.

★ 참고로 이번 생에 적당한 월수입이 100만 원 정도의 그릇을 받아 온자가 150만 원을 벌고 있다면
이것은 그릇이 넘치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해서 더 들어오게 된 돈을 안 뺄수록 이 돈이
나를 죽이게 되는 독으로 작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돈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이처럼 적용이 됩니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있는 만큼에 비례해 온전한 자기의 직능이나 달란트가 구현되지 못하게
될뿐더러 더불어 화까지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해서 말세에는 인간들이 온통 본인에게 주어진 달란트에는 관심이 없고 온통 돈에만 한눈을 팔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작은 것에 연연을 하다가 큰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번 생에 꼭 경험을 해야 할 것들을
돈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놓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작은 것이라는 개념은 내 달란트가 아닌 것들을 의미하며 큰 것의 의미는 내게 주어진
고유의 달란트(경험 포함)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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