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k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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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견 문대 (孫堅 文臺) A.D.155? ~ 191?

중국의 삼국시대를 구성하는 위, 촉, 오 중의 하나요..
위, 촉, 오 중 가장 마지막에 망한 오나라의 황실이던
손가의 시작에는 이 남자가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손가의 제네시스라 할 수 있는 "손견"이다.

여기저기에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중국 춘추시대의 위대한
병략가인 '손무(孫武)'의 후예'라는 소문과 추측까지 났지만
일절 그 실제는 확인된 바가 없는 그저 루머에 불과하다.
물론, 절대 아니란 증거도 없지만 유비가 한황실의 종친이라는
사실처럼 족보를 뒤져 팩트를 입증한 것이 아닌 본인의
자칭이며 또 이를 갖고 삼국지정사의 저자인 진수 또한
정황상의 추측을 한 것에 불과하다.

양주 오군 부춘현이 고향이며 오늘날 중국의 최대도시인
'상하이(上海)' 인근쯤이다.
물론, 저 당시의 오군은 이미 전한시대를 넘어 진나라 때부터
살기 괜찮은 지역이였고, "항우"도 거점 삼았던 인구도
적잖던 곳이긴 하지만 당연하게도 지금의 상하이와는
넘사벽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유의해두자.


전반적인 사료들 및 역사서와 그 주석본들, 열전까지
죄다 뒤적여 추론해 볼 때...
양주지역의 제법 좀 사는 "호족집안 아들"이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고 또 대대손손 유구한 금수저까진
아닌거 같고, 후한 말에 이르러 떠오른..
러시아의 올리가르히같은 그런 신흥세력의 자제였다.
어릴 때부터 이미 살던 동네와 고향 일대에서 먹어주는
깡다구와 대담함을 지닌 싹수 다른 소년이였으며,
만 17세에, 모여있는 수적떼들에게 홀로 덤벼 그들을 쫓아내
와해시킨 일화가 있고, 이걸 계기로 벼슬길에 나가 무관이 되어
같은 해 회계군의 허창 & 허소의 난을 제압한다.

이때부터 손견은 고속승진을 시작했다.
참고로 손견이 잘 나가는 호족집안임을 입증해 주는
한 예가 바로 위의 저 허씨들의 난을 제압코자 모병하는
과정이였는데, 관군만으로는 전력이 부족하다 판단..
사재를 털어 1천 여명의 병력을 추가로 모병하여
임무를 완수했다는 점이다.

당장 천 여명을 모병하고.. 그렇게 모집된 인원들을
무장 및 최소한의 복색을 통일시켜 먹이고 재우고 훈련하는데
투자되는 비용이 벌써 보통이 아니다.


아무튼 놀라운건 손견이 저런 히어로급 활약을 올렸던
연령이 고작 겨우 열 일곱 가량(추정) 나이였다는 것인데,
아무리 저 시절이 평균수명, 사망연령이 낮디 낮아 일찍일찍
결혼하고 얼른얼른 성인대우를 받았던 시절임을 감안해도
참 대단함이... 당장 나도 그렇고, 여러분들이 열 일곱살 때
어땠는지 떠올려보면 바로 답 나온다.

담임선생님의 빠따 한 번에도 고통에 몸을 뒤틀고
쉬는 시간 벨이 울림과 동시에 매점으로 달려나가
빵 사먹으려고 버둥이던 우리의 그 나이에 손견은
홀로 수적떼를 목 베고, 벼슬도 오르고 군사를 모아
전투도 나갔던 것.. T-T
다만.. 어려서부터 아예 학문은 내려 놓았었던 듯.
책을 읽었다는 기록도 없고 심지어 문맹이였다는 설도 있다.
물론, 저 당시에 문맹률은 엄청나긴 했다지만,
그래도 나름 사는집 잘 나가던 자제로서 문맹설은
본인이 얼마나 학업을 멀리 했는지를 보여준다.
저 당시는 오로지 무예만 출중한 이들은 무시를 받았고
높은 직위에 오르는 데도 한계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클래스가 되는 무장들은 깊은 학식까진 아니여도
최소한 여러 권의 병략서, 병법서들을 읽는 수준은 되야했던
시절이였기에 문맹설이 돌 정도로 학문을 등한시한 점은
자랑할건 못 됨이 맞다.

허나 그런 무식함에도 불구하고 군사관련 행정처리에는
꽤나 빠삭하게 처리를 했었고 그런 일처리와 용맹 그리고
궂은일은 미루거나 피하지 않고 나서서 쓱싹 처리하는
빠릿함덕에 평판은 좋았던 편으로 성격은 좀 불같을 지언정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시원시원하면서도 화끈한 성격
덕분에 따르는 이들은 적잖았던 모양이다.

군율준수에 매우 엄하면서도 풀어줄 때는 풀어줬고,
병사들을 고압적인 자세 일변도가 아닌 "전우애"로서
대함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식사도 병사들과 함께
동일메뉴로 먹었다고 하니 당근 병사들의 충정도 높았다.
이래저래 빠른 출세가도 달리며 승승장구 했던
손견이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땅 넓고 사람 많은 중국의
어느 지역, 어느 군벌에나 두엇쯤은 있는 준재였던 그가
전국구로 발돋움하는 계기는 다 필요없고 바로바로
원소의 격문에 의해 집결한 18로 제후들의 유니온인
"반동탁연합군 VS 동탁군"과의 대립이였다.


참고로, 삼국지연의 속에는 마치 손견이 원소, 원술, 조조 등
당시 각자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참전한 여러 제후들과
역시 동등한 제후들 중 하나로 그려지는데 이는 왜곡이다.

그때까지도 손견은 독자적인 자신만의 세력을 이끌던
군벌이 아니였다.
이미 그전, '황건적의 난' 당시에는 엄연히 조정의 벼슬에
임관된 상태로 '주준'의 부장으로 참전,
그 후, 서량에서 184년에 변장 & 한수의 난 당시에는
십상시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은 것으로 밉보여
지휘관직을 박탈당한 '황보숭'의 후임으로 정벌군 사령관을
맡았던 '장온'의 부장으로 참전 하는 등...
주로 황실직속의 고위장군들의 부장으로 참전한 경우가
많았던 만년부장이였다

덧붙이자면...
변장 & 한수의 난 당시에는 서량에서 그 위명 높던
동탁도 장온의 천거로 참전한 상태였는데,
손견과는 여러 모로 행실과 견해의 차이로 몹시 사이가
안좋았던 터였고
손견과 달리, 상관인 장온에게도 불손하며 제멋대로에
안하무인으로 굴던 동탁이였기에 둘은 상극..
게다가 서량에서는 먹어주던 동탁이 상당한 군공을
쌓았음에도 손견은 몇 차례 패전하는 등 재미를 못 봤다.



반동탁연합군에 합류했을 무렵도 당시의 위세가
천하에서도 세 손에 꼽히던 "원술"의 사실상 부장에 가까운
자리로 원술의 지시와 서포트를 받으며 참전했었다.
아무튼 하여간 그렇게 반동탁연합군 소속으로 참전한
손견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적인 대활약을 벌이며
동탁군을 양민학살하여 후한의 슈퍼스타로 발돋움 하는데...

일단 첫 타석에서는 접고 들어갔다.
동탁의 부장이던 '서영'과의 전투에서 박살이 나서
간신히 최측근의 호위병력 몇 십여 기만 이끌고
살아나왔고 그마져도 위급상황까지 몰려....
자신의 한 팔과 다름없던 "조무"가 손견의 붉은 두건을
대신 쓰고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벌어준 덕에 겨우 살았다.

참고로, 삼국지연의에서 조무는 저렇게 손견을 살리고
간지 뿜으며 장렬히 전사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저 때 손견의 두건을 걸어놓고 적병들이
돌아갈 때까지 짱 박혀 있다가 살아남았다.
다만.... 그 이후로 정사에 더 기록이 없어서 어찌 되었는지는
알 길은 없다.


저 패배를 보약 삼아 그 다음부터 나선 손견은 다른 사람이
되어 동탁군을 거침없이 관광 태우기 시작한다.
동탁의 부장 '호진'의 군대를 엘리시키고,
무력의 화신이던 그 "여포"의 부대조차 지워버렸으며,
심지어 이 와중에 연의에서는 관우가 "데운 술이 식기 전에"
목을 베었다는 "화웅"도 참수한다.

솔직히 화웅이 연의에서 관우버프용 적장으로 나와서
동탁군의 에이스던 여포와 함께 원투펀치를 이루는
맹장으로 그려지지만 솔직히 정사나 그밖의 기록들에서는
별 다른 언급이 없어서 그 정도의 장수인지는 알 길이 없다.
허나 당시 화웅이 맡았던 임무나 직위등을 볼 때,
그렇다고 또 듣보잡은 결코 아니였음을 예상할 뿐!


결국 이런 손견의 크레이지 모드 탓에 동탁은
당시의 후한 수도이던 낙양을 죄다 초토화 시킨 후,
장안으로 천도를 하게 되며...
이 와중에 한 번 여포부대를 박살냈던 손견은 다시 한 번
낙양에서 여포부대를 짓이겼다.

이렇게 수복된 낙양성에 진입하며 손견이 옥새
득템하게 되었고 그 옥새는 당시 손견의 주군이던
원술이 반협박을 하여 삥뜯기고 만다.

삼국지연의처럼 옥새를 꿍쳤다가 손책에게 물려주고
손책이 그 옥새를 담보삼아, 원술에게 병력을 인수받아
독립했다는 것도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라이프를 보다
드라마틱하게 만들고자 각색된 것이였다는...ㅎ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손견은 명백한 "원술의 부하"였다.
삼국지연의만 보셨거나 게임 등으로만 접하신 분들은 절대
몰랐을 사실이다.

허나 원술이 그럼 그렇지, 명군이 아니다보니
그 아래에서 손견이 이래저래 속앓이를 하긴 했다.
일단 저 동탁과의 전투에서도 파죽지세였지만...
손견이 너무 잘 나가, 그 위세나 명성이 높아지면
그를 컨트롤하기 벅찰 것을 염려하고 시기했던
원술이 겐세이를 놓고자 군량보급을 끊었던 탓에
손견은 그 드높던 기세가 주춤해질 수 밖에 없었고
위의 언급대로 옥새마져 협박으로 빼앗기며 심지어
그 아들 손책마져도 원술로 인한 스트레스가 여간
아니였다고 한다.


그 후..
그 원술의 명으로 유표를 공격하던 중,
당시 손견에 맞선 유표측 장수인 "황조"의 부대와 전투 중,
원정군 총지휘관답지 않게 퇴각하는 황조를 직접
앞장서 추격하는 무리수를 두다 가뜩이나 눈에 잘 띄는
붉은 두건을 두른 탓에 빗발치는 화살과 돌에 맞아
젊은 나이에 허망히 생을 마감한다.
직접적인 사인은 날아온 돌에 머리를 직격으로 맞고
두개골의 골절에 의한 즉사. ...
손견 본인의 전투 스타일 자체가 겁대가리 상실하여
앞뒤 재고보고 할 거 없이 자신이 앞장서는 스타일.
심지어 공성전에서조차 자신이 앞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고 위에서 언급된, 손견을 전국구스타로 만들어준
동탁과의 전투에서도 그 잘났다는 18로 제후들 중
거의 유일하게 손견 혼자 동탁군 전군을 발랐을 당시 역시
가장 선두에서 미친 듯 싸웠던 손견이였다.

일기토기록이나 무예솜씨에 대한 언급은 따로 남아있는
자료가 없으나, 저렇게 밑도 끝도 없이 앞장 서서 날뛴걸
보면 결코 힘과 무예가 뒤쳐진 사람은 아닐 거라는 것은
기정사실.

저런 스타일은 뭔가 간지넘치고 상남자스러워 보이긴 해도
정말 크나큰 리스크를 안고 있는 '하이 리턴 & 하이 리스크'
타입이라 할 수 있다.

총지휘관이 후방에서 지령만 내리는 부대와
직접 장병들을 독려하며 자신이 선두에서 달려 나가는
부대의 사기 차이는 극명하다.

