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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 쓰는 여자

예전에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직장 동료 중에 나보다 약간 나이 드신 A 대리라는 분이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셨고 나와도 큰 트러블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하던 중이었다. A 대리가 갑자기 어깨 쪽에 통증을 호소하였는데 마사지를 조금 할 줄 알았던 나에게 아픈 곳을 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주무르면서 혹여 뭔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어깨 견갑골 쪽에 작은 칼이 하나 박혀 있는 것이 보여서 조금 놀랐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더 상세히 투시해 보니 어떤 여자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체구가 아담하고 얼굴이 동그스름하니 귀엽고 예뻐 보이는 인상의 여자였는데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의 검은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 여자가 기도 같은 것을 하며 주술적으로 좋지 못한 힘을 행사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고 그녀의 힘은 칼을 꽂아 넣는 형태로 구현되어 A 대리의 신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보아하니 분명 A 대리와 연관이 있던 사람 같았는데 뭔가 치정 관계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 난감하기 그지없는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대놓고 이 여자 분에 대해서 아시냐고 여쭤 볼 수는 없었다. 직장동료들은 내가 수련을 하는 사람인 줄도 모르는데다가 A 대리는 결혼을 하였고 아이까지 있으신 분인데 그 여자 분에 대해서 물어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일단 견갑골에 꽂혀있는 칼만 좀 뽑아주고 슬그머니 상황을 마무리 했었다.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른 데에는 분명 동료 분의 책임도 없지 않을 것이기에 내가 확실하게 해결해 줄 명분도 없는 것 같았고, 내 가족이나 친척도 아닌데 그렇게까지는 도와 줄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수련을 하려는 찰나에 주술을 사용했던 그 여자의 내면의식이 나를 찾아왔다. 홀연히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린 채 노여움에 가득찬 목소리로 말했다.

" 네가 뭔데 나를 방해하는 거야?"

이성보다는 압도적으로 감정의 지배를 받는 인간 내면의식의 특성상 그녀는 문답 무용으로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내게 주먹을 내지르고 발길질을 하며 난동을 부리는 통에 머리가 어찔거리고 몸이 쑤셔 정신이 없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여서 나도 힘을 행사하여 몇 번정도 타격을 입히고 다소 잠잠해진 그녀를 잡아다가 원래 있던 곳으로 던져버렸다. 그녀가 오늘 일을 알아차리던 말던 며칠 간은 몸이 많이 힘들고 피곤할 것이다...

힘을 가진 사람들의 저런 어두운 면을 보면 늘 착잡하고 ‘왜 저렇게 살까?’라는 의문이 든다. 자신이 가진 힘을 안 좋은 방향으로 사용하는 경우 그 끝이 좋지 못할 뿐더러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직접적으로 해를 입는 것을 의식하진 못해도 공격 당하는 쪽이 영력을 가지고 있다면 예상치 못한 반격을 당할 것이며, 행사하는 힘의 원천이 되는 존재에게 본인도 모르게 강하게 예속될 수도 있다. 자신이 쓴 힘의 흔적이 유체에 아로새겨져 지우기 어려운 문신과 같이 작용하여 그 힘의 영역에 속박되기도 하고, 스스로 끊기 곤란한 지긋지긋한 악연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물론 저런 분들이 현실 생활에서 인성이 개차반 같은 분들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사람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주위사람들에게 선인일 수도 있고 악인일 수도 있는 이중적인 면모를 지니기 때문에, 그 사람들도 누군가에게는 친근하고 정다운 부모나 형제, 이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할지라도 영적인 차원에서 본인의 욕망을 채우려는 목적으로 보이지 않는 힘을 발휘하여 타인에게 해를 가하는 영혼에게는 어떻게든지 그에 따른 책임이 지워지기 때문에, 만일 누구든지 이런 힘을 가졌으면 힘에 취하지 말고, 힘을 쓴다면 그에 따른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물론 저 위에 있는 사례 말고도 더욱 착잡한 이야기도 있으나 공개된 장소에서 올릴 만한 얘기가 아니라서 쓰지는 않았다.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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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zy520 카톡으로 해주셔도되고 편하신대로 하시면 됩니다 :)
상담응 해주시는건가요?? 어떻게 신청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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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숨겨진 영적인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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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안 풀려도 괜찮은 이유
인생은 퍼즐조각을 모으고 그것들을 이어 하나의 완성품을 만드는 과정같다는 생각이 든다 퍼즐 조각 하나하나는 가치가 없어보이고 이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조각들을 이어나가고 완성하고 나면 그제서야 그 퍼줄조각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심지어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퍼즐 조각도 존재의 이유가 있다 내 삶에는 수많은 퍼즐조각들이 마주하고 있고 나는 이것들을 모으고 있다 사람마다 모두 다른 모양의 퍼즐을 만들게 될것이며 퍼즐을 완성하는데는 공식이 있지도 않다. 모두 똑같은 퍼즐 조각을 같은 순서대로 완성해 나갔다면 그것은 개성과 가치가 없을 뿐더러 태어나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다보니 모두 똑같은 결과물을 만들 수도 없다.  아직도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퍼즐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중이고 어떻게 완성이 될지 알 수 없고 어떤 조각들을 모으며 살아야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남들이 만들고 있는 퍼즐과 비교하거나 그것을 따라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일이 안풀리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남들이 모두 갖고있고 필수라고 말하는 퍼즐조각을 갖고있지 않다고 낙담할 필요가 없다 스티븐 잡스가 학비가 비싸 대학교를 자퇴한 이후 남들 모두 듣고있던 정규과목을 듣지 않고 본인이 흥미가 있다고 생각한 서체 교양 수업을 몰래 청강했을 당시에는 미래와 연결할 수 없는 아무가치없는 퍼즐조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퍼즐을 완성했을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퍼즐 조각이었는지 그때서야 알게 된다 지금 나에겐 아무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은 지금은 아무가치가 없어 보이는 조각도 나중에 완성을 하고 보면 그 조각의 가치를 알게 될 것이다 우리네 인생은 완성된 모습을 알 수 없는 퍼즐이다 ~~ 그니까 조각조각 만들어가보자구요 화이팅 !!
