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siya
10,000+ Views

6·25 전쟁 10대 미스터리 총정리!

군대에 다녀온 예비역의 대부분은 자신의 군번을 기억합니다. 나이와 학번, 그리고 군번을 통해 서열을 정하고자하는 촌스러운 사람도 많죠. 국군이 창군할 때 군번은 다섯 자리의 숫자를 부여했습니다. 그 중 10001번, 첫 번째 군번을 부여받은 사람은 이형근 장군이었습니다. 채병덕과 라이벌로 유명한 이형근은 일본육사 출신입니다. 장인이 초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죠. 6·25 전쟁 때는 2사단장이었고 휴전회담 당시 한국 대표였습니다. 1956년에 육군참모총장을 지냈죠. 이 분이 남긴 업적이 있다면 한 개를 꼽을 수 있습니다. 바로 월간 중앙에 회고록을 연재하며 언급한 ‘10대 미스터리’라는 떡밥이죠.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육군본부의 당직을 서던 김종필 중위는 전쟁이 벌어졌다는 정보를 접합니다. 여러분이 아는 그 JP 맞습니다. 김종필은 육군본부 주요 간부와 총참모장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클럽에서 놀다가 새벽 2시에 들어간 채병덕 총장은 잠깐 깼다가 다시 잠듭니다. 국방부 장관 신성모는 전화코드 뽑아놓고 자고 있었죠.
[ 한국전쟁 발발 직후 상황보고 중인 김종필 ]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아침에 낚시를 하고 있다가 전쟁이 났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다음날 국회의원들은 비상 국회를 개최한 후 서울을 버리느냐 지키느냐를 놓고 밤새 회의를 했죠. 결론은 서울을 지키자는 것이었는데, 이승만은 27일 새벽 2시에 특별열차를 타고 대구로 튀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내려갔다는 측근의 지적에 대전으로 올라갔죠.
국회 국무위원들은 대통령에게 서울을 지키기로 결정했다는 보고를 하러 갔죠. 그런데 사흘 만에 대통령이 피난 갔다는 걸 알고 대성통곡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9시, 대전에서 녹음한 이승만의 목소리가 KBS 라디오로 방송됩니다. “유엔이 우리를 돕기로 했다. 국민들은 굳게 참고 있으면 적을 물리칠 수 있으니 안심하라”는 내용이었죠. 자신은 1등으로 피난 가놓고 국민들에게는 피난가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28일, 북한군은 서울을 함락했죠. 민족의 정론지 조선일보는 호외를 내보냈습니다. “인민군 서울입성”이라는 제목의 기사 마지막은 “우리 민족의 경애하는 수령인 김일성 장군 만세”로 끝납니다. 제105군 부대를 선두로 하여 공화국 수도인 서울을 해방시켰으며 서울시민들이 열렬한 환호로서 환영했다는 기사, 역시 조선일보 클라스는 넘사벽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천황폐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신년사를 냈죠. 이승만이 대구로 도망친 후 ‘누군가’(아직 명령자가 명확하지 않음)의 명령으로 한강인도교가 폭파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최소 500명이 넘는 시민이 사망했습니다. 게다가 미 폭격기 B-29가 한강철교와 경인철교까지 폭격하면서 한강의 모든 다리가 끊어집니다.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고립된 시민 100만 명은 3개월 동안 북한 공산당의 억압을 받으며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얼마 전 일본 외무성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 하나 더 있죠. 이승만 정부가 일본 정부에 망명의사를 타진했다는 것이 보도로 나왔습니다. 2015년, KBS 취재진은 일본 야마구치 현과 미 군정 기록을 통해 이승만의 망명정부 요청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보도가 나간 후 보수단체는 반발했고 방심위는 ‘주의’ 제재를 했습니다.
다시 이형근 얘기로 돌아가 보죠. 첫 번째 군번의 주인공이 월간 중앙에 연재한 회고록의 제목은 ‘군번 1번의 외길 인생’이었습니다. 이형근의 공과 과에 대한 분석을 떠나 국군의 군번 1번, 육군참모총장까지 지낸 사람이 제기한 내용이기에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 주장 때문에 지금의 군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사람도 많죠.
무엇이든 거침없이 대충 정리해서 배달해 드리는 내 손안의 지식인, 총정리! 이번 65화의 주제는 ‘6·25 전쟁 10대 미스터리’입니다.
- 6·25 전쟁 최초의 순간, 제대로 알려드립니다. - 10대 미스터리, 음모론으로 치부하기엔 정황이 구체적입니다. - 팩트를 기반으로 반론도 소개해드립니다. - 6·25 전쟁의 영웅은 누구였을까요?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면 사람은 아닙니다. - 전작권 회수, 팩트체크는 불가능하지만 상당한 가설을 소개합니다.
