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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무엇이 무엇과 무엇으로 또렷하게

연결된 무엇이 무엇과 무엇으로 또렷하게 하지만 여전히 하나라는 질척거림 속에 갈라서지만 자른 것은 또 아니라 하고 부위를 보는 예리한 칼로 얼마든지 나는 너에게서 잘라내질 수 있을 결은 또 지니고 있다 한다면 하지만 우리가 여전히 생명이라면 우리는 나에게서 너에게로 너에게서 나에게로 등심에서 안심으로 안심에서 또 등심으로 피로 묶여서 터뜨릴 피를 색처럼 머금고 자르면 사라지겠다 생명은 소멸하겠다고 공동의 전선으로 네가 숨쉴 때 나도 매번 부풀어 올랐다고 너여서 내가 안고 나라서 네가 안지만 우리가 생명이라면 결국은 뭉쳐지고 말아야 한다고 끝까지 큰 힘에는 공동의 전선으로 하지만 때로는 너의 살갗을 감상하고 나의 살곁을 자랑하며 연결된 무엇이 무엇과 무엇의 이야기인 것처럼 이야기라서 등도 보이고 이야기라서 성질도 내보이지만 무엇과 무엇이라서 이해할 수 없는 온도나 질감의 거리도 분명히 그어 가야겠지만 그러나 그것도 또 무엇과 무엇의 결국은 그런 하나의 이야기라서 네가 그은 선 없이는 나는 그저 단편 그림은 나의 것도 아니고 내가 어쩔 수 없는 네가 더 많았다고 삶은 싸운 할머니를 내가 할아버지라고 잘못 부르고 싸운 아버지를 내가 어머니라고 잘못 부르고 운명이라면 우리가 서로의 인접한 곳에서 피를 받았다고 그래서 나는 너를 때로는 짐처럼 그래서 너는 나를 때로는 업보처럼 하지만 삶은 농담처럼 나를 막고 선 듯한 등심이 잘리면 그제서야 우리가 죽는구나 내가 죽는구나 삼년 쯤 앓다 따라 죽는 반쪽들처럼 아 지독한 하나 W 심플. P Alex Klopcic.
2017.07.08 시로 일기하기_오늘 날씨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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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말 살리기]한바람 작달비 큰물
[토박이말 살리기]한바람, 작달비, 큰물 엊그제 밤에 벼락과 함께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이처럼 짧은 동안 비가 많이 내리는 일이 앞으로 잦을 것입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곳곳에 ‘태풍’ 때문에 ‘폭우’가 내려 ‘홍수’로 하천이 ‘범람’을 하는 바람에 건물이 ‘침수’되었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지요. ‘뉴스’에서 자주 듣다보니 어른들에게는 눈과 귀에 익어서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 말을 얼른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아마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들 가운데 잘 모르시는 분들도 더러 계실 것입니다. 그런 말을 갈음할 수 있는 토박이말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 슬프고 알고도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앞으로 자주 듣게 될 ‘태풍’, ‘폭우’, ‘홍수’ 같은 말과 아랑곳한 토박이말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태풍’을 보겠습니다. ‘태풍’은 한자말이기 때문에 ‘태’를 ‘클 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태’자는 ‘태풍 태’ 또는 ‘몹시 부는 바람 태’입니다. 그래서 굳이 풀이를 하자면 ‘몹시 부는 바람이 될 것입니다. 