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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저 중강 (許褚 仲康) A.D.? ~ ?

사람 보는 안목도 훌륭했고 용인술도 뛰어났으며
철저한 능력 위주의 인재기용 방식을 추구한 실리주의자
"조조"의 휘하에는 모두가 알다시피 삼국시대 당시
가장 많고 두터운 인재풀을 자랑한 삼국시대의 레알 마드리드
라고 할 수 있었고 응당 그런 조조 아래에는 뛰어난
무장들도 참 많았다.

여러모로 뛰어나거나 조조와 코드가 맞아 신임을 얻은
장수들도 여럿 있었지만, 사료를 살피고 그 모든 것들을
토대로 볼 때 조조에게 '인간적인 애정'을 가장 많이
받았다 느껴지는 장수가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허저"였다.
오늘의 주인공은 이 진짜 "스트롱맨"인 이 인물로 간다.
오늘 날, 중국 안후이성 보저우시 출신인 허저는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며 당시 온갖 히어로들..
그중에도 특히 범인을 훌쩍 초월하는 피지컬과
신체능력을 자랑하는 차이니즈 슈퍼히어로들 중에서도
가히 압도적인 진짜 '스트롱맨'이였음이 기록에 나온다.

삼국지연의에도 등장하는 허저 관련 에피소드들 중
허저가 조조 휘하로 임관 전...
고향에 살 당시 1만 여명 이상의 대규모 도적떼가
허저의 고향에 침공했고 대치에 지친 양측이 휴전을
합의하며 도적들의 곡식과 허저측의 소를 물물교환
하는 와중, 소가 놀라 달아나자 그 소의 꼬리를
한 손(!?!)으로 잡고 백여 걸음을 끌고 갔다는
이 말같잖고 믿기지 않는 스토리가 엄연하게도
위서의 허저전에 실려있다....

당시 후한말에 일반적으로 사육하던 소의 품종,
암수(♂♀)여부, 소의 연령, 소의 영양상태 등은
알 수 없다.
그러나 품종여부 떠나 소라는 동물 자체가 원체
크고 암수의 무게차도 상당하지만 암컷인들
일반인에게 끌어 당겨질 무게는 아니며 어린
송아지 또한 지금 이 글 쓰는 나, 읽는 댁들이
힘으로 해볼 수준을 가뿐히 넘어서고 당시
허저측이 처한 환경이 열악해 사람도 제대로
못 먹어 오죽하면 도적떼에게 고기를 주고
곡식을 받아오려는 시도까지 한 점등 비추면
소인들 제대로 먹어 평소의 몸상태는 아니였겠으나
그렇다한들 소는 소인지라 어쨌건 사람이 일신의
용력만으로 한 손끌이를 할 생물이 절대 결코
아님은 명백하다.
게다가 소의 꼬리를 잡아끌었다는건 소 또한
순순히 끌려가지 않고 그러지 않으려 끌려가는
반대방향으로 가려고 용을 썼다는 이야기인데...

전 중국 및 전인류사에서 최강의 파워맨이라
일컬어지는 항우가 이런 허저보다 힘 좋았을까
싶을만큼 여간 대단한 힘이 아니다.
위서에 의하면 신장도 "여덟 자 남짓" 이라 하는데,
당시 후한 말 기준의 여덟 자가 현대 기준의 거의 190cm에
가깝고 '남짓'이라는 표현은 여덟 자를 좀 넘는다는 뜻.
게다가 후한 말 관련 모든 역사서들 중 유일하게 허저는
허리둘레에 대한 언급이 있다.
당시 단위로 "10위"나 되는 허리둘레를 지녔다고 나오며
이 역시 현대기준 무려 115cm(45inch가 넘는다!!)라는...
당장 이 수치는 체격이 작은 편은 아닌 내 가슴둘레를 넘어선다..

아마도 위에 언급된 인간계 끝자락급의 파워를 볼 때
엄청난 근육질이였을 것으로 보이며 저런 피지컬까지
지닌 것으로 보아, 대략 상상해보면 '브록 레스너'나
'밥 샙' 정도 되는 체구를 가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그런 거구들은 지금도 길에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들
쳐다볼만큼 눈에 띄는 엄청난 거한들인데, 성인남성의
평균신장이 146cm 가량 정도였을 후한 말의 중국에서는
그야말로 단순 거인을 넘어서, 방금 화장실 다녀왔더라도
마주하면 소변을 지릴 괴물이였음이 분명하다.
이런 엄청난 신체조건 + 신체능력을 지닌 초인 허저는
조조가 허저의 고향 일대를 점령하자 자신을 따르던
무리들을 이끌고 조조휘하로 가는데, 당시의 조조 또한
허저의 체구를 보고 심히 놀랐다는 기록이 있고
이 당시 "실로 나의 번쾌가 될만하다!!" 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조조는 허저와 그가 이끌고 온 장정들을 고스란히
자신의 근위대 즉, 최측 호위대로 임명했다고 하는데
당시같은 난세에 당시 조조가 듣보잡이 아니였음에도
그런 새로 갓 합류한 이들에게 자신의 신변경호를
맡긴 것을 보면 허저를 굉장히 좋게 보고 신뢰했던
모양인데, 이때부터 조조는 허저에게 반한 듯 싶고
조조의 알음알음 허저 챙기기가 시작되었던거 같다.ㅎㅎ
허저는 생김이나 체구, 그 압도적인 신체능력 등을 갖추고도
전혀 그에 어울리지 않는 샤이가이였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눈에 띄는 것도 싫어해서 조조가 장수들을 집결하면
가장 구석이나 뒷편에 숨겨지지도 않는 체구를 한껏
움츠려 섰다고 한다.

조조는 장수들이 군공을 세우면 많은 이들 앞에서
당사자를 불러내 크게 칭찬하는 방법으로 당사자를
띄워주고 다른이들도 분발을 유도했는데,
부끄럼쟁이 허저는 간혹 공을 세우고도 이런 수 많은
사람들 앞에 불려나가 주목을 받고 추켜지는 것에
상당히 큰 부담을 갖고 있었고...
조조가 그를 앞으로 호명해도 못 들은체 딴청을 부리고
밍기적대다 거듭 그를 불러도 쌩까는 허저를 조조가
호통을 쳐 부른 후에야 마지못해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성격이 저런 사람이다보니 말도 거의 없었던 듯.
그러나 할 말은 하는 편이였던거 같고 하루는
형주방면 총사령관이던 조인이 급한 보고를 위해
허창으로 갔는데 당시 조조가 바쁜 정무 중이였고
조인은 맡은 중책이 중책인지라 조조를 기다릴 겨를은 없어 허저에게라도 메모를 전달하려 허저를 불렀다.

허저는 조조의 인척이자 최측근이고 방면군 사령관인
조인의 부름을 거절할 수는 없어 조인에게 갔는데..
조인 : 아, 허중강! 나 지금 쫌 급한데 말 좀 전해줘!
허저 : 기다리시면 전하 곧 나오십니다..
이러고는 조인의 대꾸도 듣지 않고 바로 휭~ 조조에게
돌아갔고 이날 이후 조인은 허저를 벼르기 시작한다.
조인은 다시 정욱을 불러 이 일을 이야기했고 정욱이
듣고 놀라 허저에게 가서 물었다.

정욱 : 중강! 사회생활 참 못하네.. 조장군 성격 몰라?
전하의 친척에 측근에 개국공신인데 왜 그러셨대?

허저 : 암만 그래봐야 저 사람은 방면 맡는 바깥사람이고
난 전하의 신변경호를 맡았는데 내가 왜 전하의
허락없이 외부인을 만납니까...

이 에피소드가 조조의 귀에 들어가자 안그래도 이쁨받던
허저는 더욱 조조의 사랑을 받았다.
허저와 조조는 아무래도 주군과 호위관이다보니 서로
붙어있는 시간이 길었는데, 허저는 종종 옷매무새가
허술하거나 한 경우 조조가 이를 먼저 보면 직접 옷매를
다시 챙겨주기도 했고, 조조가 식사시에 조조곁에 서서
조조의 식사를 지켜보는 허저에게 같이 식사를 권해서
허저가 응하면 함께 먹기도 했다.
허저는 자신이 좋아하는 찬이 있으면 응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며
응하지 않았다....

허저가 체격이 체격인지라 허저가 타는 말은 금새 지쳐
여러 마리를 번갈며 탔는데, 허저가 탈 말은 조조가
직접 선별해 골라줬고 경우에 따라 자신이 타고 있는 말과
바꿔타기도 했는데, 주군이 신하와 말을 바꿔 타는 것은
당시 "말"이라는 동물의 군사적, 물질적 가치를 고려하면
대단한 호의를 베푸는 것이였다.
게다가 당시의 조조가 타는 말이 예삿말들도 아니였고..
이는 마치 내가 새로 간 회사 사장님이 외근 나가며
업무용 레이를 타는 내게 자신의 아우디 Q7을 타고 가라며
바꿔 주는 것이나 진배 없는 것이다.
조조의 경호실장이면 거의 대부분 조조의 가장 근처에
있다보니 전장에 나가 지휘를 맡은 적이 드물지만 없진 않다.
양에서의 장수와 전투 당시 돌격대를 맡아 돌진하여
적의 기세를 꺾었던 적도 있고,
관도대전과 원소 사후, 원소의 잔당들을 정벌하는 중
업군 포위전 당시에도 소수나마 병력을 이끌고 나선 적 있다.

하지만 사람을 적재적소에 잘 쓰는 조조가 그를 호위관으로만
거의 중용하고 전장에 내보낸 횟수가 다섯 손에 꼽히는 걸 보면
통솔능력은 별 볼일 없었던 것 같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종종 허저의 일기토 내용들이 나오던데
올뻥이다.
허저는 누군가와 1vs1로 전투에서 맞붙은 적이 없다.

전위와 조조의 경호패키지로 묶음처리 되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둘은 연의에서처럼 서로 맞붙은 적도 없고
심지어 둘이 얼굴을 마주한 적조차 없다.
왜냐 하면 실제 역사에서는 전위가 이미 사망한 후에
허저가 조조휘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의 내용 및 이를 토대로 캐릭터들의 능력치를
데이터화시킨 코에이의 삼국지 게임 내의 허저 어빌리티만
보면, 왠지 자기 이름이나 쓸 수 있을지..
1부터 10까지 숫자는 셀 수나 있을런지 싶을 힘 쎈 바보로
그려지지만 절대 그런 사람은 아니였다.

조조에게 임관 전에도 고향에서 도적떼를 상대로,
또 조조에게 임관 하면서도 자신을 따르던 적잖은 무리들이
있었던 점 등으로 봐서 아주 근본도 없는 사람이 아니였고
정사나 위서, 그의 열전 등 어딜 봐도
'허저는 빠가였다'는 식의 언급은 진짜 1도 없다.

다만... 워낙 별 말이 없고, 게다가 이게 좀 치명적인데
허저는 평상시에 입을 약간 벌린 눈도 촛점없는 멍한
어딜 보는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이 표정 탓에 그의 별명은 "호치(虎癡)"가 된 것..
저 허저의 유명한 닉네임 호치의 호는 범 호, 다시 말해
전장이나 임무수행 및 조조곁을 지킬 때의 그의 호랑이같은
무시무시한 기세를 뜻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뒤에 붙은
저 '어리석을 치(癡)' 인데...
저 치가 바로 허저의 그런 평상시 표정 탓에 붙은 것이였다.

