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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 오늘 '이별' 하렵니다!




“왜 전화 안 받아, 이 호랑말코 같은 새끼가.”

밖엔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굵어진 빗방울을 쇼윈도를 통해 바라보던 로라는 주먹을 꾹 쥐었다. 조그마한 그녀의 주먹에 어마어마한 힘이 들어갔다.

“이현우, 니가 이렇게 잠수를 탄다 이거지? 고백할 땐 하늘의 별도 따다준다더니. 그래도 별 하나는 따주고 가는 구나? 이별 말이다, 이 깜찍한 새끼야. 성은이 망극하다, 망극해!”

그녀는 혼자 중얼거리며 꾹 쥔 그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 곧, 자신 뒤의 책상 위에 휴대폰이 요란스레 울렸고, 로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한걸음에 카운터로 향했다.

깜찍한 새끼라며, 호랑말코 같은 새끼라며 속으로 온갖 욕을 퍼부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내심 지금 울리고 있는 전화벨의 주인공이 이현우 그 호랑말코 같은 새끼길 바랐다. 하지만.

“스팸…이네. 썩을.”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쇼윈도 앞에 디피 되어 있는 마네킹 손가락을 툭, 툭 건드렸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에 곧 빗물 가득 머금은 까만 하늘이 푹 담겼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에도 억수 같은 비가 내릴 것만 같았다.


* * *


“야, 오로라. 그 새끼 일방적으로 잠수 탔다며? 아주 미친 새끼네, 그거?!”
밤 열 시가 되기 오 분 전. 로라의 옷가게로 그녀의 친구로 추종되는 두 명의 여자가 우르르 들이 닥쳤다.
그녀는 손님용 탈의실 안에서 낑낑대며 어제 새로 지른 원피스를 갈아입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다. 윽-. 야, 나 살쪘나봐. 지퍼가 안 올라가.”
“그래 기지배야, 너 살 쪘다니까? 살 쪘다고 해도 죽어도 아니라고 부은 거라고 하더니.”
“아, 조용히 하고 빨랑 와봐. 지퍼 좀 올려줘.”
“그래서. 갈 거야? 찾아 갈 거야?”
“당연한 거 아니니? 이 새끼가 지금 날 가지고 놀아도 유분수지. 내가 이대로 가만히, 헤어져 줄 오로라로 보이냐?”

탈의실 안에서 쩌렁쩌렁 로라의 목소리가 울러 퍼졌다. 그녀의 친구들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딸랑 하는 가게 문앞의 종소리가 울렸고 여자들은 일제히 가게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로라는 탈의실 안에서 낑낑대며 겨우 지퍼를 올려 탈의실을 나섰다.

“아, 지금…문…닫으시는 건가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에 쫄딱 맞은 한 여자가 어색한 미소를 띤 채, 여자들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로라는 아홉시 오십칠 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한 번 바라보곤 애써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로 다가섰다.
“아, 저희가 열시되면 마감을 하긴 하는데…”
“저 급히 옷을 갈아입어야 해서…2분도 안 걸릴 거거든요? 어떻게…구매할 수 있을까요?”
여자가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상태를 보아 급히 옷을 갈아입어야 할 것만 같기에 로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꺼두었던 마네킹 쪽의 불을 켰다.
“천천히 고르세요. 저도 어차피 화장 다시 하고 나가려던 참이었거든요.”

로라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친구들을 향해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리곤 비에 홀딱 젖은 그녀에게서 한 걸음 물러서며 또각또각 카운터로 향했다.

‘비에 젖었지만 탐스런 갈색 빛 머리에 오똑 선 콧날. 저건 자연산이라기 보단 의느님에 의해 탄생된 듯한 비쥬얼의 코. 그리고 오렌지색이 잘 어울리는 도톰한 입술. 앞머리가 없는 긴 생머리에 속눈썹이 긴, 눈은 음…건드리지 않았군. 자연스런 쌍꺼풀이 매력적이네.’

보통 미모의 여인이 아닌 듯 보였다. 로라는 안보는 척 하며 카운터에 서서 원피스 쪽을 기웃거리는 비에 젖은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폈다.

