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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시험에서 스타워즈를 인용할 수 있을까?



최근에 바깔로레아 시험이 있었기 때문에 불어권 언론에서 부쩍 시험에 대한 기사가 많았다. 개중 눈길을 끈 주제가 바로, 논술에서 스타워즈를 인용할 수 있을까? 이다. 주말 특집으로 충분한 주제다. 말인즉슨, 심각한 논술 시험에 대중 문화를 인용해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사실 바깔로레아 국어 및 철학 문제는 매년 나올 때마다 화제이기는 하다. 그리고 올해의 경우 사회과학계열(ES) 바깔로레아 국어 문제(참조 1) 3번 지문은, 알베르 까뮈의 “Le premier homme(참조 2)”의 일부를 인용했었다. 지문에 나오는 작가들의 방식대로 자신을 영화의 관람객이라 가정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보라는 지문이다.

(우리나라 논술과는 상당히 결이 다르다고 생각하실 텐데, 미리 말씀드리자면 프랑스에도 다 학원/논술 과외가 있다. 사전에 다 준비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영화를 반드시 인용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아무 영화나 들여다 써도 괜찮을까? 기사에 나오는 국어 선생님은 문제를 보자마자 자끄 오디아르의 “예언자(2009)”가 생각났다고 한다. 자, 짧은 답변 나간다.

가능함.

문제는 채점자들이 예언자를, 스타워즈를 과연 봤느냐(좀 무리한 가정이기는 하다, 스타워즈 정도는 고전에 올려도 좋다고 생각한다)이다. 너무 최신의 대중 문화인 경우에는 학자들(?)의 분석이 아직 미진한 경우가 많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이냐? 학생들의 자의에 따른 분석이 들어갈 가능성은 매우 높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냥 저거 안다고 해서 그냥 인용해서는 점수를 못 받는다. 반드시 채점자들이 인식할 만한 논리로 풀어나가야 하며, 이왕이면 고전 사례와 같이 나란히 놓고 서로를 “잇는” 형식으로 글을 쓰는 편이 낫다. 평범한 학생들이라면 이렇게 쓰는 편이 더 어렵지 않을까?

정리하자면 대중 문화를 논술에 인용하는 것은 좋은 일. 어차피 앤디 워홀의 팝 아트도 그렇고, 질 들뢰즈의 “팝 철학(pop philosophie)”도 매한가지의 의미에서 출발했다. 더군다나 질 들뢰즈 이후 프랑스에서 “팝 철학”은 주류화 되어 있기도 하다. 알랭 바디우의 매트릭스 분석은 꽤 유명… 아, 아닙니다.

다만 이번 바깔로레아 철학 시험에는 작은 소동이 하나 있었다. 이과생용 철학 시험 문제 중 푸코의 “말과 글(Dites et Ecrits(1978), 참조 3)” 텍스트 일부가 나왔고, 이를 설명하라는 문제가 있었다. 학생들 중 여기 나온 푸코를 텔레비전 사회자, 장-피에르 푸코와 혼동한 경우가 많았던 듯 하다. 이과생들은 역시 이쪽 분야에 약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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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문제의 지문은 총 3 가지이며, 1번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Du côté de chez Swann(1913), 2번은 마르그리뜨 뒤라스의 Un barrage contre le Pacifique(1951)이었다. 문항의 논술은 이 3가지 지문을 모두 활용해야 한다.

2. 알베르 까뮈가 사망하기 직전 작업하고 있던 소설로서 미완성작이다. (여담인데 까뮈는 1960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자동차 조심합시다, 여러분) 딸인 까뜨린 까뮈가 수습하면서 발견한 자필 원고를 나중에 소설로 출간(1994년)했다.

