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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견 문대 (孫堅 文臺) A.D.155? ~ 191?

중국의 삼국시대를 구성하는 위, 촉, 오 중의 하나요..
위, 촉, 오 중 가장 마지막에 망한 오나라의 황실이던
손가의 시작에는 이 남자가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손가의 제네시스라 할 수 있는 "손견"이다.

여기저기에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중국 춘추시대의 위대한
병략가인 '손무(孫武)'의 후예'라는 소문과 추측까지 났지만
일절 그 실제는 확인된 바가 없는 그저 루머에 불과하다.
물론, 절대 아니란 증거도 없지만 유비가 한황실의 종친이라는
사실처럼 족보를 뒤져 팩트를 입증한 것이 아닌 본인의
자칭이며 또 이를 갖고 삼국지정사의 저자인 진수 또한
정황상의 추측을 한 것에 불과하다.

양주 오군 부춘현이 고향이며 오늘날 중국의 최대도시인
'상하이(上海)' 인근쯤이다.
물론, 저 당시의 오군은 이미 전한시대를 넘어 진나라 때부터
살기 괜찮은 지역이였고, "항우"도 거점 삼았던 인구도
적잖던 곳이긴 하지만 당연하게도 지금의 상하이와는
넘사벽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유의해두자.


전반적인 사료들 및 역사서와 그 주석본들, 열전까지
죄다 뒤적여 추론해 볼 때...
양주지역의 제법 좀 사는 "호족집안 아들"이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고 또 대대손손 유구한 금수저까진
아닌거 같고, 후한 말에 이르러 떠오른..
러시아의 올리가르히같은 그런 신흥세력의 자제였다.
어릴 때부터 이미 살던 동네와 고향 일대에서 먹어주는
깡다구와 대담함을 지닌 싹수 다른 소년이였으며,
만 17세에, 모여있는 수적떼들에게 홀로 덤벼 그들을 쫓아내
와해시킨 일화가 있고, 이걸 계기로 벼슬길에 나가 무관이 되어
같은 해 회계군의 허창 & 허소의 난을 제압한다.

이때부터 손견은 고속승진을 시작했다.
참고로 손견이 잘 나가는 호족집안임을 입증해 주는
한 예가 바로 위의 저 허씨들의 난을 제압코자 모병하는
과정이였는데, 관군만으로는 전력이 부족하다 판단..
사재를 털어 1천 여명의 병력을 추가로 모병하여
임무를 완수했다는 점이다.

당장 천 여명을 모병하고.. 그렇게 모집된 인원들을
무장 및 최소한의 복색을 통일시켜 먹이고 재우고 훈련하는데
투자되는 비용이 벌써 보통이 아니다.


아무튼 놀라운건 손견이 저런 히어로급 활약을 올렸던
연령이 고작 겨우 열 일곱 가량(추정) 나이였다는 것인데,
아무리 저 시절이 평균수명, 사망연령이 낮디 낮아 일찍일찍
결혼하고 얼른얼른 성인대우를 받았던 시절임을 감안해도
참 대단함이... 당장 나도 그렇고, 여러분들이 열 일곱살 때
어땠는지 떠올려보면 바로 답 나온다.

담임선생님의 빠따 한 번에도 고통에 몸을 뒤틀고
쉬는 시간 벨이 울림과 동시에 매점으로 달려나가
빵 사먹으려고 버둥이던 우리의 그 나이에 손견은
홀로 수적떼를 목 베고, 벼슬도 오르고 군사를 모아
전투도 나갔던 것.. T-T
다만.. 어려서부터 아예 학문은 내려 놓았었던 듯.
책을 읽었다는 기록도 없고 심지어 문맹이였다는 설도 있다.
물론, 저 당시에 문맹률은 엄청나긴 했다지만,
그래도 나름 사는집 잘 나가던 자제로서 문맹설은
본인이 얼마나 학업을 멀리 했는지를 보여준다.
저 당시는 오로지 무예만 출중한 이들은 무시를 받았고
높은 직위에 오르는 데도 한계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클래스가 되는 무장들은 깊은 학식까진 아니여도
최소한 여러 권의 병략서, 병법서들을 읽는 수준은 되야했던
시절이였기에 문맹설이 돌 정도로 학문을 등한시한 점은
자랑할건 못 됨이 맞다.

허나 그런 무식함에도 불구하고 군사관련 행정처리에는
꽤나 빠삭하게 처리를 했었고 그런 일처리와 용맹 그리고
궂은일은 미루거나 피하지 않고 나서서 쓱싹 처리하는
빠릿함덕에 평판은 좋았던 편으로 성격은 좀 불같을 지언정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시원시원하면서도 화끈한 성격
덕분에 따르는 이들은 적잖았던 모양이다.

군율준수에 매우 엄하면서도 풀어줄 때는 풀어줬고,
병사들을 고압적인 자세 일변도가 아닌 "전우애"로서
대함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식사도 병사들과 함께
동일메뉴로 먹었다고 하니 당근 병사들의 충정도 높았다.
이래저래 빠른 출세가도 달리며 승승장구 했던
손견이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땅 넓고 사람 많은 중국의
어느 지역, 어느 군벌에나 두엇쯤은 있는 준재였던 그가
전국구로 발돋움하는 계기는 다 필요없고 바로바로
원소의 격문에 의해 집결한 18로 제후들의 유니온인
"반동탁연합군 VS 동탁군"과의 대립이였다.


참고로, 삼국지연의 속에는 마치 손견이 원소, 원술, 조조 등
당시 각자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참전한 여러 제후들과
역시 동등한 제후들 중 하나로 그려지는데 이는 왜곡이다.

그때까지도 손견은 독자적인 자신만의 세력을 이끌던
군벌이 아니였다.
이미 그전, '황건적의 난' 당시에는 엄연히 조정의 벼슬에
임관된 상태로 '주준'의 부장으로 참전,
그 후, 서량에서 184년에 변장 & 한수의 난 당시에는
십상시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은 것으로 밉보여
지휘관직을 박탈당한 '황보숭'의 후임으로 정벌군 사령관을
맡았던 '장온'의 부장으로 참전 하는 등...
주로 황실직속의 고위장군들의 부장으로 참전한 경우가
많았던 만년부장이였다

덧붙이자면...
변장 & 한수의 난 당시에는 서량에서 그 위명 높던
동탁도 장온의 천거로 참전한 상태였는데,
손견과는 여러 모로 행실과 견해의 차이로 몹시 사이가
안좋았던 터였고
손견과 달리, 상관인 장온에게도 불손하며 제멋대로에
안하무인으로 굴던 동탁이였기에 둘은 상극..
게다가 서량에서는 먹어주던 동탁이 상당한 군공을
쌓았음에도 손견은 몇 차례 패전하는 등 재미를 못 봤다.



반동탁연합군에 합류했을 무렵도 당시의 위세가
천하에서도 세 손에 꼽히던 "원술"의 사실상 부장에 가까운
자리로 원술의 지시와 서포트를 받으며 참전했었다.
아무튼 하여간 그렇게 반동탁연합군 소속으로 참전한
손견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적인 대활약을 벌이며
동탁군을 양민학살하여 후한의 슈퍼스타로 발돋움 하는데...

일단 첫 타석에서는 접고 들어갔다.
동탁의 부장이던 '서영'과의 전투에서 박살이 나서
간신히 최측근의 호위병력 몇 십여 기만 이끌고
살아나왔고 그마져도 위급상황까지 몰려....
자신의 한 팔과 다름없던 "조무"가 손견의 붉은 두건을
대신 쓰고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벌어준 덕에 겨우 살았다.

참고로, 삼국지연의에서 조무는 저렇게 손견을 살리고
간지 뿜으며 장렬히 전사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저 때 손견의 두건을 걸어놓고 적병들이
돌아갈 때까지 짱 박혀 있다가 살아남았다.
다만.... 그 이후로 정사에 더 기록이 없어서 어찌 되었는지는
알 길은 없다.


저 패배를 보약 삼아 그 다음부터 나선 손견은 다른 사람이
되어 동탁군을 거침없이 관광 태우기 시작한다.
동탁의 부장 '호진'의 군대를 엘리시키고,
무력의 화신이던 그 "여포"의 부대조차 지워버렸으며,
심지어 이 와중에 연의에서는 관우가 "데운 술이 식기 전에"
목을 베었다는 "화웅"도 참수한다.

솔직히 화웅이 연의에서 관우버프용 적장으로 나와서
동탁군의 에이스던 여포와 함께 원투펀치를 이루는
맹장으로 그려지지만 솔직히 정사나 그밖의 기록들에서는
별 다른 언급이 없어서 그 정도의 장수인지는 알 길이 없다.
허나 당시 화웅이 맡았던 임무나 직위등을 볼 때,
그렇다고 또 듣보잡은 결코 아니였음을 예상할 뿐!


결국 이런 손견의 크레이지 모드 탓에 동탁은
당시의 후한 수도이던 낙양을 죄다 초토화 시킨 후,
장안으로 천도를 하게 되며...
이 와중에 한 번 여포부대를 박살냈던 손견은 다시 한 번
낙양에서 여포부대를 짓이겼다.

이렇게 수복된 낙양성에 진입하며 손견이 옥새
득템하게 되었고 그 옥새는 당시 손견의 주군이던
원술이 반협박을 하여 삥뜯기고 만다.

삼국지연의처럼 옥새를 꿍쳤다가 손책에게 물려주고
손책이 그 옥새를 담보삼아, 원술에게 병력을 인수받아
독립했다는 것도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라이프를 보다
드라마틱하게 만들고자 각색된 것이였다는...ㅎ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손견은 명백한 "원술의 부하"였다.
삼국지연의만 보셨거나 게임 등으로만 접하신 분들은 절대
몰랐을 사실이다.

허나 원술이 그럼 그렇지, 명군이 아니다보니
그 아래에서 손견이 이래저래 속앓이를 하긴 했다.
일단 저 동탁과의 전투에서도 파죽지세였지만...
손견이 너무 잘 나가, 그 위세나 명성이 높아지면
그를 컨트롤하기 벅찰 것을 염려하고 시기했던
원술이 겐세이를 놓고자 군량보급을 끊었던 탓에
손견은 그 드높던 기세가 주춤해질 수 밖에 없었고
위의 언급대로 옥새마져 협박으로 빼앗기며 심지어
그 아들 손책마져도 원술로 인한 스트레스가 여간
아니였다고 한다.


그 후..
그 원술의 명으로 유표를 공격하던 중,
당시 손견에 맞선 유표측 장수인 "황조"의 부대와 전투 중,
원정군 총지휘관답지 않게 퇴각하는 황조를 직접
앞장서 추격하는 무리수를 두다 가뜩이나 눈에 잘 띄는
붉은 두건을 두른 탓에 빗발치는 화살과 돌에 맞아
젊은 나이에 허망히 생을 마감한다.
직접적인 사인은 날아온 돌에 머리를 직격으로 맞고
두개골의 골절에 의한 즉사. ...
손견 본인의 전투 스타일 자체가 겁대가리 상실하여
앞뒤 재고보고 할 거 없이 자신이 앞장서는 스타일.
심지어 공성전에서조차 자신이 앞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고 위에서 언급된, 손견을 전국구스타로 만들어준
동탁과의 전투에서도 그 잘났다는 18로 제후들 중
거의 유일하게 손견 혼자 동탁군 전군을 발랐을 당시 역시
가장 선두에서 미친 듯 싸웠던 손견이였다.

일기토기록이나 무예솜씨에 대한 언급은 따로 남아있는
자료가 없으나, 저렇게 밑도 끝도 없이 앞장 서서 날뛴걸
보면 결코 힘과 무예가 뒤쳐진 사람은 아닐 거라는 것은
기정사실.