“저, 요걸로 갈아입고 가도 될까요?”
삼십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피고 있던 로라는 갑작스레 자신을 돌아보는 탓에 흠칫 놀라며 헛기침을 했다. 자신이 몰래 훔쳐보고 있던 것을 눈치 챈 것은 아닐까, 로라는 아까보다 더 씩씩한 목소리로 탈의실 문을 활짝 열었다.
“흠, 흠흠. 물론이죠. 여기서 갈아입으세요!”

탈의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 카운터 밑쪽에 휙 던지며 로라는 씩 웃었다. 여자 역시 로라를 따라 웃으며 탈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아, 나 갑자기 배 아프다. 너희 계산할 줄 알지? 마지막 손님이니까 뒷 단위 까주는 센스 알아서들 발휘하시고. 나 화장실 간닷!”
“가게 문은? 바로 닫어?”
“어! 내 가방 챙겨서 나와 있어! 가게 불만 좀 꺼주구!”

로라는 두루마기 휴지를 챙겨들곤 가게를 급히 나섰다. 그리곤 조심조심 비를 피해, 바로 옆 상가 복도로 향했다. 무슨 비가 이렇게 쏟아져. 태풍이라도 오려는 건가, 혼자서 중얼거리며 로라는 화장실로 향하기 위해 또각또각 걸었는데, 여간 으스스한 게 아니었다.
자신의 팔을 꾹 쥔 채 로라는 구두 굽 소리를 또각또각 내며 화장실로 들어섰다. 그때, 조용한 화장실 안을 가득 메우는 로라의 휴대폰 벨소리. 로라는 자신의 벨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보세요.”
“누나! 나 오늘 좀 늦는다!”
“좀 늦는 거냐, 아님 해 뜨고 들어오는 거냐? 똑바로 말해라 너.”
“아-. 엄마 아빠 없을 때 자유를 만끽하는 거지. 어차피 너도 오늘 늦을 거 아니냐. 보아하니 불금에 비까지 내리니 술 퍼마시러 가겠구만.”
“어이, 동생. 이 누님은 오늘 술을 마시러 가는 게 아니라 인생에서 제일 중대한…”
“됐고. 아무쪼록 시내에서 마주치지는 말자. 쪽팔리니까.”
“야! 야 이 눔의 자식아! 너 죽을래애-?!”

쩌렁쩌렁 울리는 로라의 목소리. 하지만 돌아오는 건, 무참히 끊겨 버린 휴대폰 너머의 정적 뿐. 로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얘는 참 누굴 닮아서 이렇게 개 썅 마이웨이일까, 하며 손을 씻기 위해 세면대로 향했다.

“울지만 말자. 어떤 대답을 들어도. 어떤 말을 들어도. 구질구질하게 울지나 말자, 오로라.”

로라는 손을 씻으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이 툭,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남자 친구란 자식이…어째 사귀는 1년 동안 한 달 빼곤 매일을 이리도 울리니. 로라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처음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 해놓고선. 그 마음 영원히 변치 않을 거라고 해놓고선. 나만 사랑한다고, 영원히 그럴 거라고, 그러니 자신과 결혼하자고 해놓고선.

로라는 빨갛게 상기된 볼을 물 묻은 손으로 만지작이다 이내 휴지로 물기를 닦으며 화장실을 나섰다. 그러다 화장실 입구에 세워져 있는 커다란 전신 거울 앞에 우두커니 섰다. 구겨진 원피스를 매만졌다.


“야, 이현우. 이젠 내가 빠빠이야. 내가 이제 세이굿바이 하는 거라구.”

그렇게 중얼거리며 로라가 웨이브 진 머리를 손으로 만지작이고 있는데, 갑자기 또각또각 텅 빈 복도에서 남자 구두 굽 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에 누구지…’ 그녀는 그대로 굳은 채 전신 거울을 통해 뒤를 봤다.

그때, 웬 정장을 입은 훤칠한 키의 한 남자가…로라의 시야에 들어섰다. 무심한 듯 양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잠시 화장실 앞에 서 로라를 바라보더니 이내 또각또각 바른 걸음 걸이로 로라 옆에 섰다. 로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주춤주춤 옆으로 물러났다. ‘잘…생겼다. 스타일…도 괜찮구….’

