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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카드뉴스] 여자라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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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란 이유로가 아니라 성별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하죠.
댓글 논란이나 만들지 마세요 중앙일보.. 이래서야 모든 기사를 어떻게 믿겠습니까?
헐 아무생각 없이 봤는데 중앙일보였어.. 당신들 카드는 이제 안봅니다.
이야... 남자는 뭐 차별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 같이 말씀하시네요..
주제에 성차별이니 인권이니 하면 찌라시 아닌척 할 수 있을 것 같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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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봉건 기사에 대한 오해들
현재까지 합의된 사실은 잉글랜드와 노르망디 모두 1066년 이전에 '봉건제도'의 기본 요소인 종속적 토지보유권, 영주권, 군사적 봉사의 의무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다른 형태의 토지보유권과 군사적 의무들과 함께 공존했다는 것이다. 즉 잉글랜드의 '봉건제'는 12세기 글랜빌의 법률서와 13세기 초 브랙턴의 법률서에서 볼 수 있듯이 노르만 정복 이후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진행된 점진적인 변화의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중세의 두 번째 미신인 '봉건 기사'의 미신으로 안내한다. 찰스 오만이 정립한 이 미신은 말을 탄 봉건 기사들과 성채를 중세 전성기의 전쟁의 핵심으로 규정한다. 오만에 따르면,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와 14세기의 '보병 혁명' 사이에, 군사전술의 발전은 정체되었다. 진정한 병법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서부 유럽에서 거의 소멸했다. 요새 축성과 공성 기술은 중세시대에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 유일한 분야였지만, 동시대의 다른 군사사학자들처럼 그 역시 야전을 전쟁의 핵심 요소로 보았기 때문에 거기에 별로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근대적인 의미의 상비군도, 직업군인도 없었기 때문에, 전쟁은 전략적인 목표가 없거나 거의 없는 소규모 기병대 사이의 무질서한 교전으로 전락했다. 이 시대는 기사도와 용기와 명예가 규율과 훈련을 대체해버린, 군인이 아닌 전사들의 시대였다. 중세 지휘관들의 아마추어성을 감안하면, 중세 전쟁에서 야전이 드물었던 것은 어떤 전략적인 이유 때문이었을 리가 없었다. 원인은 지휘관들이 명확한 전략적 목적이 없고 정찰병도 없이 길을 헤매느라 서로의 위치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야전이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군대의 지휘관이 상대 지휘관에게 공식적으로 도전장을 보내서 전투를 벌일 시간과 장소를 합의하는 것뿐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전투가 벌어지면, 전장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제대로 된 지휘 계통, 제식, 규율의 부재는 가장 저열한 형태의 전술만을 이끌어냈다. 지휘관들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직접 혼전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군사들을 지휘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매번 똑같은 전술이 반복되었다. 약속된 장소에서 만난 양측 기병대는 400야드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마주보고 섰다. 하나의 기병대는 옆이나 앞뒤로 늘어선 2-3개의 '바타유'로 구성된다. 바타유는 서로 다른 영주들의 깃발 아래에서 복무하며 각자 자신의 영주만을 지휘관으로 인정한 봉건 기사들이 임시로 모여서 만들어진 3-4열 두께의 기병 전열로, 사실상 이 시대의 군대가 가진 유일한 전술체계였다. 도시나 마을에서 징집된 보병 부대도 있었지만, 그들은 기사들보다 무장이 빈약하고, 훈련상태는 더 형편없었다. 