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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중항쟁과 택시운전사

▣5.18광주민중항쟁과 택시운전사

폭압적인 5.17군부쿠데타 단행과 대대적 검거 선풍이 몰아치자 대부분이 민주세력은 저항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그러나 단 한곳에서 예외적 상황이 벌어졌다.5.18광주 민중항쟁이다. 이 사건은 전남대 정문앞에서 발생했다. 광주일원의 대학은 완전히 공수부대에 장악된 상태였다.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7공수여단이었다. 운명의 18일 멋모르고 대학에 남아 있었거나, 혹은 공부를 하기위해서 등교하던 전남대 학생들이 공수부대원에 걸려들어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 터졌다.

비극은 시작되었다. 사태는 순식간에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비상계엄해제와, 공수부대철수를 강력히 외친것이다.총칼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은 이들 세력이 존재함은 전두환 일파에게는 위협적인 요소였다.조기에 진압을 하지 못하면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갈 것이고, 오히려 군부가 민중의 심판대 위에 자신들의 목을 내놓아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것이었다.

초조해진 전두환 일파는 군부 특유의 단순함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공수부대의 최초의 희생자는 장애자였다. 공포감을 조성하려던 전두환 일파는 민중의 원한이 응집됐을 때 분노를 넘어 두려움조차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억압은 시민들을 거듭 투쟁으로 내몰고 있었다. 20일 6시경 택시기사들이 중심이 되어 200여대의 차량을 몰고 도청을 향해 진격했다. 그뒤로 거대한 민중의 행렬이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민중의 위대한 힘이 연출되는 장엄한 순간이었다. 다급해진 공수부대는 미친 듯이 차량을 향해 덤벼들었다. 일단 불붙은 시민투쟁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그들은 광주 시민들이 이토록 엄청난 투쟁력을 발휘할지는 전혀 몰랐다.

20일 밤 시민들의 파상공세에 밀린 공수부대들은 발포로 응수하며 사상자가 늘어난다. 이에 광주시민들은 무장투쟁을 다짐한다. 무장 투쟁에 자신감을 갖게 되고 광주시민이 승리할 경우 그들은 민중의 심판대에서 목을 내놓아야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전두환 일파는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며 군 병력 2만명을 즉각 투입한다.5월21일 오후 1시 공수부대의 폭압과 만행,살인과 무력 앞에 광주시민들은 무장투쟁으로 대응을 한다. 그러나 군부의 총탄에 젊은이들이 쓰러져갔다. 결국 무력진압은 광주시민을 무장투쟁으로 내몰았다. 그들은 파출소 무기고를 깨뜨리고 무기를 확보한다. 시민군은 21일3시쯤 광주시민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출현하지만 전두환 일파에게는 경악스런 일이었고 시민들이 무장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시민군이 도청탈환시간부터 전남각지로 항쟁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군부는 광주를 완전 봉쇄한다. 우선 통신 .교통의 두절은 생활필수품 부족문제로 닥쳐왔다. 전남일원으로 통하는 국도는 완전히 계엄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광주시민들은 이러한 악조건에 지혜롭게 대처했다. 이로부터 광주시민이 오늘날까지도 높은 긍지를 가지고 있는 공동체적 상호 협력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광주시민은 매점매석을 방지함으로써 제한된 필수품을 최대한 활용한다. 쌀집에서는 한꺼번에 두되 이상의 쌀을 팔지 낳았고 담배도 한 갑씩만 팔았다. 모든 슈퍼와 식료품점도 강요된적 없이 자발적으로 질서를 만들어 나갔다. 이기간 동안은 평소에 있던 강도나 절도도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이로써 광주시민들은 인간이 투쟁을 통해 얼마나 질서정연하고 고결해질 수 있는지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그러나 텔레비전과 언론은 광주시민의 참상은 전혀 내보내지 않았고 시위대를 폭도로 오도했다. 광주는 고립작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대규모 진압작전이 착착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이 학살의 공범자임이 확실히 드러나게 된다.