그치만 허저입장에서 이것도 좀 억울한게,
조조곁에 있거나 전장이거나 뭐 그러면 모르지만
진짜 아무일없는 평상시에 조조가 내전에서 업무 보거나
천자를 알현, 또는 자거나 등등 그럴 때의 허저는
혼자 긴 시간을 문앞에 서 있어야 하는데
이 당시에 무슨 스마트폰이 있어서 허저가 유튜브나
빙글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쨌건
근무시간인데 이어폰끼고 음악 들을 것도 아니고,
진짜 할 수 있는거 없이 서 있는데 누군들 표정이
저리 멍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고 영국 왕실근위병들처럼 뭐 교대를 하는 것도
아니였을 것이고....

당연히 허저는 본인의 저 별명을 싫어했고
위나라 내부에도 감히 허저앞에서 저 별명을 입에 담을 수
있을 힘과 용기를 지닌 자도 없었지만 어쨌건
허저가 기피하던 저 닉네임은 훗날...
동관에서 마초, 한수와 마주할 때 마초가 바로 달려가
조조를 개 때려잡듯 하려다 조조가 데려간
허저의 비쥬얼을 보고 짐짓 쫄은 마초가
"조공에게는 호후(虎侯)가 있다는데,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말해준 후부터 "호후(虎侯)"로 격상된다.
삼국지연의에서 업을 함락 후, 깐죽대는 허유를
빡친 허저가 죽이는 씬이 나오지만 허구다.
저런 일 자체가 없었고, 허저의 성격상 단지 저렇게
깝친다고 하여 아무나 썽큼썽큼 죽이는 스타일이 아니였다.

일에 있어서는 더할나위없이 용맹무쌍했지만
평상시도 거칠고 격한 그런 사람이 아니였다.
평소에는 온순하니 풀 뜯지만 맹수가 다가오면
날뛰는 아프리카 물소같은 타입이였던듯 싶다.
조조가 죽자 탈진하여 쓰러질만큼 울부짖었으며
어찌나 심신이 상할만큼 슬퍼했는지 각혈까지 했다고 한다...

조비 또한 허저를 근위로 삼았는데,
조조가 허저를 자신의 최측에서 경호하는 소수의 경호대를
이끄는 경호실장역을 시켰다면, 조비는 황실전체를 경호하는
황실근위대를 이끄는 근위대장같은 직책을 맡겼다.

허저는 생몰연대가 명확히 사료에 나와있진 않지만
조조의 죽음에 이어 그 아들 조비의 죽음도 봤다.
물론, 조비가 그리 오래 못산 탓도 있으나 아무튼 주군부자의
죽음을 모두 겪고 조조의 손자인 조예대에 사망한다.

여러 정황들 볼 때,
조예재위기에는 사실상 은퇴상태로서 원로예우를
받았던거 같고, 조예 재위 후 그리 오래지 않아서 사망한 듯.
사인에 대한 별 다른 언급도 없고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사망당시의 허저나이가
상당한 고령이였음으로 추정되기에 그냥 노환에 의한
병사였을 듯 싶다.


사실... 주군의 최측근 경호는 그리 공을 세우기가
쉽지 않은 자리다.
그럼에도 허저를 아끼던 조조는 그런 허저가 혹여라도
기가 죽을까, 늘 그가 있음에 자신이 마음 편할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큰 공이라며 그를 치켰고.
가끔은 허저를 전장에도 내보냈다.

허저가 근위대장임에도 몇 차례 전투에 나섰고
비록 몇 차례 안된다고는 해도 어쨌건 모두 승리했는데
추측해 보건데 이는 조조가 허저를 장수로서의 공을
세울 수 있도록 별 다른 지휘통솔능력이 없어 대병을
이끌기는 무리인 그가 소수병력을 이끌고나마
충분히 승리할 법한 전투에 가려 보내 허저로 하여금
주워 먹게끔 했던 배려로 보여진다.


허저 또한 박식똘똘이까진 아니여도 자신을 아끼는
그런 조조의 마음씀씀이를 캐치할 정도는 충분히 되었고
조조를 깊게 공경해 따랐으며 심지어 조조가 그에게
휴식을 명해도 허저는 이를 따르지 않고 거의 자는 시간을
제하면 조조의 지근거리에서 머물렀다.
삼국지 등장인물들 중 통틀어도 손 꼽힐만한
막강한 피지컬과 그에 따른 용맹과 괴력을 겸한 그가
전장을 휘젓고 싶지 않았을리가 없다.

하루종일 자신의 엄청난 신체를 서 있는데 써야함이
실로 괴로웠거나 자괴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책임감과 충성으로 묵묵히 해냈다.
비록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부여받더라도
이를 최선 다해 충실히 해내는 프로패셔널.

그렇기에 조조는 늘 자신 곁에 시립해 서 있는 그를
대함에 있어, 외지의 수만 병력을 이끌고 요충지를
지키는 사령관, 전장에서 대규모 전투를 승리한 개선장군들에
못지 않게 대했던 것이다.

어찌보면 허저 본인도 그런 자신의 성품 덕에
그 험한 난세에서 난전이나 내부적 정치싸움에 휘말림없이
내내 인정받다 천수를 누렸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즐거운 주말 잘 보내시고 사전투표 안하신 분들은
돌아오는 화요일에 꼭! 잊지 마시고 투표 하시길 바랍니다ㅎ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대의명분에 입각해 각자가 생각하는
최선의 후보분께 소중한 한 표를 반드시 행사하세요!