이 보병들은 야전에서의 군사적 가치는 거의 없었지만 적지에서의 단순한 파괴행위나 공성전에서 유용했다. 오만이 정립한 이 모델에서 전투의 핵심은 등자를 단단히 딛고 창대를 겨드랑이에 끼운 기사들의 돌격이었다. 돌격과 충돌 이후, 전투는 무질서한 혼전으로 전락하여, 특정한 군사적 임무보다는 개인의 기량을 발휘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기사들 간의 개별 결투가 반복되었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직속 영주에 대한 봉건적 의무에 따라 참전했고, 기사도의 영광과 전리품에 대한 욕망에 강하게 이끌렸다. 봉건 기사들은 무엇보다도 명예를 중시했고, 명예는 용기를 증명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명예는 또한 부대 내부에서의 경쟁과 질투로 이어졌고, 절제되지 않는 용기는 전투에서의 만용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전투의 결과는 병력수와 전투기술 뿐 아니라 운에도 달려 있었다. 혼전 도중 총지휘관인 왕이나 백작의 죽음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었고, 승리가 갑작스러운 패배로 뒤바뀔 수 있었다. 위의 내용들을 기술하면서 마음속으로 중세 지휘관들의 능력을 나폴레옹 시대의 지휘관들과 비교해본 오만은 그 모든 것이 혐오스럽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봉건 기사 시대의 군대의 수준에 대한 그의 평가는 직설적이고 잔인했다: "결집하기 어렵고, 명령을 듣지 않으며, 신속한 기동이 불가능하고, 짧은 복무 기간이 끝나자마자 부대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봉건 군대는 군인으로서의 자질의 총체적인 결여를 보여준다." 보병은 중세 시대 내내 전투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오만이 봉건 기사 시대의 시작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묘사한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는 사실 아주 근소한 차이로 승패가 결정된 전투였다. 노르망디의 사생아 공작 윌리엄(훗날 잉글랜드의 정복왕 윌리엄 1세)의 기병대는 잉글랜드군을 강력한 방어 진지 밖으로 유인하기 위해 거짓 후퇴 전술을 써야 했다. 롬바르디아 동맹의 시 민병대 보병들은 1176년 레냐노 전투에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의 기병대의 공격에 맞서 동맹을 상징하는 전투 깃발을 단 카로초 수레를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중세 시대의 대부분의 전투에서 보병이 기사보다 훨씬 많았다. 카롤루스 제국 시대부터 14세기 초까지의 전투들에 대한 베르부르겐의 연구는 유능한 중세 군사 지휘관들이 정교한 전술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음을 입증했다. 그들을 또한 군대에 규율을 확립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사자심왕 리처드 1세의 군대는 살라딘의 궁기병들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으며 레반트 해안을 따라 84마일을 행군했다. 보병, 기병, 함대의 협동 작전의 성공적인 사례인 이 전투 행군은 아르수프 전투에서의 승리 이상으로 인상적인 군사적 업적이었다. 리처드는 군대를 직사각형의 행군 대열로 배치했다. 전위와 후위에는 최고의 기병대인 성전기사단과 구호기사단이 배치되었다. 수송대와 말들은 양쪽으로 늘어선 갑옷 입은 보병들로 보호되었다. 이 행군은 휴식일을 가지면서 의도적으로 느리게 진행되었다. 리처드는 함대가 군대에 물과 식량을 전달하고 부상자들을 실어갈 수 있도록 항구들을 장악했다. 아르수프에서 벌어진 전투는 사실 리처드의 명령에 반하는 것이었다. 이 전투는 후위의 구호기사단이 큰 피해를 입고 조급해져서 살라딘의 군대에 돌격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을 본 리처드는 다른 기사들에게도 돌격을 명령했다. 몇 주 동안 반복된 공격에도 반응하지 않았던 군대가 갑자기 돌격해오자 살라딘의 궁기병들은 깜짝 놀랐다. 중요한 것은, 이 전투에서 승리한 리처드가 군대에게 무슬림들을 추격하는 대신 계속 야파로 행군할 것을 명령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군대가 완전히 '봉건적'이거나 일차원적인 전투 부대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세 유럽 군대의 다차원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났다. 우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세 전성기의 군대들에는 보병이 기병대보다 많았다. 