한국군의 작전 통제권은 미국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어 있었다.1980년 군부의 권력 찬탈음모는 명백히 미국의 작전권 통제 아래 있는 군대의 힘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광주민중항쟁진압에 2만 병력 투입승인은 명백히 미군이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친미세력인 전두환을 두둔한 것이었다. 이는 전두환 일파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지지표명이었으며 한국민중에 대한 무력탄압이었다.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미국과 군부독재의 행동은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서라면 대량학살도 서슴치 않는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폭로한 사건이라 할 것이다.그리하여 민주주의의 수호자,경제성장의 주역 등, 그 동안 미국과 군부독재의 두 얼굴의 가면이 벗겨지는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광주민중항쟁은 우리민중 속에 세찬 반미 반독재 투쟁의 돌풍을 불러일으키는 진원지가 되었던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광주민중항쟁을 통해 억압의 질서가 붕괴되고, 해방의 질서가 열린 것이다. 광주민중항쟁은 허위와 기만에 가린 역사의 장막을 과감하게 걷어냈다.

전두환 일파는 광주 금남로의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권력을 향한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광주만중항쟁 3일후 5월31일 정부업무를 총괄하는 국보위를 출범한다.그리고 광주학살의 죄악상을 은폐하며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이란 대사기극을 연출한다.광주는 두 번 죽었다. 망월동의 흙이 마르기도 전에, 광주를 정치적으로 확인 사살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광주시민들은 폭도란 누명을 쓰고 살아야 했다.

그리고 1천여 명의 핵생과 수백명의 교수들을 한꺼번에 제적, 해직시켰다. 그리고 비판적 언론인 700명을 해직시켰다.그리고 8월4일 국보위는 사회악 일소를 위한 특별조치에 따라 폭력배 소탕작전을 대대적 실시한다. 이로 인해 불과 10일 만에 3만 여명이 넘은 사람이 잡혀 들어갔다. 이중에는 상당수의 민주 인사들이 포함 되었다.이들 중 2만 여명은 삼청교육대에 수용된다. 이는 철저히 백성을 군부독재형으로 다스리겠다는 신호탄이었다. 바로 이즈음 미국은 선거라는 절차를 거치기만 하면 한국의 새로운 지도자를 확고하게 지지하겠다고 나섰다. 이제 전두환은 구려울 것이 없었다.

8월13일 김영삼에게 정계은퇴성명을 발표하게 하고 최규하 대통력은 강제 하야 시켰다.
곧이어 8월19일 “임기 7년, 단임,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를 요체로 하는 새 헌법안을 확정지었다.

그로부터 3일 뒤인 8월22일 가장 높은 ‘태극무공훈장’을 가슴에 단 전두환은 전역식을 거행했다.이는 자신의 손으로 별 네개를 단지 불과 보름만의 일이었다. 계속해서 닷새후인 8월27일, 통일주체 국민회의 선거를 통해 제11대 대통령이 된다. 전두환은 대통령에 단독출마해서 2,525명의 투표자 가운데 무효 1표를 제외한 2.524표를 얻어 100%득표율을 기록했다. 드디어 피묻은 권좌위에 학살자가 올라앉은 것이다. 전두환은 다음해 1871년 2월 신헌법에 의해 전두환을 재차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민정당이라는 집권여당과 민한당이라는 관제 야당을 날조하여 독재 정치의 길을 열어 나갔다. 제 5공화국이 막이 오른 것이다.

한편 전두환의 열렬한 후원자인 미국은, 전두환이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르자 즉각 환영하고 나섰다.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은 전두환이 대통령에 오를 혈통을 지녔다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그리고 “한국민은 들쥐와 같은 민족이라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 복종할 것이며, 한국민에게는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다”고 하였다(로스앤젤리스 타임즈 1980.8.8.).그리고 AP통신과의 회견에서 위컴은 “한국의 10월 사태(박정희 암살사건-사실 이 사건도 박정희정권이 흔들리자 토사구팽을 한 것이라고 고김재규가 증언한 바 있다.‘자신의 뒤에 미국이 있다’ 라고 했다.미국이 친미정권을 세우고 민중이 그 실체를 알아가면서 대규모 민중시위가 일어나면 꼬리를 자른 것이다).