험난한 회사생활과 나의 전생과 괴상한 동료직원
몇 달 전에 톰 크루즈 주연의 미이라라는 영화를 보았다. 스토리가 그냥저냥 볼 만한 영화였는데 영화의 서장 부분에 나의 마음을 끄는 글귀가 하나 눈에 띄었다. "죽음은 새로운 삶의 통로이니, 우리는 수많은 모습으로 돌아오리라"는 글귀였는데 자못 인상적이어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글귀를 떠올리니 문득 예전의 직장일이 떠올랐는데 오늘은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 체험했던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한다. 최근까지도 나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직장에서 근무했던 시절이 있었다. 복지도 괜찮고 정년까지 보장되는 그런 대로 괜찮은 곳이었다. 하여튼 겉보기에는 멀쩡하고 사회적 인식도 괜찮은 직장이었으나... 의외로 상대하는 고객계층이 거의 초진상들이라서 일하는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정말 진상고객하고 잘못 엮여서 금전적인 손해도 보고, 직장상사들에게도 욕도 많이 먹고 그랬었다. 어느 업계나 그렇겠지만 특히나 거래처 사람들도 도둑놈 사기꾼들이 많아서 항상 조심을 기울여야했다. 사기꾼 같은 거래처직원 때문에 금전적인 손해를 크게 보다가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었다. 처음에 이 직장에 들어올 때는 한창 바쁠 시기라서 힘들기도 힘들었지만 어째선지 돌아가는 일들이나 주변 상황이 이상하게 나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데, 그 중 으뜸은,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회사에서 최고로 질이 안 좋은 괴상한 직원이 나의 선임이 된 것이었다... 이 선임은 다른 동료들에게 손실을 끼치는 것은 다반사고 일은 아예 손을 대지도 않고 다른 데로 숨어서 자기 취미생활에만 집중하는 이해 못할 한량 같은 사람이었다. 지고 있는 빚도 많아서 대부업체에서 회사에 방문까지 하는 막장 중에 막장이었다... 이 사람이 일단 연루되기만 하면 일은 항상 엉망이 되고 주변 사람들이 뒷수습하느라 정말로 진이 빠졌다. 특히나 나는 그때 신입이라 그 사람이 해야 할 몫의 일을 같이 도와줘야 해서 더욱 더 그랬다. 겉으로의 상황만 보면 뭐 저런 개차반 같은 인간이 있나 싶었다... 그 사람도 그 사람 나름대로 미친 듯이 가루가 되도록 까이느라 힘들고 회사에 끼친 손해를 책임도 져야 되는 걸 보니 안타까웠다. 나도 위에 적은 바와 같이 괴상한 사람과 엮여 늘 상황이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서 이리저리 치이고 금전적으로 손해도 보았기 때문에 정말 엿 같아서 때려 치고 싶었지만, 그래도 고생고생해서 직장을 잡았는데 그만두는 것은 뼈아프고 근성 없어 보이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도 싫어서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 시기엔 하루하루가 사람에 치이고 안 먹어도 될 욕을 먹으면서 힘들게 사는 것이 내 일상이었다. 어느 날은 집에서 수련을 하려는데 갑자기 허리에 심한 타격을 받아 기어 다니지도 못 할 만큼 아파서 큰 곤욕을 치렀다. 그래도 난 수련가니까 기공의 힘으로 손상된 몸을 회복시키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자세히 봤더니, 희한하게도 회사의 사장과 직원들 열 댓 명 정도의 내면의식이 찾아와 분노에 가득차서 원망을 토해 내는 것이 보였다. "야 이 자식아 이걸 어떻게 할 거냐?" 라는 간결한 내용으로 이해되었지만 문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적의와 증오가 느껴져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아무리 봐도 전형적인 원한관계로 쌓아올린 인과 같아 보였다. 선배 도반님의 조언을 받아서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깊은 고민에 잠긴 순간, 그 때 나의 과거 생이 보였는데 그제서야 직장에서 내가 유별나게, 남들이 봐도 미친 듯이 콩가루처럼 까이고 힘들게 사는 상태가 납득이 되었다. 과거 생에 나는 중세 유럽에서 교회 수도사로서 방랑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어떤 마을에 도착하여 그 지역의 대지주로 보이는 가문의 사람들이 젊은 처녀를 핍박하는 것을 보고 영적인 힘으로 구해주었다. 아마도 그 가문의 사람들이 제멋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나의 말과 행동에 기세와 영력을 실어 내 뜻대로 제압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행위가 불행의 시초가 될 줄은 알지 못했다. 아무튼 그 마을에 머물면서 상황을 보고 마을사람 이야기를 듣자하니 토착가문의 인간들이 그 여자뿐만 아니라 마을사람들까지도 가혹하게 학대하고 수탈하는 모양이었다. 세금을 뜯고, 일방적으로 사람을 폭행하는 등등... 그 당시의 나는 비뚤어진 정의감에 불탄 나머지 토착가문의 세력들과 싸우면서 마지막에는 흑마술을 사용하고 전염병까지 일으켜 그 대지주 가문의 구성원을 전멸시키는데 이르렀다. 그렇게 일을 마무리 짓고 다시 여정을 떠나서 다른 마을에 도착을 하였는데, 그곳에서 내가 어리석게도 그 마을 사람들과 여자에게 완전히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마을에서 예전 마을의 안 좋은 소문을 듣고 사실을 수소문 했더니, 실상은 핍박받던 마을 사람과 그 여자 모두 토착 가문에게 핍박받을 만한 짓을 해 놓고, 자신들은 일방적인 피해자인 것 마냥 전생의 나를 속이고 이용해 먹었던 것이었다. 다시 예전의 마을로 갔더니 그 여자와 핍박 받던 마을사람들이 지배세력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괴롭히면서 권력을 누리고 있었다. 나는 여인과 동조해 나를 속인 마을 사람들을 주술을 사용해 모두 죽이고 마지막으로 그 여인을 찾아가서 칼로 살해하고는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였다. 