또한, 기사들은 스스로 기병이라고 생각했지만, 필요할 때 그들은 말에서 내린 다음 보병대 안에서 훈련되고 잘 무장한 등뼈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기사들을 근대적 병과 구분법인 '기병대'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보 전투 능력뿐만 아니라 중요한 요새 수비 임무까지 무시해야 한다. 중세에 일반적이었던 전투 회피 전략은 오만이 상상한 봉건적 지휘관들과 기사들이라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불명예스럽고 비겁한 행위로 볼 것이기 때문이다. 길링엄에 따르면 사자심왕 리처드 같은 중세의 훌륭한 군사 지휘관들은 냉정하게 전투의 비용과 이익을 평가한(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비용이 이익보다 크다고 판단한) 합리적 행위자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행한 군사교리는 군사서를 읽어서 배운 것일 수도 있다. 길링엄은 중세 전성기에 유행한 군사교리가 로마제국 말기의 군사저술가 베게티우스의 조언과 일치한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그것을 '베게티우스식 전략'이라고 불렀다. 오만이 책을 쓴 시기에는 12세기 후반의 서유럽 귀족들이 대부분 문맹이었으며 오직 전투 기술만을 교육받았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다음 세대의 학자들은 생각을 바꾸었다. 12-13세기의 기사들은 전사로서의 기술뿐 아니라 궁정인으로서의 기술도 배웠다. 그들은 오만이 상상했던 일차원적인 전사들이 아니었다. 세속어를 읽고 쓰는 능력은 12세기 후반경의 고위 귀족들 사이에서 일반적이었다. 'De Re Militari'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베게티우스의 '군사학 논고Epitoma rei militaris'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걸쳐 가장 많이 필사된 문헌 중 하나다. 또한 라틴어에서 세속어로도 자주 번역되었고, 적어도 몇몇 군사 지휘관들이 필사본을 소유했다는 증거가 있다. 길링엄은 전쟁에 대한 중세 지휘관들의 인식과 접근법이 베게티우스의 책을 통해 직접적으로 형성되었을 수 있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사자심왕 리처드는 어느 대주교의 부족한 라틴어 실력을 조롱한 적이 있었을 정도로 학식이 높고 라틴어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에, 심지어 라틴어로 된 베게티우스의 책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지급된 임금의 차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사들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는 보병들보다 훨씬 우월했으며, 중세의 예술과 문학의 전쟁 묘사에서도 기사가 중심이 되고 보병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심지어 야전에서도 말에 탄 기사들이 방어 진형을 이룬 규율 잡힌 보병들을 상대로 반드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중세 시대 내내 가장 효과적인 군대는 궁병과 창병의 지원을 받는 기마 돌격대로 구성된 혼합 전술 부대였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오만은 전투부대로서의 기사의 몰락과 보병의 부상이라는 사건의 선후관계를 반대로 뒤집은 것으로 보인다. 헤이스팅스 전투에 대한 스티븐 모릴로의 세밀한 연구는 이 전투가 이후 300년 동안 지속된 보병에 대한 봉건 기사의 우월성을 확립했다는 오만의 주장을 무너뜨렸다. 반면에 맬컴 베일은 '14세기 보병 혁명'이 기사를 쓸모없게 만들었다고 알려진 이후에, 15세기에 와서 갑옷과 무기와 전술의 발전으로 중기병대가 전투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상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길링엄의 '베게티우스식 전략' 이론은 미국의 사학자 찰스 홀리스터가 처음 제시한 역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즉 다른 지역들보다 봉건적이었던 중세 잉글랜드에서 봉건적 군역이 상대적으로 덜 중시되었다는 역설. 앞에서 본 것처럼, 적어도 1086년부터 잉글랜드의 귀족들은 봉건적 군역을 대가로 왕에게 하사받은 봉토로써 토지를 보유했다. 이전까지는 이를 근거로, 국왕군으로 복무한 기사들의 대부분은 봉건적 의무에 따라 소집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홀리스터는 다른 사실을 발견했다. 