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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방산업체가 만든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록히드 마틴'은 1912년 창사 이래 지금까지 미국을 대표하는 우주항공 · 방위산업체로 존재하고 있다. 최신예 전투기부터 헬리콥터, 전자전 장비, 미사일, 지상 차량, 로켓, 위성, 원자력 제어 시스템까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그런데 여기 눈에 띄는 제품 하나가 있다. 바로 <Prepar3D>. 록히드 마틴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시뮬레이션 플랫폼이다. 전투기를 만드는 회사의 게임은 어떤 모습일까? 록히드 마틴으로 떠난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한 번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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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연봉 2800만원으로 5년만에 1억 모았습니다. 우연히 알게된 재무 설계를 받아 1억을 모았는데요. 돈이 잘 안모이시는 분들은 제 블로그에 인증샷과 후기 써놨으니 들어와보세요 ㅎㅎ https://goo.gl/TU7M3V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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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스위치 신형 모델 출시 안한다' 공식 입장 남겼다
블룸버그 보도에 대해 반박하며 후속 모델 얘기도 밝혀 닌텐도가 스위치 신형 모델은 '출시하지 않는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닌텐도는 최근 발표한 닌텐도 스위치 OLED 모델에 대한 일부 보도에 대해 반박 입장을 밝혔다. 이는 15일 블룸버그가 작성한 OLED 단가에 대한 것으로, 블룸버그는 OLED 모델에 탑재되는 부품 가격에 비해 판매가가 높아지는 만큼 만큼 닌텐도의 수익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당시 닌텐도는 블룸버그의 보도에 별도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OLED 패널 교체 외에 성능적인 변화점이 없다는 것이 부정적으로 작용하자  보도를 부인하는 내용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을 뿐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이와 함께 닌텐도는 스위치 OLED 모델을 출시하는 것 외에 새로운 모델은 '계획하지 않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스위치 유저들에게는 아쉬운 소식이다. 닌텐도는 블룸버그의 보도에 반박하면서 동시에 신형 스위치 모델의 계획도 없음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어떻게 보면 닌텐도 스위치 OLED의 성능 유지는 예견된 부분으로도 보여진다.  현재 닌텐도 스위치는 2015년 당시 엔비디아와 합작해 테그라 X1 프로세서를 탑재하고 있다. 이는 OLED 모델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당시 테그라 X2를 탑재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발열, 전력 소모가 심하다고 여겨 적용하지 않았다. 물론 후속 기기에 향상된 프로세서를 넣는 것도 고려될 수 있지만, 휴대기기 측면에서 배터리 소모는 적극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기에 닌텐도가 신형 프로세서 도입을 부정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엔비디아가 커스텀 프로세서를 잘 만들지 않는다는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성능에 대한 불만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다행히(?) 닌텐도 스위치의 판매량은 꾸준히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올해 3월까지 닌텐도 스위치 판매량은 2,883만대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다양한 국내외 인디게임의 입점 사례가 증가한 부분도 있고 <젤다의 전설>, <슈퍼 마리오>, <동물의 숲> 같은 독점 IP가 즐비해 확실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여전히 성능 대비 고퀄리티 게임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점도 있다. 강력한 자체 킬러 IP 다수 보유. 이는 닌텐도 스위치에게 엄청난 강점이다. 따라서 닌텐도 입장에서는 현재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OLED 패널과 후면 스탠드 교체, LAN 포트 탑재 등 성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정도로 변화를 줘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닌텐도 스위치 OLED 모델은 국내에도 10월 8일 동시 출시한다. 가격은 415,000원으로 기존 360,000원에서 약 5만 원 가량 상승했다.
