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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토박이말]찌러기

[토박이말 맛보기]찌러기 / 이창수 (사)토박이말바라기 두루빛

[오늘 토박이말]찌러기
[뜻]몹시 사나운 황소
[보기월]오늘같은 날씨에 찬바람틀이 없으면 찌러기처럼 되는 아이들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날씨를 미리 알리며 '찜통더위'라는 말을 쓰는 것을 봤습니다. 찜통에 들어가 본 사람이 있을까마는 찜통 안에 들어가 있는 듯이 매우 덥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어 만든 말일 것입니다. 아침부터 찬바람을 틀어 달라는 아이 말에 못 이기는 듯이 찬바람틀을 켰습니다. 참일 저도 흐르는 땀을 닦기에 바빴기 때문입니다. 
  배곳(학교)에 가는 동안 만들어진 땀을 말리지도 않아서 아이들끼리 다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늘같은 날씨에 찬바람틀이 없으면 찌러기처럼 되는 아이들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말입니다. 욱하는 것을 잘 다스리지 못해 말밥에 오르내리는 이름난 사람 이야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 들었습니다. 
 뒤낮에는 오랜만에 배곳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을 넘기며 서로 웃기도 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웃으며 즐기는 자리와 더불어 우리 아이들의 밝은 앞날을 생각하며 힘과 슬기를 모아보는 좋은 자리가 자주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안친 일에 쫓기며 보내는 날이 많다 보니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 아쉽습니다. 
  새 나라일터(정부)에서 마련한 나라할일(국정과제) 100가지 가운데 우리말과 아랑곳한 것이 없어서 아주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저마다 생각하는 '나라다운 나라'가 서로 다른 줄은 알지만 나라일꾼들이 서둘러 챙겨야 할 나라일 100가지 안에도 넣지 않을 만큼 우리말을 업신여긴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아이들도 한마음으로 바라는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는 토박이말 살리기부터"라는 것을 얼른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고삐 풀린 찌러기 소같이 길길이 뛰는 종술의 가슴팍을 익삼 씨가 거푸 손으로 밀어붙였다.(윤흥길, 완장)
4350해 더위달 스무날 낫날(2017년 7월 20일) ㅂㄷㅁㅈ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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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겁나 오네영 이런 날은 출근 안해야 되는거 아님? 물론 출근은 매일 하기 싫습니다만 ㅋㅋㅋㅋㅋㅋ 짤줍이 저한테두 일탈이에여 열분덜... 오늘은 비도 오고 기분도 꽁기꽁기하니까 사투리플 한번 해볼라는데 괜찮으쉴? 기분이 꽁기꽁기하니까 접때 빙글에서 봤던 댓글도 생각나규 (이거 보고 언짢아서 그러는거 절대 아님) 저기 좋아요가 6개나 있다니 지짜 사투리 쓰는게 거북한 사람이 저러케 많단 말? (언짢아서 그러는 거 맞는 듯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많으시다면 오늘 한번 거북하게 해드릴게유 ㅋㅋㅋㅋㅋㅋㅋ 그럼 손가락 사투리플 갑니다 ㅇㅋ? 1. 노래방 예약하는 전라도 시방 모대야 2. 노래방 예약하는 경상도 겁재이 아이고 급재인데요? 그나저나 다비치 지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 진짜 경상도 가짜 경상도 구분방법.txt 정확히는 ㅇㅂ 구분방법 끌고가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4. 충청도라고 다 같은 충청도가 아니여 아 기여? 알아서 햐~ 5. 갱상도라고 다 같은 갱상도가 아니디 긍까 이걸 와 모르노? 답답시릅네... 6. 갱상도사투리는 매우 효율적인 언어다 갱상도 사투리에 성조가 있는건 다들 알져? 성조가 있어서 이걸로 받아쓰기가 가능한 매우 효율적인 언어임 ㅋㅋㅋㅋ 스울사람들 이거 구분 몬한다캐서 내 깜짝 놀랐다 아입니꺼! 7. 전라도 요즘은 사투리 많이 안써~ 아 있냐~ 이건 갱상도사투리에서 맞나? 랑 일맥상통하는듯 자꾸 맞나 카면 대답해줘서 당황 8. 나도 이거 사투린지 몰랐는디 으➡️으↗️으↘️가 사투리라는건 나도 처음 알았음여 ㅋㅋㅋㅋㅋㅋㅋ 저 이거 사투린줄도 모르고 외국인한테도 썼는데 외국인들이 나중에 말하더라구여 표정으로 알아들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 9. 갱상도 사람들 함 마챠 보이소 4번빼곤 다 알겠음 ㅇㅇ 다들 식사는 하셨져? 저도 이거 쓰다가 밥묵고 이어서 썼심더 ㅋㅋ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은 이거 저도 유머에다 쓰긴 했지만 사투리가 교양없고 웃겨서가 아니라 다양한 언어들 중 하나라는거, 다양성의 척도임을 보여주기 위함을 알아주시길 ㅋㅋㅋ 실제로 서울말이 표준어가 된건 일제시대라는것도 다들 아시져? ㅋ 사투리는 틀린게 아니라 다른거라는걸 다시 한번 강조하며 오늘의 짤둥이 물러갑니동 ㅋㅋㅋㅋ 참! 댓글은 다들 사투리로 달아 보는거 어때여? 서울사람들은 서울말로 부산사람들은 부산말로 광주사람들은 광주말로 충주사람들은 충주말로 원주사람들은 원주말로 제주사람들은 제주말로 ㅋㅋㅋㅋㅋㅋ 달아주세여 ㅋㅋㅋㅋㅋㅋ 당당하게 쓰자 사투리!!!!! 