3. Les sujets du bac philo 2017 des séries S, ES, L, STMG et STL(2017년 6월 14일): http://www.huffingtonpost.fr/2017/06/14/les-sujets-du-bac-philo-2017-des-series-s-es-l-stmg-et-stl/?utm_hp_ref=fr-home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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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특집, 역시 주말은 논문이 아닐까 싶은데 19세기 파리의 우버 서비스다. 19세기에 웬 우버 서비스냐 할 수도 있을 텐데, 자세히 보면 유사성이 좀 있다. 우선 이 짤방은 파리에 있는 포르네 도서관(ibliothèque Forney)의 트위터(참조 1)인데, 짤방 설명부터 하겠다. 19세기 말의 매뉴얼이기 때문에 흔히들 알고 계실 자동차가 아닌 마차가 그 대상이다. 이 사진은 당시(1881년) 동 회사의 차량이용 가격 안내표로서 차량 대여의 종류가 몇 가지 나온다. 극장이나 무도회, 우편, 기숙사 학생들용, 상업용으로 범주가 나뉘어져 있다. 말의 수, 이를테면 한 마리이냐 두 마리이냐에 따라 또 다른데 요즘으로 치면 사륜구동이냐 아니냐로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종이 붙을 경우에 요금이 더 올라가며, 시간 지정이 아닌, 밤새 빌릴 경우에도 요금이 추가된다. 시작 가격인 극장 왕복, 말 한 마리 마차가 20프랑으로 되어 있는데, 1881년의 20프랑은 도대체 어느 정도 금액일까? 조사(참조 2)에 따르면 1890년 당시 16시간 노동 기준으로 마부의 일급이 5.75 프랑이었다고 한다. 1881년과 별 차이가 없다고 볼 때, 일급의 거의 3.5배 정도 되는 수준으로서, 주로 중상층 이상이 이용했으리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당시 버스는 없었을까? 가격표 보면 버스도 나오며, 버스 이용은 상당히 낮긴 하다. 그렇지만 19세기 파리에서 버스나 마차 시간당 렌트(우버가 돌아가는 개념과 동일하다) 등 공공 마차 택시 시스템이 어땠을까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미 1870년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바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 운수업 종사자들은 위의 일급 수준 기준으로 보면 이상하리만치 자기들이 전혀 노동자라 생각하지 않았었다. 여기에 나오는 기업, Compagnie générale des voitures가 아닌 경우, 대체로 자기들이 차량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참조 3). --------- 정해진 노선에 따라, 버스형 마차를 시내에서 굴린다는 개념의 파리 공공 교통은 17세기 부르봉 왕가 시절부터가 시작이다(왕령에 따라 말 마리 기준으로 요금을 정했었다). 하지만 파리에 인구가 정말로 집중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부터로서, 그때에는 당연히? 규제가 없다시피 했었다. 다만 혁명 이후 생겨난 것은 이른바 공공 마차역(stations publiques de fiacres), 이용자가 여기에 가서 마차를 시간당으로 빌려 탔었다. 당시 통계가 있기는 한데, 들쭉날쭉해서 믿기는 좀 어렵다. 다만 이용객이 많았다, 정도만 추측할 수 있는데 1854년 기록에 따르면 이런 택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파리 내에 145개소가 있었다고 한다. (어째서 하필이면 1854년 기록이냐, 하면 좀 있다가 이유가 나온다.) 이들을 분석해 보면, 32%는 마차 딱 한 대만 갖고 있었다. 개인택시인 셈이다. 5대가 넘지 않는 회사가 66%를 넘어가기 때문에 대부분 영세했다고 봐야 한다. 바로 마차 소유주가 자기 개인 소유물(마차)을 갖고 뛰어들어서 그랬다는 결론이다. 이렇게 개별로 움직이다 보면? 끼리끼리 어울리는 친구들의 합자회사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어차피 말의 유지 관리 비용도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동이 하면 그나마 좀 비용이 떨어졌다. 등록 및 기업들 관리는 파리시 경찰이 맡고 있었으며 우후죽순 늘어난 회사들은 시 재정 수입(역 사용료, 면허 수수료, 각종 세금 등등)에 꽤 보탬이 됐던 듯 하다. 마차를 소유했다 하더라도 소유주를 운전사로 고용할 때의 규제 또한 경찰이 정했다. 또한 이 마부가 회사를 그만 두는 경우는 회사를 통해 면허가 경찰서로 반납됐다. 전반적인 운영에 대해 경찰의 개입 여지가 매우 큰 것이다. 여기저기서 현금이 돌아가는 광경이 눈에 보일 것이다. --------- 그래서 1854년 조사를 시작한 끝에(그래서 통계가 존재한다), 나폴레옹 3세는 파리 시내 마차를 모두 하나의 공기업 하에 통합시켜버린다. 1855년 황립운송회사(Compagnie Impériale des Voitures)를 설립하고 이 회사가 기존 우후죽순 모여 있던 파리 시내 마차들의 면허를 모두 다 “매입”하도록 시켰다. 