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T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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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정말이지
너를 생각하는게 왜이리도 몽롱하도록 깊이 빠져드는 존재로 나에게 와있어서.. 더 닿아 있을 것이 없어 좋아서 설레이는 것이 밉지가 않아 기다려지는 낯 선 감선들에 여운에 가시지 않는 끌림으로 흘리듯 가까이 다가가 안겨지는게 미치도록 행복해서 눈물이 난다. 어느순간 멀어질까 겁이나 움츠려 드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미안.. 시작부터 멀어질 걱정부터 해버리는 나라서.. 더 안아주라 더 예뻐 해주라.. 아무 생각이 나질 않도록 너만 생각하도록 사랑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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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밤 아래 위스키, 몽골#3
게르의 밤은 밤 하늘의 은하수 만큼이나 화려했다. 내부에 나무를 때우는 난로는 장작을 넣었을 땐 반팔에도 땀이날 정도로 더웠지만, 금방 사그라들고 냉기가 게르 안에 퍼진다. 침낭의 보호막이 없었다면 잠도 제대로 못잤을게 분명했다. 그리고 난로에는 장작도 들어가지만 말린 말똥도 연료로서 태워진다. 태워지면서 은밀하고 묵직 쿱쿱한 냄새는 따스함과 맞바꾼 공정거래였다. 다음날 아침, 길의 윤곽들을 온 몸으로 끌어안고 달리고 달려 차강소브라가에 도착했다. 한 때는 물에 잠겨있었다고 하고, 몽골의 그랜드캐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층층이 쌓인 지층이 융기 해서 마치 누군가가 땅에 크레파스로 줄을 그어놓은것 같았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원시원한 모습과 계곡 사이로 내려가는 길은 다른 세계..까지는 아니고 다른 동네로 이어져 있는 숨겨진 지름길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모래바닥에 내려가는 길 내내 미끄러짐에 주의해야 했지만 그만큼 내려올 가치가 있었다. 매일 하루 한번씩 작은 마을에 들러 먹을것과 함께 씻기 위한 생수도 구매했다. 오늘 숙소는 현지 유목민의 게르를 빌려 물나오는곳은 커녕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5명이 마시고 씻을물로 8리터 구매했다. 아예 대용량으로 4리터씩으로 판매를 하고 있었다. 이날은 밤에 별을 보며 함께 먹을 살라미도 하나 구매했다. 몽골이 고기가 저렴해서 주식이 고기인것 같다. 모든 메뉴들이 고기를 덮고 나온다. 대신 양고기의 냄새는 벗어날 수 없다. 돼지고기는 가격이 비싸 주로 양고기로 나온다. 나도 고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고기러버 지만 여기서 만큼은 채소가 더 좋았다. 마치, 치킨만 계속 먹다가 콜라 한 모금 마신것 같은 개운함이다. 길을 가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은면 그자리에 세워준다. 문제는 너무 평평하게 뻗은 초원인데 모두의 배려와 함께 우산이 필수품이다. 있어도 야트막한 언덕과 낮은 짧은 풀밖에 없다. 불안불안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대자연과 하나(?)가 된 느낌이 묘하게 기분좋다 쭉 뻗은 도로에서 사진을 찍고 놀다가 보니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했다. 어두워지기전 숙소에 도착하진 못했지만 지평선을 넘어가는 해의 모습에 모두가 아무말없이 멈춰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지평선에 걸쳐있는 태양과 주변이 노을로 온통 붉게 물든 모습이 지평선 저 너머가 온통 맹열하게 불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기세가 푸른 하늘마저 새카맣게 태워버려 밤이 되었다. 