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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냉혹한 공기총의 세계
다들 알겠지만 총은 존나 쎄다. 막강한 화약의 은총에 힘입어 총성이 전장에 울려퍼진 순간 전쟁터의 패러다임은 영영 바뀌어버렸다 하지만 처음부터 총이 완벽한 무기라고 보긴 힘들었는데 여러가지 약점 중에서도 제일 심각한게 연사력이었다 옛날 총들은 자동발사는 커녕 반자동도 안 되는 총들이었다. 한발 한발은 존나 뼈아프게 아파도 그 다음 한발을 날리려면 라면 끓여먹을 시간 정돈 아니더라도 물 올리고 봉지 뜯고 불 키는 시간 정돈 있어야 했다. 왤케 오래 걸렸는지 궁금할텐데 잠깐 이야기를 돌려서 이 당시 전쟁 꼬라지가 어떤 꼬라지였는지 보고가자 이 당시 주무기는 머스킷총이었는데, 이 새끼들은 위력은 존나 확실했지만 위력말고 다른 면에서는 좀 읭스런 면모가 있는 친구들이었다. 우선 앞에서도 줄창 말했던 연사력이 헬이었다. 머스킷총은 한 발 쏠 때마다 월탱 자주포만큼이나 긴 장전시간을 요구했는데 그럴만도 한게 총 한 발 쏘려면 화약봉지 뜯고 화약봉지 부어넣고 총을 똑바로 세우고 총알을 앞구멍으로 넣고 다시 화약 넣고 꼬질대로 존나 쑤시고 다시 들고 해머 젖힌 후에야 조준하고 쏠 수 있었다 시간도 개같이 오래 걸리는데 존나게 큰 총을 무조건 세워서 장전해야 되니 엎드려쏴는 꿈도 못 꿨다 한 대만 맞아도 대갈통 작살나는 총알이 날아다니는데 무조건 상남자 써서쏴 딜교를 해야 된다. 연사력만 문제냐면 그게 또 아니다 존나 구식 화약을 쏴갈기는지라 연기가 장난 아니게 솟아오른다 한 두 발만 연사해도 전장은 저 지경이 된다. 지 총에서 나오는 연기 때문에 총을 조준하지 못할 지경이 된다. 눈만 안 보이면 또 다행이겠지만 귀도 안 들렸다. 수천명 단위로 일렬로 나란히 서서 구식 화약을 뻥뻥 쏴갈기는데 당연히 소리도 존나게 크다. 바로 옆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명령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소리가 나는데 귀머거리되는건 둘째치고 이딴 걸로 야간기습은 꿈도 못 꾼다. 이런 꼬라지니 당연히 사거리가 길 리가 없다 눈깔 앞에 연막탄이 날아다니는 수준인데 어케 조준 사격을 하냐. 당연하지만 반동 억제 그딴 건 생각도 안 하던 시대라 반동도 무지막지했다. 이 때문에 화력을 보장하려면 존나 머릿수 모아서 존나 각 재서 줄 세워놓고 100m 안쪽에서 상대 표정 봐가면서 싸워야했다 현대 시점에서 보면 뭔 븅신짓거리냐 탄식이 나오는 라인배틀이 이런 이유로 생긴 거다. 얘들이 빡대가리라 이렇게 싸우는게 아니라 이렇게 싸울 수 밖에 없던 거다 당연하지만 얘들도 이렇게 싸우는건 전혀 즐겁지 않았다. 인간은 자고로 난 다치기 싫은데 쟤들은 죽이고 싶은 종족이다 머스킷이 아무리 한방뎀이 쩔어도 죽창뎀만으로 전쟁질을 해먹을 순 없으니 군바리들의 고민은 한 곳으로 수렴했다. 어케해야 사속을 올릴 수 있을까? 캘리코를 붙이는 걸론 해결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아직 발명되려면 200년쯤 더 있어야되니까 이렇게 총신을 여러개 늘려보기도 하고 권총을 여러 개 들고다니기도 하고 줄 서서 앞놈 쏘는 동안 뒷놈 장전하는 식으로 물량을 늘려보기도 하고 아무튼 존나게 많은 방법을 생각해냈는데 근데 이런 꼼수는 결국 한계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총신 여러개 달린 놈은 생긴게 븅신인만큼 명중률도 븅신이고 권총 여러발 달고 다녀봤자 권총이고 내가 줄 서서 쏘면 남들도 줄서서 쏜다. 결국은 총 자체의 연사력을 올려야 했다. 그리고 이걸 극단적인 방법으로 해결한 나라가 바로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오스트리아다 캥거루가 뛰노는 나라 오스트리아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당시 총의 지루를 해결했을까 오스트리아에 캥거루가 산다는 것을 부정하는 무식한 친구들은 없길 바란다 (캥거루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삽니다. 드립임.) 캥거루파워의 힘으로 오스트리아는 슈퍼 오버테크놀러지 연사총을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바로 공기총이었다 좃밥의 대명사로 통하는 공기총이? 