☞참고:1972년에 시작된 유신체제는 선진국이나 미국에서는 사향산업 중화학공업에 대한 무리한 투자로 경제의 악화를 가져왔고, 1인 장기집권에 대한 강압통치와 미국 카터 행정부와의 불화 등 정치·경제적 모순이 반정부 시위로 폭발하여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 해 10월 16일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18일 부산에 비상계엄령이, 20일 경남 마산·창원에 위수령이 발동되었다. 더욱이 집권층 내부의 갈등이 부마사건의 처리문제로 더욱 커지게 되었다.

이후 “미국의 한국정책에서 가장 성공한 일중의 하나는 전두환 정권이 수립된 것이다. 우리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으며, 우리의 보람도 크다”며 자신을 생각을 솔직히 표현 하였다.이러한 미국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전두환은 앞선 독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음해 3월 미국을 직접 알현하였다. 당시 꼭두각시 언론들은 전두환의 방미 일정을 ‘영광의 장정’이라 부드려 호들갑을 떨었다. 미국과 전두환 정권은 이미 광주 민중항쟁을 통해 충격적인 사실에 직면한 상태였다. 그들은 총칼에도 죽음을 각오하고 항거했다. 전두환 정권은 밀리면 끝장이라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이로써 군부세력은 민주화 투쟁에 대해 과민하리라 만치 완강하게 저항하게 되었다. 결국 민중에 대해 생사를 건 싸움을 하도록 내몬 것이다.

독재정권은 저항세력은 언론조작을 통해 은폐 또는 왜곡되고 폭력,난동으로 매도하였다. 이당시 미국과 소련은 강경노선으로 인해 군사적 긴장이 극도로 고조 되었던 시기이다. 레이건 정권은 미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모든 악의 근원은 소련에 있다고 간주하였다. 결국 소련을 제거하는 것이 미국의 궁극적 목표가 된 것이다.레이건 정권은 군비증강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동맹국들과 핵전쟁연습을 실시한다. 이에 소련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군비증강에 나서야 했다. 결국 소련은 막대한 군비지출로 인해 소련경제의 3분의1을 쏟아 붓고 견딜 수 없는 소련은 미국의 계획대로 중반부처 경제 위기의 징후가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한다.이는 소련붕괴의 원인이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군사대결이 한반도에서 강하게 나타날수록 우리영토와 민족이 강대국의 전쟁터로 전락하여 전쟁의 제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전두환 정권은 군사적 긴장과 대결정책을 배경으로 사상 유례없는 폭압정치를 구사하였다. 그런데 역사적 경험이 말해 주듯이 극단적인 독재정권일수록 극단적인 부패를 낳기 마련이다. 이는 민중의 지지에 기초하지 못한 어떤 집단이든, 권력은 권력유지를 위해 보다 많은 자금을 필요로 하고, 결국 자금 확보를 위해 권력형 부정축재를 통해 조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전두환 정권시절 물가가 안정된 이유는 3저 현상의 혜택이었다 .저달러,저유가,저금리 구조는 한국경제에 커다란 호황을 구가하게 되었다. 저달러는 수출단가를 올렸다. 이에는 일본의 대폭적 가격인상덕분이 상대적 이익으로 작용했다. 한마디로 수익률을 최대한 올릴 수 있었다. 또한 국제 저금리의 하락은 차관에 대한 이자부담을 줄여 주었고, 그만큼 국내 기업의 수익은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저유가는 국제 원자재 가격의 하락으로 국내물가 안정을 유발시켰다.중요한 것은 이런 이익이 나면서 기업은 흥청망청하였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3저 호황이 일어나자 즉각 미국은 수입개방 압력을 가한다, 그리고 우리는 대개 수용된다. 농산물 개방으로 농촌은 하루 아침에 파괴 되어갔다. 전두환 정권은 5.16쿠데타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대탄압을 가했다.