이거 쓴다고 점심시간 다 썼네 ㅋㅋㅋㅋ 그럼 이만 짤 주우러 빠잇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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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이 하도 어지러워 먼저 읽을 책들을 한쪽으로 빼서 쌓아보았다. 돌 쌓기처럼 뭔가를 기원하는 의식 같기도 하다. 나는 내 나태의 타파를 기원하는 것인가. 보름달을 보고 한 가지를 빌 수 있다면 뭘 빌어야 할까. 따져보면 단박에 떠오르는 뭔가가 없다. 왜냐하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사실상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빈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이고, 고만고만한 소원들은 딱히 우선순위가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시에 썼던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고, 앞으로도 내내 그러할 텐데 그 문장인즉슨, “원하는 걸 가질 방법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걸 꼭 취하고 싶다. 원하는 걸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렇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다. 지금은 죽은 어떤 가수의 노랫말 중에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라는 가사를 보며 그거 하나 모르는 내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조금 자라자 나는 정말로 내가 원한다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 같은 뭔가를 쥐고 오랫동안 으쓱했던 것 같다. 바보같이. 어릴 땐, 아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꿈이 없다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뭔가 멋이 없어 보였다. 그게 문제다. 나는 정말로 꿈이 있다거나, 일종의 드림워커로서 산 것이 아니라 무의미한 멋에 취해, 아니 그런 게 당최 뭐가 멋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볼 만한 일을 하나 선택해 이게 내 꿈이라 믿고 젠체하며 살았던 것 같다. 언젠가 어떤 한국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보았다. 담임교사는 자기가 맡은 학생과 면담을 하며 자꾸 꿈을 강조한다. 학생은 꿈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학생이 딱히 문제아인 것도 아니다.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었을 것이다. 학생은 그저 하급 공무원이 되어 퇴근하면 맥주나 한 캔하고 쉬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그때 나는 사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래, 꿈을 꿔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주입된 사고방식 아닌가. 꿈을 갖고 노력하는 삶을 비하하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모두가 야심 찬 꿈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폭력 아닌가, 그런 생각. 사실 영화 속 학생도 꿈이 없는 건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큰 욕심 없이 무탈하게 사는 것이 꿈일 뿐. 그런 건 꿈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사실 코미디다. 사실 요즘 나는 진지하게 그런 생각들이 든다. 내가 정말로 이루고 싶은 건 사실 없다는 것. 그러나 인생이 지루해서, 이렇게라도 꿈이라는 최면을 걸어놓고 살지 않으면 나태의 늪에서 허우적대다 완전히 폐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인생은……, 인생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 하고 내뱉는 것이 다소 거창해 보이지만, 인생은 매번 넘고 넘어야 하는 산들뿐이라 다소 지쳐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하지만 역시 요즘은 그 부질없음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태껏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게 사실은 없어서일지도. 아니, 다시 바꿔 생각해보면 어쩌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라서 애초에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고, 가능 범위에 있는 것들은 사실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이기 때문일지도. 너무 비관적인 생각으로 들리려나. 그러나 사실 꿈은 삶을 더 윤택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 중요한 것은 지금 주어진 삶이다. 꿈이 있는 삶과 없는 삶, 둘 중 무엇이 더 위대한가를 따질 일은 아닌 것 같다. 꿈이 있는 사람은 지금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미래를 보며 사는 것이라서 현실을 지나가기가 어쩌면 수월할 것이며 그 자체가 기쁨일 테고, 꿈이 없는 사람은 어쩌면 지금 현실에 큰 불만이 없으므로 지금에 만족하고 집중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뭐가 됐든 둘 다 삶의 비중을 미래에 놓느냐, 현재에 놓느냐의 차이일 거다. 꿈이 있든 없든 중요한 것은 삶이다.