향로, 워모그, 룬글... 협곡 흔든 '최악의 롤 아이템'을 돌아보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 한 획을 그은 아이템들 '메타'는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현재 가장 효과적인 전략을 뜻하는 메타는 패치에 의해 계속해서 변하고 진화하는 만큼, 살아있는 존재로 꼽힙니다. 패치에 따른 아이템 조정에 의해 게임 자체가 크게 변하는 상황도 펼쳐지곤 하죠. 그만큼, 아이템에 관한 이야깃거리도 풍성합니다. 가난한 서포터들의 필수템이었던 '황금의 심장'부터 OP 챔피언을 다수 양산한 다양한 정글 아이템은 협곡에 한 획을 그었던 '최악의 아이템'으로 꼽히는데요, 오늘은 <리그 오브 레전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갑툭튀 아이템'들을 돌아보려 합니다. 그때 그 시절 추억 속으로 함께 떠나보시죠. / 서준호 필자(index), 편집=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 어째서 눈물이... 짠 내 가득했던 그때 그 시절 '서포터' 아이템 과거 <리그 오브 레전드>는 솔로랭크 점수에 따라 픽 순서가 정해졌습니다. 큰 인기가 없었던 서포터는 당연히 5픽 유저의 몫이었죠. 당시 서포터의 역할은 철저히 '시야 장악'에 쏠려있었습니다. 아이템 트리 역시 이에 필요한 것들과 시간이 흐르면 골드를 지급하는 '돈템'으로 고정되어있었죠. 서포터 전용 아이템을 통해 편하게 골드를 수급할 수 있는 지금과 달리, 과거 서포터는 너무나 가난한 포지션이었습니다.  덕분에 서포터는 골드를 벌기 위해 10초당 5골드를 추가 지급하는 '현자의 돌', '황금의 심장' 등을 무조건 사야 했습니다. 상위 아이템인 '강철의 솔라리 팬던트'를 올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힘들게 번 돈을 시야 장악에 쏟곤 했죠. 설치할 수 있는 투명 와드 개수 제한이 없었던 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덕분에 유저들은 거금 400원을 지출해가며 예언자의 영약을 별도로 구매해야 했습니다. 반강제로 서포터를 플레이해야 하는 것도 서러운 마당에 아이템에도 자유가 없었던 겁니다.  하오골, 현자의 돌, 와드는 그 시절 서포터의 눈물을 상징하는 아이템이었다 이러한 메타는 투명 와드를 자동으로 추가해주는 시야석과 한 번에 설치할 수 있는 와드의 개수가 세 개로 제한되면서 사라졌습니다. 예언자의 영약 역시 자취를 감췄죠. 또한, 서포터 전용 아이템까지 생기면서 '와드장이'로 폄하됐던 서포터의 인권은 말 그대로 '떡상'하게 됩니다. 시야를 위한 도구가 아닌 게임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셈입니다. 서포터 아이템은 높은 효율성으로 인해 '단식'이라는 또 다른 메타를 만들기도 했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 끔찍한 괴물을 양산한 '정글 아이템' (feat 이즈리얼) 라이엇 게임즈는 서포터 못지않게 정글에도 많은 관심을 쏟았는데요, 그 과정에서 등장한 몇몇 정글 아이템은 끔찍한 괴물을 양산하며 메타를 지배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야생의 섬광'입니다. 이 아이템의 가장 큰 문제는 정글 몬스터를 처치하면 섬광 스택이 쌓여 영구적으로 대미지와 생명력 흡수가 올라간다는 점이었습니다. 즉, 정글러가 라인에 아예 개입하지 않고 정글링만 해도 게임을 지배할 수 있는 구도가 펼쳐진 거죠.  상대 팀 입장에서는 아무리 차이를 벌려놔도 이들을 막을 수 없으니 막막하고, 같은 팀은 게임 내내 고통만 받다가 정글러의 활약을 지켜봐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결국 야생의 섬광은 지속적인 너프 끝에 아예 삭제되면서 짧은 전성기를 끝내게 됩니다. 야생의 섬광은 리그 오브 레전드를 'RPG'로 만든 장본인이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도마뱀 장로의 영혼'과 '마법 부여-룬 글레이브' 역시 협곡에 큰 영향을 미친 정글 아이템으로 꼽힙니다.  도마뱀 장로의 영혼은 2,000원이라는 가격에 공격력, 쿨타임 감소, 레드 버프 효과까지 부여하는 가성비 끝판왕 아이템이었기에 많은 물리 대미지 정글러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즈리얼을 비롯한 라이너들은 물론, 마법 대미지로 구성된 이블린까지 이 아이템을 선택할 정도였죠.  룬 글레이브는 처음엔 천대받던 아이템이었지만, 이즈리얼로 인해 상황이 급변한 케이스에 해당합니다. 물리 대미지를 마법 대미지로 바꾸는 효과를 가지고 있을뿐더러 폭발의 강타를 통해 라인 클리어까지 빠르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결국, 이 아이템은 '룬글 이즈'라 불리는 희대의 OP 챔피언을 만들었고, 이에 자극받은 다른 챔피언들까지 앞다투어 룬글레이브를 활용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페이커 역시 룬글 이즈를 활용하기도 했다 (출처: OGN) # 워모그 오브 레전드의 시작은 '칠흑의 양날 도끼'였다 <리그 오브 레전드> 역사상 처음으로 '메타'를 만든 아이템은 워모그의 갑옷입니다. 워모그 오브 레전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사실 이러한 워모그 열풍은 '칠흑의 양날 도끼'로 인해 시작됐습니다. 당시 칠흑의 양날 도끼는 야만의 몽둥이의 상위 아이템이었는데요, 모든 물리 피해에 방어력 감소가 적용되며 사기 아이템으로 떠올랐습니다. 자연스레 방어력이라는 스탯의 가치도 크게 떨어졌죠. 이에 유저들은 방어력 대신 저렴한 가격에 많은 체력과 체력 재생력을 제공하는 워모그의 갑옷에 눈길을 돌렸고, 그렇게 워모그 오브 레전드가 시작됐습니다. 이에 맞춰 체력비례 대미지나 고정 피해를 입히는 올라프, 초가스, 쉔이 떠오르기 시작했죠. 원거리 딜러와 같은 대미지 역할군마저 워모그를 구매할 정도였습니다.  여담으로 칠흑의 양날 도끼와 워모그의 갑옷으로 인해 설 자리를 잃었던 마법 대미지 딜러들은 방어력과 주문력을 올려주는 추적자의 팔목 보호대와 체력 비례 대미지를 입히는 리안드리의 고통이 상향됨에 따라 가까스로 입지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아이템은 한때 게임을 '워모그 오브 레전드'로 만들기도 했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 현자의 돌부터 향로, 신파자... 'OP 아이템'의 신화는 계속된다 지휘관의 깃발은 많은 이로부터 '악몽' 같았던 아이템으로 꼽힙니다. 이 아이템을 미니언에 사용할 경우, 챔피언에게 받는 피해가 70%나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즉, 아이템 하나로 또 하나의 챔피언을 만들 수 있었던 거죠. 덕분에 당시 <리그 오브 레전드>는 유리한 팀이 바론을 챙긴 뒤 미니언을 강화하면 어떠한 변수도 없이 끝나는 '단순한' 게임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불타는 향로 또한 지휘관의 깃발 못지않게 협곡을 지배했던 아이템입니다. 