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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명심해야 할 감사의힘 50가지

평생 명심해야 할 감사의힘 50가지

1. 부모에게 감사하라. 그 분은 나의 후견인이요. 창조주다.
2.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생겨난다. 밥먹듯 감사하라.
3. 아침마다 하루 분량의 생명을 얻는다. 감사 감격 감동으로 수용하라.
4. 자부심이 강한 사람은 감사의 달인이다. 행운의 여신과 손을 잡아라.
5. 시련에 감사하라. 아픔을 통하여 완성의 길을 찾게 된다.

6. 감사의 친구가 되라.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도 있다.
7. 밥을 보면 감사하라. 밥은 하늘이 내려준 생명 원소다.
8. 물 한모금 마시고도 감사하라. 물의 성분까지도 달라진다.
9. 더운 밥 찬밥 가리지 마라. 뱃속에 들어가면 찬밥도 더운 밥된다.
10. 믿는 신에게 감사하라. 불철주야 나를 인도하는 분이다.

11. 감사의 말이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 감사에 나를 맡겨라.
12. 감사하는 사람은 장수한다. 면역세포가 100배 증가 하는 것이다.
13. 힘들면 감사하라. 어려움은 극기력 향상의 훌륭한 스승이다.
14. 실패를 피하려 말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15. 피해 입었어도 웃어 넘겨라. 가해자가 안된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16. 도둑 맞아도 감사하라. 목숨 안 뺏긴 것만 해도 천운이다.
17. 물건을 잃었다고 속상해하지 말라. 양심이 남았음에 긍지를 가져라.
18. 욕 먹으면 기뻐하라. 행실에 이로운 보약이다.
19. 병이나면 감사하라. 몸 조심하라는 하늘의 신호이다.
20. 운전 중 딱지를 떼면 감사하라. 교통경찰이 내 생명 지켜준 것이다.

21. 언제나 좋은 날이다. 비가 오면 만물이 자라나고 날이 개면 상쾌하다.
22. 책을 펴면 감사하라. 좋은 책은 인생의 네비게이션이다.
23. 미운 사람에게 감사하라. 감사분량을 키워주려는 신의 배려다.
24. 건강하려면 감사하라. 스트레스도 감사함에 편입된다.
25. 남을 돕는 것은 복을 짓는 일이다. 복 짓는 일에 동참하라.

26. 즐겁게 일하라. 즐거움은 즐거움은 살아서 경험하는 천국이다.
27. 쉴 수 있는 공간에 감사하라. 밤마다 나를 편안한 세계로 인도한다.
28. 차를 탈 때 감사하라. 몇 시간 걸려 갈 곳을 한달음에 데려다준다.
29. 자녀가 꼴찌 해도 감사하라. 이제 올라 갈 일만 남아 있다.
30. 빚이 있으면 당당하라. 빚도 재산이고 능력이다.

31. 불행 중 다행은 있어도 다행 중 불행은 없다. 불행 앞에 감사하라.
32. 천지만물에 감사하라. 나에게 가장 큰 자산이다.
33. 좋은 친구에게 감사하라. 나에게 가장 큰 자산이다.
34. 좋은 말씀에 감사하라. 좋은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다.
35. 인맥은 감사함을 바탕으로 자라난다. 자신을 되돌아보자.

36. 안아주라고 손이 앞에 있다. 뒤에 손 없음을 감사하라.
37. 두 다리가 있음에 감사하라. 한 다리로 힘들게 걷는 사람도 많다.
38. 눈과 귀가 있음에 감사하라. 보고 듣지도 못하는 사람이 백만명이 된다.
39. 시련은 삶의 필수과목이다. 연마함으로 교만을 겸손으로 변화시킨다.
40. 불평하지 말라. 그것은 독배를 마시는 것과 같다.

41. 감사의 안경을 쓰면 모두가 감사할 것 뿐이다. 안경을 바꿔 써라.
42. 부부싸움도 쓰다듬어주며 하라. 늙으면 그것도 추억이 된다.
43. 위하는 마음으로 헤어져라. 그 동안 살아준 것에 감사하라.
44. 깨우침을 주는 글에 감사하라. 글 하나가 나의 삶을 바꿔 놓는다.
45. 만나는 사람마다 감사하라. 감사의 전도가 세상을 바꾼다.