머리를 만지던 그 손 그대로 굳은 채, 로라는 자신도 모르게 남자를 빤히 바라봤다. 로라의 말대로 잘생긴 남자였다. 한 쪽만 속 쌍꺼풀이 진 짝 눈이 매력적이었다. 옆에서 바라봐도 우뚝 선 콧날은 작은 얼굴을 더 갸름하게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키도 크고 어깨도 넓고 비율도 괜찮은 것이,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저 정장에 코트를 입은 채였지만, 스타일도 좋아보였다.

올해 스물여섯이 되는 자신보다는 나이가 조금 더 많은 것 같이 보였지만. 삼십 대 초반? 중반? 넋을 놓고 남자를 바라보던 그녀. 이내 로라의 부담스런 시선을 느꼈는지, 남자가 홱 로라를 내려다보았다. ‘어머, 깜짝이야.’ 로라는 티가 날 정도로 화들짝 놀라며 남자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곤 다시금 만지작이던 머리를 정리하며 빙그르르 뒤돌아섰다.

그런데, ‘가만. 여긴…여자 화장실인데?’
그 생각이 들자, 로라는 다시금 남자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남자 역시 뒤돌아서있던 로라를 거울을 통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부딪혔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여기 여자 화장실이라, 일러주기 위해 붉은 입술을 조심스레 떼었는데.

“여기 남자 화장실인데요.”
“예, 예?”

지금 내가 해야 할 말을 왜 저 분이, 저렇게 얘기하고 있는 거지? 그녀는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여기 남자 화장실이라구요.”

로라가 잘 못 알아들었나 싶어 아까보다 목소리에 더 힘을 주어 또박또박 말하는 남자. 남자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마치 로라가 큰 잘 못이라도 저질렀다는 것처럼. 하지만 그녀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적이라,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아차 싶어 다시 입술을 앙다물곤


“아…네. 죄송합니다.”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조심조심 화장실을 나섰다.


“내가 너무 급해서 남자 화장실을 들어 왔나 보네…”


그럴 리가 없는데, 싶으면서도 뭐 남자 화장실이라고 저렇게 힘주어 얘기하니 자신이 착각했나 보다, 하고 중얼거리며 로라가 화장실을 나서 입구를 돌아보았는데.


“뭐야. 여자 화장실이잖아.”

여자 화장실이란 표시가 화장실 앞에 붙어 있었다. ‘뭐야, 여자 화장실인데 왜 나보고 눈치 줘.’ 로라는 입술을 삐죽이며 화장실 쪽으로 눈을 흘겨보았다.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가 다시금 매장으로 향하기 위해 한 걸음 내딛었는데.


“……?”


또각또각 다시금 남자의 구두 굽 소리가 들렸다. 이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남자가 휘적휘적 여자 화장실에서 나와 바로 옆 남자 화장실로 쏙 들어섰다. 이 무슨 황당한…. 로라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다시 남자 화장실로 들어서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생긴 건 멀쩡한데 순…허당이네. 황당하게, 정말.”

* * *


선뜻 들어서지 못했다. 로라와 그녀의 친구들은 비가와도 여전히 휘향찬란한 시내 한 가운데에서, 그녀의 현 남친인지 구 남친인지 모를 ‘이현우’란 남자가 일하고 있는 술집 앞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로라는 원피스 자락을 꾹 쥐었다.

“야, 뭐해 오로라. 안 들어가?”
“저 새끼, 뭐가 좋은 지 싱글벙글 서빙하고 있네.”

그래도 사랑했었다. 쓰레기 새끼인 걸 알면서도 그 놈과 사귀었었다. 소문난 바람둥이란 걸 알면서도 로라는 자신을 믿어 달란 그 놈의 말을 한 번 믿어보기로 했었다. 그녀라면, 오로라 그녀 자신이라면 바람둥이에 쓰레기에 나쁜 놈이라 소문 난 저 놈을 자신만 바라보는 순한 양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거라 믿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지금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되어 되레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찔러 버렸다.


“됐어. 가자, 그냥.”

