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둘은 마주 앉았다. 마지막을 고하고 이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만인가, 오랫만의 자리가 어색한지 민은 맥주캔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고, 진은 초점없이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공기마저 무겁다는 느낌. 그 단어가 실로 가깝게 느껴지던 순간. 그 오랜 침묵을 깬건 민이였다.
'사실, 나 요즘 새로운 버릇이 생겼어요.'
'그게 뭔데요?'
민은 그렇게 말하곤 일어나서 침대장 위에 올려진 향수병 중에 돌체엔가바나 라이트 블루를 꺼내 들었다. ‘이거 보이죠? 화장대 속에 넣어놨던 향수를 죄다 꺼내서 침대장에 올려놨어요. 자기전에 하나 집어들고 온 방 가득 그 향을 뿌리는거죠. 당신은 없지만 아직도 당신이 남아있는 이 공간에 여전히 느껴지는 당신의 향마저도 이 밤을 너무도 길게 나를 괴롭히고 있어서, 그 향이라도 덮어볼까싶어 그렇게 하나 집어들고 뿌려보는거죠. 이렇게라도 해야 눈 좀 붙일 수 있으니까.' 라고 말하며 라이트 블루를 허공에 몇번 뿌리곤 웃는 민의 표정에 특유의 씁슬한 입꼬리와 눈웃임에 담긴 애잔함을 진은 아마도 느꼈을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런 민의 모습을 진은 참으로 애달프게 바라보았다. 맘 같아선 지금 당장 민의 손을 덥석잡고 '지금 내가 여기 있잖아. 오늘은 아무것도 뿌리지 마.'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돌이킬수도, 돌아갈수도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물론 이 점은 진과 민. 둘 다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목까지 차오른 그말을 차마 꺼낼 수 없어 억지로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공기마저 무거운 그 순간. 그 무거운 공기 속 추억의 라이트 블루향이 너무나도 슬프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사실 머스크 향이 가득한 짙은향을 좋아했던 민이였는데, 진의 취향이 고스란히 녹아내린 것이 분명했다. ‘사실 난 가벼운 향 안좋아해요. 짙게 깔리는 머스크향이 가벼운 향보다는 조금 더 오래 머물러 주니깐요.’ 라고 말했던 민이였다.
‘오늘은 가지말고 이 공간, 이 향 속에 머물러줘요.’ 라고 속으로 얼마나 외쳤는지 ‘오늘은 아무것도 뿌리지마’ 라고 얼마나 속으로 되뇌이고 되뇌었는지, 기억도 안날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어느순간 방안 가득 그토록 그리워하던 진의 향기가 가득했다. 낱게 깔리는 진의 숨소리 탄탄하게 다져진 진의 팔과 어깨. 얼마나 그리웠던가. 진과 민 둘다 이 밤 흘러가는 시간에 손잡이가 있다면 흘러 가지 말라고, 몇 번이나 잡고 싶었다. 진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민은 생각했다 '또 언제 이렇게 당신의 향을 느낄 수 있을까.' 기약없는 만남을 기대하며 씁쓸한 미소만 짓게되는 밤이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공기가 무겁다고 느껴지는 느낌, 아까와는 다르게 허하게 남겨진 옆자리, 민은 잠에서 깨고서여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민은 그런 허한 느낌으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진이 조금씩 사라져간 꿈일지라도, 이렇게 힘든 감정일지라도 그 감정에 묻혀 있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먹먹하게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과 함께 흘러내리는 눈물은 어찌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 참을 그 애잔함에 빠져있던 민은 이불을 걷고 일어나 침대장 속의 진이 좋아하던 라이트 블루향을 방안 가득 뿌려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