저런 스타일은 뭔가 간지넘치고 상남자스러워 보이긴 해도
정말 크나큰 리스크를 안고 있는 '하이 리턴 & 하이 리스크'
타입이라 할 수 있다.

총지휘관이 후방에서 지령만 내리는 부대와
직접 장병들을 독려하며 자신이 선두에서 달려 나가는
부대의 사기 차이는 극명하다.

저 당시의 병사들은 딱히 긴 시간 제대로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드물었고, 대개 필요시에 허겁지겁 긁어모은
농부들 출신이 대부분에 장비나 무기도 별 볼일 없었다.
우리가 삼국지관련 각종 미디어에서 보듯,
무슨 요새군대처럼 통일된 군복을 입은 것도 아니였다.
쉽게 말해 거의 오합지졸이였는데...
그런 병구성일수록 몹시 중요한 요소는 딱 두 가지!
"병력의 수""병력의 사기"이다.

헌데, 그 둘 중에도 더욱 중요한 것은 "사기"였다.
기세가 드높은 소수가 그렇지 못한 다수를 일방적으로
도륙하는 경우도 저 당시는 부지기수였고.
서양의 역사를 봐도 숫자가 많다고 볼 수 없던 로마군이
다수의 게르만족, 북아프리카에서 승리를 거둔 큰 이유는
잘 훈련되고 통제된 정예병들의 자신감에서 오는
결국은 "앞선 기세" 탓에, 상대들이 더 많은 수나
지리적 이점을 가졌음에도 오히려 기가 꺾인 탓이였다.

심지어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는 그 무섭다는
'코끼리부대'를 앞세우고도 보병중심의 로마군에게 패했다.
이유는 카르타고는 코끼리를 앞세우고 나머지는 뒤로 배치,
코끼리가 짓밟고 휘저으면 나서서 시마이하는 전법인데,
로마군의 화살과 투창에 결국...
살로 이루어진 코끼리가 쓰러지면 그 후로는 대책이 없던
카르타고군은 기세가 꺾였기 때문.

아무튼 그렇다보니 저런 용감한 지휘관이 선두한 부대에,
겁을 먹는 장수나 병사가 있을리 만무하여
손견의 부대는 어지간한 적세력은 별 다른 전략없이도
죄다 씹어버렸던 것이다.


허나...
저 방식이 반대로 정말 극히 위험한 게..
앞장 선 지휘관은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 적병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고,
제아무리 무예가 뛰어난들...
절대 다수의 병력이 다구리를 놓으면 장사가 없고,
활같은 원거리무기에 대해서도 취약하며
또 언급했듯, 만에 하나 지휘관이 전사하면
그 중요한 기세가 꺾이기에..
다수여도, 승세를 타고 있었어도,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어 패할 위험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저 방식의 장점덕에 열 번, 백 번 이긴들...
저 방식의 단점탓에 한 번 패하면..
그 당장의 전투는 물론, 그 세력 자체의 존망이 걸리게 된다.

그렇기에 이미 진즉부터 손견의 측근들은 그의 무모한
선두돌격을 자중시켰으나 그때껏 멀쩡한 손견은 당연히
씹고 지고집대로 했고, 그러다 결국은 누가 어디서 던졌는지도
모를 돌팔매에 맞고 허망히 사망한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이러한 성향은 장남에게도 고스란히
유전된다는...



성격은 시원시원했던 모양이다.
처벌도, 용서도 화끈했고 철저한 행동파였다.
대개의 맹장들이 그렇듯, 성격이 불같고 급했으며
전략전술 등은 비겁한 꼼수로 생각하여 비중을 크게
두지 않았다고 한다.
물욕은 없으나 고집이 센 편이였고
대단히 헌신적(?)인 아버지로서 어느 정도 나이가 된
아들들은 전장에 늘 데리고 다니며 각종 군사전투관련
경험과 지식들을 쌓게끔 지도했고 무예도 직접 가르쳤다.
아내(오국태 부인)를 몹시 사랑했던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는데, 낙양에서 얻은 옥새를
원술에게 바치게 된 이유가 바로 원술이 손견의 아내를
인질 삼았기 때문이였다.

물론, 현대의 기준으로 아내가 인질인데 그깟 도장은
당연히 포기하는게 맞는거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의 여성인권은 지금과 비교불가인 거의
남성의 부록으로 여겨지던 때고 다른 인물들은
자신의 야망이나 위급시에 아내의 안위는 내팽개 친
경우가 부지기수에 심지어 아내가 여럿인 경우도 많았고

"옥새"는 그냥 열쇠도 같이 하는 도장집 가서
인감으로 쓸 거니까 소뿔로 파달라며 3만원 주고 잠깐
기다리면 도장아저씨가 돋보기끼고 레이져로 파주는
그런 물건이 아닌!
상당한 야망가였던 손견같은 이에게는 대단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당시로는 황실의 권위와 정통을 의미하는
물건이였다.

괜히 삼국지게임에서 옥새를 얻으면 여포도 매력이 100이
되는게 아니고, 원술이 아무리 또라이인들
이 옥새 얻고부터 황제의 꿈을 현실화시킨게 아니다.
게다가 당시 옥새를 분실한 후한 황실도 분실한 옥새를
새로 제작하지 못 하고 전전긍긍하던 것도
옥새는 어디 뒀는지 기억 안나면 다 서랍 뒤지고
엄마한테 어디 있냐 소리질러 찾다 끝내 기억 안나면
새로 마련하는 그런 물건이 아니였기 때문이였다.



옥새 이야기가 길어졌다만,
결론은.. 그런 어마무시대단굉장한 슈퍼레어템을
겨우(?) 아내 때문에 포기한 손견의 가족애가 깊었다는 것.
게다가 그런 가족애는 당시의 영웅이라 일컬어지는
인물들에게는 결여된 가치관이였다는 점이다.

당장 조조만 해도 자기 죽게 생겼으니 장남 조앙을
내버렸고(당시의 장남의 가치와 위치는 상당했음!)
인의의 아이콘 유비도 자기가 위급하니 부인들과 형제들
내팽개치고 지살자고 혼자 내뺐으며, 기타 숱한 인물들이
아내나 기타 가족들에 대한 안위는 뒷전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여러분들도 만약 강남 테헤란로 한복판의
15층 짜리 빌딩 하나를 얻었거나 국회의원 공천권을
받았는데 누군가가 여러분의 아내나 여친을 인질삼아
내놓으라면 내놓겠나?
(잠깐.. 당연히 안내놓는다는 전제로 이리 물어본 나만 혼자
지금 쓰레기가 되는건가!?)


하여간 단점도 적지 않았다만 이런저런
영웅호걸의 면모들이 있었기에, 그 DNA가 전달된
손책, 손권같은 이들이 그 인물많고 사건많던
중국 삼국시대 속에서도 큰 획을 그은 히어로가 될 수
있었다는 말씀!
오늘의 주인공인 굵고 짧게 살다 간 손견의 이야기는
여기서 매듭 짓는다.
이번 칼럼은 원래도 늦었지만 유독 더 많이
딜레이가 된 점 깊은 사과 드립니다...T-T
변명을 해보자면, 제가 늦은 나이에 다시금 학구열을
불태우느라 지금 사이버대학에 등록해 퇴근 후에 공부를
하고 있는데, 중간과제 제출 기간 및 중간고사 기간을
앞두고 과제와 시험공부 탓에 틈내기 쉽지 않았고,

또 한 가지는 제가 좀 더 좋은 회사에 보다 나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이것저것 좀 정신이 없었어요..
아무튼 저도 노느라 늦어진 것은 아닌 점 양해 바랍니다.

