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j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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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꺼 찾기~~

내꺼라고 .
내꺼 놈이라고...
당당하게 말할수있는
진짜로 내꺼놈아~ㅋㅋ 마지막을 함께할
내 진짜 꺼놈아 ~ㅎㅎ 어서와요 ㅋㅋ 어능 82 오더래요 보고싶어요 ㅋㅋ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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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뜬늠인데 안보일까요? 불 월화수목금토일 함께하실 그늠 후딱 만나시길......^^
ㅋㅋ감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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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의 새끼 훈련
미국 콜로라도 협곡에 사는 독수리들은 아이언 우드라는 가시나무의 나뭇가지로 둥지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위에 깃털을 겹겹이 쌓아 포근하게 만든 후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그러다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어미 독수리는 둥지 속 깃털을 모두 버립니다. ​ 텅 빈 둥지 속에서 가시에 찔리면 새끼들은 가시를 피해 가장자리로 가는데 이때, 어미 독수리는 새끼들을 쪼아 둥지 밖으로 떨어지게 합니다. ​ 그러면 아직 나는 법을 모르는 독수리 새끼는 어설픈 날갯짓을 계속하지만, 결국은 아래로 곤두박질을 치게 됩니다. ​ 새끼 독수리들이 바닥에 떨어지려는 찰나, 공중을 선회하던 어미 독수리가 큰 날개를 펴서 땅에 닿기 직전의 새끼를 자신의 날개로 받아냅니다. ​ 어미 독수리는 그런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에 새끼 독수리는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법을 배운다고 합니다. 바닥으로 추락하던 새끼 독수리가 스스로 나는 법을 터득하며 성장한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적용됩니다. ​ 삶에서도 가시라는 이름의 시련이 필요한데 이때, 시련에 대해서 취해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 첫째, 시련은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더욱 성장할 기회이자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돋움입니다. ​ 둘째, 시련을 담대하게 맞설 때 이미 성장은 시작된 것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시련이란 꼭 방해 거리만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우리의 발아래 놓으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 – C.F 블렌차드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일기시대> 문보영
<일기시대> / 문보영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일기시대>를 읽으면서 확실히 깨달았는데 나는 글 같지 않은 글(?)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일기시대> 속에는 문보영 시인의 일기로 이뤄진 글들이 들어있는데 일반적인 일기라고 보기에는 조금 특이하다. 성인의 일기라고 하면 보통 다른 요소가 딱히 없는 줄글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일기시대> 속 일기에는 뜬금없이 그림이 등장하기도 하고 사진이 나타나기도 하며 시나 짧은 소설 비슷한 것부터 굳이 각주가 없어도 될 것 같은 내용에 굳이 상세하게 달리는 각주까지 온갖 요소들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일기시대> 속 글들은 소설이기도, 시이기도, 에세이이기도, 논픽션이기도, 기행문이기도, 시나리오나 희곡이기도 하다.(심지어 한 글 안에서도 장르가 계속 바뀐다.) 나는 한 꼭지를 읽고 다음 글로 넘어갈 때마다 이번에는 도대체 뭐가 나올까 하는 마음으로 두근거리며 책을 읽었다. 문보영 시인은 이렇게 썼다. '그렇게 아무거나 쓰다 보면 어느 날 그 글은 소설이 되기도, 시가 되기도 한다. 일기는 무엇이든 될 수 있기에.'(p.34) 자신의 말처럼 문보영 시인은 정직한 일기를, 즉 아무거나 썼고 나는 <일기시대>를 다 읽고 나서야 내가 글 같지 않은 글,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글, 아무거나 쓴 글에 끌린다는 걸 깨달았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처럼 넘쳐나는 각주와 참고문헌들로 인해 소설보다는 논문에 가까운 소설이라던가, 정영문의 장편소설 <어떤 작위의 세계>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들로 이루어져 도무지 서사를 따라갈 수 없음에도(사실 서사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마치 산문시처럼 이어지는 문장의 흐름과 리듬이 좋아 계속 읽게 되는 그런 글들 말이다. 어쩌면 이것들도 일기의 일종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좋아하는 글들은 일기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그 지점에서 개인적으로 반성하게 된 부분이 있는데 지금까지 100권이 넘는 책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매번 비슷한 형식으로 글을 썼다. 조금 더 아무거나 써야겠다. 책에 대한 일기라고 생각하면 아무거나 쓸 수 있지 않을까?) <일기시대> 속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글은 <내 방에 물건 두고 가지 마>이다. 