당시 라이엇 게임즈는 평타 기반 원거리 딜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불타는 향로를 만들었고, 지속적인 버프를 단행합니다. 보호막을 받은 아군의 평타에 체력 회복 효과를 부여했던 향로는 게임의 밸런스를 크게 흔들었고, 원거리 딜러와 서포터를 제외한 모든 라인을 들러리로 만들고 말았죠.  당시 게임은 '어느 팀 원딜이 향로의 가호를 잘 받는지만 보면 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단순하게 흘러갔습니다. 이처럼 지휘관의 깃발과 불타는 향로는 단순히 메타를 지배한 걸 넘어, 게임의 다양성까지 줄여버렸던 최악의 아이템으로 꼽히곤 합니다. 관련 기사: 와드장이라 욕하지 마라! '언성 히어로' 서포터 변천사 이 아이템들은 많은 유저로부터 '최악의 아이템'으로 꼽힌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오늘도 협곡에는 다양한 아이템이 끝없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마법사의 최후'를 통해 티어를 올린 코그모와 애쉬가 대표적인 예겠죠. 프리시즌을 지배한 '태양 불꽃 방패'나 이즈리얼을 사기로 만들어준 '신성한 파괴자', 녹턴을 3라인 1티어로 만든 '발걸음 분쇄기' 역시 메타를 흔든 아이템으로 꼽기 충분합니다.  과연 다음엔 어떤 아이템이 메타를 지배할까요? 뭐가 됐건 간에 한 명의 <리그 오브 레전드> 유저로써 그 아이템이 너무 OP가 되지 않기를, 또한 게임에 대한 재미를 지나치게 떨어뜨리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콜 오브 시즈? 유비소프트 새로운 '톰 클랜시' 게임 공개한다
'콜 오브 듀티'와 흡사한 FPS로 보여. 20일 새벽 3시 공개 유비소프트가 새로운 '톰 클랜시'  게임을 공개한다. 한국 시각으로 7월 20일 새벽 3시. 아직 공식적인 정보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해당 게임은 지난달 SNS를 통해 정보가 유출된 코드네임 <배틀캣>(가제)으로 보인다. 당시 유출된 정보에 따르면 <배틀캣>은 PC와 콘솔을 플랫폼으로 한 1인칭 FPS 게임이며, 유비소프트 '톰 클랜시' 세계관에 등장한 캐릭터가 총집합할 예정이었다. 또한, 각각의 캐릭터마다 고유한 스킬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정식 공개 전 해외 웹진(링크)과 인플루언서(링크)를 통해 짧은 게임플레이가 사전 공개됐다. 게임플레이 동영상을 보면 새로운 '톰 클랜시' 게임은 <콜 오브 듀티>와 유사한 런앤건 FPS로 파악되며, 다수의 상대를 처치해 발동시킬 수 있는 '킬 스트릭'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전 유출된 내용과 같이 '톰 클랜시' 세계관 캐릭터가 가진 특수 능력도 확인된다. 스킬 아이콘을 보면 <스플린터 셀>, <더 디비전> 등 다양한 게임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정보는 유비소프트 공식 채널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출처 : 트위터) 유비소프트는 밀리터리 소설가 '톰 클랜시'가 공동 창립한 개발사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를 2000년대 초 인수하고 '톰 클랜시' 소설의 세계관을 활용한 게임을 꾸준히 제작해 왔다. 2008년에는 브랜드 라이센스를 정식 구매했으며, 지금까지 <더 디비전>, <스플린터 셀>, <고스트 리콘>, <레인보우 식스> 등 여러 '톰 클랜시' 프랜차이즈 게임을 출시해 왔다.
'청구액 최소 11억' 엔씨, 리니지M 소송에 김앤장 선임
본격적인 법정 다툼 열리나... 업계는 11억 이상도 매겨질 수 있다고 전망 엔씨소프트가 웹젠을 상대로 낸 <리니지M> 저작권 소송 청구액이 11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씨는 법무법인 김앤장을 선임, 법정 분쟁에 대한 준비에 나섰다. 정진수 부사장이 김앤장 출신인 만큼 자연스러운 결정으로 보여진다. 웹젠도 법무법인 광장을 선임했다. 소송건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61부(부장판사 권오석)에 배정됐다. 엔씨는 6월 21일 웹젠을 대상으로 저작권 소송을 제기했다. 웹젠의 <R2M>에서 <리니지M>을 모방한 듯한 콘텐츠와 시스템을 확인했고, 사내외 전문가와 깊은 논의 후 IP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이유. 엔씨는 사내외 전문가와 함께 사안을 파악하기 위한 충분한 검토를 거친 후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웹젠은 이에 대해 "보는 시각에 따라 이견이 있는 것 같다"며 유감의 뜻을 밝히며 적법 절차에 맞게 원만한 합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업계는 최초 청구액이 11억 원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법원 판단에 따라 일부 사실로 확인될 경우 11억 원 이상의 청구액이 매겨질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소송과 별개로 양사는 꾸준히 원만한 합의를 위해 논의 중이며 "추가로 밝힐 수 있는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양사의 첫 공판일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삼국지를 보다 쉽고 재미지게 접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팁들을 준비해 봤다. 삼국지를 아직 읽지 않았다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고 이미 읽어본 분들 역시 한결 넓게 바라볼 수 있게끔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Start!! 1. 무기. 삼국지연의 속 장수들은 저마다의 무기들을 쓰고 이 무기들은 곧 그 유져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분신의 역할을 하기도 하며, 정말 다양한 무기들이 등장한다. 