이번주와 다음주중으로 중간과제 제출도, 중간고사도
다 마무리 지어지니 그 후부터는 제깍제깍 올리겠습니다!
13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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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학생인 저보다 학구열이 뛰어나시군요 ㅠ 좋은곳으호 이직도 하셨다니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계속 써주세요~
저는 굳이 빠듯한 시간과 체력과 돈을 할애해서 일부러 하는 공부니까 응당 더 학구열이 높아야죠!ㅎ 축하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포스팅도 중요하지만 생업이 더 중요하지요~ 무리하지 마시고 다음 포스팅 천천히 기다릴게요!
맞아요ㅎㅎ;; 생업이 중하죠ㅋ 이해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정말 오래 기다렸습니다 그만큼 길고 알찬 내용 감사합니다
정말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좋은 곳으로이직하셨다니 더 반가운 소식이네요!!!축하드립니다!!!ㅎ
허허ㅎ 네네! 정말 좋네요 ^^ 고맙습니다
오오ㅋ 새 독자분을 얻었네요ㅎ 완전 환영하고 정주행 & 댓글 정말 고맙고 격려도 너무 고맙습니다! 기왕이면 팔로우도 부탁 드려요 ^^;;
삼국지는 이미 팔로우했습니다😆
@BearsPyo 역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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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콘돔 광고 사용했다면 저들이 태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2. 도서관 벤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3.멸종 위기 동물 보호 포스터 픽셀 수가 해당 동물의 남아 있는 개체수 ex: 판다 개체수 약 1600마리. 1600개의 픽셀로는 판다 이미지를 충분히 구현할 수 없죠. "1600은 충분한 숫자가 아닙니다." 4. 성폭력 근절 광고 서로 붙어 있는 종이 두 장을 떼면 위와 같은 사진이 나타납니다. "힘을 써야 한다면 그건 성폭행입니다." 5. 형광펜 광고 : Hightlight the Remarkable 주목받지 못 했던 역사 속 여성 주인공들을 발견하는 프로젝트 광고 시리즈 중 한 장. 하이라이트된 여성은 나사의 흑인 여성 수학자로, 아폴로 11호를 달에 착륙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지만 주목받지 못했죠. 하지만 형광펜으로 주목도를 높입니다. 6.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 광고 "쓰레기는 당신을 말합니다." 쓰레기 두 개를 같이 배치해서 단어를 조합해 냈죠. LOWLIFE(시궁창 인생), PIG(돼지), DUMB(바보), DIPSTICK(멍청이) 7. 전기를 현명하게 사용하세요. 8. 그래픽 디자이너 구함 9. 자유롭게 공간 활용 10. 상어 도살 금지 청원 조스 포스터가 떠오르시죠.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상어가 아닌 사람이라는 것. 상어잡이 배를 상어보다 더 무서운 괴물로 표현했습니다. "사람은 한 시간에 11400마리의 상어를 죽이지만 상어는 1년에 12명의 사람을 죽인다." 11. 유적지 안내판 유적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간편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 12. 발로 누를 수 있는 엘레베이터 버튼 (위에도 버튼이 있습니다.) 13. 내셔널 지오그래픽 표지 빙산의 일각을 비닐 봉지 쓰레기로 표현했죠. PLANET OR PLASTIC? 14. 안전벨트 착용 광고 안전벨트 착용으로 사망 년도를 가렸습니다. 착용하지 않는다면...? 와 멸종위기 동물 보호 포스터에서 소름돋음 ㄷㄷㄷ 진짜 기발하네 좋은 광고는 걍 머릿속에 확 꽂히는듯
아재들이 뽑은 추억의 고전 명작 PC게임 10선
국산 게임인데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킨 스토리와 그래픽 그리고 게임성... 정말 굉장한 게임이었다. 리메이크 버젼도 플레이 했지만 원작을 따라가진 못함... 이건 못해봐서 패스... 이건 안해본 사람 찾기가 힘든 게임이려나... 육성 루트에 따라서 멀티 엔딩이라 한두번 하는게 아니라 수십번 엔딩까지 플레이한 사람들이 수두룩 할듯....ㄷㄷ 파랜드 택틱스는 SRPG의 시조격인 게임이다 아기자기한 그래픽과 당시 볼만한 액션 연출, 그리고 흥미로운 스토리 무엇보다 절묘한 밸런스의 게임성이 말이 필요 없는 명작 브랜드다 4인가 5까지는 했었는데 그 후로 너무 변해버려서 손절... 그러나 1편부터 4편까지는 정말 기가 맥힌 게임이다 JRPG의 클래식 취향에 안맞아서 구경만 하고 안해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와 더불어 국산 게임의 부흥을 이끌었던 명작이다 창세기전2는 국산게임에 있어서 전무후무하다고 평해도 아깝지 않은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었다. 삼국지 시리즈 안해본 사람은 없지. 삼국지 영걸전... 진짜 밤샘을 하게 만드는 미친 게임성 ㄷㄷㄷ 조잡한 그래픽이지만 게임성 하나로 모든걸 씹어먹은 대항해시대 시리즈에서 대항해시대2를 최고로 뽑는 사람들이 많다. 뭔지 모를 그 시대의 그래픽에서 풍기는 느낌과 잘 만든 게임성이 어우러져 진짜로 세계를 누비는 환상에 빠지게 해줬던 명작 게임이다. 요즘 같은 양산형, 현질유도, 스토리라곤 1도 없는 게임들이 범람하는 시대 90년대의 낭만이 살아있는 게임들이 그립다 ㅠㅠ
고구려 무덤 기둥에 그려진 귀신 그림.jpg
보통 안학 3호분하면 유명한 [대행렬도]와 [마굿간, 부엌도]만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고분에는 마치 지옥에서 온 귀신들같은 형상을 한 그림들이 네 개의 육각기둥의 상부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래 보이는 사진은 1949년 촬영되어 [안악제3호분 발굴보고]라는 형태로 1958년 발간된 황욱과 리동성 저작인 [유적발굴보고] 3집에 실린 사진들입니다. 약 60년 전으로 현재보다 더 선명한 벽화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지요. 우선 전경사진입니다. 정면에 보이는 네 개의 기둥의 윗부분이 무언가 그림들이 있습니다. 우선 한 놈입니다. 그야말로 도깨비의 형상을 한 귀신 얼굴입니다. 에메랄드빛 눈을 하고 있지요. 기둥을 받치고 있는 상단이 거대한 뿔처럼 보입니다. 그 다음은 필자가 한국의 모든 그림 중 가장 '사악하다'고 느낀 것입니다. 하얀 얼굴에 쌍각 (두 개의 뿔)을 가진 그로테스크한 사악한 귀신얼굴입니다. 더군다나 웃고 있는 것 같죠. 다음은 눈동자가 있고 속눈썹이 긴, 갈기가 나 있는 귀신 얼굴입니다. 마지막 녀석은 첫 번째 것과 비슷하게 에메랄드 빛 눈을 가진 귀신입니다. 이빨이 날카롭지요. 이런 식의 기둥에 그려진 귀신은 또 다른 고구려 고분인 [팔청리 고분]에도 기둥에 존재합니다. 필자가 찾은 것으로는 이렇게 그림으로 묘사된 것만 있습니다만, 어딘가 안악 3호분 귀신들과 유사하지요. 확실히 고구려 문화는 무언가 공격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면도 엿보입니다. 망자를 지키는 귀신들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옥으로 초대하는 사신들처럼도 보이네요. '출처 망자를 지키는 귀신들... 왠지 귀여운건 저뿐인가요? ㅋㅋㅋㅋㅋㅋ
주유 공근 (周瑜 公瑾) A.D.175~210
역사에 있어 가장 무의미 하면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만약에"(Maybe)라는 가정이 아닐까 한다. 특히 역사 속 인물들에 있어서 가장 많이 적용되는 '만약에'는 'OO가 더 오래 살았다면...'이 아닐런지. 오늘의 주인공은 삼국지를 읽어본 이들에게서 바로 저 '만약에...'를 가장 많이 되내이게 했을 인물 "주유". 삼국지에서 주유는 위에서 언급한 '만약에...'에 제일 많이 언급됨과 동시에 저승에서 나관중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나관중의 거듭된 항소에 3심까지 가더라도 무조건 다 승소할 만큼.. 삼국지연의 최대의 피해자나 다름 없는 너프를 먹은 비운의 인물이다. 삼국지 등장인물 중 가장 빼어난 용모 + 명문가의 귀족 + 최상류 부유층 금수저 + 너그럽고 대범한 성격 + 천부적음악재능 + 천재적 전략가 기질 + 미녀 아내 등등.... 엄친아를 넘어 먼치킨이던 이 남자는 촉빠에 제갈량빠인 나관중에 의해 "제갈량과 맞다이를 벌인 죄"로 앞뒤 안가리고 덤비는 다혈질에, 상황파악 못 하는 넌씨눈, 속 좁아서 제 성격도 못 이기는 쫌생이로 격하되었다. 어린 초딩시절, 당시 원술 휘하의 장수던 손견의 장남인 손책을 조우하고 그에게 반해 그때부터 마음 깊이 손책의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 주유는 당시 대대로 명문가에 양주지역의 큰 호족의 자제였음에도 고작 일개 장수의 아들에 불과한 손책에게 다방면의 호의를 베풀며 둘의 우정은 깊어간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생일은 손책이 빨랐고, 손책의 모친 오국태부인도 주유를 매우 예뻐 했으며 손견 또한 주유를 아들같이 대했고 주유는 자기네 집안이 보유한 가장 큰 저택을 손책에게 선물한 적도 있었다. (역시 친구를 잘 만나야..) 지금으로 치면 하버드를 졸업하고 잘 생긴데다 머리 좋고 돈 많은 신진그룹의 조태오가 아버지가 9사단에서 대대장 하시는 내 친구 창석이랑 친구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창석이네 아버지 예편 하시고 베스킨라빈스 하심) 삼국지연의에서 어쨌건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출발점인 손견에 대한 미화가 커서 그렇지, 사실 죽는 순간까지도 손견은 원술 휘하의 장수였고 더구나 손책과 주유가 알게 될 당시의 손견은 진짜 크게 대단할 게 없던 장수였다. 손책이 십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주유는 양주 일대의 여러 호족들에게 손책을 소개하고 친분을 쌓게 하고 안면을 트게 하는 등 손책을 키우기(?) 시작했고 물심양면으로 손책을 조건없이 도울만큼 손책에게 잘 대해줬다고 한다. 이후 손책의 바로 아랫동생인 손권과도 친분이 깊어졌고 손권 역시 하나님같이 여기던 형의 베프인 주유를 형님의 예로 모셨는데, 놀라운건 그래봤자 친구 동생이고 무려 일곱 살이나 어린 꼬맹이던 손권을 "깍듯이" 대했고 늘 존칭과 경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결과론적으로 주유가 손권 아랫 사람이 된 역사를 아는 우리 입장에서야 '당연한거 아님??' 이라지만 그때만 해도 손책이 그렇게 크게될 지, 손권이 그보다도 더 크게될 지는 알 수 없던 상황.... 심지어 손책은 부친 손견이 전사한 후, 원술에 의해 잉여쩌리 취급 받다 소수병력만 이끌고 독립했는데, 이 때만 해도 손책의 성공을 점치는건 고영욱이 뽀뽀뽀 진행자를 맡을 확률보다 낮았다. 아마도 주유는 손책의 대단한 포텐셜을 감지하고,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손책을 크게 성장시킬 마음을 먹고서 그랬던게 아니였나 하는 짐작을 해본다. 