사려깊은 문후보님, 구여우신 홍후보님, 총명하신 안후보님,
기개있는 유후보님, 혁신적인 심후보님 모두 화이팅 하시길.
그리고 누가 대권 잡건 부디 국가와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참지도자 되길 기원합니다...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ㅎ
무슨업적도 필요없이, 앞 둘이 워낙 10년 깽판이라
평타만 쳐도 성군소리 들을 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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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플 후 정독 ㅋㅋ 재밌게 볼게요~
아주 멋지세요ㅋㅋ ㅋ
ㅋㅋㅋㅋㅋㅋㅋ마지막 한마디가 돌직구네요 허저는 늘 흥미로운 캐릭터였는데 수호무사 역할을 담당했던 역사는 오늘 처음 알았네요 장비처럼 전장을 휩쓸 줄 알았는데ㅎㅎ
어쩌면 통솔능력 부족해서 오히려 전장에 주로 나갔다면 오명만 있었을 듯 싶습니다ㅎㅎ
잘 읽고 갑니다!! ^^
고맙습니다!! ^^
허저와 장비가 팔씨름하면 누가 이길지 궁금해요
우와ㅋㅋㅋㅋ 왠지 저는 허저
역시 믿고 읽는 삼국지!! ㅎㅎ 비유가 머무 찰져서 확 와닿았어요 레이몰고 출근한 사원한테 외제차 ㅋㅋㅋㅋㅋ
믿고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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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덕모 (程普 徳謀) A.D.? ~ ?
나도 안다.. 아무도 안궁금해하고, 아무도 안좋아하고, 아무도 관심없을 그런 인물이라는거. 심지어 그 인기에 걸맞게 기록도 별로 없다. 그런데 맨날 피자, 치킨, 갈비, 삼겹살, 소세지, 파스타, 회, 스테이크만 먹을 수는 없잖아? 가끔은 그냥 김치하고만 먹거나 물에 말아서 후루룩 마시듯 먹을 때도 있는거고... 그래서 오늘의 주인공은 "정보". . . .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고향은 유주의 북평에 있는 토은현. 손견시절부터 시작해, 손가를 따르던 주요 인물들 중 고향이 최북단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에 대전사람도 있고 인천에 대구사람도 살고, 부산에 삼척사람도 일하고 제주에 광주사람도 놀고 그런게 아무렇지 않지만 저 당시의 중국에서는 대체로 워낙에 넓기도 넓고 거기에 도로나 교통같은 인프라도 저질인데다... 농경사회라 지주건 소작이건 일단 "땅" 이 일터라 그 땅을 벗어나면 먹고 살기가 벅차니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벗어나 사는 경우가 흔치 않았는데.... 비록 정보가 농사꾼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활약한 지역이 고향에서 1,000km도 넘는 자동차로 쉼없이 휴게소 한 번 안들리고 가도 반나절을 운전해 가야하는 거리! 손견때부터 손가를 따르긴 했는데, 언제 어디에서 어쩌다 손견을 따른건지는 기록이 없다. 다만, 손견 만나기 전부터 말단이나마 관직에 있던거 같다. 마냥 칼만 휘두르고 힘만 쓰는 무식쟁이 장수는 아니였고, 책사나 재사 수준이야 당연히 못되겠지만 기본적 학식은 갖춘 사람인데다 이런저런 처세술과 식견도 있는 나름 "배운" 장수였다. . . . 손견 자체가 원술의 휘하 장수다보니 그 휘하 장수의 휘하 장수인 정보는 아무래도 무슨 눈에 띌 대활약을 하는데는 한계가 있었고... 무슨 어마무시한 무예실력이나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진 것도 아니였다. 이렇게 말하면 좀 돌아가신 분께 죄송할 말이지만, "그냥 좀 쓸만한" 장수였지, 어디다 내로라 할만한 그런 급은 솔직히 아니였던거 같다. 삼국지연의 속에서는 "철등사모"라는 자신만의 템을 쓰는것으로 나오는데... 연의가 다 그렇듯, 저 당시에는 저런 무기가 없던터라.. 정보의 철등사모는 픽션이다. 무슨 병장기를 썼는가에 대한 기록도 없다. 손견 사후 손책이 원술 휘하에서 벗어나며 강동 일대에서 양학을 다닐 때는 그래도 좀 나름 쏠쏠히 활약했는데, 이 당시는 손책 휘하에 별 다른 장수도, 병력도, 책사도 없다보니 정보 정도만 되어도 큰 도움이 되었던거다. 혹자는 '뭐? 그때 책사가 없다고?? 주유 있잖아!' 하겠지만, 주유는 손책이 막 원술 휘하에서 벗어나자마자 손책에 합류한게 아니고, 주유 자체가 병법과 책략에 대단히 뛰어난 사람인건 맞지만 전형적인 모사 타입이라기보다 전국시대에서 초한쟁패기 무렵의 한신같은 총사령관 타입인지라 마냥 주군 곁에서 꾀를 내기보다 독자적인 군단을 이끌고 직접 움직이는 스타일이였다. 게다가 주유는 이미 꽤 큰 세력의 호족출신이라 손책이나 손권이 쥐어주는 병력만 받아 운용하는게 아니라 자기 휘하의 직속병력들을 적잖이 거느리고 있었고 그 병력에 대해서는 손가들도 마음대로 터치를 할 수는 없었다. 이는 위, 촉과 구분되는 오세력들만의 특징이자 핸디캡. . . . 그에 비해 정보는 호족도 아니고, 형남지역이나 그 이하 강동/강남 지역에 무연고자라 그냥 손씨들 하나 보고 따라 다녔던 사람이라 손씨들이 수족부리듯 할 수 있었다. 삼국지연의에서 거의 셋트로 묶이는 황개, 한당, 조무들도 정보와 비슷한 처지였고 다 저렇게 손견을 따르면서 엮인 동료이자 전우였다. 손책 사후, 손권으로 정권이 급 바뀌던 때는 오의 격변기면서 위기였던 시절이였는데... 이건 손책편에서도 언급했지만, 손책이 본인의 단명을 예견한건지, 그냥 지 급한 성깔 탓인지 급하게 세력을 다지느라 유화책 그딴거 다 개줘버리고 자기 안따르고 비협조면 죄 개패듯 쓸고 다니며 꿇려놓다보니 손책이 죽자마자 다시 들고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저런 애들을 번거롭지만 다시 돌며 매타작을 다녔는데, 이때 정보의 성과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연의에는 딱히 이사람의 성향에 대한 언급이 없다보니 잘들 모를텐데, 저런 반란군 토벌 당시 윗선에서 듣고 놀랄만큼 꽤나 잔혹하게 토벌을 했다고 하며... 끝까지 항거하다 잡히면 그런 놈들 전부 모아다가 산채로 불구덩이에 쳐넣었다고 한다.. 자, 슬슬 정보의 인성이 나오기 시작하는데ㅋㅋ 위에서 말했듯 마냥 힘만 쓰는 무장은 아니였고 나름 글을 읽은 장수다보니 거기까진 좋은데, 자기와 달리 힘만 쓰는 전형적인 무장들을 알게 모르게 은근 무시하고 까는 경향이 있었다, ;;;; 저때는 시기가 시기인지라, 먹고 살기도 너무나 버거운 시절이다보니 날때부터 금수저 물고 나거나, 진짜 혜안있는 부모를 만난게 아니라면 대체로 책은 커녕 글조차 못 읽는 문맹들이 발에 채였는데... 아무래도 무장들 중에 문맹 혹은 그냥 간신히 자기이름이나 쓰거나 간단한 문장들이나 읽고 쓰는 수준의 장수들이 정말 많았다. . . . 예를 들어, 가난한 농민의 집에 태어나 밭갈고 논메는데 자기네 지역의 주자사나 군벌이 병력을 징집한다기에 징집되어 병졸이 되었고 죽기 살기로 싸우고 공 세워 말단 장수가 되었다가 공적을 인정받아 더 높은 직위에 오르고..... 이러다보면 당장 전장에서 싸우고 병사들 관리하기도 바빠 따로 글을 익히거나 책을 볼 틈 같은게 없다. 게다가 한자라는게 그렇게 쉽게 익힐 수 있는 문자도 아니다. . . . 여튼 정보는 저런 소위 무식한 장수들과는 은근 거리를 두거나 무시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거나해서 당장 자기와 가장 오랜시간 생사고락 함께 한 황개, 한당, 조무와도 막 절친베프가 아니였고 혼자만 살짝 겉돌았다. 저런 정보의 인성이 제대로 터진 계기는 바로 적벽대전 앞두고 군비를 점검하고 전쟁준비 임하며 주유와 함께 좌도독, 우도독을 나눠 맡으면서다. . . . 연의에서도 이 부분이 나오며 처음에는 한참 어린 주유와 동급대우 받는 것에 불쾌해하다 주유의 병력운용과 훈련 등을 시찰 후 주유를 인정하는 걸로 그려진다. 그런데 저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참 안타깝지만. .. 주유와 동일선상 놓이며 불쾌해한게 팩트. 나중에 주유를 인정하는건 픽션이다..-_-;;;; 실제로는 내내 못마땅해했고 그 후로 주유 사망까지 딱히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다. . . . 암만 봐도 학식, 병법, 책략, 용병, 대국안, 전략기재 등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주유근처도 못가는게 명백했고 외부의 평가 역시 마찬가지였건만, 정보 혼자 그걸 인정않고 그저 자기보다 한참 나이도 경력도 적고 짧은 주유가 자신과 도독을 나눴다는게 불만이였다. 엄밀히 말해.... 주유에게 도독직을 나눠줬다기보다, 그간 정보의 경력과 나이를 예우해 정보에게 도독직을 나눠준거나 마찬가지였음에도 적반하장이였던 정보다. 여튼 그래도 공사는 구분하여 적벽대전은 잘 치르고 이후 형주 남군을 맡고있던 조인까지 몰아내는데 공을 세운 것이 그의 마지막 레코드. 그러고는 얼마안가 열병을 앓다 석달 가량을 투병 후 다이.. 생몰연대는 없지만 오에서 정보를 부를 때 대개 많은 공을 세운 이를 예우해 부르는 호칭인 "정공"이라 부른걸 볼 때 사망당시 꽤 나이가 많았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 . . 성 뒤에 공을 붙이는 자체는 공이 많은 이를 예우하는, 영어로 치면 성 앞에 Sir.을 붙이는 것과 비슷했는데 당시에는 그냥 단순히 젊은이가 공 많다고 붙이진 않았고 대개 공이 많은 원로들에게 붙이는 경어같은 개념이다. 아무래도 공이 많다보면 자연스레 나이도 많으니까~ 정보! 하면 떠오르는 기념비적인 활약 자체는 없어도 오의 창업주의 부친이 젊었던 시절부터 별 기복없이 차근차근 공을 세워오며 적벽대전 앞두고 소수였던 항전파였던데다, 나이 지긋해서도 은퇴않고 야전에서 활동하다 사망했다. 비록 인품이 좋은 양반까진 아니였지만 그래도 손가에 대한 깊은 충심 자체는 진심인데다 못 배운 애들을 돌려까고 어린 애들을 무시하긴 했어도 그러다 과욕이나 만용부려 팀킬을 한다거나 얼빠진 짓으로 아군을 위험에 빠뜨리는 등의 행동까진 없는, 그냥 요새 사회에도 어딜가나 있는 그냥 흔한 꼰대아재였을 뿐이였다.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였을 그 당시는 오히려 노장이 젊은 장수나 인재들과 오픈마인드로 논의하고 후배의 지시를 고분히 받는 트인 사람이 흔했던 시절은 아니였으니 마냥 정보의 심성이 뒤틀렸다기보다 그냥 결국 정보도 그 시대의 보통사람이였던ㅎ . . . 이번 정보편은 쓰는 나도 노잼이니, 읽는 여러분들도 노잼이였을거다. T-T 인기스타도, 빌런도 아닌데다 임팩트도 없다보니. 그래도 오늘편을 통해 "편식은 좋지 않다" 라는 메세지를 전하고자 한다.ㅋㅋㅋ
곽가 봉효 (郭嘉 奉孝) A.D.170 ~ 207