관우의 청룡언월도, 장비의 장팔사모, 손견의 고정도, 전위의 쌍철극, 여포의 방천화극, 정보의 철등사모, 기령의 삼첨도, 서황의 개산대부, 황개의 철편, 유비의 자웅일대검 등등.. 열거하기 귀찮을만큼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숱한 무기들 중의 대다수는 당시에 실존하지 않았던 것들. 대표적인게 관우의 트레이드 마크인 "청룡언월도". 먼저, '도(刀)'는 한쪽만 날이 있는 칼, '검(劍)'은 양쪽 모두 날이 있는 칼을 뜻한다. '청룡도'는 너비가 넓은 도를 일컫는 말이며, '언월도'는 '월도'라고도 했는데 이는 긴 자루가 달린 도를 일컫는다. 고로, '청룡도 + 언월도 = 청룡언월도'라 함은 긴 자루 달린 청룡도를 말한다. 너비가 넓다보니 일정 수준 이상 부피가 있던 무기인 청룡언월도는 대체로 일반 도검들에 비해 중량이 좀 나가는 무기였고, 찌르기보다 베기용이긴 했다만.. 날카로움으로 벤다기 보다는 무게로 내리찍는 용도의 무기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제철수준으로 큰 월도를 날카롭게 제련하는 기술력의 한계가 있었고, 설령 내가 쓰는 질레트 마하3 면도기날처럼 어찌어찌 날카롭게 만들었다 한들... 몇 번만 쓰면 금새 날이 무뎌지기 마련. 게다가 날카로우려면 단면이 얇아야 하고 또 얇게 만들다보면 그만큼 가벼워지니 살상력이 떨어진다. 쉽게 말해, 청룡언월도에 맞으면 영화나 만화처럼 '뎅겅~'하고 썰리는게 아니라, 짓뭉개지며 박살이 나는건데, 심지어 연의에서의 묘사에 의하면 관우가 썼다는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무려 "82근"! 혹자는 한대의 한 근은 지금의 한 근보다 가벼워, 당시의 여든 두 근은 대략 18kg쯤이라고 하는데, 나관중이 명나라 사람이라 명대의 도량형으로 설명 했기에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48kg이 맞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무기 + 그 무기 휘두를 덩치 + 갑옷 + 안장 + 마갑 = 어림잡아도 230kg을 넘어가는데 그럼 말은 도대체 무슨 죄인가? 더구나 아무리 장사여도 저 중량의 무기를 휘두르기 위해 마상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그 시대에는 말 타며 균형 잡고자 발을 거는 등자가 몹시 어설퍼, 제 기능 발현이 어렵던 시기였다. 일단 송나라 때에나 등장한 청룡언월도를 관우가 썼을 리 없고 정사기록에 "관우가 안량을 찌른 후 목을 베었다"라는 구절을 볼 때, 관우는 '삭'으로 불리는, 당시 기병의 보편적 주무장인 찌르기용 창을 썼다고 본다. 그리고 '여든 두 근'이란 표현도 실제 측량무게가 아닌 관우의 파워의 대단함을 묘사키 위한 나관중의 중국인 종특인 과장의 산물이다. 소설과 인물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부여된 일종의 아이템같은 개념이였던 것이다. 장비의 "장팔사모" 역시, 지금 추산 시 5m가량의 기나긴 창으로 묘사되지만 한대에는 그런 긴 창은 쓰지도 않았거니와 동서양 역사에서의 그런 길고 긴 창은 보병의 대기병전용 무장이였지, 말 위에서 휘두르기는 너무 불편한 무기였다. 당시의 백병전은 인정사정 없었고 사소한 실수, 작은 삑사리 하나로 장애인이 되거나 바로 요단강에 발을 담그는 리스크가 될 수 있기에... 여든 두 근 청룡도니, 한 장 여덟 척 장팔사모니 하는 후까시용 무기보다는 그저 실용적이고 쓰기 편한 무기가 답이였다. 여포의 방천화극 또한 그 "방천화극" 자체가 역시 청룡언월도와 마찬가지로 송나라 중엽에서야 등장하는 무기였기에 픽션이며 그냥 찌르기용 '극'을 쓴 것으로 보여진다. 삼국지 등장 장수의 거의 8할이 "찌르기용 창"을 실제로 썼는데, 이는 '베기'보다 '찌르기'가 더욱 적은 에너지와 운동각으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에 체력소모와 한 번 움직임에서 다음 움직임 까지의 인터벌을 최소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베는 창을 쓸 경우, 창을 더욱 높이, 크게 휘둘러야 상대에게 치명상 입힐 수 있는 반면... 빗나갈 경우 오히려 상대에게 역관광을 당하기 제격이다. 그렇다고 적은 각도로 움직이면 운동에너지나 원심력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상대에게 그만큼 데미지를 많이 주지 못 한다. 놀랍게도 "쌍철극"의 경우, 정사에 전위가 80근의 쌍철극을 휘둘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그 당시의 사료이므로 한대의 도량형에 따라 지금 기준 약 16~18kg가량의 무기가 맞다. 2. 일기토. 일본어의 "잇키우치(いっきうち, 一騎討ち)"에서 한자어인 '一騎討'만을 우리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기마무사간의 1vs1 대결을 의미한다. 사실 한, 중에서는 거의 안쓰는 한자어인데, 국내에서는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 탓에 1대1 결투의 일반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정말 숱하게 등장하는게 바로 저 일기토이지만... 놀랍게도 실제 역사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일기토 기록은 열 손 이내 밖에 없다. 192년 "여포 VS 곽사" (장안) 놀랍게도 곽사가 먼저 결투 신청. 그럼 그렇지, 여포의 창에 맞고 죽기 직전에 부하들이 곽사 구출. 196년 "손책 VS 태사자" (곡아) 말 타고 싸우던 중 손책이 태사자의 말을 찌르고 (나쁜새끼), 태사자의 창을 빼앗자, 태사자는 낙마하며 손책쪽으로 넘어지며 손책의 투구를 슈킹. 196년 "학맹 VS 조성" (하비) 여포에게 반기를 든 학맹과 조성이 싸우던 중 고순이 나타나 학맹을 죽임.(읭?) 196년 "마초 VS 염행" (서량) 그 천하의 마초가 염행의 창에 찔려 죽을 위기 맞음. 단, 당시의 마초는 만 19세로 아직은 경험미숙.. 200년 "관우 VS 안량" (백마) 추후 관우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음. 202년 "방덕 VS 곽원" (평양) 방덕이 당시 난전 중에 적병을 그냥 막 죽이던 와중에 곽원도 섞여 죽음.(이건 좀...;;) 208년 "여몽 VS 진취" (강하) 유표군과 싸울 당시 선봉이던 여몽이 적 수비대장 진취와 맞서 싸움. 2011년 "김형수 팀장 VS 이민형 과장" (백림호프) 만취한 이과장이 김팀장에게 반말로 도발하자 이에 격한 김팀장이 숟가락 볼록면으로 이과장의 정수리를 갈겨 단 일 합에 이과장을 처단. 