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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의 언론 다루는 방법


올랑드 전 대통령이 몰래 애인 만나러 헬멧 쓰고 오토바이 타고 다니던(경호원들은 얼마나 고생했을까?) 사진 혹시 기억하시나 모르겠다. 프랑수아 올랑드는 타블로이드 신문의 희생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에마뉘엘 마크롱은 다르다. 마크롱 대통령은 타블로이드를 능수능란하게 이용하는 쪽에 가깝다.

(러시아에서 퍼뜨린 것으로 추정되는) 마크롱-동성연애자 루머가 떠돌 때였다. 저녁 식사에서 신세를 한탄하던 마크롱 부부에게 자비에르 니엘(참조 1)이 파파라치의 여왕에게 자문을 구하라 말한다. 그녀의 이름은 미셸 마르셩(Michèle Marchand, 참조 2).

바로 그녀의 제안으로 나온, “파리 마치”지의 마크롱 부부가 해변을 걸어가는 사진이다. 폴로 셔츠에 반바지 차림의 남편과 하와이풍 수영복을 입은 부인의 행복한 모습(참조 3). 이 사진이 마크롱 부부에 대한 이미지를 상당히 개선시켰다(고 평가 받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크롱이 중딩 때 연극하던 영상이나 결혼식 영상같은 것도 등장했었는데 누가 제공했겠는가? 본인이다.



그런데 이제 대통령에 당선됐네? 언론에 대한 마크롱의 태도도 돌변한다. 기사의 표현처럼 가니메데스에서 유피테르가 됐다(참조 4). 그토록 살갑게 언론에 협조하던 마크롱측은 입을 싹 닫는다. 마크롱에 비하면 프랑수아 올랑드는 언론에게 있어서 천사에 가깝다. 심지어 기자의 문자 메시지에도 올랑드가 답해줄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들의 불만이 많아졌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말리의 프랑스 주둔군 부대를 방문할 때 마크롱은 “외교 및 군사에 밝은 기자들”만 동행하도록 했고, 실제로 대통령궁에서 데려갈 기자를 선별했다. 엘리제궁 출입 기자라고 다 데려간 게 아니었다. 말리만이 아니다. 유럽이면 유럽, 독일이면 독일, G7이면 G7 등, 해당 전문 기자들만을 대동했다.

국내 첫 방문지였던 STX(!) 조선소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선언했다. “정부는 통치를 해야 하고, 언론은 자기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독립 사법기관이 있죠. 각 역할을 섞어선 안 됩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자기 할 일을 똑바로 하라는 주문이다. 난데 없이 “독립 사법기관”을 언급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언론보고 사법기관 노릇하지 말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칼럼의 저자도 저널리스트인데 어떤 기분일까?

이 저자는 마크롱에게 동의한다. 자기 할 일을 하라는 건 너무나 명확한 주문이라서 반박의 여지가 없다. (마크롱에게 감탄하는 느낌도 알 수 있다.) 다만 대우 좀 잘 받아야 훌륭한 저널리스트가 되지 않겠느냐고 푸념하고, 마크롱이 혹시 보나파르티즘을 받아들이는 것 아니냐고도 걱정한다. 그래도 그녀는 자기 할 일을 하는 의미로 마지막에 말한다.

“언론은 먼저 외칠 것이다. '동시에' 틀릴 수도 맞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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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프랑스의 통신 재벌이며, 르몽드지의 공동 소유주다. 참고로 부인이 LVMH의 수석 부사장인 델핀 아르노. 이름 보면 아시겠지만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의 장녀다. (음모론스럽게 말하자면) 마크롱이 괜히 떴겠나?

