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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뛰어난 인간관계 노하우 10가지

부자들이 실질적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공한 주요 이유 가운데 1순위는 실제 돈을 벌거나 모으는 기술이 아닌 뛰어난 인간관계였다고 합니다.
인간관계 노하우 10가지, 실천해 보세요!


1. 목표로 삼는 사람을 정하고 모방하라.
롤 모델링(Role Modeling) 이론처럼 먼저 내가 담고 싶은 사람을 이상형으로 정하여 그 사람을 최대한 닮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이벤트나 모임에 적극 참가해라.
명함은 항상 100매 정도의 여분을 챙기고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자기소개를 한다.

3. 때로는 대가 없이 남을 돕는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듯이 주위 사람을 위해서 대가를 바라지도 말고 정성으로 베푸는 삶을 습관화 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그 뿌린 노력들이 당신에게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4. 사내 소식통과 친하게 지내라.
사내소식통이나 리셉션 담당자는 방문객을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이고 부재중 전화도 받아주는 사람이니 당신이 하는 소소한 부탁 정도는 쉽게 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5. 다양한 대화 주제를 만들어라.
화제를 이끌어내는 “화자”로 주목 받기 위해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6. 많이 아는 것 보다 깊이 알도록 노력하라.
수많은 사람을 폭넓게 알아도 진짜 내 사람이 아니면 명함첩 속의 종이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하라.

7.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베푸는 삶을 살라.
베푸는 삶은 당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주변사람들에 대한 작은 인사라도 좋다.

8. 고마운 사람이 아닌 필요한사람으로 남도록 노력하라.
고마운 사람은 잊혀지더라도 자신에게 꼭 필요한 사람은 절대 놓치지 않는 법이다.

9. 도전하는 사람과 함께하라.
도전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성공을 거두게 마련이다.
미래에 투자하는 사람을 인맥으로 구축하면 그의 성공에 동참할 수 있다.

10. 너무 완벽해 보이지 마라.
지나친 완벽주의자는 거리감을 주어 폭넓은 인맥을 만들기 어렵다.
실수도 하고 빈틈도 보이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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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 중덕 (程昱 仲德) A.D.141 ~ 220
난 여기 접속해서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대략 평균 연령대가 어찌 되는지를 잘 모르겠다만... 삼국지를 좋아하되,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이면 왠지 삼국지를 처음 책(만화책)으로 접했을 확률이 높겠고, 나이가 좀 적은 분들이라면 아무래도 게임으로 먼저 접하다 흥미가 커지며 그 후에 책을 접하지 않았을까 싶다. 난 삼국지를 처음 책으로 접하다 꽤 시간 흘러 게임을 해보게 되었는데(KOEI 三國志2) 당시 상당히 충격적인 부분은 바로 "능력치" 였다... 사실.. 게임속 인물들의 능력치를 접하기까지 책이나 만화속에서는 일정 레벨 이상의 네임드 인물들의 우열을 가려내기가 상당히 어렵다. 주유와 순욱 중 누가 더 뛰어난지, 장료와 방덕 중 누가 더 대단한지, 이건 알길이 없고 저마다의 상상과 추정으로 가려진다. 그러니 토론도 가능했다. 헌데 이 능력치가 매겨지며 내신등급처럼 인물들의 우열이 가려지게 되었고 이 기준은 투명하지 않음에도 게임 접해본 이들은 이 능력치로 인물들을 판단하게 된다. . . . 오늘의 주인공 "정욱" 역시 그런 능력치 시스템의 나름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해보며 긴 서론을 써본다. 수 많은 삼국지 게임들 있으나 가장 흥한 일본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를 예시해보자면 책사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능력치인 "지력"부문에서 정욱은 평균 90~91 가량인데, 그럼 과연 그는 동게임내 지력 평균치가 93~94인 순유나 95~96의 서서나 종회, 가후 등보다 못한 책사였을까?.... . . . 