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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 필수템

이쯤되면 클립해도 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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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바꾸셔야될것같아요~~ 오사카에서만 필요한 교통패스지 일본여행 필수템은 아닌거 같아요~
오사카 주유패스 개강추 근처 유료관광지 왠만한데 거의 무료임
맞아요 또가고 잡네 ^^
오사카패스가 아니라 한신투어리스트요
간사이 쓰루패스에서 고야산이 고산야로 오타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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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차여행을 위한 유용한 툴과 참고도서
일본 기차여행에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일본 기차여행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툴과 정보가 될 만한 책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1. 시각표(時刻表) 일본에서 기차여행을 하다보면 ‘시각표(時刻表)’라는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각표’에는 일본의 모든 기차들의 시간표가 작은 글씨로 빼곡히 씌어 있는데, 성경책보다도 많이 팔린 일본 최고의 베스트셀러라고 합니다. 시각표를 들고 기차여행을 하는 사람은 ‘고수’ (혹은 오타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미리 기차여행의 코스와 시간을 다 조사해서 가기 때문에 시각표를 가져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어떤 분은 수년전에 “인터넷이 편한 건 알지만, 시각표를 넘겨가며 줄을 긋고 행선지를 상상하는 기분을 결코 대체할 순 없다. 초속 5센티미터의 주인공처럼.”이라고 말하더군요. 저도 언젠가는 아무런 사전 계획 없이 시각표만 들고 정처 없이 여행을 떠나보려고 합니다. 2. HyperDia HyperDia는 인터넷 환경에서 PC나 모바일로 검색하는 일본 열차 시각표입니다. 출발역, 도착역, 날짜와 시간을 기입한 후에 검색하면 추천하는 경로들을 시간 순으로 나타내줍니다. 각 경로의 출발과 도착 시간, 환승역, 열차 종류, 소요 시간, 요금 등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어와 영어 버전이 있고, PC는 무료인데 모바일은 유료입니다. 모바일 HyperDia 1년 사용료는 21,000원입니다. 3. 전국철도여행(全国鉄道旅行) 일본 전국의 JR과 사철이 다 나와 있는 철도 노선도입니다. 홋카이도에서 규슈까지의 전국 철도 노선도가 1장의 자바라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여행 갈 곳에 어떤 철도와 역이 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4. 에키벤 ~철도 도시락 여행기~ (하야세 준. AK. 원제 駅弁ひとり旅)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어서 영화로도 만들어진 만화인데, 한국어 번역판이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일본 기차여행에 대해서 가장 많은 정보를 얻고 있는 책입니다. 일본 열도는 물론 오키나와, 대만, 사할린까지 철도, 역, 에키벤에 대한 정보가 구체적이고도 풍부하게 나와 있습니다. 각권의 지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1권 : 규슈(九州) 2권 : 시코쿠(四国)/추고쿠(中国) 3권 : 간사이(関西) 4권 : 홋카이도(北海道)1 (남부 및 중앙부) 5권 : 홋카이도(北海道)2 (동부) 6권 : 홋카이도(北海道)3 (북부) 7권 : 도호쿠(東北)1 (아오모리, 아키타) 8권 : 도호쿠(東北)2 (이와테, 미야기) 9권 : 도호쿠(東北)3 (야마가타, 후쿠시마) 10권 : 기타칸토(北関東) 11권 : 추부(中部)1 (나가노) 12권 : 추부(中部)2 (기후) 13권 : 도카이(東海)1 (나고야) 14권 : 도카이(東海)2 (시즈오카, 야마나시) 15권 : 간토(関東) 별권 : 대만+오키나와편 5. 저스트고 낭만의 일본 기차 여행 (박정배. 시공사) 출판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 방대한 정보로 인해서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책입니다. 비록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중고로 구할 수 있습니다. 6. 기차홀릭 테츠코의 일본철도여행 (문정실. 즐거운상상) 이 책도 출판된 지 10년 가까이 되었지만 많은 아기자기한 정보를 제공해줍니다. 책 제목의 테츠코(鉄子)는 여성 철도 매니아를 일컫는 말입니다. 남성 철도 매니아는 텟짱(鉄ちゃん)이라고 부릅니다. 7. 일본 철도 명물 여행(이토 미키. 에디션더블유) 여성 감성의 기차여행 코스에 대한 정보를 예쁜 그림과 함께 제공하고 있습니다. 8. 홋카이도 보통열차 (오지은. 북노마드) 기차를 좋아하는 가수 오지은 씨가 보통열차를 타고 홋카이도의 구석구석을 2,400km의 거리를 달린 여행기입니다. 그녀는 29살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행하였고, 여행하면서 느낀 청춘과 기차에 대한 생각을 일기처럼 썼습니다. 9. 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 (김혜원. 씨네21북스)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가 한 달간 일본 전국 기차여행을 하면서 스케치한 그림을 중심으로 한 여행기입니다. 10. 일본기차여행 (인페인터글로벌. 꿈의지도) 홋카이도에서 규슈까지 기차여행하기 좋은 일본의 38개 도시와 기차역과 역 주변 관광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 일본의 지역 구분
장비 익덕 (張飛 益德) A.D.166? ~ 221
지난 연재가 너무 과하게 늦었던 것도 있고, 슈퍼스타들을 너무 아끼다 똥이 될 우려도 있기에 슬슬 한 명씩 풀고자 이번 칼럼의 주인공으로 삼국지의 인기지대인 한중일 삼국 모두에서 인기스타요, 페이머스 셀럽이자 역시 숱하디 숱한 연의의 피해자들 중 대표주자인 "장비"로 정했다. 현 중국 허베이성의 바오딩시와 줘저우시 일대인 당시 유주의 탁군 탁현 출생이며 유비 & 간옹과는 동향. 일단 무엇보다... 의아하고도 안타까운 점은, 어쨌건 촉한의 건국자인 소열제 유비의 의형제로서 최측근 Of The 최측근에, 뭣도 아닌 유비의 거병부터 함께 하여 개국공신에 이르도록 무수한 군공을 세우고 민간에 인기도 많던 지금은 물론, 당시에도 슈퍼스타였던 그임에도 명확히 남아있는 사료가 별로 없다. 그렇기에 장비에 대한 갖가지 기록과 스토리들의 7할 가까이가 당시부터 이리저리 입타고 내려온 구전의 민담과 무용담 등등 시대에 따라 살이 붙기 쉬운 요소가 참 많다는 점... 당장 (관우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생년이 정확하지 않다. 각종 삼국지 관련물들을 보면 백정출신이라는 설부터, 몰락 귀족의 후예라는 설... 몰락해서 백정이 되었다는 하이브리드설 등등등 여러 설들이 많으나 어쨌건 기록이 없으니 뭐가 맞다고 확정낼 수는 없다. 다만 후한의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던 옛 이야기는 유방과 항우의 이야기였고, 특히나 유방은 시정잡배에서 황제가 되어 중국을 통일한 인생역전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리얼로 이루어낸 케이스에 유방의 스타일 자체가 당시 서민들이 좋아할 요소가 많았고, 유비 또한 그런 유방의 후예에다 유방의 성공스토리와 엇비슷한 스텝을 밟은지라, 사람들은 유비를 유방에 많이 대응시켰고 그 유방의 무력을 담당했던 번쾌가 개고기장수(개를 직접 도살하는 개백정) 출신인지라 출신이 불분명한 장비를 여기에 대응시킨 부분이 큰 듯 싶다. 게다가 장비의 외모나 말투, 하는 행동 등의 스타일이 대체로 백정이미지를 갖다 붙여도 조금도 어색함이 없었음도 크게 기여한 듯...ㅎㅎ 장비가 어디에서 누구와 뭘 해서 어떤 공을 이루고 무슨 자리에 올라 뭔 일을 했고 등등은 굳이 여기에서 나열하진 않겠다. 오늘 여기에서는 실제의 역사 속 장비와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삼국지연의 속의 장비가 어떤 차이가 나는지, 원래 장비는 어떤 닝겐이였는지를 포커스 삼겠다. 연의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기록을 보더라도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장비의 놀라운 점은 유비를 향한 절대적이고도 맹목적인 "충성"이다. 처음 시작 때의 유비는 진짜 별 볼일 없었다. 그런 유비에게 당시 강자가 승자인 난세에 엄청난 피지컬과 거기서 뿜어지는 무력을 지닌 장비는 헌신적이였고 그랬기에 유관장 셋은 단순한 군신을 떠나 형제나 진배없이 지냈다. 물론, 유비 역시 밑바닥부터 맨주먹으로 출발하여 일국의 황제가 된 양반인만큼 보통내기는 아니였겠지만 어쨌건 유비의 진가는 거듭된 전란을 통해 드러나는 부분들이 컸던만큼... 젊은 시절 유비의 어떤 부분에 그리도 장비가 감복하여 개 따르듯 따랐는지는 놀랍다.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장비'의 이미지는 대개 비슷할텐데, 의리는 있지만 단순무식에 힘과 패기만 앞서는 열혈바보에 술이면 사족 못 쓰고 순진한 면도 있어 속은 여린 듯한 파워얼빵이의 전형일 거다. 