그 때 희생당한 대지주 가문의 구성원들은 현생의 사장과 직원들로 그들이 증오의 불을 휘감은 채 분노한 모습으로 원망을 토해내는데, 나는 아픈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진심어린 사죄를 하며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잘못을 빌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 그들도 어쩔 수 없었던지 물러났다. 전생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동안 내가 수련을 통해서 과거생의 악업을 많이 끊어냈기에 이제는 그들과의 악연을 이렇게나마 청산하지 않았나 짐작을 해본다. 그리고 과거생의 나와 엮였던 그 처녀가 바로 현재 직장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직원이었다. 그 직원이 회사에 근무하면서 보통직원 보다 판단력이 떨어져 늘 일을 그르치고, 비뚤어진 행동을 아무거리낌 없이 하는 경향을 가져 타 직원에게 비난과 무시를 받고, 제대로 된 인생을 살지 못하고 마치 자승자박하는 모양의 삶을 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영적으로 내적인 성향도 좋지 못할뿐더러, 그렇게 무너져 내리는 인생을 살도록 선천적으로 성격이 고정된 면이 있고 어떤 상황에서든 사고의 폭마저도 제한되는 것이다. 수많은 원한령과 악연이 얽혀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 뒤로 회사에 다니면서 수련을 통해 그들과의 악연의 고리를 계속 끊어가다가 회사 일에 지치기도 했고 적성도 안 맞고 다른 계기가 있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작성한 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분도 있을 것이다. ‘전생 따위 전혀 과학적이지 않고 말도 안 된다. 글이 거의 소설수준이다.’ 사람마다 각자 믿음이 다르니 나의 생각을 강요할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항상 경험하는 이런 측면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에 영혼이니, 전생이니 말하는 것은 이질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과학문명이 발전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본능적으로 영적인 측면에 목말라하고 그를 통해 무언가 얻고자 한다. 어딜 가도 산재하는 점집, 수많은 종교시설, 소원성취 기도행위, 무심코 산에 쌓아두는 돌탑처럼 말이다. 세상에는 과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물리적인 실체와는 이질적인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다들 알고는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어떤 과오를 저질렀는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벌을 받는 것은 너무 억울하고 불공평하다.’ 전생에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의 나랑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의 나의 현재의식은 상관이 없다 생각하는데, 당한 존재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본인 영혼이 스스로 벌을 받을 의지가 있어서 어렵게 사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현재의식과 내 영혼은 별개 의식을 가진 또 다른 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영계의 법칙은 무섭다. 더도 덜도 없이 무조건 내가 행한 만큼 되돌려 받는다. 기도 몇 번하고 회개한다고 죄가 사해지는 것은 없다. 여러 생을 통해 쌓아온 업장이 무거운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자기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뉘우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이외에도 영적인 세계는 보통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미묘한 측면이 매우 많다... 이야기가 잠깐 딴 데로 장황하게 세서 다시 본 주제로 돌아오자면... 물론 직장에서의 어려움은 개인적인 문제나 환경적인 문제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얽혀 있으니 섣불리 과거생의 인연을 탓하며 일반화 시킬 수는 없다. 뭐든지 과거 생을 탓한다면 남을 탓하면서 정작 본인의 발전이 없는 꼴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어쨌든 과거 생의 나는 언젠가 나의 영혼을 담고 있었던 전혀 다른 의식일 뿐이고, 미래를 조금이라도 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현재 나 자신의 행동에 달려있으니 과거에 너무 연연하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다... 다만 나의 체험담을 통해 세상의 모든 일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마치 빙산의 대부분이 수면 아래 잠겨 있듯이 우리의 삶의 이면에는 드러나지 않은 부분에 영향 받는 면도 크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인과라는 부분은 우리의 무의식적인 행동, 이유를 알 수 없는 호불호, 순간의 직감적인 선택 등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이것을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행동에 신중을 기하고 업장의 덫의 걸려 앞으로의 인생을 그르치지 않도록 지혜롭게 살아가야 하지 않나 생각을 해본다.
