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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딱 벗고 외교난국 극복한 ‘사우나 대통령’/ 핀란드 일기 ⑤사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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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550만명인 핀란드에는 무려 330만개의 사우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핀란드 관광청 통계) ▲핀란드 사람들에게 사우나는 태어남과 죽음을 함께 하는 신성한 장소이자, 환자의 병을 치유하는 소중한 장소로 활용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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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인구는 약 550만명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무려 330만개의 사우나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핀란드 관광청) 가구당 4인 식구가 있다고 가정하면, 집집마다 하나씩 사우나가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선 '목욕탕'이나 가야 만날 수 있는 사우나가, 이곳에선 일종의 ‘생필품’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우나는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영장이나 피트니스 클럽은 물론, 아파트 같은 가정과 사무실, 심지어 국회의사당에까지 ‘골고루’ 갖춰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솔직히 ‘사우나탕’ 그러면, 약간은 ‘터키탕’ 비슷한, 어찌보면 좀 거시기한 이미지로 통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핀란드에서 사우나는 무척 신성하고도 숭고한 의미를 갖고 있다.(터키 사람들은 터키탕이라는 명칭을 싫어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핀란드에서 사우나를 거론할 때는 ‘절대로’ 거시기한 상상과 연관시키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생명이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생필품

맹추위를 견뎌내야 하는 핀란드에서 ‘사우나’는 생명을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신성한 장소이자, 사람의 마음과 몸을 정화해주는 소중한 장소로 수천년간 기능해 왔다. 핀란드 아기는 태어난지 수개월만에 부모와 함께 사우나에 들어간다. 예전에는 아예 사우나에서 출산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재래식 사우나의 나무 연기와 그을음이 유해세균을 막아주는 일종의 항균장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이 나라 사람들은 경험으로 알았다는 얘기다. 
사우나는 원래 돌을 뜨겁게 달군 뒤, 이 돌에 물을 부어 거기서 올라오는 뜨거운 김을 쬐는 핀란드의 전통 목욕 방식을 말한다. 이를 가리키는 ‘사우나(sauna)’라는 말은 아마도 세상에 가장 널리 알려진 핀란드어의 하나일 것이다. 

이 나라에는 “사우나에 들어가도 병이 낫지 않으면, 다른 방도가 없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처럼 핀란드의 가난한 환자들은, 실제 몸이 아프면 사우나에 들어가서 치료했다고 한다. 그러니 집집마다 사우나가 있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핀란드 사람들은 사우나에서 태어나서, 사우나에서 떠나간다. 숨을 거둔 사람에 대한 일종의 예우로, 유족들이 ‘마지막 사우나’를 해주는 것. 가족들은 사우나에서 고인의 몸을 씻어주고 어루만져 주며, 마지막 작별의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정치인들은 '토론의 장소'로 활용해

핀란드 사람들은 사우나에 들어가서 벌거벗은 자신과 마주하고, 또 타인과 가식없는 모습으로 만나, 진솔한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이런 의미에서 사우나는 현실 정치에서도 훌륭한 기능을 한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토론을 벌이다 막히면, 사우나로 자리를 옮겨 논쟁을 계속 이어가는 것. 

이 나라 정치인들이 ‘사우나 협상’을 즐긴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대표적인 사람이 마티 아티사리(Martti Ahtisaari) 전 대통령(1994~2000년 재임)이다. 그는 외교협상이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사우나를 대화 통로로 활용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대 초반 있었던 인도네시아 아체반군 분쟁이었다. 아티사리 전 대통령은 ‘사우나 대화’를 협상 루트로 활용해 분쟁 해결에 큰 기여를 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다. 

“소련의 공산화 위협으로부터 핀란드를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나라 외교의 거장, 우르호 케코넨(Urho Kekkonen) 전 대통령(1956~1982년 재임)도 사우나를 정치에 활용했다. 그가 집무실에 사우나를 마련해 놓고, 소련 외교관을 초대해서는 ‘벌거벗은’ 상태로 적나라하게 난상토론을 벌여 위기를 극복해 낸 일화는 핀란드에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사우나에서 해서는 안되는 3가지 금기

핀란드에서 사우나는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진솔하며, 그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을 뜻한다. 그런 만큼 이곳에서는 해서는 안되는 몇가지 금기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사우나 안에서 음식을 먹거나 마시면 안된다는 점이다. 둘째는 대화의 주제다. 핀란드 사람들은 사우나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도 온갖 대화를 다 하지만, 종교나 직업에 관한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셋째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휴대폰 알림음을 끄는 것이다. 매일 사우나를 한다는 핀란드인 레톨라(Lehtola)씨는 “사우나는 도시 생활이 지친 현대인들이 조용하게 명상할 수 있는 소중한 장소”라고 말했다. 이런 곳에서 휴대폰 알림음을 끄는 것은 상식 아니냐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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