좀 모자르고 성깔대로 굴다보니 실수도 많지만 그렇다고 미워할 수만은 없는... 현대에서 그런 비슷한 이미지를 찾아보자면...ㅋ 이 양반과 엇비슷한 "친근한 바보힘맨"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실제의 장비는 지용을 겸비한 용장이였다. 그저 본인의 무에만 의지해 설치던 맹장이 아니였던거다. 장비의 기본 성격은.. 냉정함, 시니컬함, 시크함 등등에 의롭기는 하였으나 일에 있어서 목표지향이 강하여, 포커스가 정해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인물이다. 게다가 따로 어디서 배우거나 공부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전세를 읽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캐치하는 타고난 전략적 혜안이 있었으며, 본인 스스로의 완력과 무예도 굉장했던 터라 전술적으로도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인.. 예를 들어 보자면 이 양반의 그것들과 대체로 일맥상통한다...ㅎㄷㄷ 그리고 나중에 관우편에서도 다루겠지만 조금 언급하자면 역사 속의 실제 이미지는 장비와 관우가 정반대였다. 장비는 늘 매사에 차가우리만치 냉정했고, 오히려 그래보이는 관우가 매사에 성격이 앞섰던 인물이다. 특히 관우와의 차이가 있다면 관우는 전형적인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타입. 그렇기에 사대부나 고관대작 등을 대할 때 오히려 고압적이였으나 병사들이나 백성들에게는 관대하여 병사들의 사소한 실수 등은 눈감아 주었던 반면.. 장비는 정반대로 자신이 보기에 뭔가 있다싶은 재주를 지닌 이들은 경공했으나 병사들에게는 몹시도 냉혹하게 대했고 사소한 실책조차 군법을 적용시켜, 별 일 아닌 것으로 죽거나 초죽음에 이르는 병사들이 많았다...;; 당장 이 부분은 "제갈량"을 대하는 둘의 태도로 압축된다. 관우는 제갈량이 제아무리 대단한 면모들을 보여도 그를 낮춰 여겼으며, 고분고분하지 않았고 후에 제갈량의 공식직책이 자신의 위에 오르자, 마지못해 앞에서는 숙일 지언정, 속으로는 끝내 제갈량을 인정 않았던 반면... 장비는 역시 처음에는 제갈량을 탐탁치 않아 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제갈량이 실력발휘하자, 바로 꿇고 제갈량을 따랐다. 물론, 제갈량의 입장에서 스스로 낮춰 관우의 아래임을 자처하고 관우를 공경으로 대했다면야 관우와의 갈등이 없었겠지만, 유비를 보좌하여 세력전체를 이끄는 2인자 자리의 제갈량의 입장에서, 관우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끌려 다닐 경우, 이도저도 안될 수 있기에 내린 판단이였을 것. 서주에서 여포에게 패한 것도 연의에서처럼 본분을 망각한 체, 술에 곯아 있다 그리된 것 아닌.. 여포와 내통한 조표의 배신 탓이였으며 장비가 술을 좋아하여 자주 마셨던 것은 사실이나 적어도 사료 속에는 그가 만취하여 일을 그르친 적은 없었다. 유비와 제갈량도 그 참전에 긴장을 탔던 위의 전국구급 지용겸비의 명장인 "장합"이 이끄는 군세를 오로지 자신만의 전략과 무용으로 박멸에 가까운 대승을 이끈 것도 연의에서는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 연의에서도 나온 부분이지만 당양 장판파에서 조조의 수천 여 병력을 자신의 기지와 용력만으로 쫓아냈고 수성하는 측의 노장 "엄안"을 몇 배나 불리한 공성측에 서서 심지어 장기전을 벌여 승리를 따냄은 물론, 일절 항복의사 없이 장비를 모욕하던 엄안을 의와 이익을 계산하여 풀어준 것 역시 연의에서는 장비의 이변으로 나오지만, 엄연한 장비의 그릇에서 비롯된 일이였다. 유비가 왕위에 오르며 군사령관 중 가장 실세에 요직인 "한중태수"직을 모든이들과 심지어 자신조차 자기가 될 거라고 예견했음에도 반전으로 "위연"이 임명되자, 불평불만 한 마디 없이 쿨하게 인정하기도 했다. 익주점령 후 익주의 이름난 명사인 "유파"를 찾아갔으나 유파는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는지, 자신과 교류하고자 친히 찾아온 정복군주의 의형제요, 무력깡패 장비를 면전에서 모욕했으나, 장비는 빡쳐서 단박에 유파의 허리를 뒤로 접긴 커녕, 그냥 크게 웃고는 가버렸다. 물론, 장비의 면모가 모두 연의와 정사 불일치를 이루는 것만은 아니고 둘 모두에서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바로 그의 "무력"이다.... 후한 당시는 물론, 삼국시대를 거쳐 그 이후 진에 이르도록 '홀로 만 명과 싸울만 하다'는 뜻의 "만인지적"이라 평가를 받았던 것은 관우와 장비뿐이였다. 그 대단하다는 여포나 마초, 조운조차 들어본 적 없는 평가를 장비는 받아낸 것이였다. 물론, 저 말은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라, 당연히 실제의 장비가 10,000.명과 다이떠서 이길 리는 없으나 그만큼의 무력과 전술적 가치를 지녔다는 극찬인 것이다. 뻥이 수두룩한 연의에서처럼 누군가와 1vs1의 일기토를 벌인 일은 없지만 적군과의 접전에서는 몸소 창을 들고 뛰쳐나가 적병들을 마구 도륙하여 피투성이가 되곤 했다고 한다. 유비세력에 투항 직후, 정신 못 차린체 상황파악 안되서 유비를 주군이라거나 직급으로 부르지 않고 유비의 자를 불러제끼던 마초를 살인눈빛 한 번으로 깨갱하게 만든 것도 다 장비의 그 무시무시한 무력에서 비롯된 것이였다. 말투 자체는 좀 거칠고 격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한 마디 한 마디가 돌직구에, 아니다 싶으면 비꼬는 것도 잘 했던 거 같다. 그러나 말수 자체는 많지 않았고 본인이 필요할 때 필요한 말만 하는 스타일이였다. 거의 매끼마다 고기를 상당량 먹었다고 하며, 게임을 비롯해 각종 미디어들에 늘 레드컬러 계통의 두건을 두르고 나오지만 실제로 그가 붉은 두건을 걸쳤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일본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무력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다른 이유없고 일본의 전국시대 당시 "혼다 타다카츠"라는 최강의 전사의 활약을 지켜 본 "오다 노부나가"가 그를 장비에 비견되는 맹장이다!라고 한 말의 영향으로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일본인들 뇌리에 '삼국시대 킹왕짱무력깡패 = 장비'로 각인되는 계기가 되었.. 이미 일전에 삼.이.높.에서 다룬 바가 있지만, 장비하면 떠오르는 "장팔사모"는 장비가 본 적조차 없는 무기로서 그냥 찌르기용 창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활"을 쓴다는 기록이 그 어디에도 없다. 물론, 정말 쓴 적이 없는건지... 쓰긴 썼어도 기록이 누락된 것인지는 알 길 없지만. 삼국지의 본고장 중국에서는 관우, 조조, 유비, 제갈량과 늘 TOP 5에 드는 인기스타다. 아마도 실제여부 떠나 삼국지연의 및 구전민담 등 속의 장비의 이미지는 서민들이 친근함을 느낄 요소들이 많기에 그런 듯 하다. (의리, 순박, 충성 등등) 그의 최후는 연의에도 나와있듯... 이릉대전을 앞둔 출병준비 와중에 "범강"과 "장달"에 의한 암살이 맞는데, 연의처럼 무슨 흰색으로 병력을 도배하려다 그런 내용은 없고, 범과 장 저 둘은 그냥 지금으로 치면 낮게는 분대장, 높게 쳐도 소대장급의 잡장들이였는데 뭔지는 몰라도 군법을 어겼고... 비록 그렇다고는 해도 그에 비해 너무나 가혹한 군법집행, 다시 말해 '가혹행위'가 있었으며 이에 크게 원한을 품은 둘의 상관살해의 확률이 높다. 위에서 언급했듯, 장비는 병사들을 대함에 있어 상당히 엄정했고 군법 적용에 얄짤이 없었다. 물론, 마구잡이로 횡포를 부리는 건 아니였어도 어쨌건 사소한 실책에도 가중처벌, 가혹행위가 적잖아, 실제로도 늘 그 부분을 염려해오던 유비가 이릉대전 앞두고도 누차 장비에게 이 부분에 대한 우려를 표하지만 끝내..... 일각에서는 범강과 장달이 오에서 장비킬링을 위해 보낸 킬러들이라는 설도 있으나 그냥 진짜 추측일뿐, 현재까지 드러난 자료에 의한 객관적 근거들만 볼 때는 그냥 가혹행위에 따른 프레깅이 맞는듯 하다는..T-T 슬하에 2남2녀를 두었고, 장남은 장포, 차남은 장소. 연의에는 부친의 뒤를 이어 이릉대전의 선봉을 서는 장수로 나오는 장포는 진정 뻥이며, 장비보다 먼저 요절... 심지어 무장이였는지조차 기록없고, 장소는 문관에 두 딸은 모두 유선의 황후가 되어 장비의 가문은 후대에 황실의 외척이 되었다. 본인의 무예와 병력을 통솔하고 전략적으로 용병을 쓰는 부분 등 후한 말 ~ 삼국시대에 이르러 실질적인 최강의 용장인 장비였다. 그러나 실제의 모습과 다르게 왜곡된 이미지로 인해 긴긴시간 인기를 얻은 그였으나 실제의 모습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단순인기를 넘어, 존경을 받진 않았을런지ㅎ
간손미