이런 황당한 생각이 들겠지만 진짜다 바르토로메우스 지란도니가 발명한 이 지란도니 공기총은 시대를 까마득하게 앞서가는 개사기 무기였다 호에엥 머스킷 이거 넘 느리고 앞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고 사거리도 짧고 반동도 쎄서 개같아요 공기총을 쓰세요 아니 공기총으로 사람을 어케 죽여요 산소중독으로 죽임? 근데 진짜 사람이 죽었다 공기총이라니 이름만 들으면 별로지만 절대 좃밥이 아니었다. 왜냐면 이 새끼는 250미터에서 대갈통에 빵꾸를 이쁘게 뚫어놓는 화력이 나왔으니까 군필여고생들이니 250사로가 얼마나 먼 지는 다들 감이 잡힐 텐데 어케 공기총 주제에 이딴 화력이 나오냐고 싶을텐데 그 비결은 바로 개머리판이었다 지란도니 공기총의 저 웃기게 생긴 개머리판은 사실 개머리판이 통째로 압축공기통이다. 여기다 공기를 무지막지하게 때려놓고 압축한 다음에 총에 연결하고, 쏠 때마다 방아쇠를 당기면 압축된 공기가 총알을 힘차게 밀어내는 것이다. 이 압력이 위에서 설명한 날아가는 살상력의 힘이 되는 것이다.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100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서로 얼굴보고 총알 땡기던 시대에 250m를 날아가는 총알이 나온 것만으로도 획기적이다. 호에엥 쩌내요 근데 공기총이라고 하니까 쏠 때마다 공기 불어넣어야 되는 거 아님? 장전 복잡해보여여 장전? 아아...이미 끝난 '이것'을 말하는 것인가? 사거리만 긴 게 아니었다. 저게 장전 끝난 거다. 기울여서 엄지 손가락으로 땡겨주면 끝이다. 이 정도면 수십년 뒤에 나올 볼트액션 총보다도 훨씬 간단하다. 한 발 장전하는데 30초 걸리던 시대에 뜬금없이 나타난 이세계총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면 당시 총들이 앞구멍으로 총알 쑤셔넣는 전장식이었다면 지란도니 공기총은 튜브방식의 탄창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탄창 속에 줄줄히 총알이 들어있기 때문에 한 발 쏘고 기울여서 땡겨주면 바로 차탄이 장전되는 것이다. 거기다 짤 보면 알겠지만 화약을 써서 발사하는게 아니라 개머리판에 이미 들어있는 압축공기를 써서 발사하는 거라 반동이 하나도 없다. 반동이 없다는 건 곧 명중률이 존나 올라간다는 뜻이다. 근데 명중률을 높이는게 이것만이 아니다. 와 ㄹㅇ? 근데 화약 안 쓰면 연기도 안 나고 불빛도 안 나겠네? 개굿 거기다 화약 안 들어가서 소리도 조용함 공기총에서 화염이 뿜어져나올 리가 없으니 당연히 연기도 안 나고, 지란도니 공기총을 갈겨대는 오스트리아 캥거루들은 남들이 연기 들이마셔가며 으겍켁 눈먼 사격하고 있을 때 존나 깔끔하게 조준사격할 수 있었다. 총구화염도 당연히 없으니 구석에 짱박혀서 똥싸개 저격질을 해도 아무도 모른다. 거기에 소리까지도 화약무기에 비하면 무음 수준이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얼마나 연사 가능함? 20연사 나폴레옹 : 쒸펄 지란도니 공기총의 튜브형 탄창에는 약 20발의 총알을 우겨넣을 수 있었다. 30초에 한 발 쏘고 눈멀고 귀멀고 조루사거리 총쓰던 시절에 조용하고, 반동없고, 멀리나가고, 20발 반자동 연사가 가능한 개사기총이 갑자기 튀어나온 거다 그야말로 머스킷 시대에 씹새가 툭하고 떨어진 것이다 당연히 이런 고성능에 풀발기한 오스트리아 캥거루들은 이 개사기 공기총을 제식무기로 냉큼 채용했다 근데 여기서 뭔가 이상한 걸 느낀 친구들이 있을 텐데 저런 개사기 무기를 들고 있으면서 왜 오스트리아가 세계정복을 못했냐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적힌 것만 읽어보면 지금쯤 영어 대신 오스트리아어 쓰고 군대 무기는 공기총으로 통일되고 집집마다 의무적으로 캥거루 기르고 있어야 될 거 같은데 말이지 세상에 장점만 있는 무기는 없다 지란도니 공기총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단점이 있었다 님 님 이거 갑자기 왜 안 나가여 아 장전할 때 너무 쎄게 땡기셔서 고장남 님탓임 가서 새거 사오세요 뭐야 씹 이걸로 집도 사겠네 왤케 비쌈 근데 뭐임 이번엔 살살 땡겼는데 안 나가요 너무 살살 땡겨서 고장남 님탓임 다시 사오세요 지란도니 공기총은 존나 섬세해서 존나 비쌌고 존나 섬세해서 존나 잘 고장났다 이 당시 기술력으로 이만큼 뽑아낸 대가라고 해야겠지만 해도해도 너무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오스트리아는 그렇게 기술력이 좋지도 부자나라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물건을 양산할 능력도 없었다 결국 사방에서 총이 고장나기 시작했는데 새걸 생산하긴 커녕 고장난걸 수리하는데도 벅차기 시작했다. 