재앙이 터지기 전의 사진.jpg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기 하루 전 천장이 내려 앉아 기둥이 천장을 뚫고 올라왔다 결국 다음 날 무너져 내려 502명이 사망했다. 플로리다주 서프사이드 콘도 붕괴 직전의 사진 이미 심각해서 사람을 대피 시켜야 한다는 경고를 여러차례 받았음에도 무시했고 결국 무너지면서 99명이 사망했다. 베이루트 창고에 방치되어있었던 질산 암모늄. 화물선 선주가 파산하면서 실고 가던 질산 암모늄을 배 째로 그냥 놔두고 도망갔고 안에 있던 질산 암모늄은 폭죽창고 바로 옆에 수년간 방치되다가 폭죽창고에서 벌어진 화재로 질산암모늄마저 폭발하면서 220명이 사망했다. 스페인에서 렌페 고속열차를 운전하던 사람이 올린 속도계 인증샷. 그는 평소에도 원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리기를 즐겼고 결국 코너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는 바람에 열차가 탈선해 79명이 사망했다. 2001년 5월 24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한 예식장 이 예식장은 부실공사로 지어졌고 사진 몇초 후 바닥이 무너지면서 22명이 사망했다. 일본항공 123편 탑승객이 촬영한 날개 사진. 이 비행기는 과거 착륙하다 꼬리를 긁히는 사고가 있었으나 이를 대충 처리했고 결국 버티다 못한 꼬리 부분의 벌크헤드가 터져 날아가면서 520명이 사망했다. 태국의 로얄 플라자 호텔 이 호텔은 건설 과정에서 기둥 몇 개를 빼먹는 부실공사가 있었고 결국 1993년 8월 13일 무너져 137명이 사망했다. 2003년 2월 20일 미국 로드아일랜드의 스테이션 나이트클럽 매니저가 불꽃을 더 돋보이게 할려고 불을 덧붙인게 화력이 너무 쎄서 천장까지 닿아 화재가 발생 결국 100명이 사망했다. 아에로플로트 821편의 추락 하루 전 사진 다음날 비행기가 추락해 탑승객 88명이 전원 사망했다. 사유는 기장의 음주비행이었다. 이탈리아의 여객선 모비 프린스 탑승자가 촬영했던 영상의 한 장면 얼마안가 이 배는 유조선과 충돌, 유조선 측에서 여객선이 아닌 예인선과 충돌했다 착각하고 신고를 잘못하는 바람에 유조선쪽에 구조대가 먼저 갔고 결국 모비 프린스에선 탑승객 141명 중 140명이 사망했고, 단 한명만 살아남았다. 미국 위스콘신주의 야구장 아메리칸 패밀리 필드 공사현장 당시 바람에 너무 불어 공사를 멈췄어야 했음에도 강행했고 결국 크레인이 바람을 못버티고 무너지면서 3명이 사망했다. 방글라데시의 라나 플라자가 무너지기 직전 사진 무허가로 지어진 이 건물은 4층 건물을 무려 8층으로 증축했고 것도 모자라 1층을 더 얹으려 했다. 결국 못버틴 건물이 2013년 4월 24일 무너지면서 1,129명이 사망했다. 1981년 7월 17일 하얏트 리젠시 호텔 이 사진이 찍히고 얼마 안가 오른쪽의 호텔 구름다리가 무너지면서 114명이 사망했다. 원인은 부실공사였다. 아메리칸 항공은 비행기 엔진을 수리할때 일일이 분해하면 유압관이나 전기 회로가 망가질 수 있단 이유로  지게차로 통째로 빼내서 수리 후 다시 지게차로 끼워맞추는 식의 수리를 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엔진 연결 부위에 금이 갔고, 금이 벌어지면서 엔진이 떨어져나가 탑승객 271명 전원, 그리고 지상의 2명이 사망했다. 출처 : 루리웹
마계의 원숭이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는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지역 내에서 나름대로 유서 깊은 OO봉이라는 산봉우리가 하나 있다.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잘 가지는 않지만 전에는 운동 삼아서 자주 갔던 곳으로 오늘은 그곳에서 경험한 일에 대해 써 보려고 한다. 어느 날인가 운동을 하러 그 산으로 향했는데 가는 도중 날이 좀 덥기도 하고 귀찮다 싶어서 약수터까지만 갈 요량으로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산에 들어서면서 이상하게 정상 쪽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 강한 이끌림이 느껴졌고, 정상까지 한번 올라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바꾸어 먹고 등산을 시작했다. 그렇게 길을 가는 도중에 희한하게도 평소와 달리 체력이 빨리 소진되어 등산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그날따라 유난히도 호랑이, 뱀, 곰 등 동물령부터 시작해서 칼을 찬 산적 같은 영혼 등 정말 산에 거주하는 별의별 잡다한 존재들이 정상에 다가갈수록 나를 방해하고 괴롭히고 지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귀처럼 물어뜯는 존재들을 하나하나 치우고 떼어내면서 올라가는 것이 정말 고역이었다.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이 예사롭지 않은 상황을 나에게 새로운 힘이 주어질 계기로 생각하거나 높은 영역에 속한 수련을 도와주는 존재의 계시 같은 걸로 철썩 같이 믿고 죽을 힘을 다해서 산을 올랐다. 평소에 약간 게으른 면이 있던 내가 그런 의욕을 가지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산 중턱을 넘어설 무렵 약수터에 거주하고 있는 건지 좋지 못한 기운을 내뿜는 이무기가 나타났는데 정상까지 올라간다면 무사치 못할 것이라는 되도 않는 협박을 해서 과감히 한 방 먹이고는 재빠르게 정상으로 향했다. 온갖 역경을 딛고 정상에 올라섰을 때, 그곳에서 내가 목격한 것은 성스럽고 찬란한 광채를 발하는, 빛으로 이뤄진 어떤 신성해 보이는 존재였다. 그 존재는 빛을 발하며 내 쪽으로 다가와서는 "네가 좀만 더 수련이 되었으면 내 모습을 어느 정도 볼 수 있을 텐데..." 하고 아쉬운 듯이 말하였다. 그리고는 이어서 "가지고 있는 물병을 내려놔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존재가 내뿜는 범상치 않은 기운에 압도된 나는 시키는 대로 땅에 물병을 내려놓았다. 