저 당시의 병사들은 딱히 긴 시간 제대로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드물었고, 대개 필요시에 허겁지겁 긁어모은
농부들 출신이 대부분에 장비나 무기도 별 볼일 없었다.
우리가 삼국지관련 각종 미디어에서 보듯,
무슨 요새군대처럼 통일된 군복을 입은 것도 아니였다.
쉽게 말해 거의 오합지졸이였는데...
그런 병구성일수록 몹시 중요한 요소는 딱 두 가지!
"병력의 수""병력의 사기"이다.

헌데, 그 둘 중에도 더욱 중요한 것은 "사기"였다.
기세가 드높은 소수가 그렇지 못한 다수를 일방적으로
도륙하는 경우도 저 당시는 부지기수였고.
서양의 역사를 봐도 숫자가 많다고 볼 수 없던 로마군이
다수의 게르만족, 북아프리카에서 승리를 거둔 큰 이유는
잘 훈련되고 통제된 정예병들의 자신감에서 오는
결국은 "앞선 기세" 탓에, 상대들이 더 많은 수나
지리적 이점을 가졌음에도 오히려 기가 꺾인 탓이였다.

심지어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는 그 무섭다는
'코끼리부대'를 앞세우고도 보병중심의 로마군에게 패했다.
이유는 카르타고는 코끼리를 앞세우고 나머지는 뒤로 배치,
코끼리가 짓밟고 휘저으면 나서서 시마이하는 전법인데,
로마군의 화살과 투창에 결국...
살로 이루어진 코끼리가 쓰러지면 그 후로는 대책이 없던
카르타고군은 기세가 꺾였기 때문.

아무튼 그렇다보니 저런 용감한 지휘관이 선두한 부대에,
겁을 먹는 장수나 병사가 있을리 만무하여
손견의 부대는 어지간한 적세력은 별 다른 전략없이도
죄다 씹어버렸던 것이다.


허나...
저 방식이 반대로 정말 극히 위험한 게..
앞장 선 지휘관은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 적병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고,
제아무리 무예가 뛰어난들...
절대 다수의 병력이 다구리를 놓으면 장사가 없고,
활같은 원거리무기에 대해서도 취약하며
또 언급했듯, 만에 하나 지휘관이 전사하면
그 중요한 기세가 꺾이기에..
다수여도, 승세를 타고 있었어도,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어 패할 위험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저 방식의 장점덕에 열 번, 백 번 이긴들...
저 방식의 단점탓에 한 번 패하면..
그 당장의 전투는 물론, 그 세력 자체의 존망이 걸리게 된다.

그렇기에 이미 진즉부터 손견의 측근들은 그의 무모한
선두돌격을 자중시켰으나 그때껏 멀쩡한 손견은 당연히
씹고 지고집대로 했고, 그러다 결국은 누가 어디서 던졌는지도
모를 돌팔매에 맞고 허망히 사망한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이러한 성향은 장남에게도 고스란히
유전된다는...



성격은 시원시원했던 모양이다.
처벌도, 용서도 화끈했고 철저한 행동파였다.
대개의 맹장들이 그렇듯, 성격이 불같고 급했으며
전략전술 등은 비겁한 꼼수로 생각하여 비중을 크게
두지 않았다고 한다.
물욕은 없으나 고집이 센 편이였고
대단히 헌신적(?)인 아버지로서 어느 정도 나이가 된
아들들은 전장에 늘 데리고 다니며 각종 군사전투관련
경험과 지식들을 쌓게끔 지도했고 무예도 직접 가르쳤다.
아내(오국태 부인)를 몹시 사랑했던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는데, 낙양에서 얻은 옥새를
원술에게 바치게 된 이유가 바로 원술이 손견의 아내를
인질 삼았기 때문이였다.

물론, 현대의 기준으로 아내가 인질인데 그깟 도장은
당연히 포기하는게 맞는거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의 여성인권은 지금과 비교불가인 거의
남성의 부록으로 여겨지던 때고 다른 인물들은
자신의 야망이나 위급시에 아내의 안위는 내팽개 친
경우가 부지기수에 심지어 아내가 여럿인 경우도 많았고

"옥새"는 그냥 열쇠도 같이 하는 도장집 가서
인감으로 쓸 거니까 소뿔로 파달라며 3만원 주고 잠깐
기다리면 도장아저씨가 돋보기끼고 레이져로 파주는
그런 물건이 아닌!
상당한 야망가였던 손견같은 이에게는 대단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당시로는 황실의 권위와 정통을 의미하는
물건이였다.

괜히 삼국지게임에서 옥새를 얻으면 여포도 매력이 100이
되는게 아니고, 원술이 아무리 또라이인들
이 옥새 얻고부터 황제의 꿈을 현실화시킨게 아니다.
게다가 당시 옥새를 분실한 후한 황실도 분실한 옥새를
새로 제작하지 못 하고 전전긍긍하던 것도
옥새는 어디 뒀는지 기억 안나면 다 서랍 뒤지고
엄마한테 어디 있냐 소리질러 찾다 끝내 기억 안나면
새로 마련하는 그런 물건이 아니였기 때문이였다.



옥새 이야기가 길어졌다만,
결론은.. 그런 어마무시대단굉장한 슈퍼레어템을
겨우(?) 아내 때문에 포기한 손견의 가족애가 깊었다는 것.
게다가 그런 가족애는 당시의 영웅이라 일컬어지는
인물들에게는 결여된 가치관이였다는 점이다.

당장 조조만 해도 자기 죽게 생겼으니 장남 조앙을
내버렸고(당시의 장남의 가치와 위치는 상당했음!)
인의의 아이콘 유비도 자기가 위급하니 부인들과 형제들
내팽개치고 지살자고 혼자 내뺐으며, 기타 숱한 인물들이
아내나 기타 가족들에 대한 안위는 뒷전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여러분들도 만약 강남 테헤란로 한복판의
15층 짜리 빌딩 하나를 얻었거나 국회의원 공천권을
받았는데 누군가가 여러분의 아내나 여친을 인질삼아
내놓으라면 내놓겠나?
(잠깐.. 당연히 안내놓는다는 전제로 이리 물어본 나만 혼자
지금 쓰레기가 되는건가!?)


하여간 단점도 적지 않았다만 이런저런
영웅호걸의 면모들이 있었기에, 그 DNA가 전달된
손책, 손권같은 이들이 그 인물많고 사건많던
중국 삼국시대 속에서도 큰 획을 그은 히어로가 될 수
있었다는 말씀!
오늘의 주인공인 굵고 짧게 살다 간 손견의 이야기는
여기서 매듭 짓는다.
이번 칼럼은 원래도 늦었지만 유독 더 많이
딜레이가 된 점 깊은 사과 드립니다...T-T
변명을 해보자면, 제가 늦은 나이에 다시금 학구열을
불태우느라 지금 사이버대학에 등록해 퇴근 후에 공부를
하고 있는데, 중간과제 제출 기간 및 중간고사 기간을
앞두고 과제와 시험공부 탓에 틈내기 쉽지 않았고,

또 한 가지는 제가 좀 더 좋은 회사에 보다 나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이것저것 좀 정신이 없었어요..
아무튼 저도 노느라 늦어진 것은 아닌 점 양해 바랍니다.

