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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헨리 소로의 슬픈 사랑

Fact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22살 때인 1839년, 그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엘렌 시월이라는 여성이었다. ▲그런데 2살 위의 형 또한 엘렌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두 형제는 이듬해 가을,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하지만 모두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3년 후, 소로는 메사추세츠 주 월든 호수 근처에 직접 오두막을 지어 들어가 살았다. ▲그곳에서 보낸 2년 2개월 2일 동안의 삶과 통찰을 담은 책이 ‘월든(Walden)’이다. ▲소로 탄생 200년. 그의 술픈 사랑과 사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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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2일은 시인이자 자유주의, 자연주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등에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제자이자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소로는 1817년 7월 12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Concord)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눈을 감은 곳 역시 콩코드였다. 1862년 5월 6일, 소로는 그곳에서 45세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숨을 거뒀다.  소로가 거의 평생을 살았던 ‘콩코드’는 원래 그 지역 인디언 말로 ‘머스케타퀴드(Musketaquid)’라고 불렸다. 머스케타퀴드는 ‘초원’이라는 뜻으로, 이 일대에는 그만큼 초원이 많았다고 한다. 소로가 ‘자연주의 사상가’로 유명해진 데에는 그가 살았던 지역의 자연친화적 분위기도 한 몫 했던 것으로 보인다.   28달러 12센트로 지은 오두막에서 살다 하버드 출신의 젊은이는 27세이던 1845년 3월 말, 28달러 12센트를 들여 콩코드에 있는 월든(Walden) 호수 북쪽에 오두막을 짓기 시작했다. 당시 28달러 12센트의 가치를 현재 원화로 따져보면 약 100만원 남짓 된다고 한다. 통나무집 한 채를 짓는 데 들어간 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금액이다.  집짓기를 끝낸 소로는 미국 독립기념일인 1845년 7월 4일 오두막으로 입주했다. 그곳에서 2년 2개월 2일 동안 살다, 1847년 9월 오두막을 나왔다. 월든 호수는 오늘날 매사추세츠 주가 ‘주립 보존 공원’(State Reservation Park)으로 지정해 보호하는 곳. 소로는 월든 호수를 두고 ‘신의 물방울’ ‘콩코드의 보석’이라고 불렀다.   미국문학가인 신문수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10여년 전 직접 본 월든 호수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호수는 여전히 맑고 투명했다. 물가로 내려서니 호수 바닥이 잡힐 듯이 가깝다. 들고나는 물줄기 하나 없이 고여 있는 호수의 물이 어떻게 이처럼 맑을 수 있을까. (중략) 고개를 드니 멀리 서쪽 건너편까지 호수의 전경이 7월의 눈부신 햇살 아래 아스라이 드러난다. 원경 속의 호수 물빛은 짙푸른 청록색이다. 숲으로 둘러싸인 맑고 고요한 호수는 아닌 게 아니라 푸른 하늘을 쳐다보는 ‘대지의 눈’을 연상시킨다.” (2006년 6월 12일 신동아)
콩 심고, 낚시하고, 명상하고, 산책하고…
이 호숫가에서 소로가 보낸 2년 2개월 2일 간의 삶과 통찰을 기록한 에세이가 바로 ‘월든(Walden, 1854년)’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자연주의자로서의 소로가 오롯이 드러나 있는 책이다.
소로는 호숫가에 살면서 자연에 있는 과일과 채소를 주로 먹었다고 한다. 콩도 심어 먹고, 생선도 낚시로 잡으며 살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명상과 산책에 썼다. 조선 선비들이 꿈꿨던 ‘안빈낙도’의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소로가 깊은 숲속 월든 호숫가로 들어간 이유는 뭘까. 그는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책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만 직면해도 인생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죽을 때 내가 인생을 헛산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싶었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이란 매우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체념하고 싶지도 않았다.” (‘월든’의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중.)  
가디언 “소로가 오두막에 산 것은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영국 가디언이 12일(현지시각)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다른 내용을 기사화했다. “(월든 호숫가에서) 소로가 쓰고 있었던 책은 ‘월든’이 아니라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이었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그가 의도적으로 살기 위해 오두막에 들어가 살았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동시에 기억하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고 보도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이라는 책은 소로가 22살때인 1839년, 두 살 위의 형인 존 소로 주니어(John Thoreau, Jr.)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느낀 사색과 철학을 담고 있다. ‘월든’과 이외에 그가 살아있을 때 출판된 책은 이 책 뿐이다. 