조금 뒤에 갑자기 하늘에서 고요하면서도 눈부신 서광이 내려오는데, 잠깐이었지만 신성해 보이면서도 엄숙한 것이, 그때까지 온갖 잡다한 영들과 난잡하고 더러운 싸움을 벌이는 것이 일상이었던 내가 영적 존재와 접하면서 그렇게 성스러운 분위기를 느껴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곧이어 갑자기 잠잠하던 하늘에 날벼락이 내리치더니 내가 바닥에 내려놓은 물병을 향해 냅다 꽂히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병을 집어 들어 물을 들이켜 마시는데 신기하게도 온몸에서 전신의 탁기가 모여들어 내 자신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고 그 탁기 덩어리가 앞쪽에서 불어 닥치는 바람에 덧없이 씻겨 사라지는 게 보였다. 이윽고 그 존재가 내 심장에 손 같은 것을 집어넣어 기다란 기생충같이 생긴 것을 꺼내서 태워버리고는 한 마디 덧붙였다. "수련자가 경지에 올라갈 때는 이런 것들이 말썽이다." 연이어 벌어지는 놀랍고 신기한 상황에 나는 정신을 못 차리고 들뜬 기분이었다. 내가 멍하거나 말거나 빛으로 된 존재는 신경 쓰지 않고 나를 부른 이유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저기 산 아래쪽에 있는 약수터에 커다란 이무기 같은 게 있는데, 거기 있는 존재가 독기를 내뿜어 물까지 오염되고 주변의 존재들도 많이 힘들어한다. 내가 힘을 좀 빌려 줄 테니 그 존재를 퇴치해 봐라." 이런 식으로 말을 하고는 마치 요괴퇴치 의뢰마냥 아까 약수터에서 마주친 이무기의 퇴치를 부탁했다. 그 존재가 힘을 빌려주는 모양도 예사롭지 않았다. 내 몸에 커다란 검이 들어가고 검에 불길이 치솟으면서 동시에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쳐 육체가 갈라지고 불태워졌는데, 다시 새살이 돋아나 육체가 재구성되며 나의 미간에 벼락의 문양이 새겨졌다. 그렇게 힘을 받고서 산을 내려갈 무렵에는 나도 모르게 무언가에 홀린 듯이 올라왔던 코스가 아닌 처음 가는 생소한 길로 빠져버렸다. 사람이 자주 안다니는 길이라서 그런지 분위기가 이상했고 그 곳에서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겨우 큰길로 나와 간신히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내 방으로 돌아와 아까의 몽환적인 경험의 여운에 잠긴 채 한참을 누워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라 이참에 수련을 하면 더 잘 될 거라는 생각이 스쳐 자리를 잡고 수련을 시작하였다. 시작하자마자 빨간 줄이 보였다. 줄이 인도해 주는 대로 따라 가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희한한 잡념이 떠올랐다. 늪에 빠져들듯 하염없이 그 잡념에 빠져들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정신을 차려 똑바로 쳐다보니 누군가 안대로 내 눈을 가려 놓고 있어서 안대를 태워버렸다. 가까스로 올라간 길 끝에는 이무기가 있었는데 신장들이 나타나서 이무기를 제압하더니 끌고 가는 장면이 보였다. 그리고 약수터에 뱀 떼가 뛰쳐나오고 아까 전에 산에서 봤던 서광이 약수터를 향해 비추어졌다. 정말 지금까지 쓴 부분만 본다면 기공하는 수련가나 영적인 능력자들이 누구나 겪고 싶어 할 만큼 매력적인 이야기겠지만 반전이 숨어있다. 수련을 하며 약수터에 있던 이무기를 제거하고 난 이후, 나름대로 한 단계 성장했다는 뿌듯한 느낌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중에 수련을 가르쳐 주시는 스승님이 한 번 수련하러 올라오라고 연락하셔서 찾아갔었다.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앞서 스승님께 내가 예전에 산에서 겪었던 일에 대해 말씀드렸다. 스승님은 길게 말하지 않고 나에게 사기를 친 존재부터 제거한다고 하셨다. 나는 그때서야 깜빡 속아서 완전히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승님이 직접 투시를 해보고 설명 해주시는데 마계 영역에 속한 존재가 나를 가지고 논 것이라고 말해주셨고 즉시 영력을 받쳐 줄 테니, 그 때 봤던 존재가 실제로는 어떠한 존재인지 직접 보라고 하셨다. 집중을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산에서 보았던 찬란한 후광을 등에 업은 신과 같은 존재는 온데간데없고 웬 갑옷 입은 원숭이 한 마리가 스승님의 힘에 제압당해 묶여있었다. 나는 스승님의 힘을 빌려 겨우겨우 원숭이를 제거하는 데에 성공했다. 스승님의 말로는 보기엔 그냥 원숭이지만 내가 일말의 의심도 없이 감쪽같이 속을 정도로 교묘하고 매우 강력한 마계의 존재로 지금의 내가 스스로 이겨내기엔 버거웠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산에 올라갔을 때부터 느낀 이끌림, 빛의 존재에게 받은 힘, 수련하면서 이무기를 퇴치한 일 등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이 다 그 원숭이가 꾸민 쇼 같은 것이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그 당시만 해도 나도 투시가 되고 기공능력을 조금 쓸 줄 아니까 이런 좋은 기회도 오는구나 하고 은근히 좋아하면서 바보 같은 착각을 했었다. 그때 만약 내가 조금만 더 깊게 공부가 되어 있었더라면 그 존재의 정체를 간파하진 못하더라도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적어도 그렇게 철저하게 당하진 않았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된통 당한 것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영적인 존재 중에는 사람을 속이고 아주 쉽게 가지고 놀 수 있는 강력한 존재들이 많다. 실력이 미숙한 수련가나 영능력자가 이런 존재들이 거룩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강력한 힘을 나눠주는 환상을 보여준다던가, 무언가 신성한 의무를 지우는 설화 속에서나 보았던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면서 체험하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처럼 감쪽같이 속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걔 중에는 정말로 자신이 이제 깨달음에 이르렀다거나, 신의 계시를 받은 메시아라거나, 옥황상제라거나, 내가 어떤 계를 받고 선계의 무슨 수준에 이르렀다느니 하는 착각에 빠져 세상에 물의를 일으키거나 이상한 길로 빠지게 되는 안타까운 케이스도 나오는 것이다. 영적인 존재에게 휘둘리며 꼭두각시 신세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불가에 “부처가 오면 부처를 죽여 버리고, 조사가 오면 그 조사마저 죽이라"라는 말이 있다. 수련 중에 어떤 영적인 현상을 겪든 그 현상에 메이지 않고 무심하게 정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말로 제대로 된 수련가가 되고 싶다면 어떤 것을 보거나 느껴도 그 현상에 집착하지 않는 무심함을 갖추고, 언제나 속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염두 하며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지 않는 겸허한 마음으로 수련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경험이었다.