6·25 전쟁의 원인은 김일성, 박헌영을 비롯한 북한군과 이를 지원한 소련군, 그리고 김일성을 적극적으로 밀어준 마오쩌둥과 중공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형근의 회고록에는 당시 국군에 간첩 혹은 북한 동조세력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물론 일종의 음모론이죠. 이형근이 10대 미스터리를 제기한 이후 학자와 전문가가 여기에 대해 분석했고 반대 의견을 제기했습니다. 이형근의 사건 인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 많고, 정부와 국군의 초기 대처 능력 부족과 불운이 겹쳤다는 얘긴데 반론은 뒤에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이형근이 주장하는 6·25 전쟁 10대 미스터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일선 부대의 적정보고를 수뇌부에서 묵살 내지 무시했다! 6.25 발발 직전인 1950년 4, 5월까지 이형근은 자신이 지휘한 8사단뿐만 아니라 다른 사단에서도 적의 대규모 남침 징후가 보인다는 보고가 잇따랐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8사단의 경우 1950년 봄, 태백산맥을 통해 침투한 유격대를 토벌하다가 포로를 생포했습니다. 이들을 심문하면서 북한의 대규모 남침을 알아내고 육군본부에 여러 번 보고했으나 반응이 없었다고 합니다. 2) 각급 주요 지휘관의 이른바 6월 10일 인사이동 6.25가 발발하기 불과 2주일 전, 중앙요직을 포함한 전후방 사단장과 연대급 지휘관이 대대적인 인사이동을 했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인사를 단행한 것이 문제라고 이형근은 지적했습니다. 예비역들은 잘 알겠지만 지휘관이 교체되면 부대 분위기는 어수선하죠. 3) 전후방 부대의 대대적인 교대 6·25 직전인 6월 13일부터 일주일동안 전후방 부대를 교대한 것도 부적절한 조치라고 주장합니다. 지휘관들이 적정이나 지형은커녕 부하들의 신상파악조차 할 수 없었고, 인사이동과 겹치며 전력공백을 초래했다는 것이죠. 2번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4) 북한의 평화공세에 대하여 남한은 6월11일부터 6월23일까지 비상경계령을 내림 6월 10일, 북한이 평양 방송을 통해 남한에 대한 비난은 물론 무력행사 위협을 하자 우리나라는 비상경계령이 발령됩니다. 그런데 육본은 6월 24일 자정에 비상경계 태세를 해제했습니다. 김일성이 남침을 위한 준비를 완료하고 전군에 대기 명령을 내린 바로 그 시점이었습니다. 타이밍이 참 거시기합니다. 5) 이런 위기상황에서 육본은 비상 경계령 해제와 더불어 장병의 2분의 1에게 휴가를 주어 외출과 외박을 시켰다. 이형근의 주장에 따르면 육군본부 정보분석과는 북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육군참모총장에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군본부는 병력의 반을 부대 밖으로 내보내 전력의 공백을 초래했다는 얘기죠.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6) 육군 장교클럽 댄스파티가 6월24일 밤에 열렸다.
육군 장교클럽 낙성파티를 연다고 전 후방 고급 장교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고 합니다. 참석 장교들은 6월25일 새벽까지 술과 댄스를 즐겼다고 하죠. 여기에 참석한 채병덕 육군총참모장 역시 신나게 놀다가 새벽 2시에 들어갔죠. 미 고문관과 한국 장교들 중에는 2차까지 간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7) 적의 남침 이후 우리 병력을 서울 북방에 축차투입해 불필요한 장병들의 희생 강요 이형근은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고해도 축차투입은 군사적 기초상식을 깬 명령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주장은 사실입니다. 축차투입은 투입 가능한 부대가 먼저 출동하고 나머지 부대는 준비가 되는대로 전투에 투입시키는 것입니다. 이형근의 주장대로 당시 군 지휘부는 서울 방어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북부 방어선에 병력을 축차투입했고 많은 희생을 자초했죠. 8) 적의 공세로 국군이 퇴각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6월25일~27일 중앙방송은 국군이 반격, 북진 중이라고 허위방송을 함으로써 군부는 물론 국민들까지 상황판단을 그르치게 했다. 서울 북방에서 접전 중이던 국군이 상황 판단을 제대로 했다면 육본은 그들을 재빨리 전장에서 이탈케 다음 작전에 대비시킬 있었을 것이다. 이건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북한의 침략이 시작되자마자 포천이 뚫려버렸고 의정부도 위기에 처했습니다. 다음은 수도 서울이죠. 국방부장관 신성모는 서울을 포기할 수 없다며 반격하자고 했지만 아무런 작전계획도 세우지 않았죠. KBS 라디오에서는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라는 이승만의 목소리만 나왔습니다. 9) 우리 측의 한강교 조기폭파 이런 작전은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추격하는 쪽에서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한강다리가 폭파된 것을 보고 개념 있는 국군 장교는 북한군의 소행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 폭파는 국군이 한 것이고, 심지어 한강 이북에 수많은 시민과 병력, 군수물자가 있는데도 서둘러 폭파시킨 것입니다. 대통령과 육군참모총장, 고위 관리는 이미 날라버렸죠. 10) 공병감 최창식 대령의 조기사형 집행 최창식 대령은 명령에 따라 한강교를 폭파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책임을 지고 1950년 9월 21일 비밀리에 처형되었습니다. 이때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는 시기였죠. 이런 경황을 틈타 책임 소재도 가리지 않은 채 미리 처형한 것에 정치적 복선이 있다고 이형근은 의심합니다. 이형근이 주장하는 10대 미스터리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내에 북한이 침투시킨 ‘제5열’, 즉 ‘북한군의 진격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무력집단’이 있다는 얘기는 음모론에 가깝죠. 팩트를 내세운 많은 전문가들의 반론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남정옥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의 주장도 있었죠. 이 미스터리에 대한 반론 중 합리적인 것들을 골라 소개해 드립니다. 1) 이형근의 주장대로 남침 징후가 있다는 부대의 보고를 상부에서 묵살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상부가 국군이 아니라 미국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한반도는 남과 북의 충돌이 잦았죠. 일선 부대의 보고가 들어왔지만 미국은 당시 지속되던 위기설 정도로 취급했습니다. 국군은 UN 승인 없이 평시에 탄약을 불출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국군 최고위층에서도 남침에 대응할 방안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국방부장관 신성모는 북진 통일만 주장하고 있었죠.