일제 치하이후 악법도 법이라며 강자에 순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강요받았던 한민족은 일제의 탄압에도 독립운동으로 폭발했고 ,정부수립이후에도 끊임없이 사대주의 친일 종미 주구세력에 의해 억압받아 왔으나 우리스스로 정의와 가치를 위해 한계를 극복하는 민중의 힘을 보여 주었다. 당시 시위 주동은 당연히 구속 대상이었다. 그만큼 시위를 주동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제적은 물론이고 구속될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제적과 구속을 각오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자신에게 모든 것을 걸고 있던 가족에게 커다란 시련을 안겨다 준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택한 길을 자랑스러워했다. 이런 이들의 결단과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자유와 행복은 억압당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경제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로 평가하곤 한다. 이 역사를 사실은 민중이 만들어 왔던 것이다. 역사연구에서 꼭 살펴봐야 할 것은 지배층으로서의 역사와, 민중의 역사를 동시에 살펴보는 것이다 그럴 때 권력에 의해 가려진 위대한 민중들의 숨결을 보게 된다. 근대화의 출발점, 권력층의 기득권유지와 부패와 탄압에 대한 항거, 그 시작은 동학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일제의 독립운동사로 이어지고, 오늘날 스스로 우리 역사를 만들려는 민주화 운동, 즉 민중들의 몸부림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동학에 대한 이해 없이는 역동적인 한민족 근대화 과정을 결코 읽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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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세대는 광주에 큰 빚이 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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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좋은말씀 #명언 #괴테 #터박이말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아들, 딸에게 들려 주는 좋은 말씀]14- 삶은 이 두 가지 뿐이다. 오늘 들려 줄 좋은 말씀은 "삶은 이 두 가지 뿐이다. 하고 싶으나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으나 하지 않는 것이다."야. 이 말씀은 앞서 알려 준 좋은 말씀과 이어지는 말인데 너희들도 잘 아는 '괴테' 님이 남기신 말이라고 해. 사람들은 흔히 하고 싶으나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돈'을 가장 많이 떠올리지 싶어. 왜냐하면 돈이 없어서 배우고 싶어도 못 배운 사람이 많고, 어디를 가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못 간 사람도 많을 테니 말이야.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것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생각해 보라고 하면 '공부', '운동'과 같은 말이 떠오르지 싶은데 너희들은 어떠니? 살아가면서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것에 마음을 더 쓰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 왜냐하면 먼저 살아 보신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은 것들은 나이를 먹은 다음 뒤늦게 뉘우치게 된다고들 하시기 때문이야. 지난 이레 들려 준 말씀에도 나왔던 슬픈 일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면서 말이야. 오늘 아들과 딸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는 그리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거라 믿어. 할 수 있는 일들을 미루지 말고 하나씩 꾀해 봤으면 좋겠어. 그 어떤 일도 하고 안 하고를 골라 잡는 것이 나에게 달렸다는 것도 잊지 말았으면 해. 이렇게 만나는 좋은 말씀들을 가슴에 새겨 삶의 거울로 삼아 오늘도 멋진 하루 만들어 가길 바랄게. 4354해 무지개달 스무하루 삿날(2021년 4월 21일 수요일) 바람 바람