사실, 일기토 자체가 성사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는게, 저건 보는 사람이나 재미있지... 당사자들로서는 자신 뒤의 수 많은 군세의 기세를 책임진 상태에서 사소한 실수 하나로 자기 목숨은 물론, 전술적 승패를 갈음 짓는 1대 1 대결은 실로 무모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기고 있거나 우세한 군세의 우두머리가 이겨도 본전에 지면 그야말로 대참극의 아비규환을 불러올지 모를 그딴 제안에 응할 리가 없다. 그럼 상대가 응하지 않는데 홀로 싸울 수도 없다. 그리고 어지간한 급의 장수들은 영화나 만화처럼 행군 중이나 군사들간 대치 상황에서 가장 맨 앞에 나와 보란듯이 있지 않았다. 그럴 경우, 상대방의 활에 의한 저격에 피격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 물론, 장수의 화려한 차림새나 그 주위의 대장기를 든 호위대 등으로 분명 눈에는 띄었을 것이나, 가장 선두에 다 보란듯이 나와 있진 않았다고 한다. 솔직히 이게 뭐라고 쓰는데 두 시간 걸린다는.... 쓰고 나면 지치지만 여러분들이 주시는 관심 가득한 피드백들이 그런 피로를 잊게 해줍니다ㅎ 연재가 더디긴 해도 심도깊은 내용으로 차차 다룰 소재들이 매우 많으니 인내를 갖고 기다려 주시길 양해 바라며 타인을 비방하거나 불쾌히 만들 댓글은 자제 부탁 드려요. 궁금하신 점 등은 댓글로 문의 주시면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답변 드리고 있습니다! 주관적 견해를 바탕으로 한 논쟁은 도돌이표인 경우가 많고 감정만 상하기 부지기수라 응하지 않습니다. 역사와 삼국지라는 다소 고루하며 남성적인 소제를 다룸에도 예상외로 적잖은 분들의 관심과 기대에 늘 고마움 갖고 정성껏 쓰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주유 공근 (周瑜 公瑾) A.D.175~210
역사에 있어 가장 무의미 하면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만약에"(Maybe)라는 가정이 아닐까 한다. 특히 역사 속 인물들에 있어서 가장 많이 적용되는 '만약에'는 'OO가 더 오래 살았다면...'이 아닐런지. 오늘의 주인공은 삼국지를 읽어본 이들에게서 바로 저 '만약에...'를 가장 많이 되내이게 했을 인물 "주유". 삼국지에서 주유는 위에서 언급한 '만약에...'에 제일 많이 언급됨과 동시에 저승에서 나관중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나관중의 거듭된 항소에 3심까지 가더라도 무조건 다 승소할 만큼.. 삼국지연의 최대의 피해자나 다름 없는 너프를 먹은 비운의 인물이다. 삼국지 등장인물 중 가장 빼어난 용모 + 명문가의 귀족 + 최상류 부유층 금수저 + 너그럽고 대범한 성격 + 천부적음악재능 + 천재적 전략가 기질 + 미녀 아내 등등.... 엄친아를 넘어 먼치킨이던 이 남자는 촉빠에 제갈량빠인 나관중에 의해 "제갈량과 맞다이를 벌인 죄"로 앞뒤 안가리고 덤비는 다혈질에, 상황파악 못 하는 넌씨눈, 속 좁아서 제 성격도 못 이기는 쫌생이로 격하되었다. 어린 초딩시절, 당시 원술 휘하의 장수던 손견의 장남인 손책을 조우하고 그에게 반해 그때부터 마음 깊이 손책의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 주유는 당시 대대로 명문가에 양주지역의 큰 호족의 자제였음에도 고작 일개 장수의 아들에 불과한 손책에게 다방면의 호의를 베풀며 둘의 우정은 깊어간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생일은 손책이 빨랐고, 손책의 모친 오국태부인도 주유를 매우 예뻐 했으며 손견 또한 주유를 아들같이 대했고 주유는 자기네 집안이 보유한 가장 큰 저택을 손책에게 선물한 적도 있었다. (역시 친구를 잘 만나야..) 지금으로 치면 하버드를 졸업하고 잘 생긴데다 머리 좋고 돈 많은 신진그룹의 조태오가 아버지가 9사단에서 대대장 하시는 내 친구 창석이랑 친구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창석이네 아버지 예편 하시고 베스킨라빈스 하심) 삼국지연의에서 어쨌건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출발점인 손견에 대한 미화가 커서 그렇지, 사실 죽는 순간까지도 손견은 원술 휘하의 장수였고 더구나 손책과 주유가 알게 될 당시의 손견은 진짜 크게 대단할 게 없던 장수였다. 손책이 십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주유는 양주 일대의 여러 호족들에게 손책을 소개하고 친분을 쌓게 하고 안면을 트게 하는 등 손책을 키우기(?) 시작했고 물심양면으로 손책을 조건없이 도울만큼 손책에게 잘 대해줬다고 한다. 이후 손책의 바로 아랫동생인 손권과도 친분이 깊어졌고 손권 역시 하나님같이 여기던 형의 베프인 주유를 형님의 예로 모셨는데, 놀라운건 그래봤자 친구 동생이고 무려 일곱 살이나 어린 꼬맹이던 손권을 "깍듯이" 대했고 늘 존칭과 경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결과론적으로 주유가 손권 아랫 사람이 된 역사를 아는 우리 입장에서야 '당연한거 아님??' 이라지만 그때만 해도 손책이 그렇게 크게될 지, 손권이 그보다도 더 크게될 지는 알 수 없던 상황.... 심지어 손책은 부친 손견이 전사한 후, 원술에 의해 잉여쩌리 취급 받다 소수병력만 이끌고 독립했는데, 이 때만 해도 손책의 성공을 점치는건 고영욱이 뽀뽀뽀 진행자를 맡을 확률보다 낮았다. 아마도 주유는 손책의 대단한 포텐셜을 감지하고,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손책을 크게 성장시킬 마음을 먹고서 그랬던게 아니였나 하는 짐작을 해본다. 이전 제갈량편에서 짧게 언급했지만, "전략가"로서의 자질과 능력은 제갈량 이상이였고, 실제 역사에서 조조를 사실상 유일하게 처참히 발라버린 판의 총지휘자였다. 적벽대전 당시 고작 3만 여에 불과한 겁에 질린 오군을 이끌고 2만이 좀 안되던 유비군과 연합하여 당시 약 20만 ~ 24만 여 명으로 추산되던 조조군을 지워버린 가장 큰 주역은 각 군의 배치와 전술기획, 총 지휘를 한 주유였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 24만 VS 5만은 넘사벽 차이까진 아니라 보여질 수도 있지만, 무슨 첨단무기나 장비가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쪽수가 깡패고 전술이던 당시 상황에서 저 차이면 대개 GG 치는 경우가 부지기수.. 