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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 코바야시네 메이드레곤 - 루코아 /쇼타 Speed painting #002

[항아] 코바야시네 메이드레곤 - 루코아 /쇼타 Speed painting #002

치마입은 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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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합 준애 (張郃 儁乂) A.D.?~231
누차 말했듯... 픽션(허구)이 가미된 "소설"인 삼국지연의는 여러 인물들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반면 그네들의 영웅화 ~ 신격화를 위해 숱한 이들을 엿 먹이기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오늘도 역사범죄자 나관중에 의해 너프 당한 또 한 명의 피해자, "장합"에 대해 다뤄 보기로..! 장합은 삼국지정사, 위의 역사록인 위지, 후한의 역사록인 후한서, 본인의 열전인 위서의 "장악우장서전(張樂于張徐傳)"에도 생년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사망 당시의 연령을 알 수는 없지만 원소에게서 조조 휘하로 들어갈 당시 대략... 40대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저 '장악우장서전'은 조조가 자신이 공을 이루는데 그 기여가 으뜸이라며 추켜세운 다섯 장수인, 장료, 악진, 우금, 장합, 서황을 묶어 편찬된 열전이다. 저 다섯을 일컬어 당시에 "오자양장(五子良将)"이라 불렀고, 촉한의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과 살짝 비슷한 뉘앙스인데, 오호대장군이란 별칭은 그 때는 없었고 후대 사람들이 붙인데 비해 저 오자양장은 당시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오호대장군같은 저 시절의 '드림팀' 또는 '어벤져스' 느낌의 패키징은 위의 다섯 장수가 원조다. 고향은 당시로는 기주의 하간군 막현(오늘날 중국 허베이성 중남부 인근)이라는 그때 치고도 꽤나 궁한 시골 작은 마을 출신이였다. 참고로 진짜 중국이 겁나 드넓긴 드넓은게... 삼국지 게임 내의 맵에서 기주는 작은 주로 나오나, 조운의 고향인 기주 상산군과 장합의 고향인 기주 하간군의 거리는 무려 166km고, 이 거리는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보다 멀다..ㅎㄷㄷ 만화, 게임, 책, 기타 여러 미디어물들을 봐도 다른 네임드급 인물들과는 달리, 외형 이미지가 일관적이지 못한 편인데... 이는 사료 어디에도 장합의 외모 묘사가 일언반구도 없고 그를 그린 그림조차 몇 없는데다, 그것들 마저 묘사가 모두 중구난방이다보니 도무지 이미지 통일이 안된 것. 다만, 장합의 리즈시절이 펼쳐지는 것이 조조에게 투항 이후인데 그 당시의 추정 연령이 위의 언급처럼 40대로 보고, 조조세력 합류 후부터도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을 활약하다 전장에서 전사한만큼, 사실상 각종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젊은'느낌의 장수로 표현하는 것은 어색한 감이 없지 않다. 장합은 조조 휘하 장수들 중 가장 많은 전장에 참전했고, 위의 역사를 통틀어도 가장 전공이 많은 장수였으며, 주/부장을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여러 숱한 전투에서 닳고 닳은 백전노장이였다. 그러다보니 큰 전장의 주요한 임무는 물론, 작은 전장의 자잘한 임무까지 가림없이 두루 맡았고 야구로 치면 4~5선발과 롱릴리프, 경우에 따라 급하면 불펜으로까지 던지면서 하루 걸러 등판하며 혹사 당하는 노예투수 비슷한 포지션의 장수였다. 그 깐깐한 조조가, 또 당시 휘하에 숱한 명장, 용장, 맹장들이 수두룩 빽빽 채이고 밟히고 널렸던 위에서 저토록이나 빈번히 굴렸다는건 그만큼 능력 있기에 믿고 쓸만큼 훌륭한 장수였다는 증거다. 심지어 백발노인 되어 집에서 손주들 재롱이나 보고 탑골공원가서 장기두며 야쿠르트나 얻어 마실 나이에 전장에서 한창 싸우다 전사하니... 죽어 눈감는 그 순간까지 위의 군밀레에 갈려나간 군돌이였다. 삼국지연의나, 연의를 바탕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각종 미디어물들을 보면 장합은 그냥 본인의 무예와 전장에서 구르며 익힌 짬밥으로 밀어붙이는 단순한 장수로 그려지나... 위에서 언급하듯, 저렇게 숱한 전장을 누볐고 또 깐깐깐돌 조조에게 신임받으며 주장으로도 쓰인만큼 사실 전략적 대국안도 상당히 뛰어난 "지략을 갖춘" 장수였다. 본래 기주의 군소 군주인 한복 휘하에 있다가 한복이 패망하자 원소의 세력에 속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전장의 시국을 살핀 후 원소나 원소의 책사들에게 여러 전략들을 입안 했으나 거의 다 씹혔다.... 원소는 사람 자체가 선입견, 편견 이런 게 가득한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데다 또 고집은 있는 전형적 꼰대인 우리 회사 김대현 이사님같은 스타일이라 그저 야전에서 뒹구는 장수인 장합의 계책을 귀 담아 들어주질 않았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치는 전형적 예였던 당시 원소의 책사들 역시, 지들끼리도 서로 내가 옳네, 내가 맞네 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장합까지 거기 껴서 자기 의견을 제출하니 고스란히 즈려밟아 무시했다. 이렇듯, 자기 아이디어와 의견이 매번 밟히던 끝에, 원소 VS 조조의 관도대전에서도 자기가 낸 계책이 원소의 책사 중 한 명인 곽도에게 씹혔고... 그 전투에서 결국 패하며 장합이 옳았음이 드러나자 곽도가 원소에게 장합을 모함하였으며, 이에 겁 먹은 장합은 결국 원소군 내에서 베프면서 역시 원소의 아쉬운 대우에 불만가득하던 '고람'과 함께 원소군의 망루에 불을 지르고 투항한다. 역사기록에는 이 "방화 후 이적"이 관도대전에서 원소의 패배 전인지, 후인지가 안나와 있으나 어쨌건 장합과 고람이 불 싸지른 망루는 당시로는 적군의 동태를 살피는 '레이더'역할을 하는 중요한 군사시설이였기에 이를 없앤 것 자체는 어쨌건 원소군에게 치명적이긴 했다. 삼국 정립 이후에는 주로 대촉전선에 투입되었고 이유는 조조가 양쯔강을 끼고 있던데다 북진의사가 거의 없는 손권에 비해, 명목상 "한실부흥" 내세워 줄기차게 자신들에 덤벼 오는 유비세력을 훨씬 더 위협적으로 여겼기 때문. 그때 손권과 대립하는 동부전선은 장료와 악진으로 묶어 두고 가용 가능한 네임드 장수들은 대부분 대촉전선에 투입되던 시기였다. 장합은 유비도, 유비 사후의 제갈량도 상당히 껄끄러워 하던 장수였다. 