한국이 약하면 진짜 죽던 시절.gif (스압주의)
1961년, 머리카락을 가발 공장에 팔기 위해 줄을 선 여성들의 모습  울음을 터뜨리는 소녀를 같이 온 어머니가 달래고 있다. 1961년, 당시 서울역 플랫폼 모습.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6.25 전쟁을 겪지 않은 첫 세대인 1954년생이 초등학교 (당시 명칭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한복을 차려입은 어머니들의 손을 잡고 교정으로 향하는 모습. 1962년 경상남도의 장날 풍경 짐을 머리에 이고 장터로 향하는 사람들 강원도 춘천에서 칡뿌리를 말리는 주민의 분주한 모습 1962년, 대구에서 열린 우시장 1962년, 모내기가 한창인 서울시 성동구 논현동 (현재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1동, 논현2동) 1963년, 평범한 남해 어촌의 풍경 방과 후 초등학생들이 들판으로 소를 끌고 나가 풀을 먹이고 있다. 집의 재산인 소를 배불리 먹이고 잘 데리고 오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 당시 어린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임무였다고 한다. 1964년,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의 턱걸이 연습이 한창인 교정  하나라도 더 해내려는 모습의 학생. 달리기를 겨루며 체육 활동을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방영되었다. 고무신이 닳을까봐 맨발로 운동장을 달리는 학생들과 응원하는 친구들. 영유아사망률 1000명 당 218명. (2021년 세계 최악의 영아사망률을 기록하는 우간다의 2.3배) 신생아 5명 중 몸이 약한 1명은 첫돌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시대였다.  아이들에게 야외 활동을 장려하여 체력과 면역력을 기르자는 표어가 방송되었다. 1964년, 한국전력 직원들이 경상북도 영양군에 전봇대를 설치하고 있다.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던 가정까지 전기가 들어가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보릿고개 넘기기 운동'이 한창인 시골의 분주한 모습 전국적으로 문맹 퇴치를 위한 운동이 시작되었다. 경북 영덕군에 내려온 대학생들이 글을 모르는 주민들을 모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전국적으로 늘상 문제가 되었던 쥐떼 해결을 위해 '쥐잡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잡힌 쥐를 보고 속이 시원한듯 웃는 어른들 1965년, 춘천 수력 발전소가 완공되었다. 산 능선에 올라선 시민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당시 고등학교의 수업 모습 교련 시간에 M1 총기 분해조립, 맨손으로 쇠봉 타기 연습을 하는 고등학생들. 전국에 큰 비가 내렸다. 잠긴 집과 들을 보고 망연자실한 사람들, 머리를 다친 동생을 돌보는 형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중부지방에서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청주 시민들이 힘을 합쳐 복구에 나서고 있다. 흙을 퍼내는 아버지들과, 갓난아이를 내려놓고 삽을 들어 복구를 돕는 어머니들 범람 위기의 청주 무심천에서 청주공업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 시민들이 힘을 합쳐 제방을 손보고 있다. 교복을 입은 청주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삽을 들고 수해 복구를 지원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에서 필리핀이 2배 이상 앞서던 시절,  거액을 들여 초빙한 필리핀 경제사절단이 내방했다. 일렬로 도열한 한국 관료들의 90도 인사와 환대에 경제사절단 단장인 필리핀 농림상 로드리게스와 필리핀 사절단이 흡족하게 웃고 있다. 1965년 1월,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소식으로 다루었던 첫 1인당 국민소득 세자리 돌파 (110달러) 1961년 70달러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낮았던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를 새해 첫 뉴스로 꼽았다.  지나치게 과장된 그래프가 어이없지만 당시에는 매우 큰 소식이었던 모양이다. 1965년, 한국은 방글라데시를 2달러 차이로 처음으로 제쳤다.   파독 광부 예비소집에 모인 인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고 있다. 