삼국지에 대해 좀 깊이 아시는 분들이라면 "간손미"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듯.... 이는 무슨 각선미, 육체미, 백치미같은 그런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이 아닌 촉의 개국공신 3인방인 "간옹", "손건", "미축"을 묶은 표현이다. 저들은 형제지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서로 되게 친해서 붙어 다녔다는 기록도 없지만 삼국지 통틀어 유관장 삼형제와 함께 3명이 패키지화 된 유이한 그룹. 유관장은 의형제일지언정 어쨌건 형제지간에... 그 인지도나 삼국지 내에서의 비중이 넘사벽이지만 저 셋은 뭐랄까... 각자 개개인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함에 본의 아니게 묶여진 감이 크다. '간손미'라는 표현 자체는 이미 기존에 삼국지 관련 커뮤니티들에서 떠돌던 표현을, 웹툰작가 "이말년"이 웹툰에서 쓰며 대중화 시켰지만.... 사실 이미 삼국시대 당시부터 저들 셋은 묶이기 시작했다. 당장 삼국지정사의 저자 진수가 저들의 열전을 '미-손-간'순으로 엮어놓았으며, 삼국지연의 내에서도 수경선생 "사마휘"와 유비간 이런 뉘앙스의 대화가 오가는 부분이 있다. 휘 : 니는 뭐 그리 밑에 애들이 없냐?...ㅎ 비 : 어허, 뭔솔!? 내 밑에 관장조 안보임? 휘 : 걔들이야 그냥 주먹이나 쓰는 애들이고~ 비 : 머리 쓰는 애들로 간손미 안보임? 휘 : 간손미??!?!!?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 : .....,..(ㅅㅂ) 이런 연유로 저 위, 이말년의 언급처럼 남 주기는 아깝지만 또 막상 내가 쓰자니 영 별로인 이도저도 아닌 문관들이나 삼국지내의 인물들, 나아가 국내 삼국지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저런 부류들을 싸잡는 대명사로까지 나아간 표현.. Ex.1) 본인 : 너희회사 너희팀에 새 팀장 왔다며? 친구 : 응! 전 회사에서 같이 하던 대리도 데려왔어. 본인 : 일 잘 하디?ㅎㅎ 친구 : 오우, 시박 완전 조던피펜이야... 둘이 일 다해 본인 : 오지네ㅎㄷㄷ 친구 : 니네 팀장이랑 차석 과장 둘도 일 잘 한다지 않음? 본인 : ㅋㅋㅋ뭐래~ 갸들 그냥 간손미임...ㅋ Ex.2) 본인 : 역쉬 걸스데이는 혜리가 짱인듯... 친구 : 뭔 소리여ㅋ 걔야 그냥 얼굴 마담인데 본인 : 닥쳐!! 걸데는 혜리 빼면 죄다 간손미!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예문일뿐, 실제 걸스데이 멤버들간 팀내 기여도 및 수익성, 인기 등과 일절 무관함을 알림.) (허나 내 취향과는 유관함을 알림.. 혜리야, 사랑한다. 이 오빠, 너에게 작은 보탬이나마 될까 싶어 오늘도 일부러 팀장말 쌩까고 세븐일레븐 가서 혜리도시락 먹었다.) 이렇듯, 혜리는 2015년 아르바이트생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내용의 알바몬 CF로 고용노동부의 감사패를 받았고 창렬하다는 말을 만들어낸 장본인이자 만악의 근원이던 세븐일레븐의 PB도시락 모델이 되며 세븐일레븐의 르네상스를 이끄는 선두마가 되었으며 혜리도시락의 단순 모델을 넘어, 메뉴선정에도 상당한 의견을 제시한 책임형 모델로서 인성과 프로패셔널, 미모를 겸비한 개념돌의 대표주자다. 자, 잠시의 방황을 접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간손미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보자면... 유비의 생애가 제갈량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뉠 수 있는데, 제갈량을 만난 후의 유비는 말이 필요없는 성공으로 점철되나 그 전의 유비는 정말 의지할 땅 한 쪼가리 없이 변변한 세력도 형성 못 하며 산전수전 다 겪고 떠돌기 급급했던 비젼없는 군주였지만 원소나 조조, 도겸 및 유표 등등 당시 나름 한따까리씩 하는 군웅들은 하나같이 유비의 합류를 반겼고 아무리 시련을 겪더라도 기어이 이겨내고 극복하며 살아남았던 그 비결에는 간손미의 노력과 헌신이 녹아들어 있었다. 쉽게 말해, 한 편의 액션블록버스터를 만든다고 가정할 때 제작자 유비, 감독 제갈량, 주연배우 관우, 장비, 조운, 조연 마초, 황충, 위연, 방통 등이라면 간손미는 별 비중없고 눈에 안띄지만 그래도 없으면 안되며 누군가는 해야하는 촬영팀, 메이컵, 코디, 미술팀, 음향팀, 매니져, 밥차 이모 같은 그런 포지션. 사실 간손미는 이렇게 셋이 하나로 묶어 버리는 것이 실례인 촉한의 개국공신들! (이라며 이미 나도 이들을 묶어 한 칼럼에 쓰는 실례는 넘기자.) 자, 그럼 간손미를 한 번 따로따로 살펴보기로! 간옹 헌화 (簡雍 憲和) / A.D.? ~ ? 촉한의 인물들이 대개 그러하듯, 사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 간손미 중 가장 왕고인데, 고향이 유주의 탁군 탁현... 지금 중국 허베이성의 바오딩시와 줘저우시인 곳인데, 그렇다. 바로 유비의 고향인 그곳! 유비와 동향으로 삼국지연의에는 묘사되지 않지만 유비와 어린 시절부터 친한 친구 사이였다. 고로, 유비 휘하에서는 의형제인 관우 & 장비보다 유비와 알고 지내며 함께 한 시간이 가장 긴 인물이다. 유비가 기의한 이래 입촉까지 함께 했으며, 어찌보면 당연하고, 어찌보면 놀랍게도 유비의 지시에 절대복종하긴 했으나 유비를 주군의 예로 대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지고, 성격은 요샛말로 하면 개그캐였던 듯. 유표에게 의지하기까지 허구언 날, 박살나고 패배하고 쫓기고 도주하여 사실상 패배주의, 열등의식, 암담함이 가득했을 유비진영에 분위기를 다독이며 살림살이를 챙기고 병사모집과 관리 및 잡다한 일들의 처리를 하는 일종의 행정을 도맡았다. 툭하면 져서 쫓기고 그 와중에 죽고 다치는 이도 한둘이 아니였을 당시 유비세력에서 항상 넉살좋고 입담좋고 성격좋아 친구이자 집단 최고권자인 유비부터 그 이하 부하들까지 농담 및 음담패설로 웃음을 안기고 분위기를 북돋던 간옹의 역할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고 또 그래서 평가절하 되기도 하지만 그때 비참하던 유비집단에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였다. 제갈량 영입 전은 물론, 영입 후에도 유비는 업무 외적인 부분의 넋두리나 상담 등은 간옹을 불렀다고 한다. 다만, 사람 자체는 자유분방했는지.... 딱히 원리원칙을 세세히 준수하진 않은 듯 보이며, 그래서인지 복색도 늘 격식없이 대충 걸쳐 입었고 위의 언급처럼 비록 충성하며 상명하복할지언정 유비를 주군아닌 친구로 대했던 간옹이기에 훗날 유비가 형주에서 기반이 서서히 안정되며 초창기부터 유비의 정에 끌려 따라다니던 이들 외에 철저히 비즈니스적으로 영입된 인재들이 늘어나던 와중에도 간옹은 그들을 모두 편히 살갑게 동생들 대하듯 했다고 한다. 제갈량이 군사직을 맡아 전략회의를 진행하는 엄숙하고 긴장된 순간조차도 간옹은 한쪽 구석에 의자 몇 개를 이어붙이고는 비스듬히 누워서 회의에 참석하거나 뭔가 군것질거리를 우물거리며 회의에 참여했다. 심지어 회의 도중 화장실에 가고 싶거나 본인이 들을 부분을 다 들었다 싶으면 회의 중간에 휙~ 나가기도 했고... 식사 중 자신의 찬을 다 먹어놓고는 관우의 자리로 가서, 관우의 찬을 집어먹기도(!?) 했으며.. 장비에게 자신이 더 힘이 셀 것 같으니 팔씨름을 하자고(...) 도발을 걸기도 했다. .... (장비가 응했는지 여부는 사료가 남지 않았다만 왠지...) 조운에게도 활솜씨를 겨루자며 조운이 먼저 과녁을 맞추자, 그 과녁을 잠시 바라보고는 조운은 자신의 상대가 못될 것 같으니 다음에 겨루자며 가버렸다... 보다시피 내용만 보면 진정 민폐갑에 진상 캐릭터다. 그러나 대단한건 이러한 간옹의 언행들에 대해 타인들의 불쾌함, 불만, 이의제기 등에 대한 기록들이 일절 없다. 유비진영의 모두가 저런 간옹의 진상에 모두 애정으로 보듬을 존나 호인들만 있었을 리도 없고.. 심지어 간옹이 건드린 인물들 중에는 성격이나 인성이 결코 순둥이라고 볼 수 없는 관우와 장비도 있으며, 그렇다고 제갈량이나 관장조같은 천하의 히어로들이 감히 어쩌지 못할 위엄이나 권한이 있던 것도 아니다. 이는 쉽게 말해 타인들이 간옹의 저런 격의없이 구는 언행들을 '쟤는 뭐 원래 저렇지~' 라며 넘겼다는거다. 그리고 간옹 역시 그닥 격식이나 예를 차리지 않을 뿐, 기강을 해이하게 하거나 타인에 직간접적 폐를 끼치는 수준의 막장 난봉꾼은 아니였다는 말이기도 하다. 입촉 후, 유비가 전후안정화 작업 중 식량난을 우려해 금주령을 내림은 물론, 심지어 양조관련 도구의 보유자도 처벌하려는 법령을 입법시키려 하자 어느 날 간옹은 유비와 밖을 나갔다 지나는 남녀를 보며 저들을 당장 간음죄로 벌하시라 하였는데, 유비가 그게 뭔소린지 묻자 '저 남녀는 간음을 할 수 있는 도구(......)를 갖고 있으니 응당 벌 해야 한다'고 하자, 이를 알아들은 유비는 법령을 철회했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다. 삼국지연의에도 나오지만 유비가 서촉정벌 당시 막타에 몰린 성도의 유장에 항복을 권하는 최후통첩 전할 사자로 들여보낸 것도 간옹. 연의에서는 거만한 간옹이 유장의 한 신하에게 꾸짖음을 듣고 자세를 고쳤다고 나오나 그런 이야기는 남아있지 않다. 간옹이 특유의 입담으로 유장을 설득했다고도 하지만, 이건 좀 오버같고 당시 유비군 VS 유장군의 대치구도상 간옹이 아니라 중풍에 치매도 같이 앓아서 나보고 가끔 자기 마누라라고 부르시는 우리 옆집 할아버지가 갔어도 유장은 항복했을 것이 자명하니 딱히 간옹의 공이라고 하기는 좀 뭐한 부분은 있다. .... 간옹의 기록은 확실히 유비의 입촉까지 함께 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만, 그 후로 그가 언제 어찌 죽었는지가 역사기록에 없다. 허나 정황상 이릉대전 이전에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꼬장꼬장히 팩트폭행으로 유비를 그로기상태로 만드는데 능했던 법정과 마찬가지로 역시 살아있었다면 유비를 격의없이 대하며 말발로 추스려 이릉대전을 제지하는데 한몫을 하진 않았을지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손건 공우 (孫乾 公祐) / A.D.? ~ 214 현 중국 산둥성 웨이팡시의 북부지역 일대인 당시의 청주 북해군 출신이며, 유비가 도겸을 이어 서주자사가 되던 때 천거받고 유비 휘하에 임관하여 그때부터 유비를 섬기고 간손미 중 가장 임관이 늦다. 즉 짬이 셋 중 제일 안된다는 말. 간옹과 마찬가지로 이 양반 역시 자세한 기록이 많지 않은데, 촉한출신 닝겐들의 기록량이 다 이 지경인건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일단 삼국 중 국력이 가장 후달렸던데다, 촉이 망한 후 강유가 종회를 꼬드겨 반란을 일으켰다가 제압당할 당시 성도의 황궁이 큰 손상을 입으며 기록들이 대거 유실된 탓이 크기도 하다. 