저서 "The Military Organization of Norman England"와 여러 논문들을 통해 그는 일명 '봉토 보유를 대가로 의무 지워진 기사의 군역이 노르만 왕조의 잉글랜드 왕들이 군대를 모집하는 주된 방식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봉건제의 아이러니'를 증명했다. 이후 많은 역사학자들이 11세기부터 15세기 초까지 잉글랜드 국왕군의 주력이 왕실 가신단 기사들이었음을 밝혀내면서, 봉건적 군역이 실제로 중시되었다는 가설은 더욱 약화되었다. 수십 명의 왕실 가신단 기사들은 왕의 야전군이나 요새 수비대에서 정예부대로 활동할 뿐 아니라 소규모 작전에서 독립적인 부대로 운용되기도 한 전문 상비군이었다. 직접수봉자(tenant-in-chief)들이 잉글랜드 왕에게 진 봉건적 군역은 13세기 동안 급격히 축소되었다. 1166년 헨리 2세는 이론상 봉건적 군역에 따라 기사 5000명을 소집할 수 있었다. 하지만 1272년 그의 증손자인 에드워드 1세는 평신도 귀족들에게서 기사 3-500명, 주교와 수도원장들에게서 기사 132명을 소집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즉, 100년 사이에 봉건적 군역의 90%가 사라졌다. 봉건적 군역으로 소집된 군사들의 질도 하락해서, 기사들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고 무장도 빈약한 기마 서전트의 비율이 갈수록 높아졌다. 1277년 에드워드는 웨일즈 전쟁에서 봉건적 군역으로 기사 228명과 서전트 294명을 소집해서 40일 동안 무보수로 복무시켰다. 1303년 에드워드가 스코틀랜드 원정에 데려간 국왕군 7500명 중에는 봉건적 군역으로 소집된 기사 15명과 서전트 267명이 있었다. 13세기 잉글랜드 왕들은 남작들에게 보낸 소환장에서 '왕에 대한 충성과 사랑으로' 각자 지위에 맞는 숫자의 기사들과 그밖의 병사들을 데리고 왕의 전쟁에 참가할 것을 요청했다. 참전은 '자발적인' 것이었지만, 소환에 응하지 않는 것은 왕의 총애를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는 귀족 집안의 운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따라서 13세기 말이 되면 남작들은 봉건적 군역보다 더 많은 수의 맨앳암즈(기사와 기마 서전트)들을 데려왔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는 봉건적 군역이 유지되었지만, 잉글랜드에서 봉건적 군역에 의한 소집은 1327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13세기 후반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왕들은 신하들의 봉건적 군역을 기꺼이 면제해줄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적어도 13세기초부터, 그리고 잉글랜드에서는 그 이전부터 이미 봉건적 군역이 국왕군을 위한 중기병의 주요 공급 수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2세기 초반 잉글랜드에서 봉건적 군역이 기사 봉토 제도의 공식적인 명분이었을지 몰라도, 왕의 입장에서 그것의 진정한 가치는 재정적 수입이었다. 1100년경부터 현금 지불로 군역을 대신하는, 방패세(scutage)라고 불리는 제도가 일반화되면서, 국왕군에 합류할 것을 명하는 소환장마저도 수입원이 되었다. 앙주 왕조의 잉글랜드 왕 헨리 2세와 그의 아들인 리처드와 존은 봉건 소집군보다는 용병을 더 선호했다. 그들은 직접수봉자들에게 봉건적 군역 대신 방패세를 낼 것을 강요해서 용병들에게 지불할 임금을 마련했다. 12-13세기의 군주들은 봉건적 군역의 중대한 결함과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왕실 가신단 기사와 용병들을 더 선호했다. 우선 봉건적 군역의 의무가 왕국의 방어에 국한된 것인지, 아니면 외국 원정에도 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합의조차 없었다. 의무 복무 기간인 40일이 지나면 임금을 받고 싸우기를 원하지 않는 기사들은 모두 떠날 것이다. 남작들이 의무대로 정확한 숫자의 기사들을 데려올 것이라는 보장이나, 그 기사들이 제대로 무장하고 훈련을 받았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사자심왕 리처드가 1189년 죽어가는 아버지 헨리 2세에 대항해 일으킨 반란이나, 이중봉신들이 포함된 군주들 간의 영토 분쟁 같은 내전 상황에서, 봉건적 군역의 의무를 진 봉신들은 한 대군주에 대한 봉건적 군역의 의무와, 그것을 이행한 대가로 다른 대군주에게 봉토를 압류당할 가능성 사이에서 손익을 계산해야 했다. 하지만 왕실 가신단 기사들과 용병들은 이런 문제들을 전혀 일으키지 않았다. 마키아벨리는 용병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지만, 12-13세기의 용병들은 적어도 고용주들 사이에서는 훨씬 더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었다. 