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그 때는 토요일에도 12시까지 수업을 했기 때문에 등교를 해야 했다. 하교하면서 버스에서 내렸다. 그 때 좌판을 깔고 물건을 파는 것으로 보이는 어느 할머니가 내게 말을 건넸다.
"저기 학생!"
"네, 할머니"
"내가 직접 딴 꿀인데, 이걸 사줄수 있을까?"
"아~네. 그 꿀이 얼만데요?"
"이거 만오천원, 시골에 가야 하는데, 고속버스 탈 돈이 없어서"
"아~네"
나한테 만오천원이라는 큰 돈은 없었다. 마음으로는 선뜻 사드리고 싶었지만, 꿀을 사기에는 경제적 능력이 부족했다. 할머니는 돗자리를 깔고 앉아 하염없이 정류장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앞에는 꿀통 하나가 있었다.
나는 마음 속에 도와드리고 싶은 생각과 꿀 가격에 미치지 못 하는 형편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러다가 다음 버스, 그리고 그 다음 버스에서 내리는 우리 학교 애들을 차례로 불러 세웠다. (당시 나는 반장이었고, 공부를 좀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최소한 내 말은 들어주는 편이었다)
"야! 할머니가 시골 가셔야 되는데, 차비가 없으시대. 꿀 한통에 만오천원인데 우리가 사 드리자!"
그렇게 나는 친구들에게서 돈을 거뒀다. 그리고, 만오천원이 되지는 않지만, 만원이 넘는 금액을 할머니에게 건네 드렸고, 꿀은 필요없으니 가지고 가시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벅찬 보람과 감동을 안고 집으로 걸어가던 중 한참 뒤에 있는 할머니가 가셨는지 확인차 뒤를 돌아보니, 그 할머니는 재차 다른 학생에게 꿀을 팔고 계신 것이 아닌가.
쫓아가서 따질까. 돈을 돌려 달라고 할까. 아니면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할머니의 영업행위를 중단시켜야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좋은 뜻에서 한 일이기 때문에 그 뒤의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아야 할까.
머릿 속에 갖은 생각과 마음 속에 분노가 섞여 일어났다. 하지만, 종국적인 나의 선택은 그저 내 버려 두는 것이었다.
선행을 하는데 있어서 대체로 분석적이지 않다. 선행에 상응하는 결과의 확인이나 기부금이 어떤 용도에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확인의 노력은 사람의 이미지를 계산적이고 차갑게 만들어 버리고 말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행이 그것을 진심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선행을 행하는 사람들도 그 선행의 결과가 그 의미대로 실현되고 있는지를 이성적으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선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순진한 생각과 감정적 판단을 이용하려는 은밀하고도 못된 속임수들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