이전 제갈량편에서 짧게 언급했지만, "전략가"로서의 자질과 능력은 제갈량 이상이였고, 실제 역사에서 조조를 사실상 유일하게 처참히 발라버린 판의 총지휘자였다. 적벽대전 당시 고작 3만 여에 불과한 겁에 질린 오군을 이끌고 2만이 좀 안되던 유비군과 연합하여 당시 약 20만 ~ 24만 여 명으로 추산되던 조조군을 지워버린 가장 큰 주역은 각 군의 배치와 전술기획, 총 지휘를 한 주유였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 24만 VS 5만은 넘사벽 차이까진 아니라 보여질 수도 있지만, 무슨 첨단무기나 장비가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쪽수가 깡패고 전술이던 당시 상황에서 저 차이면 대개 GG 치는 경우가 부지기수.. 더구나 저 때의 조조군은 중국 특유의 빅뻥을 가미, "100만 대군"을 자칭하며 장강(양쯔강) 상류에 진을 쳤고, 당시 분위기는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전쟁이나 엇비슷한 분위기, 상황이였는데 오히려 이길 수 밖에 없다는 자신감으로 뭉쳐서 여유있던 주유였다. 오의 대부분 고관대작들이 항복을 주창했으나, 항전론을 외친 최초 발언자는 "노숙"이였지만 노숙은 "우리가 이김!"이라기보다는 "아마 질거임...그래도 붙어보자능!!!" 이던데 반해 주유는 항전을 넘어, 승전을 자신했다. 그는 여느 전략가들처럼 혼자 이것저것 짜내기보다 여러 책사들과 장수들과 회의를 하고 거기에서 나온 여러 아이디어들 중 "될 만한" 기획안을 채택하는데 능한 '수석' 스타일이였다. 사실 저것도 대단한 게, 정말 뛰어난 대국안이 없으면 당연히 여러 아이디어 중 뭐가 옥석인지 알 수 없다. 적벽대전의 신의 한 수였던 "화공"도 주유나 제갈량의 아이디어가 아닌 무장이던 "황개"의 의견이였던걸 주유가 채택한 것... 게다가 유비를 대단히 경계했던 사람이였다. 당시 오 내부에서 대체로 유비를 그리 높게 보는 이가 없었고, 유이하게 노숙, 주유만이 유비를 높게 봤으나 둘의 대처는 달랐다. 노숙은 유비와의 화친을, 주유는 유비 및 유비세력의 조기견제를 주창.... 만약, 손권이 주유의 의견을 따랐다면 이후 황제까지 오른 유비는 없었을 것이나, 손권도 유비를 잠재적 위협요소라 인지는 했으나, 주유만큼은 아니였고 당시의 상황도 상황인지라 노숙의 의견을 따른다. 장로가 유장이 통치하던 익주를 공격하자, 그 소식을 듣고 손권에게 서촉정벌을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였다. 일단 천하패권보다 형과 자신이 일군 강동의 지배력 강화가 우선이던 손권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던 시각의 오 문무대신들에게, 성공할 시에는 천하의 남쪽 절반을 먹는 서촉 정벌은 실로 스펙터클 했다. 그러나 홈에서는 막강했어도 원정능력이 그닥이던 오군 이끌고 장거리 원정에 심지어 험준한 산지에다 오군 최대 장기인 수전을 벌일 수 없던 터라, 주유의 "서촉정벌"은 '하이리턴 & 하이리스크'로 받아들여졌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 나는데 맞손뼉 없어 흐지부지 되었으나 이를 통해 주유의 야망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솔직히 이건 좀 많이 무리수였다...) 그는 실제로 서량의 마등&한수와 연합하고 요동의 공손일파와도 협력한 후 조조의 등 뒤를 흔든 틈을 타 형주와 서촉을 온전히 손에 넣어, 양쯔 이남 점령 후 북진하여 위를 쳐부술 플랜을 갖고 있었고... 그 당시에는 심지어 조조조차 천하통일을 염두 못한 시점에서 삼국지 등장인물 최초로 천하통일 플랜을 품었던 인물이였다. 제갈량과는 앙숙처럼 나오며 못 죽여 안달처럼 이미지가 각인 되었지만, 적벽대전 당시는 제갈량을 존중했고, 이후로도 비즈니스적으로만 적대했을 뿐, 그를 상당히 대우했다고 한다. "하늘은 어찌 주유를 낳고, 또 제갈량을 낳으셨나!" (旣生瑜, 何生亮) 주유는 이 말을 한 적이 없다. 주유가 화살 맞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제갈량 탓의 빡침에 상처가 터져 끝내 죽었다는 것은 픽션으로, 병사했고 학자들은 말라리아로 추정하는 쪽으로 무게가 기운다. 적벽대전 당시 위의 스파이 역의 장간이 연의에서는 주유와 동문으로 나오지만 이는 허구... 둘은 이 때 처음 본 사이였다. 손책과 주유의 아내인 대교와 소교가 유명한데, 대교와 소교를 얻을 당시 손책은 이미 정실이 있어서 대교를 첩으로 들였으나, 미혼이던 주유는 소교를 정실로 맞았다. 아내를 많이 사랑했는지, 굉장히 자상히 아내를 잘 챙겼던 듯 한 기록이 있다. 상당히 젠틀했고 사실상 오의 군권을 잡은 손권 다음 2인자였음에도 누구에게도 위압적이거나 하대 하는 법이 없이 예의바르고 겸손히 대했다고 한다. 손견부터 손가를 섬긴 노장 정보가 초반 그를 몹시 무시했으나 변함없이 예의바르고 자신을 공경하는 그에게 감화되어 끝내 잘못을 빌었다. 이건 왠만한 이들 잘 모르는데... 신은 공평했는지, 키는 좀 작았다고 한다.ㅋ 노숙에게 장신이던 제갈량과 마주하며 목이 아프단 말을 한 적 있다. 음악적 재능이 대단하여 아무리 정신없거나 술 취한 와중에도 곡의 연주가 틀리면 지적했다고 하고, 악기도 다루고 노래도 잘 했다고 한다. 굉장한 말술을 마셨다고 하며 오에서 손권 다음가는 주당이였으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진 않았고 술도 주위에 강권하진 않았다. 장남은 이것도 유전인지 요절, 차남은 개망나니, 막내딸은 남편이 요절.... 자식농사는 흉작이였던 듯..;;;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이 주유의 후손이라고 한다. 실제로 영화 적벽에서 원래 주유 역은 주윤발이 먼저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검술에 제법 조예가 있었다고 하며, 감녕과의 대련에서 호각지세를 이뤘다고 한다! 허나 그렇다고 감녕과 무력이 동급이라 할 수 없는게, 감녕은 전장에서 다수를 상대하는 마상창술 (말 타고 창질)에 능한 야전장수였기 때문. (또 실전이 아닌 '대련'이였고...) 이건... 진짜 깨는 정보인데... 주유가 오의 군권을 쥐고 있었고 오는 지리적 특성상 양쯔강의 수군이 주력이라, 오는 수군의 총사령관인 "도독"이 지상군과 수군을 총괄한다. 아무튼 주유는 그런 수군 사령관임에도 함선에 탄 적이 "거의" 없었다.(아예 없진 않음) 그 이유는.... 그 이유는..... 바로 "배멀미".... 수군 도독인데도 배멀미를 해서 함선을 왠만하면 안탔고 본인도 이게 되게 창피했는지 이를 숨기려고 꽤 애를 쓴 모양이다. (멀미약이 있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지도..) 아무래도 주유의 리즈가 적벽대전 당시이다보니 적벽대전 관련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적벽대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단독으로 다룰 예정이라 일부러 너무 자세히 풀진 않았음! 또 주유가 워낙 손책과 베프인지라, 손책 이야기도 좀 나왔는데, 역시 손책도 나중에 자세히 다룰 예정.
#부와성공의인사이트_유대인탈무드명언
노벨상이 수여되기 시작한 1901년부터 2021년까지 노벨상 수상자 943명 중 유대인은 210명으로 22%를 차지한다. 그뿐만 아니라 인류사에 큰 획을 그은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인사 중 다수가 유대인이다. 할리우드를 만들어 미국의 영화산업을 주도하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의 일간지를 만든 것도 이들이다. 유대인은 어떻게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었을까? 그 답은 바로 『탈무드』에 있다. 탈무드란 ‘위대한 연구’라는 뜻으로 5,000년간에 걸쳐 유대인을 지탱해 온 생활 규범이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등 유대인의 지적 재산과 정신적 자양이 모두 여기에 담겨 있다. 탈무드가 전하는 이와 같은 통찰을 배울 수 있다면, 우리도 부와 성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유대인의 지혜를 담고 있는 탈무드와 전 세계 상위 1% 유대인 위인들의 명언 770개를 담고 있다. 유대인 탈무드의 가르침은 우리의 인생에 새로운 통찰을 선물함과 동시에, “5천 년 동안 그들은 어떻게 부와 성공을 얻었는지” 우리에게 답을 줄 것이다. #어리석음보다_혼자가_낮다 나보다 나을 것이 없고 내게 알맞은 벗이 없거든 차라리 혼자 선한 생활을 하라. 어리석은 사람의 길동무가 되지 말라. If there is nothing better than me and I do not have a suitable friend, I would rather live a good life alone. Don’t be a fool’s companion #속지_않고_현명하게_세상을_사는_방법 물고기가 잡히는 것은 낚시꾼이나 낚싯대 때문이 아니다. 미끼로 달려있는 벌레 때문이다. It is not because of anglers or fishing rods that fish are caught. It’s because of the bug attached as bait. 지금까지 유대인 5천년 지혜의 원천 파워에 대한 통찰을 주는 리텍콘텐츠의 부와 성공의 인사이트, 유대인 탈무드 명언이었습니다. --- ★ 화제의 베스트 도서 ★ 5천 년 동안 그들은 어떻게 부와 성공을 얻었나 『부와 성공의 인사이트, 유대인 탈무드 명언』 책 상세보기: https://ritec.modoo.at/?link=4csyga9t
삼국지 좋아하십니까?
여자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남자분들은 책과 영화, 특히 게임 등으로 다들 "삼국지"를 접해 보았을터. 주로 게임을 통해 많이들 삼국지를 알게 되었을거라 예상되지만, 게임 하다보면 이게 또 스토리를 알고 해야 더 재미가 붙으니 책도 읽게 된다ㅎ 헌데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삼국지는 "소설"이다. 즉, 작가적 상상력... 다시 말해, "픽션"(허구)이 섞인 문학작품이란거다. 의외로 이걸 인지 못하는 분들 제법 있어서, 삼국지속 내용이 모두 참인줄 알고 감탄한다ㅋ 삼국지는 중국에서 "칠실삼허"(七實三虛)라 한다. 7의 실제와 3의 허구, 쉽게 말해 3할은 뻥이란 소리. 우리가 서점 가서 본, 이리저리 전해들은 삼국지관련 내용들은 "삼국지연의"라는 소설로서, "나관중"이란 중국 원나라 말, 명나라 초의 소설가가 실제 역사와 구전되어 내려오는 민담 등에 자신의 창의력으로 반죽해 쓴 작품이다. 소설은 많은 이가 재미있게 읽어야 함이 기본이기에 당연히 감동과 웃음과 휴머니즘에 교훈도 있으니 참 재미진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아는 여러 삼국지 관련 유명 일화들 중, 안타깝게도 나관중이 지은 뻥이 대부분... (이는 차차 설명하기로~) 실제의 역사적 사실만을 무미건조하게 엮어놓은 사료도 있고 이는 "삼국지정사"라고 따로 있다. (니가 생각하는 그 정사 아님.. 正史 바른 역사) 지은이는 "진수"라는 중국의 촉한 말기의 역사가. 나도 읽어봤는데, 지루하다.. 교회 안다니는 사람이 성경 읽어보는 그 느낌이다. 그리고 열전이라 해서 각 인물의 이야기만 다룬 것들도 있는데, 이건 모든 인물들이 다 있지도 않고, 또 이 열전은 진짜 구해 읽기 쉽지 않다ㅋ 여담으로 삼국지 관련, 가장 많은 정보와 자료는 당연히 본진인 중국국가기록원이 갖고 있지만, 민간 중 그에 버금가는 방대한 자료는 바로 일본의 게임회사인 "코에이"(KOEI)에서 갖고 있다ㅋㅋ (전략 시뮬레이션 삼국지 시리즈의 바로 그 코에이) 워낙 많은 자료와 기록 토대로 심지어 각 인물들의 외형의 이미지메이킹도 상당히 잘 해놓은 덕에 숱한 미디어 속 삼국지 인물묘사는 코에이의 묘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는ㅎㅎ 아무튼 우리가 아는 삼국지가 삼국지의 전부가 아니며, 그냥 부풀려진 구전민담..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이 더해진 것들이 많은데 앞으로 여기에서는 누구나 아는 그런거 말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화, 실제의 기록 등... 삼국지의 껍질을 벗겨보는 칼럼들을 다뤄본다. 삼국지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기대해도 좋을 듯! 부디 많이들 와서 적극적인 피드백들 해주시길!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5.