숙소에 도착해 푸르공에서 내리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북두칠성! 누군가 밤하늘에 북두칠성 모양으로 led등을 달아놓은 줄 알았다. 선명하게 보이는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눈으로 보면서도 진짜인지 의심을 했다. 두번째 밤하늘의 별빛을 받기 위해 게르에 짐을 풀자마자 위스키 한 병과 살라미를 주섬주섬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현지 유목민의 게르라 주변에 아무도 없고 우리만 있었다. 대지의 중심이 된 색바랜 동심의 생각이 들에 괜히 들떴다. 10년도 더 지난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보정도 하지 못했지만 눈에만 담아가기 아까워 셔터를 눌러댔다 돌아가면 사진 보정 하는 것 부터 배워야겠다. 너무 날로 두기엔 아까운 사진들인 것 같다
<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야만적인 앨리스씨> / 황정은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처음 읽은 황정은 작가의 소설이다. 제목만 봐서는 어떤 소설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앨리스씨와 야만적.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얽혀 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접한 내용은 어렴풋이 상상했던 이미지를 철저히 배신했다.(심지어 앨리스씨도 안 나온다. 앨리시어씨는 나오지만.) 여장 부랑자 앨리시어의 소개로 소설은 시작한다. 사거리 한가운데 선,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듯한 앨리시어는 자신이 왜 앨리시어가 되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과거로 파고들어간다. 눈을 뜬 채 꿈을 꾸면서. 앨리시어는 고모리라는 시골 마을에 살던 소년이었다. 남동생이 하나 있고 늙은 아비가 있으며 젊은 어미가 있다. 집은 날림으로 지은 컨테이너. 곧 개발될 땅이라 굳이 오래 살 집을 지을 필요가 없으므로 앨리시어의 가족은 컨테이너에 산다.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인 컨테이너의 존재 이유는 개발 이후 돈을 받아내는 것뿐이다. 늙은 아비는 컨테이너 앞 개장에 개를 키운다. 암컷 개가 새끼를 낳으면 그중 어미 역할을 할 개 한 마리만 살려놓고 나머지는 늙은 아비가 먹는다. 그렇게 늙은 아비는 어미개가 낳은 새끼가 크면 잡아먹고 남은 새끼가 커서 낳은 새끼가 크면 또 잡아먹는다. 젊은 어미는 늙은 아비의 두 번째 부인이다. 젊은 어미는 자신의 꼬여 버린 신세를 어린 앨리시어와 그 동생에게 풀어낸다. 무자비한 폭력으로. 어린 앨리시어는 기분이 틀어져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어미의 상태를 '씨발됨'이라고 부른다. '씨발'적인 상태의 그녀는 너무 강력해서 어린 앨리시어와 동생은 그 '씨발'에 순응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어린 앨리시어는 늙은 아비의 무관심과 젊은 어미의 '씨발됨' 아래에서 자라난다. 그러다 나이가 먹고 키가 자라고 힘이 세진다. 어미보다도 더. 어느 순간 어미의 '씨발' 상태도 곧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때를 기다리던 앨리시어가 곧 '씨발' 상태의 어미보다도 강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던 그때, 동생이 죽는다. 어느 날 밤, 자해 쇼를 하는 아비와 아비에게 매달리는 어미와 동생을 놔두고 앨리시어가 집을 나간 그날 밤. 동생은 앨리시어를 찾으려 했는지 가출을 한 건지는 모르나 집을 나왔고, 공사장의 흙구덩이에 빠졌고, 하수처리장에서 흘러나온 하수와 오니토가 흙을 무너트려 흙구덩이를 메웠고, 동생은 그 흙에 묻혔고, 기도에 끈적끈적한 모래가 가득한 채로 죽었다. 그리고 앨리시어는 지금의 앨리시어가 되었다. 불쾌함 그 자체인 여장 부랑자, 앨리시어가. 