그래야 기존 마부/회사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는 이유 외에도 표면적인 이유가 세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다가올 엑스포(1855년)였다. 파리 시내 수요가 갑자기 늘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빠르게 확충하려면 역시 집중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었다. 두 번째는 재정 확충이었다. 당시까지 파리의 운송업을 보면 위에 썼듯 현금이 여기저기 새어나갈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부정부패를 줄이고 재정을 늘릴 묘책이 바로 독점 공기업의 설립이었다. 이 모든 것을 건의한 장본인이 바로 현대적인 파리를 만든 오스만 남작(Georges-Eugène Haussmann, 1809-1891)이다. 그가 비단 파리만 개조한 것이 아니라 도시 내 돌아가는 모든 것에 손댔다는 의미다. 잠깐, 세 번째 이유는? 당연히 황제와 가까운 자본가들의 먹고사니즘 때문이었다. 황제가 설립한 공공회사들(황립운송회사 외에, 전국우편서비스, 공공버스회사도 있었다) 황제의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당연히(?) 개인 소유 마차에 대한 세금을 올리는 정책도 잇따랐다. 도시과밀화를 거론하지만 실제로는 황립운송회사로 손님들을 돌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나폴레옹 3세의 파리 운송 독점 정책은 오래가지 못 했다. 10년 후인 1865년, 그는 다시금 독점을 풀기로 하는데, 이 또한 오스만 남작의 조언과 관련이 있었다. 막상 해보니 독점의 비효율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게다가 황제의 친구들이 파리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더 중요시했기 때문에 차량 확충도 거의 없어서 오스만은 더 화가 났었다. 그리고 황제는 오스만의 손을 들어줬다. 1865년 12월부터 독점은 깨졌고 다시금 개인 회사 설립 허가가 시작됐다. 황립운송회사는 이제 Compagnie générale des voitures라는 민간 기업으로 바뀐다. 이 짤방에 나오는 회사 이름이다. --------- 그렇다고 나폴레옹 3세 이전의 무분별한 자유 시장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는 아니다. 1강(위의 CGV) 다약의 시대로 바뀌었다. 기존 회사가 거의 수요의 절반을 공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황제가 대기업 하나를 그냥 만들어놓은 꼴이었다. 다만 제1차세계대전 이후, 버스 업종은 전철, 트램과 단일화되어 결국은 지하철이 가세한 독점적인 공공운송회사로 다시 개편되고, 택시 분야는 양강으로 바뀐다. 여러분들 잘 아시는 자동차 회사인 르노(G7이라는 택시회사 이름인데 소유주가 르노였다) vs. 시트로앵의 싸움이다. 여기서 좀 눈여겨 봐야 할 점이, 이 자동차/택시 회사들이 회사 지분을 운전수에게도 일부 팔았다는 점이다(참조 4). 그래서 더더욱 택시 기사들이 자기가 노동자라는 점을 잘 인식하지 않았었다. 물론 이것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다시 바뀌었으며, 기사들 역시 20세기 초 이후부터는 휘발유세 인상 등에 항의하는 파업을 자주 시행했었다. 노동자라 스스로 인식한 것이다. 우버의 경우는 약 100년 후 법원 해석으로 바뀌었고 말이다(참조 5). -------------- 참조 1. https://twitter.com/bibforney/status/1304413390450962434 2. PRIX ET SALAIRES AU XIXe SIECLE(2008년 10월 28일): http://mmestauner.over-blog.com/article-24174373.html 3. 이하 내용은 아래 논문의 내용을 참고했다. Un secteur des transports parisiens : le fiacre, de la libre entreprise au monopole (1790-1855)(Nicholas Papayanis, 1986년, “Historie, économie & société” 게재): https://www.persee.fr/doc/hes_0752-5702_1986_num_5_4_2348 4. https://numistoria.com/en/taxis/660-taxis-citroen.html 5. 프랑스 대법원 “우버 기사는 자영업자 아닌 노동자”(2020년 3월 5일):https://news.khan.kr/JtS4
프랑스의 핵잠수함