이번주와 다음주중으로 중간과제 제출도, 중간고사도
다 마무리 지어지니 그 후부터는 제깍제깍 올리겠습니다!
13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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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학생인 저보다 학구열이 뛰어나시군요 ㅠ 좋은곳으호 이직도 하셨다니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계속 써주세요~
저는 굳이 빠듯한 시간과 체력과 돈을 할애해서 일부러 하는 공부니까 응당 더 학구열이 높아야죠!ㅎ 축하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포스팅도 중요하지만 생업이 더 중요하지요~ 무리하지 마시고 다음 포스팅 천천히 기다릴게요!
맞아요ㅎㅎ;; 생업이 중하죠ㅋ 이해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정말 오래 기다렸습니다 그만큼 길고 알찬 내용 감사합니다
정말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좋은 곳으로이직하셨다니 더 반가운 소식이네요!!!축하드립니다!!!ㅎ
허허ㅎ 네네! 정말 좋네요 ^^ 고맙습니다
오오ㅋ 새 독자분을 얻었네요ㅎ 완전 환영하고 정주행 & 댓글 정말 고맙고 격려도 너무 고맙습니다! 기왕이면 팔로우도 부탁 드려요 ^^;;
@BearsPyo 역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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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칼럼의 주인공이던 정대리가 워낙에 막강한 인물이였던지라... 이번에 등장하는 인물은 어지간한 사람으로 해서는 도저히 빛을 볼 거 같지 않았기에 오히려 한 템포 쉬어가는 인물을 정해 보았으니,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마량" 이다. 사실 마량은 그 역사속에서나, 삼국지연의에서나 임팩트는 강한 인물이 아니긴 하다. 무엇보다 너무 단명했고, 그 짧은 삶을 강렬하게 빛낼만큼 정대리같은 강대한 재주가 있던 것은 아니였기에. 그럼에도 우리가 일상 속에 잘 쓰는 표현들 중 하나인 '백미(白眉)' 라는 고사의 유래가 된.. 의외로 우리들의 생활 속에 묻어져 있는 삼국지 속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급식체가 판치는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이제는 백미라는 표현은 거의 안쓰는 듯 싶긴 하다만.... 형주일대에서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총명함과 나이대비 깊은 학식으로 날리던 유망주 중 하나였다. 본인을 필두로 한 다섯 형제들이 모두 대단 했다는데 백미라는 고사처럼 이 다섯 중 마량이 가장 그 재주가 뛰어났다고 하지만... 다섯 형제들 중 마량이 몇 째인지는 사료에 남은건 없다. 다만, 재주가 가장 뛰어나다는 말은 있는데 그러다보니 의례 마량이 첫째로 인식되는 감이 있다. 확실한 건 마속이 마량의 아우라는 기록으로 볼 때, 당근 막내는 최소한 아니였다. 단, 이건 있다. 예전 칼럼에서 '자' 에 대해 다루며 자는 주로 어른들이나 부모님께서 지어준다는 말을 했었는데 당시에도 자는 이름을 대신하다보니 막 짓진 않았고 형제가 많아 돌림자를 쓸 경우에는 그 형제간 순서를 나타내는 의미로 '백(伯)-중(仲)-숙(叔)-계(季)-유(幼)'  순서에 뒤로 돌림자를 넣었다고 한다. 그러니 사료에서 딱 꼬집진 않았으나 아마 마량은 다섯 형제 중 넷째로 추측된다.(마속은 막둥이) 그러나 남존여비가 끝장이던 저 시절이니 딸은 카운팅에 넣지 않아서 실제로 중간에 누나가 한 둘이라도 끼어 있을 수도 있고... 아무튼 형주를 주름잡던 마씨 오형제라지만 막상 마량의 세 형들은 어디 기록이 없다. 어려서만 공부 잘 하신 듯. 고향이 형주 양양군 의성현으로, 당시 유표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였지만 아직 임관하진 않은 상태였고 유표 사후, 유비가 형주를 장악하며 재야인재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초청받고 유비 휘하에 임관하게 된다. 쉽게 말해, 기업에서 먼저 입사제의받고 면접보러 가서 합격한 후 채용된 그런 케이스다. 제갈량이 발탁했다는 말도 있으나 그런 기록 없고 다만 제갈량이 가능성을 알아보고 마침 코드도 맞아서 중용한 건 맞다. 일처리 스타일을 보면 지금 환생해도 어느 회사가나 사랑받을 스타일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상당히 꼼꼼하고 빈틈없는 일처리로 이름 높았고 하나를 시키면 센스있게 연관된 두 세 가지도 같이 미리 알아서 척척이였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일처리까지 빨랐으며 그 방식이 매우 효율까지 좋았다고 하니 이쪽 방면의 만렙인 제갈량이 보고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저리 잘나게 일하면서도 자기 방식만을 고집않고 이리저리 여러 사람의 의견도 묻고 다른이의 방식도 살피며 두루두루 참고한 후 업무를 진행했으며 이 와중에 다른 이의 의견이나 아이디어가 어느정도 비중을 차지하면 반드시 업무진행자의 필두에 그 사람의 이름을 앞세워 적어 넣었다. 게다가 위아래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정중하고 깎듯한 오피스판타지에나 나올 법한 직장인 마량이였다. 심지어 말도 잘 했는데 달변가타입은 아니지만 조리있고 상대의 신뢰를 얻는 스타일의 화자였는 듯. 게다가 인물도 훤하고 좋았다는 말까지 있으니 변태가 아니고서는 이런 사람을 적으로 둘 사람이 없다. 이런 상기된 숱한 이유들 덕에 제갈량과 코드가 잘 맞아 큰 신임을 얻었으며 업무적으로는 물론 사적으로도 꽤 둘은 죽이 잘 맞았는지, 사석에서는 형동생을 먹었다. 제갈량은 우리야 삼국지연의만 보니 충신에다 완전 전략의 신같은 느낌이지, 인간 자체가 사람 개피곤하게 만드는 슈퍼깐깐이였고 어지간하면 자기 외에 (업무관련)사람을 잘 안믿어서 뭐든 직접 처리, 설령 누굴 시켜도 본인이 다시 하나하나 체크하는 스타일에 잔소리도 대박이였다. 게다가 본인이 제일 새벽같이 출근 후 오밤 늦도록 퇴근할 생각없이 워커홀릭이니 밑엣것들 입장에, 감히 " 그럼 군사님!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 이게 될 수가 없다. 기록은 안남았지만 보아하니 제갈량은 분명 부하들에게 밤 11시에 퇴근하면서 " 서촉의 모든 군수현황들 내가 내일 새벽출근하면 바로 볼 수 있게 좀 부탁해요~ " 이딴거 시켰을 인간이다. 여튼 이 미친 일기계 제갈량이 살아 생전 몇 안되게 일을 믿고 맡겼고 또 아낌없는 일폭격을 감행했으며 또 이를 문제없이 다 해낸 게 마량이다. 심지어 저 제갈량보다 먼저 출근하여 보고될 서류들의 검토를 미리 해두고, 제갈량보다 늦게 퇴근하며 제갈량의 업무들을 정리하던 워커홀릭을 넘어서 워커오타쿠 마량이였다. 제갈량 말이면 꺼뻑 죽는 유비의 입장에 심지어 사람 보는 안목이 귀신같던 유비가 보기에 제갈량이 입 닳게 칭찬하지, 자기가 봐도 진국이던 마량은 당근 유비의 신임도 한 껏 받게 되어 나이가 상당히 젊고 임관시기가 오래되지 않음에도 유비진영에서 마량을 쉽게 대할 이는 감히 없었으며,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자칭 No.2 관우가 말을 놓지 못한 몇 없는 이들 중 하나였다. 관우가 저러니 장비도 덩달아 마량에게는 말을 낮춰하지 못했고 물론 이는 마량 역시 워낙에 처신도 잘 하고 인격자인 덕에 가능한 일이였다. 이러한 부분들이 누적되며 훗날, 유비가 황제에 즉위하며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시중" 에 임명되는 등... 절대 그 직위가 낮은 이가 아니였다. 일각에서는 마치 외교의 스페셜리스트처럼 표현되나 손건같은 전문 외교관 포지션까진 아니였고, 왜 지금도 외교관이 아님에도 국가간 중대사안으로 UAE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다녀오듯, 중대사안을 전하는 경우에는 더러 직접 다녀오는 경우들도 있었던 것이다. 주로 오나라에 승상급 내지 손권을 직접 만나 유비나 제갈량의 친서나 외교사안을 논할 때같은 무게 있는 외교를 진행할 때 갔었다. 이런 마량이 처음으로 손권을 만나러 오에 가기 전, 대개 상대국으로 사신을 보낼 때 처녀행인 이가 갈 때는 군주 또는 그에 준하는 이가 추천서를 지참해 보냈다. ' 이 친구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라 보낼만해서 보낸다 ' 이런 느낌으로다가... 마량은 제갈량에게 추천서를 요청했으나 제갈량이 마량에게 장난으로 본인이 직접 써가라 하며 끝내 써주지 않자, 마량은 제갈량이 미리 찍어준 직인만 있는 빈 추천서에 한 가득 셀프칭찬을 가득 채웠고 이를 모르는 손권은 그 추천서를 받고는 지금껏 여러 촉의 사자들이 왔으나 제갈량이 이처럼이나 칭찬한 이는 없었다며 마량을 극진히 대하니 이는 다시 제갈량의 귀에 들어가, 제갈량은 바쁜 틈틈히 이를 갖고 마량을 놀리니 마량의 남은 여생 이불킥을 책임지는 에피소드가 되고 만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그닥 조명받지 못 하는 사건이지만, 유비가 온 나라를 들어 동방원정을 가는 "이릉대전" 앞두고 형주남방의 무릉만들의 참전을 설득하러 가는 역할을 맡았고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당시 누굴 보낼지에 대해 여론이 분분했다. 한족 대상이 아닌 외교기에 외교의 패턴도 기존과 많이 다른데다 매우 위험한 종족들이였기에 무사귀환한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누굴 추천하기도, 내가 가겠다 나서기도 애매한 시점에 무려 황제인 유비의 시중인 마량이 직접 나선 것. 제갈량은 애초 이 원정 자체를 강하게 반대했고 역시 이 동맹제안행이 위험하다여겨 마량이 가는걸 반대했고 유비 역시 내켜하지 않았으나 마량은 본인 외에 적임자가 없다며 나섰고 이에 유비도 당시 중국 어딜 가도 먹어주는 만능템인 서촉의 최고급 비단을 잔뜩 같이 보내줘 동맹의 성공을 이끈다. 삼국지연의에는 마량이 이릉대전에서 촉한의 총 군사작전을 책임지는 참군으로 참전했다가 유비의 진형도를 제갈량에게 전하는 것으로 등장하는데, 실제로 마량은 제갈량의 불참과 법정의 사망 등으로 제대로 된 전략가들이 부재한 이릉대전에 참군으로 참전이 결정되었고 무릉만들을 설득한 후 바로 유비가 있는 본군으로 합류하러 가던 중 육손의 칠백리 불싸지름에 휘말려 전사하고 만다. 당시 마량의 나이가 겨우 서른 다섯.... 역사기록 상에는 기혼여부조차 나와 있지 않으며 응당 자녀의 기록도 없다. 제갈량이 직접 챙기고 동생 마속을 상주로 장사를 지냈다는 기록은 있으나 그 후로 마량과 직간접 연관 기록이 내내 없는 걸 보면 결혼여부는 모르겠지만 자녀는 없었던 거 같다. 한편 생각해보면 위에서럼 젊은 양반이 내내 일에만 치여 살았는데 여자만날 틈이 어디 있었을까 싶다. 어려서부터도 학문으로 이름 날렸던 것을 보면 그냥 공부쟁이에 일쟁이였던거 같고 몹시 슬프게도 마량은 모쏠로 죽은 것은 아닐런지 싶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제갈량같은 사람은 게임에서나 만나야지, 현실세계에서 만나는 건 그야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으며, 물론 지금 내가 마량걱정을 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은 더욱 눈물짓게 만든다.. .., 마량은 그래도 황제의 시중이였지, 우리집 개고양이의 시중인 나로서는... 