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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들이 알려주는 7가지 성공 노하우

1.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라.
우선 이들은 하나같이 가정적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2. 나이 들어 늙는 게 아니라 꿈을 잃어 늙는다.
이들의 두 번째 특징은 항상 젊게 산다는 것이다.
 
3. 우선 자신을 구조조정하라.
억대 연봉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업데이트시키고 있다.
 
4. 전직을 두려워 마라.
대부분 전직을 한 후 성공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은 최선을 다해 노력을 했는데도,
받아주지 못하는 회사가 있다면 과감하게 떠나라는 말을 한다.
기회는 자신이 만든다는 요지다.
 
5. 독서와 인맥 만들기는 필수이다.
현대는 전문가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되어버렸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지식을 재충전하고
주위에 많은 전문가를 두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6. 위기는 정면 돌파하라.
이들의 여섯 번째 특징은 위기 때일수록 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7. 자신감이 시작이자 끝이다.
자신의 생활에 있어서 적극적이고 낙관적이고 긍정적이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노력하다보면 자신감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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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을 연구한 공학자, 길브레스 부부 (1)
1904년 10월 19일, 미 오클랜드. 막 결혼식을 마치고 나온 신혼부부가 기차에 올라 몇 마디 대화를 나눴습니다. '아이는 몇이나 낳았으면 좋겠어?' '글쎄, 한 다스만 낳지. 기왕이면 남녀 각각 여섯 명씩.' 대화 내용이 살짝 소름끼치긴 합니다만, 결과적으로 이 말은 실제로 실현됩니다. 평생 길브레스 부부는 여섯 명의 아들과 여섯 명의 딸을 가졌고, 개중 다섯째 아들과 일곱째 딸에게 자신들 이름을 각각 붙여줬죠(프랭크 2세, 릴리언 2세). 비록 둘째는 1912년 디프테리아로 사망하지만, 나머지 형제자매들은 모두 잘 성장해 주었습니다. 길브레스 부부와 11명의 자식들. 자녀들은 부부의 실험 연구 대상이자 참가자였습니다. 부부는 여러 번 자녀들이 접시를 닦는 동작을 촬영해 분석하거나, 그들이 개발한 방식으로 타자기 사용을 보름 만에 숙지하게 교육하는 등 일상 생활에 그들의 연구를 접목했습니다. 그렇지만 자녀들이 기억하는 부모는 유머러스하고 자상한 사람들이었다고 하네요. 어째서 남편, 프랭크 길브레스가 열두 명 자식을 원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프랭크 길브레스는 매번 가족들을 데리고 국립공원이나 영화관에 입장할 때, 혹은 기차나 차편을 타야 할 때면 항상 단체 할인을 받아냈다고 하네요. 나중에 프랭크는 아이들 중에 쌍둥이나 세쌍둥이가 없어서 섭섭해했답니다. 여러 명 아이들을 한 번에 낳아 한 번에 기르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나요? 뉴저지 몽클레어에 집을 한 채 마련해 두고, '과학적 관리법과 낭비의 동작을 없애는 학교'라고 이름붙인 집에서 길브레스 부부는 평생 자신들의 연구를 그 자신과 자기 자식들에게 적용했습니다. 나중에 셋째 어네스틴과 다섯째 프랭크 2세는 자기 가족들이 그 집에서 살았던 경험담을 책으로 펴내기도 했는데요. 이 책이 어찌나 유행했던지 속편에 영화, 뮤지컬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기억하는 프랭크 길브레스는 자상하고 유쾌한 가장이었던 모양이지요.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혁신주의 운동이 미국 사회 전체에 영향을 떨칠 때가 1900년대 초 일입니다. 