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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전주곡의 예술, <퍼니게임>

가족이 휴가를 맞아 별장을 찾아가는 길. (여기서 배경이 미국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휴가철임에도 불구하고 뻥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가 딱 한 대 뿐인 설정은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므로.) 요트까지 매단 이 차에는 ‘아빠, 엄마, 아들’이 타고 있다. 사이좋은 가족 사이에 흐르는 따뜻한 분위기에 차 안에 흐르는 클래식 선율. 미국 중산층 가정의 삶이란 이렇게 우아하고 느긋한 것인가, 하는 부러움에 빠져들 때쯤. 난데없이 차 유리라도 박살낼 듯 한 해비메탈의 찢어진 고음과 정신 나간 기타소리가 관객의 귀를 난도질 한다. 영화 속 가족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영화 배경음으로만 설정된 해비메탈이기에 스크린에는 여전히 차창 밖 풍경을 즐기는 가족들의 얼굴이 그대로다. 이들의 얼굴 위로 떠오르는 감독, 배우 등의 이름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경고문인듯 핏빛으로 붉다. 앞으로 이들이 당할 피 묻은 수난의 전조곡이 시작된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장르가 스릴러라는 사실을 아는 관객으로서는 ‘과연, 이들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하는 초조함에 천진난만한 스크린 속 주인공들과는 달리 슬슬 긴장을 타기 시작한다. 발단은 그때부터였다. 이웃에게 아무렇지 않게 건넨 인사 한 마디. 달리던 차는 한 별장 앞에서 멈춘다. 커다란 잔디밭을 가진 이웃의 별장이다. 아빠와 엄마는 창문을 내리고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이웃들에게 서슴없이 인사를 건넨다. “내일 열시에 보는 거 맞죠?” 그런데 이웃들의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 어딘가 주춤 거리는 모습에 어색한 말투. 게다가 옆에 있는 낯선 남자들까지. 아빠와 엄마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영화 속 피해자들이 늘 그렇듯)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별장으로 향한다. (다음 차례가 자신들일 줄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집에 돌아와 짐을 내려놓고, 식사를 준비하고, 자꾸 보채는 개를 나무라는 일상의 풍경. 그 풍경 속으로 한 남자가 불쑥, 끼어든다. “계란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아까 이웃집에서 봤던 두 남자 중 한 명이다. 관객에게는 위험한 인물이지만 저녁 준비하느라 바쁜 엄마에게는 그저 다소 낯선, 이웃의 지인일 뿐. 선뜻 계란 네 개를 건네는 엄마. 그러나 남자는 실수(인 듯 고의로) 계란을 깨트리고는 다시 달라고 한다. 예의 바른 듯 예의 바르지 않은, 뭔가 불쾌한 남자의 말투와 표정. 슬슬 기분이 상하며 불안을 감지하는 엄마. 그러나 이웃의 지인이라니 어쩔 수 없이 계란 네 개를 또 내준다. 그러나 이 계란은 남자에게 달려든 개 덕분인지(아닌지) 다시 추락하고 만다. 다시 돌아와 또 계란을 요구하는 남자. 엄마는 어이가 없고 이제 좀 가달라고 요구하지만 이미 늦었다. 게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창문을 내리고 이웃집에 서 있는 두 백인남자를 본 그 순간부터.(얼굴을 본 목격자가 되지 않았다면 일상은 여느 일상처럼 흘렀을지도) 사실 그들은 (관객의 예상대로) 이웃의 지인이 아닌, 이웃에 침입한 불청객이었다. 다만 말끔한 외모에 잠시 속았을 뿐. 이들은 옷부터 참 ‘화이트’했다. 하얀 셔츠에 (생각해보면 소름 끼치는) 하얀 목장갑을 낀 두 명의 젊은 백인 청년. 금발머리에 예의바른 태도로 다가오는 두 청년에게 어른답게, 좋은 이웃답게 예의를 차리고 대했지만 두 청년은 조금씩, 처음 본 사이에 차려야 할 예의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골프채를 한번 휘두르게 해달라든지, 계란을 두 번씩이나 깨먹고는 또 달라고 조르는 식이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두 청년 사이에는 묘한 신경전이 오고가고 급기야 폭력이 시작되면서 차츰 이것이 그들이 설정한 게임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나에게 이 영화의 백미는 여기까지였다. 긴장감이 찰진 스타킹처럼 숨을 조여 오는 앞부분의 시퀀스는 대단한 폭력이나 협박 없이도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물론, 이후에도 볼만한 영화다. ‘스릴러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완전히 깨트리고 본다’는 전제를 단다면 말이다. ‘당하기만 하던 피해자가 악당을 물리치고 복수하는’ 전형적인 스릴러 영화의 룰을 기대한다면 그만 ‘리모콘’을 돌리시라. 안 그러면 리모콘 하나로 고구마 열 개 쳐 먹은 듯한 먹먹함을 당하게 될 테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편한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앞부분의 30분 정도에서 즐길 수 있는 스릴이 대단하고, 어느 박진감 넘치는 스릴러 영화에서보다 더 쫄깃한 박두근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의 삼십분은 본격적인 범죄가 일어나기 전의 전주곡인 셈인데, 나의 감상으로는 살인이나 범죄와는 별개로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어적, 심리적인 폭력과 가해를 은유적으로 비유한 느낌이었다. ‘벌어졌다’는 동사형을 쓰기엔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조용히, 쓰윽 찌르고 들어오는, 선을 넘어서는 오지랖이나 충고를 가장한 깔아뭉개기 같은 방식 말이다. ‘지인’과 ‘친구’, 때론 ‘가족’이라는 탈을 쓰고 서로에게 묘하게 상처 주는 고난도의 기술은 어쩌면 살인마의 고의적인 살인만큼이나 잔혹한지 모른다. 처벌할 방법도 없는 이 애매한 범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컸던 걸까. 나에게는 칼 없는 심리전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꽤 컸기에,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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