지금까지 인물들 관련 칼럼을 게시하면 꼭 올라오는 요청이 있었다. "곽가도 나중에 다뤄주세요" 거의 매번 여러 분들에 의해 올라오는 요청이였고 내심 곽가의 인기와 인지도에 놀라웠다...ㅎㅎ 그 인재 많고 재사 많던 위에서, 본인도 여느 모사들 못지 않게 빼어나던 조조의 총애를 받았던 책사면서 한편으로는 그 활약이 많지 않고 생존기간조차 짧아 그의 업적은 거품이 많이 끼었다하여 '곽푸치노', 그의 가치는 과대평가 되었다하여 '곽대평가'라고도 비판받는 동전의 양면같던 사나이 "곽가"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영천군 양적현이라고, 지금 중국 허난성의 위저우시 태생, 순욱과 동향이고 옛날 후한 기준 허창의 북서쪽에 위치한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행적들은, 말 그대로 "천재" 그 자체였다. 학식이 깊었다는 이야기는 없으나, 누구와 이야기 나누던.. 무엇으로 이야기 나누건 거침 없었으며 야망의 스케일도 크고 상당히 담대한 편이라 이미 살던 지역 일대에서는 '뭐가 되도 될 놈' 이라는 평판이 자자하던 양반이였다. 음주가무와 당시 사람들 기준의 일탈적인 행동들도 좀 잦았던 듯 하며, 말도 그리 나긋나긋이 하는 편이 아니였고 직언직설을 하는 등.... 뭐랄까, 이런 비교는 좀 웃기지만 '스티브 잡스'가 저 나이였을 당시와 스타일이 비슷했던거 같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호불호도 많이 갈려,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를 인격적으로 좋아하는 이는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본래는 원소에게 먼저 임관을 하고자 찾아갔었다. 나중에 원소도 다룰 예정이라 그때도 언급할테지만, 역사는 승자의 편이고, 여러분들이 접한 삼국지는 대개 소설인 삼국지연의이고 거기의 원소가 찌질이로 그려져서 그렇지, 원소는 그냥 단순한 찌질이가 아니였다. 당대에서 가장 명성 높고 실력과 경력과 집안이 상당하던.. 누군가 황건적의 난 이후 아작난 후한을 다시 일으킨다면 그 영순위로 꼽히던 게 원소였다. 그래서 어지간한 이름 있는 자들이 가장 선호하던 것도 원소의 세력에 임관하는 것이였고 응당 곽가도 가장 먼저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찾은 사람이 원소였다. 허나, 그럼 그렇지... 며칠의 대기 끝에 만나 이야기 나눈 원소는 곽가 스타일이 아니였고, 당시 원소의 최측근들 중 하나였던 신평과 곽도에게 원소 뒷담화를 남긴 후 박차고 나와 집에서 놀다가 아끼던 책사인 '희지재'의 사망으로 책사에 T/O가 나서 거기 알맞는 사람을 찾던 조조에게 순욱의 추천으로 임관하게 된다. 당시, 순욱도 곽가와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였고 순욱 또한 자기고향에서 머리 좀 돌기로 이름 난 곽가의 명성을 듣고 조조에게 추천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조조와 곽가는 서로 첫 대면 자리에서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임을 직감한다......뚜둥... 신입으로 입사한 주제에 첫 시작부터 제법 높은 직위를 받아서 조조를 돕게 되었는데, 사실 원소와 비교했을 때 뒤쳐질 뿐 조조도 이미 당시에 원소 다음가는 튼실한 세력가였다. 오히려 외형성장에 메달렸고 조직내 유연성이 매우 떨어지는 구시대적 조직을 이끌던 원소보다 새롭게 떠오르며 개방적이고 효율과 내실을 중시하는 조직을 이끄는 조조가 응당 곽가에게도 더욱 실력 발휘하기 좋은 조직이였음이 맞다. 비교하자면 원소의 세력은 현재 국내의 대기업들과 엇비슷하고 조조의 세력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 비슷한 느낌이였다. 아무리 능력이 좋다한들 자유분방하던 곽가로서는 당시 조조말고는 딱히 자기 재량을 펼칠만한 세력도 없었으리라 본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곽가같은 싹수부터 다른 신참이 영입되었음에도 노련하고 뛰어나던 조조의 다른 기존 책사들도 일절 텃새같은게 없었다고 한다. 그의 가장 큰 단점이며 아쉬운 한 가지는 역시 누가 뭐래도 "단명"이다.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위서 정곽동류장류전, 정사 등을 볼 때 아마도 간이 안좋았던 것 같다. 잦은 과음과 부족한 수면 및 특히 스트레스가 그의 간손상을 부추겼을 듯.... 하여간 우루사만 꼬박꼬박 먹었더라면 역사를 살짝 뒤틀었을지 모를 곽가였지만 놀랍게도 역사록들을 아무리 뒤적여도 그가 병법이나 전술관련 제안을 한 기록이 없다. 쉽게 말해 전장에서 용병술이나 전쟁 또는 세력다툼 속에서 승기를 잡을 병략을 짰다는 증거가 없다는 거다. 이리저리 다 뒤져도 군사적인 공적은 삼국지정사에서 여포를 사로잡는 결정적 작전인 "하비성 수공"이 전부, 그나마도 단독입안 아닌 순유와 공동작전입안이다. 당시 조조 휘하에서 껌 좀 씹던 군사들로 순욱과 순유, 정욱 등이 있었는데, 삼국지정사를 분석하고 주석을 달았던 역사가 배송지의 평가에 의하면 이 중 전략전술적 재량이 가장 훌륭한 것은 순유였고 그 다음이 순욱, 그 아래가 정욱이라 했고 곽가는 그 정욱보다 못한 수준 이라고 평 했다. 삼국지연의에는 원소 VS 조조가 결전 벌인 관도대전 속 큰 활약을 한 듯 그리지만 사실 관도대전의 총참모장은 순유였다. 여포와의 대전에서도 주요 전술 입안자는 역시 순유, 게다가 비록 엘리에 가깝게 털리긴 했어도 당시의 기세가 등등하던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총참모장 역시 순유였다. 뭔가 쓰다보니 오늘의 주인공은 순유같다... 아무튼 의외로.... 매번 많은 분들에게 '곽가도 꼭 다뤄주세요!ㅎ'소리를 들을만한 뭔가가 없이 좀 부풀려진 인물이란 것이다. 그러나 역사 기록들 속의 곽가는 정말 조조의 총애를 받았고, 적벽대전 패전 후 조조가 봉효만 있었다면...T-T 이라며 오열했다는 것도 실제였다. 위의 언급대로 딱히 한 것도 없는 주제에 심지어 일찍 죽기까지 했던 먹튀라면 결코 절대 조조의 사랑을 받지 못 했을 것인데 어찌 그는 깐깐쟁이 조조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일단, 그는 달변이였던 걸로 보여진다. 그리고 역사서들 속의 그의 가장 대단했던 점은 "놀라울만큼 감이 좋았다"는 점이다. 그는 조조세력의 숱한 중대사들 앞두고 거의 확정에 가까운 예측들을 내놓았고 "모두" 맞았었다. 더더 놀라운 것은 그런 예측들은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반대되는 의견인 경우가 많았고 더더더 놀라운 점은 그런 나름 날고 기는 이들과 반대되는 예측을 던지는 주제에 그리 확실한 근거조차 내지 않고 그냥 말빨로 덮었다는 점이다. 더더더더 놀라운 사실은 심지어 조조가..... 나머지 책사들과 혼자 딴소리를, 그것도 별 근거도 없이 그냥 '아, 내 말이 맞으니 그냥 나 믿고 해보삼'에 가깝던 곽가의 의견을 잘 따라줬다는 것..ㅎㅎ 조조가 여포를 정벌하고는 싶으나 근거지를 비운 틈타 원소의 후방공격을 걱정할 때도 곽가는 별 다른 논거를 제시않고 원소는 절대 내려오지 않으니 여포공격을 해도 괜찮다며... 여포공략이 순조롭지 않아 전황이 루즈해지며 다시 조조가 그 상황 지켜보다 원소가 쳐내려오는건 아닌지 걱정할 때도 역시 별 근거는 대지 않고 그냥 더 해보자는 제안을 했지만 모두 맞았다. 원소와의 전쟁을 앞두고 당시 남쪽의 야망가이던 손책의 후방 공격을 걱정하던 조조에게 손책은 분명 암살 당할 거라는 구체적 예측까지 맞춰버리며 사실상, 책사를 넘어 예언가에 가까운 그였다고.., Ex.) 당시 조조 책사들의 성향을 표현하자면.. 조조 : 나 로또 샀는데, 1등 되면 좋겠다..T-T 순유 로또의 1등 확률은 840만분의 1입니다. 게다가 1인 하루 최대 구매액은 10만원에 불과.. 제가 조사해보니 로또 1등 명당은 광화문역 3번 출구 쪽의 가판대던데 주공의 구매처는 지금껏 단 한 번, 4등 당첨이 전부였기에 매우 힘들 것이옵니다... 순욱 로또 1등은 하늘이 내는 것이니 안되더라도 너무 심려치 마시고 차근차근 꾸준히 구매를 하시다보면 언젠가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1등도 좋으나 그러다보면 더 확률 높은 2등이나 3등에 여러 번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생각되옵니다. 정욱 참. 다들 복잡하게들 산다...ㅎㅎ 로또 1등도 결국 당첨금 때문에 되고 싶은건데, 주군! 돈 필요하시면 될 때까지 로또 사는것보다 차라리 병사들을 동원해 은행을 털죠? 곽가 다음주에 1등 될거임. 나만 믿으셈. 열전 및 정사와 배송지의 평가 및 주석 등을 참고할 때... 이룬 것 없음에도 조조의 총애를 받은 이유는 그가 조조와 생각하는 패턴이 비슷했기에 그랬던게 아닌가 학자들은 추측한다. 아무리 조조가 날고 기어도, 한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라면 마냥 자기 뜻대로 할 수가 없으며, 부하들의 의견을 듣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은 우로 가고 싶으나 대부분의 측근들이 좌로 가야한다며 저마다의 근거와 논거를 제시하면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자기 뜻을 내세우기는 참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조 자신도 전략전술 및 병법과 고서에 밝기는 했지만 그런 조조의 신뢰를 받던 휘하의 모사들도 머리만 쓰는 것으로는 결코 조조에 못지 않았고 그런 그들이 나름 그럴듯한 이유를 첨부하여 조조의 뜻과 다른 길을 다같이 이야기 한다면 따르자니 자신의 예측과 달라 마음이 놓이지 않고, 안그러자니 자신을 독선적으로 볼 측근들이 신경 쓰이는 딜레마 속에, 조조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또는 조조의 속을 뚫어보듯 조조의 가려운 곳을 긁는 소리를 달변에 실어 확신에 차 우겨주는 곽가가 조조입장에서는 고마웠을 것이다. 게다가 곽가는 한실의 부흥이나 천하의 대세, 정의, 이런 건 관심 없었고 오직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하는 주군인 조조의 상승만을 추구했다. 그런만큼 매사에 철저히 조조의 관점과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말했으며 조조에 대한 충성도 높았다. 조조는 비범하고 자신과 일맥상통하며 충성심 깊고 무엇보다 "젊은" 그에게 자신의 다음 세대와 후사를 맡기고 싶어했다. 쉽게 말해, 조조에게 곽가란 유비에 있어 제갈량에 비견되는 위치였다. 조조가 평생 겪은 휘하 대표 전략가들을 살펴보면... 순유는 자신의 출세와 성공에 포커스가 큰 사람, 순욱은 자신보다 한실의 부흥이란 대의를 중시하는 이, 정욱은 세간의 평가는 개의치 않는 독한 술수를 거침없이 계획하는 인물이였으며, 사마의는 마치 자신을 보는 듯한 야망과 음모가 느껴지는 자였다. 오직 곽가만이 자신만을 위해줬고, 자신의 편이였으며 자신을 가장 잘 따랐다. 그런 곽가가 앓다 끝내 병사하자 조조는 통곡을 했고 종종 힘든 난관마다 곽가를 떠올리며 그리워 했다고 역사기록에 남겨져 있다. 유비와 비교해보면... 유비의 조직은 서촉진출 전까지는 주로 인정과 의리가 주요하던 "의협집단"에 가까운 조직이였다. 지도자 이하 각 구성원들이 단순한 이해관계나 주종관계 이상의 끈끈함으로 뭉쳐져 있어 이탈률은 적으나 그런만큼 능력있는 신규진입자의 성장이 쉽지 않다. 하지만 조조의 조직은 비교적 세력의 초창기부터 일절 연줄없는 외부인의 영입에 적극적이였고, 그런 그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철저히 능력중심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언뜻 조조의 조직이 유비의 그것보다 현대적이고 실용적이여 보이지만 그만큼 조조조직의 분위기는 유비조직의 분위기에 비해 차가울 수 밖에 없다. 유비 휘하의 관우, 장비, 조운, 제갈량 등은 어지간히 큰 실책을 해도 큰 벌을 받거나 좌천될 걱정 없지만 조조 휘하의 문무장들은 큰 실책 시, 좌천과 징벌이 따르고 그에 따라 상하관계가 역전되는 일도 흔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조의 첫 거병 때부터 조조를 따라 숱한 생사고비 넘겼으나 후에 영입된 장료가 더 인정받아, 결국 장료에게 지위역전 당한 악진, 조조의 원정마다 확실한 후방보급으로 조조가 안심하고 전력투구하게끔한 선봉장 못지 않은 공적이 숱함에도 조조에게 밉보인 후 끝내 자살을 강요받아 죽은 순욱 등.... 그런 살벌한 분위기의 조직에서 역시 지도자인들 쉽사리 자기 속내를 드러내기도 쉽잖았을 것이고, 그런 무섭고 엄한 지도자에게 선뜻 다가가는 이도 많지 않았을 것임에도.... 조조에게 곽가는 자기 속내를 알아주고 다가와주는 고마운 존재요, 자기 의견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미더운 인물이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딱히 눈에 보이는 성과가 몇 없음에도 곽가는 조조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삼국지 좋아하십니까?