46. 성경 불경 읽었어도 소용없다. 감사함의 터널을 먼저 지나라.
47. 장의차를 보면 감사하라. 선배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48 감사의 말은 최강의 기도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복을 받는다.
49. 날마다 감사 할 일을 5개씩 써라. 하늘의 축복이 나에게 임한다.
50. 죽을 때도 감사하라. 천국의 비자는 저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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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한아뿐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제목부터 지구에서 한아(하나)뿐이다. 달달한 사랑 이야긴데 그 달달함이 조금 이상하다. 달달하긴 한데 지구인과 외계인의 러브스토리고 정말 달달하긴 한데 보다 보면 과연 나는 얼마나 환경을 생각하며 살았는지 곱씹게 된다. 조금 희한하긴 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한아는 지구를 사랑하는 의류 리폼 디자이너다. 망가져가는 환경을 안타까워하고 지구에 인간이 너무 많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한아는 못 쓰게 된 옷들을 다시 리폼해주는 '환생'이라는 작은 옷 수선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남자 친구 경민은 자유분방이란 말이 어울리는,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한아를 놔둔 채 늘 어딘가로 떠나버리곤 한다. 이번 여름에도 캐나다로 유성우를 보겠다며 떠난 경민. 경민이 떠나고 며칠 뒤 뉴스에 캐나다에 운석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나온다. 한아는 바로 경민에게 연락하지만 경민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애타게 경민을 기다리며 마음 졸이는 한아. 다행히 경민은 무사히 돌아오고, 연락이 안 되는 경민에게 잔뜩 나 있던 화는 막상 경민을 보자 여름날의 눈처럼 스르륵 사그라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한아는 돌아온 경민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다. 전보다 너무 다정해졌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지도 않는다. 팔에 있던 커다란 흉터가 사라졌고 못 먹던 가지무침도 맛있다며 먹더니, 급기야 경민의 입에서 초록빛이 뿜어져 나오는 걸 목격한 한아. 경민은 진짜 외계인인 걸까? 그렇다면 원래의 경민은 어디로 간 걸까? 이 소설은 누가 뭐래도 달달한 사랑 이야기다. 한아를 만나러 2만 광년 떨어진 지구까지 날아온 외계인과의 러브스토리라니. 오직 한아를 만나기 위해 커다란 빚을 지고 엄청난 거리를 넘어온 외계인. 그 노력만 해도 지극정성인데 그 외계인이 한아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100점짜리 남자 친구다. 늘 한아를 배려하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존중해주는 남자 친구. 유일한 단점은 외계인이라는 것뿐. 한아는 외계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외계인이 경민의 겉모습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거리감을 느끼지만 점점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외계인에게 자신도 사랑을 느낀다. 경민의 탈을 쓰고 있지 않아도, 초록색 돌덩어리인 본모습이라도 사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초록색 돌덩어리라도 사랑할 수 있어. 한아의 말에서 우리는 사랑의 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에는 아름다운 외모, 외계인이라는 사실, 성별의 유무, 나와 전혀 다르게 생긴 모습, 그 무엇도 중요치 않다. 상대방을 아끼고 배려하고 생각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 자체가 중요할 뿐. 어찌 보면 오글거리기도 하고 뭐 다 알고 있는 거 아니야 하겠지만 사랑이라 불리는 많은 것들 중에 저 단순한 문장을 만족시키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어떤 사랑은 상대의 존재가 아니라 상대의 능력, 외모, 재력이 사랑의 조건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랑은 저 단순한 문장을 한없이 만족시킴에도 사랑으로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그저 같은 성별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한아와 경민의 사랑을 좀 본받을 필요가 있다. 이 소설에서 다른 하나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환경에 대한 내용이다. 한아는 지구와 환경을 사랑하는 환경주의자고 외계인 경민이 한아에게 반한 이유도 한아가 환경을 사랑하는 모습과 맞닿아 있다. 고래형 외계인들이 지구의 바다 오염에 힘들어하는 고래들을 도와주는 에피소드나 얼음별에 사는 무당벌레 모습을 한 외계인들이 점점 더워지는 별의 환경 때문에 멸종되어가는 모습, 지구를 동경한 한 부자 외계인이 지구를 본떠 만든 어딘가 부족한 제2의 지구, 광합성인들의 행성을 그 모습 그대로 보존시켜주겠다는 우주의 약속 등, 소설 속 우주의 모습들은 지구의 여러 단면들을 떠오르게 한다. 환경오염에 힘들어하는 고래들의 모습은 지구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무당벌레 외계인의 멸종은 지구 온난화와 멸종 위기종들의 모습을, 제2의 지구에서 고통받는 만들어진 생명체들의 일화는 인간이 만든 동물원의 모습을, 광합성인들의 행성을 보존시켜주겠다는 약속은 아마존 열대우림 보존에 관한 첨예한 대립을 생각나게 한다. 실제로 수많은 동물들이 멸종되었고 멸종 위기 상태에 있으며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은 엄청난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지어 동물원에서는 인간의 유희를 위해 백호나 백사자 같이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생겨나지 않는 동물들을 강제로 만들어내기도 하며 아마존의 보존과 개발에 관해서는 지금도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우주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지구의 모습을 보고 지구의 환경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한아의 말대로 지구에 인간이 너무 많은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본격 환경친화적 외계 로맨스 소설 되시겠다. 환경은 환경대로, 로맨스는 로맨스대로, 외계인과 우주라는 양념을 적절히 쳐서 비볐더니 이토록 다채로운 모습을 가진 소설이 나왔다. 삶이 힘든 사람에게, 다 때려치우고 싶은 사람에게 이 소설을 권하고 싶다. 환경 문제도, 사랑에 대한 고민도 너무나 다정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이 책은 충분히 당신의 삶을 두텁게 감싸 안아준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작가가 건네는 말이 들리는 듯 하다. 당신은, 지구에서 한아뿐이라고. 소설 속 한 문장 소리 없이, 먼 우주의 휘어진 빛들이 두 사람의 저녁에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