로라는 돌아섰다.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서는 로라를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친구들은 바라봤다. 등지고 돌아선 로라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평소완 다르게 다운 된 목소리와 축 처진 어깨가 지금 그녀는 무지 슬프고 아프단 걸 말해주고 있었다.


“들어가서 왜 전화 안 받냐고…실컷 따지고 나서 끝이라고…통보하고 나오면 뭐하겠니.”
“…….”
“이미 저 자식은 나와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뒤늦게 이러는 내 꼴만 우스워지지…안 그래?”


로라의 왼쪽 어깨가 비에 젖었다. 로라의 젖은 어깨를 바라보던 친구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 로라의 성격대로라면 당장이고 저 술집으로 처 들어가 사장 새끼 나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것이었다. 그러곤 로라를 보며 당황하는 그 남자의 뺨을 시원하게 후려치며 ‘꺼져, 이 쓰레기 새끼야!’ 멋있게 말해주고 나왔을 것이었다. 하지만.

“못 하겠다. 가자, 그냥.”
“…오로라.”
“에휴, 오로라 성격 많-이 죽었네. 하하. 가자, 제군들! 언니가 오늘 이별주 쏜다!”
“야. 오로라. 정말 괜찮냐?”

그녀의 친구들은 더욱 오바스럽게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는 로라를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았다. 괜찮냔 친구의 말에 로라는 피식, 바람 빠진 웃음을 내뱉었다.


“누굴 욕하겠니.”
“…….”
“쓰레기 차 인 거 알면서도 좋다고 잡아 탄 건 난데.”
“…….”
“야…로라야.”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널 사랑한다, 그러니 한 번만 믿어달란 저 새끼의 말을 믿었던…내 탓이지. 누굴 탓 해. 안 그래?”

로라는 그 말을 내뱉곤 노란 우산을 다시금 추켜들었다. 그러곤 방금 헤어진 전 남친의 가게를 쿨 하게 지나치려 한 발 내딛었다. 그때,

“여기가 너희 오빠가 하는 가게야?”
“응. 멋있지? 우리 오빠 가게 여기 말고도 또 있어. 저 밑에 고기 집도 우리 오빠 꺼야.”

로라는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우리…오빠 가게…?’ 그녀는 자신의 옆을 지나치는 짧은 단발의 여자를 돌아보았다. 우리 오빠 가게란, 앙증맞은 목소리에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멈칫하는 로라를 뒤에서 지켜보던 그녀의 친구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야, 근데 저 오빠랑 사귄다고? 저 오빠 저번에 여자 친구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응. 근데 그 여자가 질척대는 거래. 헤어지자고 그렇게 눈치를 줘도 뭐…안 떨어진다나? 그래서 오빠가 그냥 차단해버렸데. 그럼 뭐 알아서 떨어지겠지?”
“아, 헐! 대박. 그 여자 불쌍해.”
“나두 이제 신경 안 쓰려고. 오빠가 한 달 전부터 나 좋다고 매일 밤 우리 집 앞에 찾아오는데…그 마음 어떻게 안 받아 주니? 어젠 이 목걸이까지 선물해줬다니까. 제발 자기 마음 좀 받아 달라구.”


방금 저…질척댄다는, 헤어지자고 눈치를 줘도 안 떨어진다는, 그래서 차단을 당했다는 여자는…나를…말하는 거지? 로라는 들고 있던 우산을 자신도 모르게 툭, 떨어뜨리고 말았다. 목걸이라니…한 달 전부터라니. 그녀의 억장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어머. 로라야 왜 그래?”
“손에 쥐났어?”

그녀의 친구들이 황급히 떨어진 로라의 우산을 주워 로라의 손에 쥐어주었지만 로라의 손은 힘이 풀려버린 지 오래. 그러곤 그런 그들의 호들갑에 가게 문 손잡이를 쥐고 안으로 들어서려던 아마도 로라의 ‘전 남친’의 ‘현 여친’인 듯한 여자가 로라를 돌아보았다.

예쁘장하게 생겼네. 남의 남자 친구 홀라당 뺏아 갈 만큼. 로라는 멍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야, 오로라. 왜 그래.”
“쓰레기차를 잡아 탄 건 내 탓이라, 그냥 날 원망하고…지나치려 했는데.”
“…어?”