여자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남자분들은 책과 영화, 특히 게임 등으로 다들 "삼국지"를 접해 보았을터. 주로 게임을 통해 많이들 삼국지를 알게 되었을거라 예상되지만, 게임 하다보면 이게 또 스토리를 알고 해야 더 재미가 붙으니 책도 읽게 된다ㅎ 헌데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삼국지는 "소설"이다. 즉, 작가적 상상력... 다시 말해, "픽션"(허구)이 섞인 문학작품이란거다. 의외로 이걸 인지 못하는 분들 제법 있어서, 삼국지속 내용이 모두 참인줄 알고 감탄한다ㅋ 삼국지는 중국에서 "칠실삼허"(七實三虛)라 한다. 7의 실제와 3의 허구, 쉽게 말해 3할은 뻥이란 소리. 우리가 서점 가서 본, 이리저리 전해들은 삼국지관련 내용들은 "삼국지연의"라는 소설로서, "나관중"이란 중국 원나라 말, 명나라 초의 소설가가 실제 역사와 구전되어 내려오는 민담 등에 자신의 창의력으로 반죽해 쓴 작품이다. 소설은 많은 이가 재미있게 읽어야 함이 기본이기에 당연히 감동과 웃음과 휴머니즘에 교훈도 있으니 참 재미진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아는 여러 삼국지 관련 유명 일화들 중, 안타깝게도 나관중이 지은 뻥이 대부분... (이는 차차 설명하기로~) 실제의 역사적 사실만을 무미건조하게 엮어놓은 사료도 있고 이는 "삼국지정사"라고 따로 있다. (니가 생각하는 그 정사 아님.. 正史 바른 역사) 지은이는 "진수"라는 중국의 촉한 말기의 역사가. 나도 읽어봤는데, 지루하다.. 교회 안다니는 사람이 성경 읽어보는 그 느낌이다. 그리고 열전이라 해서 각 인물의 이야기만 다룬 것들도 있는데, 이건 모든 인물들이 다 있지도 않고, 또 이 열전은 진짜 구해 읽기 쉽지 않다ㅋ 여담으로 삼국지 관련, 가장 많은 정보와 자료는 당연히 본진인 중국국가기록원이 갖고 있지만, 민간 중 그에 버금가는 방대한 자료는 바로 일본의 게임회사인 "코에이"(KOEI)에서 갖고 있다ㅋㅋ (전략 시뮬레이션 삼국지 시리즈의 바로 그 코에이) 워낙 많은 자료와 기록 토대로 심지어 각 인물들의 외형의 이미지메이킹도 상당히 잘 해놓은 덕에 숱한 미디어 속 삼국지 인물묘사는 코에이의 묘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는ㅎㅎ 아무튼 우리가 아는 삼국지가 삼국지의 전부가 아니며, 그냥 부풀려진 구전민담..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이 더해진 것들이 많은데 앞으로 여기에서는 누구나 아는 그런거 말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화, 실제의 기록 등... 삼국지의 껍질을 벗겨보는 칼럼들을 다뤄본다. 삼국지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기대해도 좋을 듯! 부디 많이들 와서 적극적인 피드백들 해주시길!
비운의 황녀를 죽는 날까지 사랑했던 어느 왕자 이야기 (feat. TMI 파티)
태초에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있었음. 오랫동안 영국을 다스린 빅토리아 여왕은 4남 5녀를 낳았는데, 공주들이 유럽 왕실 여기저기로 시집을 가고....외손녀들도 여기저기 시집을 가면서 유럽 왕실마다 자기 피를 남김. 이건 존나 큰 문제였음. 왜냐면 (대충 있어보이는 관련 사진) 여왕은 혈우병 보인자였기 때문이다. 혈우병은 뭐고 보인자는 뭐냐면 자 일단 인간의 X 염색체에는 혈액을 응고시키는 인자가 있는데, 이게 결함이 있으면 피가 잘 멈추지 않는 혈우병이 되는 거임. 혈우병이 진짜 무서운 점은 외상이 아니라 내출혈의 경우임. 내출혈이 일어났을 때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고이면 혈종이 생겨서 장애나 사망까지 이르는 무서운 병임. 보인자도 뭔지 설명해줌. 혈우병은 위에서 설명한대로 X 염색체에 결함이 있는 거임. 남성은 XY라 X 하나에 결함이 있으면 바로 혈우병임. 근데 여자는 성염색체가 XX라 하나가 결함이 있어도 다른 X 염색체가 보완을 해서 본인은 혈우병 증상이 없음 ㅇㅇ 하지만 본인의 X 염색체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자식한테 그게 내려가면 혈우병 유전이 되기 때문에 보인자라고 부름. 빅토리아 여왕은 본인이 혈우병 보인자란걸 몰랐음. 그 시대에 염색체에 대한 개념도 없을 뿐더러 부모님과 남편은 혈우병이 없었고 본인도 혈우병 증상이 없기 때문에.... 참고로 빅토리아 여왕 부모님 둘 다 환자가 아닌데 빅토리아 여왕이 혈우병 보인자로 태어난건 돌연변이라서임. 문제 없던 염색체도 나이가 들면 혈액응고 인자가 자기 기능을 상실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빅토리아 여왕 아버지가 50대에 낳은 늦둥이 딸이었기 때문에 여왕이 보인자로 태어난게 학계 정설. 여왕의 혈우병 인자는 둘째 딸인 앤 공주, 다섯째 딸 베아트리스 공주, 넷째 아들 레오파드 왕자에게 내려감. 사진이 둘째 딸 앤 공주임. 앤 공주는 독일의 헤센 대공국으로 시집 감. 앤 공주는 아주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됨.... 2남 5녀를 낳았는데 막내아들 프리드리히 왕자가 앤 공주의 혈우병 인자를 물려 받아 혈우병 환자로 태어났기 때문 ㅠ 프리드리히는 놀다가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는데 죽을 부상이 아니었지만 피가 멈추지 않아서 과다 출혈로 사망함. 일곱 아이들 중에서 프리드리히를 가장 아꼈던 앤 공주는 죽을 때까지 프리드리히를 마음에 묻고 살았고, 프리드리히가 죽고 태어난 막내딸 마리 공주에게 집착하게 됨. 거기에 디프테리아 라는 전염병이 헤센 대공국에 퍼졌고 어린 마리 공주가 사망함. 막내 아들 딸을 전부 보내고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앤 공주도 디프테리아로 죽음. 앤 공주의 둘째, 즉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인 엘리자베트는 러시아 대공 세르게이와 사랑에 빠짐. 당시 러시아 황제의 동생이었던 세르게이는 엘리자베트처럼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는데 그 아픔을 공유하면서 가까워졌다함. 당시 러시아 황실은 불안정했고,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은 "러시아로 시집 가는건 이 할미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된다!!!!" 라고 난리를 쳤지만 원래 사랑에 빠지면 아무 것도 안 들리는 법. 여튼 둘이 결혼하는 날.... 앤 공주의 다섯째 자식이자 엘리자베트의 여동생인 알릭스도 언니의 결혼을 축하하는 파티에 참석함. 여기서 알릭스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러시아의 황태자였던 니콜라이임. 세르게이의 조카였던 니콜라이도 당연히 삼촌 결혼 축하하러 왔다가 알릭스를 만났고 둘은 사랑에 빠짐. 빅토리아 여왕 : (환장) 앤 공주가 일찍 죽은 후 빅토리아 여왕은 실질적으로 외손녀들의 어머니 노릇을 해주며 양육에 많이 관여했는데, 금쪽같이 키운 손녀들이 쌍으로 러시아라니 환장을 안 할 수가 없음. 심지어 엘리자베트는 황족이긴 해도 황위랑 관련 없는 대공이지만 알릭스는 차기 황제가 될 황태자였음. 뭐 그치만 알릭스는 이름도 러시아 식으로 바꾸고 종교도 개종해가며 니콜라이와 결혼해 러시아의 황후가 됨. 올가, 타티아나, 마리아, 아나스탸사, 알렉세이 5남매를 낳음. 자 여기서 잊고 있던 혈우병 인자가 ㅎㅇ 하고 나타남. 빅토리아 여왕 -> 앤 공주 -> 알릭스 -> 알렉세이 황태자 루트임. 겨우 얻은 귀한 막내아들이 혈우병 환자로 태어났으니 알릭스는 미칠 지경이었음. 알릭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갖 방법을 동원했는데 그 방법 중 최악의 악수가 라스푸친....(코난에 나오는 걔) 머 이건 상관 없는 이야기니 패스 이 사람은 앤 공주의 장녀이자 알릭스의 언니인 빅토리아 공주임.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지은 거라 함. 유럽은 원래 이럼. 빅토리아 공주는 4남매를 낳는데 막내아들 루이가 존나 잘생김. (사진 오른쪽이 루이고 왼쪽은 영국 왕임) 위에서 말했듯 어머니 앤 공주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빅토리아-엘리자베트-알릭스 자매의 양육은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이 많이 관여함. 그래서 빅토리아 공주나 루이는 본인을 영국인으로 생각했다함. 여튼 루이는 러시아에 놀러감. 러시아 황후인 알릭스는 이모, 황제 니콜라이 2세는 이모부, 러시아 황녀들은 루이에게 이종사촌이니까ㅇㅇ 루이는 한살 연상이자 셋째 황녀인 사촌누나 마리아 황녀에게 반함. 폴인럽해버린 것이에요. 사촌인데? 할 수 있는데 이거 20세기 초반 일임. 유럽, 특히 왕실은 근친혼에 대한 개념이 딱히 없었음. 근친혼에 관한 문제들이 제기된건 현대 ㅇㅇ 루이가 돌아온 후에도 둘은 종종 편지를 주고 받았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황제 일가는 폐위 후 유폐 당함. 마리아의 생사도 알 수 없게 된 루이는 전전긍긍하며 마리아가 무사히 살아남길 기도했지만 1918년, 황제 일가는 모조리 총살 당함 ㅠㅠㅠ 1968년 방영된 다큐멘터리 본인 피셜에 따르면 루이는 마리아 황녀와 진지하게 결혼하고 싶었다고 함. 루이는 폭탄테러로 사망했는데 죽는 날까지 서재에 마리아 황녀의 사진을 놓고 살았다고 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끗 하기 아쉬우니까 TMI 1 루이의 친누나인 앨리스는 청각장애인으로 태어났고 평생을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수녀원을 전전했음. 앨리스는 그리스 왕자와 결혼했는데 남편도 일찍 죽음. 거기다 그리스도 왕정이 전복 되는데 루이는 그리스에서 도피한 누나랑 조카를 자기 집에 데려옴. 루이는 이 조카를 자기 친아들처럼 키웠는데 그 필립이 영국 현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 (aka 망언제조기) (아버지가 그리스 왕자라 필립도 그리스 왕족인데 여왕이랑 결혼하려고 그리스 왕위계승권 포기함. ) 따지고보면 엘리자베스 2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직계후손이고, 필립 공도 빅토리아 여왕의 고손자라 둘이 8촌임 ㅇㅅㅇ 필립 아들인 찰스 왕세자도 루이를 친할아버지처럼 생각했다고 함. 여기서 존나 블랙코미디.... 원래 영국 왕실에서는 1970년대에 루이 공의 손녀인 아만다를 찰스 왕세자랑 결혼 시키려고 했음. 근데 왕실 사람들은 이미 찰스가 카밀라랑 이렇고 저렇고 하는 관계인거 알고 있었고, 루이 공의 딸인 패트리샤 부부는 "시발 안 됨 ㄴㄴㄴㄴ 내 딸을 찰스랑 결혼 시킨다고? 지랄 ㄴㄴㄴㄴ" 라고 격렬히 반대함. 때마침(?) 루이 공이 폭탄테러로 사망하면서 패트리샤 부부는 "아버지가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나셔서 저희 부부 멘탈이 너무 힘듭니다. 이 시기에 딸 시집 보내기 싫음 ㅈㅅ" 이라고 거절하면서 결혼은 파토나고 찰스는 다이애나랑 결혼함. 존나 선견지명 오졌던 부분. 어쨌든 루이는 현 영국 왕실 모두의 존경을 받던 어른이라 최근 태어난 영국 왕자 이름도 루이라고 지음. 루이는 원래 프랑스식 이름이라 영국에서는 인기 없는 이름이기 때문에 루이라는 이름을 가진 최초의 영국 왕족임. TMI 2 마리아 황녀가 죽은 후 루이는 당대 최고의 부자 상속녀였던 에드위나랑 결혼함. 에드위나의 개인재산이 록펠러 재산의 10분의 1....존나 부자 ㅇㅇ...... 둘의 결혼은 오픈 매리지, 즉 니가 누구랑 섹스하고 사귀든 상관 안 함. 대신 내가 누구랑 사귀고 섹스하든 상관 ㄴㄴ 라는 계약을 맺고 한 결혼이었음. 에드위나는 온갖 사람들이랑 염문설을 뿌렸는데 대표적으로 1. 자와할랄 네루 (;;;) 2. 미하일로브나 후작부인 = 루이의 형수 = 자기 동서 (.....?) 3. 남편 루이의 섹파 (......????) 루이의 전섹파랑 사귄게 아니라 루이의 현섹파랑 사겼다함....WOW 여튼 루이의 형수이자 에드위나의 애인이었던 (.....) 미하일로브나 후작부인은 당대 미국 최고 재벌 중 하나였던 밴더빌트 가문의 며느리 글로리아 모건이랑 사겼는데 글로리아 모건은 딸 글로리아 밴더빌트의 양육권을 두고 시댁이랑 재판 뜸. 이 재판은 TV에 방영될 정도로 당대 이슈였고 존나 추잡한 폭로전이 오고갔는데, 재판에서 시댁이 양육권을 얻으려고 글로리아 모건이랑 미하일로브나 후작부인이 사귀는걸 폭로했다함. 개막장;;;;;; 유투브에 찾으면 아직도 있음ㅋ.... 여튼 이 글로리아 밴더빌트의 아들이 앤더슨 쿠퍼 ㅇㅅㅇ 앤더슨 쿠퍼는 커밍아웃한 게이인데, 자기 외할머니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자기의 동성애 성향이 유전인가 괴로워했었다구 함. - 대체 어쩌다가 앤더슨 쿠퍼까지 온 건지 모르겠지만 쨌든 끗 - 출처 : 여성시대 / 오로오로오로로