추석이 민족 최대의 명절이 된 이유는?
예전부터 ‘설’과 ‘추석’ 중 어느 명절이 더 민족 최대의 명절인지 궁금했답니다.  여러분은 그러지 않았나요? 전혀, 네버, 안 궁금하셨다고요?^^ 우선 추석이 설날과 함께 민족 최대의 명절이 된 건 가짜 오리지날, 즉 ‘가리지날’입니다.  추석이 이렇게 큰 명절이 된 건 100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예전 조선시대에도 관청에선 휴일 규정이 있었습니다.  조선 조정의 관료들은 음력 1, 8, 15, 23일이 쉬는 날로 정해져 있었다죠.  당시 동양엔 요일 개념이 없었는데도 7일 간격으로 놀았습니다. 하늘에서 붙박이로 있는 별(항성)을 제외하고 태양 - 달, 5개 행성(화성 - 수성 - 목성 - 금성 - 토성) 등 7개 천체만 움직이기 때문에 7을 신성시 여겨 날짜 간격 단위를 7로 했기에 서양과 동일한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그러던 것이 1894년 갑오개혁 때 서양식 요일 개념이 적용되면서 기독교 세계처럼 일요일을 휴일로 정하게 되었지요. 당시 조선이 일본을 통해 서구식 요일 제도를 받아들임에 따라 일본이 번역한 대로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순으로 해와 달, 다섯 행성이름으로 요일명을 정했는데요.  중국은 이와 달리 평일 5일을 1 - 2 - 3 - 4 - 5 요일로 달리 명명해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조선시대 휴일이 현재보다 적어 보이지만, 항상 예외가 있는 법.  춘분, 동지 등 24절기에 해당 하는 날도 놀았습니다.  (한 달에 두 번) 그 외에도 임금님 생일, 선대왕 기일 등 별도의 임시공휴일도 있었기에 한 달에 최소 6~7일 이상 휴일이 있었던 건데요.  그래서 연간 100일 정도 휴일이 있었다고 하니……, 주 5일제 시행 전 대한민국 직장인보다 더 많이 쉬셨습니다. 대신 노는 날과 절기일이 겹치면 그냥 하루 손해 보는 거였지요.  대체휴일 제도가 생기기 전엔 일요일과 명절이 겹치면 그냥 하루 손해 보던 것과 동일하지요. 특히 세종 당시엔 당직 개념이 있어서 궁인들이 휴일에 근무하면 평일 대체 휴무가 가능했고, 아이 출산 시 관노이더라도 출산 여성에겐 90일, 남편도 15일 의무 휴일을 주었다는 겁니다. 다만, 당시 조선의 국립대학인 성균관 유생은 매달 8, 23일 이틀만 휴일이었다네요.(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은 공부하느라 고생이네요. ) 그 외에 조선시대 당시 휴일로 지정된 명절은 네 가지가 있었습니다.  설(1월 1일), 정월대보름(1월 15일), 단오(5월 5일), 추석(8월 15일).  흔히 정월대보름 대신 한식이라고 알지만, 그래서 그런지 요새 5대 명절 운운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나마도 고려시대 9대 명절에 비해 대폭 줄어든 것이라고 하죠. 그런데 이들 명절마다 쉬는 기간이 달랐으니, 설날은 7일 연휴(오~. 스케일 크신 조상님들. ), 정월대보름과 단오는 각 3일간 쉬었지만, 추석은 딱 하루만 쉬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설 > 정월대보름 = 단오 > 추석 순으로 그 비중이 달랐던 겁니다. 이는 당시 상황상 설, 정월대보름, 단오 등의 시기는 겨울이거나 여름이어서 날도 궂으니 집에서 쉬라는 따뜻한 배려인 반면(특히 1월의 경우엔 거의 절반 가까이 휴일이었어요.) 한창 수확을 하는 가을철인 추석은 열심히 일해야 했기 때문에 그리 했을 겁니다.  실제로 일부 영남지역에선 음력 8월 15일엔 아직 벼가 여물지 않아 음력 9월 9일인 중구에 차례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선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등 타 명절은 그냥 넘어가는데 왜 추석은 갑자기 설과 함께 ‘민족 최대의 명절 2 TOP’으로 격상되었을까요? 이는 구한말 서양 문명과의 만남이 원인이었습니다. 미국 선교사 : “우리 미국엔 조상과 신에게 감사드리는 추수감사절이있다. 조선에도 이 같은 명절이 있는가?” 