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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뉴스 큐레이션 2017 6월 8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1. 문재인 대통령이 추경예산안의 적합성 논란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예산이 필요한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새 정부의 일자리 대책이 담긴 이번 추경안에 대해 야 3당이 반대하자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해 맞불을 놓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문재인의 지지율이 더 올라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겠지... 배가 아프거든~ 2. 자유당 정우택 대표가 ‘문재인 정부의 인사실패는 난맥상을 넘어 참사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다’고 비난했습니다. 정 대표는 ‘많은 국민이 문재인 정부의 이런 부실인사에 실망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내로남불’ 내가하면 로멘스 남이하면 불륜이라지만, 자유당이 이러면 소가 웃지~ 3.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김상조 공정위원장 후보자에 대해 ‘결정적 하자가 없으면 적격통과 시켜줘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주장은 도덕적 결함을 이유로 '부적격 인사'로 보는 바른정당 입장과 대조적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번씩 눈길을 끌어줘야 사는 맛이 나거든...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자나~ 4. 박근혜 전 대통령 형사재판이 본격적인 심리로 접어들면서 지지자들의 법정 소란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는 재판 때마다 방청석에 ‘조용히 착석해 달라’고 당부하지만, 소용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좋아하고 사랑한다는데 가깝게 모시도록 법정소란 죄로 넣어 드리죠 뭐~ 5.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이 ‘나이가 66세인 고령의 연약한 여자’라며 주 4회 재판 진행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 가운데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박원순 서울시장을 이유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관을 막았다는 진술도 나왔습니다. 특검 사무실 환경미화원 아주머니가 갑자기 생각난다. ‘염병하네 염병하네’~~ 6. 대한적십자사 총재 겸 성주그룹 오너인 김성주 회장이 새 정부 출범부터 잇단 악재를 만났습니다. 최근 하청업체를 부도로 내몬 MCM의 갑질 논란으로 공정위에 불공정행위로 고발되는 등 그야말로 내우외환에 휘말린 형국입니다. 김 총재 때문에 헌혈도 안 한다는 사람도 있던데... 요즘 적십자비는 내고 삽니까? 7. 대통령 선거 기간 중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비방한 혐의로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경찰은 신 청장을 공직선거법위반·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습니다. 박근혜한테 인사드리러 다니기도 힘들 텐데 그냥 구치소에서 같이 살지그래~ 8. 사드 반입 보고누락 파문으로 현역 중장인 부하를 육군으로 인사 조치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 대해 군 안팎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한 장관은 수족처럼 부리던 부하의 인사 조치에 지인들에게 고통스러운 심경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그러게 상관을 잘 모셨어야지... 박근혜 모시든 당신이나 당신 모시든 부하나~ 9. 이른바 '돈 봉투 만찬'으로 물의를 일으킨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면직 처분이 권고됐습니다. 법무부는 이 전 지검장에 대해서는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수사도 의뢰키로 했습니다. 면직이라... 정직이나 파면도 아니고 벌써 면직당했는데 새삼스럽기는~ 10. 세월호 참사를 빚은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였던 고 유병언 전 회장의 장녀 섬나 씨가 7일 오후 3년 만에 강제 송환됐습니다.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에서 조사를 받게 될 섬나 씨는 '유병언 일가' 중 3번째로 법정에 서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세월호도 인양되고 하나둘씩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양이네... 참 오래 걸렸다~ 11. 청와대는 황교안 전 총리가 임명한 김용수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을 미래부 제2 차관으로 임명했습니다. 독립성이 강한 방통위원회 상임위원을 정부 부처 차관으로 이동하는 인사는 매우 이례적으로 깜짝 인사라는 평가입니다. 