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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재팬 수준

미스재팬 되자마자 야스쿠니 신사모델 발탁

현재 비리가 밝혀진 상태라 잠적했다고 함.
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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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봐도 이상하게 생겼다..^^;;
개성있게 생겼다...
즉 못생겼다
자판에 처맞았나
오노우.쪽바리.재수없스무니다
미의 기준이 다르다고 해도 이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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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와 이름 같은 '죄'...간판 내린 뉴욕 카바레
소니(SONY)가 브랜드 이미지 전략에 얼마나 집착했는지를 알 수 있는 한 사례가 있다. 소니는 1997년 4월, 브랜드 매니지먼트실을 운영했는데, 이 부서는 지적재산권과 법무를 담당했다. 즉 소니 브랜드를 일괄 관리하는 곳이다. 일단 이야기를 1989년으로 되돌려 보자. 그해 9월 25일, 소니는 34억 달러를 지불하고 16억 달러의 부채를 안는 조건으로 미국 콜롬비아 영화사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인수 대상에는 콜롬비아 영화사와 콜롬비아 텔레비전, 트라이스타 필름이 포함됐다. 트라이스타가 소유한 180개 극장과 820개 스크린을 가진 로스(LOEWS) 시어터 체인도 따라 붙었다. 소니는 21달러 선에 거래되던 콜롬비아 주식을 주당 27달러를 지불하고 인수를 성사시켰다. 만만찮게 웃돈을 얹어준 셈이다. 소니의 콜롬비아 인수는 미국으로선 충격이었다. 당시 뉴스위크지는 커버 스토리에 ‘일본, 할리우드를 침공하다’(Japan Invades Hollywood)라는 제목을 달 정도였다. 다시 소니의 브랜드 매니지먼트실. 이 부서는 소니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 일환으로 1989년 인수했던 극장들을 개혁 대상으로 삼았다. 언론인 출신 마쓰오카 다케오(松岡健夫)가 쓴 ‘소니의 선택 소니의 성공’이라는 책은 당시 브랜드 매니지먼트실의 활약을 이렇게 적고 있다. <소니는 미국 계열 영화관인 소니극장 50곳의 경우,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제외한 48곳에 대해 브랜드 이미지에 맞지 않고 마치 변두리 영화관 같다는 이유로 ‘SONY’라는 간판을 내려놓게 했다. 이에 따라 극장들은 매수 이전의 로스(LOEWS)로 간판을 되돌려야 했다.> 브랜드 매니지먼트실의 눈에 거슬렸던 것은 또 있었다. 뉴욕에 SONY라는 간판을 내건 카바레가 있었다고 한다. <이는 사실 ‘스트리트 오브 뉴욕’(Street Of New York)의 약칭이었는데, 이것 역시 소니의 기업 이미지를 망친다는 이유로 간판을 내리게 됐다.>(마쓰오카 다케오 저 ‘소니의 선택 소니의 성공’) 한국으로 치자면, ‘삼성’ 이름을 단 노래방이 영업하고 있었던 셈이다. ‘소니 카바레’가 어떤 방식으로 간판을 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가게로서는 억울하겠지만, 일본 소니그룹과 이름이 같다는 게 죄라면 죄였다. 브랜드 매니지먼트실이 미국 거리의 간판 교체 작업에 정성을 쏟은 것과는 반대로, 소니의 콜롬비아 영화사 인수는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 이득은커녕 매년 수백억 엔의 적자가 발생, 마침내 1조5000억 엔이라는 막대한 부채가 쌓였다. 이는 소니의 성장에 크나큰 부담이 되었다. 소니 브랜드를 이야기 할 때 또 빼놓을 수 없는 2가지가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빅히트 상품 워크맨(Walkman: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과 바이오(VAIO)라는 노트북 브랜드다. 파도처럼 물결치는 바이오의 로고를 기억하는가. 이젠 추억이 됐지만. 바이오는 Video Audio Integrated Operation의 약자다. V와A의 물결 모양은 아날로그를 의미하고, I와 O는 디지털의 1과 0을 나타냈다고 한다. 즉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이었다. 