우리 조상님 : “이 넘들이……. 우릴 뭘로 보고~. 너넨 겨우 1620년부터 그거 했냐? 우리는 1800년 전 신라 유리왕 때부터 한가위란 추수 명절이 있는 뼈대 있는 나라이니라. 에헴~!” 이러면서 추석 자랑을 한 거죠.  이처럼 서구 문명과 접한 동양 3국 모두 미국 추수감사절처럼 중국 중추절(仲秋節), 일본 오봉(お盆) 등 자기네 가을 명절을 온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께 감사를 표시하는 민족의 대표 명절로 격상시킨 겁니다.(가끔 추석을 중추절이라 부르시는데, 그건 중국 명절 이름이에요.  중국인들은 음력 설날은 춘절(春節), 음력 8월 보름을 중추철이라고 해 두 명절 이름을 대응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에 이르러 유이하게 설날과 추석이 민족 고유의 명절로서 3일 휴일로 지정된 겁니다.  우리 고유의 명절도 글로벌 경쟁에 따라 그 위상이 바뀌었다는 거, 재밌는 현상이죠? 출처)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과학 경제 편-
서울은 기다리지 않는다
#서울은 기다리지 않는다 난개발과 급속성장. 서울의 멋은 그러나 부산함과 조잡스러움 속물근성 등을 한데 스까 아트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데에 있다. 7080 부잣집 스타일 구축 주택의 옆구리에 빛나는 철제 엉덩이를 디밀고 바짝 붙어있는 최신식 사무실 건물. 어찌나 가깝게 붙어있는지 맘만 먹으면 양쪽에서 창문을 열고 건배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지각색의 건축자재와 양식. 아무 계획도, 전체적인 그림으로서의 어울림에 대한 고민도 없이 그냥 당대의 유행따라 개성따라 세워놓은 것 같은 건물들은 그야 말로 지들 맘대로지만 하나로 모아놓고 보면 묘하게 어울린다. 오히려 너무 지들 멋대로인 탓에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그러나 서울은 돌아보지 않는다. 공존은 잠시뿐이다. 과거는 헐리고 미래가 들어선다. 백프로다. 역사와 보존이라는 단어를, 서울은 돌보지 않는다. 당신이 만나는 구축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커다란 크레인 교수대에 대들보 모가지를 걸어 공중에 매달 때가 아직은 오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의 다정한 도시 서울은 무엇이든 숭배하지만 어떤것도 사랑하진 않는다. 동대문 운동장이 헐리고 DDP가 들어서던 때를 기억한다. 청계천에서 동대문 운동장으로 밀려난 상인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은 1도 신경쓰지 않았다. 서울은 터미네이터다. 서울은 글래디에이터다. 미래로 나아갈 뿐이다. 거슬리는 과거는 모두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고. 끊임 없이 베고 찌르고 썰어넘기며. 불쌍한 존 코너는 코너에 몰린다. "아 윌 비 백." 그러나 늙은 상인들과 그들의 잡동사니들은 운동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서울은 곰팡내를 참는 법이 없다. 그들이 생계를 이어가던 자리엔 모던 아트의 극치인 건물과 좋아요를 쓸어담는 간지나는 패피들이 들어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들의 착장은 그들이 벌어들이는 좋아요 숫자 만큼 비쌌다. 그렇다. 서울의 쇼윈도엔 명품이 아니면 걸릴 수 없다. 도시의 지하, 출근길 2호선 열차 안에는 한데 엉켜 메트로 병천순대가 되어버린 군중이 옮겨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신대륙의 흑인 노예들처럼. 지상 위에는 그들의 연봉을 에누리 없이 4, 5년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겨우 구매할 수 있는 슈퍼카들이 내처달린다. 해를 받아 반짝이는 은색 앰블럼들이 심장에 꽂은 말뚝같다. 병든 도시. 한강은 그 사이를 길게 째진 흉터처럼 흐른다.