황교안의 알박기를 신의 한 수로 뽑아낸 게지... 거의 알파고 수준이라고나 할까? 12. 박정부 한웰그룹 회장의 ‘다이소아성산업’이 일본 대창산업 ‘일본다이소’에 3년간 150억 원의 배당금을 지급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차녀 박영주 부사장이 박 회장보다 더 많은 지분으로 지배력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이소가 일본 회사가 아니라도 우기더니... 증여세는 다 내고 그러는 거지? 13. 하루 30분 걷기 운동이 암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또 유방암과 대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별도 진행된 결과에 따르면 정기적인 운동이 암 환자의 생존율에도 큰 영향을 준다고 발표했습니다. 어려운 게 아닌데 그걸 못하고 사네... 하긴 술 담배는 어떻고? 쩝~ 14. 세계보건기구는 물을 하루 8잔, 약 1.5리터~2리터를 마시라고 권합니다. 대부분 음식들은 과식하면 좋지 않다고 하지만, 일단 물은 넘치게 마시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상당수에게 늘 모자란 것이 바로 ‘물’이라고 합니다. 물도 사 먹는 시대라 물로 배 채운다는 얘기는 옛말이 돼버린 건 아닌지... 15. 심장병은 심장에 생기는 여러 가지 질환으로 심장내막염, 심장판막증, 심장근육염, 심근경색, 심장파열 등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매일 양파를 먹으면 양파 속 ‘케르세틴’이 심장병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양파 씹고 물 마시면서 하루 30분 걸으면 무병장수할 것 같은 분위기? 흐흐~ 대법원 '사기 미수' 김홍도 목사, 유죄 취지 파기환송. 쯧쯧 '특검도우미' 장시호, 오늘 0시 구속 만기 석방. 크~ 홍준표 떠난 경남도 교육청과 ‘협치’ 모드. 거봐~ 거제 연안에서 맹독성 '파란고리문어' 발견. 오잉~ 웃음이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니체 - 진리를 추구하는 삶이 고되고 힘든 일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진리를 외치며 함빡 웃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류효상의 고발뉴스 조간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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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을 이끌 리더를 못내 그리워하다 -- 3.1혁명이 일어났을 때. 일제는 야만적인 수법으로 학살, 방화, 투옥으로 조선 천지를 생지옥으로 만들었다. 외국 선교사와 외신을 통해 이런 만행이 전해지면서 일제는 국제여론 앞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세운 게 이른바 위장된 '문화정치'이고 유화책이었다. 일제가 여운형을 도쿄로 초청한 것도 이와 같은 상황 하에서였다. 자칫하면 그들의 선전용으로 이용될 위험 부담도 없지 않았다. 일제 입장에서 여운형은 불령선인의 수괴급에 해당되는 인물이다. 대외적으로는 일본의 유화정책을 과시하고 대내적으로는 그를 회유하여 식민지 정책에 활용하고 덤으로 독립운동 진영을 분열시키려는 카드였다. 당시 임정의 이동휘 총리는 극렬히 이를 반대했으나 몽양 여운형 선생은 다른 생각이 있었다. 도쿄로 여운형을 불러들인 일제는 그를 회유 또는 투항을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일본 고관들은 몽양 선생에게 일제의 의도 대로 해주는 댓가로 정치적 지위 보장을 약속하고 한편으론 신변을 위협하면서 그를 굴복시키려 했다. 독립운동을 그만두면 돈을 주겠다고 회유도 했다. 그럴 때마다 몽양선생은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명쾌히 설명함으로 응수했다. 그러나 일본 신문들은 이런 그의 말과 행적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축소왜곡하였다. 선생이 이를 동양척식회사 코가 장관에게 강력히 항의하자 일본 정부의 태도가 바뀌어 도쿄 중심가의 데이코쿠 호텔에 일본 각계 인사와 신문기자 등 500명이 모여들었다. 보도 통제가 풀린 탓에 그의 말이 전국에 퍼질 수 있게 되었다. 1919년 11월. 몽양 선생의 역사적인 도쿄 연설이 시작된다. "주린 자는 먹을 것을 찾고, 목마른 자는 마실 것을 찾는 것은 자기의 생존권을 위한 인간 자연의 원리이다. 이것을 막을 자가 있겠는가? 일본인이 생존권이 있는데 한민족만이 홀로 생존권이 없을 수 있는가? 한국인이 민족적 자각으로 자유와 평등을 요구하는 것은 신이 허락하는 바이다. 일본 정부는 이것을 방해할 무슨 권리가 있는가? 세계는 약소민족 해방, 부인 해방, 노동자 해방 등 세계 개조를 부르짖고 있다. 이것은 일본을 포함한 세계적 운동이다. 한국의 독립운동은 세계의 대세요, 신의 뜻이요, 한민족의 각성이다." 식민지 청년인 그의 나이 불과 34세때였다. 몽양의 연설은 계속해서 쩌렁쩌렁 일본 중심부를 뒤흔들었다. "한일합방은 순전히 일본의 이익만을 위해 강제된 치욕적 유물이다. 일본은 자신을 수호하고 상호안전을 위해서 부득이 합병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지만 러시아가 물러간 오늘날에 있어서도 그러한 궤변을 고집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한국의 독립은 일본에 안전과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즉 일본은 조선독립을 승인하고 조력함으로써만 조선인과 친구가 되고 중국과 그 밖 여러 이웃 나라와 전 세계의 불신과 의구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동양의 평화가 가능하게 될 것이 아닌가?" 