물론, 명확한 정답이야 없겠지만 내 생각에는 저 질문의 대답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이며, 소설 속이나 게임 속 정욱이 아닌 역사 속의 정욱에 대해 한 번 이야기 해보기로~ 정욱(程昱)은 본명이 아니며, 본명은 "정립(程立)". 그러나 정욱이란 이름이 차명이나 가명은 아니고, 중간에 개명을 한건데 욱은 주군 조조가 지어준 이름! 어차피 당시는 이름으로 부르기보다 주로 자를 불렀으며 연의에는 이런 디테일한 스토리는 안나오니 정욱의 개명전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엥간한 삼국지 빠돌이여도 거의 없다. 정욱 자체가 본인의 활약 및 능력과 별개로 별 다른 팬덤도 없는 비인기 인물이라 더욱...(T-T) . . . 현재의 중국 허난성의 구석진 작은 동아현이란 곳이 정욱이 나고 자란 고향이며, 황건적의 난 당시 지략으로 고향을 지켜내 이미 허난성의 당시 지명이던 연주에서 유명인사였다. 집안도 비교적 괜찮던 부유층이였고 본인의 학식과 지략도 출중하며 당시로는 진짜 어딜 가도 눈에 띄는 "거한" 이였는데.... 역사기록을 보면 8자 3촌으로.. 당시의 도량형을 참고, 현재의 수치로 환산해보면 거의 2m에 가까운 거인이다. 당시에는 좀 키가 꽤 크다 싶으면 일종의 감탄사처럼 "8척 거한"이란 표현을 썼기에, 사료에 8자(척)라 해서 건강검진 때 디지털 신장측정기로 잰거마냥 정확한 8자는 아니였겠지만, 정욱의 기록에는 굳이 8자 뒤에 "3촌"이라는 추가 단위가 붙은 것으로 볼 때 거의 정확한 신장측정이 맞다고 보고 있다. 심지어 덩치도 상당히 좋았다고 하니 지금으로 치면 하승진같은 정도의 덩치로 보였을 듯.. 보통 삼국지보면 힘쓰는 장수들이 덩치좋고 머리쓰는 책사들은 왜소하고 그럴거 같은데, 정욱은 본인이 임관해 있을 당시의 어지간한 위나라 무장들보다 체격이 컸을 듯 싶다. 연주의 유명인사다보니 일찍부터 여기저기서 오퍼를 받았고 첫번째는 후한 말 연주자사였던 "유대" 였는데, 당시의 유대는 한나라의 칙명을 받고 부임한 그냥 공무원 도지사같은 개념으로 와있었고 당시 원소나 공손찬같은 자기의 세력적 홈그라운드에서 터잡은 군벌은 아니였다. 당연히 별 큰 능력이나 야망은 없었고 정욱 역시 아쉬울게 없어 오퍼를 거절한다.(나같아도...;;;) 이후에 유대가 원소와 공손찬이라는 당시의 두 고래 사이에 끼어 난감한 상황 속에 정욱에게 자문 구하고 정욱이 해준 조언을 따르자 어려움 피한 일이 있었는데, 이에 재차 유대는 정욱에 스카웃 제의하나 역시 거절... 이후 유대가 황건적 잔당들 토벌 중 사망(...)하고 비어있던 연주에 진입한 조조가 정욱에 오퍼넣자 바로 응하는데, 이 당시 정욱은 꽤 비판을 받았고 이유는 유대의 청을 두 번이나 거절하며 내세운 이유가 "재야에 그냥 남고싶다" 라는거였는데 조조의 청은 거절없이 바로 응했기에! (나같아도...;;;) 그런데 이미 이때 정욱은 나이가 꽤 있었다. 이 당시가 거의 190년대 중후반이고 정욱은 조조보다 무려 14세 연상이이였으니 거의 50대 초중반의 나이. 후한 말 ~ 삼국시대의 높은 영유아 사망률 탓이라곤 해도 역시 노인사망률도 높아, 평균 수명이 50 안팎이던 시기인점 감안하면 거의 인생 끝자락에 사회생활 시작... . . . 조조가 직접 스카웃한만큼 시작부터 제법 높은자리서 시작은 물론, 초장부터 대활약한다. 여러가지 크고 작은 활약들이 있고 공적을 세우지만 그런건 삼국지 읽어보면 대강 다 비슷하게 실려있고 이 칼럼은 그런 삼국지를 읽어도 잘 모르겠고 세세히 안나오는 개인적 성향 위주니까 안쓸란다ㅋㅋㅋ 게임만 하신 분들 입장에서는 좀 의아할 수 있지만 정욱은 그냥 안전한 후방의 주군곁에서 이런저런 꾀만 내는 전형적인 책사타입이 아니였고, 본인이 직접 전장에 나가 상황 판단하여 병력을 통솔하는데에도 상당한 소질이 있었다. 조조의 네임드 책사들인 순욱, 순유나 곽가와 가후 등이 대개 후방책사들이였던 점으로 비춰, 이는 정욱만의 특징. 임관 초기의 조조는 아직 원소에게 쫄려가며 여포에게 시달려가며 유비를 신경쓰며 원술도 그냥 넘겨볼 수는 없던.... 비록 포텐은 충만할지언정 당장의 세력이 큰 시절은 아니였고 조조가 초기거점 삼은 연주 자체가 사방으로 교통 트인 평야지대라 처신 잘못하면 여러 세력의 다굴을 당하기 최적인 곳이여서... 초반의 정욱은 본인도 전장에 나가 직접 적진을 살펴가며 참전해 공을 쌓았다. 일단 본인의 피지컬도 상당하다보니 무예가 출중하진 않더라도 워낙 또 시기가 시기다보니 어느정도의 기본 호신은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 . 조조 휘하의 대표적인 반유비파 책사였다. 그것도 아주 급진적이라 아직 세력이 크지 않을 때 일찍 유비를 죽여야(?!)한다는 주장을 해왔고, 당시는 뭐든 일단 명분이 중요했는데, 정욱은 그런 명분이 없더라도 일단 찬스오면 죽이고 보자는 식으로 유비에 대한 경계가 극심했는데... 유비의 세력이 소수의 어설픈 떠돌이집단이던 시절부터 줄창 유비살해주장론자였던걸 보면 사람보는 안목도 굉장했다는 증거! 정욱이 조조 휘하에서 공은 정말 많이 세웠다. 그런데 이게 확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정욱은 타자로 치자면 홈런을 치는 슬러거가 아닌 주로 안타와 타율 위주의 교타자같은 타입에 기인한다. 정사내 정욱전이나 여러 위와 관련된 사료들에는 정욱이 결코 순욱, 순유, 곽가, 가후 등에 뒤지는 책사가 아닌데도 삼국지연의 상에서 이렇다할 기억남는 대활약이 없기 때문에 저평가가 되는것 같은데... 연의는 다 알듯 소설이며 팩트전달보다 재미가 먼저다. 그렇다보니 잘잘한 활약이 많은 정욱이 돋보이기에 불리할 수 밖에 없다. . . . 