옛날에 고기잡이를 하시던 분들은 그냥 ‘큰바람’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참 쉽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큰바람’은 말모이(사전)에 ‘태풍’ 옆에 실려 있지 않습니다. ‘싹쓸바람’이라는 토박이말이 있는데 이 말을 살려 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바람의 세기에 따른 이름으로 따로 쓰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대전’을 ‘한밭’이라고 한 보기를 따라 ‘한바람’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어떤 말이 더 알맞은 말이고 좋을지 여러 사람이 슬기를 모아 봤으면 합니다. 다음에 살펴볼 말은 ‘폭우’입니다. ‘호우’라고도 하는데 이 말과 비슷한 뜻을 가진 말에 ‘작달비’라는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굵고 세차게 내리는 비’라는 뜻인데 굵은 빗줄기가 ‘작대기’처럼 보여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도 모릅니다. 비슷한 말로 ‘장대비’도 있습니다. 이렇게 작달비가 내리면 갑자기 냇물이 불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갑자기 불어난 물을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는 ‘큰물’이라고 했지요. 이런 큰물이 흐르다가 둑을 넘어서면 ‘둑이 넘쳤다’고 했고, 넘친 물에 논이나 밭이 잠기기도 했습니다. 제가 한 말을 보면 아시겠지만 ‘홍수’, ‘범람’, ‘침수’라는 말을 쓰지 않고도 우리가 알리고자 하는 뜻을 담았습니다. 어떤 말이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말인지는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작달비’, ‘큰물’, ‘넘쳤다’, ‘잠겼다’가 더 쉽고 얼른 알아차릴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날씨나 알거리(정보)를 알려 주시는 분들이 깊이 생각해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말하는 것도 버릇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어떤 낱말을 쓸 때 몰라서 못 쓰는 게 아니라 두루 많이 쓰는 말을 쓰게 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쉬운 토박이말을 넉넉하게 익히고 배우는 길을 열어서 나날살이에서도 자주 쓰는 날이 얼른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4354해 온여름달 스무나흘 낫날(2021년 6월 24일 목요일) 바람 바람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한바람 #태풍 #작달비 #폭우 #홍수 #큰물 #터박이말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이 글은 경남일보에도 보냈습니다.
[라이트하우스] ‘현타’보다 선명한 미래는 없다
- 욕망의 여정으로 보는 원초적 공포 ※ 영화 <라이트하우스>의 결말 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 ------- 공포영화에서 공포는 주로 ‘어떻게’ 오는가. 우선 어제와 다른 오늘, 익숙한 시공간에 금이 가고 그 틈으로 괴물 또는 괴이한 무언가가 스며들겠지. 가족과 친구들, 주인공의 미래가 그것들에 갉아 먹혀갈 때 공포영화는 그 상황과 괴물을 공포의 근원으로 삼을 터. 이때 공포감의 운동성은 ‘칼’의 움직임과 닮았다. 평온의 막을 베고 침투해서는 난도질, 그러다 훅, 관객의 영역까지 찌르는 모양새. 물론 이 물리적 흐름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화들은 있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라이트하우스>(2019)도 그중 하나. 이 영화에는 침입, 침투, 그 무엇이든 쳐들어와 헤집는 운동성이 없다. 일상과 비일상 간 대조도, 공포의 제작 및 전달자도 부재하다. 그럼에도 국내외 영화 소개 페이지들은 이 작품을 ‘호러’로 분류 중. 실제로 제법 무시무시하다. 