추억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워크맨이 아닐까. 주머니속에 쏙 넣고 다니던 워크맨은 전 세계적으로 2억 개 이상 팔려 나갔다. 학창 시절의 추억 한 페이지에 그 워크맨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건이 하나 있다. 소니가 워크맨을 처음 출시한 건 1979년이다. 하지만 이보다 2년 먼저 비슷한 제품인 ‘스테레오 벨트’로 특허를 낸 사람이 있었다. 독일계 발명가 안드레아스 파벨(Andreas Pavel)이었다. 그는 “워크맨이 ‘스테레오 벨트’와 유사한 점이 많으며 자신의 특허권을 침해했다”고 소송을 걸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오랜 특허권 분쟁 후인 2004년, 소니는 수백만 유로의 보상금을 지불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소니에겐 뼈아픈 추억이 아닐 수 없다. <이재우 기자‧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http://www.japanoll.com/
‘이재우의, 야쿠시마 B컷 에세이’/ 데칼코마니
재팬올이 ‘야쿠시마 사진전’ 개최(5월 31일~6월 13일, '삼청동 4차원') 사전 작업으로, ‘야쿠시마 B컷 에세이’를 연재 중입니다. 야쿠시마 사진 한 장에서 뽑아올린 단상(斷想)을 담습니다. <편집자주> “저걸 찍어? 말어?” 야쿠시마숲을 오르다 고민에 빠집니다. 폭포 풍광이 너무 멋져 카메라에 담고 싶은 마음이 다들 굴뚝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쏟아지는 비. 우산을 옹기종기 쓴 사람들은 카메라를 방수팩에서 꺼내기가 망설여집니다. ‘에라~ 모르겠다’ 서너 컷 찍었다가는 물먹은 카메라가 되기 십상이니까요. 그래도 한 손으로 우산을 든 채, 사진 찍기를 감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럴 땐, 굳이 캐O. 니O, 올OOO같은 카메라를 꺼내진 마세요. 대신 ‘데칼코마니’(Decalcomanie)라는 카메라를 가동시켜 보세요. 비에 젖지도 않고 노출도, 초점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셔터만 누르면 됩니다. 셔터는 손이 아니라 가슴으로 누릅니다. 가슴이 원하는 피사체를 수동이든, 자동이든 마음껏 찍어도 됩니다. 배터리가 무한대이니까요. 야쿠시마를 기계로는 담지 못해도 마음으로는 충분히 담아 올 수 있습니다. 야쿠시마를 떠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어느 날. 가슴에 불현 듯 서늘한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헤집고 간 자리에 야쿠시마가 나타납니다. 그 모습과 선명함이 실제 야쿠시마와 포갠 듯 일치합니다.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이재우 기자,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인>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지역민을 가게로 끌어들인 ‘167년의 경영 전략’
재팬올 서포터즈인 선설아씨가 일본 방송프로그램(‘캄브리아 궁전’, ‘가이아의 새벽’)을 모니터링 하고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회에는 4월 4일 ‘캄브리아 궁전’에서 방송된 만쥬(饅頭) 기업 카시와야(柏屋)의 성공 비결을 전합니다. 다이어트&피트니스 관련회사 ‘다노’의 글로벌비즈니스팀에서 일하는 선씨는 일본에서 사회경험을 먼저 시작한 ‘재팬 덕후’입니다. <편집자주> 후쿠시마의 명물, 일본 3대 만쥬(饅頭), 창업 167년. 일본 음식을 잘 아는 일부 한국 독자라면 “아~ 그 가게”라며 무릎을 칠 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독자는 후쿠시마가 주는 ‘기피 이미지’를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일본 만쥬(만두)는 팥앙금 등을 넣은 달콤한 빵 또는 떡을 말한다. ‘캄브리아 궁전’에 소개된 회사는 만쥬(饅頭)를 만들어 파는 카시와야(柏屋)라는 곳이다. 카시와야가 창업한 건 1852년, 올해로 창업 167년을 맞았다. 창업주는 혼나 젠베이(本名善兵衛)라는 사람이다. 지금은 5대 째인 혼나 사장이 경영을 맡고 있다. 카시와야는 후쿠시마현을 중심으로 27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으며, 총 매출은 40억원이라고 한다. 