인성이 존니 별로였는지, 내부의 적이 상당히 많았다.... 애초에 연주의 호족집안 출신, 게다가 본인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주군인 조조보다도 14살 연상이니 그가 임관한 당시 어지간한 조조의 휘하들은 문무막론 정욱보다 많이 어리다보니 거기서 오는 꼰대기질... 작전회의시에도 누군가 자기의 의견을 반박하면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으며, 상대를 비꼬듯 말하기도 잘 했다. 딱히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이도 없었고 자기와 격차가 좀 난다 싶은 이들은 아주 하대했다. 그러다보니 임관 초기부터 위가 건국된 이후까지도 주위의 이런저런 비판상소가 조조와 그 후의 조비에까지 계속 올라왔다. 물론, 일만 잘 하면 여타 프라이빗한 부분은 일절 노터치였던 조조는 흘려들었고 정욱에게도 이와 관련 일절 말이 없었다. 그런 못되먹은 성깔에서 기인한건지 모르겠지만, 조조의 책사들 중 책략에 있어서 가장 인정이 없었다고 한다. 지가 주위 평판 신경 안쓰고 막 산다고 남들도 다 그런줄 아나, 세상의 평판을 무시한 지극히 실리적인 제안을 많이 했다. 당장 위에 언급된 유비살해만 봐도 그냥 일단 죽이고 보자는 식이였는데... 조조 역시 전형적인 실리주의자라고는 해도 그때껏 자기와 자기세력에게 별 악영향도 없고 인망도 높던 유비를 다짜고짜 죽였다가는 뭔 소리를 들을지 몰라 속으로는 맞다고 여겨도 감히 실행에 옮기진 못 했다. 정욱이야 아무리 날고 긴들 그냥 지금으로 치면 "직원", 조조는 "사장" 이였던건데, 직원과 사장은 능력여하 떠나 서로의 시야나 관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 . . 그리고 그 당시에 세상의 "평판"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중요하디 중요한 요소였다. 저 당시 중국은 무정부상태나 진배없던 후한 말, 그리고 황건적의 난과 각지의 군웅할거 등 삼국시대 정립이 되기까지 말 그대로 "개판 of the 개판" 이였기에 사람들이 막 살았다. 그렇기에 그 와중에도 대의명분과 정의 등의 고결한 가치를 소신삼아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자기가 위험해 지더라도 저런 신념을 지키는 이들은 존경과 우러름을 받았다. 그리고 나름의 인재라 불릴만한 이들 역시, 자기한테 얼마줄지, 뭐해줄지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옳은 주군 아래, 바른 일을 한다는 명분을 따라 임관하는 경우도 많았다. 당연히 세력이 엇비슷하면 무조건 반드시 꼭 명분이 앞서고 평판이 좋은 이를 따랐다. 더구나 무장들보다 많이 배우고 공부한 문관들의 경우, 이런 현상이 심했으며, 아무리 무력이 중요하던 시절이나 현실은 게임과 달라 좋은 무장보다 더 필요하고 또 부족했던게 좋은 문관(행정가, 책사 등)이였다.. 예를 들어, 장수가 오호대장군 + 책사가 당신네 회사의 당신 맞고참인 쪽과 장수가 당신네 회사의 당신 맞고참 + 책사가 제갈량 & 방통이면 후자가 전투에서 승리할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다. . . . 그러다보니 평판이 나쁘면 인재가 모이지 않고, 병력징집에도 어려움을 겪으며, 호족들의 물질적 지원 및 백성들 대상 세수확보까지 여러모로 어려움이 따른다. 게다가 전황이 불리해지면 이탈자나 배반자도 높은 확률로 다수가 생겨나 조금만 불리해도 세력와해가 가속된다. 심하면 군주의 신변안전도 보장이 어려워진다. 이렇게 평판이 몹시 중요하던 시기에 그런건 싹 치우고 목적지향성이 과도한 경우가 많았던 정욱의 책략이 반려되거나 다른 책사의 보완책과 더불어지는 경우가 꽤 있었던거 같다. 그러고보면 정욱도 주인을 잘 만난거다. 유비나 손권 휘하였다면 중용받지 못했을거고 원소나 원술을 모셨으면 본인의 목숨도 위험한 상황을 맞았을 수 있었겠으며 동탁을 따랐다면 인성개막장의 동탁에 인정없는 정욱의 책략이 더해지며 레드스컬 아래의 졸라박사같이 되었을 듯.... 늦은 나이에 조조 휘하에 들어가긴 했으나, 그만큼 또 오래 살아서 일흔 아홉에 사망하여 천수를 누렸다... 인성 더러운 이들이 한때는 잘 나가다가도 막판에 험한 꼴 겪거나 비참한 말로를 겪는 경우가 있지만 다행히 정욱은 본인이 권력을 잃거나 하진 않아 고위직에 몸 담다 편히 죽었다. . . . 우리 주위에도 돌아보면 정욱같은 타입의 모진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정욱처럼 실력과 재능이 겸비되면 뒤에서나 속으로는 욕해도 앞에서는 모두 그와 친하게 지내려 하거나 잘 하려고 한다. 역시 정욱같은 이들도 자신이 부진해지는 순간 바로 나락이란 걸 알기에, 더 악착같이 일하고 목표를 향해 수단방법, 물불 가리지 않고 나아간다. 그러다보니 계속 평판이 좋을 수 없는 악순환이..... 어쩌면 그 능력과 실적에도 불구하고 연의에서 좋은 대우를 못 받고 또 그 탓으로 현세에도 비인기 인물이 된 것 역시 그의 인성탓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력서