고양이가 기치유를 싫어한 이유
일주일 전에 여자친구와 시내에 있는 캣카페에 방문하였다.  들어가보니 다양한 종류의 고양이들이 쉬거나 놀거나 하고 있었다.  나와 여자친구는 자리를 잡고 고양이들과 놀려고 다가가 봤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다지 우리를 반기지 않는 눈치였다.  경계심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나는 기발공(흔히 말하는 기치유)을 시도해보았다. 아무래도 좋은 쪽으로 영향을 주면 고양이들도 마음을 열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북슬북슬하게 생긴 갈색 고양이 한마리를 상대로 발공을 시작하였는데, 내 기대와는 달리 에너지를 받는 고양이의 유체가 와서 신경질(?)을 내며 나를 막 할퀴고 공격하였다.(실제 고양이가 날 때린건 아니다.)  얘만 그런가 싶어 검은 고양이나 귀접힌 회색고양이(스코티쉬폴드였던 듯) 등 다른 고양이한테 시도를 해보았으나 위와 마찬가지로 안타까운 결과만 초래했다.  도대체 왜 이런지 궁금하여 투시를 해보았는데 이렇게 된 까닭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투시하니 나의 잠재의식과 고양이들의 유체가 막 뒤엉켜 싸우고 있는게 보였는데 에너지 파장자체가 안 맞아서 그런가보다 생각을 하였다.  이번엔 나 말고 여자친구에게 고양이한테 발공을 해보도록 부탁을 해보았다. 여자친구가 앉아있는 고양이에게 손을 대고 집중하여 발공하였는데 여자친구의 손에 빛이 감돌고 고양이가 편안해 하며 잠드는 듯 보였다. 다른 몇마리의 고양이에게 시도해도 똑같았다.  발공의 효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지만 무언가 이상하여 다시 집중해서 보았더니 의외의 장면이 보였다.  여자친구의 잠재의식이 고양이랑 놀려고 쫓아다니면서 귀찮게 구는 모양이 보였는데, 고양이들의 잠재의식은 그걸 피하려고 무시하듯이 했고 그 상황이 고양이가 잠들어 버리는 모습으로 표출되는 듯 했다...  그 뒤로 내가 수련하고 있는 카페의 모임에 참석하여 나보다 수련이 높고 경험많으신 회원 분께 고양이 카페에서 겪은 일을 여쭤봤는데 좀 더 깊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동물에게 기발공을 했음에도 고양이들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던 이유는 나의 잠재의식의 다른 면에서는 동물과 전혀 안 맞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정도는 다르지만 여자친구도 마찬가지이다.  왜 기치유, 발공를 말하는데 잠재의식의 이야기를 꺼내는지 의아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투시라던가 기치유나 영능력을 쓰는 주체는 우리가 사고하고 생각하는 현재의식이 아니라 바로 잠재의식이기 때문에 언급을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행하는 기발공의 효과는 잠재의식의 수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현재의식에서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기치유를 해준다고 해도 행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잠재의식 수준에 따라 효과가 없거나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다.    "기"라고 생각하면 막연하게 다 같은 에너지라고 생각을 하지만 누가 발공을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효과를 낸다. 치유를 하는 에너지, 천도를 하는 에너지는 모두 다르다.  오컬트나 선도, 기공 같은 분야에서 많은 분들이 접근을 하곤 하지만 노력에 대한 성취가 그렇게 크지 않은 이유도 잠재의식까지 파고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진 않기 때문이다.  겉으로 아는 이론적인 부분이라던가, 몸에서 느끼는 기감은 실질적인 수련에서 강조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수련을 하여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잠재의식을 보고 어두운면을 버려가며 내면을 공부함과 동시에 실질적으로 낮은 힘을 버리고 높은 힘으로 채워야 성취를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수련의 길을 가는 것은 잠재의식의 저항과 수련자에게 연결된 낮은 수준의 힘과 업장의 무거움으로 혼자서는 녹록치가 않고 이 길을 가는 법을 제대로 배울수 있는 곳도 찾기가 어렵다.  이번의 경험을 통해 나의 잠재의식의 공부가 한참 부족하고 덜되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던 것 같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경험하고 체험하는 수련의 길을 갈 수 있는 인연을 만난 것에 새삼 감사함을 느끼며 최선을 다해 달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조각상에 깃든 것