최초의 경영 컨설턴트 프레데릭 테일러가 활발하게 강연, 저술 활동을 하며 자신의 소위 과학적 관리론을 설파하고 다닌 때도 이 즈음이죠. 1904년 결혼한 길브레스 부부가 어떻게 평생에 걸쳐 공동연구를 수행했는지는 잠시 미뤄 두고, 먼저 프랭크 길브레스에 대해 잠깐 조명을 해보겠습니다. 프랭크는 메인 주 페어필드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아났습니다.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결과 MIT에 입학 허가를 획득하지만 가정 형편상 진학을 포기하고 취직하기를 선택했죠. 17세이던 그가 선택한 첫 직업은 벽돌공 수습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차차 능력을 인정받아 현장감독으로 승진했고, 나중엔 아예 독립해 건축회사를 차리게 됩니다. 이때 프랭크 나이가 34세였습니다. 사장이 된 프랭크가 집요하게 파고든 건, 바로 벽돌쌓기의 효율을 높이는 일이었습니다. 다양한 수단으로 현장 연구를 실시한 후, 그가 내린 결론은 바로 불필요한 작업 동작을 선별해내 제거하거나 교정하는 동작 연구였죠. 프랭크는 자기 연구를 바탕으로 건설업계의 작업 방식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여러 방안을 줄줄이 내놓았습니다. <현장 시스템(1901)>, <콘크리트 시스템(1908)>, <벽돌쌓기(1909)> 3부작 저서가 바로 그 방안이었죠. 운명적인 만남은 정말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1903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한 부유한 집안 여성이 미 동부로 여행을 옵니다. 그녀 응접을 맡은 안내원 미니 번커는 프랭크의 친척이었죠. 결국 미니 번커의 소개로 여성은 프랭크 길브레스와 만남을 갖게 됩니다. 그 뒤 약 1년간 편지를 주고받은 끝에 서로 마음이 맞음을 확인한 두 남녀는 결국 결혼에 이르게 되는데요. 이 여성이 바로 프랭크의 영원한 반려, 릴리언 길브레스였죠. 릴리언의 아버지는 독일 태생의 미국인으로 설탕 정제업으로 나름대로 부를 쌓은 인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몸이 약해 집안일에서 자주 릴리언의 도움을 받았죠. 릴리언은 학업 성적이 뛰어났는데, 부모는 대학 진학을 반대했습니다. 자기 딸이 형편 넉넉한 집 자녀와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게 두 사람의 바람이었죠. 릴리언은 그런 부모를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그렇지만 전 너무 평범해서, 부자들은 아무도 저와 선뜻 결혼하려 하지 않을 거에요.' 설득이 먹힌 건지, 아니면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는 건지, 릴리언은 소원대로 근처 버클리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에 입학하게 됩니다. 당시 캘리포니아 대학은 주 시민은 누구든지 무료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대형 강의가 많아서 심지어 건물 밖에 텐트를 치고 진행하는 수업도 있었다고 하네요. 또 학교에 기숙사가 따로 없어서 릴리언은 매번 집에서 통학을 해야 했습니다. 전공은 영문학이었는데, 심리학 등에도 관심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릴리언은 대학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올려, 졸업식 연사로 연단에 올랐죠. 캘리포니아 대학에선 처음으로 여성이 졸업 연사를 맡은 사례였습니다. 1900년 릴리언은 콜롬비아 대학의 대학원에 지원하는데요. 본인은 영문학 전공을 희망했지만, 지도 교수 소개를 받아 찾아간 영문학 교수는 여학생을 제자로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는 대신, 그녀는 전공을 심리학으로 바꾸어 진학하는데요. 도중에 건강 문제로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1902년 모교인 캘리포니아 대학으로 돌아와 기어이 석사 학위를 마친 후, 릴리언은 바로 박사 과정을 지원합니다. 