대촉전선의 총사령관 역할을 하던 하후연과 조홍보다 장합의 위치는 아래였으나 이는 위에서의 커리어, 또 하후, 조 두 장수는 조조와의 친인척 관계인지라 그럴 뿐... 장수로서의 자질은 저 둘을 뛰어넘던 장합이였으며 그래서인지 조홍과 하후연은 장합을 꽤나 견제했다. 아무리 자신들의 커리어가 앞서고 조조와 혈족이긴 하다지만 철저히 능력 위주로 사람을 쓰던 조조는 언제던 장합이 더 유능하다 드러나면 속절없이 자기들보다 장합이 더 상전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 제갈량의 1차 북벌 당시, 이를 막아낸 위방어군의 총사령관은 연의와 달리 사마의가 아닌 장합이였고, 4차 북벌 때, 목문도에서 유인책 쓰며 거짓 후퇴하는 촉군을 사마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뒤쫓자며 바득바득 우기고 쫓아가다 기어이 전사하는 연의와 역시 또 달리... 당시 제갈량의 흉계가 의심된다며 추격을 만류하던건 오히려 장합이요, 이에 대해 군령까지 내세워 제갈량을 추격할 것을 밀어붙여 장합을 사지로 내몬게 사마의였다. 이에 대해서도 또 제기되는 설이.... 당시 장합과 사마의는 위의 대촉전선에서 은연중에 경쟁관계였었다. 쟁쟁한 커리어의 백전노장 장합, 그리고 위 군부 신진세력의 주축이던 사마의는 서로 견제하던 관계였으며 당시 직급상 사마의가 높았지만 그렇다해도 사마의에게 장합은 결코 직위로 쉽게 누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였고.... 그런 장합을 이이제이 방식으로 간접 제거 하고자 제갈량의 계책을 눈치채고도 등 떠밀었다는 설이다. 연의에서의 묘사처럼 빗발치는 화살에 벌집이 되어 바로 죽기보다 화살을 여기저기 맞고 후퇴하던 중 과다출혈에 의한 쇼크사였다. 기록에는 허벅지에 맞은 화살로 인한 과다출혈이 결정적 사인이라 나와 있다. 참고로 허벅지는 대동맥을 비롯 여러 혈관 뭉치들이 지나는 곳이라 흉기에 잘못 찔리면 지혈도 힘들만큼 과다출혈이 발생하여, 옛날 야쿠자나 조폭들도 서로 칼부림 당시 오히려 방어하기 좋아 찌르기 여의치 않은 복부나 흉부보다 허벅지를 많이 노렸다고 한다. 동물을 좋아했는지, 직접 먹이를 주며 키우던 개가 있었다는 설이 있고 자신이 타던 말이 힘들까봐 행군하는 경우에는 중간중간 말에서 내려 걷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사료기록은 아니다.) 원소 휘하에서는 고람과만 거의 이야기를 나눴으나 조조에게 투항 후 각기 다른 부대에 배치되며 연이 끊어진 듯... 여러 장수들과 열전이 묶음으로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신상과 일상에 대한 기록이 그닥 없다. 쉽게 말해 위의 장수로서의 공적인 기록은 좀 있지만 인간 장합으로서의 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 장합이 커리어나 능력에 비해 그닥 인기 많은 인물은 아니다보니 왠지 이번편은 반응이 별로일거 같은 좀 불길한 예감이... T-T 그래도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 드린다는 ;;;
반고흐 디오라마&미니어처 작업기 2부:)
"나는 어떤 확신도 없고 뭘 알지도 못하지만 별을 바라봄으로써 꿈꾼다 -빈센트- " 고흐처럼 밤의 다채로운 색체를 잘 표현한 화가는 없을 거에요:) 그는 화려한 낮도 좋아했지만 , 색체들이 살아숨쉬듯 꿈틀거리는 밤을 화폭에 담아내길 좋아했어요. 주로 이른 새벽부터 작업을 시작해서 , 해가 뜨고 나서야 잠깐 새우잠을 자는 저도 :) 밤의 아름다움을 느껴가는(?) 요즘입니다. 계속해서 저번 작업기에 이어서 디오라마를 구성할 미니어처 유화를 몇점 더 그려봅니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두텁고 거친 임파스토안에서 유려하고 섬세한 빛을 담아내기란.. 작은 모작을 할 뿐인 저에게도 쉽지않은 일이었어요. 하지만 "밤의 화가"라 불리는 고흐의 디오라마 작업을 시작했으니 피할 수 없는 고난(?)의 연속이네요.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은적은 없습니다만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을 미니어처화해서 작은 캔버스에 담아내는 것은 "교육"의 질 보단 , "열정"의 질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잠깐 해봤습니다. 살아생전 단 한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다고 전해지는 불우한 천재화가. (정확히 따지자면 유화 "붉은 포도밭" 한점과 여러장의 스케치는 살아생전에 판매한 적이 있습니다. ) 위대한 화가와 비견될 수는 없겠지만 , 저역시 이 일을 시작하면서.. 쿰쿰한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지하 골방에서 5천원짜리 물감세트와 조각칼 , 싸구려 붓세트 몇개로 시작했던 기억이 있기에.. 물감값을 아끼려 목탄 스케치로 몇개월을 버틴 그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한답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마음이 가는 화가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해바라기. 그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면서 , 인생 중 가장 희망에 차 있던 아를의 노란집 시절에 그려냈던 작품이지요:) 노란집에서 고갱을 기다리며 설레이는 마음으로 몇점 그렸던 고흐의 마음이 전달되 듯 , 매우 수줍고 기쁨에 찬 색채들이 .. 보는 사람에게도 그 설레임을 전달하는 듯 하는 작품. 고갱도 고흐가 그린 작품들 중 해바라기를 가장 좋아했다는 일화는 유명하지요:) ( 둘의 다툼이 시작되고 결별한 순간에도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과 고갱 자신의 작품을 교환하려고 했을 정도로 그는 고흐의 해바라기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적은 캔버스에 담아내기가 역시나 쉽지않네요:( 사실 나이프를 사용해서 작업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질감을 주기에도 좋아보였습니다만 ㅠ..워낙 작다보니 한점 또 한점 면을 채워가며 그려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화물감을 한풀 푹 떠서 해바라기 잎사귀를 찍어내듯 그려낼땐.. 정말 재밌었던 것 같아요:) 별이 빛나는 밤에 &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 작업물 보다 훨씬 더 그려내기가 어려웠어요.. 고작 디오라마 구성품 중 하나일 뿐인데.. 시간을 너무 많이 써버렸네요. "오랜 시간을 믿고 기다려주시는 분들에게.. 이 한점의 진심은 통할 것이다" 역시나 촌스러운 아날로그 작업자네요 작업물을 맡기전부터 전 고흐의 열성팬이었어요:) 갤러리북이나 그의 편지들을 담아내 엮은 다양한 서적들도 수집했더랬죠:) 덕분에 질좋은 종이에 잘 프린팅된 해바라기를 보면서 작업할 수 있었답니다. 모니터 화면으로는 느껴지지않는 감성(?)이 있달까요 역시나 아재스럽네요. 얼추 모양이 잡혔으니 이제 또 시작된 건조...ㅎㅎ:) 작지만 진짜 유화작업물이다보니 건조에 적어도 열흘은 소요될 것 같습니다. 자.. 이제 주인공과 한컷 남겨보고:) " hello Vincent " 조명을 잘못써서 너무 밝게 나와버렸네요ㅎㅎ 사실 그리다가 손가락이 너무 아프고.. 그림이 워낙 작다보니 그리는 자세가 어정쩡해져서 끝을 대충 마무리지어버렸답니다:) 항상 그렇지만 작업기도 끝마무리가 참 어색해요 그럼 조만간 완성된 작업기로 다시 찾아뵐게요. 늘 부족함만 가득한 작업물들 재밌게 감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AJ- www.instagram.com/aj_custom