게다가 공기총이라는 특성상 공기압이 떨어지면 대미지도 같이 떨어지기 때문에, 앞에 나가는 건 멀리 빨리 쭉쭉 나가는 총알이었지만 연사가 계속될수록 사거리와 위력이 점차 줄어드는 문제점도 컸다. 하지만 이딴 건 전부 사소한 문제였고연 전투에서 사기 성능으로 씹발라 버릴 수 있는데 꾹꾹 참고 쓸려면 쓸 수가 있었다 존나 큰 마지막 문제점이 없었다면 그래도 20연사 뽕맛은 오지네 ㅎㅎ 근데 이거 다시 쏘려면 어케해야함 공기를 다시 채우세요 입으로? 펌프질이나 하십쇼 몇 번이나? 「1,500번」 씨펄 지란도니 공기총은 이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하게 생긴 전용 펌프를 통해 공기를 재충전해서 써야 했다. 이 사기 무기가 널리 퍼지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그 공기총 매커니즘 그 자체였다 조용하고 반동없고 사거리 길고 위력 좋으면 뭐하냐? 30발 쏘려고 개머리판에 채워넣어야 하는 압축공기는 펌프질 1500번을 해야 하는 분량이다. 거기다 전쟁질하면서 딱 30발 쏘고 끝날 리가 없잖음. 예비개머리판도 당연히 들고 다닐텐데 개머리판을 3개만 들고 다닌다쳐도 펌프질 4500번을 해야한다. 씹헬지옥이다. 안 그래도 연사속도 빨라서 총알 소모 빠르다는 거 생각하면 더 들고 다녔으면 더 들고 다녔지 적진 않을걸 결과적으로 오스트리아 캥거루들의 팔근육이 전투 시작하기도 전에 모조리 빠개지는 결과로 돌아왔다 아무리 씹사기 무기라도 이딴 거 쏘려고 3시간동안 4500번 펌프질을 해야 한다면 고민이 존나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오스트리아는 35년동안 꾹꾹 참으면서 지란도니 공기총을 써오다 딸근의 파열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머스킷으로 회귀하고 만다 존나 큰 장점이 있어도 존나 큰 단점을 가릴 수 없다면 결국 무기로선 실패작인가보다 [출처 - 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
[펌]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고치지 못한 질병
고대 그리스. 서구문명의 시발점이라 부르는 이 시기에. 정치,경제,문화,군사,종교,철학,예술,건축등 이로 셀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이 시기에 발전했지만 단 의학만큼은  그리 발달하지 못 했다. 이 시절엔 질병을 신이 내린 징벌이라 믿어 신에게 벌을 거두어달라고 비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 믿었고 즉, 병에 걸리면 복불복으로 죽거나 사는 것이 정해지는 시기였다. 이 당시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고 그렇게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은 최대의 치료소이자 묘지가 되어 결국 사제들만 치료비와 장례비 명목으로 배를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원시적인 의학을 바꾼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구 의학의 선구자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였다. 그는 질병이 신이 내린 벌이 아니라 사람의 몸에서 접하는 환경이 변화하여 발생한다고 주장하며 환자들의 상태를 관찰해 그에 맞는 치료법을 제시했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2400년 전에 현대적인 수술대를 발명하여 골절과 탈골에 대한 치료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식초를 살균제로 사용하여 환부의 감염을 예방했다. 