삼국지연의에서 화타에게 무마취 외과술을 받는 동안 같이 바둑을 둔 것은 허구다. 그냥 관우의 ㅎㄷㄷ함을 어필하고자 만들어진 일화고 관우가 형주사령관을 맡으며 관우의 행정보좌역으로 남겨지긴 했으나 얼마 안되 유비에게 부름을 받고 일찌감치 서촉으로 들어갔다. 여러모로 참 촉에 빛과 소금같은 인재였음에도, 건강상의 문제조차 없었음에도 유비의 무리수에서 비롯된 사망자 중 하나라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미 제갈량 사후 내정업무면에서는 비위와 동윤 등의 내정천재들이 이미 있었기에 법정같은 전략귀재가 아니였기에 조금은 희소성이 아쉽다. 허나 만약 천수를 누렸다면 제갈량 다음 서열의 문관이였을 거란 점은 이견이 없고, 제갈량 사후 마량 승상 - 대장군 강유의 배터리라면 조금은 더 수월한 북벌 및 촉한의 운영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싶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마량처럼 일 열심히 잘 해서 회사에서 인정받고 주변인들에게도 잘 대해서 인격자로서 인기얻은들, 그래서 중요한 일 맡고 높은 자리 오른들..... 마량처럼 인생 한 방에 훅가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직장상사 잘못 걸려 일만 하며 갈려지다 해외 출장 중에 사망한 가엾은 남자. 마량을 반면교사삼아 우리 다같이 왕성한 성생활 하며 막 살아봅시다.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7.
처음 이 칼럼을 시작하게 되면서 뭔가 깊은 생각이나 구체적인 플래닝을 갖고 시작한 것은 사실 아니였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삼국지라는 컨텐츠가 현 시점의 우리나라에서는 고루한 것으로 인식되고 또 즐길거리가 범람하며 그 빛을 잃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 단지 게임의 시놉시스 정도로만 치부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에서, 더 많은 이들이 삼국지의 매력을 넘어 마력을 알게 되었으면 하는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되다보니 인물이나 사건을 다룸에 있어 조금은 중구난방이 된 점이 없지 않다. 그래서 지난번, 최근에 들어서야 삼국지의 집필자인 "진수"를 다루게 되었듯,..... 이번 일곱번째 삼.이.높.에서도 후한의 난세를 거쳐 삼국시대를 있게 한 중대사건. 삼국지의 Genesis라 할 수 있는 빅이슈를 다루고자 하니 그것은 바로.. . . . . . 이는 삼국지에 있어서는 물론이거니와, 중국의 유구하고 장대한 역사 속에서도 무시못할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찬찬히 한 번 그 일면을 파헤쳐 보겠다. 1. 십상시. (十常侍) "십상시의 난"을 일으킨 장본인들인 환관들이다. 십상시의 난이 중요사건이듯, 당연히 얘들도 중요인물들이니 내가 아는 한 자세히 다뤄야 하는데, 지금 막상 여기서 얘들을 자세히 언급하려니 너무 빡셀 듯 싶어, 얘네들은 추후 인물을 다룰 때 디테일하게 가고 그냥 여기서는 얘들의 깽판만 다루기로 하자. 2. 어쩌다가? 십상시들이 기침 좀 할 당시의 후한 천자는 "영제(靈帝)" 였고 영제는 여러분들이 아는 주위의 그 어느 누구보다 찐따였다. 그냥 찐따도 아닌 개찐따였고, 진시황이래 중국의 발에 채이는 숱한 황제들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찐따로 상위랭커였다. 십상시들은 자기네가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해먹으려면 영제가 정사에서 관심을 끊었어야 했는데, 이를 위해 영제로 하여금 주색잡기에 빠지게끔 유도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느꼈는지, 십상시는 그전으로나 후로나 늘 황실에서 임팩트를 갖던 "외척"에 대해서도 코디네이팅을 했는데 본래 황제의 정부인인 황후는 아무나 그냥 막 되는게 아니였고 유력한 집안이나 높은 지위의 집안 딸이 된다. 헌데 그러다보니 안그래도 빠방한 집안인데 그 집안딸이 황제의 와이프까지 되고나면 어깨에 뽕이 한껏 더 들어가며, 심지어 그 황후가 아들까지 출산하면 진짜 뵈는 게 없어지게 되었다. 십상시들은 자기네가 계속 권력놀이를 즐기려면 황제는 물론, 외척 역시 무력화 시켜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 연도 빽도 뭣도 없는 집안의 딸을 황후로 만들었고 그렇게 된 십상시의 프린세스 메이커의 주인공이 영사황후(靈思皇后) 즉, "하태후" 였다. 하태후의 하씨집안은 고관대작도 초부잣집도 아닌 당시 몹시 천대받던 직군 중 하나인 "백정" 집안 딸이였다. 이 글 읽는 분들 중 정육점 하시는 분 계시나 모르겠는데 여러분들도 다 아시겠지만 당시의 도축장 & 정육점 운영자인 백정은 지금의 조카뻘 미인 소유진이랑 살며 자기도 몇 가지인지 헷갈릴만큼 프랜차이즈 벌려놓고 음식에 죄다 기승전설탕으로 시마이 짓는 백종원같은 게 아닌 진짜 완전 초하위계급이였다. 이런 개거지같은 집안 딸을 황후로 앉혀놓으니 애시당초 갑질을 펼칠 외척세력같은게 생길리 만무였다. 십상시는 외척이 이루어질 수 없는 집안의 딸을 뽑고자 일종의 오디션같은걸 봤고 여기서 뽑힌 가장 거지같은 집안 딸내미가 바로 백정집안 딸이였고 하태후가 황후가 되기까지는 집안빨(?) 못지 않게 하태후의 오빠인 "하진(何進)" 의 노력이 있었다. 3. 무슨 노력? 하진이 백정 주제에 뭔 노력을 어떻게 했다는거냐? 하진이 비록 신분은 천했으나 백정노릇으로 제법 큰 돈을 벌어놓은 자수성가형 백정으로서, 십상시의 황후 오디션 소식을 듣고는 십상시에게 거액의 뇌물을 바쳤고 십상시들 역시 이런 하진의 쇼미더머니에 흡족하여 하태후를 뽑았으며 하진에게도 낭중이란 말단관직을 하나 던져줬다. 하태후는 당시로는 이례적인 미인이였으며 무려 키가 163cm가량인.. 당시 성인남성의 키를 상회하는 장신에 피부가 뱀파이어같이 새하얗고 스키니한 체형의 상당한 미인이였다. 다만 집안이 저래서 그런가 성깔은 개거지같기가 이를데 없다는데 마치 내 마지막 여친이 떠오른다... 나보다 8살 어리고 미모는 아무 아이돌이나 센터에 박아놔도 어색함없을 미모에 나이스바디였고 애교와 교태가 하늘을 찔렀으나 얼굴값 하느라 성깔이 아주 지랄이였고, 안하무인에 고집불통.. 도통 뭔 생각을 하는지 알 길 없고 변덕이 죽 끓듯 하며 걸핏하면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게 이게 대체 여친을 사귀는지, 궁예를 뫼시는지 분간이 안갔다. 나도 걔를 중곡동 히틀러라고 부르며 개겼는데, 간혹 "그냥 내가 이걸 줘패고 깜빵을 갈까?!" 싶을만큼 빡치다가도 얼굴보면 화가 풀렸었다. 여튼 이 놈 지지배가 결국 날 찼지. 여러분도 스튜어디스 만나지마라.... 땅을 덜 밟는 것들이라 그런가, 인성막장이다. 아무튼 하진은 벼슬살이 하면서도 내내 십상시의 비데같이 굴었고 15년이 지나... 황후인 동생빨 + 십상시버프 받고 오늘의 서울시장에 해당되는 수도총관인 "하남윤"에 오른다. 알기 쉽게 예를 들어 서울시장이지, 저 당시 중국의 하남윤의 권세는 지금의 서울시장 그 이상이였다. 서울시장도 군사, 외교를 제한 모든 독자적 권한에 (심지어 그 군사와 외교도 제한적이긴하나 일정 권한 있음) 장관급 회의에도 동석을 한다.(다만, 의견권 없음) 이런 서울시장 이상의 파워를 가진 하남윤이 된 것이다. 4. 그런데.... 여기까진 그렇고 그런 흔한 부정부패비리의 한 예였다. 그러나, 그런 부정부패비리가 나라꼴을 개판으로 만드니 끝내 그 개판의 화룡점정인 "황건적의 난" 이 터지며 모든 일은 시작된다. 일단 십상시들은 별 다른 군사, 내정에 대한 식견은 없어서 황건적의 난에 대한 보고는 받았으나 영제의 귀에 소식이 가는 것을 막기 급급했을뿐 별도의 조치는 손 놓은 상태에 이를 막아보고자 하진을 "대장군"에 임명하며 일종의 계엄지시를 내린다. 당시 조정은 두 패로 갈려 있었는데, 십상시를 지지하는 무리들인 "탁류파(濁流)" 십상시를 배척하는 무리들인 "청류파(淸流)" 하진은 일단 난을 진압하려면 내부적으로 단합이 되어야 한다는 판단에 이들 사이를 조율하고자 노력했고 그 와중에 십상시들이 지들 최대한 유리한 쪽으로 일을 진행해보고자 간섭을 했는데, 전후사정 다 자르고 그저 눈앞의 자기들 이득만 기준삼아 아바타 대하듯 자신을 대하는 것에 비록 백정출신이라고는 하지만 백정 당시에도 돈 좀 만졌고 이제는 대장군이라는 천자 이하로 승상, 어사대부의 다음인 서열 4위의 직책에 오르며 머리가 커질대로 커진 하진은 심사가 불편해지게 되었고, 그래도 나름의 정치센스는 있던 하진이 판단하기에 뭔 말같잖은 오더를 내려대는 십상시들을 하진은 점차 혐오하게 된다. . . . 그 와중에 영제가 주색잡기 젊은이들의 전매특허인 골골대다 요절 크리를 밟게 되며 하진 VS 십상시의 갈등이 정점에 다다른다. 영제가 눈 감기 전, 십상시들 중 "서원팔교위" 라는 황실직속호위부대를 이끌며 가장 영향력이 큰 "건석"을 불러 유고를 남겼고, 건석은 이참에 자신이 정권을 컨트롤하면서 서원팔교위를 이끌고 슬슬 지마음대로 굴기 시작하여 거슬리는 하진을 제거할 플래닝.. . 헌데, 십상시가 무슨 서로 끈끈한 내시애로 뭉친 것은 아니였는지... 건석의 이 플랜을 들은 나머지 구상시들은 생각이 달랐다. 하진 킬 → 그걸 구실로 여기저기서 패싸움 → 자기들 세력약화 → 하진도 황실일가인데 그를 죽인건 어찌보면 대역죄 → 십상시 몰락..... 이런 결론에 도달하자, 도리여 하진에게 건석의 계획을 꼬지르고 당근 하진은 건석을 죽인 후 그가 거느리던 서원팔교위까지 흡수하고 마침 즉위한 조카 소제도 옹립... 심지어 청류파 중 강경파였던 원소를 비롯 유수의 인재들이 하진에게 이 참에 십상시 숙청을 강력 권고하며 눈앞만 본 나머지 구상시들의 팀킬은 돌이키기 힘든 자충수가 되고 만다. 5. Welcome To The Hajin's World. 십상시, 십상시 하고 맨날 패키징되서 그렇지.. 얘네가 무슨 미니언즈처럼 다들 똑같이 생기고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며 똑같이 말하는 그런 애들은 아닌지라 당연하지만 저마다의 성향과 스타일이 있었다. 그 중 유독 좀 쎈캐였던게 가장 임팩트 있고 서원팔교위까지 거느려 위세가 컸던 건석이였고 하진도 그런 건석과 사이가 안좋았을뿐, 나머지 구상시들과는 원만했다. 애초에 하진과 나머지 구상시들의 사이가 안좋았다면 싫건 좋건 건석의 하진숙청프로젝트에 동참했지, 자기네 멤버를 버리며 하진에게 밀고하지 않았을거다. 여튼 그런 건석도 죽었지, 그가 거느리던 서원팔교위도 흡수했겠다, 나는 새도 떨어 뜨린다는 십상시들도 자기에게 살살 기며 조카가 황제요, 원소나 조조같은 당시 조정의 유력 영건들도 자기편이지.. 그야말로 하진천하였다. 하진은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승하한 영제의 생모이자 조카의 친할머니인 동태후까지 독살한다..... 물론, 역사기록에 "하진이 동태후 제낌." 하고 쓰여있진 않으나 소년탐정 김전일에 걸핏하면 나오는 밀실살인처럼 앞뒤 정황상 거의 명백히... 이런 말을 쓰고 싶진 않지만 거의 엄창을 찍어도 될 만큼 분명한 살해동기와 정황들이 널린 상황이였다. 이게 결코 정당한 행위는 아니였음에도 모두들 동태후 시해에 대해 그냥 넘겼는데.. 사실 이미 하진의 천하였고, 동태후는 영제 치하에서 영제와 함께 매관매직의 쌍두마차를 이끌며 당시 황궁인 장락궁을 관직거래소로 만들어 버린 장본인인지라 평판이 바닥을 뚫고 멘틀에 닿고 있었기에. 6. 