더구나 저 때의 조조군은 중국 특유의 빅뻥을 가미, "100만 대군"을 자칭하며 장강(양쯔강) 상류에 진을 쳤고, 당시 분위기는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전쟁이나 엇비슷한 분위기, 상황이였는데 오히려 이길 수 밖에 없다는 자신감으로 뭉쳐서 여유있던 주유였다. 오의 대부분 고관대작들이 항복을 주창했으나, 항전론을 외친 최초 발언자는 "노숙"이였지만 노숙은 "우리가 이김!"이라기보다는 "아마 질거임...그래도 붙어보자능!!!" 이던데 반해 주유는 항전을 넘어, 승전을 자신했다. 그는 여느 전략가들처럼 혼자 이것저것 짜내기보다 여러 책사들과 장수들과 회의를 하고 거기에서 나온 여러 아이디어들 중 "될 만한" 기획안을 채택하는데 능한 '수석' 스타일이였다. 사실 저것도 대단한 게, 정말 뛰어난 대국안이 없으면 당연히 여러 아이디어 중 뭐가 옥석인지 알 수 없다. 적벽대전의 신의 한 수였던 "화공"도 주유나 제갈량의 아이디어가 아닌 무장이던 "황개"의 의견이였던걸 주유가 채택한 것... 게다가 유비를 대단히 경계했던 사람이였다. 당시 오 내부에서 대체로 유비를 그리 높게 보는 이가 없었고, 유이하게 노숙, 주유만이 유비를 높게 봤으나 둘의 대처는 달랐다. 노숙은 유비와의 화친을, 주유는 유비 및 유비세력의 조기견제를 주창.... 만약, 손권이 주유의 의견을 따랐다면 이후 황제까지 오른 유비는 없었을 것이나, 손권도 유비를 잠재적 위협요소라 인지는 했으나, 주유만큼은 아니였고 당시의 상황도 상황인지라 노숙의 의견을 따른다. 장로가 유장이 통치하던 익주를 공격하자, 그 소식을 듣고 손권에게 서촉정벌을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였다. 일단 천하패권보다 형과 자신이 일군 강동의 지배력 강화가 우선이던 손권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던 시각의 오 문무대신들에게, 성공할 시에는 천하의 남쪽 절반을 먹는 서촉 정벌은 실로 스펙터클 했다. 그러나 홈에서는 막강했어도 원정능력이 그닥이던 오군 이끌고 장거리 원정에 심지어 험준한 산지에다 오군 최대 장기인 수전을 벌일 수 없던 터라, 주유의 "서촉정벌"은 '하이리턴 & 하이리스크'로 받아들여졌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 나는데 맞손뼉 없어 흐지부지 되었으나 이를 통해 주유의 야망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솔직히 이건 좀 많이 무리수였다...) 그는 실제로 서량의 마등&한수와 연합하고 요동의 공손일파와도 협력한 후 조조의 등 뒤를 흔든 틈을 타 형주와 서촉을 온전히 손에 넣어, 양쯔 이남 점령 후 북진하여 위를 쳐부술 플랜을 갖고 있었고... 그 당시에는 심지어 조조조차 천하통일을 염두 못한 시점에서 삼국지 등장인물 최초로 천하통일 플랜을 품었던 인물이였다. 제갈량과는 앙숙처럼 나오며 못 죽여 안달처럼 이미지가 각인 되었지만, 적벽대전 당시는 제갈량을 존중했고, 이후로도 비즈니스적으로만 적대했을 뿐, 그를 상당히 대우했다고 한다. "하늘은 어찌 주유를 낳고, 또 제갈량을 낳으셨나!" (旣生瑜, 何生亮) 주유는 이 말을 한 적이 없다. 주유가 화살 맞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제갈량 탓의 빡침에 상처가 터져 끝내 죽었다는 것은 픽션으로, 병사했고 학자들은 말라리아로 추정하는 쪽으로 무게가 기운다. 적벽대전 당시 위의 스파이 역의 장간이 연의에서는 주유와 동문으로 나오지만 이는 허구... 둘은 이 때 처음 본 사이였다. 손책과 주유의 아내인 대교와 소교가 유명한데, 대교와 소교를 얻을 당시 손책은 이미 정실이 있어서 대교를 첩으로 들였으나, 미혼이던 주유는 소교를 정실로 맞았다. 아내를 많이 사랑했는지, 굉장히 자상히 아내를 잘 챙겼던 듯 한 기록이 있다. 상당히 젠틀했고 사실상 오의 군권을 잡은 손권 다음 2인자였음에도 누구에게도 위압적이거나 하대 하는 법이 없이 예의바르고 겸손히 대했다고 한다. 손견부터 손가를 섬긴 노장 정보가 초반 그를 몹시 무시했으나 변함없이 예의바르고 자신을 공경하는 그에게 감화되어 끝내 잘못을 빌었다. 이건 왠만한 이들 잘 모르는데... 신은 공평했는지, 키는 좀 작았다고 한다.ㅋ 노숙에게 장신이던 제갈량과 마주하며 목이 아프단 말을 한 적 있다. 음악적 재능이 대단하여 아무리 정신없거나 술 취한 와중에도 곡의 연주가 틀리면 지적했다고 하고, 악기도 다루고 노래도 잘 했다고 한다. 굉장한 말술을 마셨다고 하며 오에서 손권 다음가는 주당이였으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진 않았고 술도 주위에 강권하진 않았다. 장남은 이것도 유전인지 요절, 차남은 개망나니, 막내딸은 남편이 요절.... 자식농사는 흉작이였던 듯..;;;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이 주유의 후손이라고 한다. 실제로 영화 적벽에서 원래 주유 역은 주윤발이 먼저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검술에 제법 조예가 있었다고 하며, 감녕과의 대련에서 호각지세를 이뤘다고 한다! 허나 그렇다고 감녕과 무력이 동급이라 할 수 없는게, 감녕은 전장에서 다수를 상대하는 마상창술 (말 타고 창질)에 능한 야전장수였기 때문. (또 실전이 아닌 '대련'이였고...) 이건... 진짜 깨는 정보인데... 주유가 오의 군권을 쥐고 있었고 오는 지리적 특성상 양쯔강의 수군이 주력이라, 오는 수군의 총사령관인 "도독"이 지상군과 수군을 총괄한다. 아무튼 주유는 그런 수군 사령관임에도 함선에 탄 적이 "거의" 없었다.(아예 없진 않음) 그 이유는.... 그 이유는..... 바로 "배멀미".... 수군 도독인데도 배멀미를 해서 함선을 왠만하면 안탔고 본인도 이게 되게 창피했는지 이를 숨기려고 꽤 애를 쓴 모양이다. (멀미약이 있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지도..) 아무래도 주유의 리즈가 적벽대전 당시이다보니 적벽대전 관련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적벽대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단독으로 다룰 예정이라 일부러 너무 자세히 풀진 않았음! 또 주유가 워낙 손책과 베프인지라, 손책 이야기도 좀 나왔는데, 역시 손책도 나중에 자세히 다룰 예정.