지난번 삼.이.높.4에서 중국의 삼국시대 당시 위세를 떨치던 소수민족들에 대해 다루다 분량이 길어지며 일부 민족들을 이월시켰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나머지 썰을 푸는 시간ㅎㅎ 본문에 앞서, 정말 기약없이 다음편이 늦어진 점에 대한 사죄의 말씀을 고개 숙여 전한다는... T-T 생애 가장 바쁜 삶을 살다보니 진정 도저히 시간적, 정신적, 체력적 여유가 허락되지 않았기에 (-_-;;) 아무튼 그래서 사과는 다시 차차 드리기로 하고 저번에 못 다룬 소수민족들인 선비, 저, 무릉만과 남만에 대해! 그럼 거두절미, 바로 본론 Go Go~~~ 선비(鮮卑) 이름만 들어보면 맨날 진지하고 엄숙한 선비충같은 부류들 같이 느껴지지만 이미 한자부터 다른, 그냥 발음만 같은... 우리가 떠올리는 그 선비들과는 근본부터 다른 종족들! 지금의 중국 허베이성에서 내이멍구(내몽골) 자치구 일대에 걸쳐 중세시대에 번성했던 '동호'라 일컬어지던 유목민들의 무리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전투민족인 흉노들에게 대대적으로 작살나며 내이멍구 동부의 선비산이라는 산 일대로 쫓겨 정착한 이들이 "선비족"이다. 참고로 오환족들도 저 동호 무리들 중 일부가 '다싱안링산맥'의 한 봉우리인 오환산 일대로 쫓겨가 무리지은데서 이름이 붙은 케이스이므로 선비와 오환은 그 뿌리가 같다는게 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ㅎ 막상 삼국지의 배경인 후한 ~ 삼국시대 ~ 진나라 때까지는 그리 큰 두각을 나타내던 종족들은 아니였다. 일단 무엇보다 흉노에게 여러 차례 발린 적이 있는데다, 중원의 근간인 한족들과 조우하려면 흉노의 영향력이 큰 지역들을 거쳐야 했기에 굳이 천적인 흉노까지 스킵하며 한족들에 겐세이 줄만큼 수나 파워가 강한 애들은 아니였... 그러다 흉노들이 남북으로 갈리며 약화, 여기에 선비들의 거주지역과 한족들의 거주지역 중간에 있던 북흉노들이 위와 진에 털려 위용을 잃으면서부터 두각을 드러내, 진나라도 점점 나가리의 뉘앙스를 풍기자 땅따먹기하러 쏟아져 내려왔고 이때부터 "오호십육국시대"가 개막된다. 결국.. 우리에게 익숙한 삼국지의 본 배경되는 후한에서 삼국시대를 거쳐 진으로 중국이 재통일 될 때까지 별 영향 못 미치고 북동쪽에 처박혀 있던 쭈구리들였던 것. 심지어, 문화적으로도 그닥 특색이 모호했던지라.. 당나라가 들어설 무렵에는 흐지부지 없어진 종족들이다. 덧붙이자면... 흉노나 한족들에게는 쭈구리였던 얘들이지만, 우리측의 부여에게 있어서는 천적과도 같던 이들이였다.. 부여는 내내 이 선비충들에게 시달림을 면치 못하다 고구려가 건국되고도 한동안 시달림이 지속.. 후에 그 대단한 "광개토태왕"이 요동일대에서 갈아마신 후에야 악연을 끊었다. 저(氐) 위에서 언급한 오호십육국시대의 오호 중 하나를 차지할 정도였음에도 그닥 기록이 별로 없는 종족이다. (참고로 오호는 흉노, 선비, 강, 저, 갈) 이들은 위와 촉 사이의 서량의 남서에서 익주의 북서인 무도일대에 자리잡은 종족들이였고 앞서 설명했던 흉노, 선비, 오환 등등이 유목민족들이였던데 반해 이들은 강족처럼 정착민족들이여서 농업과 임업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강족들과 거주지가 인접 또는 겹쳤는데, 강족들이 숫적우위에 더 와일드하다보니 많이 뭍힌 감이 없지 않고, 삼국지연의나 기타 창작물들에서는 그냥 죄다 강족으로 싸잡히는 비애도 있다... 당장 마초 & 한수가 조조를 씹어먹으러 서량의 세력들을 죄다 싹쓸어 올 때 그들의 주력이 강족전사들이라고만 표현되어 있지만 강족과 저족의 비율이 7:3 가량 되어, 저족들의 비중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였음에도 나관중은 그냥 무시하고 다 강족처리 했다. 한편... 기록이 부족하다는건 그만큼 기록자인 한족들 입장에서 별 임팩트를 못 느꼈다는 소리. 사실, 동북쪽의 소수민족들은 넓디 넓은 벌판에서 수 많은 가축 때를 휘몰아 쏘다니며 늘 말을 타고 또 원래 저런 벌판은 물도, 식량도 넉넉치 않으며 대체로 육식위주다보니 아무래도 더 거칠었던 반면... 서쪽의 소수민족들은 그럴 벌판이 없는 산악지형에 거주하며 수렵, 채집생활도 하긴 했으나 역시 식량의 주요루트는 농사였던 관계로 채식비율도 더 높고 식량수급이 아무래도 떠돌이 유목들보다는 나았기에 좀 덜 거칠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저 당시에 "말"이 갖는 기동력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파괴력이 어마무시했기에 대부분 1인 2마 이상인 유목민들이 말보다 농사짓는 소와 더 가까운 산악민족들보다는 공격력이 앞설 수 밖에 없었을거 같다. 현세에 이르러, 우리회사만 봐도... 늘 사무실에 정착해 자기자리에서 농사짓듯 모니터만 보고 밥도 식당밥, 도시락 먹는 내근직들보다는 맨날 이리저리 차 타고 거래처와 클라이언트 찾아 떠돌며 편의점에서 MSG와 나트륨 범벅인 백종원 CU도시락이 주식인 영업직 인간들이 더 거칠고 개새끼들이 많다.. (나도 그 개새끼들 중 한 마리인건 함정) 무릉만(武陵蠻) 삼국지의 자타공인 바퀴벌레 종족들이다.... 삼국시대 당시에 만약 핵전쟁이 났어도 쥐, 바퀴벌레와 함께 절대 멸종 안했을거 같은 한족들 입장에서는 진심 진저리 넌더리 났을 종족들인데, 이들의 포지션을 현대로 옮겨와 보자면 아프가니스탄에서 긴긴시간 우주제일 천조국을 엿 먹인 탈레반과 비슷하고 역시 몇 십년 전 천조국을 학 떼게 만든 베트콩과도 비슷하다. 이름만 봐도 어디 사는지 드러나는 이들은 말 그대로 형주의 "무릉"일대에 퍼져 살았다. 삼국지를 연의나 게임으로만 접한 분들 입장에서는 여태 언급된 소수민족들은 아직 소개안한 남만족과 더불어 거의 중국의 변두리에 살았다지만 무릉만들이 사는 무릉은 중국의 한복판인데 뭔 소수민족??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도 그럴만한게, 중국이 원체 넓고 큰데다 그 넓은 땅이 전부 평야도 아니고 도심지도 아니다. 심지어 지금보다 훨씬 인간 적고, 인프라가 꽝이라 미개척지, 오지가 많던 1,900여 년 전 중국은 말할 거 없어, 당시의 형주는 비교적 인구도 많고 인프라와 교통이 발달한 강릉, 강하, 장사 정도까진 꽤 살기 괜찮은 곳이였지만 무릉은 그냥 완전 험준한 협곡 투성이의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는 오지로서... 여러분들 영화 '아바타' 다들 봤나? 거기의 파랗고 길쭉한 나비족들 사는 판도라와 엇비슷한 그런 환경이였다. 무릉만들의 전술은 바로 저 거지같은 험지의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전"이였고... 이 전술 덕에 한족들의 끊임없는 토벌릴레이 속에서도 종족의 근간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유표는 손 놓고 없는셈치는 땅이였고, 삼국이 정립되어 가는 와중에 오에서 황개, 반준, 여대, 보즐 등등이 수차례 토벌에 성공은 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그냥 겁 주고 주의만 시킨 수준일뿐, 이들의 세력존폐를 위협할 수준의 데미지를 주는데는 실패했다. 쉽게 말해, 그냥 이들로 하여금 지들 영역에서만 짱 박혀 지지고 볶고 알아서 하게 하고 한족의 영역으로 나오지 않게끔 억제만 한 수준이였던 것. 당장 역사를 조금만 더 올라가보면, 이들의 존재는 한족의 애물단지같은 위치였고, 하다하다 안되자, 소수민족 토벌의 달인인 마원(마초의 조상) 까지 고령임에도 출병시킬만큼이였다. 허나 소수민족 상대로 킬 수가 수두룩 하던 그 마원조차도 무릉만들 상대로는 지지부진하다 끝내 전장에서 병사한다. 무릉만들도 순수혈통 단일민족은 아니고 그 일대에 퍼져 사는 여러 종족들을 싸잡아 일컫는 호칭이였는데 무릉만들 중 일부는 식인풍습도 있었던 듯... 뭐... 저걸로도 무릉만들 수준이 어땠는지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해도 된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인 삼국지 매니아분들에게 있어서, 무릉만의 슈퍼스타는 역시 "사마가"인데, 사마가의 등장은 유비가 관, 장 두 아우 사망에 있어 만악의 근원인 오를 정벌하고자 이릉대전을 개전함에, 촉에 협조하는 것으로 나온다. 당시 걸핏하면 자기들 족치려는 오를 극혐하던 무릉만들에게, 승전시에 자치권을 보장하는 것을 조건으로 촉한의 특산물인 최고급 비단을 잔뜩 챙겨 무릉만들을 설득했던 결과였다. 당시, 비단 싸들고 무릉만들과 협상하러 나섰던 촉한의 네고시에이터는 바로 백미 "마량"이였는데... 당시 자치권도 자치권이지만 그건 나중 이야기고 일단 마량을 필두 삼은 촉한의 협상단이 가져간 비단을 본 무릉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였다고 한다. 하긴, 그도 그럴게.. 여러분들도 맨날 동네시장 신발가게에서 아티스나 슈퍼카미트만 사신다가 옆동네에서 에어조던 시리즈별로 다 갖고 오며 도와달라면 눈 뒤집힐 듯. (아티스나 슈퍼카미트 알면 무조건 아재 당첨) 허나,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이릉대전에서 촉이 대박살이 나며 따라갔던 무릉만들도 무시 못할 피해를 입었다... 참고로 여느 소수민족들이 그렇듯, 무릉만들도, "We Are The 무릉만!" 이라며 하나로 뭉쳐진 단일세력이 아닌, 여러 크고 작은 부족들의 연합 비슷한 것이였고 여러분들이 아는 사마가는 연의의 표현처럼 무릉만들의 왕이 아니라, 그런 여러 무릉만들의 부족들 중 한 부족을 이끄는 부족장들 중 하나였다. 남만은 분량도 좀 될 것 같고 아무래도 다른 소수민족들에 비해 삼국지 매니아분들이 더욱 궁금해하며 흥미 가지실 것같은 종족이라 차라리 따로 다루는 게 나을 듯 싶다는 생각에 따로 추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너무나 죄송합니다, 독자여러분들.. 제가 연재를 늦게 하는 편이기는 했지만 진짜 이번에는 도가 지나친 수준의 텀이 생기고야 말았네요... T-T 하지만 저 역시 뒹굴고 노느라 연재가 미뤄진 것은 절대 아니였어요. 저도 좋아서, 즐거움과 보람에 시간내서 글 쓰는데 장시간 못 그러니 참 답답했습니다. 그 와중에 재촉없이 묵묵히 기다려주신 분들, 애정과 관심 담아 재촉해주신 분들... 모두 죄송하고 또 고맙습니다. 그 긴시간 동안 연재 없음에도 팔로워는 줄지 않아서 기뻤다는 ㅎㅎ 아무튼 다시 연재에 힘쓰겠습니다!
아껴 읽고 싶은 너와 나의 이야기: 29
