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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덩케르크' 짧게/좀더 읽기

별점 ★★★★★(10/10)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천재감독이 찍은 전쟁, 영화사에 길이 남다
인셉션(2010) 시간을 미분한 미친 편집. 거기에서 더 정교해진 덩케르크
그래비티(2013) 한줄의 이야기가 가장 묵직하다

그리고 좀 더 읽기

* 아래 리뷰에는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는 없다. 그러나 연출과 편집에 대한 상세한 언급이 포함돼 있음을 밝힌다.

메멘토, 등차수열. 인셉션, 미분. 인터스텔라, 리만 기하학.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수학이다.

영화는 기승전결이지만 대부분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첨언하지 않은 현실은 드라마틱하지 않고 가공하지 않은 이야기는 힘을 잃는다. (물론 이 모든 걸 씹어먹는 실화도 있다) 이는 실화에 기반하지 않은 가공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놀란의 영화는 순차적이고 선형적인 내러티브는 거부한다. 시간을 분해하고 재조립하고 엮으면서 이야기에 밀도와 깊이를 보태는 데에 탁월한 재주를 보인다. 단기기억상실증을 소재로 한 메멘토에서는 이야기를 주인공의 비선형적인 기억을 따라 역순으로 배치함으로써 영화와 시간의 기승전결을 분리하고 뒤집어버렸다.

인셉션의 세계에서, 꿈 속의 시간은 현실보다 느리게 흐른다. 놀란을 이런 설정을 십분 활용해 꿈 속의 꿈 속의 꿈 속의...이런 식으로 여러 세계를 중첩시켜놓는다. 그리고 클라이막스를 향해 모든 세계를 추동한다. 현실 속 찰나의 클라이막스는 미분돼 꿈 속 세계의 긴 위기로, 꿈 속의 위기는 꿈 속의 꿈 속에서 지옥처럼 긴 세월로 화한다.

인터스텔라는 리만 기하학과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무장한 과학적 사고실험 같은 영화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같은 시공간선상에 있고, 블랙홀과 웜홀 등을 통해 굽어진 공간을 뛰어넘는 초장거리 우주여행은 물론 시간 여행까지도 가능하다는 이론을 영화 속에 녹여냈다.

덩케르크는 놀란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복잡한 기교의 극단이면서 동시에 가장 단순한 해답이다. 덩케르크 해변의 일주일, 민간인 선박의 하루, 스핏파이어 전투기의 한 시간. 서로 다른 3개의 시간대를 정교하게(천재적이라는 수식어로도 부족한) 맞물려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정교한 기계식 시계의 내부를 상상해보자. 톱니갯수가 각각 다른 3개의 기어가 맞물려 돌아간다. 가장 작은 기어가 열몇 번 쯤 회전했지만 다른 기어는 이제 막 반바퀴쯤 돌았을 뿐이다. 제각각의 힘은 서로를 움직이게 하고, 맞물려 돌아가고, 서로의 인과가 된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시계바늘을 움직이는 힘이다. 과정은 복잡하지만 결과는 명료하고, 힘이 세다.

시간의 역전은 없다. 사건의 중첩도 없고 복잡한 이론도 없다. 각자의 시간은 각자의 속도로 치열하게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놀란은 이것들을 이어 끊김없는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놀라운 재주를 보여준다. 서로 다른 속도의 시간들간의 만남은 새로운 경험이다. 앞선 결론이 뒤따라온 복선을 납득시킨다. 이해했다고 믿었던 내용을 전복시킨다.

수학적 지식이 부족한 탓에 명료하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덩케르크는 놀란이 얼마나 대단한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이다. 두 번 봐라. 아이맥스로 봐라.

덧) 아이맥스 카메라로 담아낸 전쟁은 그 자체로 장르가 된다. 한스 짐머의 음악은 세 개의 시간대를 위화감없이 엮어주는 훌륭한 매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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