카시와야의 만쥬는 곧 ‘우스카와 만쥬’(薄皮饅頭)다. 얇은 피 안에 적당히 단맛을 내는 팥앙금이 가득차 있다. 식감과 맛이 좋아 지역 주민에게 인기가 높다. 이 가게가 167년 동안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혼나 사장은 “지역 주민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 말 속에 카시와야의 ‘행복 경영술’이 숨어있다. 이 회사의 지역 친화 전략 2가지를 든다면, 월1 회 개최하는 차 모임과 시 모임이다. ‘마을의 툇마루’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카시와야는 매월 한 차례 아침 6시부터 차 모임을 연다. 이른 새벽부터 30명 이상의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다. 이 모임에는 우스카와 만쥬와 차가 무료로 제공된다. 참여자는 학생, 주부,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이른 아침에 차 모임을 여는 이유는 뭘까? 일본인들이 만쥬를 먹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에게 만쥬 먹는 기회를 더 제공하겠다”는 것이 카시와야의 생각이다. 카시와야는 월 1회 시 모임도 열고 있다. 1958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60년 이상 이어오고 있다. 시 모임은 아이들을 주대상으로 한다.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마음과 점포가 함께 어우러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한다. 차 모임, 시 모임 외에 매년 만쥬 축제도 개최한다. 점포 내에서 만쥬 만들기 체험을 하고 무료로 나눠준다. 카시와야가 전국에서 유명해진 건 점포 옆에 만쥬신사(萬寿神社)를 만들면서다. 1957년의 일이다. 경내에 20톤이나 되는 큰 만쥬 모양의 바위를 갖다놓았다. 한자 만수(萬寿)는 만두를 뜻하는 만쥬와 서로 통한다. 이해를 돕자면,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케 구보타 만쥬(久保田 萬寿)를 생각하면 된다. 한자 만수(萬寿)는 장수, 축복, 경사의 의미가 담겨 있다. 주민들은 이 신사를 ‘파워 스폿’(power spot: 기운을 받는 곳)으로 여기고 있다. 이렇게 지역주민들에게 사랑 받았던 카시와야도 몇 번의 폐업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1986년 태풍으로 홍수가 발생해 공장이 전부 침수됐다. 2011년 3월엔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터졌다. 후쿠시마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후쿠시마 음식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경영도 치명타를 입었다. 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 않았던 사업은 기적적으로 회생했다. 카시와야의 사장은 눈물을 흘리며 당시를 이렇게 되돌아 봤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영업을 재개 했을 때, 손님들이 다시 와줄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가게로 손님들이 들어오면서 ‘다행이네요’ ‘기다렸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눈물 겹도록 기뻤습니다.” 카시와야의 이런 모습은 사훈(社訓)과도 일치한다. 초대 사장이 만든 ‘진심으로 감싼다’(まごころで包む)이다. ‘감싼다’는 말에는 회사가 고객을 감싸는 것, 고객이 회사를 감싸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 혼나 사장은 사원들에게 히트상품을 만들지 말라고 한다. 그 이유가 남다르다. “당장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트상품이나 붐은 언젠가는 끝이 납니다. 처음에는 히트치지 못해도 지속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재난을 극복해 오면서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준 카시와야(柏屋)와 지역 주민들. 단언컨대, 카시와야 만쥬의 맛은 ‘달콤함’에 있지 않고 ‘정겨움’에 있지 않을까. <선설아 재팬올 서포터즈, ‘다노’ 글로벌비즈니스팀 근무>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 무성영화시대