[ 이승만과 신승모 ]
2),3) 주요 지휘관의 인사이동과 전후방 부대 교대의 의도는 좋았다고 평가됩니다. 유능한 지휘관을 전방 야전 부대로 배치하고, 기존에 빨치산 토벌과 치안 유지 위주 임무를 수행했던 부대의 체질을 개선하자는 것이었죠. 하지만 체질 개선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공교롭게 이 때 북한이 남침한 것입니다. 6월 25일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결과를 바탕으로 앞의 사건을 싸잡아 비난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4), 5) 비상경계령이 해제되고 장병의 반이 휴가를 나간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당시 최고의 정보력을 가지고 있던 미국 정부와 군 정보기관도 6·25를 예측하지 못했죠. 이형근의 주장과 달리 비상경계령이 6월 11일부터 내려진 게 아니라 더 오래됐습니다. 남북 관계가 악화되자 4월말에 비상경계령이 발령되기 시작했죠. 이후 해제와 발령을 되풀이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피로가 누적되고 군 사기가 떨어졌죠. 게다가 농번기에 보릿고개였던 때라 군량미도 떨어집니다. 장병을 휴가 보내 쌀도 절약하고 농번기 일손을 돕게 한 것입니다. 전쟁 소식을 들은 장병들은 즉각 복귀해서 전투에 투입되었습니다. 6) 육군본부 장교클럽 댄스파티는 사실입니다. 이것 역시 위의 2, 3, 4, 5번처럼 재수가 더럽게 없던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입니다. 적과 내통한 자가 있었고 대부분의 국군 수뇌부와 상급 지휘관이 술에 취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육본과 서울 지역 부대 장교 일부가 참석했고, 전방의 야전 지휘관은 부대를 지켰다고 합니다. 어지르는 놈 따로 있고 치우는 놈 따로 있는 거죠. 지금도 안보 위기 상황에서 열심히 골프를 치던 합참의장과 똥별들이 있잖아요. 7) 서울을 방어해야 하는 의정부-포천 축선에 축차투입을 한 것은 사실이며, 일반적인 전술학에서 금기사항인 것도 모두 팩트 맞습니다. 지휘 능력이 떨어진 육군본부가 불필요한 희생을 강요했죠. 클럽에서 놀다 새벽에 들어간 채병덕 육군총참모장이 축차투입을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2보병사단장이었던 이형근 본인도 예하 연대를 축차투입시켰습니다. 이후 책을 통해 “다급한 나머지 그렇게 연결되는 명령을 했다”고 일부 인정했습니다. 8) 라디오 등을 통한 허위방송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서울 시내의 혼란을 막고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전쟁 발발 직후 포천 축선이 뚫렸고, 서울 방어 전략이 필요했죠. 여기에는 어떤 쉴드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도망치는 동안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내보낸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9) 한강교의 조기 폭파 한강교 폭파 계획은 채병덕 총참모장이 세웠죠. 시기가 문제가 되는데 한강 이북에 있던 아군과 시민들이 강을 건넌 후 폭파했으면 괜찮았을 겁니다. 당시 병력들은 비장한 마음으로 미아리 방어선을 지키고 있었죠. 그런데 북한군 전차 몇 대가 서울에 진입했다는 정보를 들은 육군본부는 서울이 함락됐다고 생각하고 폭파명령을 내립니다. 채병덕은 당시 후송된 상태였기 때문에 국방장관이 지시한 것이라는 추측이 유력합니다. 그렇게 서울을 지켜야한다고 반격한 신성모 국방장관 말입니다. 10) 공병감 최창식 대령의 조기사형 집행 이형근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치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국민을 버리고 도망간 후 다리를 폭파시켰다는 비난을 받은 이승만은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희생양으로 채병덕과 최창식을 선택합니다. 채병덕은 이미 전사했으니 최창식을 골랐다는 것이죠. 이형근은 제5열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최창식 대령의 사형집행에는 국방부장관 신성모가 배후로 지목됩니다. 이형근과 최창식은 일본 육사 56기 동기입니다. 그렇기에 동기의 죽음에 대한 분노로 음모론을 제기했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한편 최창식 대령은 사형 집행 후 벌어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습니다.