중요한건 돈이 아니야 "메세지"지. 다크나이트 조커 디오라마 작업기
중요한건 돈이 아니야. "메세지"지 -조커- 다크나이트 트롤리지의 조커는 아마 피규어 콜렉터들 뿐 아니라 DC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이전에는 없었던 "철학"을 가지고 언 듯 보면 무질서해보이지만 , 철저한 자기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행동한다. 그 철학과 신념이 다소 삐뚫어져있긴 하지만. 화염 이펙트. 마치 불타오르는 듯한 효과를 연출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효과들을 사용해본 결과 가장 만족스러운 소재를 선정했고 , 다소 싱겁게 마무리했습니다. LED를 식립하여 좀 더 극적인 느낌을 연출할 수 있도록 해봤습니다만 :) 사실 기획 전시품으로 계약이 된 타입이라 다소 심심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작가 개인의 창작활동이라기보단 :) 의뢰처의 요구사항을 그대로 반영해야하는 타입이다보니 아쉬웠어요. 하지만 보시는 분들이 좀 더 재밌게 즐기실 수 있도록 가벼운 효과들을 추가해 , 재밌게 감상하실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이번 작업물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달러 다발을 제작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한장한장 낱장을 프린팅해 , 실제 지폐의 질감을 추가하기위해 별도 용액 처리를 거치고 , 묶음으로 다발을 만들어야했는데.. 정말 곤욕이었어요 :) 어머님들이 티비를 틀어두시고 바늘질을 하시는 느낌(?)이랄까요... 모쪼록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의뢰처의 요구는 사실 흥미롭지 않았습니다만 컨셉이 매우 흥미로웠던 작업물이었습니다. 중요한건 돈이 아니야. 메시지지 . 늘 감사합니다. -AJ- www.instagram.com/aj_custom
주유 공근 (周瑜 公瑾) A.D.175~210
역사에 있어 가장 무의미 하면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만약에"(Maybe)라는 가정이 아닐까 한다. 특히 역사 속 인물들에 있어서 가장 많이 적용되는 '만약에'는 'OO가 더 오래 살았다면...'이 아닐런지. 오늘의 주인공은 삼국지를 읽어본 이들에게서 바로 저 '만약에...'를 가장 많이 되내이게 했을 인물 "주유". 삼국지에서 주유는 위에서 언급한 '만약에...'에 제일 많이 언급됨과 동시에 저승에서 나관중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나관중의 거듭된 항소에 3심까지 가더라도 무조건 다 승소할 만큼.. 삼국지연의 최대의 피해자나 다름 없는 너프를 먹은 비운의 인물이다. 삼국지 등장인물 중 가장 빼어난 용모 + 명문가의 귀족 + 최상류 부유층 금수저 + 너그럽고 대범한 성격 + 천부적음악재능 + 천재적 전략가 기질 + 미녀 아내 등등.... 엄친아를 넘어 먼치킨이던 이 남자는 촉빠에 제갈량빠인 나관중에 의해 "제갈량과 맞다이를 벌인 죄"로 앞뒤 안가리고 덤비는 다혈질에, 상황파악 못 하는 넌씨눈, 속 좁아서 제 성격도 못 이기는 쫌생이로 격하되었다. 어린 초딩시절, 당시 원술 휘하의 장수던 손견의 장남인 손책을 조우하고 그에게 반해 그때부터 마음 깊이 손책의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 주유는 당시 대대로 명문가에 양주지역의 큰 호족의 자제였음에도 고작 일개 장수의 아들에 불과한 손책에게 다방면의 호의를 베풀며 둘의 우정은 깊어간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생일은 손책이 빨랐고, 손책의 모친 오국태부인도 주유를 매우 예뻐 했으며 손견 또한 주유를 아들같이 대했고 주유는 자기네 집안이 보유한 가장 큰 저택을 손책에게 선물한 적도 있었다. (역시 친구를 잘 만나야..) 지금으로 치면 하버드를 졸업하고 잘 생긴데다 머리 좋고 돈 많은 신진그룹의 조태오가 아버지가 9사단에서 대대장 하시는 내 친구 창석이랑 친구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창석이네 아버지 예편 하시고 베스킨라빈스 하심) 삼국지연의에서 어쨌건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출발점인 손견에 대한 미화가 커서 그렇지, 사실 죽는 순간까지도 손견은 원술 휘하의 장수였고 더구나 손책과 주유가 알게 될 당시의 손견은 진짜 크게 대단할 게 없던 장수였다. 손책이 십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주유는 양주 일대의 여러 호족들에게 손책을 소개하고 친분을 쌓게 하고 안면을 트게 하는 등 손책을 키우기(?) 시작했고 물심양면으로 손책을 조건없이 도울만큼 손책에게 잘 대해줬다고 한다. 이후 손책의 바로 아랫동생인 손권과도 친분이 깊어졌고 손권 역시 하나님같이 여기던 형의 베프인 주유를 형님의 예로 모셨는데, 놀라운건 그래봤자 친구 동생이고 무려 일곱 살이나 어린 꼬맹이던 손권을 "깍듯이" 대했고 늘 존칭과 경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결과론적으로 주유가 손권 아랫 사람이 된 역사를 아는 우리 입장에서야 '당연한거 아님??' 이라지만 그때만 해도 손책이 그렇게 크게될 지, 손권이 그보다도 더 크게될 지는 알 수 없던 상황.... 심지어 손책은 부친 손견이 전사한 후, 원술에 의해 잉여쩌리 취급 받다 소수병력만 이끌고 독립했는데, 이 때만 해도 손책의 성공을 점치는건 고영욱이 뽀뽀뽀 진행자를 맡을 확률보다 낮았다. 아마도 주유는 손책의 대단한 포텐셜을 감지하고,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손책을 크게 성장시킬 마음을 먹고서 그랬던게 아니였나 하는 짐작을 해본다. 이전 제갈량편에서 짧게 언급했지만, "전략가"로서의 자질과 능력은 제갈량 이상이였고, 실제 역사에서 조조를 사실상 유일하게 처참히 발라버린 판의 총지휘자였다. 