방황을 같이 나누고 싶다는 은사님의 답장에 힘을 내는 오월입니다. 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오만에 붉어진 얼굴로 손을 바삐 움직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인류는 자신이 식물을 재배하고 지배하면서 지혜롭게 이용한다고 믿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통념에서 벗어나 관점을 달리해서 생각해보자. 식물과 연결된 인간의 수많은 선택과 행동이 실상은 새가 달콤한 열매에 열광하고 개미가 엘라이오솜을 먹기 위해 무거운 제비꽃 씨앗을 낑낑거리며 개미굴로 운반하는 행위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 흥미롭다. 식물이 근본이 되는 이야기의 길을 걸으며 전 세계를 여행하고 온 기분이다. '우리 몸의 절반 정도가 옥수수 성분으로 이루어졌다'는 일설도 재밌고, 네 개의 위를 갖게 된 초식동물과 노예해방의 숨겨진 이면까지! '식물은 우리에게 무시당해도 좋은 존재가 아니다.' 깊은 공감을 하며 오늘도 길을 걷다 이름 모를 나무에 손바닥을 갖다 댄다.⁣ ⁣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사람과나무사이 #이나가키히데히로 소박한 삶이 지닌 가치를 깊이 긍정할 수 있게 만드는 근원적 만족감 무한함으로 사로잡힌 채 파란빛에 잠겨 웃음 지었다.⁣ 유난히 힘든 날이었다. 몇 년째 하는 일이지만, 환경이 바뀔 때마다 물갈이하듯 애로사항도 상이해졌다. 사람과 책이 훨씬 많아진 데스크에 앉아 매일 백오십 명 이상의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진이 빠지기 일쑤였다. 깨진 모래시계의 몸으로 구르듯 집으로 도착해 동화책을 펼쳤다. 책날개의 QR코드를 통해 열린 사계의 '여름'. 현실과 벌어진 틈 속에서 유영하듯 음률과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큰 획과 다양한 재료로 빠르게 그린 듯한 그림, 손가락으로 물을 튀기고 무지개를 따라 그리며 완전히 빠져들었다. 활기와 웃음이 녹아든다. 책을 덮었으나 여전히 난, 웃음소리와 물의 감촉을 느낀다.⁣ ⁣ #여름이 온다 #비룡소 #이수지 사람이 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 준비하는 것, 완전히 절망해 버리지 않는 것, 실낱같은 운이 따라왔을 때 인정하고 감사하고 모두 내 노력인 듯 포장하지 않는 것. 눈물이 멈췄다.⁣ ⁣ 눈물이 멈춘 여덟 개의 삶이 있다. 얽혀있는 선의 중심에 찍힌 점이 점점 커진다. 애초에 내가 거기 있었는지 모르게 하려는 것처럼. 그런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있다.⁣ '내 경험과 사유의 영역 밖에도 치열한 삶이 있음을 안다고, 내 소설의 독자들도 언제나 내가 쓴 것 이상을 읽어 주고 있다'는 말에 같은 곳을 바라본다. ⁣ ⁣ #우리가 쓴 것 #민음사 #조남주 하루하루는 지나치면 무료하다. 그러나 기록한 후에 들여다보는 하루하루는 특별하다. 기록이 나만의 언어를 만들고, 내 생각과 뜻을 알리게 하는 것이다.⁣ ⁣ 생각의 하늘 유영 바람이 느껴져 아 이런 세상이 있구나 따뜻해져 뇌가 커진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웃음 너만 할 수 있는 그런 거 나를 닮은 내가 담긴 글⁣ 마르지 않는 잉크 ⁣ 나만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분들을 응원하며.⁣ ⁣ #별게 다 영감 #북스톤 #이승희 너와의 이런 메시지들은⁣ 너의 문학이 되고⁣ 내가 몰래 찍은 네 옆모습은⁣ 너의 미술이 되는 거야.⁣ 네게 전화를 걸면 들려오는 것은⁣ 너의 음악이 되는 거고.⁣ ⁣ 섬 같은 사람. 발음하는 입술이 멈춘 자리에 바람이 분다. 세상에 유일하게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의 존재_A와 Z사이에 세상의 모든 봄이 있다.⁣ ⁣ 끝이 없는 음악도, 영원히 죽지 않는 도시도 있다고 믿어. 깊숙이 보고 싶어.⁣ ⁣ #메시지를 입력하세요 #히읏 #오휘명 명문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문장을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 개그콘서트를 보며 자란 나에게 김영철 개그맨은 늘 웃긴 사람이었다. 성인이 되면서 TV를 잘 안 보게 되었지만, 김영철 개그맨을 보려고 몇 개의 프로그램을 보곤 했다. 그의 솔직함과 밝은 기운이 좋다! 그 힘을 이번엔 책을 통해 얻었다. 평범하지만 정감 있는 문장에 담긴 긍정이 기분을 좋게 한다. ⁣ ⁣ 문을 닫고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울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우는 인생사 오늘 즐거우니, 그것으로 되었다.⁣ ⁣ #울다가 웃었다 #김영사 #김영철 가차 없이 팔아버리는 책과 서가의 안락한 자리를 내어주는 책이 있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이어도 상관없는 공간에서 온몸에 활자를 묻히며 마음을 놓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구매하였습니다. 사랑을 하며 글을 쓰고, 이별에 괴로워하며 퇴고하였다는 '우리는 사랑을 하지만.' 다시, 시작입니다.
장합 준애 (張郃 儁乂) A.D.?~231
누차 말했듯... 픽션(허구)이 가미된 "소설"인 삼국지연의는 여러 인물들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반면 그네들의 영웅화 ~ 신격화를 위해 숱한 이들을 엿 먹이기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오늘도 역사범죄자 나관중에 의해 너프 당한 또 한 명의 피해자, "장합"에 대해 다뤄 보기로..! 장합은 삼국지정사, 위의 역사록인 위지, 후한의 역사록인 후한서, 본인의 열전인 위서의 "장악우장서전(張樂于張徐傳)"에도 생년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사망 당시의 연령을 알 수는 없지만 원소에게서 조조 휘하로 들어갈 당시 대략... 40대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저 '장악우장서전'은 조조가 자신이 공을 이루는데 그 기여가 으뜸이라며 추켜세운 다섯 장수인, 장료, 악진, 우금, 장합, 서황을 묶어 편찬된 열전이다. 저 다섯을 일컬어 당시에 "오자양장(五子良将)"이라 불렀고, 촉한의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과 살짝 비슷한 뉘앙스인데, 오호대장군이란 별칭은 그 때는 없었고 후대 사람들이 붙인데 비해 저 오자양장은 당시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오호대장군같은 저 시절의 '드림팀' 또는 '어벤져스' 느낌의 패키징은 위의 다섯 장수가 원조다. 고향은 당시로는 기주의 하간군 막현(오늘날 중국 허베이성 중남부 인근)이라는 그때 치고도 꽤나 궁한 시골 작은 마을 출신이였다. 참고로 진짜 중국이 겁나 드넓긴 드넓은게... 삼국지 게임 내의 맵에서 기주는 작은 주로 나오나, 조운의 고향인 기주 상산군과 장합의 고향인 기주 하간군의 거리는 무려 166km고, 이 거리는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보다 멀다..ㅎㄷㄷ 만화, 게임, 책, 기타 여러 미디어물들을 봐도 다른 네임드급 인물들과는 달리, 외형 이미지가 일관적이지 못한 편인데... 이는 사료 어디에도 장합의 외모 묘사가 일언반구도 없고 그를 그린 그림조차 몇 없는데다, 그것들 마저 묘사가 모두 중구난방이다보니 도무지 이미지 통일이 안된 것. 다만, 장합의 리즈시절이 펼쳐지는 것이 조조에게 투항 이후인데 그 당시의 추정 연령이 위의 언급처럼 40대로 보고, 조조세력 합류 후부터도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을 활약하다 전장에서 전사한만큼, 사실상 각종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젊은'느낌의 장수로 표현하는 것은 어색한 감이 없지 않다. 장합은 조조 휘하 장수들 중 가장 많은 전장에 참전했고, 위의 역사를 통틀어도 가장 전공이 많은 장수였으며, 주/부장을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여러 숱한 전투에서 닳고 닳은 백전노장이였다. 그러다보니 큰 전장의 주요한 임무는 물론, 작은 전장의 자잘한 임무까지 가림없이 두루 맡았고 야구로 치면 4~5선발과 롱릴리프, 경우에 따라 급하면 불펜으로까지 던지면서 하루 걸러 등판하며 혹사 당하는 노예투수 비슷한 포지션의 장수였다. 그 깐깐한 조조가, 또 당시 휘하에 숱한 명장, 용장, 맹장들이 수두룩 빽빽 채이고 밟히고 널렸던 위에서 저토록이나 빈번히 굴렸다는건 그만큼 능력 있기에 믿고 쓸만큼 훌륭한 장수였다는 증거다. 심지어 백발노인 되어 집에서 손주들 재롱이나 보고 탑골공원가서 장기두며 야쿠르트나 얻어 마실 나이에 전장에서 한창 싸우다 전사하니... 죽어 눈감는 그 순간까지 위의 군밀레에 갈려나간 군돌이였다. 삼국지연의나, 연의를 바탕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각종 미디어물들을 보면 장합은 그냥 본인의 무예와 전장에서 구르며 익힌 짬밥으로 밀어붙이는 단순한 장수로 그려지나... 위에서 언급하듯, 저렇게 숱한 전장을 누볐고 또 깐깐깐돌 조조에게 신임받으며 주장으로도 쓰인만큼 사실 전략적 대국안도 상당히 뛰어난 "지략을 갖춘" 장수였다. 본래 기주의 군소 군주인 한복 휘하에 있다가 한복이 패망하자 원소의 세력에 속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전장의 시국을 살핀 후 원소나 원소의 책사들에게 여러 전략들을 입안 했으나 거의 다 씹혔다.... 원소는 사람 자체가 선입견, 편견 이런 게 가득한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데다 또 고집은 있는 전형적 꼰대인 우리 회사 김대현 이사님같은 스타일이라 그저 야전에서 뒹구는 장수인 장합의 계책을 귀 담아 들어주질 않았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치는 전형적 예였던 당시 원소의 책사들 역시, 지들끼리도 서로 내가 옳네, 내가 맞네 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장합까지 거기 껴서 자기 의견을 제출하니 고스란히 즈려밟아 무시했다. 이렇듯, 자기 아이디어와 의견이 매번 밟히던 끝에, 원소 VS 조조의 관도대전에서도 자기가 낸 계책이 원소의 책사 중 한 명인 곽도에게 씹혔고... 그 전투에서 결국 패하며 장합이 옳았음이 드러나자 곽도가 원소에게 장합을 모함하였으며, 이에 겁 먹은 장합은 결국 원소군 내에서 베프면서 역시 원소의 아쉬운 대우에 불만가득하던 '고람'과 함께 원소군의 망루에 불을 지르고 투항한다. 역사기록에는 이 "방화 후 이적"이 관도대전에서 원소의 패배 전인지, 후인지가 안나와 있으나 어쨌건 장합과 고람이 불 싸지른 망루는 당시로는 적군의 동태를 살피는 '레이더'역할을 하는 중요한 군사시설이였기에 이를 없앤 것 자체는 어쨌건 원소군에게 치명적이긴 했다. 삼국 정립 이후에는 주로 대촉전선에 투입되었고 이유는 조조가 양쯔강을 끼고 있던데다 북진의사가 거의 없는 손권에 비해, 명목상 "한실부흥" 내세워 줄기차게 자신들에 덤벼 오는 유비세력을 훨씬 더 위협적으로 여겼기 때문. 그때 손권과 대립하는 동부전선은 장료와 악진으로 묶어 두고 가용 가능한 네임드 장수들은 대부분 대촉전선에 투입되던 시기였다. 장합은 유비도, 유비 사후의 제갈량도 상당히 껄끄러워 하던 장수였다. 대촉전선의 총사령관 역할을 하던 하후연과 조홍보다 장합의 위치는 아래였으나 이는 위에서의 커리어, 또 하후, 조 두 장수는 조조와의 친인척 관계인지라 그럴 뿐... 장수로서의 자질은 저 둘을 뛰어넘던 장합이였으며 그래서인지 조홍과 하후연은 장합을 꽤나 견제했다. 