6·25 전쟁의 영웅이라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언론에서 만들어낸 전쟁 영웅의 대부분은 친일파입니다. 전쟁 중에 작전지역에서 도주한 일본 육사 출신 군단장이 대표적이죠. 1951년 5월, 강원도 인제에서 국군 3군단은 중공군에게 포위당했습니다. 이 위급한 상황에서 군단장이 경비행기를 타고 도망가 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사단장들, 나중에는 연대장, 대대장, 이등병까지 줄줄이 계급장 떼고 도망갔죠. 이 사람의 이름은 유재흥입니다.
[ 왼쪽이 밴 플리트, 가운데가 유재흥 ]
당시 미국의 제8사령관이었던 제임스 밴 플리트와 유재흥의 대화는 유명하죠. 밴 플리트가 묻습니다. “유 장군, 당신의 군단은 지금 어디 있소?” 여기에 유재흥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놀란 밴 플리트가 묻습니다. “예하 사단은? 모든 포와 수송장비를 잃었단 얘기요?” 유재홍은 “그런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밴 플리트는 “유 장군, 당신의 군단을 해체하겠소. 다른 일자리나 알아보시오!”라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3군단은 해체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작전지휘권은 미군이 가져갑니다.
[ 애국보수의 상징 유재흥 ]
유재흥은 어릴 때부터 일본에서 자라며 일본인 교육을 받았고 일본 육사를 나와 한국말도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승만은 그에게 참모총장 대리를 맡겼습니다. 박정희는 쿠데타 이후 국방장관에 임명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4년, 고 노무현 대통령이 전작권을 회수하겠다고 하자 예비역 장성 72명이 반대성명을 발표했죠. 대표자가 바로 이 유재흥입니다. 자기 때문에 빼앗긴 전작권 환수를 반대한 것이죠. 2011년 사망한 그는 국립대전현충원의 장군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6·25의 진정한 영웅은 무명용사들입니다.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그 분들이 계시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겠죠. 독재정권에 맞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킨 분들 역시 무명의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름 없이 촛불을 든 시민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 있죠. 오늘 하루, 똥별 달고 잘 먹고 잘 살다간 친일부역자들 대신 무명용사들을 위해 짧게라도 묵념 한 번씩 합시다. - 이 글은 전체 방송의 일부분만 다루었습니다. - 무엇이든 정리해드리는 "총정리" - 아래 주소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PC, 모바일: http://www.podbbang.com/ch/12078 * 아이폰 팟캐스트: https://itunes.apple.com/kr/podcast/chongjeongli/id1130129527?mt=2
5 Comments
Suggested
Recent
유재흥 이승만 끼리끼리 붙어서 엄한 백성과 군인만 수없이 피흘렸네 ㅅㅂ
지금도 유재흥같은 인간들이 우리사회의 지도층이랍시고, 버러지같이 남아있습니다. 국가가 위기상황이되면 제일 먼저 버리고 도망갈 위인들이 시도때도없이 애국을 외칩니다. 진정한 애국자들을 탄압하면서...
마지막 밴플리트 장군은 외아들이 북한에서 작전중 실종됩니다.근데 희생자가 늘 것을 우려해 본인이 직접 수색을 중단시킵니다..참고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장성 아들은 약130명, 그 중엔 아이젠하워 대통령 아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과 우리나라의 차이입니다..