하여간 손건은 유비 휘하에서 외교력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난세의 떠돌이 유비에게 굉장히 요긴한 역량을 발휘했다. 조조의 통수를 치고 원소 휘하로 들어감을 타진 때도, 다시 원소를 떠나 유표에게 전향해 갈 때도, 유비는 손건을 사자로 보내 상대군주를 설득시켰다. 주요한 외교업적이 꼴랑 두 건이지만, 이 두 건은 유비의 생존에, 유비세력의 흥망에 절대적이고 직접적인 임팩트를 가졌던 두 건으로서... 당시 원소 자체도 워낙 녹록치 않은데다 원소 주위에는 최정상급 책사들이 손건을 다구리 놨을 게 자명함에, 유표 역시 연의처럼 죽을 날 기다리며 숨만 쉬던 호구가 절대 아님은 물론, 반유비정서가 강하던 외척 측근들도 이해로 설득시킨 손건은 분명 대단한 외교가였으며... 그 당시 '사자(사신)'은 사실상 목숨을 내놓고 맡는 보직이였다.. 상대진영에서 분위기가 말리거나 자칫 실수를 하면 그 자리에서 목이 날아가는 건 부지기수에, 당시 교통인프라도 최악에, 치안도 개판인지라 또 중국이 좀 넓어야지, 며칠 걸려 험하고 먼 길 말타고 오가는 건 여간 힘든일이 아니였으며 중간에 혹여 도적단을 만나면 그냥 끝이였다. "네 이놈들! 난 유황숙님의 사자다! 길을 비키지 못할까!!" 이딴거 안먹혔다. 이미 그 전에 나름 세력이 적잖던 조조조차 부친을 재물 노린 이들에게 잃었을 판에, 하물며 당시로서는 별 볼일 없던 유비 나부랭이의 사신 부스러기 따위는 그냥 죽이거나 끌고 간들, 유비로서는 딱히 방도도 없었다. 하지만 손건은 살아남았다. 그것도 자신이 맡은 바 소임을 완수해내면서. 물론, 손건의 외교성과 또한 일각에서는 너프되는게 사실. 그들의 주장은 손건의 외교성과라기보다 비록 유비가 실세는 부족했던건 맞으나 명분상으로는 원소나 유표의 입장에서 제법 매력적인 카드였다는 점을 내세운다. 천자가 직접 황실 족보를 뒤져 자신의 숙부뻘임을 입증한 황숙에, 천자를 겁박한 공공의 적 조조에게 별 볼일 없는 기반임에도 대립각을 세우고 패해서 쫓길 지언정 맞서는 유비는 여타 군주들에게는 천자를 등에 업은 조조와 맞붙음에도 오히려 명분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구실이였기 때문. 이렇듯 어찌보면 간손미들 중 가장 몸고생이 많았던 손건은 의지할 땅 한뙈기 없어, 자신이 몸 던지고 목숨 바쳐 원소나 유표에게 입지를 대신 구걸해야 했던 주군이 서촉정벌을 성공 후 제대로 된 근거지를 자력으로 얻는 감격스러운 광경을 본 후 얼마 못 가 숨을 거두고 만다..... 그의 경험과 경력상 장수했다면 이전에 없던 자신의 주군의 위상까지 더해져 더욱 강력한 외교카드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리 되지 못해 안타까운.. 직접 비교는 좀 어려우나 간손미들 중 실질적인 업적이 가장 많고 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그는 관우, 장비, 조운, 간옹 등처럼 유비와의 인연에 의한 것이 아닌 비즈니스적으로 임관한 인재임에도 유비가 여포에게 서주를 잃고 시작되는 험난하기 그지없는 대모험을 함께 겪은 충신 중의 충신이다. 미축 자중 (麋竺 子仲) / A.D.? ~ 221) 간손미 중 훗날 가장 직위가 높았으며 심지어 그 빛나는 갓갈량보다 높았던... 여러모로 간손미 중 가장 뒤에 위치한게 억울할 법한 그는 당시의 서주 동해군, 오늘의 중국 산둥성 린이시가 고향이며 도겸을 섬기다 도겸이 사망 후 유비를 인수자로 정하며 자연스레 유비를 섬기게 되며, 가신의 수가 만 명에 다다를 정도라던 서주 대대로 이름난 대부호집안의 금수저였던 그의 험난한 인생여정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재산도 재산인데다 인근 백성들의 구휼에 신경쓰고 워낙에 성격도 온화하고 인자하여 황실 중앙정부에 천거된 적도 있는 서주의 호족출신 명사로서 솔까말 당시의 별 볼일 없던 떠돌이 군벌집단인 유비세력에 숙이고 들어갈 급이 절대 아니였다. 심지어 정사에는 인물이 좋았다는 평까지 남아있으며 연의에서는 아예 언급조차 안되었지만 상당한 명사수(!)에 승마실력도 훌륭한(!!) 문무겸전(!!!)이였다고 한다. 이런 서주의 토니 스타크 미축은 유비에게 인생을 걸게 된다.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유비에게 모두 기탁하는 한 편.. 나름 당시에 미인이라 평이 자자하던 막내 여동생(미부인)도 유비에게 심지어 정실도 아닌 첩으로나마 바치고 자신의 동생 미방과 함께 유비를 받들어 섬기는데.... 당시 이 미축의 유비에 대한 도박에 가까워 보이는 올인은 유비가 신야에서 조조군에게 박살나 쫓길 때까지도 도도 아닌 빽도에 가까웠으나, 훗날 유비가 입촉 후 군사장군에 임명된 제갈량보다 위인 안한장군에 임명되며 모였음이 입증된다. 제법 나쁘지 않은 무재를 갖췄음에도 워낙에 성격이 고상하고 온후한 탓에 카리스마가 절대적으로 필수인 군지휘에는 걸맞지 않다 느낀 사람 잘보기쟁이인 유비에 의해 철저히 문관으로만 쓰여졌다. 사실.. 간옹과 손건, 미축 모두 꽤 초창기부터 유비를 따르며 갖은 모진 개고생을 겪고 생사고락을 넘나드는 와중에도 유비를 향한 충절이 변함없음은 마찬가지였으나 미축의 그것은 다른 둘과는 그 유가 다른 것이... 그냥 친한 친구 따라나선 간옹, 추천받고 입사하여 직장생활 시작한 손건에 비해 미축은 그때껏 누린 모든 호사를 버리고 가진 모든 것을 유비에게 바쳤다는 점이다. 이 재산 기탁 덕에 유비세력은 이리저리 터지며 쫓길 지언정 유지가 되었던 것이며, 이런 미축의 올인이 없었다면 유비는 진작에 야심을 접고 유력군주의 부하가 되었거나, 난전 중이나 떠도는 와중에 객사.... 아무리 운이 좋았다한들 훗날의 한중왕을 넘어 촉한의 초대황제까지는 절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비 역시 별 도드라지는 공적이 없음에도, 그닥 능력이 특출나지 않음에도 그런 미축을 은인으로 여기며 챙겨, 미축의 생전 직위는 자신의 두 아우인 관우와 장비에 못지 않던 조운과 심지어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제갈량보다 상석에 올랐고 당연히 관장조제갈 및 여타 인물들은 그에 대해 일체 이견이 없었다. 게다가 미축은 원체 군자에 호인인지라, 초창기 유비세력의 대주주임에도 세력의 운영방침에 일절 관여없이 오직 유비의 지시에만 철저히 따랐고 나이로나 짬으로나 댈 게 안되는 제갈량을 공경으로 대했다. 이런 미축이였건만.... 그 끝은 간손미 중 가장 안타까웠던 게, 일단 여동생인 미부인의 사망.. 연의에서는 유비의 정실이 감부인, 그 다음 세컨이 미부인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미부인을 감부인보다 먼저 만났고 서주 최대 부호의 딸이요, 자신 세력의 대주주의 누이기에 그 서열과 대우가 응당 감부인보다 위였다. 게다가 유비는 그런 미,감부인 이전에도 처가 있었으나 이리저리 떠도는 통에 연이 끊겼는지, 자식도 없던 상태에 미부인의 존재는 서주에서 유비가 조조에 패해 쫓기면서부터 언급되지 않는 걸로 보아 그 당시 조조의 포로가 된 듯 하다. 아무튼 그렇게 여동생은 유비에게 바치고 얼마 되지 않아 연이 끊기고... 미축 말년 망타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동생, "미방의 배신"이였다. 미방 이 씨부랄새끼의 배신 및 오로의 귀순은 심지어 유비의 형제요 당시 형주 총사령관 관우의 패전과 사망.. 게다가 유비의 본진 형주를 잃는데 직접적 영향을 끼쳤고 미축은 그게 너무 수치스럽고 죄스러워 스스로를 결박, 유비에게 꿇고 울며 죽음을 요청한다. 사실, 당시의 트렌드로 볼 때... 미방의 죄는 미축뿐 아니라 미씨일가를 싹쓸고도 모자른 대역죄였으나, 유비는 이는 미축의 잘못이 없다며 그의 결박을 직접 풀고 일절 처벌이나 강등없이 전과 같이 대한다. 허나... 오히려 그런 유비의 관용은 미축의 양심을 더욱 괴롭게 하였고 그 좌절감에 병을 얻어 앓다 유비가 제위에 오른 해 사망한다....T-T (미방 개새끼...) 이처럼 간손미들은 그저 마냥 머릿수만 채우며 밥이나 축내는 짬타이거들이 아니였다. 솔직히... 나도 한 때 그랬지만, 대부분 삼국지 속 인물들의 역량과 능력을 코에이의 게임 속 데이터로 판단해버리는 탓에 저들처럼 수치화 시킬 수 없는 부분에서 묵묵히 소임을 했던 이들이 평가절하된 것이 크다. 게다가 촉한의 불운스러운 사료 부족 역시 이유기도 하고.... 아무튼 사람 잘 보고 잘 쓰기로 삼국시대 인물들 중 원탑에 가깝던 유비가 저들을 끝까지 중용했다는 것은 그들이 제갈량, 방통, 서서, 마량, 장완, 비위 등 촉한문관의 슈퍼스타들에 비해서는 어떨지 모르나 충분히 자기 몫은 해내던 비범치만은 않았던 인물들이란 반증이기도 하다. 비록 유비 따라 고생한 기간들이 더 길긴 하다만 어쨌건 셋 다 그렇게 개고생하며 따르던 주군이 왕위, 제위에 오르는 건 보되.. 몇 년 후 그런 성공의 정점 찍은 주군이 "이릉대전"이란 무리수를 두다가 다시 고꾸라지는 건 보기 전에들 죽었으니 어찌보면 다들 보람차게 눈을 감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들의 능력과 존재감에 대한 판단은 각자가 알아서 할지언정, 확실한건 이들이 없었다면 절대 결코 여러분들이 아는 유비도 없었을 거라는 점.... 이 부분에 대해 여러분들은 인정 못할지라도 정작 당시의 당사자인 유비와 그 휘하 문무백관들은 모두 인정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나가서 돈 잘 벌어오는 아버지도, 학교에서 일진인 첫째도, 전교회장을 맡고 성적도 상위 1%인 막내도, 동네미녀는 전부 건드린 삼촌도, 모두 집에서 중요하고 필요한 영웅들이지만 이런 이들 뒤에는 이들이 마음 편히 자신의 일과 임무에 전념할 수 있게 집안일을 해놓으시고 뒷바라지 하시는 어머니가 계시듯... 간손미는 눈에 띄지 않았을 뿐 그 어느 누구 못지 않은 충성과 성실함으로 주군을 보필한 훌륭한 인재들이였다 이제는 간손미를 무시하지 말고, 더 나아가 기왕이면 간손미라 셋을 묶지 말자.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5.