고용주들은 용병들에게 정해진 임금을 제공하는 동안에는 지속적인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었다. 상비군에 가장 가까운, 잘 무장하고, 잘 훈련되고, 규율 있는 왕실 가신단 기사들은 국왕군의 단단한 등뼈를 이루었다. 용병 부대의 보병들은 12-14세기의 전쟁의 핵심 요소인 황폐화 전술과 공성전에 매우 적합했다. 방패세로 얻은 수입을 통해 노르만 왕조 잉글랜드의 왕들은 봉건 소집군보다 더 신뢰할 수 있고 융통성 있는 군인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 -Richard P. Abels, "The Myths of Feudalism and the Feudal Knight", Seven Myths of Military History. 군사갤러리 prevot님 펌
12월 1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및 만평모음
= 22/12/01 류효상의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 1.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내년 2월 말 3월 초'로 가시화되는 가운데, 당 안팎에서 '한동훈 차출설'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친윤계' 박성중 의원은 한 장관의 차출 가능성에 대해 "이르지만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동훈에 강신업까지… 진짜 인물 없는 국민의힘. 진짜 쪽팔려서 어떡하나~ 2. 윤석열 대통령이 유튜브 채널 ‘시민언론 더탐사’가 최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집을 찾아가 물의를 일으킨 것을 두고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보여줘야 하지 않느냐”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상스러운 욕지거리도 그렇고 도대체가 대통령의 언어가 이리 천박해서야… 3. 경찰이 유승민 전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고발 사건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유 전 의원을 고발했던 김건희 팬클럽의 전 회장 강신업 변호사는 “윤석열 대통령에 항명한 것”이라며 경찰을 고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검찰 경찰을 윤석열의 사조직으로 생각하니 ‘항명’이란 말이 나오겠지~ 4. 10.29 참사 희생자 유족 협의회 규모가 조금씩 커지고 있습다. 정부가 유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꺼리는 등 참사 이후 유족 지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유족들이 알아서 수소문해 결집하는 모양새입니다. 아무도 책임지는 인간은 없고 욕 봤다고 등이나 두드리는 인간들… 나쁜넘들~ 5. 검찰이 추미애 전 장관 아들의 '군 휴가 특혜' 의혹을 불기소 처분한 지 2년2개월 만에 다시 수사하기로 했습니다. 대검은 서울동부지검에 추 전 장관 아들 군 휴가 특혜 의혹 관련 수사를 다시 하라는 재기수사명령을 내렸습니다. 아에 형틀에 묶어 놓고 주리를 틀지 그러냐… 그러면 술슬 불지 않겠어? 강신업 "유승민·이준석은 내가 잡는다“ 당대표 출마 선언. ‘한동훈 독직폭행' 정진웅 무죄 확정 “고의 인정 안 돼". 박지현, 유시민 겨냥 "독재자 닮아가 586 퇴장해야". 윤 대통령 주문한 ‘1인 1총기’ 예산 25억 전액 삭감. 나는 나를 웃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솔직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웃는 것이다. 웃음은 수많은 질병들을 치료해준다. 웃음은 아마도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리라. - 오드리 햅번 -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웃음, 그리고 사랑을 전한 햅번이지만, 본인 역시 자신을 미소 짓게 하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햅번을 흉내낸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겠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웃음을 선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을 웃음짓게 하는 사람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한파로 시작되는 겨울입니다. 꼭 건강에 유의하세요. 저는 지금 너무 아파요. 그래서 오늘도 굵고 짧게 갑니다. 류효상 올림.