영화 사라진 시간 해석 / 꿈과 현실의 경계, 그리고 삶
제목 : 사라진 시간 감독 : 정진영 출연 : 조진웅, 배수빈, 정해균, 차수연 외 국가 : 한국 러닝타임 :105분 꿈과 현실의 경계, 그리고 삶 평화로운 시골마을. 집 한 채가 전소됐고, 부부가 사망했다. 조사를 위해 마을을 방문한 경찰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조사 결과 방화의 가능성은 낮은 걸로 판명됐지만 께름칙한 부분이 있었다. 마치 부부를 감금한 것처럼 2층 출입구에 철창이 쳐져 있던 것. 마을 사람들을 취조한 경찰은 그들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게 된다. 아내는 밤이면 다른 사람이 되는 이상한 병이 있었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밤 시간 동안 그녀를 2층에 가둬두고 아침에 열어줬던 것. 공교롭게도 그날은 아내를 홀로 가둬두는 게 미안했던 남편이 아내와 같이 자진하여 감금당하길 요청했고, 아침마다 문을 열어주던 이른바 '열쇠관리인'은 모종의 '프라이버시'로 본인의 직분을 잠시 망각했다. 비극이 일어난 당시에 그는 문을 열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비록 방화에 의한 직접적인 살인은 아니었으나 마을 사람들은 모두 부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는 상황. 잡혀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신나게 놀아 보자며 마을회관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한 노인의 생일잔치를 벌인다. 형사는 수사의 일환인 양 못 이기는 척 잔치에 참여한다. 본분을 망각하고 연회를 너무 즐긴 탓인지 독한 송로주를 양껏 마시고 거하게 취해버린 형사는 사건 현장인 부부의 집에 찾아가고 두 사람이 사망한 그 집 2층에서 깜빡 잠이 들고 만다. 다음날 아침 깨어난 남자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고 만다. 그는 형사가 아닌 학교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그에겐 그 집에 살았던 여자처럼 매일 밤마다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병이 있었고 스스로 2층 방에 감금해달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요청했다는 것. 확인을 위해 마당으로 뛰어나와보니 전소되었던 집은 멀쩡했고, 그 집의 주인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그 집에 살던 부부도, 집이 전소된 일도, 그가 형사라는 사실도 그를 제외한 모든 마을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 후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남자는 결국 경찰로서 자신의 기억이 진실인지 공상인지 밝혀내지 못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려 이짓 저짓을 다 해보지만 결국 실패한다. 어쩔 수 없이 학교 선생님의 삶에 적응하기로 한 그는 자신과 비슷한 병(밤이 되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을 가진 뜨개질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어느 쪽이 현실이고 어느 쪽이 망상인지, 이 영화는 난해하며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감독도 영화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나름의 친절하고(?) 다소 직접적인 힌트를 극에 배치해 뒀는데, 그는 다름 아닌 정신과 의사다. 정신과 의사는 형사의 삶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갖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학교 선생님으로 알고 있는 이 남자에게 이야기한다. 욕망의 소각은 꿈으로, 현실에서는 공상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이 영화에 화재는 총 두 번 등장한다. 첫 번째는 선생 부부의 집이 전소되는 장면, 두 번째는 남자가 사람을 죽이고 비닐하우스에 방화를 저지르는 장면이다. 그는 분명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하지만 비닐하우스에선 불에 탄 시체 대신 불에 탄 고라니가 발견된다. 정신과 의사의 말처럼 이 영화에서 화재, 불이 등장하는 장면은 곧 남자의 꿈이나 공상이라고 생각하면 이야기의 아귀는 대충 맞아떨어진다. 남자는 사실 형사가 아닌 선생이었으며 부부의 존재와 그가 저지른 살인은 모두 꿈과 공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고, 그렇게 해석하면 복잡한 이야기를 씹어 삼키기가 조금은 편해진다. 그가 기억하는 형사로서의 삶에서 아내의 이름이 '전지현', 두 아이의 이름은 각각 '박지성', '박주영' 이었다는 점도 남자의 기억이 만들어진 망상에 지나지 않음을 상징하는 듯하다. 