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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 총정리!

설렁탕을 맛있게 잘 먹을 수 있는데 “먹을 줄 모르네”하면서 깍두기 국물을 친절하게 부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냉면에 겨자와 식초를 넣으면 쪼렙입니다. 회는 초장에 찍어먹으면 안 되죠. 제대로 먹으려면 붉은 생선, 흰 생선 상관없이 간장에 찍어먹어야 합니다. 더 레벨이 오르려면 간장도 찍지 말고 그냥 먹어야 제대로 먹는 것이죠.
치킨을 먹을 때는 닭목을 잘 발라먹어야 먹을 줄 아는 겁니다. 치킨에 콜라는 어린이고 치킨에 맥주는 하수죠. 고수는 치킨에 소주를 마십니다. 순대 내장을 못 먹으면 순대먹는다고 하면 안 되고, 스테이크를 웰던으로 구워먹으면 죄악입니다.
만드는 사람이야 레시피를 지켜야겠지만 먹는 사람은 자기 취향대로 먹으면 되죠. “젓가락질 잘 해야만 밥을 먹나요”라는 DJ DOC의 노래가 생각납니다. 그런데도 남의 취향까지 간섭하는, 지나치게 친절하고 상냥한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참견꾼을 요즘은 ‘오지라퍼’라고 부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오지랖을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이라고 설명합니다. 오지랍이라고 쓰면 잘못된 표현입니다. 물론 오늘 옷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옷을 놓고도 오지랖을 부리는 어른도 많습니다. 지하철에서 앞에 서 있는 여학생 치마가 짧다며 지적을 하죠. 왜 그러냐고 물으면 딸 같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익숙한 패턴이죠? 보통 성추행범이 하는 말입니다. 진짜 딸 같으면 그런 더러운 시선으로 보지 않겠죠. 정작 자기 딸 어떻게 입고 다니는지 관심이나 있는 사람일까요?
우리말 풀이사전에서는 오지랖을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그 중 “다만 그것이 지나쳐서 남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귀찮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때, 이를 경계하여 ‘오지랖이 넓다’고 하는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죠. 우리가 오지라퍼라며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오지랖을 부리는 건 이 의미입니다. 관리질을 변형시킨 고나리질, 훈장질과도 비슷하게 쓰입니다. 한 마디로 ‘낄끼빠빠’를 못한다는 뜻이죠. 선의로 오지랖을 부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님이나 가족, 연인이 애정을 담아 참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듣는 상대가 기분이 나쁘다면 나쁜 오지랖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거침없이 대충 정리해서 배달해 드리는 내 손안의 지식인, 총정리! 이번 49화의 주제는 ‘오지랖’입니다.
- 오지랖의 어원부터 정의까지 살펴보는 건 기본이죠.
- 생애주기에 맞춘 사생활 침해 유형을 알려드립니다.
- 오지랖의 유형은 잘못된 만남, 넌씨눈 등 다양합니다.
-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말을 통해 오지랖의 원인을 살펴봅니다.
- 개인주의 지수와 행복 지수는 큰 연관이 있습니다.
※ 성장주기에 맞춘 사생활 침해
1) 10대: “공부는 잘 하니? 몇 등이야? 어느 대학 갈 거니? 우리 OO는 1등인데.”
2) 20대 중반: “학점은 잘 나오니? 졸업 얼마 안 남았지?”, “너 그렇게 살 쪄서 어떻게 하니? 운동을 해야 돼. 살 좀 빼야지.”
3) 20대 후반: “너 취직은 했니?”, “연봉은 얼마나 돼? 성과급 받았어?”
4) 30대 싱글: “연애는 하니? 결혼은 언제 할 건데? 너 지금 아기 낳아도 늦어.”
5) 30대 부부: “그래서 아기는 언제 낳을 건데?”
6) 아이를 낳은 경우: “둘째는 언제 낳을거야? 아들만 있으면 안 된다. 딸이 있어야지.”, “딸만 있으면 뭐해? 아들이 있어야 든든하지.”
7) 아이를 여럿 낳은 경우: “아이고, 애들 키워서 학교 보내려면 돈 많이 들겠다. 대출금은 얼마 남았니?”
이런 사생활 침해 발언은 주로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흔히 듣게 됩니다. 주책없거나 푼수 같은 어른들이 주로 하는 말이죠. 고부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친척들 보기 싫어서 젊은이들은 명절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가족 중에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살기 싫죠.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내가 다 너 걱정되니까 해 주는 말이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말로 자극을 줘야 더 나아지지 않겠냐고 하죠. 그런데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쁘면 그냥 잔소리나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언어폭력인 경우도 많죠.
그나마 둘만 있는 자리면 몰라도 듣는 사람 많은 자리에서 오지랖을 부리니까 진상이 되는 겁니다. 눈치가 더럽게 없는 그런 사람을 우리는 ‘비호감’이라고 부르죠.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사회성이 떨어지고 대부분 모임에서 인기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환영받는 일부 종교 모임이나 친목 단체가 있습니다. 끼리끼리 모인 모임에서 오지랖이 주된 대화가 되다보니 가족이나 다른 모임에 가서도 오지랖을 부리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돌립니다. 계속 쳐다보면 싸움이 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양 문화권에서는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죠. 이건 문화의 차이입니다. 인사의 오지랖은 서양이 더 심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집이 전세인지 월세인지 같은 민감한 것도 물어봅니다. 더 저질인 것은 외모지적이죠. “화장하면 더 예쁘겠다.”, “몇 kg만 빼면 예쁘겠다” 따위의 말입니다. 
오지랖의 분야 중 남의 옷차림과 화장 등 외모에 대한 것이 많습니다. 자기나 잘 하고 다니면 될 텐데 굳이 남에게 지적질을 하거나 조언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외모에 자신 없는 이들이 남의 눈치를 보게 되고 총정리 29화에서 다룬 외모지상주의로 이어지죠. 특히 또래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외모 지적질은 언어적 성희롱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님들이 동창회나 학부모 모임에 가면 자녀들은 싫어하죠. 그런 자리에서 오지랖 넓은 사람들이 또 자녀 이야기를 실컷 해댑니다. 건강하게만 잘 크면 된다고 하던 부모님이 그 모임을 마치고 돌아온 후 성적표를 가져와 보라고 하고 학원을 끊어주죠. 대학간판에 집착하고 대기업에 목숨 거는 것에도 다른 사람들의 오지랖이 한 몫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모의 오지랖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자녀들은 스마트폰을 켭니다. 그리고 연예인 기사 아래에 악플을 달기 시작하죠. 이래라 저래라 오지랖이 참 많습니다. 연예인들의 연애가 자신과 무슨 상관이고, 이혼을 하면 누가 아까운지 자신이 왜 판단합니까? 그리고 그 댓글을 본 또 다른 아이들 역시 그 댓글에 대댓글로 악플을 달며 부모님 안부를 묻습니다. 인터넷 오지랖은 담배연기나 미세먼지보다 해롭습니다.