연봉을 더 높게 적었어야 했다고, 진영은 생각했다. 전화는 화요일에 걸려왔다. 3년 전의 진영이었다면, 연락이 온 당일이라도 당장 가능하다고 했을 것이었다. 진영은 이번 주 내내 별다른 일정이 없을 예정이었지만, 금요일쯤에나 가능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출판사는 진영의 집에서 지하철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다. 한 달 전 그만둔 회사가 출근 시간만 넉넉히 한 시간 반을 넘게 잡아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장점이었다. 출판사는 지하철역 입구에서도 거의 바로 보일 만큼 가까웠고, 4층짜리 건물을 단독으로 쓸 만큼 규모가 큰 편이었다. 면접 장소는 3층이었는데, 벽면에는 계단을 따라 이곳에서 펴낸 무수한 책들이 훈장처럼 전시돼있었다. 3층 입구에 들어서, 진영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직원에게 물어 인사담당자를 찾았고, 회의실인 듯한 공간으로 안내되었다. 안녕하세요. 진영이 인사를 건네자, 담당자는 진영의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이쪽에 앉으시라며 의자 하나를 가리켰다. 진영의 복장은 불량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딱히 격식을 차렸다고 하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맨투맨 티셔츠에 면바지, 그리고 캐주얼한 점퍼 하나를 걸쳤는데, 진영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물론 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담당자는 이전 경력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을 물었고, 혹시 술을 마시는지를 물었다. 진영은 잠시 생각했다. 영업부서가 아닌 편집부서에서의 음주 여부에 대한 질문이라면, 두 가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었다. 성실성과 친화력.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다면 출근에 지장이 있을 가능성 하나는 없는 셈이므로 나쁘지는 않지만, 담당자의 성향이 어떤가의 가능성을 다시 따져볼 때, 모범 답안은 ‘술을 마시기는 하지만, 크게 즐기지는 않고, 절제하며 마시는 수준입니다.’ 정도일 것이었다. 그러나 진영은 어떤 여과도 없이 대답했다. 네, 마십니다. 좋아합니다. 담당자는 음, 그렇군요, 하며 안경을 고쳐 썼다. 담당자는 ‘아시겠지만’ 하고 운을 떼고는, 자주는 아니지만 출판사의 특성상 간혹 야근을 해야 한다며, 가능하겠냐고 물었다. 물론 야근 수당은 지급된다는 말도 덧붙이며. 진영은 야근 수당을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겠나, 싶었다. 이전 회사는 야근 수당은커녕, 정상적인 회사보다 근무시간이 30분이나 길었고, 그것도 부족해 야근은 일상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당함에 입도 뻥긋 못하던 게 현실이었다. 진영은 망설이는 척하며, 너무 자주만 아니라면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했다. 담당자는 서둘러 면접을 끝내려는 표정이었고, 예의상 궁금한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복지체계가 궁금합니다. 이전 회사는 복지라고는 없었거든요. 담당자는 회사가 제공하는 모든 복지를 말해주었다. 당장이라도 마음을 돌려 입사할까 하는 마음이 잠시나마 생길 정도로 그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었지만, 사실 담당자가 설명하는 복지 목록은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들에 불과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담당자는 혹시나 연락이 안가도 양해를 바란다며, 불합격 시에는 따로 연락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진영은 부디 연락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진영은 성취감이라고는 없는 이전 회사에서 겨우 3년을 버텼고, 더는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퇴사를 결심했다. 퇴직금으로 여행이라도 다녀올 요량이었다. 엄밀히 말해 퇴직금은 회사가 그동안의 진영의 월급을 조금씩 모아서 만든 꼼수에 불과했다. 연봉을 13분의 1로 나눠 월급을 지불하고, 나머지는 퇴직금으로 모아서 생색을 내는 엉터리 회사들이 생각보다 비일비재한데, 그곳이 바로 그런 곳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진영에게 그곳은 첫 직장이었고, 노동법에 무지했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약속한 퇴사 일까지 한 달여가 남았을 때, 진영은 환멸에 가까운 매너리즘에 빠졌지만, 야근이며 궂은일을 자처하며 상사들의 비위를 맞췄다. 물론 ‘권고사직’을 얻어내기 위함이었다. 믿었던 인사과 선배는 자발적으로 퇴사했으니 권고사직 처리는 힘들다며 잘라 말했고, 진영은 편집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정사정하며, 권고사직을 부탁했다. 