반전. 하진은 현 세태에 만족하고 더는 판을 키우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십상시를 경멸해 마지 않던, 당시 하진의 오른팔을 자처하던 원소는 달랐다. 십상시가 졸라 극혐이기도 했거니와, 십상시가 그간 장기깽판치며 나름 쌓은 저력은 건석 하나 죽였다고 사라지지 않음을 정치고단자 원소는 꿰뚫고 있었고 지금 십상시의 위세가 감했을 틈을 타 싹 다 조지자고 하진을 거듭 설득했으나 하진은 물렁하게 굴었고 이에 원소는 낙양 인근의 맹진이란 곳을 흑산적 코스프레한 병력으로 불싸지른 후, 이를 구실삼아 흑산적 정벌위한 계엄령 선포 후 병력소집 및 지원요청 통해 각 지역의 군벌들을 소집 후 당시 흑산적 유화책을 주장해오던 십상시 및 그 추존세력들과 소집된 군벌들을 싹 다 올킬하여 십상시 + 십상시추존세력(탁류파) + 지방군벌들을 모두 잡는 일타삼피의 계책을 제안한다. 당장은 쭈구리지만 틈을 봐 언제던 뻘짓이 가능한 십상시들과 원소 자신의 적대세력들인 탁류파들 및 언제고 황실과 조정의 리스크로 따라다닐 지방군벌들까지 다 잡아죽여 황실(정확히는 하진을 필두한 외척)의 권위를 다잡고 동시에 그 계책의 입안자며 총책임인 원소 자신의 입지를 드높일 놀랍고도 무서운 전략이였다. 너무 위험하고 무모한 계책이라며 몇몇 온건중신들의 반대는 있었으나 성공만 하면 더욱 공고히 자신의 세를 굳힐 수 있겠다 판단한 하진은 이를 진행하기로 한다. 물론 원소의 짐작대로 십상시들도 내츄럴 병신들은 아닌지라 대강 조정플로우가 어찌 돌아가는지는 감 잡았지만 당장에 어찌해볼 겨를이 없으니 하진의 여동생 하태후에게 달려가 눈물 쏟는 메소드 연기로 목숨을 구걸했고... 여자특유의 연약함에 십상시의 감성터치가 제대로 먹히며 하태후는 기를 쓰고 십상시의 처결만은 안된다며 오래비에게 바득바득 대든다. 위의 언급대로 한 성깔하는 여동생의 개진상에 하진은 한 수 물려 그냥 십상시들을 죄다 파면 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선에서 시마이를 지으려 했지만 원소는 결승선 다 와서 미리 세레모니하다 우승 놓치는 듯한 하진의 이 결정에 눈이 뒤집혔으나 태후와 대장군을 상대로 무리하게 떼를 썼다가는 도리여 역관광을 당할 수 있어 관망했고 십상시는 전원 파직되지만.... 하여간 정치적 식견이 1도 없는 하태후는 연이은 십상시의 감성터치에 휘둘려 애초에 다 죽일 것을 자기 떄문에 목숨은 붙여줬건만 이를 또 전원복직시킨다. 십상시의 복직도 얼척인 마당에 그 배경이 바로 십상시의 하태후에 대한 눈물연기라는걸 알게 된 하진은 결국 십상시를 전부 죽이기로 마음 돌렸으며 이때 다시 오빠를 설득하려는지 하태후가 하진을 궁으로 불렀고 하진은 이에 궁으로 갔지만 실은 십상시의 페이크였고 아홉 명 다 합쳐 붕알 총합이 0 인 이들은 입궁한 하진을 주살하고 만다..., . . . 어찌보면 그야말로 뒷일 생각안한 무리수같았지만 이미 생사가 걸린 궁지의 십상시로서는 이거 말고는 노답에, 비록 하진을 죽였으나 자신들이 황실을 점거, 황제와 태후를 끼고 있으니 하진의 잔여세력들도 섣부른 액션은 불가일테고 늘 그랬듯 황제의 칙서를 통해 나머지는 법대로(?) 처결하면 된다고 본 듯 싶다. 그러나 매사를 멀리 못 보고 언 발에 오줌누기식으로 진행한 십상시들은 현상황이 지금까지와는 다름을 파악 못 했으니, 당장에 하진 살해 소식을 접한 원소와 원술은 그 길로 궁에 쳐들어가 쑥대밭을 만들고 십상시 및 탁류파 등 수 천의 목숨을 지워버리며 말 그대로 장락궁에는 피바람이 불었다. 당시 원소는 아예 싹을 자름을 넘어 밭자체를 불싸지를 요량으로 환관이란 환관은 다 죽였는데 일일히 신분검사가 빡세니 그냥 수염이 없으면 다 죽였으며 그 와중에 아직 나이가 적어 수염이 미미하거나한 Not환관들까지도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진의 사망이 바로 사흘 전이니... 하진만 죽으면 다 끝인줄 알았던 십상시들은 삼일천하를 누렸을 뿐이였던 것.. 7. Happy End? 장락궁에서의 스펙터클한 칼쇼를 펼치며 환관들 및 탁류파들을 엘리시킨 원소는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지었다 여겼으나... 십상시들 중 일부는 어떻게던 살아보겠다고 그 난리통에 황제를 납치하여 궁 밖으로 도주했고 원소가 이를 알아차리고 추격한들 황제를 인질삼고 협상을 해보려는 판단이였으나... 원소의 추격대가 거의 축지법 수준의 속도로 맹추격 햬온다는 말을 듣고... 장양을 비롯 일부 생존 십상시들은 그냥 모든 것을 체념, 다음생에서는 꼬추를 떼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자결했다. 그리고 곧이어 도착한 수천의 병력이 황제의 어가를 에워싸 호위하며 위험에 빠진 황제의 신변을 확보했으니 이는 원소의 추격대가 아닌 바로 "동탁" 의 부대였다.... . . . 위에서 십상시들과 그 추존세력들 및 지방군벌들까지 불러들였다가 다같이 짓이기자는 원소의 계책을 받아들인 하진이 전국의 제후들에게 격문을 띄웠는데 동탁은 서량의 변경에 파견나가 강&저족들을 상대로 국경을 지키던 중 이를 보고 이는 뭔가 긁지 않은 로또임을 직감하고 서둘러 정예병력만 꾸려 왔던터에 마침 그렇게 황제를 겟한 것이다. 이는 마치 골키퍼인 원소가 사실상 먹는 골을 슈퍼세이브로 선방 후 그대로 자신이 공을 몰아 마르세유룰렛과 플립플랩에 시저스페이크까지 해가며 상대문전까지 90여m를 몰고 가 슛팅까지 했는데 놔둬도 들어갈 슛이 동탁의 내민 발에 맞고 꺾여 들어가며 기록에는 동탁의 골로 처리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 8. 최후의 승자. 동탁의 호위를 받으며 다시 낙양으로 돌아가던 어가에 뒤늦게 도착한 원소의 추격대는 어가를 넘기라 하였으나 아.. 네! 하고 어가를 내줬으면 이후 이야기는 탄산없는 콜라가 되었겠지만, 당근빠따 동탁이 이를 거부, 장락궁까지 그대로 본인들 병력으로 호위할 것을 주장! 이후 이야기는 멘토스 넣은 콜라가 된다. 동탁은 급히 오느라 최측근의 3천여 명 가량만 이끌고 왔지만, 숫자가 쫄리다는 게 뽀록나면 또 스토리가 어찌될지 모르니 서량에서 계속해서 추가병력이 당도하는 것처럼 꼼수를 부렸는데.. 밤에 몰래 일부 병력들을 변장시켜 내보낸 후, 다음날 걔들이 막 새로 온 것처럼 북치고 소리치며 요란하게 입성하고 다시 밤에 몰래 나간 애들이 다음날 북치고 소리치며 입성 × 무한반복 이런 방법을 쓰니 낙양의 모든이들은 짤 없이 정말 동탁의 병력이 계속 낙양으로 유입되는 줄 알았다. 이때 뭔가 전개가 갑툭튀 동탁 탓에 자기네들의 구상과는 다르게 흘러가자, 일부는 원소에게 아직 동탁의 병력들은 장거리 원정을 온지 얼마 안되어 피로가 쌓였을테니 동탁을 급습, 황제의 신변을 확보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의 킬링머신 원소도 동탁의 세력에 위축이 되었는가, 여태의 격한 반응 다 어디가고 죽기 직전의 하진처럼 뜨뜻미지근하게 굴었다. 원소의 판단으로는 비록 당장의 군세는 있으나 내내 변방에 주둔하여 중앙정부에 별 다른 끈도 없고 정치적 식견도 없어 보이는 동탁이 독단으로 황제를 끝까지 옹립하진 못 하고 결국 자신들 청류파들과 결탁 하리라 생각했고... 이미 조정에 난리가 한바탕 쓸고 간 상황에, 이번에는 그 수가 가늠안되는 진짜 전투병들과 정면승부는 설령 승리한들 피해가 극심할 무리수로 보았던 것. 하지만 정치공작의 고수일뿐, 관상쟁이는 아니였던 원소는 동탁의 야망의 크기와 나름의 센스를 파악 못했고 동탁은 이내 당시 집금오라는 제법 높았던 고관인 정원을 제거 후 여포 및 정원의 병력까지 흡수, 더욱 세력을 키우고 황제를 협박하여 상국이라는 사실상의 실권자의 자리에 올라 버리니..... 결국 대응이 늦은 원소는 자기의 본진, 기주로 돌아가게 되는;; . . . 결국 이렇게 십상시의 난에서 비롯되어 동탁의 집정에 이르며 우리들을 독서삼매경에 빠뜨린 씐나는 삼국지가 본격적으로 그 막을 올리게 된다ㅎㅎ . . 이게 이 사건을 봐도 알겠지만, 역시 사람일이라는게 다 자기뜻대로 되질 않는거다. 제아무리 짱구 돌리며 나름 수를 내다본들.. 저마다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들이 서로 맞물리며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게 산으로 간다는ㅎ 쓰다보니 추린다고 추렸는데도 너무 길어 읽기도 좀 지루하고 쓰느라 빡셨다. 저거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못 보신 분들이 더 많으시겠지?....ㅎ 빙글에서 연초에 명예의 전당을 선정하며 덕돌이 부분에서 첫 순위에 등재가 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T-T 빙글 이용자가 적잖은걸로 아는데 그 중 뭐가 되었건 한 파트에서 저렇게 커뮤니티 운영측에서 저를 꼽아준 자체가 벅찬 기쁨과 보람이였어요 ㅎ 이거 다 여러분들 덕입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팔로우 하시고 제 글을 읽고 클립하고 좋아요 누르시고 댓글 달고 해준 덕이예요, 고맙습니다. 저는 그냥 듣보잡 덕돌이라 여겼는데 사실 아니였음을 알았으니 조금 거만해져도 양해 바랍니다. 집에서도 엄마한테 눈칫밥 먹는 못난 노총각놈 새끼, 회사에서는 윗분들과 아랫상전것들 사이에 끼어 밀도가 높아지는 샌드위치인 제가 어디 가서 거만해 보겠습니까.... 더 열심히 자세히 재미있게 써올릴께요ㅎ 저 그리고 연재속도는 이거만큼 더디지만 여행기도 올리고 있으니 그것도 관심 부탁 좀...ㅋ 나중에는 우리역사에 대해서도 써보는걸 조금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ㅎ 삼국지의 인물과 사건들도 언젠가는 쓰다보면 소제가 씨 마를테니 그때는 우리역사의 인물과 사건들 중 교과서나 다큐, 설민석 선생님같은 분들이 미처 안다룬 그런 백스토리 그런거요ㅋㅋ 여튼 남은 명절연휴 잘들 보내시고 많이 먹고 많이 살찌시고 마무리는 왕성한 성생활로!
정대리 (鄭代理) A.D.1981 ~
난 여기에 글을 올리는 사람이다. 여러분들은 그런 내 글을 읽어 주는 사람들이며, 내 글이 " 가치 " 를 갖는 이유는 내가 글을 존나 잘 써서가 아닌, 개떡같이 써갈겨 놔도 찰떡처럼 읽어주는 여러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러분들은 단순 읽고 끝나는게 아닌 열심히 이러네 저러네 댓글들도 잘만 남겨 주며, 돈 받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자빠져 배나 긁는 백수도 아닌, 회사에서 갈려지는 직딩노비인 내가 이렇게 잘 시간, 쉴 시간 깨가며 폰 붙잡고 엄지를 혹사시키는 것은 바로 그런 여러분들의 그런 강렬한 피드백 덕분. 그래서....., 오늘은 시발 삼국지랑 1도 관련없는... 칼럼 사상 최초의 생존인물을 다루도록 하며, 제목에도 큼직하니 박혀 있듯,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들이 그토록이나 원하던 . . . 정. 대. 리. . . . . . . 지지난번 칼럼의 주제였던 " 오호대장군 " 편의 하단에 내가 우리회사 오호대장군을 설명하며 나열했던 짧막한 저 한 줄. 심지어 자세한 설명도 생략한다며 나머지 네 명에 비해 가장 간결담백진 소개에도 여러분들은 오히려 바로 저 정대리의 칼럼을 갈구해댔다... 오늘편의 시작은 바로 저기에서 비롯되었다. 우선 본론에 앞서.. 이 빙글이라는걸 도대체 몇 놈이나 깔고 쓰는진 내 모르겠고 그 중에서도 내 글을 팔로우 해놓은 2,500 명 가까운 양반들의 구성을 내 도통 모르겠지만... 오늘의 이 글은 그저 온리 여길 드나드는 닝겐들 중 우리 회사와 일절 무관한, 볼 일 없고 볼 일 없어야할 이들만이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내 운을 걸고 쓴다는 점을 유의해 주시길. 