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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 편파평론에 격렬하게 반기를 들며

황진미의 평론을 여기다 붙이기도 그냥 손가락이 낭비다 싶다 영화를 만든이유는 그날의 항쟁을 보던 우리내 무관심의 시선이 택시기사 김사복이 처음 시위를 바라보던 그와같았기에 김사복이 자의는 아니지만 광주로 들어가고나서야 비로소 평범했던 광주시민의 하루가 항쟁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을 이해하게 되고 같이 아파했던 것을 전달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김사복이 순천에서 가짜뉴스를 믿는 시민들 이야기 듣다가 어제까지 나랑 노래부르던 재식이가 싸늘한 시체로 마주하고 나서야 그 속에 같이 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꼭 김사복 감정과 같으리라 김사복이 광주에 들어온순간처럼 이 영화를 접하는 순간 난 그 역사의 진실에서 벗어나질 못하겠다 내가 택시를 운전할수는 없으니 빙글에 택시라도 콜해보는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민주화항쟁일 지도 모르겠다 아래 글은 지인의 글인데 글솜씨가 없는 날 대신한 글같아서 옮겨놓는다
"난 영화를 보고. 이거야 말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아는 대한민국국민들만을 위한 영화같이 여겨졌는데,,, 왜냐면 영화는 이 사건의 발단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인이 광주라는 도시에 하루아침에 뚝 떨어져서 벌어진 일. 철저히 외부인의 시선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평론가가 말하듯 저항의 적극적인 국민주권을 행사한 민주화운동으로 그려지지 않고 또다시 피해자의 역할로만 소비되는 광주시민들로 비쳐지지 않았다. 아니 그럴수 없다. 더욱이 상업성만을 위해 만들었다고 보여지지도 않았다. 민주화운동이든 생존권사수든 그 무엇을 떠나서 아무 연고없는 사람이 봐도 "그냥 잘못된"일이 맞다. 감독은 그걸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일베같은. 전두환 같은 인간들이 여전히 광주 빨갱이. 폭도들이 벌인 일이라고 거짓말을 할때. 그 시시비비에 빠지는게 아니라 당연히 민주화운동을 기본으로 그보다 더 한차원 위의 것을 보여주려 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우린 광주민주화운동은 명확한 사실이고 진실임을 안다. 그 시시비비에 빠질 필요 없다. 그리고 광주시민들의 숭고하고 강인한 저항. 투쟁의식은 존경받아 마땅하고 이땅의 민주화를 이끈 초석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투쟁을 했든 겁이나서 집안에서 나오지 못했든. 그 시간. 광주라는 그곳에서 버텨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왜냐면 그 분들이야말로 역사의 산증인이 되실테니,,, 이러든 저러든 이 영화는 보는게 좋다고 생각하는 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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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사범님이 광주 투입공수부대였다. 새벽에 깨워 비행기에 태워 투입되었단다.어린군인들에게 지금 광주에있는 전우들이 죽어가고있다 빨리 가서 대한민국과 전우들을 구하자고 대대장이 일장연설을 했단다. 그리고 낙하산을 타고 광주로 뛰어내렸단다.그러곤.. 이제 그는 한국에 없다. 너무힘들어서 스페인으로 이민갔다.
너무 안타까워요 또 다른 희생자이기도 하네요. ㅠㅠ
어스름에 뛰어내린 그는 전우들이 죽어간다는 광주시청을 향해 달려가며 전우들을 죽였을 폭도들을 향해 마구 총질을 해댔단다. 그는 그가 얼마나 엄청나 일을 저질렀는지 전역하고야 알았단다. 그는 스페인으로 가기전날 밤 왜 한국을 떠나냐던 어린 나에게 눈물을 그렁거리며 얘기해 주었다. 아마 그가 아직 살아있다면 타국의 하늘아래서 평생 가해자의 죄책감을 가지고 괴로워하며 살고있겠지.
그 당시 총을 들었던 군인도 알고 광주에서 다 봤던 언니도 알고 .. 둘 다 피해자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당시 군인이었던 분은 고등학 교 때 국어 샘이였는데 광주 시민 을 공산당이라고 했대요 ㅜㅜ 그 죄책감과 충격에 저희 한테 얘기하면서도 고해성사 하듯이 우셨어요 맘이 아파요
그러게요 거짓에 국민들만 상처로 남아있네요. 총을 든 그분도 거짓뉴스에 애국심으로 그러셨겠네요. . .그래서 진실을 전하고자 위르겐은 목숨을 걸어주었고 이제서라도 진실을 목격하게 되는 것 같아요
보긴 봐야겠는데 마음 아플거 같아서 망설이고 있네요 ㅠ
꼭 보시라고 권하고싶네요.봐야만될 영화라면,아파야 할 마음이라면 참지마세요.망설이다보면 아무것도 못해요.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론 손수건이 꼭 필요할 것 같아요.
신기한건 끄억끄억하면서 누는 사람없고 그냥 주르륵 흐르는 눈물 몰래몰래 닦고들 계시더라구요. 남자들은 그냥 코붙들고. . 미안해서 나도 못믿어줘서 미안했다는 맘인듯
이런 엄청난 학살을 일삼고도 아직 버젓이 살아있고 심지어 망언을 해도 처벌하지않는 이 나라에 과연 미래가 있나 자문해본다. 전두환일당을 살려두고 석방시킨짓은 광주의 피해자들에겐 남아있는 상처의 딱지같은것이다.
정말 잔잔하게 김사복이란 택시운전사가 되는 느낌입니다. 80년 광주를 가장 담담하게 잘 그린 영화같네요. 광주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얘기하는 영화입니다. 영화라고 거짓이라 매도하지 마세요. 정말 그랬습니다. 영화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시민들도 군인들도 모두 피해자입니다. 아직까지도 그때의 참혹한 기억으로 트라우마가 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는 시민들과 군인들이 꽤 있는걸로 압니다. 무엇보다.. 아직까지도 전대가리같은 개쓰레기가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는게 처절하네요.
제 감정을 잘 정리해주신 것 같아 감사합니다 진짜 위로받았습니다 꾸벅
다시는 같은 민족끼리 총질하게, 미워하게 만들지 마세요
다시는요. . 지역주의도 계층간의 문제도 이제 그만 모두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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