온나가타(女形: 가부키의 여장 남자배우) 파동과 벤시(辯士: 말하는 남자)의 전횡이라는 과도기를 거친 일본 영화계는 비로소 무성영화의 황금기를 열어간다. 특히 기술의 발달로 벤시가 말로써 표현하던 것들이 영상으로 대체 되었고, 자막을 읽어 내려가지 못할 만큼 문맹률이 크지도 않았다. 촬영기술이 가부키, 문학, 회화 등 민족적 전통문화와 혼합되어 ‘영화’는 일본에서 가장 독보적인 문화영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자신들만의 개성을 발전시켜 나갔다.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영화산업’으로 틀을 잡기 시작했고 ᐅ‘시대극(時代劇)의 아버지’라 불린 이토 다이스케(伊藤大輔) ᐅ사회비판적 리얼리즘 영화의 효시라 불리는 우치다 도무(內田吐夢) ᐅ서민극(庶民劇의) 대가 고쇼 헤이노스케(五所平之助) ᐅ일본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기누가사 데이노스케(衣笠貞之助) ᐅ아베 유타카(阿部豊)등을 통해 제1의 황금기를 맞이한다. 이들 외에도 스튜디오에서 무성영화의 성숙기를 맞이한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 나루세 미키오(なるせみきお) 같은 감독들이 배출되어 일본영화라는 자각과 함께 일본 영화의 근대화에 앞장섰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일본영화의 근대화가 자연재해를 통해 더욱 확고해졌다는 것이다. 1923년 9월1일 ‘관동대지진’이 일어났다. 강력한 지진으로 도쿄와 그 주변 지역을 대부분 파괴한 것이다. 가마타의 쇼치쿠(松竹) 스튜디오와 무코지마의 닛카쓰(日活) 스튜디오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이 과정에서 닛카쓰는 도쿄의 촬영소를 폐쇄하고 교토로 옮겼다. 이러한 자연재해로 인해 일본영화산업에 있어서 제작 스케줄은 물론 주당 목표로 한 영화제작이 불가능해지자 신속하게 미국과 유럽영화들을 수입하여 그 자리를 메워 버렸다. 프리츠 랑(Fritz Lang),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Friedrich Wilhelm Murnau), 요제프 폰 슈테른베르크(Josef von Sternberg)등 당대 최고 감독들의 영화들이 수입되어 일본영화인들이 자신의 영화적 표현을 확립할 기술적 미학적 토양을 제공했다. 이들에게 받은 영감은 곧바로 ‘일본화’에 들어갔고 스스로 영화이론을 만들어가면서 장르적으로는 시대극(時代劇, 지다이게키)과 현대극(現代劇, 겐다이게키)이라는 양대 축으로 스토리텔링을 형성해 나갔다. 이중 가장 발전한 장르는 현대극이었다. 순영화극운동이라는 유행이 지나간 후, 쇼치쿠와 닛카쓰는 각자 근대화와 개혁에 서둘렀다. 쇼치쿠에서는 젊은 제작자 기도 시로(城戶四郞)를 중심으로 평범한 서민들의 희로애락을 묘사해 나가면서 명랑하고 경쾌한 감각의 영화들을 통해 소시민들이 꿈꾸는 작은 행복들을 ‘작풍(作風)’으로 정한다. 이때 등장한 대표적 인물이 오즈 야스지로다. 그의 영화는 최후의 순간까지 서민이 주인공이고 인생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희로애락과 체념, 달관, 유머, 해학, 무의미한 반복 등을 묘사해 나갔다. 반면 닛카쓰의 현대극들은 계몽주의적인 요소로서 차별화를 두었다. 무라타 미노루(村田寶)가 쇼치쿠에서 이적하여 ‘세이사쿠의 아내’(1924) 같은 농촌에 전승되는 인습을 타파하는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 반향을 일으켰고, 할리우드에서 돌아온 아베 유타카를 통해 세련되고 스피디한 연출력을 전수 받았다. 이 시기에 감독들은 그림자를 강조하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기법, 오버랩, 독일 표현주의의 모방, 롱샷(long shot)기법의 확립 등 여러 가지 영화적 실험을 했다. 시대극에도 변화가 일어나는데 영화에 원작을 제공하는 장르가 가부키와 야담에서 대중소설로 바뀌게 되면서 스토리텔링이 단단해졌다. 덕분에 시대극의 전투장면 역시 빠르고 격렬한 난투장면으로 변해갔으며, 이때 닛카쓰와 결별한 마키노 쇼조(牧野省三)가 세운 마키노 영화사라는 독립 프로덕션이 생겨 자유롭게 제작과 배급을 병행 하면서 스타를 배출해 나갔다. 