지난번 삼.이.높.4에서 중국의 삼국시대 당시 위세를 떨치던 소수민족들에 대해 다루다 분량이 길어지며 일부 민족들을 이월시켰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나머지 썰을 푸는 시간ㅎㅎ 본문에 앞서, 정말 기약없이 다음편이 늦어진 점에 대한 사죄의 말씀을 고개 숙여 전한다는... T-T 생애 가장 바쁜 삶을 살다보니 진정 도저히 시간적, 정신적, 체력적 여유가 허락되지 않았기에 (-_-;;) 아무튼 그래서 사과는 다시 차차 드리기로 하고 저번에 못 다룬 소수민족들인 선비, 저, 무릉만과 남만에 대해! 그럼 거두절미, 바로 본론 Go Go~~~ 선비(鮮卑) 이름만 들어보면 맨날 진지하고 엄숙한 선비충같은 부류들 같이 느껴지지만 이미 한자부터 다른, 그냥 발음만 같은... 우리가 떠올리는 그 선비들과는 근본부터 다른 종족들! 지금의 중국 허베이성에서 내이멍구(내몽골) 자치구 일대에 걸쳐 중세시대에 번성했던 '동호'라 일컬어지던 유목민들의 무리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전투민족인 흉노들에게 대대적으로 작살나며 내이멍구 동부의 선비산이라는 산 일대로 쫓겨 정착한 이들이 "선비족"이다. 참고로 오환족들도 저 동호 무리들 중 일부가 '다싱안링산맥'의 한 봉우리인 오환산 일대로 쫓겨가 무리지은데서 이름이 붙은 케이스이므로 선비와 오환은 그 뿌리가 같다는게 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ㅎ 막상 삼국지의 배경인 후한 ~ 삼국시대 ~ 진나라 때까지는 그리 큰 두각을 나타내던 종족들은 아니였다. 일단 무엇보다 흉노에게 여러 차례 발린 적이 있는데다, 중원의 근간인 한족들과 조우하려면 흉노의 영향력이 큰 지역들을 거쳐야 했기에 굳이 천적인 흉노까지 스킵하며 한족들에 겐세이 줄만큼 수나 파워가 강한 애들은 아니였... 그러다 흉노들이 남북으로 갈리며 약화, 여기에 선비들의 거주지역과 한족들의 거주지역 중간에 있던 북흉노들이 위와 진에 털려 위용을 잃으면서부터 두각을 드러내, 진나라도 점점 나가리의 뉘앙스를 풍기자 땅따먹기하러 쏟아져 내려왔고 이때부터 "오호십육국시대"가 개막된다. 결국.. 우리에게 익숙한 삼국지의 본 배경되는 후한에서 삼국시대를 거쳐 진으로 중국이 재통일 될 때까지 별 영향 못 미치고 북동쪽에 처박혀 있던 쭈구리들였던 것. 심지어, 문화적으로도 그닥 특색이 모호했던지라.. 당나라가 들어설 무렵에는 흐지부지 없어진 종족들이다. 덧붙이자면... 흉노나 한족들에게는 쭈구리였던 얘들이지만, 우리측의 부여에게 있어서는 천적과도 같던 이들이였다.. 부여는 내내 이 선비충들에게 시달림을 면치 못하다 고구려가 건국되고도 한동안 시달림이 지속.. 후에 그 대단한 "광개토태왕"이 요동일대에서 갈아마신 후에야 악연을 끊었다. 저(氐) 위에서 언급한 오호십육국시대의 오호 중 하나를 차지할 정도였음에도 그닥 기록이 별로 없는 종족이다. (참고로 오호는 흉노, 선비, 강, 저, 갈) 이들은 위와 촉 사이의 서량의 남서에서 익주의 북서인 무도일대에 자리잡은 종족들이였고 앞서 설명했던 흉노, 선비, 오환 등등이 유목민족들이였던데 반해 이들은 강족처럼 정착민족들이여서 농업과 임업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강족들과 거주지가 인접 또는 겹쳤는데, 강족들이 숫적우위에 더 와일드하다보니 많이 뭍힌 감이 없지 않고, 삼국지연의나 기타 창작물들에서는 그냥 죄다 강족으로 싸잡히는 비애도 있다... 당장 마초 & 한수가 조조를 씹어먹으러 서량의 세력들을 죄다 싹쓸어 올 때 그들의 주력이 강족전사들이라고만 표현되어 있지만 강족과 저족의 비율이 7:3 가량 되어, 저족들의 비중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였음에도 나관중은 그냥 무시하고 다 강족처리 했다. 한편... 기록이 부족하다는건 그만큼 기록자인 한족들 입장에서 별 임팩트를 못 느꼈다는 소리. 사실, 동북쪽의 소수민족들은 넓디 넓은 벌판에서 수 많은 가축 때를 휘몰아 쏘다니며 늘 말을 타고 또 원래 저런 벌판은 물도, 식량도 넉넉치 않으며 대체로 육식위주다보니 아무래도 더 거칠었던 반면... 서쪽의 소수민족들은 그럴 벌판이 없는 산악지형에 거주하며 수렵, 채집생활도 하긴 했으나 역시 식량의 주요루트는 농사였던 관계로 채식비율도 더 높고 식량수급이 아무래도 떠돌이 유목들보다는 나았기에 좀 덜 거칠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저 당시에 "말"이 갖는 기동력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파괴력이 어마무시했기에 대부분 1인 2마 이상인 유목민들이 말보다 농사짓는 소와 더 가까운 산악민족들보다는 공격력이 앞설 수 밖에 없었을거 같다. 현세에 이르러, 우리회사만 봐도... 늘 사무실에 정착해 자기자리에서 농사짓듯 모니터만 보고 밥도 식당밥, 도시락 먹는 내근직들보다는 맨날 이리저리 차 타고 거래처와 클라이언트 찾아 떠돌며 편의점에서 MSG와 나트륨 범벅인 백종원 CU도시락이 주식인 영업직 인간들이 더 거칠고 개새끼들이 많다.. (나도 그 개새끼들 중 한 마리인건 함정) 무릉만(武陵蠻) 삼국지의 자타공인 바퀴벌레 종족들이다.... 삼국시대 당시에 만약 핵전쟁이 났어도 쥐, 바퀴벌레와 함께 절대 멸종 안했을거 같은 한족들 입장에서는 진심 진저리 넌더리 났을 종족들인데, 이들의 포지션을 현대로 옮겨와 보자면 아프가니스탄에서 긴긴시간 우주제일 천조국을 엿 먹인 탈레반과 비슷하고 역시 몇 십년 전 천조국을 학 떼게 만든 베트콩과도 비슷하다. 이름만 봐도 어디 사는지 드러나는 이들은 말 그대로 형주의 "무릉"일대에 퍼져 살았다. 삼국지를 연의나 게임으로만 접한 분들 입장에서는 여태 언급된 소수민족들은 아직 소개안한 남만족과 더불어 거의 중국의 변두리에 살았다지만 무릉만들이 사는 무릉은 중국의 한복판인데 뭔 소수민족??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도 그럴만한게, 중국이 원체 넓고 큰데다 그 넓은 땅이 전부 평야도 아니고 도심지도 아니다. 심지어 지금보다 훨씬 인간 적고, 인프라가 꽝이라 미개척지, 오지가 많던 1,900여 년 전 중국은 말할 거 없어, 당시의 형주는 비교적 인구도 많고 인프라와 교통이 발달한 강릉, 강하, 장사 정도까진 꽤 살기 괜찮은 곳이였지만 무릉은 그냥 완전 험준한 협곡 투성이의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는 오지로서... 여러분들 영화 '아바타' 다들 봤나? 거기의 파랗고 길쭉한 나비족들 사는 판도라와 엇비슷한 그런 환경이였다. 무릉만들의 전술은 바로 저 거지같은 험지의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전"이였고... 이 전술 덕에 한족들의 끊임없는 토벌릴레이 속에서도 종족의 근간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유표는 손 놓고 없는셈치는 땅이였고, 삼국이 정립되어 가는 와중에 오에서 황개, 반준, 여대, 보즐 등등이 수차례 토벌에 성공은 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그냥 겁 주고 주의만 시킨 수준일뿐, 이들의 세력존폐를 위협할 수준의 데미지를 주는데는 실패했다. 쉽게 말해, 그냥 이들로 하여금 지들 영역에서만 짱 박혀 지지고 볶고 알아서 하게 하고 한족의 영역으로 나오지 않게끔 억제만 한 수준이였던 것. 당장 역사를 조금만 더 올라가보면, 이들의 존재는 한족의 애물단지같은 위치였고, 하다하다 안되자, 소수민족 토벌의 달인인 마원(마초의 조상) 까지 고령임에도 출병시킬만큼이였다. 허나 소수민족 상대로 킬 수가 수두룩 하던 그 마원조차도 무릉만들 상대로는 지지부진하다 끝내 전장에서 병사한다. 무릉만들도 순수혈통 단일민족은 아니고 그 일대에 퍼져 사는 여러 종족들을 싸잡아 일컫는 호칭이였는데 무릉만들 중 일부는 식인풍습도 있었던 듯... 뭐... 저걸로도 무릉만들 수준이 어땠는지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해도 된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인 삼국지 매니아분들에게 있어서, 무릉만의 슈퍼스타는 역시 "사마가"인데, 사마가의 등장은 유비가 관, 장 두 아우 사망에 있어 만악의 근원인 오를 정벌하고자 이릉대전을 개전함에, 촉에 협조하는 것으로 나온다. 당시 걸핏하면 자기들 족치려는 오를 극혐하던 무릉만들에게, 승전시에 자치권을 보장하는 것을 조건으로 촉한의 특산물인 최고급 비단을 잔뜩 챙겨 무릉만들을 설득했던 결과였다. 당시, 비단 싸들고 무릉만들과 협상하러 나섰던 촉한의 네고시에이터는 바로 백미 "마량"이였는데... 당시 자치권도 자치권이지만 그건 나중 이야기고 일단 마량을 필두 삼은 촉한의 협상단이 가져간 비단을 본 무릉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였다고 한다. 