보람찬 하루를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던 도중의 이야기다.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었는데 내용이 뭔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오빠 뭐해?" 나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그냥 쉬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여친은 카톡으로 어떤 조각상 사진을 보내주며 어떤 것 같은지 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거 우리 엄마가 사가지고 온건데 뭔가 느낌이 그래서 오빠에게 한번 보여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뭔가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두 종류의 나무조각상으로 한 종류는 돼지 암수 한쌍이 세트로 되어있는 조각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부엉이 두 마리가 횃대에 앉아있는 형태의 조각상이었다. 여자친구의 말로는 동남아시아에서 제작된 것으로 어머니가 시장에서 복을 불러오는 조각상이라 하기에 기분내어 사온 것이라고 했다. 겉으로 보기엔 별다를 것 없어 보였지만 투시를 해보니 실상은 그리 좋은게 아니였다. 그 두 조각상에 숨어있는 영적인 존재들이 딱히 질이 좋아보이지도 않았으며 집안 살림에 손실만 일으킬 존재들이었으므로, 결론적으로 조각상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수련을 가르쳐주시는 스승님께 문의를 드리니 그냥 처리하라는 말씀을 듣고 그 존재들을 보내야 할 곳으로 보내버렸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흔히 집안에 장식용으로 혹은 뭔가 잘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이같은 물품 등을 배치 해 두지만, 사람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이 종종 벌어지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그 물건에 실질적으로 무엇이 깃들어 있는지 모른다. 위의 사례처럼 운이 없게도 좋지 못한 물품이 들어온다면 집안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웬만하면 출처도 모호하고 어디서 굴러먹다 들어온 물품인지 모를 것들을 '복을 불러온다, 재물운이 상승한다.' 같은 이유로 집안에 들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집안의 쓸데없는 물건들을 정리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전부 다 정리하라는 것은 아니고 오래된 물품은 함부로 들이지 않는 게 좋다고 말 하고싶다.
살아야 하는 이유, 삶을 그만 둘 이유를 찾기로 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살아야 하는 이유와 삶을 그만둬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런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점심 즈음 문득 ‘유서를 써보면 내 삶이 나아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족을 비롯한 내 주변에 어떤 말을 남길지 생각하다 보니 ‘유서를 써본다 한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나 때문에 다들 힘들어지고, 무엇보다 내가 너무 힘든 삶은 유지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기 위해선 스스로 제 삶을 책임져야 하는데, 저에겐 그럴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청혼까지 한 애인도 있습니다만, 지금으로선 그 친구의 생활을 책임지는 것도 불가능할 것만 같습니다. 지금은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고 두 번째 직장에서 8개월 가까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전엔 7년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동안 백수로 놀고먹었죠. 몇 달간 실업급여를 받다가 다행히 지금 직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전에 일했던 곳과 다른 분야지만 업무 연관성이 있어 경력직으로 뽑혔죠. 긴장도 되고 신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즈음 애인에게 결혼하자는 이야기도 진지하게 했습니다. 마침 얼마 뒤가 제 생일이라 그때 가족들에게도 취업 소식을 전했습니다. 덤덤한 척하던 모습과 달리 안도하시던 아버님의 표정, 깜짝 선물이라며 드렸던 새 명함에 어리둥절하다 놀라서 몇 번을 다시 물어보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생각나네요. 그날 가족들과 함께했던 저녁 식사는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시 사람 노릇 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며칠 뒤 제 취업에 한시름 놓으신 것 같던 아버님께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말 그대로 정말 갑작스레 돌아가셨죠. 장례를 치르고 회사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 뒤 몇 달간은 아버님의 여러 사후 처리를 하느라, 또 회사에서 일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결혼을 위해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려던 계획도 미뤄졌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제게 할당된 업무들이 소화하기 힘들어지더군요. 처음엔 이제 막 시작한 일이고 적응하는 중이니 그렇겠거니 했습니다. 전 직장과 달리 여러 업무를 동시에 고려하며 순발력 있게 쳐내야 하는 곳이니 더 그럴 거라 여겼습니다. 동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입사 후 8개월이 지난 지금, 제 업무 능력은 저와 동료들의 기대를 비웃듯 더디게 늘고 있습니다. 