2. "Mimi", l'étonnante prêtresse des paparazzis qui conseille les Macron(2017년 3월 24일): http://tempsreel.nouvelobs.com/presidentielle-2017/20170324.OBS7068/mimi-l-etonnante-pretresse-des-paparazzis-qui-conseille-les-macron.html

3. Exclusif : Emmanuel et Brigitte Macron, vacances en amoureux avant l'offensive(2016년 8월 10일): http://www.parismatch.com/People/Politique/Exclusif-Emmanuel-et-Brigitte-Macron-vacances-en-amoureux-avant-l-offensive-1036417

4. 가니메데스는 신들에게 술을 따르는 트로이 출신의 미소년이다. 다만 기사가 제우스가 아닌 유피테르를 쓴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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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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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조아라 디자이너는 자신의 이름을 딴 아크(ARCH) 공방을 외부인으로는 처음으로 글로벌 매체 재팬올에 공개했다. 조 디자이너 뒤로 아크(ARCH)의 특이한 CI가 보인다. ARCH라는 글자를 상하로 데칼코마니처럼 붙여서 각도를 90도 틀었다. 마치 상형문자를 보는 듯하다. 조아라 디자이너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뛰 부 트하바이에 아벡 무와?”(프랑스어: 나랑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 2014년, 샤넬(Chanel)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트 디렉터 크리스텔 코셰(Christelle Kocher)는 서른 초반의 동양 디자이너에게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패션업계에서 콧대 높기로 유명한 샤넬이 아무에게나 이런 제안을 하는 건 아니다. 샤넬의 선택을 받은 이 동양 디자이너는 패션 명문 '파리의상조합학교' 출신의 조아라. 샤넬은 파리 패션계의 걸출한 스타 안 발레리 아쉬(Anne Valérie Hash)와 8년간 같이 일한 조아라의 실력과 평판을 익히 듣고 있었던 터다.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대학(Central St Martins College of Art and Design) 출신으로, 샤넬 공방 르마리에(Mason Lemarie)를 맡고 있는 크리스텔 코셰의 눈은 정확했다. 조아라와의 협업 결과는 ‘LVMH(루이비통모엣헤네시) 프라이즈 올해의 디자이너' 수상으로 이어졌다. 수상 당사자는 코셰지만, 패션 작업은 개인의 산물이 아니기에 팀 파워는 그래서 더 소중하고 중요하다. 이후 프랑스 패션업계는 “조아라와 코셰의 '시너지 효과'가 파리에서 주목할 만한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게 파리에서 15년 간 활동한 조아라(37, 프랑스 영주권자) 디자이너는 지난해 완전 귀국, 아크(ARCH)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했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이름 조아라. 하지만 파리에서는 이미 실력파로 인정받았던 그다. 그런 그는 지금 서울에서 ‘빅 스케치’를 구상 중이다. '작은 옷감'이 아닌 ‘한국패션의 미래’라는 큰 그림이다. 우리가 조아라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아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그를 글로벌 매체 재팬올이 만나 3색(블루, 블랙, 레드)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 샤넬 아트 디렉터 크리스텔 코셰(Christelle Kocher)는 현재 중국, 일본 등에서 큰 각광을 받고 있다. 그는 자기의 이름을 딴 ‘코셰’라는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다. 조 디자이너는 코셰에 대해 “미래성이 탁월하고 함께 일 하면서 내 역량도 펼칠 수 있는 동료”라고 소개했다. 패션 잡지 엘르 중국판에 소개된 코셰의 특집 기사.> # 공방에서 만난 스톡맨(stockman)과 주키(JUKI) 재봉틀 서울 양재역에 있는 아크(ARCH)의 공방. 조아라 디자이너가 명함을 건넸다. 잠시 당황스러웠다. 앞뒤 모두 블랙. 특이한 명함이었다. "블랙이 제 컬러이자 컨셉트입니다." 옷도 블랙을 즐겨입는다고 했다. 공방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아담했다. “조만간 개인 컬렉션을 계획하고 있다”는 조아라 디자이너는 손가락 10뼘 되는 크기의 긴 테이블에서 작업 중이었다. 