손견 문대 (孫堅 文臺) A.D.155? ~ 191?
중국의 삼국시대를 구성하는 위, 촉, 오 중의 하나요.. 위, 촉, 오 중 가장 마지막에 망한 오나라의 황실이던 손가의 시작에는 이 남자가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손가의 제네시스라 할 수 있는 "손견"이다. 여기저기에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중국 춘추시대의 위대한 병략가인 '손무(孫武)'의 후예'라는 소문과 추측까지 났지만 일절 그 실제는 확인된 바가 없는 그저 루머에 불과하다. 물론, 절대 아니란 증거도 없지만 유비가 한황실의 종친이라는 사실처럼 족보를 뒤져 팩트를 입증한 것이 아닌 본인의 자칭이며 또 이를 갖고 삼국지정사의 저자인 진수 또한 정황상의 추측을 한 것에 불과하다. 양주 오군 부춘현이 고향이며 오늘날 중국의 최대도시인 '상하이(上海)' 인근쯤이다. 물론, 저 당시의 오군은 이미 전한시대를 넘어 진나라 때부터 살기 괜찮은 지역이였고, "항우"도 거점 삼았던 인구도 적잖던 곳이긴 하지만 당연하게도 지금의 상하이와는 넘사벽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유의해두자. 전반적인 사료들 및 역사서와 그 주석본들, 열전까지 죄다 뒤적여 추론해 볼 때... 양주지역의 제법 좀 사는 "호족집안 아들"이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고 또 대대손손 유구한 금수저까진 아닌거 같고, 후한 말에 이르러 떠오른.. 러시아의 올리가르히같은 그런 신흥세력의 자제였다. 어릴 때부터 이미 살던 동네와 고향 일대에서 먹어주는 깡다구와 대담함을 지닌 싹수 다른 소년이였으며, 만 17세에, 모여있는 수적떼들에게 홀로 덤벼 그들을 쫓아내 와해시킨 일화가 있고, 이걸 계기로 벼슬길에 나가 무관이 되어 같은 해 회계군의 허창 & 허소의 난을 제압한다. 이때부터 손견은 고속승진을 시작했다. 참고로 손견이 잘 나가는 호족집안임을 입증해 주는 한 예가 바로 위의 저 허씨들의 난을 제압코자 모병하는 과정이였는데, 관군만으로는 전력이 부족하다 판단.. 사재를 털어 1천 여명의 병력을 추가로 모병하여 임무를 완수했다는 점이다. 당장 천 여명을 모병하고.. 그렇게 모집된 인원들을 무장 및 최소한의 복색을 통일시켜 먹이고 재우고 훈련하는데 투자되는 비용이 벌써 보통이 아니다. 아무튼 놀라운건 손견이 저런 히어로급 활약을 올렸던 연령이 고작 겨우 열 일곱 가량(추정) 나이였다는 것인데, 아무리 저 시절이 평균수명, 사망연령이 낮디 낮아 일찍일찍 결혼하고 얼른얼른 성인대우를 받았던 시절임을 감안해도 참 대단함이... 당장 나도 그렇고, 여러분들이 열 일곱살 때 어땠는지 떠올려보면 바로 답 나온다. 담임선생님의 빠따 한 번에도 고통에 몸을 뒤틀고 쉬는 시간 벨이 울림과 동시에 매점으로 달려나가 빵 사먹으려고 버둥이던 우리의 그 나이에 손견은 홀로 수적떼를 목 베고, 벼슬도 오르고 군사를 모아 전투도 나갔던 것.. T-T 다만.. 어려서부터 아예 학문은 내려 놓았었던 듯. 책을 읽었다는 기록도 없고 심지어 문맹이였다는 설도 있다. 물론, 저 당시에 문맹률은 엄청나긴 했다지만, 그래도 나름 사는집 잘 나가던 자제로서 문맹설은 본인이 얼마나 학업을 멀리 했는지를 보여준다. 저 당시는 오로지 무예만 출중한 이들은 무시를 받았고 높은 직위에 오르는 데도 한계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클래스가 되는 무장들은 깊은 학식까진 아니여도 최소한 여러 권의 병략서, 병법서들을 읽는 수준은 되야했던 시절이였기에 문맹설이 돌 정도로 학문을 등한시한 점은 자랑할건 못 됨이 맞다. 허나 그런 무식함에도 불구하고 군사관련 행정처리에는 꽤나 빠삭하게 처리를 했었고 그런 일처리와 용맹 그리고 궂은일은 미루거나 피하지 않고 나서서 쓱싹 처리하는 빠릿함덕에 평판은 좋았던 편으로 성격은 좀 불같을 지언정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시원시원하면서도 화끈한 성격 덕분에 따르는 이들은 적잖았던 모양이다. 군율준수에 매우 엄하면서도 풀어줄 때는 풀어줬고, 병사들을 고압적인 자세 일변도가 아닌 "전우애"로서 대함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식사도 병사들과 함께 동일메뉴로 먹었다고 하니 당근 병사들의 충정도 높았다. 이래저래 빠른 출세가도 달리며 승승장구 했던 손견이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땅 넓고 사람 많은 중국의 어느 지역, 어느 군벌에나 두엇쯤은 있는 준재였던 그가 전국구로 발돋움하는 계기는 다 필요없고 바로바로 원소의 격문에 의해 집결한 18로 제후들의 유니온인 "반동탁연합군 VS 동탁군"과의 대립이였다. 참고로, 삼국지연의 속에는 마치 손견이 원소, 원술, 조조 등 당시 각자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참전한 여러 제후들과 역시 동등한 제후들 중 하나로 그려지는데 이는 왜곡이다. 그때까지도 손견은 독자적인 자신만의 세력을 이끌던 군벌이 아니였다. 이미 그전, '황건적의 난' 당시에는 엄연히 조정의 벼슬에 임관된 상태로 '주준'의 부장으로 참전, 그 후, 서량에서 184년에 변장 & 한수의 난 당시에는 십상시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은 것으로 밉보여 지휘관직을 박탈당한 '황보숭'의 후임으로 정벌군 사령관을 맡았던 '장온'의 부장으로 참전 하는 등... 주로 황실직속의 고위장군들의 부장으로 참전한 경우가 많았던 만년부장이였다 덧붙이자면... 변장 & 한수의 난 당시에는 서량에서 그 위명 높던 동탁도 장온의 천거로 참전한 상태였는데, 손견과는 여러 모로 행실과 견해의 차이로 몹시 사이가 안좋았던 터였고 손견과 달리, 상관인 장온에게도 불손하며 제멋대로에 안하무인으로 굴던 동탁이였기에 둘은 상극.. 게다가 서량에서는 먹어주던 동탁이 상당한 군공을 쌓았음에도 손견은 몇 차례 패전하는 등 재미를 못 봤다. 반동탁연합군에 합류했을 무렵도 당시의 위세가 천하에서도 세 손에 꼽히던 "원술"의 사실상 부장에 가까운 자리로 원술의 지시와 서포트를 받으며 참전했었다. 아무튼 하여간 그렇게 반동탁연합군 소속으로 참전한 손견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적인 대활약을 벌이며 동탁군을 양민학살하여 후한의 슈퍼스타로 발돋움 하는데... 일단 첫 타석에서는 접고 들어갔다. 동탁의 부장이던 '서영'과의 전투에서 박살이 나서 간신히 최측근의 호위병력 몇 십여 기만 이끌고 살아나왔고 그마져도 위급상황까지 몰려.... 자신의 한 팔과 다름없던 "조무"가 손견의 붉은 두건을 대신 쓰고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벌어준 덕에 겨우 살았다. 참고로, 삼국지연의에서 조무는 저렇게 손견을 살리고 간지 뿜으며 장렬히 전사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저 때 손견의 두건을 걸어놓고 적병들이 돌아갈 때까지 짱 박혀 있다가 살아남았다. 다만.... 그 이후로 정사에 더 기록이 없어서 어찌 되었는지는 알 길은 없다. 저 패배를 보약 삼아 그 다음부터 나선 손견은 다른 사람이 되어 동탁군을 거침없이 관광 태우기 시작한다. 동탁의 부장 '호진'의 군대를 엘리시키고, 무력의 화신이던 그 "여포"의 부대조차 지워버렸으며, 심지어 이 와중에 연의에서는 관우가 "데운 술이 식기 전에" 목을 베었다는 "화웅"도 참수한다. 솔직히 화웅이 연의에서 관우버프용 적장으로 나와서 동탁군의 에이스던 여포와 함께 원투펀치를 이루는 맹장으로 그려지지만 솔직히 정사나 그밖의 기록들에서는 별 다른 언급이 없어서 그 정도의 장수인지는 알 길이 없다. 허나 당시 화웅이 맡았던 임무나 직위등을 볼 때, 그렇다고 또 듣보잡은 결코 아니였음을 예상할 뿐! 결국 이런 손견의 크레이지 모드 탓에 동탁은 당시의 후한 수도이던 낙양을 죄다 초토화 시킨 후, 장안으로 천도를 하게 되며... 이 와중에 한 번 여포부대를 박살냈던 손견은 다시 한 번 낙양에서 여포부대를 짓이겼다. 이렇게 수복된 낙양성에 진입하며 손견이 옥새를 득템하게 되었고 그 옥새는 당시 손견의 주군이던 원술이 반협박을 하여 삥뜯기고 만다. 삼국지연의처럼 옥새를 꿍쳤다가 손책에게 물려주고 손책이 그 옥새를 담보삼아, 원술에게 병력을 인수받아 독립했다는 것도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라이프를 보다 드라마틱하게 만들고자 각색된 것이였다는...ㅎ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손견은 명백한 "원술의 부하"였다. 삼국지연의만 보셨거나 게임 등으로만 접하신 분들은 절대 몰랐을 사실이다. 허나 원술이 그럼 그렇지, 명군이 아니다보니 그 아래에서 손견이 이래저래 속앓이를 하긴 했다. 일단 저 동탁과의 전투에서도 파죽지세였지만... 손견이 너무 잘 나가, 그 위세나 명성이 높아지면 그를 컨트롤하기 벅찰 것을 염려하고 시기했던 원술이 겐세이를 놓고자 군량보급을 끊었던 탓에 손견은 그 드높던 기세가 주춤해질 수 밖에 없었고 위의 언급대로 옥새마져 협박으로 빼앗기며 심지어 그 아들 손책마져도 원술로 인한 스트레스가 여간 아니였다고 한다. 그 후.. 그 원술의 명으로 유표를 공격하던 중, 당시 손견에 맞선 유표측 장수인 "황조"의 부대와 전투 중, 원정군 총지휘관답지 않게 퇴각하는 황조를 직접 앞장서 추격하는 무리수를 두다 가뜩이나 눈에 잘 띄는 붉은 두건을 두른 탓에 빗발치는 화살과 돌에 맞아 젊은 나이에 허망히 생을 마감한다. 직접적인 사인은 날아온 돌에 머리를 직격으로 맞고 두개골의 골절에 의한 즉사. ... 손견 본인의 전투 스타일 자체가 겁대가리 상실하여 앞뒤 재고보고 할 거 없이 자신이 앞장서는 스타일. 심지어 공성전에서조차 자신이 앞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고 위에서 언급된, 손견을 전국구스타로 만들어준 동탁과의 전투에서도 그 잘났다는 18로 제후들 중 거의 유일하게 손견 혼자 동탁군 전군을 발랐을 당시 역시 가장 선두에서 미친 듯 싸웠던 손견이였다. 일기토기록이나 무예솜씨에 대한 언급은 따로 남아있는 자료가 없으나, 저렇게 밑도 끝도 없이 앞장 서서 날뛴걸 보면 결코 힘과 무예가 뒤쳐진 사람은 아닐 거라는 것은 기정사실. 저런 스타일은 뭔가 간지넘치고 상남자스러워 보이긴 해도 정말 크나큰 리스크를 안고 있는 '하이 리턴 & 하이 리스크' 타입이라 할 수 있다. 총지휘관이 후방에서 지령만 내리는 부대와 직접 장병들을 독려하며 자신이 선두에서 달려 나가는 부대의 사기 차이는 극명하다. 저 당시의 병사들은 딱히 긴 시간 제대로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드물었고, 대개 필요시에 허겁지겁 긁어모은 농부들 출신이 대부분에 장비나 무기도 별 볼일 없었다. 우리가 삼국지관련 각종 미디어에서 보듯, 무슨 요새군대처럼 통일된 군복을 입은 것도 아니였다. 쉽게 말해 거의 오합지졸이였는데... 그런 병구성일수록 몹시 중요한 요소는 딱 두 가지! "병력의 수"와 "병력의 사기"이다. 헌데, 그 둘 중에도 더욱 중요한 것은 "사기"였다. 기세가 드높은 소수가 그렇지 못한 다수를 일방적으로 도륙하는 경우도 저 당시는 부지기수였고. 서양의 역사를 봐도 숫자가 많다고 볼 수 없던 로마군이 다수의 게르만족, 북아프리카에서 승리를 거둔 큰 이유는 잘 훈련되고 통제된 정예병들의 자신감에서 오는 결국은 "앞선 기세" 탓에, 상대들이 더 많은 수나 지리적 이점을 가졌음에도 오히려 기가 꺾인 탓이였다. 