로라는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이현우의 ‘현 여친’인 듯한 그 예쁘장한 여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지지 않고 로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당장 어디로 튈지 모르는 로라의 주먹은 연신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열을 삭이고 있는 듯 했다.


“그 쓰레기차. 다신 내 주위에서 냄새 못 풍기게. 폐차를 시켜버려야겠다.”
“…뭐?”
“이 동네에서 냄새 풍기면서 더는 못 돌아다니게, 아주 개 박살을…내버려야겠어.”
“……?!”
“ 이, 이현우 재활용도 안 되는 씹 쓰레기 인간아! 니가 그러고도 남자 새끼냐?!”


순간이었다. 말릴 틈도 없이 그녀가 가게 문을 박차고 안으로 돌진해버린 것은.


“어머, 어머! 오로라! 로라야!”
“어머, 누구세요! 누구신데 우리 오빠를!”

순식간에 가게 안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분에 못 이겨 가게 안으로 돌진해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서빙을 하고 있던 현우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로라. 그리고 그런 로라에게 머리채를 잡혀 들고 있던 안주를 바닥에 내동댕이친 채 ‘으악!’ 외마디 비명만 내지르고 있는 현우.

가게 안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손님은 물론이거니와 술 집 앞을 지나치던 시민들은 고성과 비명이 오가는 범상치 않은 모습의 로라와 현우에게 시선 집중 했다.

“으악! 뭐야! 오로라, 이거 안 놔?! 죽고 싶어?!”
“못 놔! 안 놔! 오냐 그래,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어?!”
“으악! 이거 놓으라고! 왜 이래! 말로 하라고!”
“니 사랑은 이래?! 뒤에서 뒤통수 치고,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고, 사람 바보 만들고, 그러다 지쳐 떨어져 나갈 때까지 사람 울리는 게. 니 사랑이야?! 그게 니가 내게 해주겠다던 사랑이냐고!”
“어머, 누구신데 우리 오빠 머리채를 잡는 거냐구요-! 이거 못 놔요?!”
“악-! 야! 야! 이거 안 놔?! 이 기집애가 죽고 싶나!”

현우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이리저리 흔들고 있는 로라의 긴 머리칼을 잡아 챈 현우의 현 여친인 듯한 가게 앞에서의 그 여자. 로라는 으악-!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꼬맹이 너는 빠져라, 어?! 이거 못 놓아?!”
“그 쪽부터 우리 오빠 놔요! 아님 절대 못 놔요!”
“상황 파악 안 되니?! 니가 방금 지껄였던 너희 오빠한테 질척대는 여자가 난데?!”
“뭐? 뭐…뭐라구요?”
“여친 있는 멀쩡한 남자 꼬신 것도 모자라, 니가 내 머리채 까지 휘어잡아? 어?! 니년 손모가지도 이 놈 모가지랑 같이 분질러줘?!”

로라가 악을 쓰고 여자에게 덤비자, 여자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하지만 휘어잡은 로라의 긴 머리칼은 놓지 않았다. 가게 안의 사람들 역시 술렁이며 모두 휴대폰을 꺼내 처참하다 못해 충격적인 삼각관계 스캔들의 현장을 담기 시작했다.

얼굴 팔리는 줄도 모르고 바락바락 로라가 악을 쓰자, 친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발만 동동 굴렀다. 로라가 현우의 머리칼을 오른손에 꾹 쥔 채 여자의 머리채를 휘어잡으려 나머지 한 손을 뻗었는데. 그런데.

“이런다고 바람 난 그쪽 전 남친이.”
“뭐야!”
“정신 번쩍 차리고 그쪽 현 남친으로 컴백하진, 않을 것 같은데요?”


웬 잘-생긴, 그러나 한 눈에도 장난기 많고 어려보이는 듯한 남자 한 명이 로라의 왼 손을 저지했다. 남자의 손엔 어마어마한 힘이 들어 있었고, 산발이 된 로라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눈빛은 귀여운 눈매와 어울리게 장난기가 가득했다.