공포 전달용 일반 회로가 장착되지는 않았지만 무섭다는 말, 이 공포감의 정체는 뭘까? # 욕망과 욕망의 오디세이아 흑백으로 촬영된 <라이트하우스>는 20세기 초반의 두 등대지기, ‘고참’ 토마스 웨이크(윌렘 대포)와 ‘신참’ 에프라임 윈슬로(로버트 패틴슨)에 관한 이야기다. 에프라임은 등대 불빛을 교대로 관리하길 바라지만 토마스는 이를 완강히 거부한 채 불빛을 독차지한다. 두 남자, 억누름과 밀어올림. 무슨 일이 일어날까. 영화 중간의 짧은 숏 하나, 거꾸로 보이는 등대가 화면이 뒤집히면서 바로 선다. 이를테면 발기하는 페니스. 실제로 로버트 에거스는 여기다 진짜 페니스를 찍어 붙이려 했으나 무산됐다고 한다. 다시 ‘두’, ‘남자’임을 떠올리자. 그러니까 <라이트하우스>는 발기된 두 개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외부 ‘침입’보다는 서로 간 ‘경합’이 어울릴 듯하다. 욕망은 둘인데 탐할 수 있는 실체적 대상, 즉 등대 불빛은 하나인 상황. 영화는 주로 욕구불만인 에프라임의 의식 흐름을 좇는다. 훔쳐보기는 수순일까. 그는 등대 불빛 칸에서 토마스가 인어인지 거대 촉수인지 모를 무언가와 ‘교미’ 비슷한 것을 하는 걸 보고, 자신을 대입시키고, 분출하고, 분노한다. 이런 식이다. 단, 경험 없는 상상은 결핍을 키우기 마련. 욕망은 끝내 해소돼야 한다. 어떻게? 나를 가로막는 토마스를 없애서라도. 애초에 이럴 운명이기는 했다. 이 등대섬은 그러라고 장만된 무대 같다. 폭풍우는 멈출 기미가 없으며 교대팀의 배는 오지 않는다. 고립은, 공간 감각은 물론 시간 경과에 대한 인식마저 도려낸다. 며칠 혹은 몇 주가 흘렀는지 시간적 배경을 그들도 관객도 모를 지경. 게다가 각자 과거의 고백과 의심이 뒤섞여 두 사람의 정체성마저 뭉개졌다. 에프라임의 ‘욕구 불만족’과 토마스의 ‘수호 의지’만이, 이 우주를 통틀어 남은 유이한 키워드인 것 같다. ‘이때 토마스는 누구인가?’ 토마스는 해독 불가한 모종의 구전 신화를 읊는 등 무언가에 홀린 듯하면서도, 일이 느리고 게으르다며 에프라임을 구박하고 말대꾸 시 급여를 안 주겠노라 협박까지 한다. 원시성과 현실성을 두루 갖춘 억압. 말은 안 통하는데 위협은 실재적이다. 익숙하지 않은가. 이를테면 누구나 한 번은 겪(었)을 폭압적 부모, 스승, 선배, 상사, 또는 그 비슷한 무엇들. 안타깝게도 이 토마스‘들’은 특정한 마법으로 소환된 게 아니라 그냥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 우리, 그리고 우리의 욕망이 그렇듯. 두 욕망의 역학관계상 나중 것에 의한 전복은 필연이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에프라임은 마침내 등대 불빛을 오롯이 향유한다. 결과는? 그는 불빛을 보며 쾌락인지 고통인지 모를 표정으로 산화하듯 절규하다가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아마도 죽겠지. 불빛의 정체와 그 순간의 감정은 영영 알 수 없게 됐다. # ‘현타(현실 자각 타임)’와 ‘죽음’, 언제나 참 결자해지의 의지일까. 로버트 에거스 감독은 여기다 최종 숏을 붙임으로써 이 등대 치정극의 ‘장르’는 규정 지어준다. 바로 눈 하나를 잃은 알몸의 에프라임이 바닷가에 널브러져 죽어 가면, 갈매기가 그의 내장을 뜯어먹는 숏. 이때의 에프라임은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한테 전해줬다가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게 된 프로메테우스와 노골적으로 닮았다. 이를테면 ‘신화’로 박제된 ‘소멸’의 엔딩. 왜? 에프라임이 욕망했기 때문에. 오르가즘은 태생적으로 증발하는 것 아니던가. 거 ‘현타’ 한번 오지다. 한걸음 더. 욕망의 카테고리 중 가장 큰 것은 ‘숨’의 지속, 즉 생(生)에의 의지다. 이렇게 보면 증발하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이요 기다리는 건 죽음이 된다. 선점자인 토마스도, 후발주자인 에프라임도 모두 죽었다. 쾌락이든 목숨이든 일단 점유한 자들은 길게 머무를 수 없다. <라이트하우스>에서 공포란, 곧 소멸할 쾌락을 좇도록 디자인된 우리의 방향성,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의 너머에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 셈이다. 