덕분에 교토가 아시아 으뜸의 영화 도시로 발전하게 된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 때 등장한 스타들의 면모는 오늘날 이른바 한국영화계에서 ‘다찌씬’으로 불리는 ‘다치마와리(立回)’를 통해 난투장면과 함께 특유의 야비함과 호쾌함을 보여줌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는 원래 가부키의 특수연출 용어인 ‘다테(殺陣)’에서 유래된 것으로 살인, 격투, 범인체포 등, 살벌한 장면에서 볼 수 있는 양식화한 무대 위 난투 연기의 일종이었다. 이중 반도 쓰마사부로(阪東妻三郞)는 무표정하지만 사회 주변으로 추방된 무법자의 절망을 보여주었는데, 호쾌한 난투장면과 낭인의 허무주의를 박력 있게 연기했다. 오늘날 교토의 명소인 정원 ‘오코지 산소’로 유명한 오코지 덴지로(河內傳次郞)의 신들린 검술연기는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시절 일본영화는 검열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인지 현대극에서는 사회모순을 둘러싼 현실비판 정신과 리얼리즘은 물론 대사 가운데 니힐리즘(허무주의), 아나키즘(무정부주의)적인 요소가 대사에 묻어났다. 반면 시대극의 경우, 사회적 메시지들을 감추기도 하고 주로 천황에 대한 충성을 고취하던 에도 시대 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이 등장했다. 또한 하세가와 신(長谷川伸)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노름꾼의 유랑 스토리 같은 영화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때 관객들이 다이내믹한 카메라의 움직임을 좋아하는 것에 착안, 난투장면을 찍을 때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맨이 싸우는 배우들 사이에 끼어 들어 촬영 하기도 했는데, 오늘날 핸드헬드(handheld)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시대극의 인기는 무성영화 말기에 등장하는 트래킹 샷(tracking shot, 카메라가 인물을 따라가는), 오버랩(overlap, 한 화면이 끝나기 전에 다른 화면이 서서히 나타남), 클로즈업(close up, 피사체에 가까이 접근해 찍은 장면)같은 새로운 기법들을 접목해 가면서 성장했다. 또한 교토를 찬바라(チャンバラ, ちゃんばら, 사무라이, 닌자 시리즈물)영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진정한 칼싸움’은 교토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성영화시대 일본영화가 제1의 황금기를 맞이 하면서 무조건적으로 서양영화의 영향을 받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다. 1928년 러시아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Sergey Eisenstein)은 모스크바를 방문한 가부키 배우 이치카와 사단지(市川左團次)가 ‘주신구라’에서 연기하는 것을 보고 그 유명한 몽타쥬(montage)이론의 계기를 발견했다.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 줄거리를 전개하여 사건을 정적으로 재현하는 대신 새로운 양식, 즉 ‘어트랙션 몽타주’기법이 일본문화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에이젠슈타인은 ᐅ한자(漢字)의 기호적(記號的)성격과 결합 원리 ᐅ단카(短歌)와 하이쿠(俳句)에서 압축과 비약이 있고 상징적 표현이 사용되는 점에 주목, 몽타쥬에서 시각적 이미지의 연결을 위해 매우 유익한 소재를 얻었다. 서로 다른 연관 없는 두 단어가 결합하여 제3의 단어를 만들어내는 한자의 원리는 에이젠슈타인에게 “이것이-몽타쥬이다!”라고 선언적으로 말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한다. 이 덕분에 기누가사 데이노스케가 일본 내에서 실패한 작품인 멜로드라마 ‘십자로’를 들고 이미 가부키에 매료된 에이젠슈타인을 만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모스크바, 베를린, 빠리에서 개봉시켜 일본영화의 첫 해외 진출을 이뤄 낸다. 이러한 기누가사 데이노스케의 노력은 훗날 1954년에 칸영화제에서 ‘지옥문(지고쿠몬, 地獄門)으로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받는 귀중한 씨앗이 된다.<이훈구 시나오리오 작가>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난 모든 식사에 최선을 다하지."