로라는 엥? 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왼 손목을 꾹 쥐고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로라는 왠지 싸-한 느낌이 들었다.

“뭐라…구요?”
“보는 눈도 많고. 그 눈으로 그쪽 지켜보고 있는 그 사람들은 영상까지 찍어대고 있는데.”
“……?”
“SNS 스타 되는 게 꿈이세요? 혹시, 관종?”
“뭐라구요?! 지금 놀려?! 이거 안 놔요?!”
“흥분하는 걸 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하며 남자는 피식 웃었다. 피식, 웃어?! 로라는 어이없는 대사를 날리며 어이없게도 자신을 바라보며 피식, 웃는 남자를 어이없다는 듯이 올려다보았다.

“그럼 마무리는 이렇게 지읍시다.”
“……?”
“이 손목 잡힌 채로 나랑 같이 여길 나가죠.”
“…….”
“쿨과 찌질은 한 끗 차이인데. 여기서 나한테 이 손목 잡힌 채로 나간다면 쿨 해질 수 있을 텐데?”
“…뭐래는 거야. 놔라, 이거?”
“그쪽의 이 비극적인 사랑의 엔딩은 그래도 해피 해야지. 안 그래?”

하고 마지막 그 말을 내뱉는 남자의 표정은 아까완 달리 진지했다. 로라는 사뭇 진지해져버린 그 녀석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이 남자는 누구일까, 누구기에 이 어마어마한 스캔들의 현장에 불쑥 끼어들어 자신의 손목을 꾹 쥔 채, 곤경에 처한 공주를 구해주는 젠틀한 왕자님스런 멘트를 날리고 있는 걸까. 로라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렀다. 남자의 얼굴을 재빠르게 스캔했다. 하지만, 로라는 이 남자가 초면이었다. 로라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도대체 이 남자…정체가…뭐지?’ 그리고 순간 느껴졌다, 로라는.

이것은…보통…인연은 아니라고. 자신의 26년, 살벌한 연애 경험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지금 이 순간은 아름다운 연인이 될 불타오를 의 발화점이던가. 아님…상상조차 하기 싫은 악연이 될 잘못된 만남의 시초이던가, 라고.