이 정도로 근원적인 공포감이 기존 호러영화들의 운동성을 짜잔, 두르기란 어렵다. 보다 날-공포인 만큼 그 성질에 대한 힌트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찾아야 한다. 날것, 태초… 그렇게 인류의 출현부터 먼 미래까지를 ‘꿰어’버린 영화로 가보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이 걸작 SF를 꺼내든 건 이 영화에 인류사를 유인원 시절부터 촉발시켜온 검은 돌기둥 ‘모노리스’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색이 입혀지기 전부터 우리 생을 운용했을, 절대적 배후 같은 물질. ‘증발’과 ‘소멸’, ‘죽음’ 따위의 <라이트하우스>적 공포는 바로 이 영험한 유물에 새겨진 지침처럼 존재한다. 애초에 운동성을 띨 필요가 없었던 것. 가라사대, 침투하지 않아도 그저 기다리면 인간들이 도착하리니. ← 공포계에 짜라투스트라가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위)<라이트하우스>의 최종 숏 / (아래)<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모노리스’ # 이보다 선명한 미래는 없다 로버트 에거스는 장편 데뷔작 <더 위치>(2016)에서 마녀를 공포감의 근원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선택되는 모종의 출구로 다뤘다. 무서운 건 모든 걸 왜곡하는 렌즈, 즉 인식 불능에 빠진 ‘맹신’의 시대였다. 그리고 <라이트하우스>에서는 비율 1.19:1의 흑백 프레임에다 ‘소멸론’을 인류의 기원신화인 양 보존해놨다. 말로 옮기자면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정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욕망하고 살아가는 우리 앞에, ‘현타’와 ‘죽음’보다 선명한 미래가 또 있을까? ⓒ erazerh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
남편 바람으로 가정 파탄난 분들 꼭 상간녀 소송 하십시요. (사이다 주의)
현재 저는 이혼한 30대 후반 여자입니다. 유부남 남친이 있다는 글을 보고 빡이 쳐서 글을 씁니다. 제 남편도 바람이 주특기인 새끼였습니다. 처음 걸렸을 때 제가 봐주고 넘어간게 화근이었죠. 바람핀 거 걸리고 4개월도 안 지나서 또 바람을 피우더군요. 일단 제가 한 첫마디가 뭔지 아시나요? 부부사이에 믿음이 깨졌다고 폰 검사하고 그런거 아닌 거 같다. 믿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야근 한다고 해서 고생한다고 일부러 술자리도 보내줬어요. 그리고 그놈 잘때 카톡 스샷, 통화내역 다 찍어놨습니다. 블랙박스도 꼼꼼히 확인해서 동영상으로 남겼구요. 그리고 증거가 모일만큼 모였다고 판단되서 남편한테 말도 안하고 상간녀 소송을 했습니다. 소장이 날아갈때까지 그냥 이가 갈리고 치가 떨렸는데 최대한 참아가면서 살았습니다. 소장 받고 난 뒤 그 상간녀랑 남편은 화들짝해서 오해다 그런 거 아니다 난리를 쳤지만 저는 남편에게 나는 너랑 이혼 안해. 상간녀만 조질거야. 라고 말했고 남편은 결국 가출해서 그년이랑 동거 상태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전 이러한 내용을 회사에 내용증명으로 보내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내가 할수 있는 모든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그 상간녀 주소지가 본가로 되어있고 부모님 명의로 얻어주신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고 그 집까지 내용증명 다 보냈습니다. 