대통령이 도망치는 동안 “가만히 있으라”는 건 박근혜를 떠올리게 하네요 ᆢ 아 애초에 저때부터 국군은 썩었었네 ᆢ 시작부터가 청산못한 일제앞잡이들이었으니 ᆢ 이승만은 정말 개새끼
우리나라 국군 장성이 쪽발이새키들이니까 지금도 이모양 이꼴이고 항상 쳐맞고 다니지......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오늘 북동부 요충지까지 뚫어버린 우크라이나군
이번에 뚫린 '리만'은 늪지로 둘러쌓여 있고 여러 둔덕이 포진되어 있는 형태라 우크라이나 북동부에서 몇없는 요새 지형임 리만 이후엔 약 120km 정도 되는 거리의 루한스크까지 뻥 뚫린 평지고 때문에 이곳이 뚫리면 북동부 지역엔 마땅한 방어거점이 없어 러시아군은 평지에서 우크라이나군을 막아야 함 뿐만 아니라 우크라군은 리만을 거점으로 보급선을 강화할 수 있어 이후 남부,동부를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타격할 수 있게 됨 이걸 알고있는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이 리만을 포위하기 전 미리 지원군까지 보내 리만을 사수하려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크라군이 리만을 포위하게 됨 위에서 말했다시피 리만 주변은 늪지와 둔덕으로 둘러쌓여있어 천혜의 요새나 다름 없는 지형이기 때문에 뚫기 힘들었는데 우크라군은 리만 남동쪽 얌필을 점령하며 리만 남부 길목을 끊어버리는 식으로 리만내 러시아군을 고립시켜버림 그렇게 성공적으로 포위 작전을 실행한 후 전방위에서 압박을 가하고 있었는데 어제(30일) 러시아군이 반격에 나서면서 리만 북쪽 포위망 일부가 깨져 전황을 쉽게 예상하기 힘들게 됨.. ..인줄 알았으나 오늘(1일) 뜬금없이 하루만에 리만이 뚫렸다는 정보가 들어옴 뚫린지 얼마되지 않아 여러 정보가 필터링 없이 쏟아지고 있어 확실하진 않지만 대충 정리되고 있는 정보에 따르면 리만내 러시아군은 만성적인 장비,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고 이 때문에 각 방어라인을 촘촘하게 구성하지 못한채 리만 곳곳에 소수로 퍼져 지키고 있었고 그나마 있던 병사들도 사기저하로 상당수 도망친것으로 보임 이런 상황에 우크라이나군이 본격적으로 들어가니 제대로 된 반격을 못하고 뚫리게 된 모양 대충 5000여명의 러시아군이 리만내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중요한 건 이 5000명이 현재 러시아군엔 정말 얼마 안남은 숙련병들이었음 그 와중에 우크라 최전선 부대들이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것 보다 훨씬 멀리 진격했다 이야기 하는 정보통 도탁스 펌
[다큐프라임] 100세 이상 장수하는 삶.jpg
100년을 넘게 오래 살고있는 노인이 4,587명 90세 이상 노인은 매해 4,000명 이상 증가 65세 인구가 20%를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가 얼마 남지 않음 우리가 아직 가보지 못한 100년의 시간, 과연 초고령자들은 어떤 정신적 육체적 변화를 겪고 있을까? 홀로 큰 집을 지키며 살고있는 88세 임부남 할머니 집안은 조용하다못해 하루종일 적막만 흐름 올해는 꼭 죽을 것만 같아요 눈만 감으면 죽을 것 같아요 혼자사는 생활이 익숙해졌지만 요즘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느껴짐 누군가와 대화 한마디 나누지 못한 하루  고독이 어둡게 내려앉음 날이 밝자마자 할머니가 20분 정도 걸어서 이웃집으로 놀러감 반가운 소리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온 순천댁, 임부남 할머니의 가장친한 친구분 무릎도 아프고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보고싶은 마음에 찾아오긴 했지만 왠지 어색한 두 사람 싹 다 쓸고 닦고 해서 번들번들한 것봐 순천댁 : 농사지은 (쌀) 들어와? 임부남 할머니: 안 들어왔어 아직 밭에 (동물이)막 올라와서 검은(비닐을) 씌워놨어 엉뚱만 답변만 오가다 침묵이 흐름 5분도 채 되지 않아 자리를 뜨는 할머니 이렇게 급히 가는 이유가 있을듯 한데.. 초고령자들에게는 몸이 불편한 것은 관계를 형성할때 가장 큰 장애요소임 특히 60대 이상이 되면 척추관 협착증과 퇴행성 관절염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 게다가 근력의 20%가 소실되면서 멀리 외출도 어려움 우리는 초고령자가 불편한 다리와 허리때문에 다른 사람과 교류를 잘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관계 단절에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청력임 청력은 40대부터 난청이 시작돼 70대 이후에는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정도로 신경과 감각세포가 사라짐 보청기를 사용해야 하는 중도 난청은 세탁기 소리만큼 