사람들이 한국 토종야채로 오해하는 야채 8가지.jpg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서 건너 왔다는걸 잘 아는 야채들 토마토 걍 이름부터가 영어 근데 의외로 한국에 들어온지는 오래됨 토마토의 기원은 무려 5200만 년 전 남미 문명(아즈텍, 잉카 등)에서는 토마토를 굉장히 많이 먹었음 스페인이 남미를 점령하면서 남미 -> 유럽 -> 중국 -> 한국으로 전파 1614년 문헌에 토마토를 가르키는 '남만시'라는 단어가 있는걸로 보아 그전에 한반도에 상륙했는데 제대로 재배를 시작한지는 꽤나 최근임 양파, 양배추 이름부터 서양을 뜻하는 '양'이 들어가서 당연히 외국에서 온거임 양파의 원산지는 서남아시아와 지중해 지역 유럽 지역에서 1000년 가까이 재배됨 개화기때 우리나라에 전파 양배추는 지중해, 소아시아(터키 부근)가 원산지 고대 이집트때부터 먹어온 야채 우리나라에서는 1880년 정도부터 시범재배되고 있었으나 대중화되지 않았고 6.25전쟁 이후 유엔군 공급용으로 재배가 크게 늘어남 고추 고추가 조선후기에 외국에서 건너왔다는건 방송이나 뉴스로 많이 알려져서 사람들이 알고있음 (근데 모르는 사람도 있음) 고추는 적도 부근의 남미(멕시코)가 원산지 임진왜란과 광해군 시기(16세기쯤)를 전후로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됨 고추가 들어오기전에도 당연히 우리나라에 김치는 있었으나 고추가루가 없어서 하얀 모습이었고 대신 얼얼한 매운맛을 내는 ‘천초’와 ‘겨자’를 넣어 백김치와 다르게 매운 음식이었음  대부분 사람들이 한국 토종 야채인줄 아는 야채들 고구마 중남미가 원산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진출 후 유럽으로 전파되었다가 다시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으로 전파 중국-유구-일본을 거쳐 조선에 전래 1763년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갔다가 고구마 종자를 보고 조선에 가져옴 고구마가 가뭄이나 해충의 폐해를 잘 받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서 곡물 농사에 지장을 주지 않으며, 맛이 좋고 수확이 많아서 가져온지 30년만에 구황작물로 자리잡음 감자 원산지인 남미에서 스페인으로 전파 인도-중국-만주를 거쳐 우리나라로 전래 대개 고구마보다 약 60년 정도 전래가 늦음 (약 1820년정도) 감자 역시 번식력이 좋은 데다가 고구마보다 추위나 가뭄, 홍수에 강하였기 때문에 북부와 동부 지방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퍼져서 보급 정도는 고구마를 능가함 호박 호박은 아메리카의 대륙의 원주민들이 약 9,000년 전부터 재배를 한 것으로 추정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후 유럽으로 전파 그 뒤 유럽 -> 중국 -> 한국으로 전파 (1600년대 초) 청나라에서 넘어온 박이란 의미로 오랑캐 '胡(호)' 자를 써서 호박이란 이름이 붙음 호박은 중국 만주 지역에서 처음 전래되어 한반도 북부에서부터 남하한 것으로 추정됨 단호박의 경우 일본을 통해 전파 당근 원산지는 아프가니스탄 오늘날 흔히 재배하는 당근과 비슷한 종류는 프랑스에서 개량되어 13세기까지 유럽에 널리 보급됨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16세기 당근에서 '당'자는 엿 당(糖)이 아니라 당나라 당(唐) 오랫동안 한자 문화권에서 당(唐) 자가 중국을 가리키는 접두사처럼 쓰였기 때문 따라서 '당근'은 '중국에서 건너온 뿌리채소'라는 뜻  조선 초기에는 없었으나 조선 중~후기에 우리나라에 건너온 야채 중 잘 쓰이는 야채만 추려봤음 (삼국시대때 인도에서 건너온 '오이' 고려시대때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수박' 이런건 제외함) 출처 이름 너무 단순하고 귀엽지 않나요 ㅋㅋㅋㅋ '당'나라에서 온 근 '양'에서온 배추, 파 '호'랑캐의 박
과학적으로 증명된 뇌 단련 취미활동 7가지
1. 무작정 읽으세요. 내 주변의 보이는 것은 닥치는대로 읽으세요. 만화책은 안되냐고요? 됩니다. 읽는 행위가 뇌에 주는 자극은 새로운 뉴런통로가 성장하도록 돕습니다. 특히나 속독은 뇌가 감각적 정보를 빠르게 받아들이도록 만듭니다. 2. 악기연주를 배우세요. 신경과학자들은 수년간 음악교육이 아이들의 인지능력 향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습니다. 악기연주는 지적인 용량을 확장시키고 좌뇌와 우뇌를 연결시켜줍니다. 이런 작용은 수학적 문제해결능력을 향상시켜줍니다. 3. 규칙적으로 운동하세요. 운동은 혈류에 단백질을 생성하고 혈액을 순환시켜 기억력과 집중력을 강화시킵니다. 실제로 운동을 한 집단, 하지 않은 집단을 두고 사진을 통한 기억력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운동을 한 집단이 훨신 좋은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4. 새로운 언어를 배우세요. 뇌는 주로 소리를 듣고, 의미를 부여하고 반응하는데 사용됩니다. 