* * *


반갑습니다, 신화그녀입니다!
빙글에서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너무도 반갑고, 설렙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_^
그럼, 열심히 달려볼까요?! 함께 해주실거죠 :D
1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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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잇힝.^----^잼나네요.
오~
므야! 소설이였어요? 헐?!
2회는 언제....?
매주월요일업데이트입니다만, 일주일에 2회 업데이트로 변경 계획중입니다~^^ 우선 2회는 다가오는 월요일 자정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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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파리행 티켓을 끊었다
오늘 파리행 티켓을 끊었다.  며칠 전 새벽 괜찮은 가격에 괜찮은 항공사의 티켓이 보인다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래 이거 라면 끊을 수 있겠다 싶어 결제를 하려다 덜컥 이게 맞을까 겁이 나서 이것저것 조금만 더 알려보자 하던 참에 가격이 많이 올라버렸다. 탓할 일은 아니랬지만 미안했고 속이 많이 아팠다. 이렇게 오래도록 기다렸는데 뭘 더 망설이는 걸까.
 그런데 오늘 아침, 그때 본 가격보다 훨씬 싸게 같은 시간 같은 항공사의 티켓이 풀려서 잠도 못 깬 얼굴로 서둘렀다. 복잡한 화면들이 채 지나가기 전에 카드사에서 친절한 문자가 왔다. 됐구나. 그렇게 서른여덟의 가을, 나는 그녀를 따라서 이유 없는 유학을 떠난다.  몇 해 전에 그녀가 갑자기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을 했을 때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함께 가자고 말을 건넸다. 혼자 걱정을 했던 그녀는 그만큼 많이 놀랐지만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걷고 있던 삶이다. 마지 못 해서 집을 나서고 카페와 공원을, 다른 이의 학교에서 또 걷던 삶이다. 어렵지 않다. 고 생각했다 그때는. 서른일곱 해 동안 나는 소속된 곳도 없이 삶을 끈질기게 미정의 상태 속에 녹여 두려고만 했다는 것을 안다. 무엇이 되려 하기보다 무엇도 안되려고 했었던 나날들. 나의 가장 강력한 마음은 나를 구속하려는 힘들 앞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안다. 나는 사관학교 전체와 싸워 본 적이 있고, 도와준다는 수많은 손들을 적으로 돌리기도 했다. 붙잡힐 거 같아서 여기에서 이렇게 살면 된다고 혼내려는 거 같아서  모래장난처럼 쌓다가도 발로 으깨 버리고 엄마의 한숨을 벽 너머로 들으며 반성하듯 씻고 잠든 나날들. 그곳에서는 우리가 마음먹고 준비를 기다리는 사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테러가 일어났고 매주마다 노란 조끼를 입은 분들의 격렬한 시위가 있었고, 공짜와 다름없던 학비가 올랐고, 가장 높은 첨탑이 무너져 내렸다. 그곳은 이제는 더 이상 세상을 이끌어 가는 곳도 아니고 새로운 시도들이 움트는 곳도 아니다. 예술적이기보다는 상업적이고 새롭기보다는 보수적일 수 있다. 넥타이와 턱시도를 강요하고. 시네마를 고정하려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괜찮다. 그곳은 내게는 가장 먼 서쪽. 핑계 없이 감내할 삶을 이제야 가져 볼 이곳 아닌 저곳. 누가 떠민 것도 아니고 그곳의 누구도 나를 받아주겠다고 하지 않는 우리가 억지로 날아가서 내린 땅이기에 괜찮다고. 눈을 뜨고 느껴지는 낯선 공기에 날을 세우고. 오랫동안 끓이기만 하던 죽에 불을 끄고. 우리 함께 먹자. 안전한 나는 삶을 그리지 않고 구상만 하다 잠만 잤으니까. 위험한 우리는 우리보다 조금씩 더 큰 일을 해야 할 거라고. 우리는 뭘 모르는 아이들처럼 서로를 안심시켰다. W 레오 P Earth 2019.05.21 파리일기_두려운 날이 우습게 지나갔다
[전시] 비밀 화원 by 박근호 작가님
오늘, 제가 애정하는 박근호 작가님 전시를 다녀왔어요. 매 번 일찍 끝나버리는 전시가 아쉬웠다며 심야전시를 기획하셨어요. 전시장소: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435-5번지 2층 시간: 평일 오후 5시-12시 / 주말 오후1시-12시 발권 마감 저녁 11시 반 관람료: 5000원 (카카오페이 결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가님이 간단히 전시 설명을 해주시고 그 사항이 기재되어 있는 편지도 주세요. 이 사진은 두 번째 방문 때 찍은건데 기념으로 사이에 넣었어요ㅎㅎ 위대한 개츠비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번 전시는 문을 열고 들어오면 은은한 향과 빛이 공존하고 빗소리가 들리며 봄을 한가득 품고 있는 꽃들로 가득해요. 곳곳에 놓여있는 편지 속에는 작가님의 글들이 담겨 있어요. 안아줘 우리, 나 자신을 챙기며 살아가요 당신의 마음 속 끝까지 헤엄치고 싶어요 사랑을 위해 마련하는 시간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지만 여기 나 한 사람은 알아요 구석 한 편에 구기거나 지우거나 묻어두고 싶은 마음, 생각을 적어서 던질 수 있어요. 나중에 소각시켜 주신다고 해요. 그래서 저도 열심히 적어 툭 하고 던져놓고 왔어요. 낙화한 채 말라가는 잎들과 생을 머금은 꽃들 그리고 바람 꽃과 관련된 영상도 상영중인데 진짜 좋았어요. 오롯이 나로서 이 감성에 흠뻑 빠질 수 있었거든요. 분홍빛 꽃들이 흩날리고 떠나야 할 때를 아는자의 뒷모습 이런 남자라면......그 어떤 말도 필요없죠.. 이 영상은 매 봄마다 보는 것 같은데 볼 때마다 웃음짓게 되네요. 마지막으로 이 엽서들은 실제 판매중인 엽서들을 뜯어 놓으신 거예요. 작가님이 직접 쓰신 글과 교토에 가서 찍어오신 사진들로 엮어져 있어요. 15,000원에 구매(카카오페이 결제) 가능합니다. 저 이 글 너어어어무 좋아요. 우리 같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요. 