하긴, 그도 그럴게.. 여러분들도 맨날 동네시장 신발가게에서 아티스나 슈퍼카미트만 사신다가 옆동네에서 에어조던 시리즈별로 다 갖고 오며 도와달라면 눈 뒤집힐 듯. (아티스나 슈퍼카미트 알면 무조건 아재 당첨) 허나,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이릉대전에서 촉이 대박살이 나며 따라갔던 무릉만들도 무시 못할 피해를 입었다... 참고로 여느 소수민족들이 그렇듯, 무릉만들도, "We Are The 무릉만!" 이라며 하나로 뭉쳐진 단일세력이 아닌, 여러 크고 작은 부족들의 연합 비슷한 것이였고 여러분들이 아는 사마가는 연의의 표현처럼 무릉만들의 왕이 아니라, 그런 여러 무릉만들의 부족들 중 한 부족을 이끄는 부족장들 중 하나였다. 남만은 분량도 좀 될 것 같고 아무래도 다른 소수민족들에 비해 삼국지 매니아분들이 더욱 궁금해하며 흥미 가지실 것같은 종족이라 차라리 따로 다루는 게 나을 듯 싶다는 생각에 따로 추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너무나 죄송합니다, 독자여러분들.. 제가 연재를 늦게 하는 편이기는 했지만 진짜 이번에는 도가 지나친 수준의 텀이 생기고야 말았네요... T-T 하지만 저 역시 뒹굴고 노느라 연재가 미뤄진 것은 절대 아니였어요. 저도 좋아서, 즐거움과 보람에 시간내서 글 쓰는데 장시간 못 그러니 참 답답했습니다. 그 와중에 재촉없이 묵묵히 기다려주신 분들, 애정과 관심 담아 재촉해주신 분들... 모두 죄송하고 또 고맙습니다. 그 긴시간 동안 연재 없음에도 팔로워는 줄지 않아서 기뻤다는 ㅎㅎ 아무튼 다시 연재에 힘쓰겠습니다!
JLPT/JPT 고득점자가 말해주는 일본어 공부방법!!!!!!!!!
뒤늦게 구입한 마스다미리의 '수짱'시리즈 내가 일본에 있었던 12년도에 이미 일본에선 열풍이였고 서점에서 표지를 본적은 있었다. 그때 샀으면 좀더 저렴했으려나. 내용은 가벼운것 같지만 곰곰히 생각하게 하는 그런내용이다 난 주인공과 일체가 되어 읽을수 있었다. 같은 나이대라 그런가봐. 흑흑 ---------------------------------------------------------------------------------------------------------- http://blog.naver.com/akoing <----저의 블로그 아직 부족한 실력인데도 몇몇분들이 포스팅 언제하냐고 기분좋은 압박(!)을 주셔셔 드디어 정리한 내용을 올리게되었다.(사실 포스팅한다고 한지 3개월,,) 어디까지나 개인의 공부방법이니 참고만 하셨으면 좋겠다. 절대적인 방법이 아니니까요. (저는 JLPT N1 만점과 JPT900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1)단어만 모여있는 단어장과는 이별하라. 아마 한자때문에 머리아픈 학생들이 많을거라 생각한다. 나 중학교때 한자과목이 컴퓨터로 대체되었다. 그래서 나는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한자를 접하게 되었다. 보통 공부 할때 단어장 만드는데 난 일본어도 마찬가지고 토익공부 할때도(참고로 토익은 800점이다) 단어장 같은걸 본적이 없다. 토익공부때는 어쩔수 없이 토익보카를 사기는 했지만 그 단어를 다 외워야 한다 생각하니 정말 공부가 하기 싫었다. 특히 한자는 그게 그거 같애. 처음에는 한자에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때려치고 싶었다. (예->功와攻 둘다 '공'자다.하지만 첨에 시작할땐 구분이 전혀 안갔어.이런게 수두룩해.아마 공부해본 사람은 알겠지) 단어장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그 과정을 반복하기 싫어서 나는 항상 '문장속에서 단어를 암기'했다. 단어만 외우면 정작 독해할때 의미가 이루어 지지않는 경우가 많다. 문장과 함께 단어를 보는 과정을 꾸준히 하다 보면 ​단어의 의미와 문장구성력도 같이 키울수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모르는 단어와 구절 문법은 모조리 형광펜으로 표시를 한다. 단어의 경우는 뜻뿐만이 아니라 읽지못하는 경우에도 무조건 형광펜 표시를 하라.시간날때마다 하려고 노력하는 천성인어인데 나는 저렇게 모르는 부분에 표시를 한다. 저기서 끝내면 안되는거 알지? 의미를 꼭 확인해야 한다. 나의경우는 메이쿄사전이나 고지엔(전자사전), 혹은 일본야후를 통해 확인한다. 그리고 복습을 잊지 않는다. 다음날 보면 저게 무슨뜻이고 어떻게 읽는지 까먹거든. 모르는 단어 형광펜 체크-> 의미및 요미카타 확인 ->복습->그냥봐도 의미를 알때까지 다시보기. ​이 과정을 반복하는게 나의 단어및 독해 공부이다. 이렇게 여러번 해도 못읽거나 모르는 단어는 따로 노트에 적어둔다. 천성인어는 초급자에게 추천하지 않는다. 어려워서 좌절만 하고 공부 때려치게 된다. ​본인이 관심있는 분야의 기사를 찾아하는걸 추천(일본야후에 가서 아사히신문이든 마이니치든 검색해보길 추천) 나는 처음 소설로 공부를 했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그냥 무작정 일서로 구입해서 모르는 단어 동그라미 쳐서 알때까지 사전찾아 읽고 읽고 읽었다. ​ ​ 그게 요아래 사진​↓ 하도 읽고 읽어서 찢어지고 더러워 졌다. (결국 소장용으로 한권 더 삼) 지금은 다 읽을수 있는 단어인데도 처음 초급자일때는 정말 까마득했다. 거의 전페이지가 체크투성이 사실 시험공부를 위해서라면 소설보다는 기사를 추천한다. 기사에서는 시험에 출제되는 한자들을 자주 접할수 있기때문에 시험을 목적으로 한다면 기사를 읽는게 나을거 같다. 사실 이렇게 하다보면 독해공부는 별도로 할 필요가 없다. 이 자체가 독해공부이기 때문이다.​ ​ ​ ​2)교재는 여러권 사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한권으로. ​지금은 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처음 JLPT를 공부했을때 봤던 책은 당시 유명했던 '능시족보'였다. 난 그거외엔 교재를 사지 않았다. (단, JPT모의고사 문제집은 많이 샀다) 댓글로 나에게 교재를 추천해달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특별한 문제집이란 없는거 같다. 각자 레벨에 맞는 교재가 분명 있기때문에 내가 모르는 상태에서 추천은 어려울 뿐더러​ 난 서점 갈일도 없어서 문제집에 관해선 전혀 모른다.​ 요즘은 교재들이 정리가 잘 되어 있기때문에 직접 서점에 가서 자기가 공부하기 편하겠다싶은거 골라라. 나같은 경우 빽빽한거 보면 공부하기 싫어지기 때문에 최대한 간결하면서 알찬(?)거 골라서 했다. 한자/문법/청해 요정도 각각 한권으로 되어있는거 사도 좋을거 같다. 단 모의문제집은 여러권 사서 풀어보는게 좋은거 같다. 특히 JPT의 경우는 방대한 양을 공부해야 하므로 모의문제집을 많이 풀어보고 또 당연히 틀린건 오답노트를 만들어야 한다. 너무 틀려서 만들 엄두가 안난다고 하면 뭐 안 틀릴 만큼 공부하는 수 밖에 오답노트는 내가 어떤 유형의 문제에서 틀리는지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험전에 그거 하나 들고가서 살짝만 봐도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나의 경우는 열심히 만들어 놓은 오답엑기스를 분당 모 고등학교에​서 시험보고 두고왔다. 가지러 가기 귀찮아서 안가기도 했지만 엄청 아까비,,, 3)추가 정보 ​어떤 공부를 하던지 기본은 가장 중요하다. 언어에서 가장 기본은 바로 단어이다. 정말 진부하지만 단어를 많이 습득하기 위해선 많이, 자주 보는수 밖에 없다. 초급수준일때 나는 한자는 눈으로 외웠다. 가뜩이나 모르는 단어를 손으로까지 쓰려고 하니 정말 하기 싫더라. 그래서 한자를 눈으로 최대한 기억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부수들이 미묘하게 다른 단어에서 매번 틀리는 것이였다. 그래서 그 뒤로는 안보고 쓸수 있을정도로 직접 손으로 익히는 연습을 했다. (하기는 싫었다,,) ​시험을 코 앞에 둔 사람은 눈으로 최대한 익히는것이 도움이 될것이다. 그리고 일본어를 좀더 진득하게 하고 싶다면 직접 노트에 써봐라. 나는 아직도 천성인어를 한번씩 노트에 다 써보는 작업을 한다. 그만큼 외국어는 끊임없이 보고보고 봐야한다. 내가 말한대로 문장과 같이 단어를 익히면 독해공부도 되면서 문장에서 접속사나 조사나 문법들이 어떻게 쓰이는지 저절로 공부가 된다. 사실 이 과정만 익숙해지면 문법따로 단어따로 독해따로 할 필요가 없다. 만약 긴 문단을 매번 공부하기 벅차다면 문제집에서 나오는 짧은예문들로 연습을 해보고 양을 늘려가면 좋을거 같다. ​ 일본어 공부를 당황하지 말고 뽝​ 이것으로 나의 공부방법은 끄읏♡ http://blog.naver.com/akoing (블로그에 오시면 더 많은 이야기를 읽을수 있어요)
허저 중강 (許褚 仲康) A.D.? ~ ?