아무리 자신들의 커리어가 앞서고 조조와 혈족이긴 하다지만 철저히 능력 위주로 사람을 쓰던 조조는 언제던 장합이 더 유능하다 드러나면 속절없이 자기들보다 장합이 더 상전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 제갈량의 1차 북벌 당시, 이를 막아낸 위방어군의 총사령관은 연의와 달리 사마의가 아닌 장합이였고, 4차 북벌 때, 목문도에서 유인책 쓰며 거짓 후퇴하는 촉군을 사마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뒤쫓자며 바득바득 우기고 쫓아가다 기어이 전사하는 연의와 역시 또 달리... 당시 제갈량의 흉계가 의심된다며 추격을 만류하던건 오히려 장합이요, 이에 대해 군령까지 내세워 제갈량을 추격할 것을 밀어붙여 장합을 사지로 내몬게 사마의였다. 이에 대해서도 또 제기되는 설이.... 당시 장합과 사마의는 위의 대촉전선에서 은연중에 경쟁관계였었다. 쟁쟁한 커리어의 백전노장 장합, 그리고 위 군부 신진세력의 주축이던 사마의는 서로 견제하던 관계였으며 당시 직급상 사마의가 높았지만 그렇다해도 사마의에게 장합은 결코 직위로 쉽게 누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였고.... 그런 장합을 이이제이 방식으로 간접 제거 하고자 제갈량의 계책을 눈치채고도 등 떠밀었다는 설이다. 연의에서의 묘사처럼 빗발치는 화살에 벌집이 되어 바로 죽기보다 화살을 여기저기 맞고 후퇴하던 중 과다출혈에 의한 쇼크사였다. 기록에는 허벅지에 맞은 화살로 인한 과다출혈이 결정적 사인이라 나와 있다. 참고로 허벅지는 대동맥을 비롯 여러 혈관 뭉치들이 지나는 곳이라 흉기에 잘못 찔리면 지혈도 힘들만큼 과다출혈이 발생하여, 옛날 야쿠자나 조폭들도 서로 칼부림 당시 오히려 방어하기 좋아 찌르기 여의치 않은 복부나 흉부보다 허벅지를 많이 노렸다고 한다. 동물을 좋아했는지, 직접 먹이를 주며 키우던 개가 있었다는 설이 있고 자신이 타던 말이 힘들까봐 행군하는 경우에는 중간중간 말에서 내려 걷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사료기록은 아니다.) 원소 휘하에서는 고람과만 거의 이야기를 나눴으나 조조에게 투항 후 각기 다른 부대에 배치되며 연이 끊어진 듯... 여러 장수들과 열전이 묶음으로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신상과 일상에 대한 기록이 그닥 없다. 쉽게 말해 위의 장수로서의 공적인 기록은 좀 있지만 인간 장합으로서의 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 장합이 커리어나 능력에 비해 그닥 인기 많은 인물은 아니다보니 왠지 이번편은 반응이 별로일거 같은 좀 불길한 예감이... T-T 그래도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 드린다는 ;;;
곽가 봉효 (郭嘉 奉孝) A.D.170 ~ 207
지금까지 인물들 관련 칼럼을 게시하면 꼭 올라오는 요청이 있었다. "곽가도 나중에 다뤄주세요" 거의 매번 여러 분들에 의해 올라오는 요청이였고 내심 곽가의 인기와 인지도에 놀라웠다...ㅎㅎ 그 인재 많고 재사 많던 위에서, 본인도 여느 모사들 못지 않게 빼어나던 조조의 총애를 받았던 책사면서 한편으로는 그 활약이 많지 않고 생존기간조차 짧아 그의 업적은 거품이 많이 끼었다하여 '곽푸치노', 그의 가치는 과대평가 되었다하여 '곽대평가'라고도 비판받는 동전의 양면같던 사나이 "곽가"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영천군 양적현이라고, 지금 중국 허난성의 위저우시 태생, 순욱과 동향이고 옛날 후한 기준 허창의 북서쪽에 위치한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행적들은, 말 그대로 "천재" 그 자체였다. 학식이 깊었다는 이야기는 없으나, 누구와 이야기 나누던.. 무엇으로 이야기 나누건 거침 없었으며 야망의 스케일도 크고 상당히 담대한 편이라 이미 살던 지역 일대에서는 '뭐가 되도 될 놈' 이라는 평판이 자자하던 양반이였다. 음주가무와 당시 사람들 기준의 일탈적인 행동들도 좀 잦았던 듯 하며, 말도 그리 나긋나긋이 하는 편이 아니였고 직언직설을 하는 등.... 뭐랄까, 이런 비교는 좀 웃기지만 '스티브 잡스'가 저 나이였을 당시와 스타일이 비슷했던거 같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호불호도 많이 갈려,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를 인격적으로 좋아하는 이는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본래는 원소에게 먼저 임관을 하고자 찾아갔었다. 나중에 원소도 다룰 예정이라 그때도 언급할테지만, 역사는 승자의 편이고, 여러분들이 접한 삼국지는 대개 소설인 삼국지연의이고 거기의 원소가 찌질이로 그려져서 그렇지, 원소는 그냥 단순한 찌질이가 아니였다. 당대에서 가장 명성 높고 실력과 경력과 집안이 상당하던.. 누군가 황건적의 난 이후 아작난 후한을 다시 일으킨다면 그 영순위로 꼽히던 게 원소였다. 그래서 어지간한 이름 있는 자들이 가장 선호하던 것도 원소의 세력에 임관하는 것이였고 응당 곽가도 가장 먼저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찾은 사람이 원소였다. 허나, 그럼 그렇지... 며칠의 대기 끝에 만나 이야기 나눈 원소는 곽가 스타일이 아니였고, 당시 원소의 최측근들 중 하나였던 신평과 곽도에게 원소 뒷담화를 남긴 후 박차고 나와 집에서 놀다가 아끼던 책사인 '희지재'의 사망으로 책사에 T/O가 나서 거기 알맞는 사람을 찾던 조조에게 순욱의 추천으로 임관하게 된다. 당시, 순욱도 곽가와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였고 순욱 또한 자기고향에서 머리 좀 돌기로 이름 난 곽가의 명성을 듣고 조조에게 추천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조조와 곽가는 서로 첫 대면 자리에서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임을 직감한다......뚜둥... 신입으로 입사한 주제에 첫 시작부터 제법 높은 직위를 받아서 조조를 돕게 되었는데, 사실 원소와 비교했을 때 뒤쳐질 뿐 조조도 이미 당시에 원소 다음가는 튼실한 세력가였다. 오히려 외형성장에 메달렸고 조직내 유연성이 매우 떨어지는 구시대적 조직을 이끌던 원소보다 새롭게 떠오르며 개방적이고 효율과 내실을 중시하는 조직을 이끄는 조조가 응당 곽가에게도 더욱 실력 발휘하기 좋은 조직이였음이 맞다. 비교하자면 원소의 세력은 현재 국내의 대기업들과 엇비슷하고 조조의 세력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 비슷한 느낌이였다. 아무리 능력이 좋다한들 자유분방하던 곽가로서는 당시 조조말고는 딱히 자기 재량을 펼칠만한 세력도 없었으리라 본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곽가같은 싹수부터 다른 신참이 영입되었음에도 노련하고 뛰어나던 조조의 다른 기존 책사들도 일절 텃새같은게 없었다고 한다. 그의 가장 큰 단점이며 아쉬운 한 가지는 역시 누가 뭐래도 "단명"이다.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위서 정곽동류장류전, 정사 등을 볼 때 아마도 간이 안좋았던 것 같다. 잦은 과음과 부족한 수면 및 특히 스트레스가 그의 간손상을 부추겼을 듯.... 하여간 우루사만 꼬박꼬박 먹었더라면 역사를 살짝 뒤틀었을지 모를 곽가였지만 놀랍게도 역사록들을 아무리 뒤적여도 그가 병법이나 전술관련 제안을 한 기록이 없다. 쉽게 말해 전장에서 용병술이나 전쟁 또는 세력다툼 속에서 승기를 잡을 병략을 짰다는 증거가 없다는 거다. 이리저리 다 뒤져도 군사적인 공적은 삼국지정사에서 여포를 사로잡는 결정적 작전인 "하비성 수공"이 전부, 그나마도 단독입안 아닌 순유와 공동작전입안이다. 당시 조조 휘하에서 껌 좀 씹던 군사들로 순욱과 순유, 정욱 등이 있었는데, 삼국지정사를 분석하고 주석을 달았던 역사가 배송지의 평가에 의하면 이 중 전략전술적 재량이 가장 훌륭한 것은 순유였고 그 다음이 순욱, 그 아래가 정욱이라 했고 곽가는 그 정욱보다 못한 수준 이라고 평 했다. 삼국지연의에는 원소 VS 조조가 결전 벌인 관도대전 속 큰 활약을 한 듯 그리지만 사실 관도대전의 총참모장은 순유였다. 여포와의 대전에서도 주요 전술 입안자는 역시 순유, 게다가 비록 엘리에 가깝게 털리긴 했어도 당시의 기세가 등등하던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총참모장 역시 순유였다. 뭔가 쓰다보니 오늘의 주인공은 순유같다... 아무튼 의외로.... 매번 많은 분들에게 '곽가도 꼭 다뤄주세요!ㅎ'소리를 들을만한 뭔가가 없이 좀 부풀려진 인물이란 것이다. 그러나 역사 기록들 속의 곽가는 정말 조조의 총애를 받았고, 적벽대전 패전 후 조조가 봉효만 있었다면...T-T 이라며 오열했다는 것도 실제였다. 위의 언급대로 딱히 한 것도 없는 주제에 심지어 일찍 죽기까지 했던 먹튀라면 결코 절대 조조의 사랑을 받지 못 했을 것인데 어찌 그는 깐깐쟁이 조조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일단, 그는 달변이였던 걸로 보여진다. 그리고 역사서들 속의 그의 가장 대단했던 점은 "놀라울만큼 감이 좋았다"는 점이다. 그는 조조세력의 숱한 중대사들 앞두고 거의 확정에 가까운 예측들을 내놓았고 "모두" 맞았었다. 더더 놀라운 것은 그런 예측들은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반대되는 의견인 경우가 많았고 더더더 놀라운 점은 그런 나름 날고 기는 이들과 반대되는 예측을 던지는 주제에 그리 확실한 근거조차 내지 않고 그냥 말빨로 덮었다는 점이다. 더더더더 놀라운 사실은 심지어 조조가..... 나머지 책사들과 혼자 딴소리를, 그것도 별 근거도 없이 그냥 '아, 내 말이 맞으니 그냥 나 믿고 해보삼'에 가깝던 곽가의 의견을 잘 따라줬다는 것..ㅎㅎ 조조가 여포를 정벌하고는 싶으나 근거지를 비운 틈타 원소의 후방공격을 걱정할 때도 곽가는 별 다른 논거를 제시않고 원소는 절대 내려오지 않으니 여포공격을 해도 괜찮다며... 여포공략이 순조롭지 않아 전황이 루즈해지며 다시 조조가 그 상황 지켜보다 원소가 쳐내려오는건 아닌지 걱정할 때도 역시 별 근거는 대지 않고 그냥 더 해보자는 제안을 했지만 모두 맞았다. 원소와의 전쟁을 앞두고 당시 남쪽의 야망가이던 손책의 후방 공격을 걱정하던 조조에게 손책은 분명 암살 당할 거라는 구체적 예측까지 맞춰버리며 사실상, 책사를 넘어 예언가에 가까운 그였다고.., Ex.) 당시 조조 책사들의 성향을 표현하자면.. 조조 : 나 로또 샀는데, 1등 되면 좋겠다..T-T 순유 로또의 1등 확률은 840만분의 1입니다. 게다가 1인 하루 최대 구매액은 10만원에 불과.. 제가 조사해보니 로또 1등 명당은 광화문역 3번 출구 쪽의 가판대던데 주공의 구매처는 지금껏 단 한 번, 4등 당첨이 전부였기에 매우 힘들 것이옵니다... 순욱 로또 1등은 하늘이 내는 것이니 안되더라도 너무 심려치 마시고 차근차근 꾸준히 구매를 하시다보면 언젠가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1등도 좋으나 그러다보면 더 확률 높은 2등이나 3등에 여러 번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생각되옵니다. 정욱 참. 다들 복잡하게들 산다...ㅎㅎ 로또 1등도 결국 당첨금 때문에 되고 싶은건데, 주군! 돈 필요하시면 될 때까지 로또 사는것보다 차라리 병사들을 동원해 은행을 털죠? 곽가 다음주에 1등 될거임. 나만 믿으셈. 열전 및 정사와 배송지의 평가 및 주석 등을 참고할 때... 이룬 것 없음에도 조조의 총애를 받은 이유는 그가 조조와 생각하는 패턴이 비슷했기에 그랬던게 아닌가 학자들은 추측한다. 