오지랖 유형이 하이라이트인데 워낙 길고 요약하기가 힘듭니다. 방송으로 들어보세요.
아산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교수는 한 라디오에 출연하여 오지랖 넓은 사람의 심리에 대해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가족 같은 회사, 동료는 가족처럼 친해야 한다'는 식의 말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런 구호에는 친밀감을 근거로 상대를 통제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라고 했죠. “내가 너를 챙겼으니 내 말을 따라야 한다”는 식입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오지라퍼의 심리 상태에는 ‘통제의 욕구’와 ‘자기애’가 있다고 합니다. ‘통제의 욕구’는 스스로는 애정이나 관심이라고 믿지만, 무의식적으로 타인에 대한 지배 욕구나 통제 욕구에 휘둘리는 것을 말하죠. 데이트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자기애’가 강한 오지라퍼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고 하는군요.“내가 직장 생활 오래해서 너보다 잘 알아”, 이 말은 MB가 생각나는군요. 또 “내가 촉이 좋잖아. 척보면 알아”, “"아빠는 네 나이에 스스로 알아서 공부도 하고 부모도 도왔는데 넌 왜 그러니?” 등이 해당된다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청개구리 심리, 즉 심리적 역반응 때문에 오지라퍼의 의도와 달리 결과는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오지라퍼의 간섭이 불편하고 오지라퍼와 거리를 두려는 것에도 이유가 있다는 것이죠. 어떤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 자유가 침해된다고 느끼면, 그게 아무리 좋은 조언이나 충고라 하더라도 그 반대로 행동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김 교수는 “함부로 조언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일방적으로 전달하면 효과는커녕 오히려 상대가 강압적이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조언하려면 먼저 상대에게 허락을 구하는 연습을 해보라”고 김 교수는 주문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오지라퍼는 상대의 허락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니 김 교수의 말이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예전처럼 이웃 간의 정이 살아있는 지역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런 낭만을 가지고 귀농하신 분 중 많은 수가 울면서 서울로 다시 올라옵니다. 그나마 서울의 오지랖 지수가 낮거든요. ‘시골 인심’이란 것도 옛날 얘기입니다.
몇 년 전에 국가별 개인주의 지수와 행복 지수를 조사한 자료가 있었습니다. 한국은 중국와 일본 다음으로 행복감이 낮았죠. 핀란드나 호주, 프랑스, 벨기에는 높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개인주의 지수는 동북아 국가와 비교도 안 되게 높았습니다.
한국인은 집단을 위해 개인의 행복을 희생해왔습니다. 그 결과로 소수의 권력자만 행복해졌고 대다수의 국민은 불행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우리 부모 세대는 자신의 행복에 대해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죠. 그들의 행복은 자식새끼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효하고 싶지 않으면 내 행복을 희생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죠.
최악의 오지랖은 대한민국 사회입니다. 남의 성적 취향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고, 옷을 촌스럽게 입건 쌩얼로 다니건 무슨 상관입니까? 본인 코에 삐져나온 코털이나 깎고 말할 일이죠. 남이야 결혼을 하건 이혼을 하건 내가 참견해서 뭐가 달라집니까? 가정법률변호사면 몰라도요. 오지라퍼가 더 나쁜 경우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오지랖입니다. 강자에 대해서는 오지랖은커녕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역 지하 터널에 있는 노숙자에게 당신이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건 선한 의도라고 해도 오지랖이죠. 당장 먹을 따뜻한 밥과 깨끗한 잠자리를 주는 건 오지랖일까요?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오지랖이 아닙니다.

자세한 내용은 방송에서 확인하시죠!
이 글은 전체 방송의 일부분만 다루었습니다.
- 무엇이든 정리해드리는 "총정리"
- 아래 주소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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