사람 보는 안목도 훌륭했고 용인술도 뛰어났으며 철저한 능력 위주의 인재기용 방식을 추구한 실리주의자 "조조"의 휘하에는 모두가 알다시피 삼국시대 당시 가장 많고 두터운 인재풀을 자랑한 삼국시대의 레알 마드리드 라고 할 수 있었고 응당 그런 조조 아래에는 뛰어난 무장들도 참 많았다. 여러모로 뛰어나거나 조조와 코드가 맞아 신임을 얻은 장수들도 여럿 있었지만, 사료를 살피고 그 모든 것들을 토대로 볼 때 조조에게 '인간적인 애정'을 가장 많이 받았다 느껴지는 장수가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허저"였다. 오늘의 주인공은 이 진짜 "스트롱맨"인 이 인물로 간다. 오늘 날, 중국 안후이성 보저우시 출신인 허저는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며 당시 온갖 히어로들.. 그중에도 특히 범인을 훌쩍 초월하는 피지컬과 신체능력을 자랑하는 차이니즈 슈퍼히어로들 중에서도 가히 압도적인 진짜 '스트롱맨'이였음이 기록에 나온다. 삼국지연의에도 등장하는 허저 관련 에피소드들 중 허저가 조조 휘하로 임관 전... 고향에 살 당시 1만 여명 이상의 대규모 도적떼가 허저의 고향에 침공했고 대치에 지친 양측이 휴전을 합의하며 도적들의 곡식과 허저측의 소를 물물교환 하는 와중, 소가 놀라 달아나자 그 소의 꼬리를 한 손(!?!)으로 잡고 백여 걸음을 끌고 갔다는 이 말같잖고 믿기지 않는 스토리가 엄연하게도 위서의 허저전에 실려있다.... 당시 후한말에 일반적으로 사육하던 소의 품종, 암수(♂♀)여부, 소의 연령, 소의 영양상태 등은 알 수 없다. 그러나 품종여부 떠나 소라는 동물 자체가 원체 크고 암수의 무게차도 상당하지만 암컷인들 일반인에게 끌어 당겨질 무게는 아니며 어린 송아지 또한 지금 이 글 쓰는 나, 읽는 댁들이 힘으로 해볼 수준을 가뿐히 넘어서고 당시 허저측이 처한 환경이 열악해 사람도 제대로 못 먹어 오죽하면 도적떼에게 고기를 주고 곡식을 받아오려는 시도까지 한 점등 비추면 소인들 제대로 먹어 평소의 몸상태는 아니였겠으나 그렇다한들 소는 소인지라 어쨌건 사람이 일신의 용력만으로 한 손끌이를 할 생물이 절대 결코 아님은 명백하다. 게다가 소의 꼬리를 잡아끌었다는건 소 또한 순순히 끌려가지 않고 그러지 않으려 끌려가는 반대방향으로 가려고 용을 썼다는 이야기인데... 전 중국 및 전인류사에서 최강의 파워맨이라 일컬어지는 항우가 이런 허저보다 힘 좋았을까 싶을만큼 여간 대단한 힘이 아니다. 위서에 의하면 신장도 "여덟 자 남짓" 이라 하는데, 당시 후한 말 기준의 여덟 자가 현대 기준의 거의 190cm에 가깝고 '남짓'이라는 표현은 여덟 자를 좀 넘는다는 뜻. 게다가 후한 말 관련 모든 역사서들 중 유일하게 허저는 허리둘레에 대한 언급이 있다. 당시 단위로 "10위"나 되는 허리둘레를 지녔다고 나오며 이 역시 현대기준 무려 115cm(45inch가 넘는다!!)라는... 당장 이 수치는 체격이 작은 편은 아닌 내 가슴둘레를 넘어선다.. 아마도 위에 언급된 인간계 끝자락급의 파워를 볼 때 엄청난 근육질이였을 것으로 보이며 저런 피지컬까지 지닌 것으로 보아, 대략 상상해보면 '브록 레스너'나 '밥 샙' 정도 되는 체구를 가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그런 거구들은 지금도 길에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들 쳐다볼만큼 눈에 띄는 엄청난 거한들인데, 성인남성의 평균신장이 146cm 가량 정도였을 후한 말의 중국에서는 그야말로 단순 거인을 넘어서, 방금 화장실 다녀왔더라도 마주하면 소변을 지릴 괴물이였음이 분명하다. 이런 엄청난 신체조건 + 신체능력을 지닌 초인 허저는 조조가 허저의 고향 일대를 점령하자 자신을 따르던 무리들을 이끌고 조조휘하로 가는데, 당시의 조조 또한 허저의 체구를 보고 심히 놀랐다는 기록이 있고 이 당시 "실로 나의 번쾌가 될만하다!!" 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조조는 허저와 그가 이끌고 온 장정들을 고스란히 자신의 근위대 즉, 최측 호위대로 임명했다고 하는데 당시같은 난세에 당시 조조가 듣보잡이 아니였음에도 그런 새로 갓 합류한 이들에게 자신의 신변경호를 맡긴 것을 보면 허저를 굉장히 좋게 보고 신뢰했던 모양인데, 이때부터 조조는 허저에게 반한 듯 싶고 조조의 알음알음 허저 챙기기가 시작되었던거 같다.ㅎㅎ 허저는 생김이나 체구, 그 압도적인 신체능력 등을 갖추고도 전혀 그에 어울리지 않는 샤이가이였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눈에 띄는 것도 싫어해서 조조가 장수들을 집결하면 가장 구석이나 뒷편에 숨겨지지도 않는 체구를 한껏 움츠려 섰다고 한다. 조조는 장수들이 군공을 세우면 많은 이들 앞에서 당사자를 불러내 크게 칭찬하는 방법으로 당사자를 띄워주고 다른이들도 분발을 유도했는데, 부끄럼쟁이 허저는 간혹 공을 세우고도 이런 수 많은 사람들 앞에 불려나가 주목을 받고 추켜지는 것에 상당히 큰 부담을 갖고 있었고... 조조가 그를 앞으로 호명해도 못 들은체 딴청을 부리고 밍기적대다 거듭 그를 불러도 쌩까는 허저를 조조가 호통을 쳐 부른 후에야 마지못해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성격이 저런 사람이다보니 말도 거의 없었던 듯. 그러나 할 말은 하는 편이였던거 같고 하루는 형주방면 총사령관이던 조인이 급한 보고를 위해 허창으로 갔는데 당시 조조가 바쁜 정무 중이였고 조인은 맡은 중책이 중책인지라 조조를 기다릴 겨를은 없어 허저에게라도 메모를 전달하려 허저를 불렀다. 허저는 조조의 인척이자 최측근이고 방면군 사령관인 조인의 부름을 거절할 수는 없어 조인에게 갔는데.. 조인 : 아, 허중강! 나 지금 쫌 급한데 말 좀 전해줘! 허저 : 기다리시면 전하 곧 나오십니다.. 이러고는 조인의 대꾸도 듣지 않고 바로 휭~ 조조에게 돌아갔고 이날 이후 조인은 허저를 벼르기 시작한다. 조인은 다시 정욱을 불러 이 일을 이야기했고 정욱이 듣고 놀라 허저에게 가서 물었다. 정욱 : 중강! 사회생활 참 못하네.. 조장군 성격 몰라? 전하의 친척에 측근에 개국공신인데 왜 그러셨대? 허저 : 암만 그래봐야 저 사람은 방면 맡는 바깥사람이고 난 전하의 신변경호를 맡았는데 내가 왜 전하의 허락없이 외부인을 만납니까... 이 에피소드가 조조의 귀에 들어가자 안그래도 이쁨받던 허저는 더욱 조조의 사랑을 받았다. 허저와 조조는 아무래도 주군과 호위관이다보니 서로 붙어있는 시간이 길었는데, 허저는 종종 옷매무새가 허술하거나 한 경우 조조가 이를 먼저 보면 직접 옷매를 다시 챙겨주기도 했고, 조조가 식사시에 조조곁에 서서 조조의 식사를 지켜보는 허저에게 같이 식사를 권해서 허저가 응하면 함께 먹기도 했다. 허저는 자신이 좋아하는 찬이 있으면 응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며 응하지 않았다.... 허저가 체격이 체격인지라 허저가 타는 말은 금새 지쳐 여러 마리를 번갈며 탔는데, 허저가 탈 말은 조조가 직접 선별해 골라줬고 경우에 따라 자신이 타고 있는 말과 바꿔타기도 했는데, 주군이 신하와 말을 바꿔 타는 것은 당시 "말"이라는 동물의 군사적, 물질적 가치를 고려하면 대단한 호의를 베푸는 것이였다. 게다가 당시의 조조가 타는 말이 예삿말들도 아니였고.. 이는 마치 내가 새로 간 회사 사장님이 외근 나가며 업무용 레이를 타는 내게 자신의 아우디 Q7을 타고 가라며 바꿔 주는 것이나 진배 없는 것이다. 조조의 경호실장이면 거의 대부분 조조의 가장 근처에 있다보니 전장에 나가 지휘를 맡은 적이 드물지만 없진 않다. 양에서의 장수와 전투 당시 돌격대를 맡아 돌진하여 적의 기세를 꺾었던 적도 있고, 관도대전과 원소 사후, 원소의 잔당들을 정벌하는 중 업군 포위전 당시에도 소수나마 병력을 이끌고 나선 적 있다. 하지만 사람을 적재적소에 잘 쓰는 조조가 그를 호위관으로만 거의 중용하고 전장에 내보낸 횟수가 다섯 손에 꼽히는 걸 보면 통솔능력은 별 볼일 없었던 것 같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종종 허저의 일기토 내용들이 나오던데 올뻥이다. 허저는 누군가와 1vs1로 전투에서 맞붙은 적이 없다. 전위와 조조의 경호패키지로 묶음처리 되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둘은 연의에서처럼 서로 맞붙은 적도 없고 심지어 둘이 얼굴을 마주한 적조차 없다. 왜냐 하면 실제 역사에서는 전위가 이미 사망한 후에 허저가 조조휘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의 내용 및 이를 토대로 캐릭터들의 능력치를 데이터화시킨 코에이의 삼국지 게임 내의 허저 어빌리티만 보면, 왠지 자기 이름이나 쓸 수 있을지.. 1부터 10까지 숫자는 셀 수나 있을런지 싶을 힘 쎈 바보로 그려지지만 절대 그런 사람은 아니였다. 