조각조각난 크고 작은 천들, 다양한 작업도구들, 유명 디자이너들의 책들이 테이블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명품 마네킹이 눈길을 끌었다. “프랑스에서 갖고 온 스톡맨(stockman)이라는 인체모형 보디에요. 디자이너들에겐 최고의 작업 도구죠.” 스톡맨엔 세련된 블랙 드레스가 입혀져 있었다. “네오플랜이라는 소재로 만든 작품인데, 스톡맨으로 입체재단 작업을 하면 이 드레스처럼 핏(fit)이 잘 살아납니다.” 스톡맨 외에 다른 2개의 마네킹도 옷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기억(ㄱ)자로 배치된 두 개의 행거에는 그동안 작업한 여성복과 아동복들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곧 세상에 빛을 보게 될 조아라 디자이너의 ‘프렌치적 아이템들’이다. 눈을 잠시 돌렸다. 조 디자이너의 손때가 묻은 공업용 주키(JUKI) 미싱기가 눈에 들어왔다. 15년 패션유학의 경험을 말해주는 소중한 자산이다. <사진= 지난 5월 말 ‘전 세계 패션계의 셀럽’ 패리스 힐튼이 자신의 화장품 런칭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패리스 힐튼 스킨케어 어번 나이트 파티’(Paris Hilton Skincare Urban Night Party) 행사장에 패리스 힐튼과 조아라 디자이너가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힐튼은 조 디자이너의 어깨에 손을 살짝 얹었고, 조 디자이너는 힐튼의 허리를 살짝 감쌌다.> #칼 라거펠트-이브생 로랑을 배출한 파리의상조합학교 파리 유학 시절이 궁금했다. 예비 패션 디자이너들은 대개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하지만 강원도 강릉 출신인 조 디자이너는 고등학교(계원예고)만 졸업한 채 파리로 떠났다고 한다. 2002년의 일이다. 당돌한 사실 한 가지. 중학교 시절, 아버지에게 “일본 기술 전수학교로 유학을 보내달라”고 졸랐다. 아버지는 기가 찼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하지 않겠니." “일본이든, 프랑스든 언어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는 조 디자이너는 자신의 꿈을 키워 줄 학교로 ‘파리의상조합학교’(Ecole de la 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 Parisienne)를 선택했다. 1927년 세워진 이 학교는 세계에서 가장 전통있는 패션 스쿨의 하나로 꼽힌다. 4년 과정으로 철저하게 오뜨 쿠띄르(Haute couture: 고급 맞춤복) 기법을 전수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패션계의 카이저’(황제) 칼 라거펠트, ‘패션의 전설’ 이브 생 로랑, 일본 유명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이 학교 출신들이다. 이 가운데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브랜드는 한국팬층이 두껍다. 히로시마 출신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1938~)가 런칭한 이 브랜드는 ‘삼성그룹의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이 좋아하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작은 삼각형을 서로 연결해 만든 바오바오(BAOBAO)백과 주름옷으로 불리는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 라인을 탄생시킨 주인공이 조아라 디자이너의 학교 대선배인 이세이 미야케다. 조 디자이너는 “파리의상조합학교가 가지고 있는 전통성과 기술력 그리고 세 선배 등 이 학교를 나온 사람들의 행보가 나한테 큰 영향을 줬다”고 했다. “커리큘럼 중에서 우리 학교가 가장 신경 써서 가르치는 기법은 ‘입체재단’입니다. 평평한 종이나 천에 자를 대고 옷본을 그리는 평면 재단과 달리, 입체재단은 보디(인체모형)에 직접 얇은 천을 대고 모양을 잘라내서 옷본을 만드는 기법이죠.” <사진= 조아라 디자이너는 한국 패션계에선 아직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프랑스 패션계의 자존심’ 샤넬 하우스와 인연을 맺는 등 현지에서는 실력파로 인정 받았던 그다.> 학교를 졸업한 조 디자이너의 주된 무대는 '파리 패션 위크'. 겐조(Kenzo), 프랑크 소르비에(Frank Sorbier), 안 발레리 아쉬(Anne Valérie Hash), 크리스텔 코셰(Christelle Kocher) 등의 테크니션 브랜드들을 거치면서 프레타 포르테(기성복)와 오뜨 쿠띄르(고급 맞춤복)를 섭렵했다. 이중 안 발레리 아쉬의 키즈 라인(브랜드명: 안 발레리 아쉬 마드모아젤)의 프레타 포르테 총괄 디렉터를 맡는 등 안 발레리 아쉬와는 8년간 같이 작업했다. 그런 안 발레리 아쉬는 파리의상조합학교 후배인 조아라에게 “너를 통해 아동복의 미래를 보았다”고까지 높게 평가했다. 