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Zoom 예술 줌> 도상탈출, 바야흐로 사진
무주로 가려거든 5 - 번외(番外), 데프콘
해가 저물어 가니 짧은 무주 여정의 종착지 반디별을 향해 달려본다.
잠깐! 웬 군부대 시설이 도로변에 훤하게 드러나 있는가! 이 낯설고 이색적인 풍경. 군복과 트렉터, 군용 기지인 듯한 건물들, 조심스레 들어가 보니 총과 사격장 등이 널려있다. 모의전투 게임용 페인트총과 맞으면 터지는 페인트볼을 사용하기 때문에 '페인트볼 스포츠'라고도 불리는 서바이벌 게임을 위한 공간이다.
서바이벌 게임장 '데프콘'. 들어는 봤다. 이를 또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진 찍기 좋은 장소라고만 해서야 나 답지 않을지니.
데프콘(DEFCON)이란 'Defense Readiness Condition'의 약자로 '전투준비태세', '방어준비태세'란다. 모두 5단계로 나뉘는데, 숫자가 낮아질수록 전쟁발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Watch Condition) 상태의 분석 결과가 그대로 연동되는 것은 아니고 상황에 따라 전군(全軍)에 내려지는데, 데프콘 격상 시에는 군통수권자인 한.미 양국 정상의 합의가 있어야 되고, 전시작전통제권(戰時作戰統制權, wartime operational control)과도 맞물려 있단다.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문제는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17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작전지휘권을 이양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이양된 작전지휘권은 1954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효되면서 작전통제권으로 명칭이 변경됐으며,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되면서 유엔군사령관으로부터 한미연합사령관, 즉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이전되었고, 작전지휘권을 이양한 지 44년만인 1994년 12월 1일자로 평시작전통제권을 우리가 되돌려 받게 된다.
데프콘 3단계로 격상이 되면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작전통제권이 넘어간다. 아직까지 우리에겐 전시작전통제권은 없다는 얘기다. 트럼프의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 김정은의 미사일 시위, 사드는 들어오고,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한 수싸움, 일본은 호시탐탐 대륙을 넘보고... 자주국방은 고사하고 강대국 틈에서 한반도의 미래가 위태위태하다. 이곳에 다시 올 즈음엔 그야말로 '북풍설'로 남아 있겠지...
이곳 '데프콘'은 70년대 제사공장(누에공장)으로 사용하던 곳을 그대로 보존하여 서바이벌 게임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엔 언제부터 제사공장이 있었을까? 현재까지 알아본 바로는 1973년 이전에 이미 대전과 전주를 비롯하여 여기 무주에까지 전북제사공업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중화실업의 제사공장이 있었다. 이 건물의 내력이 궁금하다. 어찌 만들어졌는지도... 일단 박영희라는 사람이 당시의 사장이었다는 것만을 확인했다. 1958년에 불온서적을 소지한 죄로 국가보안법에 걸려 기소된 사람과 동일인으로 보인다. 이후 유신체제 하에서 산업훈장을 받는 등 견사업으로 승승장구한다. 나중에는 견방협회 회장까지 오르는 인물이다. 당시에는 앞서가는 인물이었을 게다. 1970년대 당시의 사업 결산표를 보면 순이익이 8억을 웃돈다.
1970년대 후반으로 가면 제사공장은 그 영화를 잃어간다. 일본이 보증을 거부했고 도의적 차원의 퍼주기식의 수입 또한 단절한 모양이다. 수출에만 의존하던 견직 사업은 내수를 확대할 필요가 있었고, 모직으로까지 섬유 산업을 확장시킨다. 한동안 잘 되는 듯하였지만 섬유 방직 산업은 이제 사양산업으로 우리에게 의미를 잃은지 오래다. 당시의 영화가 폐허가 된 공장만큼 아득할 뿐이다.
인생사 새옹지마, 화무십일홍이라 했다. 결 곱던 비단은 어디로 가고, 전쟁과 쾌락을 카피한 이 시뮬라크르 공간에서 우리는 또 뭘 바라고 갈꺼나. 이곳에서 무상히 흘러가는 시간을 붙들고 겸허히 바니타스의 한 장면을 재현해 봄은 어떠리... <무주로 가려거든 6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