적벽대전 당시 고작 3만 여에 불과한 겁에 질린 오군을 이끌고 2만이 좀 안되던 유비군과 연합하여 당시 약 20만 ~ 24만 여 명으로 추산되던 조조군을 지워버린 가장 큰 주역은 각 군의 배치와 전술기획, 총 지휘를 한 주유였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 24만 VS 5만은 넘사벽 차이까진 아니라 보여질 수도 있지만, 무슨 첨단무기나 장비가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쪽수가 깡패고 전술이던 당시 상황에서 저 차이면 대개 GG 치는 경우가 부지기수.. 더구나 저 때의 조조군은 중국 특유의 빅뻥을 가미, "100만 대군"을 자칭하며 장강(양쯔강) 상류에 진을 쳤고, 당시 분위기는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전쟁이나 엇비슷한 분위기, 상황이였는데 오히려 이길 수 밖에 없다는 자신감으로 뭉쳐서 여유있던 주유였다. 오의 대부분 고관대작들이 항복을 주창했으나, 항전론을 외친 최초 발언자는 "노숙"이였지만 노숙은 "우리가 이김!"이라기보다는 "아마 질거임...그래도 붙어보자능!!!" 이던데 반해 주유는 항전을 넘어, 승전을 자신했다. 그는 여느 전략가들처럼 혼자 이것저것 짜내기보다 여러 책사들과 장수들과 회의를 하고 거기에서 나온 여러 아이디어들 중 "될 만한" 기획안을 채택하는데 능한 '수석' 스타일이였다. 사실 저것도 대단한 게, 정말 뛰어난 대국안이 없으면 당연히 여러 아이디어 중 뭐가 옥석인지 알 수 없다. 적벽대전의 신의 한 수였던 "화공"도 주유나 제갈량의 아이디어가 아닌 무장이던 "황개"의 의견이였던걸 주유가 채택한 것... 게다가 유비를 대단히 경계했던 사람이였다. 당시 오 내부에서 대체로 유비를 그리 높게 보는 이가 없었고, 유이하게 노숙, 주유만이 유비를 높게 봤으나 둘의 대처는 달랐다. 노숙은 유비와의 화친을, 주유는 유비 및 유비세력의 조기견제를 주창.... 만약, 손권이 주유의 의견을 따랐다면 이후 황제까지 오른 유비는 없었을 것이나, 손권도 유비를 잠재적 위협요소라 인지는 했으나, 주유만큼은 아니였고 당시의 상황도 상황인지라 노숙의 의견을 따른다. 장로가 유장이 통치하던 익주를 공격하자, 그 소식을 듣고 손권에게 서촉정벌을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였다. 일단 천하패권보다 형과 자신이 일군 강동의 지배력 강화가 우선이던 손권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던 시각의 오 문무대신들에게, 성공할 시에는 천하의 남쪽 절반을 먹는 서촉 정벌은 실로 스펙터클 했다. 그러나 홈에서는 막강했어도 원정능력이 그닥이던 오군 이끌고 장거리 원정에 심지어 험준한 산지에다 오군 최대 장기인 수전을 벌일 수 없던 터라, 주유의 "서촉정벌"은 '하이리턴 & 하이리스크'로 받아들여졌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 나는데 맞손뼉 없어 흐지부지 되었으나 이를 통해 주유의 야망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솔직히 이건 좀 많이 무리수였다...) 그는 실제로 서량의 마등&한수와 연합하고 요동의 공손일파와도 협력한 후 조조의 등 뒤를 흔든 틈을 타 형주와 서촉을 온전히 손에 넣어, 양쯔 이남 점령 후 북진하여 위를 쳐부술 플랜을 갖고 있었고... 그 당시에는 심지어 조조조차 천하통일을 염두 못한 시점에서 삼국지 등장인물 최초로 천하통일 플랜을 품었던 인물이였다. 제갈량과는 앙숙처럼 나오며 못 죽여 안달처럼 이미지가 각인 되었지만, 적벽대전 당시는 제갈량을 존중했고, 이후로도 비즈니스적으로만 적대했을 뿐, 그를 상당히 대우했다고 한다. "하늘은 어찌 주유를 낳고, 또 제갈량을 낳으셨나!" (旣生瑜, 何生亮) 주유는 이 말을 한 적이 없다. 주유가 화살 맞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제갈량 탓의 빡침에 상처가 터져 끝내 죽었다는 것은 픽션으로, 병사했고 학자들은 말라리아로 추정하는 쪽으로 무게가 기운다. 적벽대전 당시 위의 스파이 역의 장간이 연의에서는 주유와 동문으로 나오지만 이는 허구... 둘은 이 때 처음 본 사이였다. 손책과 주유의 아내인 대교와 소교가 유명한데, 대교와 소교를 얻을 당시 손책은 이미 정실이 있어서 대교를 첩으로 들였으나, 미혼이던 주유는 소교를 정실로 맞았다. 아내를 많이 사랑했는지, 굉장히 자상히 아내를 잘 챙겼던 듯 한 기록이 있다. 상당히 젠틀했고 사실상 오의 군권을 잡은 손권 다음 2인자였음에도 누구에게도 위압적이거나 하대 하는 법이 없이 예의바르고 겸손히 대했다고 한다. 손견부터 손가를 섬긴 노장 정보가 초반 그를 몹시 무시했으나 변함없이 예의바르고 자신을 공경하는 그에게 감화되어 끝내 잘못을 빌었다. 이건 왠만한 이들 잘 모르는데... 신은 공평했는지, 키는 좀 작았다고 한다.ㅋ 노숙에게 장신이던 제갈량과 마주하며 목이 아프단 말을 한 적 있다. 음악적 재능이 대단하여 아무리 정신없거나 술 취한 와중에도 곡의 연주가 틀리면 지적했다고 하고, 악기도 다루고 노래도 잘 했다고 한다. 굉장한 말술을 마셨다고 하며 오에서 손권 다음가는 주당이였으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진 않았고 술도 주위에 강권하진 않았다. 장남은 이것도 유전인지 요절, 차남은 개망나니, 막내딸은 남편이 요절.... 자식농사는 흉작이였던 듯..;;;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이 주유의 후손이라고 한다. 실제로 영화 적벽에서 원래 주유 역은 주윤발이 먼저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검술에 제법 조예가 있었다고 하며, 감녕과의 대련에서 호각지세를 이뤘다고 한다! 허나 그렇다고 감녕과 무력이 동급이라 할 수 없는게, 감녕은 전장에서 다수를 상대하는 마상창술 (말 타고 창질)에 능한 야전장수였기 때문. (또 실전이 아닌 '대련'이였고...) 이건... 진짜 깨는 정보인데... 주유가 오의 군권을 쥐고 있었고 오는 지리적 특성상 양쯔강의 수군이 주력이라, 오는 수군의 총사령관인 "도독"이 지상군과 수군을 총괄한다. 아무튼 주유는 그런 수군 사령관임에도 함선에 탄 적이 "거의" 없었다.(아예 없진 않음) 그 이유는.... 그 이유는..... 바로 "배멀미".... 수군 도독인데도 배멀미를 해서 함선을 왠만하면 안탔고 본인도 이게 되게 창피했는지 이를 숨기려고 꽤 애를 쓴 모양이다. (멀미약이 있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지도..) 아무래도 주유의 리즈가 적벽대전 당시이다보니 적벽대전 관련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적벽대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단독으로 다룰 예정이라 일부러 너무 자세히 풀진 않았음! 또 주유가 워낙 손책과 베프인지라, 손책 이야기도 좀 나왔는데, 역시 손책도 나중에 자세히 다룰 예정.