인원도 부족한 판에 제 일을 다른 동료가 가져가서 처리해야 하는 일도 빈번합니다. ‘가르치면 나아지겠지’ 하던 동료들이 지쳐가는 모습도 훤히 보입니다. 저라고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업무마다 꼼꼼히 챙기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구멍 난 곳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경력이지만 신입 같은..... 능력 없는 경력인 거죠. 어느 날부터인가 아침이 되면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로 가슴이 답답합니다. 출근 전날 저녁엔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 밥 값 아껴보겠다고 샀던 도시락은 어느새 먼지만 쌓여가고 회사에선 아예 점심을 굶습니다. 야근을 해도 밥도 안 먹죠. 퇴근 후 술을 마시기 위해 먹는 안주가 저녁이 된지 오랩니다. 그렇게 곯아떨어지듯 잠들고 다음 날 출근할 때면 ‘오늘은 제발 일 좀 잘하자’ ‘실수 없이 일하자’고 곱씹습니다. 하지만 그날 하루도 별다를 바 없이 마무리됩니다. 지친 팀장은 따로 저를 불러 앉혀놓고 업무를 하나하나 다시 짚어주며 ‘실수가 이어지면 실력’이라 합니다. 대표는 제 실적이 기준보다 한참 모자라다 합니다. 내년 인사고과에서 연봉이 깎이지만 않으면 다행인 상황 같습니다. 그 와중에도 결혼은 해야겠다 싶어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소주를 따라주며 비전을 묻는 (예비) 장인의 물음에 취업 면접 보듯 준비해 간 말을 읊었습니다. 술잔이 몇 차례 더 꺾이는 동안 비슷한 질문을 다시 하시더군요. 제가 명확하게 답을 해드리지 못했으니까요. 몇 년 후의 장래는커녕 당장 내년 혹은 올해가 지나기 전까지 이 고용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니, 그날 저는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해댄 것만 같습니다. 그리곤 그다음 주에 애인과 함께 저희 어머님께도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부친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적이 있으나, 제 애인과 어머님 모두 낯을 가리는 성격 때문인지 그날 식사는 생각보다 조용했어요. 너무 조용해 제가 더 떠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머님께서 문득 그 친구에게 결혼 의사를 물으시더군요. 조용했습니다. 그 친구에게 하신 질문이었지만 제가 답했습니다. 할 거라고. 어색한 식사를 마치고 며칠 뒤 산책을 하던 중 그 친구가 그 일을 이야기하더군요. 제가 모아둔 돈도 넉넉하지 않다 보니 본인도 어쩔 수없이 결혼 후의 생활이 걱정돼서 섣불리 답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평소 저축현황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으니, 제대로 저축액을 들은 건 일전에 (예비) 장인을 뵈었을 때였을 겁니다.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저도 행복한 결혼이 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애써 숨기고 설득했습니다. 설득과 미심쩍음이 오가던 대화는 ‘그러니까 열심히 돈 모아!’라는 그 친구의 장난 섞인 말로 마무리됐지만 그날 저는 더 취했습니다. 가족들이 결코 저에게 생활의 부담을 지우지는 않습니다. 어머님도 동생도 모두 본인의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제 가정을 꾸려야 하고, 어머님과 동생도 돌봐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점점 이루기 어려운 일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도태되고 있고 제 한 몸 건사할 수 있는 방법도 모르겠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사람 노릇 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봐도 여기저기서 접하는 생존전략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 몇 년 간의 삶을 떠올려보니 가장 즐거웠던 때는 올해 초 제 생일, 가족들에게 취업 소식을 전하던 날 같습니다. 그 외엔 어떤 즐거운 일이 있었는지 생각도 안 나네요. 왜 그럴까요? 저는 제 삶에 만족해본 지 너무나 오래됐고, 그 기간만큼 다른 사람과 저의 삶을 비교했습니다. 남들은 나와 같은 나이에 이만큼의 돈을 벌고 있으니, 나도 그만큼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은 나와 같은 나이에 아이를 낳아 키우니, 가정이 없는 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일은, 다음 주는, 한 달 뒤는, 내년엔 제가 어떤 삶을 살지 불안합니다. 기분과 컨디션은 바닥을 찍었다 조금 나아지기를 반복합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 중 자기 통제감, 자기 효능감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전자는 ‘스스로 자신의 행동과 정서,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후자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옳다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너무나 느끼고 싶은 것들입니다.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에서도 주말을 보내는 집에서도 느껴본 지 너무나 오래된 것들이니까요. 몇 년 간 잊고 지냈던 충동, 삶을 멈추고 싶다는 충동을 다시 느끼는 요즘입니다. 그래도 살아보겠다는 마음이 남아있는지 이 저녁에 글을 쓰고 있네요. 당분간 글이라도 써보며 저를 정리해봐야겠습니다. 우울하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