커야 대화가 가능 고도난청은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정도여야 들림 심도난청은 소리가 거의 안들림 초고령자들의 청력저하는 결국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 할 수 없게만들고 자신감을 잃거나 소외감이 들게 함 75세 이상 노인 50%가 이런 청력장애를 겪고 있음 이렇게 하면 개미소리 같이 들려요 귀먹으니까 답답해요 인간의 감각기능 중 가장 빠르게 노화가 진행된다는 청력 그래서 노년은 의도치않게 관계망이 상실되는 시기 임부남 할머님 집에 이웃들이 찾아옴 다들 대화없이 앉아만 계심 민망하셨는지 촬영팀에게 대화 걸어봄 -여기(할머니는) 85세, 나는 80세 이 할머니는 88세 -왜 일어나? -가야지 이제 -놀아야지 -놀아? 몇 분도 안되서 일어나는 이웃들 아쉬운 할머니 -(혼자) 가만히 있다가 (손님이)오면 얼마나 반가운데요 또다시 혼자의 시간 함께 있어도 홀로 있어도 노인이기에 외로움 그렇다면 노년의 고립감은  누군가와 같이 살면 해소될까? 96살 시어머니와 70살 며느리 공무원이었던 며느리는 퇴직 후 뒤늦게 농사일 배움 -어머님, 여기에다가 뭐 심을 거예요? -깨같은거, 콩같은거 심어야지 -깨하고 콩하고 심는데 여기에다가 옥수수 조금 사다 심으려고요 -옥수수는 뭐하려고 옥수수를 심어? -옥수수는 여기 말고 저기 담장 밑에 가서 심으면 잘 커 괜히 물어봤다 핀잔만 들음 농사일 만큼은 시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음 남편 사별 후 시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음 남편 죽기 전 집안 결정권은 모두 시어머니에게 있었으나 지금은 달라짐 시어머니가 수저 놓는데 너무 많이 놔서 며느리가 정리함 이런행동에 시어머니 심기가 불편해짐 작은 일인 듯 보이지만 하루에도 여러차례 살림에 대한 주도권 다툼이 있음 -모두 마음에 드는 며느리가 어디 있어요? 다 그렇죠 자기가 먹은 밥그릇은 꼭 설거지 하는 시어머니 그래야 밥값을 한 기분 이것저것 치우다 보니 먹는게 늦어진 며느리 젊은 시절 호되게 시집살이 당함 제가 시어머니하고는 말 안해요 다른 사람에게는 잘하는데 우리 시어머니는 너무 당신것만 아니까 (말 안하고) 꽁해있죠 맑았다 흐렸다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는 두 노인 서로의 자존심 대결은 일상이 됨 며느리 : 봄 지나서 습기차면 곰팡이 나잖아요 말려서 병에다가 넣어 두려고요 시어머니: 씨앗은 말릴 필요 없어 며느리 : 씨앗을 페트병에다가 넣어야죠 시어머니 :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밭에 )심을텐데 며느리 : 벌레 생겨서 못살아요 여기에 벌레 생기면 맨날 벌레 잡기 힘들어요 시어머니 : 뭘 안다고 듣지를 않네 며느리 : 내 말은 안듣고 남에 말만 들어 시어머니 : 심으려나, 못심으려나 모르겠네 며느리: '심으려나 못심으려나' 맨날 그 소리예요 예전같으면 벌써 호통쳤음 그러나 시어머니는 참긔 늙으면 사람도 안따라요 늙으면 가치도 없고요 젊은 사람은 사람이야 늙은사람은 사람 취급도 안 해 이제 늙으니까 쓸모없지 너무 오래 사니까 사람대접 못 받아요 집에서는 내 부모니까 어쩔 수 없지만 남의 집에 가면 너무 오래 살았나 싶어서.. 시어머니의 답답한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은 일거리 거동이 불편하지만 고집스럽게 밭일을 하는 시어머니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욕구 때문 이것이 바로 인정욕구 심리전문가들은 인간은 평생을 걸쳐  인정받기 위해 투쟁을 펼친다고 함 할머니에게 밭농사는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좋은 수단 나 죽으면 (밭일) 안 할 거예요 못할거예요 내가 살아 있으니까(밭일을)하죠 나 죽으면(아무도) 하지 못해요 손자가 다섯이에요 서너 집만 나눠줘도 모자라요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 밭을 지켜내실 할머니 출처
80세에도 치매 걸리지 않는 비법 너무 간단
꼭 해 보세요! 가족을위해 함께 공유하세요 피부가 늙으면 주름이나 검버섯이 생기는것을 볼수 있지만, 대뇌는 늙어 위축될지라도 병원에서 검사를 받지 않는한 육안으로 볼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 볼수 없는 이런 부분이 오히려 더 중요합니다. 연세가 들어 기억력이 떨어지는건 필연적이지 않습니다. 원인은 뇌위축입니다. 연세가 들면 옛 일이 잘 기억나지 않고 물건을 어디 놔두었던지 깜빡깜빡하곤 합니다. 