그중에서도 뒷부분에 나오는 눈물 모양 텐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한 예술가가 나무에 매달린 눈물 모양 텐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눈물 모양 텐트는 단순한 장식품이나 예술품이 아니어서 실제로 사람들이 묵을 수 있다. 그 안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여가를 즐길 수 있으며 들어간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텐트의 모양은 수시로 바뀐다. 나는 그 일련의 과정이 어떤 거대한 슬픔을 겪은 이들의 생활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삶을 살아가야 하는 그들을 거대한 슬픔은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눈물 모양 텐트 속에서 생활한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시간이 흐른 뒤, 텐트 바깥의 우리가 보기에는 그들이 멀쩡해진 것 같고 모두 훌훌 털어버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아직 그들은 눈물 모양 텐트 속에 갇혀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다른 이와 함께 있을 때면 텐트의 모양을 바꾸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고, 우리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위로를 받았고, 우리의 슬픔을 받아주던 착한 사람들이 지쳐가기 시작했고, 우리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야만 한다고. 아직 눈물 모양 텐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그들은 텐트 바깥의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슬픔을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서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 텐트의 모양을 바꾼다. 그렇게 우리는 그들이 아직 눈물 모양 텐트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치고 만다. 그들은 사람들이 돌아가고 밤이 되어 혼자 남으면 너무나 지쳐 모든 움직임을 멈출 것이고 텐트는 다시 눈물 모양으로 돌아올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할 뿐. 커다란 슬픔을 겪은 이가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면 그가 텐트의 모양을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제 책 리뷰(라고 쓰고 책일기라고 읽는다.)에 조금 더 아무거나 쓰기로 했으니 아무거나 이어서 써 보자면 <일기시대>속에서 몇몇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맞춤법이 틀린 것 같다거나 문장이 어색한 부분들이었는데 거기에는 세 가지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첫째, 내 맞춤법 실력이 미천하여 옳은 맞춤법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했다. 둘째, 작가나 편집자가 특별한 의도로 남긴 것이다. 셋째, 제대로 수정되지 못한 맞춤법이나 오탈자이다. 어떤 경우든 간에 이점이 있는데 첫 번째 경우라면 옳은 맞춤법을 알게 되었으므로 내 맞춤법 실력이 향상되었다고 볼 수 있고 두 번째 경우라면 작가와 편집자의 특별한 의도를 읽어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세 번째 경우에 꽤나 큰 기대를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산 책이 1판 1쇄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어색하게 느낀 부분들이 제대로 수정되지 않은 맞춤법이나 오탈자라면 당연히 2쇄부터는 수정되어 나올 것이고 이 잘못된 맞춤법과 오탈자는 오로지 내가 산 1판 1쇄에만 남아있게 될 것이다. 만약 문보영 시인이 시간이 지나며 좋은 작품을 쏟아내어 노벨 문학상을 타게 된다면? 그때는 <일기시대> 1판 1쇄의 가치가 미친 듯이 뛰어올라 한 권에 수백, 수천만 원을 호가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1판 1쇄에만 남아 있는 잘못된 맞춤법과 오탈자가 진품을 판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아, 이건 진품이 아니군요. 보십시오, 여기 '그래서'라는 단어에 오탈자가 없지 않습니까? 진품은 서 자가 빠져 있습니다. 아쉽지만 가품이네요.) 그 날을 기다리며 <일기시대>는 지퍼백에 넣어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하겠다.(존버는 승리한다!) 이번에 책을 사면서 굿즈인 노트도 함께 받았는데 그 노트에는 <일기시대> 속 문장들이 하나씩 적혀있고 그 밑을 독자가 직접 채울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참에 그 노트를 가지고 일기를 좀 써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 하루 만에 방학 동안의 밀린 일기를 전부 썼던 때 외에는 제대로 일기를 써 본 적이 없다.(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방학 숙제를 빌미로 전국의 초등학생들에게 일기 쓰기를 강요하지 않았다면 현재 일기를 쓰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일기시대>도 읽었고 초등학교 때처럼 억지로 써야 되는 것도 아니니 굿즈 노트 속에 일기를 쓴다면 굉장히 아무거나 쓸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면 내가 쓰는 책 리뷰도 조금 더 아무거나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라면 일기도 쓸만하지 않을까?(일기를 쓰기로 결심하면서 하나 다짐한 게 있다. '참 재미있었다'로 끝내지 않기.) <일기시대> 속에서 인상 깊었던 글 세 꼭지를 소개하며 마치겠다. 