영어/한국 동화 같이~ <개미와 배짱이> 외 25개
제가 요즘 아이 책 육아겸 ㅋㅋ 엄마표 영어겸 열심히 활용하고 있는 정보 공유해요 > 도서관에 해당 책 빌려서 읽고 > 이야기 스토리에 대해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 주인공은 어떤 사람이니? *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해보자 * 책의 핵심 주제는 뭐지? * 비슷한 일이 우리에게도 생길 수 있을까? 있다면 어떤 상황일까? * 이야기 중에 바꾸고 싶은게 있니? 그랬다면 결론은 어떻게 되었을 까? * 만약 이런 일이 네게 생겼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은 누구니? 주변 인물이 달라졌다면 스토리가 어떻게 달라졌을 까? > 한글 영상 먼저 보여주고 애니메이션도 이쁘고 그래서 굉장히 잼나게 봐요 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 영어 영상을 봐요. 이땐 엄마랑 같이 보는데 일단 지금은 그냥 보게 하고 있어요. 모르는 표현이 많을 텐데, 그 중 몇개는 메모했다가 어린이 영어 사전을 같이 찾아보곤 해요. (즉, 친숙하게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어요) 그 다음에 가끔 아이에게 느낀 점을 그림으로 그리라고 이 동화주제에 대해 미술놀이도 해요~ 아빠랑 이야기 나누어보게 하기도 하고요 ㅎㅎ 암튼 이렇게 한 동화주제에 대해 연속해서 하니 일관성도 있고 아이도 더 이해도도 높고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 카드에 첫번째 영상은 한글 동화 영상, 두번째 영상은 영어동화 영상을 링크걸었어요. EBS 방영, 아람출판사 제작한 이쁜 애니메이션이에요 ^^ 아래 동화들도 확인하세요~ ------- 26.피터팬 http://www.vingle.net/posts/548566 25.어린왕자 http://www.vingle.net/posts/548561 24.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http://www.vingle.net/posts/548559 23.백조의 호수 http://www.vingle.net/posts/548557 22. 춤추는 빨간 구두 http://www.vingle.net/posts/548552 21.북풍이 준 선물 http://www.vingle.net/posts/548549 20.톰팃톳 http://www.vingle.net/posts/548545 19. 엄지 공주 http://www.vingle.net/posts/548539 18.장화신은 고양이 http://www.vingle.net/posts/548535 17. 황새가 된 임금님 http://www.vingle.net/posts/548534 16.돌멩이 수프 http://www.vingle.net/posts/548532 15.어부와 아내 http://www.vingle.net/posts/548514 14.빨간 모자 http://www.vingle.net/posts/548511 13.신데렐라 http://www.vingle.net/posts/548507 12. 브레멘 음악대 http://www.vingle.net/posts/548506 11. 구두장이와 요정 http://www.vingle.net/posts/548504 10. 거인의 정원 http://www.vingle.net/posts/548499 9. 새들의 왕 뽑기 http://www.vingle.net/posts/548497 8. 황금 거위 http://www.vingle.net/posts/548496 7. 용감한 꼬마 재봉사 http://www.vingle.net/posts/548495 6. 게으름뱅이 잭 http://www.vingle.net/posts/548494 5. 시골 쥐와 도시 쥐 http://www.vingle.net/posts/548489 4. 어리석은 소원 http://www.vingle.net/posts/548488 3. 아기돼지 삼 형제 http://www.vingle.net/posts/548486 2. 금발머리와 곰 세마리 http://www.vingle.net/posts/548483 1. 개미와 배짱이 http://www.vingle.net/posts/548482
나본 관중 (羅本 貫中) A.D.1330? ~ 1400
여기서 다뤘거나 다룰 인물들 중 예전에 다룬, "유일한" 생존인물 정대리 외에 사망인물들 중 가장 최근(?) 인물이자, 유구한 중국역사 속 찰나에 불과하며 의미도 그닥인 삼국시대를 지금의 메이져 에이지가 되는데 큰 공 세운 삼대장 중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나관중" 을 한 번 다뤄 보고자 한다. (삼대장 중 둘은 정사의 진수와 그 정사에 주석자 배송지) 처음 제목보고 '응? 나본이 뭐야?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겠으나 삼국지 속 인물들이 이름 외에 자(字)가 있듯, 나관중의 본명은 "나본"이고 관중은 그의 "자"인데 이거 모르는 분 많으실 듯ㅎㅎ(이하 나관중) 사실, 이 칼럼연재를 시작하며 어찌보면 정사의 저자인 진수와 함께 가장 먼저 다뤘어야 도리였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치고 의외로 기록이 그닥 많지 않은편. 일단 이 사람의 사망연도는 딱 떨어지는 A.D. 1400이나 출생연도는 추정치가 있을뿐 정확하진 않고 고향도 지금 중국 산시성의 타이위안이란 곳쯤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긴 하지만 명확한 고향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왜 그러냐? 지금이야 삼국지가 동아시아 최고의 히스토릭 미디어떡밥이지만 나관중 생전에는 서점이 있냐, 도서관이 있냐,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했냐.... 인쇄라는 개념도 없어, 책 한 권이 두 권 되려면 누가 붓 가져오고 벼루에 먹 갈아 베껴적어야 하다보니 인기를 얻으며 널리 퍼지는데 막대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삼국지연의가 그 넓은, 그러나 유통망이나 인프라가 개떡인 수백 년전 중국일대에서 인기를 끌쯤, 이미 나관중은 천국에서 삼국지속 실제인물들을 만난지도 한참 이후... 게다가 지금 현재의 중국조차 인적사항등록이 누락된 인간이 있는 마당에, 당시 명나라 초기의 일반인의 기록이 세세히 있을리가 없다. 지금에나 그런 베스트셀러작가가 명망높지... 당시의 명은 당연히 관직에 나가 벼슬살이 하는게 갑이였고 그 이하 여타 직군들은 별 큰 인기나 선망직종이 아니였다. 어렸을적에 어떤 어린이였고 소년이였는지는 모르겠고, 여튼 머리 크고는 위 언급대로 벼슬아치가 최고였던 시절이다보니 나관중 또한, 명나라의 인싸가 되기 위해 과거에 응시를 했었나본데, 낙방했다.....;;;; 심지어 세 차례 이상 내리 낙방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과거는 지금 한국의 공무원 시험 따위와는 댈게 아닌 극악의 난이도여서 벼락치기 좀 했다고 붙는 그런건 아니였어서 수년간 공부했어도 수 차례 물 먹는 사람들이 많은건 사실이였지만, 왠지 뭔가 천재작가 이미지의 나관중조차 여러 번 불합격한건 의외다. 이건 나관중 개인에게는 불행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에겐 다행인거지..ㅎ 벼슬 나갔으면 삼국지같은거 썼겠나. 게다가 당시 명의 천자였던 "홍무제"는 뭐가 불만인지 수틀리면 벼슬아치들을 죽여대던 때여서 홍무제손에 킬된 벼슬아치가 10,000 명이 넘었다하니 어쩌면 나관중 본인에게도 잘된 걸 수도~ 뒤에 이야기들 보면 느끼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양반이 뭐가 딸려서라기보다 그냥 공부머리가 없었지 싶다. 정사를 꿰고 그 무수한 민담들을 캐내서 집대성하고 스토리텔링을 해낸 그의 재능은 오로지 포커스가 삼국지에 올인 되었을 뿐이였다. 과거에 계속 떨어지기를 여러 번...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벼슬에 대한 미련 버리고 부친이 하시던 소금장사를 따라다니며 장사를 도왔는데, 공부도 못 하는 주제에, 장사도 못 했고 장사에 별 도움이 안되다보니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었는지, 나중에는 장사를 따라다니는 것도 그만뒀다.ㅋㅋㅋ 이렇게 원나라(그 시절은 아직 원)의 잉여놈이던 나관중은 동네 찻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당시의 찻집은 옛날 프랑스 파리의 카페와 비슷한... 문학도나 학자들, 혹은 예능인들이 드나들며 의견을 나누던 그런 분위기였다고 보면 된다.(술 안팔았다) 그렇게 드나들던 찻집에서 거의 매일 했던것이 "삼국희곡(三國戱曲)" 이란 공연인데, 이게 뭐냐면 몇 명의 화자가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연기와 나레이션 섞어서 간단한 연극 비슷하게 만담처럼 진행하는 요즘말로 스탠딩공연같은건데 나관중은 여기에 빠져서 이걸 보려고 싸지도 않은 찻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래도 당시에 소금집 아들이면 나름 먹고사는 집이니 가능했던 듯..ㅎ 이 때 이 찻집의 삼국희곡은 한 잉여의 삶을 바꾸게 된다. 이후 단순 삼국희곡덕후에서 끝난게 아니라, 관련 사료들을 모으고 연관 주석과 민담 및 구전설화들까지 모으게 되는데.. 당시에 이짓은 그야말로 엄청난게, 이때 인터넷이 있나, 도서관이 있나 이런저런 자료들과 이야기들을 모으려면 그야말로 발로 뛰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당시 교통이 좋기를 해.. 심지어 "중국"에서... 