서독 탄광으로 떠나기 위한 광부 모집에 최종 합격한 20대의 젊은 광부들 독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밤. 배웅하는 가족, 지인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올린 파독광부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다 한복을 입고 가족들을 향해 손수건을 흔드는 파독 간호사들 이륙 준비를 하는 여객기. 공항에 모인 시민들과 가족들이 파독 광부, 간호사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손을 흔들고 있다.  독일에 도착한 파독 간호사들이 거동이 불편한 독일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40도가 넘는 온도, 지하 1200미터가 넘는 탄광의 끝자락에서  11시간의 작업을 끝마치고 나온 파독 광부들 당시 파독 광부 평균연령은 25세, 파독 간호사 평균연령은 23세였다.  (출처 : 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 국군의 남베트남 파병이 결정되었다. 만 38세의 나이에 맹호부대 사단장 겸 주월한국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채명신 소장(당시 38세, 6.25 참전)이 수통과 탄띠를 착용하고  출발 전 현충원에 묵념을 올리고 있다. 수도사단 맹호부대 사단장 - 소장 채명신 (당시 38세, 6.25 참전) 제9보병사단 백마부대 사단장 - 소장 이소동 (당시 38세, 6.25 참전)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 여단장 - 준장 이봉출 (당시 39세, 6.25 참전) 1965년, 파병을 위해 도열한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맹호부대) 병력 전선으로 떠나는 제 9보병사단 (백마부대) 장병들의 결연한 표정 부동자세의 해병대 수색대 병사들 서울 시가지를 통과하는 파병 장병들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노인과  부채질을 해 주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이화여대 총장 김옥길 여사와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파병 장병들을 위해 쓴 문구가 방송되었다.  '조국 떠나 만릿길  온 겨레의 마음이  그대들의 방패가 되리  아세아 (아시아)의 최정예,  우리 국군 가는 길  오직 승리뿐이다.' 베트남 전선으로 향하는 국군 수송을 위해 36개편의 열차가 동원되었다.  수송 열차가 지나는 역, 마을 어귀마다 장병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시민들 대구역에서 잠시 정차한 수송열차. 국군 장병을 위해 기차역에서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중년 여성 한 병사가 역까지 배웅을 나온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산항에서 승선 전, 부하들을 향해 악수하는 중대장을 바라보는 해병 소위 이학철 (당시 23세) 파월 1진 해병 청룡부대 제3대대 9중대장 김종세 대위 (중앙, 당시 28세),  박준교 상병 (왼쪽, 당시 22세), 정명국 일병(오른쪽, 당시 21세)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종세 대위: "월맹 정규군 (북베트남 정규군)이 밀림에서 미군도 위협할 만큼 맹위를 떨치고 있고, 국군 장병들에 대해서 '단 한 사람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 할 것'이라고 비방하고 있지만   산악에서 단련된 소부대 전술, 체력과 같은 신체능력, 실제 전투에서의 호전성은 우리 병사들이  크게 앞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코 두렵거나 하는 마음은 들지않습니다." 마지막 승선 인원인 맹호 혜산진부대 소속 소대장 소위 최정길(당시 24세)이  부산시 부시장을 비롯한 환송 인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당시 국내 최대의 여성단체 한국 부인회 회원들이 맹호부대 장병들을 환송하고 있다. 떠나는 장병들을 환송하는 부산 시민들과 수송선 난간을 가득 메운 장병들. 출발하는 수송선. 부산 시민들의 응원에 군가로 화답하는 장병들 멀어지는 부산항을 바라보는 해병 병사의 모습 1인당 국민소득 110달러 시절. 성대한 위문공연도, 거창한 위문품도 없었지만  시민들은 장병들의 무사귀환을 진심으로 빌어주었다. 첫 국내 기술로 만든 라디오가 시판되었다. 납땜질에 열중하는 어린 여공들 '벌거벗은 산에 나무를 심자' 식목일에 나무를 심기 위해 산으로 향하는 국민들. 