많은 그리스 사람들은 처음엔 그를 불경하다 생각했지만 그가 실제로 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여 낫게 하는 ‘기적’을 행하자 사람들은 그를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후손이라며 '의학의 아버지' 라고 부르게 됐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고치지 못한 질병이 있었다. 심지이 본인도 이 질병에 걸려 치료를 위해 반평생을 노력했지만 결국 고칠 순 없었다. 당대의 유명한 인물들인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도 피할수 없었던 이 저주받은 질병은 남성형 탈모였다. 히포크라테스는 이 저주받은 불치병을 고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관찰하며 연구에 매진하고 실험했다. 그가 처음 시도한 탈모 치료법은 아편과 장미 아카시아즙을 섞은 약을 바르는 것 이었다.. 하지만 관찰결과 머리에 좋은 냄새만 날뿐 효과는 거두지 못했고 좀더 독하고 공격적인 처방을 내리게 되었다. 바로 맵싹한 겨자무와 비둘기똥을 환자의 환부에(?) 바르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두피만 매콤하게 자극할 뿐 치료법은 아니었다. 그러다 그는 한가지 엄청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여성과 환관 즉 내시에게는 대머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둘의 공통점은 '남성의 심볼'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남성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탈모가 생긴다고 알고 있지만 이것을 무려 2400년 전에 발견한 것이었다. 히포크라테스는 거세가 바로 탈모의 궁극적인 치료방법이란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렸지만 그 누구도 쉽게 이것을 선택할 순 없었다. 결국 의학의 아버지였던 히포크라테스 조차 탈모는 정복 할 수 없었지만 그의 탈모에 대한 연구업적을 기려, 오늘날의 사람들은 탈모가 진행되지 않는 옆과 뒷머리를 그의 이름을 딴 히포크라테스 환'이라고 부르고 있다. [출처 : 개드립-오삼도리]
반려견이 '보호자의 장례식'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에서 뭉클한 사연이 전해졌습니다.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한 남성과 반려견의 이야이기입니다. 1년 전, 한 남성이 심장마비로 쓰러졌습니다. 가족의 신고로 구급대원들이 출동해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그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남편과 아버지의 사망에 망연자실하며 눈물을 흘렸고, 가족의 반려견 새디는 들것에 실려가는 보호자의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그때부터 새디는 며칠 동안 식사를 거르며, 온종일 창문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들것에 실려나가던 보호자의 모습만이 마지막 기억으로 남은 새디는 자신의 오랜 친구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남성의 장례식이 열리는 날, 유가족들은 새디와 보호자가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장례식으로 함께 향했습니다. 조문객들은 순서를 기다리며 남성이 누워있는 관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새디의 차례가 되었을 때, 새디는 두 발로 서 관 안에 들어있는 친구의 얼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의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새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새디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었고, 그렇게 둘의 마지막 