화요일은 역시 프랑스지. 짤방(참조 1) 설명부터 하겠다. 1967년 프랑스 최초의 핵잠수함 Redoutable호의 진수식에서 포즈를 취한 샤를 드 골 대통령 모습이다. 사실 Redoutable이라는 이름이 괜히 나오지는 않았다. 18세기 때부터 활약하던 프랑스 전함 이름이었고 특히 트라팔가 해전에서 넬슨을 죽인 함정의 이름이기도 했었다. 다만 이 잠수함의 퇴역(1991년) 이후로 이 이름을 단 함정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데, 아마 미래의 핵잠수함이 또 이어받잖을까 싶기도 하다. 이 핵잠수함은 핵폭탄이나 원자력 발전소와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물 속에 엔진을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보다 더 어렵다고 봐야 해서 그렇다.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마샬 플랜을 통해 모든 유럽에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을 때이다. 당시 프랑스 해군 예산 1,520억 프랑 중, 미국 원조액이 930억 프랑일 정도로 미국의 예산 지원은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군부는 오히려 이를 싫어했었다. 그래서 미국이 노틸러스호(1955년)를 만드는 꼴을 보니 우리도 저걸 가져야겠다 싶은 것이다. 그래서 해방되자마자 샤를 드 골이 설립했던(1945년 10월) 원자력 및 대체에너지 위원회(Commissariat à l'énergie atomique et aux énergies alternatives, CEA)와 해군이 합동으로 핵잠수함 개발에 들어간다. 당연히 동체만 만들고 미국 원자로를 수입하자거나, 아예 미국으로부터 잠수함 자체를 수입하면 되잖느냐는 의견도 있기는 했지만 이건 국가의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었다. 미국은 당연히 프랑스의 핵잠수함 개발 움직임을 싫어했었다. 더군다나 1960년-1968년 사이의 미국 민주당 정권이 프랑스와는 상극이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프랑스에게 “군사용 목적”의 플루토늄과 농축우라늄은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물론 “민수용” 원자로는 적극 판매에 나선다. 한편으로는 프랑스가 어느 정도나 개발했나 알아보려 열심이었다. 그래서 한 번은 프랑스가 미국 원자로 설치를 염두에 두고 판매 가능성을 타진했을 때, 미국은 “거기 잠수함 크기가 어느 정도길래…?”라 물었다. 정보를 캐기 위함이다. 그래서 조건이 바뀌어 “지상 건설용” 원자로와 440kg의 우라늄235의 판매가 이뤄진다. 프랑스는 이걸 갖고 잠수함용으로 바꾸려 노력한다. 물론 미국이 영국한테는 잘해준다. 드레드노트급 핵잠수함용 원자로를 웨스팅하우스에서 선뜻 내줬기 때문이다. 같은 해(1960년) 프랑스는 “지상용” 원자로를 실제로 지상에 지어본다. 그래서 프랑스는 노틸러스 장난감 모형도 사들이고 온갖 정보를 다 캐오려 노력하는데… 이걸 수영장 안에 집어넣어서 실험한 끝에 성공한다. 당연히 미국은 더욱 더 조바심을 냈고 1965년 7월에는 프랑스 전투기들이 실험장 상공을 정찰하던 미국 군용 비행기를 끌어내린 적도 있었다. 이제 준비가 됐다. 프랑스는 NATO 전략사령부로부터 탈퇴 선언한다. 그 후 1967년 짤방처럼 드 골이 잠수함을 진수 시킨다. 물론 이 핵잠수함이 미국의 원자력 잠수함들에 비해서는 특히 무장 부문에서 많이 부족하기는 했었다. 다행히(!) 미국은 공화당으로 정권교체가 됐고, 프랑스도 드 골이 사임하는 사태가 일어난다. 닉슨과 키신저는 소련에 대한 대응 비용을 줄이기 위해 프랑스의 핵무장을 돕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고, SLBM 등 핵잠수함의 주요 기술에 대한 지원에 들어간다. 법(Atomic Energy Act)에 따라 직접적인 지원은 못 한 채, “conseil par la négative / negative guidance(참조 2)”로 도운 것이다. 직접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그게 아니면 된다 식으로 말하는 것이니 이건 지원 아닌 지원인 셈. 결론, 드 골에 대해 파면 팔수록 확실히 이 양반이 현대 프랑스의 기틀을 세운 것이 맞다. 프랑스 핵전력 또한 드 골이 강력 추진해서 만들어졌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드 골이 속하지도 않았던(이를테면 그는 좌우 모두의 적이었다) 우파와 좌파 정부 모두 드 골을 빠짐 없이 기렸던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현재 이 잠수함은 셸부르에서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샌디에이고에 가면 미국 항공모함이 전시관으로 쓰이는 것과 마찬가지. 그러니까 셸부르에는 우산 가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 참조 1. 짤방과 함께, 이야기의 대부분은 이 링크를 참조했다. https://twitter.com/Mangeon4/status/1305740803126562816 2. U.S. Secret Assistance to the French Nuclear Program, 1969-1975: From "Fourth Country" to Strategic Partner: https://www.wilsoncenter.org/publication/us-secret-assistance-to-the-french-nuclear-program-1969-1975-fourth-country-to-strateg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