소설은 과거형 문장으로 쓰이기 마련이다. '그가 문을 열었다'나 '형이 동생을 때렸다'와 같이 소설 속 상황은 읽는 그 순간 이미 과거의 일이기 때문이다.('철수가 동생을 때린다. 동생이 맞는다.'와 같은 현재형 문장만 줄줄이 이어지는 소설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어색한지 알 수 있다.) 보통 현재형 문장은 특수한 상황 묘사나 강조하고 싶은 문장 등에 한해서 쓰이곤 하는데 이 소설은 다르다. <야만적인 앨리스씨>는 대부분의 문장이 현재형으로 쓰여 있다.(현재형 문장들의 공격에도 꿋꿋이 소설을 완성해 낸 황정은 작가의 필력에 찬사를 보낸다.) 왜 굳이 황정은 작가는 쓰기 어렵고 일반적이지도 않은 현재형 문장을 고집한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주인공 앨리시어의 상황에서 찾았다. 이 소설은 앨리시어가 과거를 회상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서 끝난다. 앨리시어가 서술한, 독자에게 보여준 그의 과거는 그 자신에게 있어 현실이다. 아비의 무관심, 어미의 '씨발됨'과 폭력, 동생의 죽음은 앨리시어에게 과거가 아니라 바로 옆에서 숨 쉬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그는 아직도 동생이 죽은 그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집을 뛰쳐나와 동생이 죽었다는 죄책감, 조금 더 빨리 어미의 '씨발' 상태에 저항했더라면 동생이 죽지 않았으리라는 후회. 그 기억과 감정들은 앨리시어가 어릴 적 동생과의 추억, 그리고 동생의 죽음에 묶여 벗어날 수 없게 했고 앨리시어가 영원히 과거 속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었다. 끝없이 동생의 죽음을, 자신의 어린 시절을, '씨발' 상태의 어미와 무관심한 아비를 떠올리며. 그렇기에 이 소설은 현재형의 문장으로 쓰일 수밖에 없었다. 앨리시어에게는 과거도 현재이기 때문이다. 앨리시어의 어미는 그렇게도 폭력을 휘둘러대던 동생이 죽고 난 뒤에 거의 정신을 놓고 매일 울어댄다. 그 순간 앨리시어는 복수할 대상을 잃어버린다. 어미가 여전히 '씨발'로 남아있었더라면, 동생이 죽고 나서도 여전히 죽은 동생에게 욕을 내뱉고 앨리시어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더라면 앨리시어는, '씨발' 상태의 어미보다도 힘이 세진 그는, 어미에게 복수의 철퇴를 내려찍어 동생과 자신의 원수를 갚고 여장 부랑자가 아니라 회사원이 되었을 수도, 구멍가게나 고물상을 운영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자신과 동생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어미는 동생이 죽는 순간부터 진짜 어머니가 되어버렸다. 동생의 죽음에 혼을 놓고 울어대는 어미. 앨리시어에게는 어미의 폭력이나 동생의 죽음에 대해 복수할 대상이 사라져 버렸다. 결국 모든 분노를, 울분을, 후회를, 화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던 앨리시어는 망가져 버린다.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과거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 부랑자가 되어. 한 어린아이의 주변에 그 누구도 의지할 어른이 없을 때 앨리시어는 태어난다. 앨리시어가 동생에게 해준 이야기 속 앨리스 소년처럼 앨리시어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아무리 떨어져도 바닥에 닿지를 않는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계속 떨어진다. 언젠가 바닥에 닿겠지, 언젠가 끝나겠지 생각하지만 끝나지 않는다. 계속 떨어질 뿐이다. 앨리시어는 이야기 속 앨리스 소년처럼 과거의 굴 속으로 영원히, 끝나지 않고 떨어진다. 지금도 앨리시어는 저 밑으로, 누군가 잡아주길, 언젠가 끝나길 기대하며 떨어지고 있겠지. 소설 속 한 문장 아무리 떨어져도 바닥에 닿지를 않고 있네... 나는 다만, 떨어지고 있네...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계속, 계속... 더는 토끼도 보이지 않는데 줄곧...
몽할배 수술 그 후...