조 디자이너는 2004년 '디암 프라이즈 콩쿨' 파이널 리스트와 2005년 '국제 신인 디자이너 콩쿨' 파이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당시엔 브랜드에 소속되어 있어서 개인적으로 크게 상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그는 "이제는 개인 브랜드를 런칭했으니 코셰처럼 'LVMH 프라이즈' 같은 상을 노려볼 만하지 않겠느냐 (웃음)”고 했다. <사진= 조 디자이너는 여성복, 아동복 패턴을 두루 섭렵했다. 그동안 작업해 온 여성복과 아동복이 행거에 걸려 있다.> <사진= 조 디자이너가 인체모형 마네킹인 스톡맨(stockman)에 작업을 하고 있다.> # 15년 파리 활동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 조 디자이너는 한국으로 오기 전 샤넬 디렉터인 크리스텔 코셰(Christelle Kocher)와 작업했다. 코셰는 2014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코셰’(Koché)를 론칭하면서 전 세계 패션 스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금은 샤넬보다 코셰 브랜드의 약진이 무섭다고 한다. “코셰와 같이 했던 작업은 그동안 샤넬이 해온 모든 전통적인 방식을 활용하돼, 그것을 어떻게 재조합하느냐는 것이었어요. 코셰는 옷에 어떤 포인트를 넣었을 때 사람들에게 어필이 되는지를 잘 아는 디자이너였어요.” 당시 파리엔 “코셰에게는 조아라가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고 한다. 코셰에게 조아라 디자이너의 존재감은 컸다. 그런 코셰는 조 디자이너가 오랫동안 옆에 있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조아라 디자이너에게는 또 다른 꿈이 있었다. 그는 지난해 안정된 자리를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가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었어요. 한국패션의 미래 같은 걸 구상해 보고 싶었어요. 많이 아쉬웠던지 코셰가 저한테 샤넬 디렉터 자리를 제안했어요. 샤넬 스튜디오에서도 콜을 받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뒤였어요. 코셰는 올해 스포츠브랜드 나이키와 협업하면서 중국, 일본 등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코셰의 나이키 작품을 봤더니 제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 있었어요. 나쁘지 않았어요. 최근에 연락이 왔는데, 다시 협업을 해보자고 하더군요." “나이키와 협업에서 코셰가 중점을 둔 건 뭐냐”는 질문에 조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코셰는 이게 나이키 브랜드인지 디자이너 브랜드 인지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만들었죠. 나이키라는 상업적 이미지에 자신의 프렌치라는 고급스러운 장점을 잘 녹아들게 한 거죠.” <사진= 작업대에서 스케치 작업을 하는 조 디자이너.> # 자신의 영어 이름 따서 아크(ARCH) 브랜드 런칭 대화는 브랜드로 이어졌다. 조 디자이너는 귀국 후 자신의 영어 이름(ARA CHO) 이니셜을 따서 아크(ARCH)라는 브랜드를 런칭했다. 아크에는 건축을 뜻하는 영어 아키텍쳐(ARCHitecture)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패션디자이너에게는 옷감 소재 선택이 중요한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거기에 뭘 담느냐 하는거죠. 저는 ‘기품 있으면서도 편안한, 그리고 여성성’을 추구합니다. 건축이 건물을 쌓아 올리듯, 아크는 ᐃ기품 ᐃ편안함 ᐃ여성성을 패션예술에 입히는 것이죠.” 조 디자이너는 ‘프랑스 정통 오뜨 쿠띄르’를 지향한다. 15년 파리 유학의 결정체. 그렇다고 마냥 프랑스 스타일만 고집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작품에서 프렌치적 소스를 내세우겠지만, 거기에 코리아 브랜드라는 걸 어떻게 살려야 할지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 브랜드를 제 능력선에서 뽐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들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큰 숙제 중의 하나죠.” <사진= 15년 파리 생활을 접고 서울에서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는 조 디자이너가 거울 앞에 섰다.> <사진= 조 디자아너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공방의 모습.> # 와인과 고양이 '러버'(lover) 재미난 이야기도 들려줬다. 조아라 디자이너는 프랑스에서 작업하면서 2가지로부터 '작은 힘'을 받곤 했다고 한다. "와인과 고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프랑스가 와인의 나라인 만큼, 물보다 더 많이 마신게 와인입니다. 