게다가 손과 발이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고 걸음이나 행동이 느려지는 외에도 실면, 어지러움 등 증세가 나타나는데 이런것들이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장진형(张振馨) 북경협화의대 신경내과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수 노인들이 늘 호소하는 기억력 감퇴, 이명, 실명 그리고 손과 발이 전처럼 원활하지 못한 증세가 모두 생리적인 뇌 위축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뇌세포를 활성화시키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혀를 움직이는것입니다. 일본 과학자의 연구결과, 혀를 자주 단련시키면 뇌와 안면 부위의 신경을 간접적으로 자극함으로써 뇌위축을 줄이고 안면신경과 근육 노화를 방지할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인체 노화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뇌위축에 있고, 가장 뚜렷한 증세는 혀가 경직되고 표정이 굳어지는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일본 과학자들이 지원자 8천명을 2조로 나누어 한조는 아침, 저녁으로 혀 운동을 견지하게 하고 다른 한조는 특별히 운동하지 않게 했습니다. 6개월 후, 혀 운동을 견지한 팀은 그렇지 않은 팀보다 뇌세포가 뚜렷하게 활성화되여 있는데다 문제 처리 반응도 빠른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뇌위축을 지연시키는 식이료법이외의 방법을 발견했다면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혀를 운동시키면 뇌세포를 활성화 해 뇌위축을 방지할 수 있다고 건의했습니다. 혀를 운동시키는 방법은 아래와 같이 아주 간단합니다. 그래서 혓끝이 뇌를 위해 봉사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라고요... 1.혀를 밖으로 내밉니다 혀끝에 잡아늘이는 감각이 있을 때까지 혀끝을 최대한 밖으로 내밀었다가 다시 입안으로 당겨 맙니다(卷起).이렇게 10번 반복합니다. 2.혀를 돌립니다. 혀를 입안에서 천천히 최대한 크게, 순시침 방향으로 10번 돌렸다가 다시 역시침 방향으로 10번 돌립니다. 3.혀끝으로 이를 누릅니다. 혀끝으로 상악을 10초간 눌렀다가 윗이와 아랫이의 바깥쪽, 아랫이의 안쪽을 10초간 누릅니다. 혀 운동은 시간에 구애없이 아침, 점심, 저녁 모두 할수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아침과 저녁 각각 한번씩 하는것을 권장합니다. 대뇌는 인체의 사령부로, 대뇌가 영활하고 위축되지 않아야 여러 기관과 생리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갈수 있습니다. 이는 최신 과학연구 성과이자 확실한 연구와 데이터를 통해 증명된 사실입니다. 특별히 약을 복용하지 않고도 효과를 볼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니 꼭 실천해 보시길 바랍니다. (관심만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돈을 들이지 않고 무서운 치매에 걸리지 않는 다면 해볼 수 있지 않겠어요. 뇌세포는 사용하면 할 수록 발전 한다고 하니 뇌 활용 많이 하자고요) ★ [ #좋은글톡 ] 좋은글 더보기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damik.goodwritingtalk #좋은글톡 #좋은글 #좋은글귀 #명언 #짧고좋은글귀 #좋은글모음 #인생명언 #짧은명언 #감성 #아침편지 #책속의한줄 #영어명언 #아침에좋은글 #좌우명 #새해명언 #인내명언 #결혼명언 #좋은글모음 #힐링 #힘이되는글
죽음의 신 "아누비스" 이야기.jpg (스압주의)
아쥬 자극적이고.. 아침드라마급 막장으로 흥미로운 이집트 신화 읽어보시죠 !! 이집트 신화에서 죽은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 "아누비스" 1. 아누비스 머리는 무슨동물인가 처음엔 자칼(왼쪽) 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지금은 이집트 늑대(오른쪽) 라는 별도의 종으로 분리된 상태야 학명은 (Canis anthus lupaster) 2. 아누비스 출생의 비밀 대지의 신 '게브'와 하늘의 여신 '누트' 사이에서 4남매가 태어났다 (사실 게브와 누트는 친남매라 아버지 슈가 결혼을 반대해서 도망쳐서 지들끼리 결혼했다) 오시리스, 이시스, 세트, 네프티스 오시리스와 이시스가 결혼했고 세트와 네프티스가 결혼하였다 그러나 성격 더러운 세트를 싫어했던 네프티스 (*세트는 신화에서 태풍, 모래바람, 이방인 등 강력함의 상징이다) 자신의 큰오빠 오시리스에게 호감을 품게된다 오시리스를 술취하게 한후 그와 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얼마후 오시리스와의 사이에서 아누비스를 낳게 된다 *전승에 따라 세트의 아들이라는 썰도 있다 *오시리스의 아들인데 머리는 세트를 닮은건 묻지 말고 넘어가자 근데 세트도 짚이는건 있는모양 세트 : 내 아이 아닌거 같은데!!!!! 네프티스 : ;;;; 아누비스 : 최근에 한적도 없는데 어떻게 애를 낳냐고! 