이상 심야전시 였습니다. 19일까지 하신다고 하니까 시간 되시는 분들은 꼭 꼭 가보시길 추천드려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의 온도는 적정 이상일 거예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 김연수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드라마에서 나와 유명해진 이 문장을 보고 달달한 연애소설이겠거니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 문장에는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이 아니라 몇십년간 헤어진 딸을 기다려온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카밀라는 양모가 죽고 양부는 다른 여자와 만나게 되면서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유이치라는 연인의 영향으로 자신의 모든 물건들에 대해 정리한 글을 써보게 되는데 그 글을 보고 한 출판사에서 자신의 뿌리, 한국의 친모를 찾아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이 오고 카밀라는 한국의 진남으로 떠난다. 그 곳에서 자신의 어머니 정지은의 흔적을 찾아가던 그녀는 정지은이 이미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죽음과 얽힌 진실을 찾아가는 카밀라의 여정과 카밀라, 정희재를 낳기 전 정지은의 예전 이야기가 교차되며 책 속에서 펼쳐진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라는 문장에는 생각보다 더욱 묵직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노동 파업에 참여했다가 현실에 좌절해 자살해버리고 학교 교사와 연인 관계라는 소문이 돌고, 미성년의 나이에 한 임신과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의 오빠라는 이야기가 쑥덕거리며 퍼지는 상황에 진남의 여고생, 정지은은 놓여 있었다. 그렇지만 정지은은 삶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않았고 그것은 자신의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생명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사랑 때문이었다. 자신의 날개가 되어 줄 그 아이. 희재라고 이름 지은 그 아이. 그러나 그 아이마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모른다는 이유로, 미혼모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팔려가듯 입양되고 정지은은 진남 바다로 몸을 던진다. 그 검고 차가운 진남 바다 속에서 몇 십년을 기다려 찾아온 그녀의 딸, 카밀라이자 정희재에게 건넨 말인 것이다. 끊임없이 파도가 치는 바닷속에서 나는 바다에 파도가 치듯 너를 생각하였다고 말이다. 이 소설은 친모를 찾는 카밀라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머니, 정지은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오해와 악의가 쌓여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정지은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과연 누구였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정희재에게 진남여고의 교장, 신혜숙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꽤 용감하다고 생각하는군요. 카밀라 양은." 그만큼 정지은의 죽음과 얽힌 진실은 추악한 비겁함 속에 잠들어 있었다. 과연 그 진실이 정희재에게 어떤 것들을 가져다 주었을까. 진실을 알기 전과 알고 난 후의 정희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소설 속에서도 진실을 알아가며 조금씩 달라지는 정희재의 모습이 나오긴 하지만 후반부의 이야기는 정지은에 얽힌 진실이 중점이라 정희재의 이후 이야기를 알 방법이 없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정희재의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작가의 말의 "부디 내가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수 있기를." 이라는 마지막 문장처럼 독자가 숨겨진 이야기를 스스로 읽기를 작가는 원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유력한 두 명의 인물인 최성식과 이희재 중 결론을 내렸지만 추후에 이 소설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그 결론을 밝히지는 않겠다. 물론 그 결론이 틀렸을 수도 있고 말이다. 작가는 곳곳에서 힌트를 주고 있는데 이 소설이 워낙 화자도 자주 바뀌고 이야기도 시간 순이 아니라 뒤죽박죽으로 진행되기에 그것들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천천히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간대를 생각해보며 읽으면 스스로 결론을 내리기가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 마무리가 참 마음에 들었다. 2012년의 카밀라와 1984년의 정지은의 모습을 한 번에 담아내는 끝맺음이었다. 2012년의 정희재는 이희재와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작가는 더 이상 말해주지 않기에 우리가 그 뒤를 써 나가야만 한다. "부디 내가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수 있기를." 작가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소설 속 한 문장 : 이로써 다시 나는 이 세상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는 완전한 자유의 몸으로 돌아왔다. 21년 전에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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