여튼 덕중의 덕은 양덕이 아닌 중덕이란걸 보여준 나관중은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토대로 소설을 쓰고 소설 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바로 우리가 삼국지연의라는 그 소설이다. 마치 원래는 연극영화과 전공이였고 관련하여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다 역사에 매료되어 한국사 강사가 된 설민석 선생님과 엇비슷하다. 자료를 취합하는 나관중의 정성과 열의는 실로 대단한건데, 지금같은 정보화시대에서 알기 쉽지 않은 자료나 정보가 많거늘, 그때는 위에서 말했듯 아무런 인프라도 시스템도 없고 심지어 삼국시대는 나관중이 살던 원말~명초때 당시 기준으로도 1,000년전 역사였으니 이에 대한 자료조사는 맨땅에 헤딩이였다. 그러나 소금집 잉여아들은 이 모든걸 해냈다....! 헌데 당시 그런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 자료수집 하다보니 아무래도 칼같이 정확하고 공정한 기록들만 채집하는건 한계가 있었으며 별 말같잖은 소리나 뜬금없는 자료들도 많아 나관중은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대상황 따라 인기인물도 바뀌고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인기따라 민담이나 에피소드들도 늘고 줄고가 생겼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관중은 삼국지를 기반한 판타지를 쓰려는게 아닌 정말 역사속 사실을 모티베이션한 모큐멘터리급의 작품을 추구했기에 최대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끔, 설령 쏠림이 발생해도 티나지 않게끔 매끄럽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한중일 삼국에는 아직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속 이야기가 모두 팩트라고 잘못 아는 이들이 상당수 있고 무엇이 픽션이고 어디부터 리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워 하는 수작이 나온 것! 이 또한 삼국지연의가 명작반열에 오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게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영화로 치면 나관중은 '운장포터와 도술사의 돌', 이런 판타지나 '삼국불패 -촉한웅사-' 같은 무협물이 아닌 '오호대장군 : 적벽워' 같은 허무맹랑한듯 리얼하게 그려낸 덕에 더 많은 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살펴보면 나관중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일단 나관중은 지금 표현으로 치면 "마초스러움"을 선호했던거 같다. 서량의 그 마초말고 터프하고 와일드한 전형적 남성미의 그 마초이즘을 말한다. 그 이유는 일단 삼국시대는 물론, 나관중이 생존한 원나라 말 ~ 명나라 초에도 전투시에 그 전투지휘를 일임한 상장이나 총지휘관이 가장 선두에서 지휘하거나 심지어 적장과 1vs1 맞다이를 붙는건 확률이 0에 수렴했음에도 나관중은 그런 네임드간의 일기토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애초에 저런 방식의 전투가 없다시피했기에 당시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언뜻 생각도 못했을 개념인데 저리 도입한걸 보면 소설적 재미추구는 물론, "장수는 싸워야 장수!" 라는 그당시 기준의 마초이즘적 증거가 아닐지.... 또 한가지로, 삼국지연의내에서 장수들의 최후를 그린 부분들이 실제 역사와 다른 경우들이 꽤 있는데 대체로 병사하거나 혹은 죽음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들이 연의에서 장렬히 전장에서 간지뿜으며 전사하는 걸로 각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이질로 앓다 병사한 감녕, 역시 병을 앓다 결국 병상에서 숨 거뒀던 서황, 역시 고열로 인해 헛소리까지 했다는 학소, 역시 죽음 과정에 대한 별 기록이 없던 황충 등... 아참 태사자도 있구나 여러 장수들이 누워서 천장을 보다 저승을 갔음에도 나관중은 이들을 명예롭게 전장에서 요단강을 건넌 것으로 그려내줬다.ㅎ 나관중의 또 다른 취향은 "물량공세"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83만명. 관도대전 당시 원소군과 이릉대전 당시 촉-무릉만 연합군 70만명. 촉의 남만정벌 당시 50만명 등.... 지금의 중국으로야 가능해도 당시 빈번한 전란과 자연재해 및 극악의 치안상태와 기아 등으로 전 중국의 인구가 지금의 20분의 1수준에.. 제대로 된 인구통계도 못 내며 심지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한 농경사회였던 당시로는 엄두도 못낼 규모의 대병력이 마주치는 이런 물량공세는 역시 나관중이 전쟁을 더욱 흥미롭게 표현키 위한 장치였다. 삼국지연의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 라 불려지는 명작들이 있는데 나머지 세 작품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유교마인드 뿜뿜인 우리나라 정서상... 야설의 원조격인 금병매는 거의 매장 당하다보니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가 삼대장이 되었고 서유기가 주로 애니매이션이나 게임같은 어린이~청소년 대상 매체들에서 매만지다보니 성인들에게는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이 양대산맥을 이룬다. 놀랍게도 이 중국4대 기서 중 삼국지연의의 나관중이 수호전도 집필했다...!!!! 수호전은 순전히 나관중이 창조했다기보다, 원나라 말기의 시내암(施耐庵)이라는 사람이 원작자에, 나관중이, 쉽게 말하자면 초본상태의 수호전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시내암이 수호전이라는 그림을 대강 콘티만 그렸다면 나관중이 거기에 펜선을 그려 디테일을 추가하고 컬러링까지 했다고 하면 비슷한 표현?...ㅎ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단편이라도 소설이나 수필 등을 써본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다만... 아무리 적성이 맞고 본인이 원해 쓴다 할지라도 "글을 쓴다"는 작업은 보통의 인내와 센스로는 하기 어려운 작업이며, 더구나 실제역사를 기반해 철저한 자료조사 및 고증을 더한 작품은 요새도 쓰기가 버겁다. 게다가 요즘은 펜에 원고지로 원고작업 않고 대부분의 작가분들이 컴퓨터를 쓰지만.... 나관중은 명나라 사람이라, 벼루에 먹을 갈고.. 붓으로 먹물을 찍어 썼다. 학창시절 혹시 서예해 보신 분 계시는지?.. 먹을 가는거부터가 존니 진짜...하아..(난 그 먹냄새도 싫었어) 게다가 붓글씨는 정말 글씨쓰기가 거지같고 뭐 좀 쓸라치면 그새 붓의 먹물이 다해서 또 찍고.. 붓의 힘조절이 잘 안되면 글씨가 개판되며 오타가 나면 이건 수정이고 뭐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된다.. 게다가 서예반 애들은 거의 대개 부모나 담임이 산만한 애들의 정서함양에 좋다고 시켜놓다보니 애새끼들이 전부 산만하다 -_-;;;;; (게다가 손에 묻은 먹물은 잘 씻기지도 않고 옷에 묻으면 그 옷은 그냥 버려야 된다는...) 여튼 그런 붓글씨로 쓴 소설! 심지어 그냥 소설도 아닌 중국의 4대 기서! 게다가 그중 둘이 Write By 나관중의 위엄은 말로 표현불가다. 위에서 언급했듯, 공부머리가 없었을 뿐 그는 천재고 서양의 세익스피어에 뒤지지 않는 동양최고의 문학가였다. 그런데 수호전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상과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이들이 많이 나오고 그러다보니 명나라에서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벼르고, 그의 가문은 나관중으로 인해 온집안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그를 가문에서 파문!!! 쉽게 말해서 호적을 파버렸고, 나관중 역시 자신의 신상 및 자기네 집안안위 위해 노년에는 인적 드문곳에 짱박혀 이승윤이나 윤택이 찾아가는 그런 자연인처럼 살다 조용히 죽었다..., 그의 업적대비 참 초라한 최후지만, 당시는 뭐.. 아무거나 트집 하나 잘못 잡히면 그냥 모가지가 날아가는 시대에, 잘못 얽히면 온집안이 풍비박산 나는것도 다반사던 시절이였고 또 천재들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다보니 오히려 살아생전에는 인정은 커녕 가난과 무관심 속에 불운한 삶을 살다간 이들도 부지기수다. 아마 나관중은 앞서 언급했듯, 당시 시스템과 인프라에 따른 자기작품의 빠른 대중화의 한계와 당시 사회적인 직업인식 등으로 인해 생전에는 대문호에 대한 존경같은거 없이 살았을거다. 그냥 간신히 밥이나 먹고 맨날 방구석 처박혀 글이나 쓰고 그러는 Nerd였을 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와 수호전이란 두 거작을 만들어낸 그의 근성과 집념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매사가 다 그렇다. 뭘 하건 성공을 위해 우리는 당장은 미진해도 꾸준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쌓여 결국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거라고 나관중의 삶이 말해준다. . . .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기 8장 7절 - (하지만 난 무신론자)
정보 덕모 (程普 徳謀) A.D.? ~ ?