우연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적처럼 인생을 바꾼 어느 무명 화가.jpg
여기서 말하는 포스터는 알폰스 무하가 그린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 지스몽다 포스터라고 함 1860년생 체코 출신인 알폰스 무하는 어린 시절부터 집안 곳곳에 낙서 하기를 좋아했고 그런 무하를 위해 어머니는 목에 크레용을 걸어주기도 했다고 함 정식으로 그림 교육을 받기도 전에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행인들의 초상화를 그려줄 정도로 재능이 있었나 봄 어찌저찌 살다가 파리로 넘어갔고 파리에 화실을 차린 무하는 후원도 끊기고 힘든 고비를 넘기면서 연극 의상 디자인이나 삽화 작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1894년 크리스마스 직전, 인쇄소에서 일하는 친구가 무하의 화실로 찾아와 본인은 휴가를 가야 하니 대신 교정쇄 좀 봐달라 함 그렇게 크리스마스 주간에 한창 친구 대타를 뛰던 무하에게 인쇄소의 매니저도 다급하게 부탁을 하네? 새해 첫 날 붙여야 하는 포스터 주문이 들어왔는데 당장 디자이너가 무하 하나뿐이라 도움을 요청했고 무하는 그걸 또 해냄  그게 저 위의 지스몽다 포스터였던 거 이미 여러 유명 화가의 작품을 퇴짜 놓았던 배우 사라 베르나르지만 다행히 이 무명 작가의 작업물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지 당장 무하와 전속 계약을 맺고 싶어했고 그당시 무지하게 유명했던 사라의 공연마다 무하의 포스터가 따라 다니게 됨 ((사라는 지스몽다 포스터를 아주 소량만 인쇄해서 한정 판매 했는데 하도 사람들이 몰래 뜯어가고 포스터 붙이는 사람을 매수하는 일까지 생겨서 추가 주문 했다고 함)) 자동으로 알폰스 무하라는 사람이 홍보가 된 덕분에 요런 것들을 볼 수 있게 됨 또 예전 전시회 관련 글 찾아보니까 이즈부치 유타카 작가 고야성 작가 클램프 추혜연 작가 임주연 작가 그외에도 많은 작가들이 무하의 작품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지 않나 싶음  출처ㅣhttps://theqoo.net/1864758327
장합 준애 (張郃 儁乂) A.D.?~231
누차 말했듯... 픽션(허구)이 가미된 "소설"인 삼국지연의는 여러 인물들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반면 그네들의 영웅화 ~ 신격화를 위해 숱한 이들을 엿 먹이기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오늘도 역사범죄자 나관중에 의해 너프 당한 또 한 명의 피해자, "장합"에 대해 다뤄 보기로..! 장합은 삼국지정사, 위의 역사록인 위지, 후한의 역사록인 후한서, 본인의 열전인 위서의 "장악우장서전(張樂于張徐傳)"에도 생년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사망 당시의 연령을 알 수는 없지만 원소에게서 조조 휘하로 들어갈 당시 대략... 40대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저 '장악우장서전'은 조조가 자신이 공을 이루는데 그 기여가 으뜸이라며 추켜세운 다섯 장수인, 장료, 악진, 우금, 장합, 서황을 묶어 편찬된 열전이다. 저 다섯을 일컬어 당시에 "오자양장(五子良将)"이라 불렀고, 촉한의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과 살짝 비슷한 뉘앙스인데, 오호대장군이란 별칭은 그 때는 없었고 후대 사람들이 붙인데 비해 저 오자양장은 당시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오호대장군같은 저 시절의 '드림팀' 또는 '어벤져스' 느낌의 패키징은 위의 다섯 장수가 원조다. 고향은 당시로는 기주의 하간군 막현(오늘날 중국 허베이성 중남부 인근)이라는 그때 치고도 꽤나 궁한 시골 작은 마을 출신이였다. 참고로 진짜 중국이 겁나 드넓긴 드넓은게... 삼국지 게임 내의 맵에서 기주는 작은 주로 나오나, 조운의 고향인 기주 상산군과 장합의 고향인 기주 하간군의 거리는 무려 166km고, 이 거리는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보다 멀다..ㅎㄷㄷ 만화, 게임, 책, 기타 여러 미디어물들을 봐도 다른 네임드급 인물들과는 달리, 외형 이미지가 일관적이지 못한 편인데... 이는 사료 어디에도 장합의 외모 묘사가 일언반구도 없고 그를 그린 그림조차 몇 없는데다, 그것들 마저 묘사가 모두 중구난방이다보니 도무지 이미지 통일이 안된 것. 다만, 장합의 리즈시절이 펼쳐지는 것이 조조에게 투항 이후인데 그 당시의 추정 연령이 위의 언급처럼 40대로 보고, 조조세력 합류 후부터도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을 활약하다 전장에서 전사한만큼, 사실상 각종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젊은'느낌의 장수로 표현하는 것은 어색한 감이 없지 않다. 장합은 조조 휘하 장수들 중 가장 많은 전장에 참전했고, 위의 역사를 통틀어도 가장 전공이 많은 장수였으며, 주/부장을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여러 숱한 전투에서 닳고 닳은 백전노장이였다. 그러다보니 큰 전장의 주요한 임무는 물론, 작은 전장의 자잘한 임무까지 가림없이 두루 맡았고 야구로 치면 4~5선발과 롱릴리프, 경우에 따라 급하면 불펜으로까지 던지면서 하루 걸러 등판하며 혹사 당하는 노예투수 비슷한 포지션의 장수였다. 그 깐깐한 조조가, 또 당시 휘하에 숱한 명장, 용장, 맹장들이 수두룩 빽빽 채이고 밟히고 널렸던 위에서 저토록이나 빈번히 굴렸다는건 그만큼 능력 있기에 믿고 쓸만큼 훌륭한 장수였다는 증거다. 