남녀노소 민둥산에 나무를 심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가을 날, 고등학생들이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동장 흙바닥 위에서 유도 대결을 펼치고 있다. 1967년, 제2회 전국학생씨름대회. 씨름 프로대회가 존재치 않던 시절,  (씨름 프로대회는 80년대) 전국 고등학교에서 힘 좀 쓴다는 학생들이 모였다.  다른 지역 학생들의 경기를 살펴보는 서울 고등학생들. 치열한 결승전, 경북 영신고등학교 학생이 우승을 차지했다. 강원도 삼척시에 유례없는 대폭설이 내렸다. 지붕에 쌓인 눈을 치우는 주민들. 생활 체육으로 나날이 인기를 더해가는 씨름이 소개되었다. 씨름 대회를 구경하는 수많은 인파들. 국군 장성들이 베트남 전선을 방문했다. 전쟁터에서 경계근무 중인 해병 병사의 덥수룩한 수염을 만지며 웃는 육군참모총장. 주월 맹호부대 병사들이 시멘트로 만든 역기로 밀리터리 프레스를 하며 체력 단련을 하고 있다. 대다수가 임관과 동시에 베트남 전선으로 파병될 ROTC 5기생 생도들이  대간첩작전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교관으로부터 산악 게릴라전 교육을 듣고 있다. '웃지않는 한국 해병들' - 미국 UPI 통신 보도 1967년, 짜빈동 전투에서 중대 병력으로 월맹 정규군 정예 1개연대 병력과  (호치민 휘하의 월맹군 제2사단 1연대) 맞붙어 승리한 해병 11중대 장병들이  미군의 초청을 받아 계단 위에서 미군의 위문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선글라스를 낀 정경진 대위 (당시 28세, 중대장)와 김용길 중사 (좌측, 당시 26세),  중앙에서 카메라를 노려보는 어느 청룡부대 11중대 병사가 카메라에 담겼다. 서울 운동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 복싱 세계 주니어미들급 챔피언인 '철권' 김기수 (당시 27세)가 도전자 프레디 리틀 (미국)과 15라운드까지 맞붙고 있다. 이를 악물고 덤비는 김기수의 기세에 밀리는 프레디 리틀 기립박수로 환호하는 시민들 타이들 방어에 성공한 김기수(당시 27세)의 기념촬영 1968년, 부산시 풍경 1968년, 서울의 모습 하늘에서 본 1968년 서울 첫 개통한 아현고가의 모습. 자전거와 자동차가 함께 다니고 있다. 1969년, 한강철교 복구공사, 작업에 열중하는 현대건설 노동자들의 모습 서울과 부산을 잇는 한반도 최초의 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공사 현장의 모습 부족한 중장비 대신 인부들이 달라붙어 바위를 깨고 길을 닦고 있다.  1969년, 나룻배들이 경부고속도로 낙동강 방면 공사에 쓰일 석재를 운반하고 있다. 1969년 연말,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포항제철소' 공사가 시작되었다. 허허벌판인 영일만의 모습 1970년 1월 1일, 영일만 앞바다에 떠오르는 일출 삼천만이 힘을 합치면 역사는 바뀐다는 내용의 표어가 방송되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삼천만 하나된 힘, 역사를 바꾸리라.' 한국 평균 나이 23세 시절 출처
기계입장에서 본 매트릭스 프리퀄
좆간놈들 다 죽여버릴까? 아니야 그래도 항복했으니까 포로 대우 해줘야지 가상현실 세계인 매트릭스에서 살아가게 해주마 구아악 그아악 이런 못된 기계새끼들 진짜 현실은 끔찍하니까 매트릭스에선 모두 해피엔딩을 맞게 해줄게 ??????????????????????????????? 무한 츠쿠요미 모르냐? 매트릭스 안에서는 언제나 행복할거야. 모든게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무상의 행복이 있어요. 이렇게 행복한게 현실일리 없는 데스! 탈주하는데샤악! 시발? 해줘도 지랄일세? 그럼 이번엔 좆같고 끔찍한 세계관으로 만들어줄게. 뱀파이어도 나오고 늑대인간도 나오고 귀신도 나올거야. 핫하! 귀신 뱀파이어 늑대인간 나가신다! 세계관이랑 판타지 괴물들은 제가 관리하겠습니다. 캬 너 일 잘한다 야 근데 인간중에 뒤지는 애들도 많고 탈주자도 많은데? 세계관이 너무 처참하니까요. 그럼 어쩔수 없지 2번째 매트릭스 폐기하고 관리자 새로 뽑을게 ?????????????? 어...저희들은 어떻게 됩니까? 구식프로그램이니 다 폐기해야지 뭐... (시발) 아니 존나 진심이세요? 그럼 어떡해? 데이터만 쳐먹는 애들인데... 우리 애들 제가 관리하겠습니다. 폐기시키지 마세요. 그래, 대신에 다음 매트릭스 관리자들 눈에 띄면 폐기다? 좆간은 좆같은거같아요 십새끼들 도저히 이해를 할수가 없어 새로 뽑은 관리자 이 새끼 존나 맘에든다 내가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게. 뭐 어떡하시게? 내가 심리분석 프로그램인데, 인간은 결과가 병신같아도 선택지가 있는 걸 좋아하거든. 그래서? 이번 매트릭스는 선택지가 '있는'것처럼 만들자고. 와 미친! 천부적이다! 이 새끼 코어가 160개는 되나보다! 우마우마한 선택지가 있는데스! 행복한데스!! 4번 세계관 리셋 후: 선택지 찍고 왔습니다. 뒤지기 싫으면 선택지 또 내놓으십시오. 너넨 니들한테 선택지가 있는 줄 알지? 없어! 병신들아!(맞는 말) (출처) 재밌네