스물두 살에 찾아온 사랑, 그런데… 
당시 소로에게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1839년 소로가 형과 함께 여행을 떠날 즈음, 두 형제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처럼 형제는 같은 여성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소로의 사상과 작품세계를 기리기 위해 1941년 만들어진 ‘소로 소사이어티’(The Thoreau Society) 홈페이지에 따르면 소로는 22세 때인 1839년 9월, 엘렌 시월(Ellen Sewall)이라는 여성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런데 형인 존마저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존과 헨리는 이듬해 가을, 차례대로 엘렌에게 청혼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두 형제의 청혼을 모두 거절했다. 아버지가 소로의 자유주의적 종교관에 반대한다는 이유였다. 소로가 인생에서 사랑한 여자는 엘렌 단 한 명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극적 사랑 뒤에 찾아온 슬픔
비극적 사랑이 지나간 후에는 슬픔이 찾아왔다. 2년 후인 1842년, 존이 파상풍 감염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사망한 것이다. 그로부터 3년 후부터 2년 2개월 2일간 소로는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지어 숲속 생활을 시작했다. 
소로가 어릴 때부터 줄곧 콩코드에서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하버드 대학 신문인 ‘하버드 신문(Harvard Gazette)’은 6월 29일자 기사에서 ‘하버드생 소로’에 대해 다뤘다. 이 기사에 따르면 소로는 16세이던 1833년 8월 30일 하버드 대학에 입학해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했다. 
하버드 대학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미국 최고의 명문대학이었다. 그런데 소로는 “나의 육신은 하버드 대학의 일원이었지만 내 마음과 혼은 소년 시절의 정경으로 멀리 떠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공부하는 데 헌신해야 할 시간들이 내 고향 마을의 숲을 찾아 헤매고 호수와 시내를 탐험하는 데 소비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소로 연구가인 레이몬드 아담스(Raymond Adams)는 하버드 신문에 “소로는 대학생활을 즐겁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생각한 것만큼 불행한 생활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버드 대학 호튼(Houghton) 도서관에서 열린 ‘소로 전시회’의 큐레이터를 맡은 로날드 A 보스코(Ronald A. Bosco)는 “소로는 하버드에서 지속적으로 친한 친구를 사귀고 배움의 과정을 아주 즐겼다”며 “학교를 떠난 이후에도 대학 및 도서관을 계속 이용했다”고 말했다. 
하버드 신문은 “그러나 여러 면에서 하버드와 소로가 잘 맞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라며 “소로는 하버드 대학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고 시골마을인 콩코드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다.  
체벌에 반대… 교사직 그만둬
소로는 대학 3학년 때 휴학을 했다. 하버드 대학의 학비와 기숙사 생활비가 소로의 가족에게 부담이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하버드의 1년 학비는 179달러였다. 현재 통화가치가 당시의 30배에 달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1년에 약 645만원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소로는 이후 건강상의 문제가 겹치면서 휴학을 거듭했다. 그는 20살 때였던 1837년 하버드를 졸업했다. 
당시 미국은 경제적 불황을 겪고 있었다. 일자리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소로는 콩코드의 공립학교 교사로 취직했다. 하지만 2주 만에 그만뒀다. 학생들을 체벌에 처하는 학교의 방침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후 소로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연필공장에서 일했다. ‘소로 소사이어티’ 홈페이지에는 “소로의 가족은 아버지가 소유하고 관리하던 연필공장을 통해 상공업의 ‘조용한 절망’(quiet desperation)을 경험했다”고 했다. 
강력한 노예제 폐지론자
소로는 열렬한 노예제 폐지론자이기도 했다. 그는 노예가 캐나다로 갈 수 있도록 탈출을 돕는 비밀 단체 ‘지하철도’를 지휘했다. ‘도망자 노예 법’(the Fugitive Slave)과 존 브라운(John Brown)의 처형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청원의 글을 쓰기도 했다. 존 브라운은 급진적인 노예제 폐지론자로 정부에 대항하다가 국가변란죄로 투옥, 사형 선고를 받고 1859년 12월 2일 처형됐다.    
3년 후인 1862년, 소로는 대학 때부터 앓던 결핵으로 숨을 거뒀다. 그의 스승이자 오랜 벗이었던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장례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가는 얼마나 훌륭한 아들을 잃었는지 아직 알지 못하거나 아주 일부만 알고 있습니다. 그의 영혼은 고귀한 사회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짧은 생 안에서 이 세상의 능력을 전부 소진했습니다. 그는 지식과 미덕과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서든 집을 발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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