으응, 그래. 실업급여 받아야지. 간신히 얻어낸 ‘권고사직’이었다. 진영은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뒀지만, 공식적으로는 회사의 경영 부진으로 인해 사실상 회사에서 ‘잘리는’ 특권을 얻어낸 것이다. 실업 인정 담당자는 퇴사 사유를 물었다. 진영은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고 능숙하게 대답했지만, 혹시라도 문제 될 만한 질문을 받을까 봐 내내 조마조마하였다. 실업급여 신청 후 2주 뒤에 고용센터를 다시 찾았을 때 강당은 이미 만원이었다. 예정 시각보다 늦었나 싶었지만, 정해진 실업급여 설명회 시간은 10분이 넘게 남아있었다. 3년 이상 근무, 30세 이상, 150일. 진영은 정확히 조건에 맞는 사람이었고, 소정급여 일수 150일을 진단받았다. 최대치의 수급 일수였다. 그러니까, 5개월 동안 달마다 130여만 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정해진 기간마다 구직활동 증명서를 제출해야 했다. 진영은 수급을 받는 동안 당연히 취직할 의사가 없었고, 허위 이력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력서는 진짜였지만, 성의가 없었으며, 무엇보다 입사 의지를 담고 있지 않은 이력서였다. 혹시라도 연락이 오면 곤란하므로, 이력서에는 납득범위의 희망 연봉보다 조금 높은 연봉을 기재해놓았다. 엄밀히 이것은 부정수급이었지만, 어차피 본인이 낸 세금이라며 진영은 자신을 설득했다. 진영은 면접에서 돌아와 이력서부터 수정했다. 마침 3차 구직증명서 제출 기간이기도 했다. 희망 연봉 란에 기재한 연봉을 조금 더 올렸다. 그러나 귀찮게도, 저녁 즈음에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교정 교열 관련 일을 맡아줄 수 있느냐는 전화였다. 이렇게 높은 연봉을 불러도 연락이 오다니. 진영은 첫 직장을 어떻게든 구하려고, 가급적 소기업들에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연봉은 회사 내규에 무조건 따르겠다던 지난날의 자신이 생각나 헛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교정 교열 일에 이렇게 많은 연봉을 주는 회사가 있나요? 담당자의 질문이었다. 아, 그게……. 전에 다니던 회사가 업무량이 좀 많긴 했습니다. 진영이 대답하자, 담당자는 아, 그런가요, 하더니 저희는 지금 사실 정규직보다는 계약직을 구하고 있어요, 했다. 진영은 잘 됐다 싶어, 저는 지금 정규직을 구하고 있어서요. 계약직이라면 좀 곤란하네요. 죄송합니다,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진영은 다시 이력서를 열었고, 희망 연봉 란에 시선을 두었다. 이번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은 금액을 적어 넣었고, 그제야 진영은 만족했다. 4차 구직증명서 제출 기간이 지나도록, 면접을 봤던 출판사를 포함해 연락을 해오는 회사는 다행히 없었고, 실업급여는 제날짜에 무사히 진영의 계좌에 입금되었다.
[비즈니스│마케팅 4강]CPA가 뭐에요?│꼭 알아야 하는 비즈니스-마케팅 용어
CPA란 무엇일까? 방문자가 특정한 행동을 했을 때 광고주가 광고 비용을 지급하는 광고 모델 CPA는 CTA와 어떻게 다를까? 아 기다리~ 고 기다리~던! 도민이와 함께하는 재미있는 마케팅 수업. 지금 시작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CPA를 배워볼거에요. CPA Cost Per Action 인터넷 또는 모바일 광고 모델인 CPA는 방문자가 특정한 Action(행동)을 했을 때, 광고주가 광고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이에요. 특정한 행동이란? Impression, 클릭, 폼 제출 혹은 판매를 뜻해요. Impression은 1강에서 함께 공부했어요. https://youtu.be/tM-mVi5lqs8 마케터는 CPA를 분석하여 판매로 이어지는지 아니면 리드에서 끝나는지를 알 수 있어요. 그리고 방문자의 특정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사용된 비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리드는 3강에서 배웠었죠? https://youtu.be/RgMVx5pI6ok 정리하자면 광고주는 방문자가 취할 수 있는 정해진 특정 행동과 행동 횟수를 달성했을 때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CPA와 CTA의 차이점은? CTA는 2강에서 공부했었습니다. https://youtu.be/teuDq0ZQEiw 용어가 비슷해서 헷갈릴 수 있는 CPA와 CTA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아래 강의에서 더 자세히 알아보죠! https://www.youtube.com/watch?v=guhBJjoOcn4 재미있는 마케팅. 마케팅은 재미있다. 직장인의 친구 도민이의 마케팅 용어 CPA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황개 공복 (黃蓋 公覆) A.D.? ~ ?