작별 인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새디는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와의 이별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새디의 사례와 달리, 대부분의 장례식장과 사람들은 '장례식에 개를 데려오는 것이 상식에 어긋난다'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전문가는 반려동물의 보호자가 세상을 떠난다면, 상실감에 오래 시달리지 않도록 반려동물이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개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감정이 풍부한 동물입니다. 자신의 보호자와 친구들을 한없이 기다리며 상처받지 않도록,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
"윤석열, 윤중천 별장서 접대"…대검 "완전 허위사실"
한겨레21 "김학의 수사단, 기록 넘겨받고도 사실확인 안해" 수사단 "검경 수사기록 등에 '윤석열' 없어…윤중천도 부인" 대검 "주요 수사 진행 중 음해기사 유감…민형사 조치할 것" 윤석열 검찰총장(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윤석열 검찰총장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스폰서 윤중천씨 별장에서 접대를 받았으나 검찰이 조사 없이 사건을 덮었다는 취지로 주간지 한겨레21이 11일 보도했다. 대검찰청은 "완전한 허위사실"이라며 보도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한겨레21은 '김 전 차관 사건 재수사 과정에 대해 잘 아는 3명 이상의 핵심 관계자'를 취재한 결과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이 2013년 검찰·경찰 수사기록에 포함된 윤씨 전화번호부, 압수된 명함, 다이어리 등을 재검토하면서 '윤석열'이라는 이름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조사단이 윤씨를 불러 과거 윤 총장과 친분이 있었고, 강원도 원주 별장에서 윤 총장이 수차례 접대를 받았다는 진술을 받아 진술보고서에 담았다는 것이다. 김 전 차관 사건 재수사를 맡은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단장 여환섭 대구지검장)은 이 보고서 등 자료를 넘겨받았으나 사실확인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재수사를 매듭지었다고 한겨레 21은 주장했다. 검찰은 "완전한 허위사실"이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대검은 대변인실을 통해 "검찰총장은 윤씨와 전혀 면식조차 없다. 당연히 그 장소(별장)에 간 사실도 없다"며 "검찰총장 인사검증 과정에서도 이러한 근거없는 음해에 대해 민정수석실이 검증하고 사실무근으로 판단한 바도 있다"고 밝혔다. 대검은 "주요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런 허위의 음해 기사가 보도되는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사전에 해당 언론에 사실무근이라고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기사화한 데 대해 즉시 엄중한 민형사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단도 "윤씨가 윤 총장을 만났다는 흔적이 전혀 없다"며 보도를 부인했다. 수사단에 따르면 과거 검·경 수사기록과 윤씨의 휴대전화 속 연락처, 전화번호부, 명함, 다이어리에 윤 총장의 이름이 기록돼 있지 않았다. 다만 조사단 파견 검사와 면담보고서에 윤 총장이 한 문장으로 언급돼 있다고 수사단은 설명했다. 수사단 관계자는 "윤씨를 불러 물었으나 '윤석열을 알지 못하고, 조사단에서 그렇게 진술한 적도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며 "윤씨가 부인하고 물증도 없어 추가로 확인작업을 할 단서 자체가 없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