혀가 절여지는 느낌까지 받았죠. 자주 들른 가게에서 와인을 사와서 '입에 머금고' 작업하곤 했어요." 실제로 그의 공방에는 와인 행거에 와인이 여러 병 꽂혀 있다. 와인 이름들이 흔하지 않았다. 그럼, 고양이는 왜일까. 조 디자이너는 12살짜리 ‘레아’라는 이름의 프랑스산 고양이와 함께 산다. 덩치가 엄청나다. “제 유학생활을 온전히 함께 했죠. 귀국 하려는데 12년 키운 이 녀석을 도저히 두고 오지 못하겠더군요. 다행히 한국에서도 적응 잘하고 있고 제게도 여전히 힘이 되고 있죠.” 긴 대화지만, 한 마디만 더 물었다. 조 디자이너의 꿈은 옷을 만드는데 만 머물러 있지 않다. “오드리 헵번이 그랬던 것처럼, 패션을 통한 기부 활동이 제가 꿈꾸고 있는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이디어가 달릴 때는 ‘검색’보다는 ‘사색’을 통해 답을 찾는다는 조아라 디자이너. 그와 몇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내린 결론. “그의 브랜드 아크(ARCH)가 불꽃을 튀기며 솟아 오를 날이 머지 않았구나.”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02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주말 특집 퀴즈,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와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어 선셋”, 그리고 (덜 알려졌지만) 노라 에프런의 “줄리 앤 줄리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https://www.vanityfair.fr/culture/voir-lire/articles/shakespeare-and-company-la-librairie-parisienne-refuge-de-la-beat-generation/24029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이다. 파리 여행 다녀온 분들이면 아마 거의 모두 이 서점을 봤거나 지나쳤거나 했을 것이다. 노트르담 맞은 편, 찾기도 쉽고 한 번 지나치면 안 쳐다볼 수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름도 그렇지만, 파리 한복판에 있는, 영어 책을 다루고 있는 서점이다. “다룬다”에 강조. 여기서는 책을 팔기도 하지만 책을 대여도 해 주고, 손님이 멋대로 잠을 자기도 하며 온갖 책 관련 이벤트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쩌다가 파리 한복판에 이런 영어 책 서점이 생겼는지 궁금할 수도 있겠다. 그 시작은 아무래도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가 파리에 대거 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 온 (군인 외에) 미국인들이 많았다. 방향을 잃은 문화 인사들이었는데, 개중 아무래도 제일 유명한 이가 헤밍웨이일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 실비아 비치(Sylvia Beach)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녀가 프랑스의 동성연인 아드리엔 모니에(Adrienne Monnier)와 같이 만든 서점이 이것이었다(참조 1).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서점을 닫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게 이유가 있었다(참조 2). --------------- 하루는 독일군 장교가 와서 진열장에 있는 제임스 조이스의 책,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를 팔라고 했다. 벌써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제임스 조이스? 당연히 이 서점으로 와야 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실비아 비치는 제임스 조이스의 친구였고, 어디에서도 출판하지 못했던 “율리시스(Ulysses)”를 출판한 곳이 바로 이 서점이었다. 독일군은? 왠지 파리에 들어간 독일군들은 인텔리들이 많지 않았을까? 실비아는 그에게 진열장 책이 파리에 있는 단 한권의 피네간의 경야이며 당신에게 팔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데 독일군 장교 왈, “독일에서 제임스 조이스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요.” ...예? 열흘 정도 후, 그 장교는 다시 돌아와서 진열장의 제임스 조이스 책이 없어졌는데 뭐냐, 당장 내놓으라고 윽박지른다. 그녀는 그거 내가 가졌다고 말했고, 그 장교는 매우 분노한다. 오후에 와서 모든 책을 다 압류하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서점 문을 닫고 친구들을 동원하여 2시간 내에 모든 책을 모처에 숨겼다. -------------- 이 서점을 되살린 것은 실비아 비치의 친구였던 조지 휘트먼(George Whitman)이었다. 