가장 웃겼던 글은 <선 넘기는 기본 메뉴, 박기는 사이드 메뉴>. 가장 슬펐던 글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1, 2화. 가장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든 글은 <내 방에 물건 두고 가지 마>. 책 속 한 문장 그렇게 '눈치'라는 것은 저절로 생겨난다. 어른이 된 황구는 생각하곤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눈치가 없는 사람들은 눈치가 없어도 공동체에서 내쳐질 위험이 없었기 때문에 눈치를 배울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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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 점심을 마치고, 사무실 근처의 미리 봐둔 동네 스포츠센터를 찾아가 봤다. 등록할만한 곳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또 인터넷에 정보가 그다지 없기도 해서, 문의도 할 겸 산책 삼아 가보았다. 몰랐는데, 초등학교와 연결된 곳이었다. 초등학교 정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외부인이 이렇게 들어가도 되나 싶어 괜히 조금 망설이다 들어갔다. 나쁜 뉴스를 통해 학습된 이상한 자격지심이었다. 나는 누군가에 어쩌면 위협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성인 남자다. 내가 유괴범으로 보이면 어쩌지? 하긴 유괴범이 이렇게 허술할 리가. 헬스보다는 수영장이 특화된 곳이어서 규모가 클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지하에 있는 곳이었는데, 가보니 카운터라고 할 만한 곳에 젊은여성 분이 엎드려 있었다. 자고 있는 건지, 내가 들어가니 당황하며 꾸벅 인사해왔다. 그러면서 자신의 앞머리를 계속해서 만져댔다. 나는 이것저것 간단히 물어본 뒤 안을 좀 살펴봐도 되겠냐고 했다. 그러시라고 해서, 헬스장을 둘러보는데 규모가 문제가 아니었다. 관리가 너무 안 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기구들은 거의 모두 녹이 슬었고, 러닝머신은 작동이 되는 것이 맞기는 한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석 달 15만 원이라고 해서 저렴하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둘러보고 나니 10만 원이라고 해도 고민이 될 지경이었다. 나는 혹시 회원이 있기는 하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사실은 이곳이 수영장에 집중돼있는 곳이라고 했다. 질문에 충분한 대답은 된 것 같았다. 나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그곳을 나왔다. 지금 하고 있는 피티를 연장을 하건 안 하건 나중에 혼자서 운동할 곳은 더 찾아봐야겠다.    오늘은 예고대로 피티샵이 문을 닫는 날이어서, 모처럼 퇴근하고 영화를 보았다. '서복' 그리고 '내일의 기억'. 그중 후자를 골랐다. 코로나가 잠잠해졌다기보다는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서인지 한국 영화들이 서로 눈치 보며 슬슬 개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서복'은 조금 기대했던 작품이기도 한데, '아주 무해하다'라는 평을 어딘가에서 읽고, 관람 의지가 사라졌다. 두 남자 배우의 조합이 흥미로워 보이긴 했지만, 요즘 거의 절정에 이른 그들의 이미지와 인기를 감안할 때 아무래도 그들이 정말로 무해한 시나리오를 골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도 전에 판단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작품은 나중에라도 보게 되겠지 싶었다. 심지어 감독 이름을 보니 전작들을 흥미롭게 봤던 이다. 무해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기만 한 작품들은 솔직히 크게 끌리지 않는다. 무해한 작품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무해하고 올바른 것에만 기를 쓰고 치중하는 작품은 신파만큼이나 끔찍하다. '내일의 기억'도 솔직히 그다지 기대가 되지는 않았지만, 미스터리라고 해서 우선 골랐다. 어차피 오늘 극장 방문은 영화관람보다는 모처럼 운동이 아닌 다른 것을 하는 날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연예인의 이미지란 과연 뭘까. 특히 배우에게는. 그것은 사실 꽤 중요한 것 같다. 어쩌면, 작가로 치면 기본적인 문장력 같은 거라고 봐도 무방하려나. 적절한 비유 같지는 않지만, 그렇게 당연하고 중요하다는 거다. 배우의 이미지가 심각할 정도로 훼손돼있다면, 그 배우가 찍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몰입도가 떨어진다. 배우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작품은 작품으로 봐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인식이 그렇게 나약하다. 영화 초반 배우 서예지의 연기들이 다소 가식적으로 느껴져서 힘들었다. 그러나 종내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예쁜 사람이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본인의 커리어를 일순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언행들을 해온 걸까. 그녀가 밉다기보다는 안타까웠다. 영화는 예상대로 그리 대단한 작품은 아니었다. 늦은 귀가 후에는 빨래를 돌리고,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닭가슴살을 먹었다. 새로 주문한 닭가슴살도 왔는데, 모두 가공이 덜한 것으로 주문했다. 최대한 닭가슴살답지 않게 한답시고 인위적으로 가공한 닭가슴살은 요즘 사실 먹기 괴로운 수준을 넘어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역시 본연의 것이 가장 낫다. 인위적인 것은 금방 질린다.