선생일 때도 경찰일 때도 꾸준한 남자의 습관인 '혼잣말' 역시 남자의 정신적 불안정함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 같다. 그가 뜨개질 선생님과 함께 간 수안보 온천에서 불 타 죽은 부부가 멀쩡히 살아서 등장하는 장면 역시 부부는 남자의 꿈이나 공상의 산물임을 다시금 증명한다. 다 아파요. 엄마가 아빠와 실랑이를 하다 아빠를 밀어 넘어뜨렸다. 공교롭게도 근처에 있던 나는 아빠 밑에 깔렸다. 무척이나 아팠다. 시간이 흘러 이날의 이야기를 엄마 아빠에게 꺼냈다. 그때 두 사람은 왜 싸웠냐고. 이야기를 듣던 둘은 두 목소리로 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런 적은 없다고. 네가 꿈을 꾼 것 아니냐고. 기억은 과히 선명했고 아빠 밑에 깔렸을 때의 고통은 소름 끼치도록 생생했기 때문에 나는 두 양반이 짜고 나를 속이는 게 아닐까 싶었다. 간밤에는 꼭 생시 같은 꿈을 꿨다. 깨고 곱씹어 보니 아쉬움과 동시에 찝찝함이 남았다. 꿈과 현실의 경계는 어디일까. 그리고 우리의 기억 중에 꿈과 공상에 오염되지 않은, 신뢰할 수 있는 기억은 몇 개나 될까. 설령 어떤 기억이 사실이라 해도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부정한다면 그 기억은 거짓이 되는 게 아닐까. 일일 저녁 정보 프로그램에서 90세가 넘은 장수 노인을 인터뷰했다. 노인의 일상을 보여주다가 영상의 말미쯤에 오래 사시니 어떠시냐는 창의력도 의외성도 엿볼수 없는 뻔한 질문을 했다. 노인이 대답했다. 지난 90년 평생의 세월이 돌이켜 보면 한바탕 꿈같았다고. 초등학교 과학시간이 생각난다. 우리가 밟는 땅, 단단한 지각은 사실 지극히 불안정한 맨틀 위에 둥둥 떠 있는 섬과 같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지진이니 해일이니 하는 무서운 현상들은 다 맨틀의 운동과 관련된 것이라고. 매일밤이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는 여자에게 역시 비슷한 종류의 아픔을 겪고 있는 남자는 "다 알아요."라며 그녀를 위로한다. 당신만 특별히 아픈 것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다는, 남자의 "다 알아요." 가 "다 아파요."처럼 들리는 건 그래서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뜨개질 선생님인 그녀 역시 남자의 공상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무섭다. 과연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우리는 그 경계선을 명확히 그을 수 있을까.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이 거짓일 일말의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이 사실은 트루먼쇼, 통속의 뇌, 매트릭스, 호접지몽, 일장춘몽, 아시1발꿈, 개꿀잼 몰카 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의 현실 인식이란 것도 사실은 두껍고 유동적인 맨틀 위에 떠있는 얇은 지각처럼 지극히 얇고 불안정한 것은 아닐지. 그러나 만에 하나 삶이 다만 커다란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이 탄로난다 해도 우리는 계속 살아야 할 것이다. 어느 죽은 시인의 시처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 말" 고 삶이 그대를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엿먹일지라도, 잔인하게 짓밟고 조롱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여전히 우리에게 자신을 윤허해 준다면. 자신이 믿던 모든 것을 부정당한 남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참 좋다." 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아직 삶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기억과 실존, 꿈과 현실이라는 어려운 주제들을 정진영 감독은 잘 녹여냈다고 생각한다. (본 작품이 연출 데뷔작이란 사실을 감안하면 사실 수준급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관람 후에 시원한 느낌 대신 찝찝함이 남는 것을 감독의 연출 경험 미숙으로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여타 리뷰들에서 감독의 역량에 대한 비판도 종종 보였고 나도 어느정도 동의 하는 부분이지만 그가 이야기꾼으로서 들려준 이야기는 꽤나 매력적이었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내심 감독으로서 장진영의 다음 행보가 기대가 되는 바이다. 원문 주소 https://m.blog.naver.com/fox11142/2225032164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