아무리 조조가 날고 기어도, 한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라면 마냥 자기 뜻대로 할 수가 없으며, 부하들의 의견을 듣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은 우로 가고 싶으나 대부분의 측근들이 좌로 가야한다며 저마다의 근거와 논거를 제시하면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자기 뜻을 내세우기는 참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조 자신도 전략전술 및 병법과 고서에 밝기는 했지만 그런 조조의 신뢰를 받던 휘하의 모사들도 머리만 쓰는 것으로는 결코 조조에 못지 않았고 그런 그들이 나름 그럴듯한 이유를 첨부하여 조조의 뜻과 다른 길을 다같이 이야기 한다면 따르자니 자신의 예측과 달라 마음이 놓이지 않고, 안그러자니 자신을 독선적으로 볼 측근들이 신경 쓰이는 딜레마 속에, 조조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또는 조조의 속을 뚫어보듯 조조의 가려운 곳을 긁는 소리를 달변에 실어 확신에 차 우겨주는 곽가가 조조입장에서는 고마웠을 것이다. 게다가 곽가는 한실의 부흥이나 천하의 대세, 정의, 이런 건 관심 없었고 오직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하는 주군인 조조의 상승만을 추구했다. 그런만큼 매사에 철저히 조조의 관점과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말했으며 조조에 대한 충성도 높았다. 조조는 비범하고 자신과 일맥상통하며 충성심 깊고 무엇보다 "젊은" 그에게 자신의 다음 세대와 후사를 맡기고 싶어했다. 쉽게 말해, 조조에게 곽가란 유비에 있어 제갈량에 비견되는 위치였다. 조조가 평생 겪은 휘하 대표 전략가들을 살펴보면... 순유는 자신의 출세와 성공에 포커스가 큰 사람, 순욱은 자신보다 한실의 부흥이란 대의를 중시하는 이, 정욱은 세간의 평가는 개의치 않는 독한 술수를 거침없이 계획하는 인물이였으며, 사마의는 마치 자신을 보는 듯한 야망과 음모가 느껴지는 자였다. 오직 곽가만이 자신만을 위해줬고, 자신의 편이였으며 자신을 가장 잘 따랐다. 그런 곽가가 앓다 끝내 병사하자 조조는 통곡을 했고 종종 힘든 난관마다 곽가를 떠올리며 그리워 했다고 역사기록에 남겨져 있다. 유비와 비교해보면... 유비의 조직은 서촉진출 전까지는 주로 인정과 의리가 주요하던 "의협집단"에 가까운 조직이였다. 지도자 이하 각 구성원들이 단순한 이해관계나 주종관계 이상의 끈끈함으로 뭉쳐져 있어 이탈률은 적으나 그런만큼 능력있는 신규진입자의 성장이 쉽지 않다. 하지만 조조의 조직은 비교적 세력의 초창기부터 일절 연줄없는 외부인의 영입에 적극적이였고, 그런 그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철저히 능력중심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언뜻 조조의 조직이 유비의 그것보다 현대적이고 실용적이여 보이지만 그만큼 조조조직의 분위기는 유비조직의 분위기에 비해 차가울 수 밖에 없다. 유비 휘하의 관우, 장비, 조운, 제갈량 등은 어지간히 큰 실책을 해도 큰 벌을 받거나 좌천될 걱정 없지만 조조 휘하의 문무장들은 큰 실책 시, 좌천과 징벌이 따르고 그에 따라 상하관계가 역전되는 일도 흔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조의 첫 거병 때부터 조조를 따라 숱한 생사고비 넘겼으나 후에 영입된 장료가 더 인정받아, 결국 장료에게 지위역전 당한 악진, 조조의 원정마다 확실한 후방보급으로 조조가 안심하고 전력투구하게끔한 선봉장 못지 않은 공적이 숱함에도 조조에게 밉보인 후 끝내 자살을 강요받아 죽은 순욱 등.... 그런 살벌한 분위기의 조직에서 역시 지도자인들 쉽사리 자기 속내를 드러내기도 쉽잖았을 것이고, 그런 무섭고 엄한 지도자에게 선뜻 다가가는 이도 많지 않았을 것임에도.... 조조에게 곽가는 자기 속내를 알아주고 다가와주는 고마운 존재요, 자기 의견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미더운 인물이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딱히 눈에 보이는 성과가 몇 없음에도 곽가는 조조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당부.
안녕하세요. Three Kingdoms Generation.의 필자입니다. 일단 삼국지관련 내용의 글이 아닌 점 먼저 사과드립니다.ㅎ 오늘은 이것저것 몇 가지 말씀 올리고자 타이핑을 합니다. 1. 표절. 연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데다, 아직 카드나 팔로워가 많은 편은 아닙니다만... 그럼에도 이리저리 빙글을 뒤적이다보니 몇 곳에서 제가 쓴 글과 흡사한 카드들을 몇 번 목격했습니다. '삼국지'라는 역사 및 소설관련 컨텐츠를 다루다보니 당연히 내용은 비슷할 수 있는 점 십분 헤아리지만 읽어보면 제가 쓴 문장의 구성이나 표현, 어휘까지 같거나 매우 흡사한 경우들이 있더라구요. 제가 쓰는 이 칼럼은 보시는 분들의 생각 이상으로 공을 들여서 쓰여지고 있습니다. 제가 삼국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어린시절부터 찾아보고 조사하고 공부하며 모은 수 많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쓰여지며, 이것들을 알맞게 구성하여 쓰다보면 순수 작성시간만 짧게는 2~3시간, 길면 5시간 가까이 소요됩니다. '아니, 겨우 스마트폰으로 글 쓰는게 뭐 이리 오래 걸려???' 하실 수도 있어 의아하시겠지만... 저도 그냥 베껴 쓰거나 하는게 아닌 제가 아는 지식들을 좀 읽기 편하게, 그나마 재미있게, 되도록 자연스럽게 쓰고자 어떻게 쓸 지를 고민하고 다듬으며 쓰다보니 그리 시간이 걸리며 저도 제 생업과 사생활이 있다보니 마냥 시간을 내기 힘들어 보통 2~4일에 걸쳐 써나갑니다. 물론, 제 칼럼들을 베끼셨던 참고하셨던... 그분들이 사익을 추구하여 그러시진 않은 거 같긴 해도 어쨌건 저로서는 수일 간 공들인 제 성과물이 누군가에 의해 몇 분만에 표절 되는건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전에 어느 독자분께서 자신이 활동하는 커뮤니티에 출처를 밝혀서 사용하고 싶다고 하셨던 적이 있었는데, 얼마던지 스크랩, 클립해 가셔도 좋고 오히려 그렇게 여기저기 이리저리 제 글이 퍼져나가 삼국지에 대해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느끼시는 분이 늘어나는 것은 저로서도 즐겁고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단순 표절은 금해주셨으면 하고 지적재산권에 대한 존중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혹자는 '니가 첨부하는 그림과 사진은 그럼 뭐냐'라고 하실 수도 있지만, 제가 첨부하는 매체들은 누가 봐도 어디의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것들이고 매체의 저작권자들이 이미 이익추구가 아닌 분야들에 대한 개방을 허한 매체들이라 제 글을 베끼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2. 부진. 안타깝게도 점점 연재가 진행될 수록 초반에 비해 '팔로워증가', '좋아요', '클립' 등의 수치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그 원인으로는 첫째가 너무 더딘 제 "연재속도", 두번째는 "인기스타의 부재"가 아닌가 싶네요ㅎ 일단 연재속도에 대해서는 참 뭐라 드릴 말이 없습니다. 헌데 위에서 말씀 드렸듯, 글 쓰는데 걸리는 시간 자체가 길고 또 제가 전문작가가 아닌 관계로 일과 사생활이 병행되며 연재하다보니 아무래도 더뎌지네요;;, 그렇다고 스피드를 좀 내보자고 분량을 줄이자니 이 칼럼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의 기대치와 수준을 고려할 때, 분량의 축소는 곧 내용의 양과 질의 하락.. 다시말해, 퀄리티 하향의 우려가 생길거 같아서.. 물론, 길게 쓴다 능사는 아니지만 다른 분야와 달리 역사관련물은 내용이 디테일할수록 즉, 분량이 길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연재속도 탓에 분량을 타협할 생각은 없다보니 그런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댓글보면 조운, 조조, 장료, 여몽 등등 네임밸류 있는 인물들에 대한 니즈가 많은데, 일전에 이미 말씀 드린 적이 있지만 제 나름으로는 그런 인기인물, 유명인물들이 초반에 나오기 시작하면 뒤로 갈수록 이 칼럼의 위력이 반감할까 싶은 우려로 좀 아껴두던 터였습니다. 게다가 비록 우리가 잘 모르는, 혹은 아예 처음 듣는 이름의 인물들을 제가 재조명하여 그들 역시 역사 속의 주요했던 이들임을 부각시켜주고픈 마음도 컸기에ㅎㅎ 아무튼 연재속도도 최대한 스퍼트를 올려보고 앞으로는 중간중간 이쯤이다 싶을 때 유명인물들도 게시하도록 하겠습니다. ^^ 3. 부탁. 대신 저도(건방지게) 부탁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읽어주시는 것으로도 참 고맙습니다만..ㅎㅎ 그래도 기왕이면, "좋아요"도 좀 클릭해주시고, 또 "클립" 해가셔서 본인들 컬렉션에도 게시하여 보다 많은 분들이 보실 수 있게끔 홍보도 부탁 드립니다! 나아가 아직 팔로우 안하신 분들은 "팔로우"도 해주십사 고개 숙여 청을 좀 드립니다. 허허허;;; 물론, 다양한 내용의 "댓글"들도 언제나 대환영! 길이와 내용 관계없이 댓글들은 항상 힘이 되거든요. 제가 여기에 글 써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어디 입사지원할 때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그저 취미로 쓰는 것인지라 여러분들의 "팔,좋,클,댓"의 피드백이 제 엔돌핀이고 에너지!! 또, 혹시 Three Kindoms Generation.의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좋은 아이디어나 건의사항 있는 분들은 지금 이 글에 댓글을 좀 부탁드립니다. 4. 출판. 댓글 주시는 분들 중 은근 많은 분들이 해주시는 말 중에 "책 내시면 꼭 살께요!" "한 번 책으로 내보세요ㅎ" 등등이 있습니다. ..ㅋㅋㅋ 출판이라...허헣 일단 누가 책을 내줘야 저도 출판을 하는거겠지만, 제가 전문작가가 아니다보니 필력도 부족하고 또 요즘같은 모바일시대에 설령 책을 낸들, 인쇄간행물이 과연 얼마나 판매가 될지도 의문이고..ㅋ 그리고 이 칼럼독자분들이야 아니라 생각하시겠지만 요새 들어서는 워낙에 미디어가 풍년이다보니 삼국지라는 컨텐츠가 어딘가 모르게 매니악한 소제로 치부된다는 인상도 받습니다만ㅎ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삼국지를 읽지 않은 자와는 벗 삼지 말라"는 말까지 있던 보편적 매체였는데, 지금은 삼국지가 뭔지 모르는 분들도 적잖은 세상 같아서 좀 서글프네요...T-T 여튼 출판관련 말씀들은 그만큼 좋다는 칭찬들이시니 기분좋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엇?! 벌써 새 카드가 올라왔어!?' 하시는 마음으로 반갑게 클릭했더니 왠 쓰잘데없는 사설이냐며 실망하셨을 분들께는 다시 한 번 사과와 양해를 올리며, 삼국지관련 내용은 최대한 빨리 연재할께요! 항상 많은 관심 주시고 찾아 주시며 읽어 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 드리고 싶네요ㅎ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