몽양 선생의 연설은 다음날 일본의 주요 신문들에 크게 보도되었다. 헤드라인에는 "조선의 청년지사 독립을 주장하는 사자후", "제국 수도 한 켠에서 불온 언사 난무", "여운형, 독립주의를 고집" 등의 제목들이 뽑혔다. 온 일본 열도가 출렁였다. 그의 행보는 더 이어진다. 그를 존경한 도쿄제국대학 교수 요시다 사쿠조가 학생단체 신인회에 몽양 선생을 초청, 수백명의 도쿄대학생들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몽양 선생은 "조선 독립운동(3.1혁명)은 조선인의 일시적인 감정 폭발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는 오직 조선인의 영구적 자유와 발전을 위해서이며 나아가서는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서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여기에 미야자키 유노스께 사회자가 이에 공감한다고 하며 "일본인 중에서도 조선 독립을 기원하는 사람이 있다"라고 발언했다. 행사 마지막 즈음 돌발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의 저명한 아나키스트인 오스기 사까에가 자리에서 일어나 "조선독립만세"를 외친 것이다. 그러자 참석자 다수가 이를 따라 조선독립만세를 합창했다. 일본열도 한복판, 심장부에서 1919년에 벌어진 일이다. 몽양 선생은 일본 열도에 이렇듯 한바탕 폭풍을 휘몰아쳐놓고 극진한 대우를 받다 일행과 함께 샹하이로 돌아왔다. 그가 다녀간 뒤 일본 정계의 후폭풍은 대단했다. "조선 가정부 (임시정부)의 영수를 불러들여 불온 언사를 공공연히 자행하게 했다"는 등의 여론이 빗발치고, 마침내 타카시 수상이 이끌었던 정우회 내각이 붕괴되었다. 그러나 이 훌륭한 지도자는 일본이 아닌, 조선인의 손에 의해 사망한다. 1947년 7월. 몽양 선생은 61세의 나이로 혜화동 로터리에서 우익 청년의 총에 암살당했다. 윌리엄 R 랭턴은 "한국이 가장 위급한 시기에 중심적 지도자 한 분을 잃었다"고 평했다. 지금도 이승만, 박정희 추종 세력들이 몽양선생 등의 독립운동가들을 왜곡하거나 교과서에서 빼버리고 독재, 친일 부역자들을 건국의 아버지로 미화하는 반역사, 반이성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보수세력이 가장 무서워한 독립운동가는 몽양 선생이다. 다른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해외 망명가들이어서 친일파들과 직접 비교하기 어렵지만, 몽양선생은 국내에서 끝까지 전향하지 않고 일제와 싸우며 건준 등을 조직하여 해방에 대비하였기 때문이다. 몽양 선생이 수없이 많은 암살 위협과 테러에 시달린 이유였다. 해방 후 국내 우익들과 친일파들은 몽양이 자신들의 행위를 너무 낱낱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가까이할 수 없었다. 김구 선생에게도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친일파들도 다 받아들이는 이승만 곁으로 몰려들었다. 미 군정이 이승만 편을 드는 것은 금상첨화였다. ((몽양 여운형 평전 ; 진보적 민족주의자 , 김삼웅 저. 채륜. 中)) 몽양선생은 호방함과 용기, 식견, 용량이 넓어 세계 각국의 지도자와 교류하고 이념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들었다. 그는 좌익과 우익을 모두 포괄하려 애쓰다 결국 우익의 사주를 받은 청년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이 청년은 사형을 구형받았지만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이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감옥에서 실종되어 그 이후의 행적은 완전히 소멸됐다. 이 모든 것이 정권의 의도에 따른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몽양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결코 이런 식으로 비틀리고 왜곡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심각한 이념 대립도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유럽에 가서 Nato 회의에 참석한다고 한다. 어떤 발언을 할 지 궁금하면서도 매우 걱정스럽다. 그가 몽양 선생이 도쿄 중심가에서 어떤 연설을 토하여 열도를 뒤흔들었는지, 그 역사에 대해 과연 아는 바 있을 지 궁금하다. 만약 몽양 선생이 지금 전쟁통인 유럽으로 가셨다면, 단상에서 어떤 연설을 하셨을까? "열강들은 이념에 따라 제3국들의 줄세우기를 시키려 하지 말라. 그보다는 환경의 파괴를 멈추고 세계 인민들의 삶을 위해서 우리 한국은 평화를 요구한다"고 다시금 사자후를 토하지 않았을까? 몽양 선생의 사상적 멘토는, 당시 거의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그랬듯 도산 안창호 선생이었다. 나의 사상적 멘토는 언제나 몽양 여운형이었다. 그의 이념은 박헌영, 이승만처럼 좌익/우익이 아니었다. 식민지가 된 조선 인민이 고루 잘 살게 만드는 것만이 그의 이념이었다. https://www.facebook.com/100002765695774/posts/pfbid02Vf9SAqzC2hzWE93EVPa36EJSvF9McgkFibajkZKq3XSdXXov5mnmzyNSGECFEPi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