세트는 폭풍을 일으키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고 네프티스는 갓난아기는 아누비스를 자기 언니 이시스에게 대신 키워달라 부탁한다 아누비스가 자기 남편의 또다른 자식인것도 모르고 이시스는 지극 정성으로 키워준다 3. 아누비스의 행적 아누비스가 성인이 되자 태양신 라 : 아누비스야, 넌 지금부터 망자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거라 아누비스 : 명색이 세트와 네프티스의 아들인데 고작 그런 메신저나 시키는거? 태양신 라 : 청년백수시대인데 일자리 주는걸로도 고맙게 여겨라 지상과 저승을 맘대로 오가는 특성상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와 썰이 많이 겹치기도 한다 어쨌든 자기 일을 열심히 하던 아누비스 띵똥~ 다음 망자 들어오세요 이때 세트가 왕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친형 오시리스를 가두는 사건이 발생한다 세트 : 쨔잔~ 형님 이 황금관 어때? 일단 만들었는데 사이즈 맞는 사람이 이집트에 안보이네 형이 한번 누워봐 오시리스 : 엇 사이즈 딱맞네ㅋㅋ 마치 날위해 만든거 같은... 세트 : ㅇㅇ 맞아 세트는 오시리스가 누운 관에 못질을 하여 늪지에 버려버린다 근데 관은 떠내려가 이집트에서 레바논까지 흘러가버린다 그리고 강가의 고목이 가지를 들어올려 관을 꿀꺽 삼켜버린다 마침 레바논에 출장왔다가 이걸 본 아누비스 아누비스 : 와 일이 꼬였네;; 우리 애비지만 좀 심한거 아니냐 빨리 이시스에게 알려야겠다!! (본인이 나무를 베서 꺼낼 생각은 안함) 아누비스의 말을 들은 이시스도 즉시 레바논으로 달려가 오시리스가 누워있는 관의 회수에 성공했다 관을 열었을때 이미 오시리스는 산소부족으로 죽어있었고... 일단 이집트까지 가져가긴 무리니까 인적없는 늪지에 관을 숨겨뒀다가 다시와서 가져와야겠어 이시스가 돌아간지 얼마후,세트가 레바논까지 사냥을 하러왔다 세트 : 오잉 저게뭐지?! 풀숲에 숨어있는 오시리스의 관 와;; 이게 왜 여기있지 오시리스의 시체를 토막내서 아예 사하라 사막과 중동에 다 뿌려라!!! 세트는 부하를 시켜 사막 곳곳에 오시리스의 시체들을 토막내 유기했다 보다못한 태양신 라 라 : 세트 저새끼가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너무 심하네;;; 야! 아누비스 잠깐 와봐!! 아누비스 : ?? 라 : 저승으로 인도해야 되는 새끼가 오시리스 몸뚱이는 토막내도 가만히 놔두냐? 직무유기 장난? 아누비스 : 그래도 우리 애비 세트의 일인데 저기까진 관여 안할려구요 라 : ㅉㅉ... 진짜 지 애비가 누구인줄도 모르고... 아누비스 : 방금 뭐라 했음? 라 : 난 몰라, 너네 엄마에게 물어봐 당장 아누비스는 엄마에게 달려가서 따진다 아누비스 : 엄마! 태양신이 내 애비가 따로있다는데 이게 뭔소리야?! 결국 네프티스는 진실을 알려준다 ㅇㅇ.. 니 진짜 애비 사실 오시리스.... 아누비스가 쇼크먹은건 당연한거고 엄마, 이럴때가 아님, 세트가 오시리스 시체 토막내서 사막에 다 버림;;; 아누비스와 네프티스는 즉시 이시스를 찾아가서 오시리스 건을 말한다 이시스 : 세트 시발놈이 기어코 내 남편을 토막내다니... 근데 너흰 세트의 아들이자 아내이면서 왜 날 이렇게 도와주는거.. 네프티스 : 언니.. 사실 아누비스는 오시리스의 아들이야... ??!.... 뭐 지나간 일이니 신경안쓴다 일단 남편부터 찾자 이시스는 사막을 계속 돌아다니며 오시리스 시체토막을 하나하나 찾았고 하나로 맞춰서 발기되게 조정했다 (모두가 생각하는 그 발기 맞음) 이시스는 매의 모습으로 변해서 발기머신 오시리스와 관계를 통해 정자를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이후 이시스가 오시리스의 몸뚱이를 저승으로 데려왔고 아누비스가 오시리스의 영혼을 육체 밖으로 꺼낸다 그렇게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다시 만나게 되고 오시리스는 저승의 왕이 된다 물론 아누비스는 여전히 따까리~ 얼마후 이시스는 아들 호루스를 낳는데 호루스는 힘을 길러 세트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호루스 : 삼촌새끼 오리시스의 원수 갚으러 왔다! 호루스와 세트가 전쟁을 벌일때 아누비스와 네프티스 모자도 호루스의 편에 들어 세트와 싸운다 세트는 결국 잡혔지만 눈물의 사과문을 써서 이시스가 맘이 흔들려 결국 풀어줘버리고 아누비스와 호루스는 이걸 듣고 길길이 날뛰었다고 한다 이후 세트는 신들의 회의에서 오시리스를 이은 다음 왕은 당연히 자신이라며 어필했고 세트 : 어이 태양신, 내가 맨날 님 괴롭히는 괴물들 잡아주는거 잊지 않으셨죠? 다른신들도 깝치면 다 몽둥이로 팰거임 라 : .... 회의에서 오로지 아누비스와 네프티스 만이 호루스가 다음 왕이라면서 끝까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이후로도 아누비스는 호루스, 오시리스의 좋은 조력자로써 망자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