작년 9월 방광 결석 수술을 하고 미친회복력을 보여주신 개님 12년차 몽할배 새집 이사 후 저세상 분리불안증을 보였지만 이젠 그것도 사라지고 내가 나가든지 말던지 노즈워크의 꼬기만 미친듯이 킁킁대며 찾는다 현관에서 문 박박 긁어대며 울던 할배 이젠 문 열리는 소리 들려야 그제서야 뛰어나오신다 결섯 수술하면서 스켈링도 같이 했는데.... 앞니 두개 발치 댕댕이 보양식은 이게 최고라 함 황태 대가리 우려내는 중 지껀 줄 너무너무 잘 아시는 할배 경건하게 황태국물 기다리심 실밥 뽑고 일주일도 안되서 수술자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산책 개시 수술 직후는 아픈지 잠도 잘 못자더니... 이젠 그냥 드러눕기만 하면 쿨쿨 그래도 엄마 다리사이가 젤루 좋음~~ 빗질 지대루 느껴주시는 할배 "애미야 시원하구나~~~" 운동할러고 산 요가매트..... 할배가 먼저 차지하셨다 아마도 폭신헌게 좋은가부다 그러더니 급기야 내 운동을 방해하신다 폼롤러 못굴리게 앞에 딱 가로막는다 "애미야 뭔 안하던 짓을 하고 그러냐~~" 그러더니 아예 다리 사이에 들어와 폼롤러를 베게삼아 드러누우심 폼롤러 없이 스트레칭 할때도 걍 드러누우심 "헤헤 나랑 노올자~~~" 운동만 할라치면 들이대심 친구가 8살 아들이랑 놀러왔다가 자고 갔는데... 아들이 몽아~~~ 몽아~~~ 한 백번은 넘게 불러대며 쫓아다니며 예뻐라(?) 하던 통에 친구 가고 하루종일 저러고 주무셨음 ㅋㅋ 12살이지만 내눈엔 항상 아가같은 몽할배 잠... 또 잠.... 또 또 잠.... 제대로 잠.... 댕댕12살... 사람으로 치면 거의 70-80세라 하던데... 그럼에도 아직 눈도 깨끗하고 앞니 두개는 사라졌지만 나머지 이빨은 아직 튼튼 산책 나가면 미친듯 질주하셔서 다행이긴 하지만 집에선 거의 잠만 자고 던지기 놀이도 어릴땐 내가 나가떨어져서 "몽아 그만 제발~~" 했었는데... 이젠 몇번 하다 지가 먼저 그만둔다 그모습이 왜이리 짠한지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함께했던 시간보다는 훨씬 적을걸 알기에 문득문득 슬퍼진다 그래도 우리 함께하는 마지막 그날까지 행복하자~~~❤️
코로나 19 사태를 예견한 영화 <감기> 재조명
영화 속 현실이 코앞으로? 정부가 오늘 코로나19 대응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심각 단계를 발령한 것은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사태 이후 11년 만이다. 한편, 몇일새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국민들의 우려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감염’을 소재로 만들어진 과거 영화들이 역주행 하고있다. 바이러스 확산 우려로 외출을 꺼리면서 영화관 대신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시청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영화에서는 한국 영화 최초로 바이러스의 감염 공포를 다룬 영화 <감기>가 재조명되고 있다. 영화는 평소 가볍게 받아들였던 감기라는 질병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놀랍게도 현재 중국 우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이 영화 속 대한민국의 현실과 맞닿은 점이 아주 인상적이다. 또한, 극한의 상황에 치달으며 식료품을 확보하기 위한 갈취 또는 폭동을 일으키는 인간의 이기심이 그려지면서 이번 코로나19 양상에서 드러난 현시점의 모습들을 연상시키고 있다. 영화 <감기>속 이야기를 따라가 보며 더 큰 재난사태에 미리 대비해 보는 건 어떨까. 더 자세한 내용은 <아이즈매거진> 링크에서
[펌] 냉혹한 초고대 터널의 미스테리.jpg