갑자기 뭔 소리냐고요? 바로 라쿤맨의 명언입니다 헤헤 너굴맨이 처리했으니 안심하라구! 짤로 유명한 이 칭구 ♪(*´θ`)ノ 알고보면 이 친구는 너구리가 아니라 '라쿤'입니다. 뜻밖의 박력...๑•̀ㅁ•́ฅ✧ 가오갤의 귀..요미...???? 로켓도 라쿤이죠! 장난꾸러기 라쿤의 매력을 극대화 시킨 캐릭터가 아닐까요? ᕕ( ᐛ )ᕗ 컄컄컄!!! 내가 바로 라쿤이다!!! 토끼가 아니라고!!!!! 캬캬캬컄!!! 암튼 오늘은 장난꾸러기 얄개 라쿤의 먹방을 소개하려고 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은 이 카드를 쓰게 된 계기가 있는데....❛ε ❛♪ 바로 이 짤 때문입니다 후후후 카드의 제목처럼 최선을 다 해 밥을 먹는 라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숨은 좀 쉬면서 먹어 ㅠㅠㅠㅠㅠㅠ 수영장의 펠프스가 호흡하듯 최선을 다해 식사중인 라쿤찡 그런데 찾아보니 라쿤의 식사 장면들이 모두 꿀귀 졸귀탱이더군요 (ง •̀ ▾•́)ง 혼자 보기 너무 아쉬워 빙글러 여러분들과 함께 보고자 데려왔습니땅! 💙 그럼 함께 감상해보실까요 햫햫 어머머... 날 위해 준비한 사료라고...? 이럴수가 넘모 감동이야 ( Ĭ ^ Ĭ )  ❤️ 최소 프로포즈의 순간 💍✨ 포도 캽캽캽 넘 맛있어 캽캽캽 크아- 뒤집어 진다앍! 캽캽캽!!!!! 솜사탕도 깨끗히 씻어 먹어야딩 (╹౪╹*๑) 읏챠.......ㅇ....?????????? 어디... 어디갔어.....솜사탕아...어...어ㄷ..ㅣ...??? 으으으읏!!! 주세여!!!!!!!! (๑و•̀Δ•́)و 바들바들.... 으으읏.... 주....주떼ㅇㅕ....!!!!!!! 으핫핫핫! 이 사료는 내꺼닷!!! 햫햫햐!!!!! 따라올테면 따라와봐! 햫햫!!!!!! -괴도 라쿤 와아아앍!!!!!!!! 맛있어!!!!! 포도 맛있어!!!!!!!!!!!! 크아- 뒤집어 진다앍! 캽캽캽!!!!!222 즈에발... 인간님.... 먹을 것을 주세요....(。•́︿•̀。) 맛난 것 좀 나눠주시죠... 굽신굽신.... 아이고 쇤네 배가 너무 고픕니다요...T.T 스윽- 냠냠냠 맛이따 맛있어! 후후후 ₍₍ ◝(・ω・)◟ ⁾⁾ 앗 카메라..!! (안먹은척) 로켓.. 너 로켓이니...????????? 로켓이 실제로 존재했다니? ✧ ☆ ٩(`・0・´)و 옷은 또 어디서 구해서 이렇게 귀엽게 입어썽 마무리로 맛있는 식사 후, 뒷정리 중인 라쿤찡 (๑ •̀ω•́)۶ 음식만 닦아 먹는게 아니라 바닥도 깨끗하게 닦는군...후후 정말 보면 볼수록 귀여운 생명체얏..❤️ (뭐 바닥에 떨어진거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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