나도 안다.. 아무도 안궁금해하고, 아무도 안좋아하고, 아무도 관심없을 그런 인물이라는거. 심지어 그 인기에 걸맞게 기록도 별로 없다. 그런데 맨날 피자, 치킨, 갈비, 삼겹살, 소세지, 파스타, 회, 스테이크만 먹을 수는 없잖아? 가끔은 그냥 김치하고만 먹거나 물에 말아서 후루룩 마시듯 먹을 때도 있는거고... 그래서 오늘의 주인공은 "정보". . . .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고향은 유주의 북평에 있는 토은현. 손견시절부터 시작해, 손가를 따르던 주요 인물들 중 고향이 최북단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에 대전사람도 있고 인천에 대구사람도 살고, 부산에 삼척사람도 일하고 제주에 광주사람도 놀고 그런게 아무렇지 않지만 저 당시의 중국에서는 대체로 워낙에 넓기도 넓고 거기에 도로나 교통같은 인프라도 저질인데다... 농경사회라 지주건 소작이건 일단 "땅" 이 일터라 그 땅을 벗어나면 먹고 살기가 벅차니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벗어나 사는 경우가 흔치 않았는데.... 비록 정보가 농사꾼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활약한 지역이 고향에서 1,000km도 넘는 자동차로 쉼없이 휴게소 한 번 안들리고 가도 반나절을 운전해 가야하는 거리! 손견때부터 손가를 따르긴 했는데, 언제 어디에서 어쩌다 손견을 따른건지는 기록이 없다. 다만, 손견 만나기 전부터 말단이나마 관직에 있던거 같다. 마냥 칼만 휘두르고 힘만 쓰는 무식쟁이 장수는 아니였고, 책사나 재사 수준이야 당연히 못되겠지만 기본적 학식은 갖춘 사람인데다 이런저런 처세술과 식견도 있는 나름 "배운" 장수였다. . . . 손견 자체가 원술의 휘하 장수다보니 그 휘하 장수의 휘하 장수인 정보는 아무래도 무슨 눈에 띌 대활약을 하는데는 한계가 있었고... 무슨 어마무시한 무예실력이나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진 것도 아니였다. 이렇게 말하면 좀 돌아가신 분께 죄송할 말이지만, "그냥 좀 쓸만한" 장수였지, 어디다 내로라 할만한 그런 급은 솔직히 아니였던거 같다. 삼국지연의 속에서는 "철등사모"라는 자신만의 템을 쓰는것으로 나오는데... 연의가 다 그렇듯, 저 당시에는 저런 무기가 없던터라.. 정보의 철등사모는 픽션이다. 무슨 병장기를 썼는가에 대한 기록도 없다. 손견 사후 손책이 원술 휘하에서 벗어나며 강동 일대에서 양학을 다닐 때는 그래도 좀 나름 쏠쏠히 활약했는데, 이 당시는 손책 휘하에 별 다른 장수도, 병력도, 책사도 없다보니 정보 정도만 되어도 큰 도움이 되었던거다. 혹자는 '뭐? 그때 책사가 없다고?? 주유 있잖아!' 하겠지만, 주유는 손책이 막 원술 휘하에서 벗어나자마자 손책에 합류한게 아니고, 주유 자체가 병법과 책략에 대단히 뛰어난 사람인건 맞지만 전형적인 모사 타입이라기보다 전국시대에서 초한쟁패기 무렵의 한신같은 총사령관 타입인지라 마냥 주군 곁에서 꾀를 내기보다 독자적인 군단을 이끌고 직접 움직이는 스타일이였다. 게다가 주유는 이미 꽤 큰 세력의 호족출신이라 손책이나 손권이 쥐어주는 병력만 받아 운용하는게 아니라 자기 휘하의 직속병력들을 적잖이 거느리고 있었고 그 병력에 대해서는 손가들도 마음대로 터치를 할 수는 없었다. 이는 위, 촉과 구분되는 오세력들만의 특징이자 핸디캡. . . . 그에 비해 정보는 호족도 아니고, 형남지역이나 그 이하 강동/강남 지역에 무연고자라 그냥 손씨들 하나 보고 따라 다녔던 사람이라 손씨들이 수족부리듯 할 수 있었다. 삼국지연의에서 거의 셋트로 묶이는 황개, 한당, 조무들도 정보와 비슷한 처지였고 다 저렇게 손견을 따르면서 엮인 동료이자 전우였다. 손책 사후, 손권으로 정권이 급 바뀌던 때는 오의 격변기면서 위기였던 시절이였는데... 이건 손책편에서도 언급했지만, 손책이 본인의 단명을 예견한건지, 그냥 지 급한 성깔 탓인지 급하게 세력을 다지느라 유화책 그딴거 다 개줘버리고 자기 안따르고 비협조면 죄 개패듯 쓸고 다니며 꿇려놓다보니 손책이 죽자마자 다시 들고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저런 애들을 번거롭지만 다시 돌며 매타작을 다녔는데, 이때 정보의 성과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연의에는 딱히 이사람의 성향에 대한 언급이 없다보니 잘들 모를텐데, 저런 반란군 토벌 당시 윗선에서 듣고 놀랄만큼 꽤나 잔혹하게 토벌을 했다고 하며... 끝까지 항거하다 잡히면 그런 놈들 전부 모아다가 산채로 불구덩이에 쳐넣었다고 한다.. 자, 슬슬 정보의 인성이 나오기 시작하는데ㅋㅋ 위에서 말했듯 마냥 힘만 쓰는 무장은 아니였고 나름 글을 읽은 장수다보니 거기까진 좋은데, 자기와 달리 힘만 쓰는 전형적인 무장들을 알게 모르게 은근 무시하고 까는 경향이 있었다, ;;;; 저때는 시기가 시기인지라, 먹고 살기도 너무나 버거운 시절이다보니 날때부터 금수저 물고 나거나, 진짜 혜안있는 부모를 만난게 아니라면 대체로 책은 커녕 글조차 못 읽는 문맹들이 발에 채였는데... 아무래도 무장들 중에 문맹 혹은 그냥 간신히 자기이름이나 쓰거나 간단한 문장들이나 읽고 쓰는 수준의 장수들이 정말 많았다. . . . 예를 들어, 가난한 농민의 집에 태어나 밭갈고 논메는데 자기네 지역의 주자사나 군벌이 병력을 징집한다기에 징집되어 병졸이 되었고 죽기 살기로 싸우고 공 세워 말단 장수가 되었다가 공적을 인정받아 더 높은 직위에 오르고..... 이러다보면 당장 전장에서 싸우고 병사들 관리하기도 바빠 따로 글을 익히거나 책을 볼 틈 같은게 없다. 게다가 한자라는게 그렇게 쉽게 익힐 수 있는 문자도 아니다. . . . 