지난번의 진도에 이어, 이번에도 남아있는 역사기록이 그리 많지 않은 인물을 또 한 번 재조명해 본다. 물론, 아예 연의 자체에서 스킵당해버린 진도보다야 형편이 낫긴 하지만... 그나저나 업데이트 후, 오히려 글쓰기가 별로가 되어버린 빙글이지만 그래도 계속 되는 이 칼럼 속 오늘의 주인공! 오의 3대 주군을 섬긴 "황개"에 대해 다뤄본다. 형주의 영릉 지역 출신이며, 조상 중 남양태수를 지낸 황자렴이 있었지만... 중간에 뭔 일이 있었던건지, 당장 최소한 황개의 부모대부터는 몹시 가난했고 그나마 그런 가난하던 부모마져 유년시절에 여의는 바람에 거의 거지나 진배없이 찢어지는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원체 후한 말 자체가 나라가 부도났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심지어 황개의 유년시절에는 대대적인 메뚜기때의 발생과 가뭄 등이 겹쳐 아마겟돈에 비견될 흉년과 기근이 있었던 모양이다. .... 후한 말의 평균 수명이 고작 40대 초반이였던 큰 이유가 영유아 및 어린이의 사망률이 비약적으로 높았던 탓임을 감안할 때, 부모가 다 계셔도 아사하거나 병들어 어린아이가 죽어나가는 마당에 고아라는 치명적 핸디캡을 갖고도 살아남은 슈퍼 차일드 황개였다. 그렇게 목숨만 부지해도 대단한 마당에, 어린이 황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리도 가난했다면서 어디서 구했는지 책과 병법서를 손에서 놓지 않고 늘 일하는 틈틈이 읽었다고 오서의 그의 열전에 기록이 남아있다. 그렇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던 황개는 군에 입대하여 하급관리가 되었고 이후 역시 열심히 군생활하던 황개는 당시 영릉태수의 추천을 받아 효렴으로 천거되어 공직자가 되는데.... 여기에서 어떤 분들은 '읭? 군인이 되었다며, 군인은 공직자 아닌감??' 하실 수 있는데, 후한 말의 군인과 지금 현대 한국 군대는 개념이 다른지라... 지금의 군은 오로지 국가가 그 소집 및 통솔권을 갖고 있지만 당시의 후한에서의 '군인'은 일부 중앙 황실 직속부대들을 제외하면 모두 지방의 권력을 누리던 군벌들의 사병들이였다. 물론, 이 군벌들도 명목상 황실에서 임명한 공직자들이긴 했지만, 황실의 영향력이 거의 전무했고 직위도 세습을 하거나 당사자가 자신의 임의로 후임을 정하는 등... 개판이였다. 그래서 황개가 사회생활 시작하며 몸 담았던 '군인'은 조정의 공식적 벼슬생활은 아니였으나 '효렴'은 황실에서 인정하는 '공식적' 벼슬이였다. 이렇게 차곡차곡 앞을 향해 가던 황개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어렵게 이룬 것들을 뒤로 한 체... 고향을 지키고자 고향으로 돌아왔고 그 와중에 그의 남은 생을 변화시킬 사람인 "손견"을 만나 그의 휘하로 들어간다. 과묵하지만 할 말은 했고, 갖은 고생을 다하며 자수성가한 무장답게 기본기도 탄탄했던 황개를 아꼈던 손견이였고, 황개 역시 그런 손견의 최측근에서 전투에 임했으며 그렇게 황개는 여기저기 손견 따라 군공을 쌓았고 특히 손견의 위명이 전국구로 떨치는 계기가 된 "동탁토벌전"에서 특히 큰 공을 세우며 자신 또한 손견 휘하 제일의 장수라는 명성을 얻어가게 된다. 손견의 사망 후, 그의 장남 손책을 모시며 손책이 강남 일대에서 어줍잖은 애들 상대로 무쌍을 펼칠 때 함께 했고 손책이 태사자와 맞다이를 붙던 당시에도 손책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유표세력과의 전투도 참전.... 손책 사후, 손책의 동생 손권을 모시면서는 주로 당시 손가의 본거지였던 양주(揚州)의 남동쪽 산악지대에 터잡고 살던 산월족들과의 대치에서 주로 공적을 세웠다. 이후 "적벽대전"에서 주유에게 "화공"을 권하고 그 자신이 거짓항복(사항계)을 하여 조조의 본진에 불쏘시개가 될 몽충선들을 이끌고 돌진하는 선봉역할을 맡으며 본인의 리즈시절을 맞이한다. 적벽대전 이후에는 다시 형주 무릉지역의 치안을 맡아, "무릉만"이라는 역시 또 소수민족들을 상대로 방어 및 토벌의 임무를 맡으며 손가의 주인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쉴틈없고 한결같이 굴려진 끝에 병을 얻어 앓다 사망. .. 여기까지가 나름 대단하기도 했지만 그닥 인상 깊을 건 없어 보이고 그냥그냥 별 재미없이 살았던 군인 황개의 일대기다. 기록의 부족 탓도 없진 않지만 아무튼 뭔가.... 쓰는 나도 지루할 재미없는 일대기를 가진 황개. 왠지 사람도 재미없는 사람이였을거 같은 황개. 인천 인근 시골 한 고물상의 똥개이름이던 황개. 