[아들, 딸에게 들려 주는 좋은 말씀]14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좋은말씀 #명언 #괴테 #터박이말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아들, 딸에게 들려 주는 좋은 말씀]14- 삶은 이 두 가지 뿐이다. 오늘 들려 줄 좋은 말씀은 "삶은 이 두 가지 뿐이다. 하고 싶으나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으나 하지 않는 것이다."야. 이 말씀은 앞서 알려 준 좋은 말씀과 이어지는 말인데 너희들도 잘 아는 '괴테' 님이 남기신 말이라고 해. 사람들은 흔히 하고 싶으나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돈'을 가장 많이 떠올리지 싶어. 왜냐하면 돈이 없어서 배우고 싶어도 못 배운 사람이 많고, 어디를 가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못 간 사람도 많을 테니 말이야.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것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생각해 보라고 하면 '공부', '운동'과 같은 말이 떠오르지 싶은데 너희들은 어떠니? 살아가면서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것에 마음을 더 쓰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 왜냐하면 먼저 살아 보신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은 것들은 나이를 먹은 다음 뒤늦게 뉘우치게 된다고들 하시기 때문이야. 지난 이레 들려 준 말씀에도 나왔던 슬픈 일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면서 말이야. 오늘 아들과 딸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는 그리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거라 믿어. 할 수 있는 일들을 미루지 말고 하나씩 꾀해 봤으면 좋겠어. 그 어떤 일도 하고 안 하고를 골라 잡는 것이 나에게 달렸다는 것도 잊지 말았으면 해. 이렇게 만나는 좋은 말씀들을 가슴에 새겨 삶의 거울로 삼아 오늘도 멋진 하루 만들어 가길 바랄게. 4354해 무지개달 스무하루 삿날(2021년 4월 21일 수요일) 바람 바람
할아버지의 검은 봉지
저는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오래전 저희 가족은 한 아파트로 이사 오게 되었고 이사 기념으로 만든 떡을 이웃 주민과 나눴습니다. 이웃 중 할아버지 한 분이 유독 고마워하시며 현관문 손잡이에 작은 호박 두 덩이와 호박잎이 담긴 검은 봉지로 답례를 하셨습니다. ​ 이후에도 손수 만든 음식을 가지고 찾아가면 얼마 후 저희 집 현관에는 검은 봉지가 걸려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봉지에는 김부각, 깻잎과 콩잎 등 소박한 답례와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고 그렇게 저희 가족은 노부부와 소소한 인연으로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위층에서 ‘쿵’ 소리가 들렸고 평소 거동이 불편하던 할머니가 생각나서 급한 마음에 올라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인기척이 없었고 불안해진 저는 곧장 119에 신고했습니다. ​ 구급대원과 함께 문을 뜯고 들어간 집에는 할머니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다행히 할머니는 빠른 발견으로 위급한 상황은 넘겼고 뒤늦게 병원으로 달려온 할아버지는 저의 두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계속하셨습니다. ​ 그리곤 그날부터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마다 저희 집 차를 몰래 세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라 차를 숨기기도 했지만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찾아내 깨끗하게 세차를 해 놓으셨습니다. ​ 저희 남편까지 나서 할아버지를 겨우 설득해 세차를 멈추게 했지만, 대신 문고리엔 검은 봉지가 더 자주 걸렸습니다. ​ 그리고 얼마 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고 할아버지는 자식과 함께 지내기 위해 이사를 하게 되셨는데 이사하는 날, 할아버지는 저희 집에 찾아와서는 옥가락지 하나와 은가락지 하나를 내밀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아들만 둘인데 막내딸 생긴 기분이어서 좋았어. 그리고 이삿짐 정리를 하다 보니 이거를 발견했는데 아마도 먼저 간 그 사람이 막내딸에게 주라고 남겨둔 것 같아서 들고 내려왔어.” ​ 저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주신 가락지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 제법 긴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문득문득 할아버지와 검은 봉지가 떠오릅니다. 오늘 사연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입니다. 매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입니다. 그건 아마도 우리 주변에는 존중과 배려를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 쑥스러워서, 바빠서 등 다양한 이유로 덮어두었던 마음을 작게나마 표현해 보세요. 세상은 따뜻함으로 물들 것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몸도 내 몸같이 소중히 여겨라. 그리고 네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일을 네가 먼저 그에게 베풀어라. – 공자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정 #이웃 #관심 #이웃사촌 #인생 #삶
