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로 붐비는 주말의 마켓. 시애틀은 여느 때처럼 비가 내리는 중이었다. ‘짜증나게 비 내린다’고 뭐라 하기 미안할 만큼 구슬프게 눈치 보며 내리는 비였다.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잔뜩 움츠려 울상이 된 해리포터의 도비처럼... 비는 사람들에게 혼 날까봐 조심조심 내리고 있었다.
부슬거리는 비를 피해 실내로 들어가니 사람들의 바짓가랑이마다 도비가 매달려 있었다. 금발머리 꼬마 애의 꽃무늬 스커트에도 빗물은 번져 있었고 물을 머금어도 자랄 줄 모르는 꽃은 다만 그 무늬로 시장통 한구석에 예쁘게 피어 있을 뿐이었다. 진짜로 예쁘게 피어있는 꽃과 푸짐하게 쌓아놓은 과일, 소리 없이 익어가는 라즈베리의 달콤한 향이 빗물에 젖어 눅눅했다. 한참을 말없이 걸어도 심심하지 않은 길. 눈의 일이 많아진 덕에 입을 열 시간이 없는 길이었다.

이곳의 뭔가를, 사서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머리 하나로는 지금 이 순간의 기억을 담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의 양을 나눠서 간직해줄 싸구려 기념품이라도 하나 필요했다. 양초, 꿀, 티셔츠, 열쇠고리... 한참을 둘러보다 깨달았다. 구경할 건 많은데 기념품으로 딱히 살 건 없다는 것. 같은 가격이면 한국에서 훨씬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다는 것과 추억하는 맛으로 사기엔 내 눈이 너무 높아졌다는 것...
시애틀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고 한다.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이라 빠릿빠릿하게 바꾸거나 ‘최첨단’을 좋아하지 않아서 늘 가던 식당에 가서 비슷한 메뉴를 주문하고 옷도 쉽게 유행 타지 않는 스타일로 입는, 취향에 있어서는 고집스러운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러한 성향이 목 좋은 자리에 내놓은 촌스러운 물건들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사실 ‘완고한 취향을 가졌다’는 건 에둘러 좋게 표현한 말이고 한국에서라면 게으르거나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90년대에 유행했던 일자바지를 입고 지하철에 오를 만큼 뚝심 있는 사람이 한국에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물론 세련된 스타일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법. 일자바지 대신 스키니로 갈아탄 스타일은 반가운 일이지만 추억의 장소가 깡그리 쇄신되어버리는 격변은 좀 버거운 일이다. 대학시절, 나의 아지트였던 고속터미널(시험기간에 밤샘 공부를 위해 24시 맥도날드에 진치고 있기도 했던)이 최근 들어 휘황찬란하게 바뀌어 버린 걸 보고 느낀 감정은 ‘상처’인가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무려 2년 만에 방문한 강남의 노른자위 땅은 예전의 반디앤 루이스(그 이전엔 영풍문고였다)와 맥도날드를 치워버리고 다른 점포들과 새로운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통곡하기엔 애매한 그리움이었지만 군말 없이 수긍하기엔 또 억울한 구석이 있는, 나의 20대를 빼앗겨 버린 기분이랄까... (이런 애매한 슬픔들은 모아 놨다가 나중에 슬픈 영화라도 보며 적당히 흘려줘야 하는 건지도)

적어도 시애틀 사람들은 무기력하게 추억을 빼앗기는 상처를 주기적으로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역시, 사고 싶은 물건은 없었다. 사는 건 포기하고 무언가를 먹어보기로 했다. 딱히 출출한 건 아닌데 유명한 맛집 근처에 온 타이밍에 맞춰 식사시간을 당기기로 한 것이다. 실은 스타벅스 1호점에 갔다가 기나긴 줄에 질려 바로 옆, 러시아 빵집의 보다 짧은 줄에 선 참이었다. 앞뒤로는 나와 비슷한 심정으로 줄을 갈아탄 손님들과 애초에 마음 먹고 찾아온 이들이 섞여 따로 직원을 둬서 관리 할 만큼의 줄을 이루고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은 미리 주문을 받는 것. 현명한 시스템이다. 말은 쉬워도 행동은 늘 더 어려운 법. 유리창 안으로 보이는 직원들은 고객들이 가볍게 내뱉은 주문을 빚어내느라 정신없었다. 반죽을 치대는 손길은 기계 같았고 무뚝뚝하게 잔돈을 거슬러 주는 표정은 일에 치여 사는 한국인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어디서나 쉴 틈 없는 노동은 사람의 미소를 빼앗는구나...
미소 대신 얻은 빵은 기대에 못 미쳤다. 손님은 손님대로 줄 서느라 힘들고 직원은 직원대로 만드느라 바빴던 빵은 짰다(는 평 밖에 내릴 수 없을 만큼 짰다). 꽤 진한 풍미를 미처 즐길 틈 없이 몰아친 짠맛이 모든 디테일을 잠식해버리는 맛. 삼분의 일쯤 먹다 가방 속에 처박힌 빵과 함께 걷다 보니 어느 생선가게 앞이다.

입구의 ‘PUBLIC MARKET CENTER’라고 써진 글씨 바로 밑의 가게였는데 물고기를 던지는 쇼를 벌이는 직원들을 구경꾼들이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꽤 유명한 가게를 찾아온 기분좋은 예감... 두 명의 청년은 각자의 가게에 서서 구령을 붙이며 물고기를 던지고 받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가게와 가게 사이의 거리는 물고기를 건성으로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가깝지는 않았다. 땅바닥에 물고기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긴장감과 공이라도 주고 받는 듯 여유로운 청년들의 표정이 대비되어 즐겁고 유쾌한 쇼가 벌어지고 있었다. 절도 있게 ‘하이’를 외치는 도쿄의 츠키지 시장에 서려있는 긴장감 같은 건 1도 없는 쇼였다.
공중에서 파닥거리는 물고기만큼이나 청년들의 표정은 싱싱했다. 같은 자리에서 매일 반복되는 작업을 하다보면 물릴 법도한데 ‘에휴 시간 됐네. 쇼타임이군.’하고 오른 기색은 없어 보였다. 누가 봐도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짓’은 아닌 듯, 꽤나 즐거워 보였다는 게 물고기가 공중을 오고가는 묘기보다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비는 여전히 추적거리며 불쌍한 도비 흉내를 내고 있었지만 신선한 생선은 파닥거리며 하늘을 날았고 아직도 못 둘러본 가게가 한참이었다. 입맛에 안 맞는 빵에다 싸구려 기념품까지, 마켓에 온 본래의 목적은 상실한 쇼핑이었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들먹일 법한 시간이었다. 딱히 살거리가 없어도 좋은 곳, 살아있음을 즐기기 좋은 놀이터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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