이 헬조선에는 그 정보의 진위여부 떠나 불특정다수를 대상 당사자가 불쾌감 느낄만한 정보를 유출시에 법적처벌을 받는 " 명예훼손 " 이란 뭣같은 처벌규정이 존재하기에 정대리놈이 여기 들어오는 순간 여러분들은 내가 이후에 진정 소울 담아 장편으로 쓸 예정인 인물들.. 유비, 조조, 관우, 조운, 손권 등등은 못 본다는거... 그러니 이번 편만은 그냥 여기서 보고 짬시키자. 좋아요, 댓글 다 좋은데 클립은 안된다. (사실 이걸 클립해가면 그 사람도 이상한 사람) 그리고 당근 정대리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음을 양해 부탁 드린다. ........, 1981년생 닭띠인 정대리는 인사팀에 몰래 확인해본 결과, 본관이 " 나주(羅州) 정가 "에다가 고향은 전라남도 목포 출신이며, 본관도 고향도 아따 싹다 기냥 즐라도랑께, 뭣이 중헌디! . . . 정대리의 어렸을 적 꿈은 에로배우였다고 한다. 그냥 단순 흉내만 내며 좋은척 하는 그런 가짜아닌, 직접 실제로 하며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 진정한 " 실전번식가이자 짝짓기전문가가 그의 꿈이였고 이런 꿈을 가진 시기가 주변애들의 장래희망란에 대통령, 과학자, 선생님, 경찰관 등 공직자나 전문직 위주로 적어제끼던 국민학생 시절이였으니 정대리의 싹수는 이미 그때부터 달랐다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정대리가 어린 시절부터 마냥 난봉꾼인 것은 아니였던 것 같고 그저 무한 포텐셜만 갖춘 만년 유망주였던거 같은데 이따금씩 가능성만 보여줄 뿐, 별 이슈없이 살아온 그런 어느 날 그의 막혀 있던 혈맥이 뚫리는 사건은 사회생활 하면서 발생한다..... 첫 사회생활이 어느 소프트웨어 업체에서의 기술영업이였는데, 상당히 큰 건이 걸린 한 거래처와 협의 도중 거래처 사장내외에게 식사와 술접대를 하게 되고 그러다 거래처 사장이 전화 받으러 간 사이, 사모님께서 정대리에게 제안을 한다. 정대리, 내 남편은 내가 말하는대로 해ㅎ 내가 남편한테 말해서 이번 건은 잘 되게 어떻게 해볼테니 대신 우리 정대리가 내 부탁 좀 들어줘볼래?ㅎㅎ 이거 꽤 큰 건인데 잘 되면 정대리한테도 꽤 도움될 거 같은데...  뭐 싫으면 지금 바로 일어나고~  홀홀홀 당시 예순이 넘으셨다는 사모님은 정대리에게 오.. 시벌 " 성상납 " 을 요구 하셨고, 이런 미친 악마에게 영혼을 판 당시의 정대리는 사모님께 몸도 팔고 그 덕에 소프트웨어도 판다. 영혼, 몸, 기술.. 팔 수 있는건 다 팔았던 참장사꾼. 그 후, 계약이 진행되고 최종 체결 완료시까지 사모님은 정대리의 몸을 매일같이 탐했고... 정대리는 나날이 몸도 마음도 황폐해져 갔으며, 이렇게 자신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던 정대리.. . . . 이렇게 정대리는 각성하며 다시 태어나게 된다.. . . . 그렇게 큰 건을 달성해내며 단번에 회사의 히어로가 된 그의 사내 위상은 지금 토트넘의 해리 케인과 비슷했다고 그는 회상한다.. 어쨌건 큰 실적에, 그만큼 빠방한 인센티브 받고 다친 몸과 마음을 추스려 가던 정대리는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정대리...ㅎㅎ  잘 지냈어?  아잉~ 일처리 끝났다고 연락 한 번 없고 야속하넹ㅎㅎ 난 우리 정대리 생각 많이 났는데 정대리는 안그랬어? 홀홀홀홀~ 사모님께서는..... 자신이 원할 때 자신과 만나 자신을 만족시켜주면 성과급을 제공하는 바디영업을 제안 하셨던 것. 이미 그 전, 자신의 그릇된 선택 탓에 몸과 마음이 황폐해졌고 간신히 이제야 추스려가던터에 정대리는 사모님의 이런 말같잖은 제의를 받자, 자신을 뭘로 보나 싶어 가슴 속 깊은 곳부터 불같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승낙했다...,;; 사모님과의 거래 덕에 주머니가 풍족해진 정대리는 서서히 일을 손에서 놓게 되며 향락과 유흥에 젖어가고, 나이트와 클럽 등을 전전하며 빼앗긴 자신의 기력을 보충했고 그러던 어느 날 동창회에 나갔는데 주머니가 넉넉하던 정대리는 동창회에서도 호기를 부렸고 이런 시원시원한 정대리의 모습은 인색하고 구두쇠인 남편을 만나 고생스러운 결혼생활을 하던 한 여성의 가슴을 뛰게 한다... (여러분들도 나중에 와이프가 동창회 간다면 못 가게 해!!) 모두가 예상한대로.... 정대리와 그 여동창은 그날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되고 둘은 그렇게 그날 이후, 단순동창을 넘어선 " 바디프렌드 " 가 된다. 이렇게 정대리는 두 유부녀 사이에서 외줄타기같은 스릴을 즐기며 생활했고 사모님께 받은 물적지원은 다시 여동창에게 재투입되며 지하경제의 순환에도 일조하게 된다. 그러던 중 아주 박진감 넘치는 사건이 생기는데 여동창이 정대리의 2세를 갖게 된 것이 그것..., 정대리의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고 놀랍게도 여동창은 정대리에게 이참에 자신은 현남편과 이혼할테니 자신을 책임지라며 강요해온다. 자신의 뜻대로 않을 경우, 정대리의 집과 회사에 이 사실을 알리겠다는 협박은 덤이였더라는.... 정대리는 여동창에게 뱃속을 포맷할 것을 눈물로 간청하고 여동창은 물러서지 않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물질만능주의 아니던가. 정대리는 뱃속포맷 및 모든 일에 대한 묵인을 조건으로 거액을 제시하고 결국 여동창은 수락. 그러나 당시 제안한 거액이 내가 알기로 ₩ 7,000,000. 으로 알고 있는데 솔직히 일반 평민 직장인들 수중에 빚없으면 성공이지, 저런 돈을 바로 운용 가능한 경우가 의외로 많지 않으며 특히나 문란방탕한 정대리는 이미 빚만 잔뜩 있다보니 저 돈이 없었다. 그래서 정대리는 사모님께 지원요청을 했다. (당연히 이유는 다르게 말했지.) 허나 이 사모님 역시 호구는 아니셨는지라.... 정대리에게 각서를 쓰게 했는데 이 각서의 내용이 또 아트였다. 거두절미.. 1년 이내 원금 미상환시 정대리는 3년간 자신의 모든 요청을 승낙하는 연인관계로 그 기간동안 일체의 연애를 금한다는 소위 " 노비문서 " 의 작성이였다. 그러나 한 시가 급한 정대리는 그 노비문서에 지장을 찍고 만다.... 사모님은 연륜에서 묻어나는 그 지혜가 화수분같은 마녀였기에 단순 문서작성으로 끝내지 않았다. 정대리의 나체영상을 촬영하여 보관하는 화룡점정을.. 이렇듯 멘탈을 죄다 흡입당하고 얻은 돈을 여동창에게 지급하였는데..... 졍대리의 시련은 이제 시작이였다. 여동창은 돈만 낼롬 받아 먹고는 그 돈은 아이의 출산 및 육아에 지참하겠다며 포맷을 돌연 거부! 자신은 역시 출산을 해야겠으며 이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고 관계를 정리할테니 자신을 책임지고, 그렇지 않으면 역시 정대리의 회사와 집에 알리겠다는 먹튀강수를 둔다. 당시 정대리는 온갖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가장 효율적이고 우수한 방법의 자살법 등을 숱하게 검색했다고 한다. 그러나 죽음보다 그에 따를 고통이 두려웠기에 미처 실행은 옮기지 않았던 사면초가 풍전등화 정대리... 수시로 자신을 원하는 두 여자의 전화가 울려댔다. 결국 정대리는 패닉상태에서 회사에 사표 던지고 전화도 해지하며 잠수를 타고 이에 격분한 사모님은 경찰에 그를 고소, 여동창도 혼인빙자로 그를 고소... 겹고소를 당하는 경사를 맞고.. 사모님의 노비문서는 적법한 내용이 아니기에 무효지만 채무에 대한 변제의무는 존재한다며 사기죄가 적용될 뻔 하였으나 못난 자식 둔게 죄인 정대리의 부모님께서 변제.. 여동창의 경우 알고보니 이미 사이가 나쁘던 남편과의 이혼을 위해 정대리를 탈출구로 삼으려 했던 것이며 알고보니 임신한 아이의 아빠는 남편도 정대리도 아닌 제 3의 인물인데 여동창 본인도 정확히 이게 뉘집새끼인지는 아리까리한 상태였던 것이 밝혀졌다.. 어찌저찌 결국 법적처벌은 피한 정대리는 천신만고 끝에 재취업에 간신히 성공하고 다시 인생을 시작해 보려 하였으나 부서장에게 업무관련 기안서류와 보고서를 첨부한 이메일을 발송한다는게..... 위 사실들이 적나라하게 담긴, 사건 발생 당시 경찰측에 진술서를 작성할 때 쓸 목적으로 써놓은 파일을 오발송하게 되며 수신인인 부서장은 물론.. 참조되어 있던 나를 비롯 우리 부서의 여러 직원들이 TV에서나 볼 법한 저 사건의 시놉시스를 읽게 된다. 부서장은 첨부자료를 읽다가 마시던 커피잔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발에 경미한 화상을 입었으며, 참조된 박과장은 내용을 읽다 처갓집에 가는 것을 잊고 아내와 부부싸움을 했고... 역시 참조된 백사원은 한참 다이어트 중임에도 중단하고 초반부를 읽다 편의점으로 달려가 콜라와 팝콘을 사와 먹는 바람에 다이어트에 실패 하는 등.. 여파는 굉장했다. 전말을 알게 된 정대리는 우리를 모아놓은 후, 우리들 앞에서 목을 메달아 죽어 수치를 면하겠다 했고 우리들은 다수결에 의해 지난 과거니 새회사에서 새시작하는 정대리의 재활을 돕기로 결정했다. . . . 하지만... 12월 경.. 가정도 있고 큰애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윤과장과 송파구청 건너 모텔촌의 한 모텔에 같이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목격담이 암암리에 떠돌며 다시 전운이 맴돌고 있다.... 이번 편은 다시 말하지만 클립 하지들 마시고 여기서만 읽고 짬시키십시다들...
서황 공명 (徐晃 公明) A.D? ~ 227
직전 칼럼에서 촉한의 " 오호대장군 " 을 다뤘는데, 위에도 이런 비슷한 개념의 위나라판 어벤져스로서 " 오자양장(五子良將) " 이라는 그룹이 존재했고, 이들의 멤버구성은 " 장합 ", " 우금 ", " 장료 ", " 악진 "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이 오늘의 주인공 " 서황 " 이며, 이들 다섯 중 가장 뛰어남을 다투는 장수는 다름 아닌 장합과 서황이였다. 주로 게임 등으로 저 다섯을 접한 분들에게 효용성의 순위를 매겨 보라면 1. 장료, 2. 장합, 3. 서황, 4. 우금, 5. 악진... 순이고 이들의 면면은 오호대장군에 비해 그 중량감이 떨어진다 느끼실 듯. 각 개인의 무예와 용맹이 돋보인 오호대장군에 비해, 오자양장은 개인의 무용도 상당하지만 그보다 특히 병력을 운용하는 통솔력들이 돋보이는 " 지휘관 "으로서의 재량이 뛰어난 장수들이였음이 그 차이다. 물론 역시 또 게이머들 입장에서는 단순히 수치상으로 게임회사가 매겨놓은 능력치만으로 통솔력조차도 오호대장군이 오자양장을 앞선다 하시겠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거의 시중에 나도는 삼국지 모티브 게임 데이터의 99.89763321% 가 나관중의 " 소설 " 인 " 삼국지연의 " 를 베이스로 했기 때문인 것이다. 혹자는 그럼에도 '오호대장이랑 오자양장이 현피 뜨면 오호대장이 다 조진다' 라고 하실게다. 물론, 연의가 아닌 정사의 역사기록을 보더라도 오호대장군과 오자양장이 5 VS 5 패싸움이나 태그매치를 벌이면 오호대장이 승리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저들은 어디까지나 직접 몸빵 뛰는 워리어들이 아닌 적던 많던 병력을 이끌고 인솔하여 전투에 임하는 '장수' 들임을 감안해야 한다. 쉽게 말해서, 오호대장군과 오자양장이 진짜 대전격투게임처럼 개개인간 붙으면 오호대장군이 승리하겠지만 각기 병력들을 이끌고 맞붙는다면 오자양장측의 승리확률이 비약적으로 높다는 말! 이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부분은... 