쌈바 쌈바춤을 추는 브라질에 가면 이런 기묘한 동굴들을 발견할 수 있엉 사진만 보면 뭐가 기묘한지 잘 모를텐데 이게 잘 알려지지 않았어도 정말 기괴한 동굴임. 작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는데 큰 건 넓이가 4m가 넘고 깊이는 100m까지 파고들어가는 경우도 있음. 그런데 이건 일단 '동굴'이라고 부르기도 좀 뭐한데 니들 저렇게 매끈한 동굴 본 적 있음? 보통 동굴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울퉁불퉁 뾰족뾰족이잖아 왜냐면 동굴이 생성되는 방식이 매끈한 거랑 거리가 멀기 때문임 동굴은 보통 지하수가 암벽을 적셔서 녹여버리면서 형성되는 거거든 그러니 당연히 녹다 만 종유석이라던가 석순이라던가 이런게 존나 여드름처럼 형성되면서 사춘기 피부가 될 수 밖에 없단 말야 근데 이 브라질 미스터리 터널은 존나 매끈한데다 녹다 만 종유석이나 석순이 하나도 없고 뭣보다 물이 녹일 수 없는 변성화강암이나 사암으로 만들어져 있엉 그러니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동굴이 절대 아니라는 거지. 게다가 동굴이랑은 다르게 명백히 의도를 가지고 건설된 흔적도 보이는데 수백미터가 넘는 통로들이 서로 만나서 겹치는 일종의 교차로 공간까지 있는데 이것도 그냥 만들어진 동굴에선 보기 힘들거든 원시인들이 판 터널이냐 싶을 수도 있는데 물론 그런 재미없는 물건은 아니었다 추정해보니까 대충 10,000년 전에 만들어진 물건인데 인간이 간신히 신석기 테크 탔을 무렵이거든 빗살무늬 토기가 최신 기술인 인간들이 깊이 수백 미터가 넘고 너비 4m가 넘는 매끈한 동굴을 만들 이유도 없고 그럴 여력도 없다 게다가 동굴 안에서는 인간이 만든 유물이나 뼈 따위가 하나도 발견되질 않았음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절대 아닌데 인간이 만든 것도 절대 아니라는거지 그럼 누가 만든껄까? 인간 대신 발견된 흔적이 있긴 했음 동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천장과 벽면에 괴상한 긁힌 자국이 보이기 시작했거든 처음에는 용암이나 물이 흐른 흔적 아니냐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음 발톱 자국이었다 그것도 존나게 커다란 아까도 말했지만 물 따위로는 절대 안 녹는 튼튼한 바위를 무슨 점토인마냥 쭈아악 기스를 낸 자국이 발견된 것이다 이 사진만 보면 발톱자국 크기가 잘 감이 안 잡힐텐데 이렇게 사람이랑 비교해보면 대충 두깨가 길이가 짐작이 갈 거임 딱 봐도 발톱크기만 해도 사람 몸통만한 괴물이 이 동굴에 살았던 것이다 뭐 굳이 자국까지 갈 필요도 없이 동굴 근처에선 이런 발톱 화석이 발견됐음. 누가 봐도 이 발톱의 주인이 동굴을 만든 장본인이 틀림없었다 발톱 크기로 추정해보면 이 생물체의 크기는 키만 해도 4.6m가 넘고 몸무게는 2.5톤이 넘어서 현대 코뿔소 뺨치게 거대했을 걸로 추정됐음 근데 코뿔소 새끼들은 존나 멍청하잖아 팔도 없고 도구도 못 쓰고 근데 얘네는 팔도 달렸고 팔끝에 울버린 손톱도 달렸고 동굴을 매끈하게 파낼 수 있는 기술력이 있단 말이야 두려워져요 현실 오우거에요 동시대 인간도 못 파는 굴을 매끈하게 팔 수 있는 기술력과 존나 큰 발톱을 가진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실존했던 것이에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이런 터널을 팠는지는 아무도 몰랐음. 수십년 동안 이 고대종족의 정체에 대해 궁금하던 와중에 최근 2017년에 드디어 답이 나왔는데 놀랍게도 아직까지도 진화해 흔적을 남긴 종족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 정체는 바로 나무늘보에용 아니 진짜로 개찐따 동물의 대명사지만 사실 의외로 대단한 동물인 나무늘보의 조상님들이 이 동굴을 만든 것이다 물론 옛날엔 좀 컸어 좀 많이 컸네 예전에는 나무에 숨어 사는 은신캐가 아니라 땅에 붙어 사는 씹힘캐였기 때문에 땅늘보라고 불렸을걸. 저기 존나 무섭게 생긴 발톱 보이지? 저걸로 자기들이 살 동굴을 파냈던 거임. 위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요즘에야 좃만해졌지만 원래는 코뿔소보다도 덩치가 더 컸던 애들임 워낙 덩치가 크다보니 사람들이 보기엔 동굴처럼 보이는 토목공사를 해낼 수 있던 거지 코뿔소만한 애들이 수십, 수백년을 걸쳐서 단단한 암벽에 동굴을 판 끝에 인간의 눈에도 경이로워 보이는 미스테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도 경이로웠는데 당시 빗살무늬 토기 들고 다니던 인간들 눈에는 얼마나 어메이징했겠음 나무늘보 대단해 남미에 냄새나고 이족보행으로 걸어다니는 거인 마삥과리에 관한 전설이 아직도 내려오는데 그게 이런 동굴을 파내던 땅늘보들을 보고 만든 전설 아닐까 싶다 근데 일케 대단한 녀석들이 지금은 다 어디갔냐고? 인간이 다 잡아먹었어 미안해 [출처 - 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