특히나 2개 이상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멀티테스킹이 가능하게 하는 뇌의 회백질이 더 많이 발달합니다. 연령에 상관없이 언어를 학습하는 것은 뇌를 강력하게 단련시켜줍니다. 5. 누적학습을 하세요. 누적학습이란 이미 알고있는 사실 위에 새로운 유형의 정보를 쌓는 학습과정을 말합니다. 누적학습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수학입니다. 수학은 기억력, 순차적 배열, 문제해결능력, 언어능력을 발전시켜줍니다. 6. 퍼즐이나 게임을 즐기세요. 우리의 뇌는 많이 사용한다고 지치거나 퇴화되지 않고 더욱 발전합니다. 때문에 쉬지않고 활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크로스워드 퍼즐, 체크, 비디오게임 등의 모든 두뇌활동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연결짓는 작업을 수원하게 만들어줍니다. 7. 명상 또는 요가를 하세요. 명상을 떠올리면 흥히 수도승이 하는 행위정도로 파악하는 시대는 갔습니다. 실제로 명상이 두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명상은 두뇌의 학습능력, 기억력을 활성화시키며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덜어줍니다.
12월 2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및 만평모음
= 22/12/02 류효상의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 1. 대통령실 행정심판위가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영화관람비 등의 지출 비용을 공개하라는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납세자연맹은 "영화관람비·식비도 공개 안 하면 예산 오남용을 어떻게 감시 하냐“고 비판했습니다. 영화를 봐도 통치행위, 술을 마셔도 통치행위… ‘x싸고 앉았네‘도 통치행위? 2. 예결위원장인 우원식 의원은 내년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야당 단독의 수정안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우 의원은 “국민의힘이 먼저 꺼내 든 준예산은 ‘마음대로 하겠다'는 자세"라고 비판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마치 무정부 상태 같고 국민의힘에게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거지~ 3.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안전운임제는 일몰 여부뿐 아니라 제대로 된 제도인지 다각도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화물연대를 향해 업무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안전운임제 폐지’를 검토할 수 있다고 압박한 셈입니다. ‘말 안 들으면 국물도 없다’ 이건 뭐, 국민을 개돼지로 알지 않고서야… 4. 안철수 의원이 “친윤입니까, 비윤입니까”라는 질문에 “지난 대선 때 후보 단일화를 했지 않냐”며 사실상 친윤임을 알렸습니다. 안 의원은 당내 친윤계 공부모임인 ‘민들레’에 동참할 수 있냐는 물음엔 “네”라고 답했습니다. 윤석열 꼬봉짓하고 사는 주제에… “당신은 간철수입니까 아닙니까?” 5.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 청구와 관련해 "문재인과 이재명을 비리로 어떻게 해서 진보좌파정권 싹 자르고, 좌파 언론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목표 같다"고 우려했습니다. 검찰 경찰 심지어 감사원까지 네 편이지만, 국민은 아니라는 거~ 쉽지 않을 것이다. 6. 10.29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파면과 함께 ‘윗선’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책임을 명명백백히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서해 공무원 사망 사건은 그 난리를 부리면서 이게 정말 니네의 본심이더냐~ 변희수 순직 불인정, 육군 "공무와 상당한 인과관계 없다". 하태경 "윤-친윤 회동 부인 동반, 들키지 말았어야지". 박영선 "이재명 고양이 탈 쓴 호랑이" 분당 가능성 전망. MBC사장 "언론자유 흔들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생각은 인생의 소금이다. - 애드워드 조지 얼리 리튼 - 육신이 아프니까 어떤 생각보다 건강해야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남의 일처럼 생각하던 코로나를 겪으며 ‘아 이런 고통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 겸손하고 더욱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류효상 올림.