[토박이말 살리기]나물과 남새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나물 #남새 #푸성귀 #야채 #채소 #터박이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토박이말 살리기]나무과 남새 지난 두날(화요일) 배움이들과 봄나들이를 갔습니다. 때가 때인 만큼 멀리 가지는 못했고 배곳(학교) 둘레에 좋은 곳이 있어서 그곳을 한 바퀴 돌고 왔지요. 배움이들을 데리고 나가기 앞서 가 볼 곳에 가서 살펴보고 왔습니다. 나가 보니 여러 가지 풀이 있었는데 이름을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것은 알려드리고 모르는 것들은 함께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어떤 것은 이름에 ‘풀’이 붙어 있고 어떤 것에는 ‘나물’이 붙어 있는데 어떻게 다른지를 알려드렸는데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둘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가운데 ‘광대나물’이 있습니다. ‘광대나물’이라는 이름은 꽃의 생김새가 광대가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릴 때 부드러운 것을 데쳐서 무쳐 먹으면 아주 맛있답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는 그렇게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에 ‘나물’을 붙여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애기똥풀’이 있습니다. ‘애기똥풀’은 잎이나 줄기를 꺾으면 노란 물이 나오는데 그 빛깔이 애기똥 빛깔을 닮았다고 그런 이름이 붙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풀에는 독성이 있어서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이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것에는 그냥 ‘풀’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으신 거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슬기가 엿보이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고기를 먹을 때 곁들여 먹기도 하고 몸이 튼튼해지려면 많이 먹으라고 하는 ‘채소’와 ‘야채’와 아랑곳한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흔히 상추나 당근, 양파, 배추 같은 것들을 똑똑히 가리지 않고 ‘야채’ 또는 ‘채소’라고 부르는데, 이 둘은 다른 것이랍니다. ‘야채’는 들에서 나고 자라나는 것을 베거나 캔 것을 뜻합니다. 들이나 메에서 뜯어온 쑥, 고사리 들이 여기에 들겠죠. ‘채소’는 사람이 손수 밭에서 키워 거둔 것인데, 우리가 흔히 먹는 무, 상추, 시금치, 오이, 깻잎 같은 것들입니다. ‘채소’는 중국식 한자고 ‘야채’는 일본식 한자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고, ‘야채’라는 한자말이 세종실록, 성종실록에도 나온다고 아니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풀이가 맞는지 틀린지를 따지기 앞서 이 말을 가리키는 토박이말을 먼저 챙겨 썼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채소’를 가리키는 토박이말은 옛날에 시골 어른들이 많이 쓰다 보니 사투리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말, ‘남새’입니다. 이 말을 알면 ‘남새밭’이라는 말도 그 뜻을 바로 알 수 있어 좋습니다. 말집(사전)에 찾아봐도 ‘채소’와 ‘남새’가 같은 뜻이라고 되어 있는데 쓰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아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야채’를 가리키는 말로는 토박이말 ‘나물’을 쓰고, ‘채소’를 가리킬 때는 ‘남새’를 쓰면 좋겠습니다. 나물과 남새를 싸잡아 가리키는 말인 ‘푸성귀’도 함께 말입니다. 온 나라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기에 바빠 챙기지 못하고 지나치는 이런 풀과 나무 이름을 우리 아이들은 알고 쓰며 살도록 해 주면 삶이 더 넉넉해질 거라 믿습니다. 4354해 무지개달 열닷새 낫날(2021년 4월 15일 목요일) 바람 바람 *이 글은 경남일보에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