촉의 BEST 5는 개인 일신의 무용이 강한 이들인 반면, 위의 BEST 5는 병력운용이 뛰어난 자들이고 이 말은 촉과 위의 전투 스타일을 가늠케 해준다. 연의는 제끼고 실사기록만 볼 때, 촉은 어지간한 큰 전투는 오너인 유비가 직접 통솔하고 제갈량은 작전입안 및 후방지원이 주역할에, 이런 유비 & 제갈량의 지휘에 나머지들은 주로 장기말처럼 움직이는 방식이 주요였다. 일단 유비측은 입촉하여 안정화 이전까지 대체로 세력이 작은터라 별도의 독자군단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고 그러다보니 저런 형태로 움직였던 것. 저런 환경인 관계상... 본인이 직접 판단하여 병력을 운용할 기회도 많지 않아 감을 키우기가 여의치 않다. 반면 꽤 일찌감치 세를 키우고 원소를 제외하면 항상 다수의 우위를 점하던 위는 큰 전쟁은 오너인 조조가 역시 직접 나섰으나, 기타 국지전은 해당 지역의 통수권을 맡은 장수가 독자적인 판단으로 병력을 운용하는 별도군단시스템이였다. 물론, 진짜 도통 노답이거나 아리까리애매모호한 상황일 때는 파발을 보내 조조의 어드바이스를 구했으나 당시의 교통, 통신 인프라와 그에 반해 예나 지금이나 드넓은 중국면적 탓에 긴박한 전투상황 속에서 왕복만 벌써 수 일 ~ 한 달 가까이 걸리는 조조찬스는 택하기 쉽잖은 초이스였고 지역 군단장이 모가 되건 빽도가 되건 일단 직접 판단 하는 게 우선이였다. 바로 이런 점들이 오호대장군과 오자양장의 성향차이를 가져왔고... 책 읽을 때의 재미나 게임 때의 플레이야 당근 오호대장군이 간지겠지만, 인생실전인만큼 실제로는 오자양장들이 더 유용한, 그리고 더 유능하다고까지 감히 할 수 있지 싶다. 여튼 서론이 너무나도 길어지긴 했는데 오늘의 주인공은 그런 지휘통솔에 있어 유능함으로 뭉쳐진 오자양장들 중, 가장 뛰어나기를 장합과 다툰 " 서황 " 이다. 일단 역사기록 모르시는 분들에게 서황은 분명 쓸만은 하지만 위의 핵심멤버라고 하기는 애매한 감이 있으실 건데, 실제로는 정말 뛰어난 위의 보배같은 장수로서 연의에서의 서황이 피케라면 실제의 서황은 수아레즈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고향이 당시 하동군 양현, 오늘 중국의 산시 성 린펀 시 홍둥 현이며 기록상의 첫 등장은 후한 말 거기장군이던 " 양봉 " 휘하에서 하급 장교로 외곽의 오랑캐들과 도적 떼들 토벌 위주의 군공 콜렉터였다. 동탁이 여포에게 팀킬된 후, 이각과 곽사가 천자쟁탈전 벌일 당시 도망치던 천자를 양봉으로 하여금 호위하게끔 설득하여 당시 어가호위의 공으로 " 도정후 " 라는 제법 높은 직위를 하사받는데 위의 구성원들 중 이처럼 천자에게 직접 벼슬을 받은 이는 조조를 포함해도 열 손에 꼽힌다ㅎㅎ 물론, 이 당시 천자의 위세는 우리 회사에서 시말서 두 번 써서 동기들 다 과장 다는 동안 아직도... 그리고 이변 없다면 앞으로도 대리에 머물, 지난번 칼럼에서 간통죄 폐지 최대 수혜자인 정대리보다도 낮던 실정이라, 저 당시 천자가 하사한 벼슬은 그닥 영향력이 없었다. 그냥 절체절명이던 천자가 어가호위에 대한 감사표시로 막 뿌린 벼슬이다. 그러나 운전면허 쉬울 때 거저 땄다고 인정 안되는거 아니듯, 어쨌건 천자가 직접 하사했기에 분명 정통성은 있었다는! 아무튼 그러던 어느 날, 양봉이 조조에게 털리며 사실상 양봉의 비젼이 끝장나자 조조에게 투항 하는데, 연의 내에서 친구인 만총의 설득에 투항한 것은 뭔가 서황에게 버프를 걸어주고자 창작된 것. 당시의 서황과 만총은 서로 모르던 사이였다. 이렇게 양봉에서 조조로 이직한 서황! 이제 이때부터 서황은 명장포텐발동이 서서히 시동을 건다. 서주에서 유비를 뒷치기해 자리 잡은 여포정벌, 조조가 인생 다 걸고 당시 강적 원소와 맞붙은 관도대전 모두 서황은 핵심장수로 투입되어 승리를 이끌었고 특히나 연의를 보면 원소의 트원타워인 안량과 문추에게 쪽도 못 추게 나온 것과 달리 안량의 군대와 문추의 군대 모두 격파했던 전력이 있다. 이는 나관중이 관우를 띄워주려니까 관우에게 킬 당하는 안량과 문추도 띄워줘야 되고 그러다보니 그 관우버프의 나비효과에 서황이 희생된 것.... 그 외에도 조조가 하북을 재패하는 과정에 도적과 소수민족, 잔여 하북세력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서황은 조조에게 굴려지며 숱한 공을 세웠고 휴식없이 바로 형주남정에도 투입되어 또 공을 세웠으며 다시 또 서쪽에서 마초 & 한수가 까불자 거기도 가서 앞장 서 승리의 마스터키 역할을 했다. 특히 이 마초를 필두로 한 서량세력과의 전쟁은 상당히 중요했는데, 병력의 과반수 이상이 소수민족인 강족과 저족 구성에 지휘부는 한족이며 그 선봉은 여포 버금간다던 인간흉기 마초였기에 이 전쟁에서 패할 시, 안그래도 위의 지지기반이 약하던 낙양 서쪽 지역의 지배권을 상실하게 되며 그리되면 한중을 비롯, 익주지역으로 진입하는 통로까지 잃게 되기 때문... 하지만 이 주요전쟁의 승리도 하후연과 더불어 특히 큰 공을 세운 서황의 덕이 매우 절대적이였다. 이뿐 아니라, 이후에 연속된 장로가 진을 친 한중정벌에도 나섰고 연이어 유비 세력과도 다시 한중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는데도 참전했다. 당시 한중은 전 중국대륙 통틀어 굉장히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고 이 점 때문에 당시만 해도 꽤나 세력이 커서 전면전에나 나서는 조조가 직접 병력을 이끌고 원정을 왔고, 유비측 역시 늘 그랬듯 본인이 몸소 진두지휘하여 격전이 벌어졌으나 내내 승승장구하던 서황도 이때만큼은 털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다만, 이는 전쟁에서는 비록 졌으나 서황이 참여한 전투들에서 서황이 패한 것은 아니였다. 조조의 전투노예 서황의 굴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후에 유비의 입촉 후, 형주방면 총사령관인 관우의 무시무시한 침공으로부터 조조측이 당시 지배 중이던 형주 북부를 지켜냈다. 조조가 죽으면 좀 설렁설렁 해질 줄 알았겠지만 조조가 죽자 조비에게 굴려졌고, 그럼 또 조비가 죽으면 설렁설렁 해지려나 싶지만, 조비가 죽자 조예에게도 굴려지며 서황은 황희 정승께서 세종대왕님께 수 차례나 퇴직 상소가 반려 당하며 굴려지던 것만큼이나 3대에 걸친 조가의 전투노예로 살다 결국은 몸이 곯아 노환으로 심지어 치매까지 앓다가 죽었는데 장수는 전사가 간지라 여긴 나관중은 전사했다고 연의에다 뻥쳐놨지... 진짜 화수분같이 끝없는 전투 속에서 갑옷을 벗을 틈없이, 말에서 내려올 틈없이 살다 간... 특히 조씨.. 그중에도 조조에게 쉼 없이 전장에 갈아넣어진 전돌이였던 서황이였다... T-T 하도 전장에서만 뒹굴어 그런지 말수가 워낙에 없는 양반에 외곬수에다 물욕도 없이 검소했다. 하긴 저런 스켸쥴이면 사치하고 싶어도 그럴 틈도 없긴 했겠다. 정치적 휘말림을 매우 경계하여 조조를 제외한 문무의 그 어느 누구와도 업무적 짧은 대화를 제외한 그 어떤 사담도 나누지 않았던 그였다. 이러한 묵비권쟁이 서황이 유일하게 사담도 나누며 이런저런 수다도 떨고 친하게 지낸 이가 하나 있는데, 놀랍게도 " 관우 " 였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관우는 조조에게 유비의 거취를 접하는대로 유비에게 돌아간다는 전제로 잠시 조조 휘하에서 객장... 요즘 표현 빌리자면 일종의 용병 역할을 했는데 그 당시의 관우와 서황은 상당히 친했다고 하며 심지어 먼저 다가가 말을 건 것도 서황이였는데 아니, 정치적 휘말림이 싫어 친구도 안 사귀고 말도 거의 않는다는 양반이, 적장출신 용병과는 말을 한다??? 바로 그게 이유다. 관우는 조조에게 충성을 서약하고 들어온 이가 아니였고 불투명한 확률이긴 해도 어쨌건 유비의 거취가 확인되면 언제건 떠날 사람에, 당연히 유비가 생존 했을거라 여기며 언제고 떠날 마음만 가득하던 관우와는 무슨 이야기를 한들, 정치적 휘말림으로부터 안전했다. 왜 우리도 가끔 살다보면 오히려 친하거나 가까운 사람에게는 못할 말을 모르는 이에게 하는건 쉬울 때 있는데 서황에게 관우가 딱 그런 대상이였던 것. 게다가 둘 다 그닥 말수들이 없다보니... 일단 서황은 정말 말수가 너무 없는 편이였고 관우도 누가 뭘 물어보면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만 먼저 막 말 걸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라 둘의 대화의 키는 서황이 쥐고 있었다. 서황이 혀가 좀 터지면 그날은 둘이 이야기가 좀 도는 날이지만 서황이 말 않는 날은 관우도 먼저 말 않으니 벙어리 대결이 되는 것..... 심지어 둘이 만나 한 식경(거의 두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차만 마시다 헤어진 적도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나관중이 서황의 손에 쥐어준 아이템은 바로 " 개산대부 " 라고 불려진 " 도끼 " 였는데, 관우의 청룡언월도나 장비의 장팔사모처럼 당시에는 있지도 않은 무기들을 썼다고 표현된 부분들이 넘치는 것과 달리 도끼는 기원전부터 중국에서 쓰인 도구이니 당연히 서황이 굴려지던 후한 말 ~ 삼국시대에도 존재했던 무기는 맞다. 다만.... 예젼에 삼.이.높.2에서 다뤘던 것을 기억들 하실지는 모르겠으나 후한 말 ~ 삼국시대 당시 대부분의 장수들은 베는 용도의 무기인 도가 아닌, 찌르기용 창인 삭을 주로 사용했다. 왜 그런지는 이미 내용 꽤 길어져서 더 쓰기 빡세니 삼.이.높.2를 보시고 오시길 바라고 아무튼 도보다 주로 삭을 썼는데 도끼라는 무게의 살상원리는 도와 같다. 게다가 정사에 딱히 서황이 무슨 무기를 썼다고 나오질 않으니 도끼를 썼을 수도 있지만 사실 안썼을 확률이 더 높다고 보여진다. 혹시 이 글 읽으시는 분들 중... 캠핑이건, 군대에서건 그 밖에 기타 등등 도끼를 실제로 사용해 보신 분이 얼마나 계실지 모르겠지만 도끼라는 도구 자체가 자루 즉 손잡이 부분이 짧아야 제대로 힘도 실리고 정확도 높게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 아이템이다. 물론 서황이 황금도끼의 그 드워프처럼 독하게 연마해서 도끼질의 달인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럴 노력을 그냥 찌르는 창에다 쏟았으면 오호대장군도 넘어섰을 거다. 내 생각인데.... 나관중이 서황을 다루려는데 공적은 워낙 많은 주요장수임에도 각종 기록물들에 원체 말도 없지, 친구도 없으니 별 다른 캐릭터 드러나는 에피소드도 없지.. 검소한 성격 탓에 딱히 꾸미고 한 게 없고 그래서인지 외모묘사없지... 그러다보니 딱히 잡히는 기믹이 없어서 ' 도끼를 휘두르는 맹장 이미지 ' 를 부여한게 아닐까 싶다. 사망연대는 기록에 명시되어 있지만 생년은 기록이 없다. 즉, 서황의 사망당시 나이는 알 길이 없다. 헌데 관우가 서황을 부를 때 형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심지어 그냥 형도 아닌 " 대형(大兄) " 이다. 직역하면 ' 큰형 ' 이지만 단순 큰형이라기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 형님 ' 이다. 중국 무술영화에서 흔히 들어봤을 표현인 ' 따거 ' 가 바로 저 대형이다. 왜 우리도 연장자인데 나이차가 크지 않거나 친하면 ' 형 ', 나이차가 크거나 경공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분들께는 ' 형님 ' 이라 하듯, 관우가 서황을 부른 따거는 우리식의 형님... 그 말인즉슨 둘 다 태어난 시기를 모르다보니 정확히 몇 살 차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서황이 만난지, 친해진지도 얼마안된... 그리고 자존심도 개쎈 관우로부터 따거소리 듣는걸 보면 단순 친분깊음 떠나 나이차도 꽤 났던걸로 추측된다. 