나이지리아 식량난을 해결한 한국인
1971년 나이지리아는 주식인 카사바에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퍼져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식량이 씨가 마르자 기아 문제도 심각했다. 나이지리아는 1967년부터 1970년까지의 ‘비아프라 내전’이 끝난 직후였다. 전쟁 후 50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했고 농토도 황폐해져 기근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1971년, 서울대 농과대학 조교수로 일하던 한상기 박사는 농업 연구로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싶다는 생각에 국제열대농학연구소(IITA)에 지원서를 넣었고 연구소 부소장의 합격 편지를 받았다. 같은 해 영국 케임브릿지 대학에서 초청장까지 왔으나, 그는 선진국보다 열악한 제3국을 택했다.  이곳에서 한상기 박사가 맡은 임무는 카사바 개량이었다. 카사바는 나이지리아 주 식량이었지만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로 씨가 마르고 있었다. 카사바를 생전 처음 본 한상기 박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몰랐다. 같은 뿌리 식물인 토란과 카사바를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나이지리아 전역에 있는 카사바 종자는 물론 원산지인 브라질에서도 우수한 종자를 수집했다. 그러던 중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항체를 가진 작물을 우연히 발견했다. 한 박사는 그 작물과 브라질에서 가져온 카사바 종을 교배하여 수많은 개량종을 만들어냈다. 무수한 실패를 맛봤지만 IITA는 미국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자금만큼은 무제한이었다. 5년의 긴 노력 끝에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에 항체를 가진 동시에 수확량도 좋은 '수퍼 카사바'종을 탄생 시켰다. 한 박사는 직접 나이지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농민들에게 종자를 나눠주었다. 돈을 받고 판 것도 아니고, 공짜로 뿌렸다. 지나가다 병든 밭이 보이면 내려서 종자를 심어줬고, 마을 장터에 가서 아낙네들에게 종자를 한다발 씩 안겨주었다. 한 박사의 살신성인을 본 석유 재벌들도 사람을 보내 슈퍼 카사바 품종을 더 많은 곳에 보급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 노력 덕분에 슈퍼카사바는 나이지리아에 단 몇년만에 보급됐다. 카사바를 주식으로 삼는 아프리카 41개 국가들에도 보급돼있다. 이 슈퍼 카사바종은 지금까지도 내병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또 이 밖에도 한 박사 개량한 고구마 품종은 66개국에서, 얌은 21개국, 식용 바나나는 8개 국가에서 재배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한 박사를 추장으로 추대하면서 감사함을 표했다. 1983년 나이지리아 요루바족 이키레 마을에서는 한상기 박사를 추장으로 추대했다. 아프리카에서 추장은 사람뿐 아니라 산천초목을 다스리는 지위에 해당한다. 그의 칭호는 '세리키 아그베(Seriki Agbe)', 현지어로 '농민의 왕'이라는 뜻이다. 한상기 박사는 1994년에 IITA에서 은퇴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리고 남은 생애를 자신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생한 아내의 병간호를 하며 보냈다. 한 박사의 아내인 김정자 씨는 알츠하이머와 합병증으로 2018년 세상을 떠났다. 한상기 박사는 50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아프리카와 영국을 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고 하더라도 망설임 없이 아프리카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후회는 없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도 다시 갈 겁니다. 서산대사의 ‘일왕불퇴’(一往不退·한번 갔으면 물러서지 말라)와 조주 스님의 ‘일진불퇴’(一進不退·한번 나갔으면 돌아오지 말라)를 평생 좌우명으로 살아왔거든요.' (출처)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