손 뻗으면 재질이 만져질 것 같은 18-19세기 그림들
한눈에 봐도 느껴지는 무겁고 두터운 느낌의 벨벳에 두터운 금사로 놓여진 자수 자수가 화려하게 박힌 새틴 드레스인데 진짜 사진보다 더 그럴듯하지 않아? 은사가 천 바깥에 수놓아진 드레스 다른 드레스들에 비해서 수수하지? 귀족층의 드레스가 아니라서 그래 하지만 편안한 면직물의 느낌이 매력적이야ㅎㅎ 새틴 숄도 숄인데 영혼 실어놓은 진주 로코코 시대의 화려한 드레스 1700년대 그림인데도 사진같음.. 👏👏마리 앙투아네트 맞습니다👏👏 브로치 초상화까지 엄청 세밀하게 그려놓음 로코코 시대 패션을 선두했던 마담 퐁파두르 진짜 유명한 초록색 드레스 입은 그 명화와 동일인물 맞음 드레스의 질감+섬세한 의자 묘사+뒤에 걸린 풍경화까지 너무나 완벽 저 직물 특유의 구김과 그림자 표현좀 봐줘😭😭 화려함으로는 빠질 수 없는 빅토리아 시대의 크레놀린 드레스.. 만지면 바스락바스락 소리날거 같음 이건 무슨 재질인지 모르겠으나 만져보면 약간 까끌까끌할거 같지 않아? 움직일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날거같은 레이스 드레스 이것도 재질이 뭔지는 모르겠으나...불투명한 흰 부분은 새틴일거같고, 위에 하늘거리는 천은 쉬폰인가? 드레스 위에서 아무렇게나 얹혀져있는걸 그림으로 저렇게 잘표현하다니 그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섬세한 레이스... 쉬폰인지 튤인지 알 수 없는 직물...하지만 뭔 느낌인지는 알거 같은... 새틴 특유의 광택과 재질을 잘 표현함 보기만 해도 미끄럽고 덥다 크레놀린의 유행이 끝나고 등장한 엉덩이 부분을 강조하는 버슬 드레스(1870년경 유행) 직물 느낌은 잘 알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있지만 색감이 너무 예뻐 딱봐도 무겁고 숨막히는 느낌이 드는 벨벳 끝에 털 처리가 된게 보기만해도 너무나 더움 새틴 느낌 너무 잘살렸다고 생각하는 그림... 그 빤닥빤닥하면서도 만지면 손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갈거 같은 미끄러운 질감을 눈으로 느낄 수 있음 저 레이스 구멍들이 사진이 아니라니..^^ 화가 이거 몇년간 그렸을까....ㅠ 큰 그림에서는 잘 안보이지만 확대하면 자수를 놓고 있는 비단 위에 헝클어진 노란 실들까지 그려놨어....;;;;; 새틴 드레스랑 비단이랑 느낌이 미묘하게 다르고 비단에 자수 놓아진 새들도 리얼 같은 검은색이지만 상체/하체 옷감의 질감이 다른 느낌 털난 복숭아같은 따뜻하고 포슬포슬한 벨벳느낌 출처 화가들의 손목과 눈에 애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