삼국지를 대표하는 "노장"의 아이콘은 누가 뭐래도 역시 "황충"이지만, 사실 삼국지의 실질적인 첫번째 네임드 노장은 바로 황개다. 허나 역사서에서 그의 생몰연대가 모두 누락되어 있는데, 그의 열전 및 정사와 오서 등의 기록들만 볼 때.... 고생스럽고 가난한 삶 탓에 관직에 나선 자체가 당시로서 비교적 늦은 나이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그가 손견을 시작, 손책을 거쳐 손권을 모시다 사망 추정시기까지의 활약기간이 대략 어림잡아 30년 내외 정도다. 그러다보니 사망 무렵의 나이는 당시의 평균 성인사망수명 기준으로도 그리 짧게 산 것은 아니였을 것이다. 황개의 노장 이미지가 각인된 데에는 결정적으로 그가 가장 큰 활약을 했던 "적벽대전" 당시에 노장이였던 이유가 크고 아마 그 무렵의 황개는 약 50대 후반 무렵으로 역사가들은 추정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불과 10여 년 전까지는 60세부터가 노인의 영역에 진입하는 단계로 봤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1800여 년 전에 60세에 가까운 나이면 당연히 노인이나 진배없었으며 심지어 그의 포지션은 육체능력이 매우 중요한 야전군이였던 것을 감안하면 50대 후반 이상의 나이는 분명히 노장의 기준에 부족이 없다. 소수민족들 상대로는 타율이 나쁘지 않았던 그였고, 한족들과의 전투에서도 숱한 공적이 있는 그지만, 기록만으로 볼 때는 독자적으로 일군을 맡아 통솔한 사령관의 경력도... 선봉을 맡아 용맹과 무예로 적진을 가르며 무쌍을 벌인 이력도 거의 없는 편에... 마냥 전장에서만 구르기보다 이런저런 전투와 군사관련 행정과 보급 및 장졸훈련 등의 궂은 일 ~ 서포트 임무도 매우 많이 맡은 듯 하며 오군 내에서의 포지션은 위의 하후돈같은 일종의 "행정보급관" 스러운 위치였다고 보여진다. 적벽대전에서의 사항계와 선봉장 역할을 빼면 딱히 맹활약의 기록 없는 그가 게임 등 각종 매체들 속에서 제법 무력 관련 수치가 높은 이유도 아마 손가 3대를 섬기며 궂은일이나 소수민족들 상대일지언정 상당히 야전에서의 임무를 많이 맡고 그 와중에도 별 다른 부상이력 없이 잘 이행한 덕이 큰 듯 싶다. 체구는 그리 크진 않았던거 같은데, 혹독한 어린시절을 지나 수십 여 년을 전장에서 구르면서도 별 다른 부상 및 질병의 이력이 없는 강골이였고 오군 내에서도 꽤나 힘 쓰는 편이였던 장수였다. 연의에서 적벽대전을 앞두고 손권을 설득하러 온 제갈량이 오의 재사들과 썰전을 벌이며 죄다 조지고 있을 때, 이를 중재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애초에 저 썰전 자체가 허구이기에 응당 그의 등장도 허구. 적벽대전에서 사항계의 리얼리티를 높이고자, 주유에게 고의로 개긴 후, 매타작을 당하는 고육지책을 쓰는 부분 또한 허구다. 물론, 실제로 그랬다면 더욱 확실했겠지만 대신 황개도 남은 여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을 것이고.. 또 굳이 그렇게까지 안했음에도 결국 조조는 속았다. 참고로 연의에서는 황개의 투항서를 감택이 조조에게 전달한 것으로 나오나, 그 일은 감택이 하지 않았다. 덧붙여 고육지책 관해 첨부설명을 하자면, 연의에서 황개가 장을 맞는 씬이 있지만.... 그 형벌로서의 장을 맞는 것은 여러분들이 학창시절 엎드려 뻗친 후, 학주에게 각목으로 맞은 빠따와는 그 유를 달리하여... 일반인의 경우, 어지간히 맷집이 좋다한들 대체로 10대 내외선에서 혼절할만큼 극심한 고통이며, 연의내용처럼 수십 여 대를 맞게 된다면 황개가 아니라 캡틴 아메리카가 맞아도 사실상 하반신 불구, 더불어 성적능력조차 상실하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를만큼 극형이다. 이리저리 쓰임이 많은 황개였지만 생전에 최고 관직이 "편장군"에 그친 점을 보면.. 일단 오의 본격적 성장세가 시작된 손권 시절의 복무가 짧기도 했지만, 경력 대비 확실한 미션을 맡은 이력이 그리 많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사 및 열전 등의 기록들을 보면, 화려함은 없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어느 조직에서건 반드시 필요한 인재였다. 그는 공명정대 및 청렴하였고, 경중을 떠나 주어진 임무는 사력을 다하였으며 무리한 군공을 탐하지도, 하사된 포상에 대한 아쉬움을 표한 적도 없었고 한결같은 충심을 지녔으며 상명하복에 철저하여 자신보다 경력과 나이가 적은 상관일지라도 일절 단정한 모습을 보였다. 