사망 전에 노환과 치매를 앓았다는 말이 있는걸보니 꽤나 나이 들어서까지 살았던 듯. 아들은 " 서개 " 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는데 다른 자식에 대한 기록이 안남았기에 저 개가 장남인지, 외동인지 알 수 없으나... 이름만 개는 아니였던 거 같다. 서황 사후 아들에게 작위와 재물이 그대로 세습되었는데 빚을 갚고 나니 남은게 없다는 기록이 있다. 조예 입장에서 할아버지 때부터 전장에서 구르며 개국에도 큰 공이 있는 명장이 죽었는데 그 아들에게 푼돈 줬을 리 없는데 그 돈을 빚갚는데 다 썼을 정도면 이름 그대로였던 듯. 위의 언급대로 개인의 물욕이 없던 이는 맞다. 그러나 " 공욕 "은 좀 있는 사람이였던거 같다. 앞서 말했듯, 서황은 말 그대로 굴려지다시피 참전이 잦았는데, 관도대전 승리 이후 세력이 적잖이 커진 조조는 효율적인 인원배치를 하여 그 방면의 " 전문가 " 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적벽대전 이후 합비공방 제외하면 딱히 북진이 없는 오를 상대로 대오전문 장료, 악진, 이전. 중앙의 형주에는 조인, 조조생전 가장 거슬렸던 대촉전문 하후연과 장합 등... 허나 서황만큼은 동서남북 상대와 장소의 가림이 없이 나돌았는데 이는 조조의 인사컨셉과 조금 괴리가 있고, 다른 장수에게는 이러한 성향이 보이지 않는데 그 이유는 바로 서황의 " 공욕 "... 공을 세우려는 욕심이 매우 컸던 서황은 뭔 전투만 벌어지면 일단 지원을 했다. 조조가 반려해도 그 말 없던 서황이 그 순간만은 조조를 강하게 설득했고, 조조입장에서도 실력과 실적이 우수한 명장의 자진참전을 마냥 거부할 이유도 명분도 없으니 대체로 허락 했다. 결국.... 그 혹독한 굴려짐은 다 자초했던 일이였던.. 휘하 병사들 입장에서의 서황은 완전 그닥이였다. 딱히 잘 챙기는 것도 없었고, 타 장수들에 비해 정찰 범위나 승전시 패잔병 추격 거리도 유독 길었으며 병사들의 휴식에 대해 관대하지 않았다. 서황은 그냥 워커홀릭이였던거다. 생각해보면 조금은 아쉬움이 든다. 그토록 욕심 부려가며 공을 세웠건만, 분명 이런저런 보상을 받았을텐데도 정작 또 물욕은 없고... 꽤 능력자임에도 현세에 와서 서황의 이미지는 그냥 도끼쓰는 나무꾼일뿐. 심지어 살아 생전에 도끼는 안썼을 확률이 있고.. 살아생전 지모와 대국안도 상당한 패전 모를 지용겸비의 명장이였음에도 나관중과 코에이의 콜라보 탓에 오늘날 삼국지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저 몸빵 버서커로만 인식된 현실. 결국 나관중은 서황에게서 실제를 뺏고 도끼를 쥐어준 셈이다. 꼭 현대의 숱한 우리네 직장인들 같다. 위에서 시키는대로 죽어라 열심히 애써 일하지만 정작 윗사람들은 잘 인정도 않고 인사고과 좋게 받으려, 승진 하려.. 이것저것 지원해서 더 일하고 야근에, 휴일근무도 자청했건만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떼놈이 먹고 T-T 2018년 개의 해! 개같이 일해왔고 개같이 일하고 있고 개같이 일해야 하는 우리 직장인 여러분 힘 내십시다! 다들 왕성한 성생활 하세요.
섹시한 여성의 함정.
섹시한 여성을 싫어하는 남자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된다. 간혹 자긴 싫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개인취향이야 다양하니 정말 아닐 수도 있지만 대체로는 섹시한 여성이 좋다고 하면 스스로가 속물처럼 보여지거나 혹은 스스로 그런 생각이 들기에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여성의 섹시함이란 꼭 몸매가 김혜수같고 또 그런 몸의 라인이 드러나는 핏의 옷 또는 살이 다 드러나는 옷을 입으며 메이컵을 CL같이 하는 것만이 아니다. 섹시함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누구는 머리가 긴 여자가 섹시해 보이고, 누구는 목이 가는 여자가 섹시해 보이고, 누구는 학구적인 여자가 섹시해 보이고, 이해는 안가나 누구는 뚱뚱해서 뱃살이 허벅지를 가린 여자가 섹시해 보인다거나... 누구는 피부색이 새하얀 여자가 섹시해 보이는 등,,.. 남성들은 제각각의 섹시함을 캐치하는 코드가 있는데 이걸 흔히 "페티쉬(Fetish)"라 한다. 저 용어의 주쓰임처가 좀 희한한 곳에서 주가 되다보니 뭔가 변태스러운 느낌이 물씬 나지만 저런 저마다의 섹시함을 느끼는 요소들이 결국은 다 페티쉬다. 나는 섹시한 여자보다 마음 착한 여자가 좋다능!!! 결국 저것도 하나의 고착된 이미지로서의 보편적인 섹시함이 싫을뿐, 마음이 착한 여자에게서 섹시함을 느끼는... 쉽게 말해 저 사람의 페티쉬는 "착함" 인 것이다. 남성이 여성에게 "이성으로서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 대체적으로 그 트리거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상대여성에게서 풍기는 섹시함, 다시 말해 "성적매력"인데... 반드시라고는 단언 못 하겠지만, 위에서 언급된 저런 개개인간의 페티쉬로 인해 본인만이 느끼는 성적매력의 포인트가 있을 때 남성은 상대여성에게 이성으로서의 사랑을 느낀다. . . . 여튼 말이 살짝 샛는데, 이하부터 "섹시한 여성"은 우리가 섹시한 여자!라고 할 때 바로 떠오르는 전형적 이미지의 섹시함을 가진 여성을 칭한다. 김치! 하면 김치도 깍두기, 동치미, 파김치, 갓김치, 총각김치, 양파나 양배추로 담근 김치, 백김치 등등 다양하지만 대체로 김치의 이미지는 배추로 담근 중간 정도 익힌 빨간 김치를 떠올리 듯. . . . 이 글의 제목은 섹시한 여성의 함정 이 말 뜻은 섹시한 여성이 뭔가를 낚으려고 설치한 트랩을 말하는게 아니라, 반대로 섹시한 여성이 빠지기 쉬운 트랩을 일컬으며 그냥 내가 생각나는대로 지어낸 말이다. 1. 섹시한 여성이 어떤 함정에 빠지나? 함정에 빠진다는 것은 위험에 처함, 손실을 입음, 내/외적으로 상처를 입음, 상대에게 속아넘어감 등을 상징한다. 섹시한 여성뿐 아니라 여성들이 저런 경우에 처하게 되는 경우, 다양한 요인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우선적으로 가장 많고 큰 이유는 역시 그럼 그렇지, 바로 "남자". 여성들이 함정에 빠지는 큰 원인 중 하나는 남자를 잘못 만나서다. 그리고 특히 섹시한 여성은 더욱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남자를 잘못 만날 확률이 높으며, 괜찮은 남자를 만나는데 있어 여성이 갖출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인 섹시함을 보유했음에도 남자를 잘못 만날 확률이 오히려 높다는 아이러니... 2. 섹시한 여성은 왜 함정에 빠지나? 섹시한 여성은 그 매력을 십분 활용, 그렇지 않은 여자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더 많은 남성을 만날 기회창출이 가능하고 당연히 그에 못지 않게 멋지고 훌륭한 남성을 만날 기회도 많다. 반면, 이 섹시함이라는 매력은 양날의 검이 되어 도리어 섹시한 여성을 함정에 빠뜨리기도 하는데, 남성은 여성과는 메카니즘 자체가 다르기에 무의식 중에 자신의 DNA에 각인된대로 최대한 번식을 더 많이 자주 하고자 애쓴다. 사랑의 유무관계없이 어떻게던 여자와 섹스를 한 번이라도 더 많이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러다보니 섹시한 여성을 보면, 그녀의 환심을 사고 마음을 얻어 어떻게던 그녀와 성관계를 갖기 위해 물심양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런 노력들이 빛을 발해 상대여성과 잠자리를 갖음으로서 Mission Success ! 물론 그런 노력들이 진심에서 우러나 상대를 아끼고 사랑해서이며 잠자리를 가졌어도 그 마음이 변치 않고 유지되는 경우도 많다. 허나 간간히 그저 단지 섹시한 여성의 몸만을 탐하는 남성들도 적잖은데,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섹시한 여성들에게는 유독 이런 남성들이 자석에 철가루가 붙듯 많다. 헌데 저런 남자들은 당연히 그 속내를 밝히지 않음으로서 섹시한 여성들 입장에서는 지금 내게 호의 베푸는 이 남성이 진심으로 나 자신을 좋아해서인지, 아니면 Only 나와의 섹스만을 노리고 덤비는 것인지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후자의 남자를 택할 경우..... 대부분은 여자에게 크고 작은 상처만이 남게 되고 저런 경우가 거듭되다보면 섹시한 여성은 아예 남자라는 존재들 모두에게 트라우마와 불신이 생긴다. 3. Poor Sexy Beauty. 위의 2번과 같은 이유로 은근 적잖은 섹시한 여성들은 왠지 남자, 그리고 남자와의 관계 등을 즐길 듯한 이미지와 정반대로 오히려 남자를 피하거나 겁내고 불신한다. 그러다보니 나름의 복수심에 다른 남자들에게 심하게 구는 경우들도 생긴다. 갖고 논다던가, 무례하게 한다거나 등등...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속의 상처와 고독감에 더욱 사랑을 갈망한다. 섹시한 여성들의 대다수는 남들에게 인정받고픈 욕구가 더욱 강하고 그것은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 진실한 사랑을 받고픈 욕구 역시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작 자기자신 있는 그대로를 진실되게 사랑해 줄 사람과 자신의 몸만을 탐할 사람의 식별이 불가하니 차라리 사랑받는 것을 포기하는 것... 물론, 그렇다하여 사랑받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님에도.. . . . 그러다보니 섹시한 여성들이 스스로 판단하에 "이 남자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있다" 라고 생각하면 그때부터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며, 남자에게 경찰모 쓰고 채찍질할 듯한 이미지와 달리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걸 바쳐 남성을 위한다. 자신의 몸을 노리는 남자들이 도처에 널렸음에도 그 와중에 어렵고 귀하게 얻은 자신자체를 사랑해주는 고귀한 남성이니까. 그리고 여담으로 섹시한 여성들은 자기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고 용쓰는 남자보다 오히려 적당히 자신에게 거리를 두며 스킨쉽에 특히 주의하고 또 자신을 떠받들기보다 일반 여타 여성들과 별 차이없이 대하는 남성을 더욱 신뢰하고 호감 갖는다. 자신을 그저 성욕의 해갈처가 아닌 하나의 인격으로 여기고 존중해준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 그리고 원래 사람은 자신이 가진 매력 외의 매력을 가진 이에게 매력을 느끼는 경우도 상당히 많아서 섹시한 여성들은 역시 똑같이 섹시한 느낌의 남성보다는 오히려 조금은 순박해 보일지라도 지적인 느낌이 강하거나 스마트한 남성에게 더 호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Ex. 이독실) 섹시한 여성을 만나고 싶다면.. 우선 그녀들의 섹시함보다 그녀들의 또 다른 매력과 개성을 찾아봐 주고 알아주고 그녀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해주며 예의를 다하자. 그녀들의 환심을, 그리고 몸을 얻고자 최선 다하기보다 그녀들이 싫어하는 것을 안하는걸 우선하고 그녀들에게 인정받고자 스스로의 격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