여튼 정보는 저런 소위 무식한 장수들과는 은근 거리를 두거나 무시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거나해서 당장 자기와 가장 오랜시간 생사고락 함께 한 황개, 한당, 조무와도 막 절친베프가 아니였고 혼자만 살짝 겉돌았다. 저런 정보의 인성이 제대로 터진 계기는 바로 적벽대전 앞두고 군비를 점검하고 전쟁준비 임하며 주유와 함께 좌도독, 우도독을 나눠 맡으면서다. . . . 연의에서도 이 부분이 나오며 처음에는 한참 어린 주유와 동급대우 받는 것에 불쾌해하다 주유의 병력운용과 훈련 등을 시찰 후 주유를 인정하는 걸로 그려진다. 그런데 저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참 안타깝지만. .. 주유와 동일선상 놓이며 불쾌해한게 팩트. 나중에 주유를 인정하는건 픽션이다..-_-;;;; 실제로는 내내 못마땅해했고 그 후로 주유 사망까지 딱히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다. . . . 암만 봐도 학식, 병법, 책략, 용병, 대국안, 전략기재 등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주유근처도 못가는게 명백했고 외부의 평가 역시 마찬가지였건만, 정보 혼자 그걸 인정않고 그저 자기보다 한참 나이도 경력도 적고 짧은 주유가 자신과 도독을 나눴다는게 불만이였다. 엄밀히 말해.... 주유에게 도독직을 나눠줬다기보다, 그간 정보의 경력과 나이를 예우해 정보에게 도독직을 나눠준거나 마찬가지였음에도 적반하장이였던 정보다. 여튼 그래도 공사는 구분하여 적벽대전은 잘 치르고 이후 형주 남군을 맡고있던 조인까지 몰아내는데 공을 세운 것이 그의 마지막 레코드. 그러고는 얼마안가 열병을 앓다 석달 가량을 투병 후 다이.. 생몰연대는 없지만 오에서 정보를 부를 때 대개 많은 공을 세운 이를 예우해 부르는 호칭인 "정공"이라 부른걸 볼 때 사망당시 꽤 나이가 많았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 . . 성 뒤에 공을 붙이는 자체는 공이 많은 이를 예우하는, 영어로 치면 성 앞에 Sir.을 붙이는 것과 비슷했는데 당시에는 그냥 단순히 젊은이가 공 많다고 붙이진 않았고 대개 공이 많은 원로들에게 붙이는 경어같은 개념이다. 아무래도 공이 많다보면 자연스레 나이도 많으니까~ 정보! 하면 떠오르는 기념비적인 활약 자체는 없어도 오의 창업주의 부친이 젊었던 시절부터 별 기복없이 차근차근 공을 세워오며 적벽대전 앞두고 소수였던 항전파였던데다, 나이 지긋해서도 은퇴않고 야전에서 활동하다 사망했다. 비록 인품이 좋은 양반까진 아니였지만 그래도 손가에 대한 깊은 충심 자체는 진심인데다 못 배운 애들을 돌려까고 어린 애들을 무시하긴 했어도 그러다 과욕이나 만용부려 팀킬을 한다거나 얼빠진 짓으로 아군을 위험에 빠뜨리는 등의 행동까진 없는, 그냥 요새 사회에도 어딜가나 있는 그냥 흔한 꼰대아재였을 뿐이였다.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였을 그 당시는 오히려 노장이 젊은 장수나 인재들과 오픈마인드로 논의하고 후배의 지시를 고분히 받는 트인 사람이 흔했던 시절은 아니였으니 마냥 정보의 심성이 뒤틀렸다기보다 그냥 결국 정보도 그 시대의 보통사람이였던ㅎ . . . 이번 정보편은 쓰는 나도 노잼이니, 읽는 여러분들도 노잼이였을거다. T-T 인기스타도, 빌런도 아닌데다 임팩트도 없다보니. 그래도 오늘편을 통해 "편식은 좋지 않다" 라는 메세지를 전하고자 한다.ㅋㅋㅋ
드로잉 끝판왕이라는 평가를 받은 한국인 만화 작가
무라타 유스케라는 일본 만화 작가가 있는데 현지에서는 '노력하는 천재' 라는 소리를 들음  이 사람 드로잉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그냥 연재하는 만화 컷들을 연속으로 슬라이드 배치하면 애니메이션이 될 수준임  채색능력도 엄청나서 소년점프 2000호 기념 한정 컬러 포스터를 두 번이나 맡았는데 서로 다른 만화의 주인공들을 각 작품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그림체를 덧씌운 고퀄리티 작품을 뽑아 냈음  G펜과 마카를 이용한 수작업만 고집하는 방식으로 그런데 이런 완전체 같은 능력치를 가진 무라타 유스케가 '이런 사람이 천재구나' 라고 생각하고 교류를 시작한 만화가가 있으니  김정기라는 사람임  G펜과 마카를 애용하는 무라타 유스케처럼 이 사람은 붓펜이나 붓을 주로 사용하는데 작업 과정을 보면 천재가 누군가를 천재라고 부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됨  블리자드와 콜라보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드로잉 마블 스탭들 앞에서 직접 시연한 시빌워2 드로잉  안시성 개봉 당시 콜라보레이션 이 영상을 본 사람 중 몇 명은 영화보다 드로잉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  삼일절 기념 드로잉  지금은 전세계 돌아다니면서 드로잉 쇼도 하고 간간이 방송출연도 하는 중 출처 : 더쿠 개인적으로 김정기 작가님의 드로잉은 정말 경이롭다고 생각합니다 *_* 위 동영상들을 봐도 충분히 그렇다고 생각하실 듯 . . 정말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진 작가님이시죠 ! 추가로 몇가지 드로잉을 더 올려볼게요 - 영상도 꼭 꼭 보시길 바라요 :) 압도적인 드로잉 실력에 감탄을 연발하실듯 해요 어떻게 밑그림도 없이 이렇게 완벽한 그림을 그려내시는지 . . 이미지 출처 : 구글,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