참, 詩人 월트 휘트먼과는 전혀 혈연관계가 없다. 동명이인일 뿐. 1951년에 “Mistral”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점했는데 실비아가 원래 자기 서점 이름을 주겠다고 했고,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을 맞이하여 1964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된다. 조지 휘트먼은 그 후로 2011년 죽기 직전까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경영한다. 공산주의자이자 무정부주의자였던 그는 서점을 누구에게나 개방했고, 꼭대기 자기 방에 열쇠도 없었다. 책 주문은 우편 주문으로만 했으며, 전화기는 2000년대 들어서나 한 대 마련했다. 작가들이나 문학도들에게는 서점 내에서 잠을 자도 된다고 했고, 주말이면 팬케이크를 구워주기도 한 그는 꽤나 다루기 힘든 늙은이였던 모양이다. 1913년생이다. 하루는 사뮈엘 베켓을 초청해서 저녁을 마련한 다음, 두 인물은 서로 말 없이 한동안 서로를 쳐다보기만 한 적도 있었다. 자러 오는 손님들 역시 휘트먼의 “kibun”에 따라 거절당할 때도 많았다. (사례: 조니 뎁) -------------- 그는 계속 독신이었다가 1970년대에 한 여인을 만나고 1981년 딸, Sylvia(당연히 실비아 비치의 이름을 딴 것이다)를 낳는다. 그의 나이 67세였다. 그때부터 딸 실비아는 서점의 마스코트가 됐다. 언제나 서점에서 놀았고, 세계구급 작가들이 그녀에게 책을 읽어줬다. 그리고 가끔은 배낭족들에게 책 3권을 주고 실비아를 봐달라고 한 적도 있는 모양이다. (그 배낭족들은 실비아가 어른이 됐을 때 다시 찾아와서 실비아가 살아있는지 묻는다.) 서점 앞에 앉아있는 실비아 비치 휘트먼 그러다 1980년대 후반, 실비아의 어머니는 휘트먼과 결별했고, 실비아는 어머니를 따라 스코틀랜드로 가서 학교를 다니다가 대학을 마치고 다시 아버지의 서점으로 돌아온다. 휘트먼의 나이가 이제 80대였다. 실비아는 서점에서 아버지가 자신에게 썼지만 보내지 않았던 편지 상자를 발견하고는… 어떻게든 후계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참조 3). 그는 딸을 자랑스러워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런던에서 온 배우, 에밀리랍니다”라고 능청을 떨었다. 물론 다들 알고 있었다. 액자 사진 속 아이와 똑같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러나 전화기를 놓으려 하고, 신용카드 리더기까지(!) 놓으려 하는 딸과 마찰이 좀 있었다. 휘트먼은 딸을 “마거릿 대처”라 놀렸다. 다만 도서 배치만은 도저히 아버지를 무시할 수 없었다. 휘트먼은 모든 책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다 알고 있었다. -------------- 서점의 역사와 함께 해온 휘트먼의 유산은 책만이 아니다. 온갖 쪽지와 메모, 알바지원서(!)까지 다 놓여 있다고 한다. 여기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미스터리 세 가지가 나온다. 첫 번째, 제임스 조이스의 시신이 서점에 있다. -> 이건 아니라고 한다. 두 번째, 가끔 이유 없이 책이 떨어질 때가 있다. 아버지의 유령일까? 세 번째, 꽂혀있는 명함 중에 90년대 Halliburton CEO 딕 체이니의 명함이 있다. 체이니 부통령이 정말 여기를 방문한 것일까? 상당히 안 어울리는 조합이며, 아직 수수께끼이다. -------------- 참고 1. Sylvia Beach Interview: https://youtu.be/UnJYK5t--Xo 2. Syvlia Beach interview on James Joyce and Shakespeare & Company (1962): https://youtu.be/R1Zbw39MCm4 사실 이 인터뷰에 재미나는 내용이 매우 많다. 제임스 조이스와의 관계도 그렇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리 해방 이후, 숨어있던 그녀를 구하러 온 인물이 다름 아닌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3. 조지 소로스에게 조건 없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을 인수하라고 요청한 적도 있는 모양이지만 답변이 없었거나 부정적이었던 듯 하다. 결국 딸인 실비아가 현재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4. 현재는 홈페이지도 운영 중! https://shakespeareandcompany.com
세계 식사 예절