조조에게 임관 전에도 고향에서 도적떼를 상대로, 또 조조에게 임관 하면서도 자신을 따르던 적잖은 무리들이 있었던 점 등으로 봐서 아주 근본도 없는 사람이 아니였고 정사나 위서, 그의 열전 등 어딜 봐도 '허저는 빠가였다'는 식의 언급은 진짜 1도 없다. 다만... 워낙 별 말이 없고, 게다가 이게 좀 치명적인데 허저는 평상시에 입을 약간 벌린 눈도 촛점없는 멍한 어딜 보는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이 표정 탓에 그의 별명은 "호치(虎癡)"가 된 것.. 저 허저의 유명한 닉네임 호치의 호는 범 호, 다시 말해 전장이나 임무수행 및 조조곁을 지킬 때의 그의 호랑이같은 무시무시한 기세를 뜻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뒤에 붙은 저 '어리석을 치(癡)' 인데... 저 치가 바로 허저의 그런 평상시 표정 탓에 붙은 것이였다. 그치만 허저입장에서 이것도 좀 억울한게, 조조곁에 있거나 전장이거나 뭐 그러면 모르지만 진짜 아무일없는 평상시에 조조가 내전에서 업무 보거나 천자를 알현, 또는 자거나 등등 그럴 때의 허저는 혼자 긴 시간을 문앞에 서 있어야 하는데 이 당시에 무슨 스마트폰이 있어서 허저가 유튜브나 빙글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쨌건 근무시간인데 이어폰끼고 음악 들을 것도 아니고, 진짜 할 수 있는거 없이 서 있는데 누군들 표정이 저리 멍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고 영국 왕실근위병들처럼 뭐 교대를 하는 것도 아니였을 것이고.... 당연히 허저는 본인의 저 별명을 싫어했고 위나라 내부에도 감히 허저앞에서 저 별명을 입에 담을 수 있을 힘과 용기를 지닌 자도 없었지만 어쨌건 허저가 기피하던 저 닉네임은 훗날... 동관에서 마초, 한수와 마주할 때 마초가 바로 달려가 조조를 개 때려잡듯 하려다 조조가 데려간 허저의 비쥬얼을 보고 짐짓 쫄은 마초가 "조공에게는 호후(虎侯)가 있다는데,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말해준 후부터 "호후(虎侯)"로 격상된다. 삼국지연의에서 업을 함락 후, 깐죽대는 허유를 빡친 허저가 죽이는 씬이 나오지만 허구다. 저런 일 자체가 없었고, 허저의 성격상 단지 저렇게 깝친다고 하여 아무나 썽큼썽큼 죽이는 스타일이 아니였다. 일에 있어서는 더할나위없이 용맹무쌍했지만 평상시도 거칠고 격한 그런 사람이 아니였다. 평소에는 온순하니 풀 뜯지만 맹수가 다가오면 날뛰는 아프리카 물소같은 타입이였던듯 싶다. 조조가 죽자 탈진하여 쓰러질만큼 울부짖었으며 어찌나 심신이 상할만큼 슬퍼했는지 각혈까지 했다고 한다... 조비 또한 허저를 근위로 삼았는데, 조조가 허저를 자신의 최측에서 경호하는 소수의 경호대를 이끄는 경호실장역을 시켰다면, 조비는 황실전체를 경호하는 황실근위대를 이끄는 근위대장같은 직책을 맡겼다. 허저는 생몰연대가 명확히 사료에 나와있진 않지만 조조의 죽음에 이어 그 아들 조비의 죽음도 봤다. 물론, 조비가 그리 오래 못산 탓도 있으나 아무튼 주군부자의 죽음을 모두 겪고 조조의 손자인 조예대에 사망한다. 여러 정황들 볼 때, 조예재위기에는 사실상 은퇴상태로서 원로예우를 받았던거 같고, 조예 재위 후 그리 오래지 않아서 사망한 듯. 사인에 대한 별 다른 언급도 없고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사망당시의 허저나이가 상당한 고령이였음으로 추정되기에 그냥 노환에 의한 병사였을 듯 싶다. 사실... 주군의 최측근 경호는 그리 공을 세우기가 쉽지 않은 자리다. 그럼에도 허저를 아끼던 조조는 그런 허저가 혹여라도 기가 죽을까, 늘 그가 있음에 자신이 마음 편할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큰 공이라며 그를 치켰고. 가끔은 허저를 전장에도 내보냈다. 허저가 근위대장임에도 몇 차례 전투에 나섰고 비록 몇 차례 안된다고는 해도 어쨌건 모두 승리했는데 추측해 보건데 이는 조조가 허저를 장수로서의 공을 세울 수 있도록 별 다른 지휘통솔능력이 없어 대병을 이끌기는 무리인 그가 소수병력을 이끌고나마 충분히 승리할 법한 전투에 가려 보내 허저로 하여금 주워 먹게끔 했던 배려로 보여진다. 허저 또한 박식똘똘이까진 아니여도 자신을 아끼는 그런 조조의 마음씀씀이를 캐치할 정도는 충분히 되었고 조조를 깊게 공경해 따랐으며 심지어 조조가 그에게 휴식을 명해도 허저는 이를 따르지 않고 거의 자는 시간을 제하면 조조의 지근거리에서 머물렀다. 삼국지 등장인물들 중 통틀어도 손 꼽힐만한 막강한 피지컬과 그에 따른 용맹과 괴력을 겸한 그가 전장을 휘젓고 싶지 않았을리가 없다. 하루종일 자신의 엄청난 신체를 서 있는데 써야함이 실로 괴로웠거나 자괴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책임감과 충성으로 묵묵히 해냈다. 비록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부여받더라도 이를 최선 다해 충실히 해내는 프로패셔널. 그렇기에 조조는 늘 자신 곁에 시립해 서 있는 그를 대함에 있어, 외지의 수만 병력을 이끌고 요충지를 지키는 사령관, 전장에서 대규모 전투를 승리한 개선장군들에 못지 않게 대했던 것이다. 어찌보면 허저 본인도 그런 자신의 성품 덕에 그 험한 난세에서 난전이나 내부적 정치싸움에 휘말림없이 내내 인정받다 천수를 누렸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즐거운 주말 잘 보내시고 사전투표 안하신 분들은 돌아오는 화요일에 꼭! 잊지 마시고 투표 하시길 바랍니다ㅎ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대의명분에 입각해 각자가 생각하는 최선의 후보분께 소중한 한 표를 반드시 행사하세요! 사려깊은 문후보님, 구여우신 홍후보님, 총명하신 안후보님, 기개있는 유후보님, 혁신적인 심후보님 모두 화이팅 하시길. 그리고 누가 대권 잡건 부디 국가와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참지도자 되길 기원합니다...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ㅎ 무슨업적도 필요없이, 앞 둘이 워낙 10년 깽판이라 평타만 쳐도 성군소리 들을 각인데...
1년만에 일본어 듣기 정복작전
1. 일본어가 좋아졌다. 왜? 묻지 마시라. 애니 오타쿠였던 암흑기는....아무튼 애니메이션이든 드라마든 한국어 자막 없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을 만나서도 꿀리고 싶지 않았다. 2. 오타쿠 + 계획맨 오타쿠는 계획맨이었다. 매일 10분 단위까지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실천했다. 물론 70% 성공률로. 지금 생각하면 정상적인 사람이 할 짓은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계획이 좋은 걸 어찌하리... 3. 몰아치기 시청 + 폭풍 듣기 주말에는 일본 드라마 10~11편(대체로 한 시즌)을 몰아치기 시청했다. 덕분에 눈은 오덕눈이 되어갔다. 그리고 드라마의 음성을 mp3로 추출해서 들었다. 양치질 하면서, 해우소에서, 버스/지하철에서, 걸어다니면서. 그랬더니 신기한 일이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드라마의 장면이 떠오르고, 어떤 대사를 할 지까지 외우게 되었다. 4. shadowing ....쉐도윙 들리니까 앵무새처럼 말도 따라하기 시작했다. 곤니찌와를 시작으로 좀 더 어려운 말까지 따라하게 되었다. 신기했다. 뭔가 일본어의 벽을 하나 점령한 것 같은 희열이 느껴졌다. 지금은 알게 되었지만, 그게 shadowing이라고 하더라. 나중에는 드라마를 보면서도 연습했다. 5. 깨달음. 노력은 결실을 낳고, 배신을 하지 않는다. 1년 동안 그 짓(?)을 하고, 꼭 1년 후에 일본 유학을 갔다. 아직도 생생한데, 날 배웅나온 사람을 못 찾아서 한 시간을 헤맸다. 결국 카운터(?)에 가서 나는 일본이 처음이고 일본어를 전혀 못하니까, 사정이 이러이러하니 배웅나온 사람 좀 방송해달라고 했다. 나름 유창한 일본어로. 내가 이런 얘기하니까 쑥쓰럽지만, 그 때 다시 한 번 희열을 느꼈다. 일본인과 직접 얘기한 게 두 번째인데, 그 사람이 하는 얘기가 다 들렸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그 때 느꼈다. 아~! (적어도 외국어에서만큼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구나. 여러분도 1년 동안 1만시간 이상 들으면 외국어가 들릴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이 내일이길 기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