심지어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는 그 무섭다는 '코끼리부대'를 앞세우고도 보병중심의 로마군에게 패했다. 이유는 카르타고는 코끼리를 앞세우고 나머지는 뒤로 배치, 코끼리가 짓밟고 휘저으면 나서서 시마이하는 전법인데, 로마군의 화살과 투창에 결국... 살로 이루어진 코끼리가 쓰러지면 그 후로는 대책이 없던 카르타고군은 기세가 꺾였기 때문. 아무튼 그렇다보니 저런 용감한 지휘관이 선두한 부대에, 겁을 먹는 장수나 병사가 있을리 만무하여 손견의 부대는 어지간한 적세력은 별 다른 전략없이도 죄다 씹어버렸던 것이다. 허나... 저 방식이 반대로 정말 극히 위험한 게.. 앞장 선 지휘관은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 적병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고, 제아무리 무예가 뛰어난들... 절대 다수의 병력이 다구리를 놓으면 장사가 없고, 활같은 원거리무기에 대해서도 취약하며 또 언급했듯, 만에 하나 지휘관이 전사하면 그 중요한 기세가 꺾이기에.. 다수여도, 승세를 타고 있었어도,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어 패할 위험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저 방식의 장점덕에 열 번, 백 번 이긴들... 저 방식의 단점탓에 한 번 패하면.. 그 당장의 전투는 물론, 그 세력 자체의 존망이 걸리게 된다. 그렇기에 이미 진즉부터 손견의 측근들은 그의 무모한 선두돌격을 자중시켰으나 그때껏 멀쩡한 손견은 당연히 씹고 지고집대로 했고, 그러다 결국은 누가 어디서 던졌는지도 모를 돌팔매에 맞고 허망히 사망한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이러한 성향은 장남에게도 고스란히 유전된다는... 성격은 시원시원했던 모양이다. 처벌도, 용서도 화끈했고 철저한 행동파였다. 대개의 맹장들이 그렇듯, 성격이 불같고 급했으며 전략전술 등은 비겁한 꼼수로 생각하여 비중을 크게 두지 않았다고 한다. 물욕은 없으나 고집이 센 편이였고 대단히 헌신적(?)인 아버지로서 어느 정도 나이가 된 아들들은 전장에 늘 데리고 다니며 각종 군사전투관련 경험과 지식들을 쌓게끔 지도했고 무예도 직접 가르쳤다. 아내(오국태 부인)를 몹시 사랑했던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는데, 낙양에서 얻은 옥새를 원술에게 바치게 된 이유가 바로 원술이 손견의 아내를 인질 삼았기 때문이였다. 물론, 현대의 기준으로 아내가 인질인데 그깟 도장은 당연히 포기하는게 맞는거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의 여성인권은 지금과 비교불가인 거의 남성의 부록으로 여겨지던 때고 다른 인물들은 자신의 야망이나 위급시에 아내의 안위는 내팽개 친 경우가 부지기수에 심지어 아내가 여럿인 경우도 많았고 "옥새"는 그냥 열쇠도 같이 하는 도장집 가서 인감으로 쓸 거니까 소뿔로 파달라며 3만원 주고 잠깐 기다리면 도장아저씨가 돋보기끼고 레이져로 파주는 그런 물건이 아닌! 상당한 야망가였던 손견같은 이에게는 대단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당시로는 황실의 권위와 정통을 의미하는 물건이였다. 괜히 삼국지게임에서 옥새를 얻으면 여포도 매력이 100이 되는게 아니고, 원술이 아무리 또라이인들 이 옥새 얻고부터 황제의 꿈을 현실화시킨게 아니다. 게다가 당시 옥새를 분실한 후한 황실도 분실한 옥새를 새로 제작하지 못 하고 전전긍긍하던 것도 옥새는 어디 뒀는지 기억 안나면 다 서랍 뒤지고 엄마한테 어디 있냐 소리질러 찾다 끝내 기억 안나면 새로 마련하는 그런 물건이 아니였기 때문이였다. 옥새 이야기가 길어졌다만, 결론은.. 그런 어마무시대단굉장한 슈퍼레어템을 겨우(?) 아내 때문에 포기한 손견의 가족애가 깊었다는 것. 게다가 그런 가족애는 당시의 영웅이라 일컬어지는 인물들에게는 결여된 가치관이였다는 점이다. 당장 조조만 해도 자기 죽게 생겼으니 장남 조앙을 내버렸고(당시의 장남의 가치와 위치는 상당했음!) 인의의 아이콘 유비도 자기가 위급하니 부인들과 형제들 내팽개치고 지살자고 혼자 내뺐으며, 기타 숱한 인물들이 아내나 기타 가족들에 대한 안위는 뒷전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여러분들도 만약 강남 테헤란로 한복판의 15층 짜리 빌딩 하나를 얻었거나 국회의원 공천권을 받았는데 누군가가 여러분의 아내나 여친을 인질삼아 내놓으라면 내놓겠나? (잠깐.. 당연히 안내놓는다는 전제로 이리 물어본 나만 혼자 지금 쓰레기가 되는건가!?) 하여간 단점도 적지 않았다만 이런저런 영웅호걸의 면모들이 있었기에, 그 DNA가 전달된 손책, 손권같은 이들이 그 인물많고 사건많던 중국 삼국시대 속에서도 큰 획을 그은 히어로가 될 수 있었다는 말씀! 오늘의 주인공인 굵고 짧게 살다 간 손견의 이야기는 여기서 매듭 짓는다. 이번 칼럼은 원래도 늦었지만 유독 더 많이 딜레이가 된 점 깊은 사과 드립니다...T-T 변명을 해보자면, 제가 늦은 나이에 다시금 학구열을 불태우느라 지금 사이버대학에 등록해 퇴근 후에 공부를 하고 있는데, 중간과제 제출 기간 및 중간고사 기간을 앞두고 과제와 시험공부 탓에 틈내기 쉽지 않았고, 또 한 가지는 제가 좀 더 좋은 회사에 보다 나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이것저것 좀 정신이 없었어요.. 아무튼 저도 노느라 늦어진 것은 아닌 점 양해 바랍니다. 이번주와 다음주중으로 중간과제 제출도, 중간고사도 다 마무리 지어지니 그 후부터는 제깍제깍 올리겠습니다!
진수 승조 (陳壽 承祚) A.D.233 ~ 297
어찌보면... 이 칼럼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다뤘어야 할 사실상 삼국지의 가장 중요인물을 이제서야 다루게 되니,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삼국지정사(三國志正史)의 저자 "진수"다. 사실, 수천 여 년 이상을 자랑하는 유구한 중국문명.. 심지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와 함께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인 중국의 역사는 여간 장대한게 아니며 그 중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후한 말 ~ 삼국시대는 고작 한 세기 밖에 안되는.. 이리 말하면 좀 뭐하지만, 말 그대로 "찰나" 에 불과하다. 그런 찰나의 순간(...)을 중국 본토는 물론 타이완과 동남아시아 및 중화권을 넘어 여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길고 긴 중국역사 중 가장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시기이자 큰 인기와 관심을 얻게 된 시대로 만들어 낸 것의 시작은 바로 진수의 공적인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토 다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 뭔 개소리여, 삼국지는 나관중이지! ' ' 난 이문열꺼만 봤구만 뭔 소리? ' ' 오레노산코쿠지와요코야마미쓰테루상노산코쿠지데스 ' 다 맞다. 모두 옳다. 무엇보다 오늘날 대인기의 삼국지가 있게 된 가장 큰 공은 누가 뭐래도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저자인 "나관중(羅貫中)" 및 나관중 이전에 삼국지정사의 부족하거나 아쉬운 부분들을 연구하여 주석을 달았던 "배송지(裴松之)", 그 밖에도 현대에 와서 이를 바탕으로 한중일 삼국에서 평역본과 흥미로운 미디어믹스들을 양산해낸 많은 이들이 오늘의 삼국지가 누리는 인기와 명성을 있게 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연계물들 역시 애초에 진수가 삼국지를 집필하지 않았다면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였다. 참고로 삼국지정사는 나관중의 연의가 창작되고 이게 또 인기대폭발하며 아주아주 근래에 그리 일컫는거지, 지금도 중국에 가서 '삼국지'라 하면 그냥 정사를 말하며 삼국지연의만 따로 연의라고 한다. 이는 마치 짜장면과 짜파게티를 구분할 때 짜장면을 가리켜 굳이 '정통짜장면'이라 안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정사는 말 그대로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엮은 거라 제법 많은 편수로 이루어져 있고 위서(魏書) 30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에 각 서들은 여러 인물들 위주의 열전들로 구성되어 있다. 연의만 줄기차게 읽다 환상을 품고 접하면 그야말로 모든 불면증을 치료할만큼 노잼.. 아니, 핵노잼이다. (일단 구해보기조차 버겁다..,) 다시 진수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는 당시로는 파서군(巴西郡) 안한면(安漢縣) 출신이며 오늘날 중국 쓰촨성의 난충 시에서 북쪽으로 50~60km가량 더 가면 그쯤이 대략 진수의 고향 위치다. 참고로 이 동네는 중국내에서 일조량이 매우 적은 곳 중 하나인데, 여름 기준으로 오전 8시쯤 일출, 오후 5시쯤이면 일몰로 어둑어둑하다고 한다. 구글링 해보니 이 동네 5성급 호텔 일반객실의 평균가가 우리돈 ₩ 50,000. 쯤이라는데 매우 싸다! 내가 예전 여친과 자주 가던 캘리포니아모텔의 1박이 ₩ 40,000. 주말 피크타임에 가서 일반실 없다고하면 어쩔 수 없이 가는 디럭스룸이 ₩ 50,000.이였는데... 대신 디럭스룸은 일회용품을 그냥 줘서 실제로는 ₩ 9,000. 더 비싼 셈이다. 여튼 진수의 고향을 보면 알겠지만 촉한(蜀漢)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제법 학문에 밝았다고 하며 그 덕에 초주의 휘하로 들어가 가르침을 받았다. 그렇다고 초주가 1:1 과외를 해준 건 아닐거고 당시 트렌드상, 아마 초주가 가르치는 여러 문하생들 중 하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지연의나 코에이의 게임에서 잉여노쓸모로 나와 그렇지, 초주는 촉한의 당대최고의 학자들 중 한 명이였고 명성이 대단했기에 그런 초주의 문하생은 아무나 될 수 없었다. 참고로 초주는 "도참설(圖讖說)" 이라는 일종의 예언과 관련된 이론의 신봉자인 촉한판 노스트라다무스였다..;;; 본인도 똘망진데다 스승인 초주빨이 겹쳐 꽤 일찍 벼슬에 나섰지만 원래 책만 후비는 애들이 대개 그렇듯, 사회생활은 잘 못 했는지... 당시 실세였던 환관 황호를 비방하는 상소를 올리다 좌천 세 번에 파면 한 번을 먹었다. 보드게임 하다 주사위 잘못 던지면 "처음으로 돌아가시오" 이런거 여러 번 걸리는거랑 비슷한 사회생활을 했다..... 내내 이렇듯 정권실세에게 개김질 하다 파면크리 먹고 백수생활 하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량처럼 살 때 촉한은 위나라가 낳은 클리프행어 등애의 손에 멸국을 맞고 검각에서 버티던 강유마저 종회에게 항복하며 진수는 집에서 노는 사이, 국적이 촉한에서 위로 바뀐다. 그리고 여전히 노는 동안 사마염이 위를 멸망시키고 진을 건국하며 백수진수의 국적은 위에서 진으로 또 한 번 바뀐다. 이런 복잡한 귀화사를 가진 진수는 진사람이 되서야 장화라는 한 문관이 한 때 꽤 날렸던 그의 학문을 아까워해 천거해주며 다시 벼슬아치로 재취업에 성공한다. 솔직히... 인성 자체는 그닥이였던 듯 싶다. 촉한시절 임관동기였던 자와 술자리 계산문제로 다툰 후 원수지간 되었는데 진수가 재임관 후 마침 그 자도 다른 이의 천거로 다시 벼슬에 나오려는걸 진수가 혼신의 뒤끝으로 막았고... 당시 촉한출신 벼슬아치들이 여럿 있었는데 이들 모두 진수와 사이가 다들 별로였다. 꼭 그렇다고 어디 나와 있는건 아니지만.. 아마도 진수는 저런 직장내 왕따도 당하고, 별 다른 공적이 없으니 인사고과가 별로라 승진도 잘 안되어 그랬는지... 