프랑스 X : 손을 무릎에 두기 O : 두 손을 테이블 위에 두고 먹기 ▷ 포크나 칼 같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손목과 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자. 독일 X : 칼로 감자 자르기 O : 포크로 감자 으깨기 ▷ 칼로 감자를 자른다는 건, 감자가 덜 익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크로 감자를 으깨자. 그레이비 소스를 끼얹어 먹기에도 편하다. 스페인 X : 밥 먹자마자 자리 뜨기 O : '소브레메사(sobremesa, 저녁 식사 후 차를 마시며 이야기 하는 시간)'을 즐기자 ▷ '소브레메사'는 음식을 먹고 소화하는 시간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 편히 쉬기도 한다. 영국 X : 아스파라거스를 도구로 먹기 O : 손으로 아스파라거스 먹기 ▷ 아스파라거스가 드레싱 혹은 디핑 소스와 함께 나올 땐 손가락을 사용한다. 줄기 끝을 잡고, 소스에 찍어서 한입 베어 문다. 딱딱한 부분은 접시 가장자리에 놓자. 헝가리 X : 맥주 마시면서 '치어스'라고 하기 O : 술이 담긴 잔이라면 서로 부딪쳐서 땡그랑 소리내기 ▷ 1848년 헝가리 혁명이 있었을 때, 헝가리를 이긴 오스트리아 군인들이 맥주잔으로 건배를 했다. 헝가리 사람들은 150년간 맥주로는 건배를 하지 않는다. 그 전통은 아직 남아 있다. 멕시코 X : 타코를 칼, 포크를 사용해 먹기 O : 손으로 먹기 ▷ 현지인처럼 먹기 : 엄지, 검지, 중지를 사용해 타코를 집어 먹자. 조지아 X : '수프라(supra, 덕담을 나누며 술을 마시는 것)' 도중에는 와인을 홀짝이지 말자 O : 건배할 때는 한 번에 마시기 ▷ 수프라는 축하할 일들이 많을 때 열리는 저녁파티다. 연회를 집행하는 사람을 일컫는 '타마다(tamada)'는 축하할 일들의 숫자를 알려준다. 다행히도 술잔은 작은 편이다. 일본 X : 젓가락을 밥공기에 꽂아두기 O : 가로로 놓기 ▷밥공기에 젓가락을 꽂는 것은 일본 불교에서 봤을 때 죽은 사람에게나 하는 의식이다. 젓가락은 접시 옆 혹은 그릇 위에 가로로 두자. 한국 X : O : ▷ 다 아시죠?^^ 태국 X : 포크를 사용해서 음식을 먹기 O : 포크는 숟가락에 음식을 옮기는 용도로 쓰자 ▷ 태국에서 포크는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포크와 숟가락은 쭐랄롱꼰 왕이 1897년 유럽을 방문하고 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그 전까지 타이 사람들은 손으로 밥을 먹었다. 또한 중국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면 젓가락은 사용하지 말길.
여행사진 뽀샵 요청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_+
어때여 연휴의 시작 행복하게 보내고 계세여? 연휴니까 좀 웃으시라고 오늘은 웃긴거 가져와봤어여!! 네덜란드의 한 음식 블로거 Sid Frisjes씨가 4chan에 자기 여행 사진 뽀샵을 요청했는데 벌어진 일들을 지금부터 보여드리려고 해여+_+ 울나라도 이런 뽀샵놀이가 많은데 외쿡애들도 이러고 노는군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구 내 손가락이 에펠탑 위에 있게 뽀샵해 줄 수 있나여?ㅋ 이케 올렸다고 해여..ㅋㅋ 그랬더니...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네여 "The Eiffel Tower"가 손가락 밑에 있네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린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포탈이 열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웜홀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와중에 지게차는 현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창의력대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데없이 이티뭐임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려 다리도 길어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발도 신겨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펠탑 지어지고 있는중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네 손가락 밑에 에펠탑 있는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워+_+ 기린한테 밥주는 기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 손 아래 둘 수 없다면 차라리 없애버리겠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또 뭨ㅋㅋㅋㅋ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왓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출처 : http://4archive.org/board/b/thread/610474939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뭐가 젤 웃기세여? 아 올리면서 웃겨 돌아가실뻔했네옄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