그리고 민사를 걸면 통장 가압류 부동산 가압류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전 민사 걸고 통장 가압류를 걸어 놓은 상태로 1년 4개월 만에 승소해서 월급 가압류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재판 결과를 또 내용증명하여 보냈습니다. 결국 그 여자는 회사에서 짤리고 퇴직금도 가압류 조치를 해놓고 제가 다 챙겼습니다. 그러자 그 천년의 사랑같은 남편과 상간녀 싸우고 헤어지더니 남편은 집에 들어와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너랑 이혼 안해라고 말하고 일다니고 제 생활 열심히 했고요. 남편은 결국에 시댁으로 가서 생활하고 별거 아닌 별거 상태로 1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그 상간녀가 혼전 임신으로 결혼한다는 sns를 봤습니다. 결혼식장 날짜 다 아는 순간 저는 판결문 둘이 나눈 카톡 프린트 하고 블랙박스 usb에 담아 그 상간녀 결혼식장에 가서 축의금 통에 5만원 제 남편 이름으로 축의금 냈고 사돈되실 어른들한테 가서 증거가 담신 봉투를 건내고 식이 끝나면 보셔라 말하고 집에 왔습니다. 결국 그거 보고 혼전임신이지만 결혼식만 치룬채 그 상간녀의 결혼 생활은 끝이 났고 남편은 저보고 끝난 사이인데 그랬다고 노발대발 하길래 조용히 말했습니다. 니가 그런거야. 누가 먼저 꼬셨든 넌 가정을 지켰어야 했어. 니가 나를 이렇게 만들고 쟤가 저런 불행을 겪게 했어. 너는 나, 저 여자, 저 여자랑 결혼할 남자 이렇게 셋 인생을 쓰레기 통에 집어 넣은 거야. 너가 그런 거니까 앞으로 바람필 때 늘 생각해. 라고 말하고 이혼 소장을 내밀고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법원에 친정 부모님과 동행해서 부모님은 그놈한테 개쌍욕을 퍼부으셨고 고소를 하네 마네 하길래 고소하는 순간 이혼은 없다. 너가 또 누군가 만나고 있는 거 안다. (그냥 찍은 겁니다.) 걔 인생도 한번 나락 보내줄까? 했더니 입 쳐닫고 조용히 이혼 절차 밟았고 제가 그 놈한테 한 말은 병신이었습니다. 지금 유뷰남 만나시는 년님들아 결혼식장에 저같이 판결문으로 축의금 내서 잣되기 싫으시며 남의 남자랑 쳐자는 창x같은 짓 하지 마시구요. 남편이 바람피는 분들아 울지 마세요. 화내지 마세요. 겁 먹지도 마세요. 애 있어서 이혼 안하고 ATM으로 쓰실려면 쓰세요. 단, 상간녀 소송은 꼭 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람피는 그 새끼한테 꼭 말해주세요. 니가 쟤 인생을 망쳤다고. 니 양심 있다면 조금이라도 자책하고 죽고 싶길 바란다다고. 최고의 복수가 잘 사는 거라는 말 거짓말이예요. 최고의 복수는 잘 괴롭히다 버리는 겁니다. 내 인생이 괴로워서 그렇게 안하면, 이혼하면 그때 뭐라도 할걸 후회합니다. 꼭 복수하시길. 그리고 이 상간녀 미친x들아 니들이 만만해서 데리고 자는 거야 병신들 진짜. ㅊㅊ 혹시 엥? 간통법 없어졌자나ㅠ?? 라고 생각하시는 사람들~ 형사는 없어졌지만 민사는 쌉가능이야 ㅇㅇ 손해배상으로 진행된대 이혼할 때 상간자소송을 하면 가정법원에서 가정파탄의 원인을 두고 소송 진행하는 거고 이혼 안 하고 소송만 걸면 민사로 위자료 청구 하는 거고 ㅇㅇ 둘 다 위자료 청구하는건데 이혼하면 더 많이 내야 한다고 함 그리고 확실하지는 않은데 상간녀, 상간남 소송 중복소송 걸수도 있다고 함
[아들, 딸에게 들려 주는 좋은 말씀]23
[아들, 딸에게 들려 주는 좋은 말씀]23-우리는 나를 이김으로써... 사랑하는 아들, 딸에게 어제 뒤낮(오후) 소나기가 올 거라고 하더니 참말로 소나기가 내렸지. 그리고 내가 집에 갈 동안에는 해도 났었는데 저녁에 벼락과 함께 비가 올 거라고 하더니 어김없이 그렇게 비가 주룩주룩 내렸지. 그걸 보면서 날씨 알림이 마치 다맞힘이(점쟁이) 같다는 생각을 했단다.  오늘 들려 줄 좋은 말씀은 "우리는 나를 이김으로써 스스로를 나아지게 한다. 나와의 싸움은 언제든 있기 마련이고 그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야. 이 말씀은 잉글랜드(영국)에서 지나간 일들을 깨치는 일을 하신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 님께서 남기셨다고 해.  