황개와 비슷한 짬밥이였던 정보가 자신의 아들뻘에 불과한 주유와 공동으로 도독에 임명되며 보직 및 주유에 대해 초반, 큰 불만을 표한 것과 대비되는 면이다. 전반적으로 황개의 성향은 맨체스터Utd. 시절의 "박지성"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크게 눈에 띄진 않아도 그 누구못지 않게 중요했고, 어느 포지션에서건 최선을 다해 묵묵히 본분에 임하여, 비록 큰 활약을 하진 않았어도 모두의 존경과 신뢰를 받았기 때문. 삼국지연의에서 그가 쓰는 무기는 "철편"이다. 이름 그대로 풀이하면 "쇠채찍"인데, '채찍'이라하여 인디애나 존스나 여러분들이 SM환타지 플레이 할 때 쓰는 그런 찰싹찰싹하고 휘감기는 채찍이 아니라, 쉽게 말해 '쇠막대기'라고 보면 된다. 베고 찌르고 하는 게 아닌, 쇠의 강도나 무게를 통해 데미지를 입히는 타격계 둔기인 것이다. 그런데 정사나 오서 및 황개의 열전 어디에도 그가 그런 철편을 쓴 기록이 없다. 예전 삼.이.높.에서 무기관련 이야기 다루며 삼국지속 무기들의 대부분이 정작 그 시절에 없던 경우 많다 했지만, 철편은 당장 전한시대... 더 나아가 진나라 때에도 쓰인 기록이 있는 당시의 실존무기는 맞다. 그러나 말 그대로 '쇠막대기'를 들고, 다들 썰고 베고 찌르는 흉기들을 들고 설치는 전장에 황개가 나갔을 거 같진 않다. 물론 황개가 무술의 초고수라면 또 모를까, 그런 고수였음 분명 이리저리 전장에서 폭 넓은 활약이 많았을텐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고.... 당장 나같아도 쇠막대기 쥐어주며 창칼이 숲을 이루는 전장에 나가라면 못 나갔을 거 같다. 철편은 호신용, 대련용, 치안용, 징벌용 등으로 이리저리 쓰이긴 했으나 여러모로 실전 병기로는 좀 무리가 있기에.... 정말 황개가 고집부리고 전투에 철편을 썼다면 노장이 되기 전 전사했을 확률이 높다. 결국.... 이 또한 당시대의 실존여부 떠나, 나관중이 황개의 기믹에 맞춰 쥐어준 무기인 공산이 큰 셈이다. 정사, 연의 통틀어도 굵직한 화려함은 없는... 그렇기에 분명 그를 다룬 이 카드에도 좋아요나 클립, 댓글이 별로 없을 비인기 종목인 황개. 그러나 진도편에서도 말했듯.... 역사의 승리는 꼭 반드시 눈에 띄는 잘 나가는 이들만의 힘으로만 이룩된 것이 아닌, 이런 눈에 안띄는 곳에서도 주어진 바 최선을 다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란 부분을 강조하고자 재미없을지언정 황개편을 다뤘다.
마이크로소프트,
아웃룩·MSN·핫메일에 사용되는 웹메일 해킹 노출 마이크로소프트 웹메일 서비스가 해킹에 노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일은 아웃룩을 포함해, MSN과 핫메일에도 사용되는 계정이라 문제가 커질 수도 있다. 13일(현지시간) 엔가젯은 “만약 당신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웹메일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의심스러운 활동에 대해 주의하고 싶을 것”이라며, “(엔가젯은) 테크크런치에 해커가 1월 1일부터 3월 28일 사이에 고객 지원 담당자의 자격 증명을 이용해 자사의 웹 기반 이메일 계정의 ‘한정 번호’를 손상시켰다고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로그인 세부사항이나 메시지 내용을 노출하지는 않았지만, 이메일 주소(대화에서 주소 이름 포함), 제목 줄, 사용자 지정 폴더 이름까지 접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엔가젯에 따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는지, 아니면 가장 많은 희생자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사의 데이터 보호 담당자를 위해 연락처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 중 일부는 유럽연합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 기업 고객들도 관여하지 않았다. 이 기술 회사의 이메일 서비스에는 아웃룩 계정부터 핫메일과 MSN 주소까지 모든 것이 포함됐다. 엔가젯은 이번 해킹을 통해 스팸 메일뿐만 아니라 사용자들의 사생활의 세부사항을 바탕으로 사기나 신분 도용에 사용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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