그 후부터 촉한의 이런저런 자료와 기록들을 모으고 엮어서 역사서 저술이라는 히키코모리나 해낼 법한 일을 해내고 이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오늘날... 여러분과 내가 좋아하는 삼국지가 된다! T-T 진수가 만약 직장동료들과 막 사이 원만하고 일도 열라 잘 해서 제갈량처럼 온갖 거 다 떠맡고 그랬으면 그렇게 한가롭게 자료 모아서 역사서 만들 생각도 안했을거고 여유도 없었을거다. 물론 진수 본인의 삶이야 한결 업그레이드 되었겠지만 그야 내알바 아니고, 따당하는 일못인 덕에 우리가 오늘도 삼국지를 볼 수 있는 것. 물론, 내가 반 년이나 쉬다 이제 와서 다시 이 칼럼을 연재하는 이유가 결코 직장내 왕따 및 인사고과 하위자여서가 아님을 명시한다. 이렇듯, 인성이 별로인 진수의 삼국지는 그야말로 대박을 친다. 한창 위와 촉의 기록을 모으던 터에 마지막으로 발악하던 오나라까지 망하며, 거기서 유입된 오출신 학자들과 공동으로 오의 역사기록들까지 합쳐 엮으며 삼국지는 완전체가 되었고 보통 당시에는 인정 못 받는 경우가 많음에도 진수의 삼국지는 이미 당대에도 여러 학자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본인도 내 길은 이거다 싶었는지 더욱 삼국지 편찬에 집중... 심지어 본인을 재임관 하도록 추천해준 장화가 다시 더 높은 직위에 천거하자 장화의 반대파에서 태클이 들어왔는데, 진수는 그걸 핑계 삼아 승진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실 무렵 반대파의 집요한 태클에 또 다시 파면 당하여 백수가 되고 만다. 허나 그간 정력을 다해 삼국지를 짓고 또 어머니도 여의고 게다가 정치적인 태클도 워낙 심히 받다 기어이 파면까지 되며 그가 받은 스트레스도 적잖았을 것으로 보여진다. 결국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안되어 본인도 병을 얻고 사망하고 만다..... 그가 죽자, 그가 지은 삼국지를 읽었던 학자와 고위관리들은 그와 그 책을 잊지 못하여 당시 천자에게 상서를 올려 진수가 지은 삼국지가 겁나 명작이니 그냥 저렇게 없어지는건 아니될 말이라며 애원했고 이에 천자도 사람들을 진수의 집으로 보내 이들로 하여금 인간복사기가 되라는 어명을 내려 이렇게 수작업으로 베껴진 삼국지는 세상의 빛을 본다. 위에서 말했듯 그 분량이 대단하지만.... 근 100년의 역사를 엮은 것치고는 간소한 부분도 많았다. 그런 아쉬움에 훗날 송나라의 3대 황제인 유의륭이 부족한 부분을 좀 더 기록과 자료 및 민담 등을 걸러 주석을 달게 하였으니 이 때 주석을 달았던 것이 배송지다. 일부 떠도는 소문에... 제갈량에게 처형 당한 촉한의 장수인 진식이 진수의 부친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픽션! 그냥 픽션도 아니고 개픽션!! 저 진수가 지은 삼국지정사에 의하면 진식은 3차 북벌 당시 참전했다는 기록 이후로는 등장이 없다. 그리고 연의에서 진식이 처형되는 4차 북벌 자체가 나관중이 지어낸 뻥인데다, 그 연의가 맞다셈쳐도 연의 속 진식의 사망시점이 230년이니... 233년생인 진수가 3년 전 사망한 진식의 아들이 되는 방법은 현대에서나 가능한 냉동정자보관 기술만이 정답이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그 긴 시간 피나는 노력과 정성으로 온갖 자료들을 끌어모아 역사서를 저술하는데 자기 부친의 기록만 하필 부실한 것도 말이 안된다. 여튼 그가 촉한출신에 위를 거쳐 진의 신하가 된 관계로 당시부터도 명서라는 호평과는 별개로 기록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 및 이에 대한 가십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역사서에 좋은 기록으로 넣어줄테니 뇌물을 요구했다던가 (그런데 이건 나였으면 진짜 이랬을 듯.ㅎㅎㅎ) 사마가문에 대한 비판이 유독 없다거나 등등... 특히 이 사마가문의 비판관련 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애초에 진수도 결국 사람인지라 현 정권의 시초 및 그 가문 사람을 객관성있게 표현할 깡은 없었다는 주장과 또 하나는 위에 진수 사망 후 인간복사기들이 가서 진수가 쓴 삼국지를 베끼는 과정에서 누락 시켰다는 주장이다. 뭐 그런데 이건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는 부분이니.. 혹여 독자분들 중 근시일내로 안타깝게 운명하시는 분이 저승가서 진수를 만나거든 물어본 후 내 꿈에 나타나서 알려 주시기로 하자. 여튼 당시대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신들의 출신이나 정치성향에 따라 어땠는지는 모르나 현대에 와서는 그의 저술방향에 있어 두드러지는 편향성은 거의 없다고 평가 받고 있다. . . . 가장 마지막이 7월 2일에 올린 노숙편이니 그날부터 거의 만 반 년만에 올리네요...ㅎㅎ (하필 컴백편 주인공이 노잼 진수...;;;) 제가 4월에 이직을 했는데, 새 회사가 제가 지금껏 살며 다닌 그 어떤 회사들보다 일이 더 많고 어렵네요.. 맨날 일에 치이다 집 와서도 일하고 새벽 3~4시에 자고 제가 사이버대학에 등록해 공부 중인데 그것도 벅차고 가장 큰 이유는 빙글의 인터페이스가 제 입장에서는 좀 직관적이지 않고 불편하더라구요.,.. 사실 여러 번 썼다 말았다를 반복 했었어요. 그렇게 저도 삶에 치여 잊고 살았는데, 간간히 뜨는 알림에 들여다 보면 꽤 긴 시간 놓고 있음에도 저와 제 글을 잊지 않아 주시고 돌아오라는 기다린다는 댓글 남겨 주시는 분들의 댓글을 보며 완전 진짜 마음 울컥 했습니다....T-T 제 바쁜 삶이 달라지진 않다보니 꾸준한 연재는 약속 드릴 수 없지만(뭐 이건 전에도 그러긴 했죠ㅋ) 그래도 텀이 길지언정, 예전처럼 많은 분들이 봐주시지 않는다해도 연재는 계속 해나가겠습니다. 사실 이 6개월도 제가 글을 안쓰겠다 마음 먹은 건 아니였고 어쩌다 저쩌다보니 진짜 시간이 쏜살처럼 간거예요ㅋ 아무튼 이제 솔크도 지났고 곧 새해니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날 추우니 감기들 조심하세요! 그리고 본의 아니게 긴 휴재에 대해 사과 드리며 그럼에도 여태 기다려 주신, 그리고 다시 돌아와 읽어 주신 분들께 깊은 고마움을 표합니다. 제 글 때문에 빙글 안지운다는 분들과 돌아오라고 언제까지고 기다리겠다는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어차피 노총각이라 주말에 시간이 남으니 최대한 빨리 연재 해보려 노력할께요!
G식백과 김성회, ‘저소득 가정에 1천만원 상당 교육용 IT 기기 후원’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통해 기부… 후원식 개최 ‘김성회의 G식백과’를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김성회 씨가, 국제 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를 통해 약 1천만 원 상당의 교육용 IT 기기를 저소득 가정에 후원한다. 샌드박스 소속 유튜버인 김성회 씨와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측은 최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샌드박스네트워크 사무실에서 후원식을 진행했다. 이번 후원을 통해 김성회 씨는 태블릿 PC를 포함해 약 1천만원 상당의 교육용 IT 기기들을 총 45세대에 달하는 저소득 가정 아동들에게 지원하게 된다.  현재 47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김성회 씨는 “보통 저소득층에 기부를 한다고 하면, 일반 생필품을 중심으로 진행하지만, 코로나로 어려운 요즘은 오히려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IT 기기에 대한 수요가 높은 것으로 안다. 이번에 지원하는 IT 기기들을 통해 많은 아동들이 교육에 유용하게 사용했으면 하며, 더불어 교육적 효과가 있는 게임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세이브더칠드런 최보경 모금사업본부장은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면서 교육청의 스마트기기 무상 대여 기준(중위소득 50% 이하)에 해당하지 않거나 스마트기기의 접근성이 낮은 조부모 가정과 다자녀 가정 등 여러 어려움을 겪는 가정의 아이들이 있다.”며, “학습에 소외 받는 아이들이 없길 바라며,기부를 결정한 유튜브 크리에이터 김성회 씨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이번 후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세이브더칠드런의 홈페이지(https://www.sc.or.kr) 에서 확인 가능하다.
[코로나19] 이탈리아 정부, 자국 게임사에 54억 원 지원한다
이탈리아 경제개발부가 직접 업체 선정하고 배분 나설 예정 이탈리아 정부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자국 게임사를 위해 '퍼스트 플레이어블 펀드(First Playable Fund)'를 발표했다. 이는 지난 20일 이탈리아 정부가 산업 전반을 지원하기 위해 발표한 시행령의 일환이다. ▲ 이탈리아 경제개발부가 '퍼스트 플레이어블 펀드'를 설립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출처: IIDEA) 20일 유럽 게임 개발자 협회(European Game Developer Federation)는 코로나19가 이탈리아를 포함한 남유럽 게임사를 폐쇄 위험에 몰아넣었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이탈리안 인터랙티브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협회(이하 IIDEA)’는 남유럽 국가가 코로나19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뿐만 아니라, 자국 게임사에 대한 이탈리아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IIDEA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퍼스트 플레이어블 펀드를 제안했고, 이탈리아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펀드 규모는 400만 유로(한화 약 54억 원)이며, 신작을 제작 중인 개발사 지원에 중점적으로 사용된다. 이탈리아 경제개발부는 규모가 적은 회사가 번거로운 절차 없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직접 업체를 선정하고 자금 배분에 나설 예정이다. IIDEA 부회장 마우로 파넬리(Mauro Fanelli)는 "그동안 게임 산업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라며 빠른 승인을 통해 이탈리아와 다른 유럽국가의 격차를 줄여준 정부에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26일(오늘) 기준, 이탈리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약 23만 명이며 사망자는 3만 명을 넘는다. 이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 수다. 때문에 국가 경제 역시 휘청이고 있다. 2일 이탈리아 경제인협회(Confindustria)는, 2020년 이탈리아 GDP가 전년도보다 -6.3%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때문에 게임 산업은 이러한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다. 통계 전문 기업 뉴주(Newzoo)에 따르면 지난해 이탈리아 비디오 게임 산업은 약 25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는 전 세계 10위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