어려운 쪽보다는 쉬운 쪽으로 가려는 나, 울퉁불퉁 꼬불꼬불 거친 길보다는 반반하고 곧으며 부드러운 길로 가려는 나와의 싸움이 그리 가든한 것은 아니지. 하지만 그런 싸움에서 질 때마다 나는 갈수록 쪼그라들거나 뒤처지는 열매를 낳는다는 것을 느끼거나 보기도 하지.  아침에 잠자리에서 좀 더 누워 있고 싶은 나를 벌떡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사람도 나라는 것, 배운 것을 다시 익히고 해내야 할 것을 앞에 두고도 노는 쪽으로 가는 내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것도 나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 말씀을 되새겼으면 해.  오늘도 나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이긴다는 생각으로 멋진 하루를 만들어 가는 아들, 딸이 되길 바란다. 다른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이어줄 때 '우리는 자신을 이김으로써 스스로를 향상시킨다. (자신과의) 싸움은 반드시 존재하고 거기에서 이겨야 한다.'라고 하던데 나는 '자신'이 곧 '나'기 때문에 그리고 향상시킨다는 말이 나아지게 한다는 말과 같은 거라고 봤어. 그리고 '반드시 존재하고'는 '언제든 있기 마련이고'로 풀어 보았단다.  뜻을 알아차리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4354해 온여름달 스무사흘 삿날(2021년 6월 23일 수요일)바람 바람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좋은말씀 #명언 #터박이말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에드워드기번
스무 살 K야, 그러니까 삶은 주관식이다.
... 섣부르지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그러니깐, 삶은 주관식이란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의 교육동안. 언어영역이든 수리영역이든, 과학탐구영역이든 사회탐구영역이든 외국어 영역이든 다음 중 옳은 것은? 옳지 않은 것은 보기 중에 고르시오. 1번 2번 3번 4번 5번 이라고 보기를 알려주잖아. 그런데 인생은 그게 아니더라고. 스무 살이다. 다음 중 자신에게 알맞은 인생을 고르시오. 1번 수능에 성공했다 대학에 입학해 공무원을 준비한다. 1-2번 대기업을 준비한다. 1-3번 전문직을 준비한다. 2번 수능에 실패해 재수에 도전한다 2-1번 재수에 실패 삼수에 도전한다. 3번 수능에 실패해 편입한다. 3-1번 수능에 실패해 지방대를 간다. 4번 대학 공부해서 대학원에 간다. 5번 대학이 뭐고 군대를 가던지 취업한다. 1번에서 5번 보기 모두 중요한 질문이 빠졌다. 오늘, 행복하니, 내일 아침이 기다려지니. 어른들은 그렇게 말한다. 남들과 비슷하게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야 한다. 인생 뭐있냐. 인생 뭐있냐. 인생 뭐있냐. 미안하지만 그런 말들이 스무 살을 죽이는 길이다. 슬프게도 인생은 하루하루 버텨내고 견뎌내야 한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살아내는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내는 것이다. 왜 내가 오늘 살아야하는가 그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하루하루 사는 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 그러니 스무살 K야. 지금까지 살아낸 것을 나는 축하한다. 수많은 덕담을 들었겠지만. K야 너의 오늘을 축하한다. 다만 앞으로 녹록치 않다. 쉽지 않다. 더 어려운 일들이 내게 있다. 아마도 등록금을, 연애를, 취업을 그리고 결혼을 내 집 마련을 생각하면 숨 막힐지 몰라. 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게임처럼, 처음부터 인생은 리셋 할 수 없기에 ‘끝팡왕’이란 괴물이 어디에서나 나타나서 힘들지 몰라.