심지어 백발노인 되어 집에서 손주들 재롱이나 보고 탑골공원가서 장기두며 야쿠르트나 얻어 마실 나이에 전장에서 한창 싸우다 전사하니... 죽어 눈감는 그 순간까지 위의 군밀레에 갈려나간 군돌이였다. 삼국지연의나, 연의를 바탕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각종 미디어물들을 보면 장합은 그냥 본인의 무예와 전장에서 구르며 익힌 짬밥으로 밀어붙이는 단순한 장수로 그려지나... 위에서 언급하듯, 저렇게 숱한 전장을 누볐고 또 깐깐깐돌 조조에게 신임받으며 주장으로도 쓰인만큼 사실 전략적 대국안도 상당히 뛰어난 "지략을 갖춘" 장수였다. 본래 기주의 군소 군주인 한복 휘하에 있다가 한복이 패망하자 원소의 세력에 속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전장의 시국을 살핀 후 원소나 원소의 책사들에게 여러 전략들을 입안 했으나 거의 다 씹혔다.... 원소는 사람 자체가 선입견, 편견 이런 게 가득한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데다 또 고집은 있는 전형적 꼰대인 우리 회사 김대현 이사님같은 스타일이라 그저 야전에서 뒹구는 장수인 장합의 계책을 귀 담아 들어주질 않았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치는 전형적 예였던 당시 원소의 책사들 역시, 지들끼리도 서로 내가 옳네, 내가 맞네 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장합까지 거기 껴서 자기 의견을 제출하니 고스란히 즈려밟아 무시했다. 이렇듯, 자기 아이디어와 의견이 매번 밟히던 끝에, 원소 VS 조조의 관도대전에서도 자기가 낸 계책이 원소의 책사 중 한 명인 곽도에게 씹혔고... 그 전투에서 결국 패하며 장합이 옳았음이 드러나자 곽도가 원소에게 장합을 모함하였으며, 이에 겁 먹은 장합은 결국 원소군 내에서 베프면서 역시 원소의 아쉬운 대우에 불만가득하던 '고람'과 함께 원소군의 망루에 불을 지르고 투항한다. 역사기록에는 이 "방화 후 이적"이 관도대전에서 원소의 패배 전인지, 후인지가 안나와 있으나 어쨌건 장합과 고람이 불 싸지른 망루는 당시로는 적군의 동태를 살피는 '레이더'역할을 하는 중요한 군사시설이였기에 이를 없앤 것 자체는 어쨌건 원소군에게 치명적이긴 했다. 삼국 정립 이후에는 주로 대촉전선에 투입되었고 이유는 조조가 양쯔강을 끼고 있던데다 북진의사가 거의 없는 손권에 비해, 명목상 "한실부흥" 내세워 줄기차게 자신들에 덤벼 오는 유비세력을 훨씬 더 위협적으로 여겼기 때문. 그때 손권과 대립하는 동부전선은 장료와 악진으로 묶어 두고 가용 가능한 네임드 장수들은 대부분 대촉전선에 투입되던 시기였다. 장합은 유비도, 유비 사후의 제갈량도 상당히 껄끄러워 하던 장수였다. 대촉전선의 총사령관 역할을 하던 하후연과 조홍보다 장합의 위치는 아래였으나 이는 위에서의 커리어, 또 하후, 조 두 장수는 조조와의 친인척 관계인지라 그럴 뿐... 장수로서의 자질은 저 둘을 뛰어넘던 장합이였으며 그래서인지 조홍과 하후연은 장합을 꽤나 견제했다. 아무리 자신들의 커리어가 앞서고 조조와 혈족이긴 하다지만 철저히 능력 위주로 사람을 쓰던 조조는 언제던 장합이 더 유능하다 드러나면 속절없이 자기들보다 장합이 더 상전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 제갈량의 1차 북벌 당시, 이를 막아낸 위방어군의 총사령관은 연의와 달리 사마의가 아닌 장합이였고, 4차 북벌 때, 목문도에서 유인책 쓰며 거짓 후퇴하는 촉군을 사마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뒤쫓자며 바득바득 우기고 쫓아가다 기어이 전사하는 연의와 역시 또 달리... 당시 제갈량의 흉계가 의심된다며 추격을 만류하던건 오히려 장합이요, 이에 대해 군령까지 내세워 제갈량을 추격할 것을 밀어붙여 장합을 사지로 내몬게 사마의였다. 이에 대해서도 또 제기되는 설이.... 당시 장합과 사마의는 위의 대촉전선에서 은연중에 경쟁관계였었다. 쟁쟁한 커리어의 백전노장 장합, 그리고 위 군부 신진세력의 주축이던 사마의는 서로 견제하던 관계였으며 당시 직급상 사마의가 높았지만 그렇다해도 사마의에게 장합은 결코 직위로 쉽게 누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였고.... 그런 장합을 이이제이 방식으로 간접 제거 하고자 제갈량의 계책을 눈치채고도 등 떠밀었다는 설이다. 연의에서의 묘사처럼 빗발치는 화살에 벌집이 되어 바로 죽기보다 화살을 여기저기 맞고 후퇴하던 중 과다출혈에 의한 쇼크사였다. 기록에는 허벅지에 맞은 화살로 인한 과다출혈이 결정적 사인이라 나와 있다. 참고로 허벅지는 대동맥을 비롯 여러 혈관 뭉치들이 지나는 곳이라 흉기에 잘못 찔리면 지혈도 힘들만큼 과다출혈이 발생하여, 옛날 야쿠자나 조폭들도 서로 칼부림 당시 오히려 방어하기 좋아 찌르기 여의치 않은 복부나 흉부보다 허벅지를 많이 노렸다고 한다. 동물을 좋아했는지, 직접 먹이를 주며 키우던 개가 있었다는 설이 있고 자신이 타던 말이 힘들까봐 행군하는 경우에는 중간중간 말에서 내려 걷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사료기록은 아니다.) 원소 휘하에서는 고람과만 거의 이야기를 나눴으나 조조에게 투항 후 각기 다른 부대에 배치되며 연이 끊어진 듯... 여러 장수들과 열전이 묶음으로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신상과 일상에 대한 기록이 그닥 없다. 쉽게 말해 위의 장수로서의 공적인 기록은 좀 있지만 인간 장합으로서의 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 장합이 커리어나 능력에 비해 그닥 인기 많은 인물은 아니다보니 왠지 이번편은 반응이 별로일거 같은 좀 불길한 예감이... T-T 그래도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 드린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