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일단은 오늘을 오늘 하루가 즐겁다면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자꾸 뭐 먹고 살 꺼냐고 묻는 질문을 때때로는 잊자. 수학능력시험을 보고 난 스무 살, 너는 지금부터 취업을 준비하는 게 아니다. 지금부터 너만의 인생의 답안지를 써내려가는 것이다. 너란 사람, 너만이 쓸 수 있는 인생을 한 줄 한 줄 써내려가는 것이야. 그건 아무도 정답을 알 수 없단다. 그 인생이 100점이다 아니다 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도 너 밖에 없단다. ... 나만의 답안지를 쓰려면 먼저 나를 알아야 한다. 내가 누군지를 알아가는 공부를 해야 한다. 취업 9종 세트가, 외국어가 취업이 자격증 공부가 아니라,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나를 즐겁게 하는 것, 내가 잘하지는 못하지만 배우고 싶은 것, 내가 진짜로 못하는 것, 남이 가르쳐도 못하는 것들을 적어 내려가야 한다. 왜 적어야 하냐고. 두 가지 이유에서야. 일단 선생이든, 변호사든 공무원이든 회사원이든 연구원이든 일은 ‘국어’로 하는 것이다. ‘영어’로 하지 않는다. 상사와 동료와 후배와 ‘의사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 일을 잘한다. 그리고 일을 잘하려면 상대방이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어야 한다. 아울러 ‘내’가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을 명확히 알야 한다. 그래서 ‘못’하는 일이 내게로 올 때, 상대방이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거절’을 잘 해야 한다. ‘잘’하는 일이 내게로 올 때는 제가 ‘하겠습니다’라며 상대방을 ‘설득’해야 한다. 더 근원적으로 살펴보면 누구나 욕망이 있다. 티.모.스. 철자는 ‘thymos’. 한마디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다. 칭찬이 고래를 뛰놀게 하듯이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로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다면, 그날의 기분이 내일을 내일 모레를 견뎌낼 용기를 준다. 하루하루 살아낼 버텨낼 용기를 준다. 그런 일들이 그저 밥벌이로만 월급의 액수로만 결정할 수는 없다. 그것을 외면한다면, 삼수를 해서 공무원이 됐는데, 회사원이 됐는데, 변호사가 됐는데도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왜 인생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라며 잘못된 선택을 한다. 살아내자. 그리고 행복하자. 스무 살이 이제부터 시작이다. 너만의 주관식. 너만의 답안지 그것이. 너의 오늘을 내일을 모레를 구원할 테다. 그러니 스무 살 K야, 일기든 다이어리든 적자. 너에 대해서, 너가 무엇에 웃는지, 무엇에 슬퍼지는지를 행복해지는지를. 황사가 불든 세찬 바람이 불든 비가 내리든 너의 유일한 편은 너 자신. 너를 지켜주는 것은 너 자신일 테니 말이야. 생략 많이 했습니다. 전문 편집자주 _ 여자 나이 서른 셋 그리고 백수. 미혼이다. 본인 스스로를 ‘무중력의 일상’을 살아가는 여행자라고 소개하는 昇微(승미)님은 그러나 한때 가장 치열한 정치 현장을 취재하는 경제지 기자였다. 글 쓰며 밥벌이 할 수 있는 사람을 꿈꾸며 기자가 되었지만, 4년 3개월 만에 불면증을 얻고, 퇴사했다고 한다. 궁금했다. 만만치 않은 글 솜씨를 지닌, 하지만 만만한 듯 만만한 나이가 아닌 이 언니는 대체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것일까. 찬란하게 도전하고 번번이 실패하는 청춘들에게 고한다. 기꺼이 실패했던 그러나 아직도 찬란하고 싶은 ‘언니’가 나근나근 건네는 ‘진담’ 말이다. 출처ㅣ쭉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