이때 지원한 전공은 영문학, 부전공으로 심리학을 선택했죠. 이후 1903년 동부 여행 도중 소개받은 프랭크와 1904년 결혼하게 된다는 것은 이미 앞서 적은 그대로입니다. 결혼 이후 프랭크의 연구는 부부 공동의 연구가 되었습니다. 프랭크는 릴리언에게 산업심리학 분야를 공부해 보라고 권유하죠. 릴리언 역시 그 편이 프랭크의 일을 도울 수 있겠다고 생각해 동의합니다. 결혼 당시 이미 프랭크는 길브레스 사Gilbreth inc.라는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거든요. 이후 두 사람이 꾸리는 가정 생활은 여러모로 독특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1. 그 집에선 항상 심부름거리가 판에 적혀 있었습니다. 용돈이 추가로 필요한 아이들은 자신이 할 심부름거리를 골라 길브레스 부부에게만 자신이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입찰액을 적어 제시했는데요. 부부는 이중에 최저입찰액을 제시한 사람에게 응찰해 심부름을 맡기고 용돈을 주었다네요. 2. 프랭크는 매번 조끼를 입을 때면 아래부터 위로 올라가며 단추를 채웠다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위에서 아래로 끼우면 7초가 허비되지만, 아래서부터 채워 올라가면 고작 3초밖에 안 걸린다나요? 3. 한번은 면도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면도솔 두 개로 거품을 낸 후, 면도칼 두 자루로 한꺼번에 면도를 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걸 확인하려고 직접 실행에 옮겼다고 합니다. 당연히 면도칼에 목이 베여서 피가 났는데, 자녀들 증언에 따르면 프랭크는 베인 것 자체보다 그걸로 인해 목에 붕대를 감느라 2분이 오히려 허비된 것에 실망한 듯 보였다네요. 4. 평소에 프랭크는 가족 집합 신호로 휘파람을 정해 놓고 스톱워치까지 동원해서 신호 즉시 모든 가족이 무슨 일이 있어도 모이도록 훈련했다고 합니다. 가족들 전체가 모여야 할 일이 있거나 손님이 와서 가족을 소개시킬 때 등 여러 상황에서 휘파람 신호를 이용했다는데요. 어느날 이들 가족이 길가에서 낙엽을 태우던 중, 그만 불이 나무 벽에 옮겨 붙었다고 합니다. 프랭크가 즉시 휘파람을 불자, 불과 14초만에 온 가족이 밖으로 뛰쳐나왔죠. 불은 소방수에게 채 연락할 틈도 없이 꺼졌답니다. 5. 프랭크 길브레스가 가족 중에서도 유난히 특이한 성격이 아니었냐고요? 화장실에는 가족들이 매일 할 일과 공정표가 붙어 있었는데요. 이건 부부가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각종 가사일을 해낼 수 있을지 연구한 결과였습니다. 아이들은 밤에 자기 전 체중을 달아 그래프에 적고, 숙제를 마무리하고 손과 얼굴을 씻고 이를 닦으면 또 도표에 표시를 했습니다. 이때 아내 릴리언 길브레스는 스케줄에 기도하는 것도 표시하고 싶다고 제안했는데요. 프랭크는 심사숙고 끝에 각자 자유로 두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을 내렸다네요. 특이한 성격은 부부 양쪽 모두였던 모양입니다. 1924년 프랭크 길브레스는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제 1회 국제경영컨퍼런스에 참석하려고 여행길에 오릅니다. 도중에 그는 무언가를 문득 떠올리고 근처 공중전화로 아내이자 파트너인 릴리언에게 전화하죠. '오는 도중에 가루비누 담는 동작을 생략할 좋은 생각이 났는데 어떻게 생각해?' 믿기지 않지만, 그게 프랭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되었습니다. 슬로바키아에 가기도 전에 프랭크 길브레스는 심장병으로 사망합니다. 홀로 남은 릴리언 길브레스에겐 11명의 자녀와 집, 남편이 남긴 사업체와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맡은 일이 남아 있었죠. 프랭크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돌자, 심지어 그동안 길브레스 사와 거래해 온 업체들이 컨설팅 계약 중지를 통보했습니다. 릴리언 길브레스에겐 두 선택지가 있었죠. 모든 일을 접고 고향에 가서 남편 잃은 미망인으로 평생 가족을 돌보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남편의 업무 파트너로서 그의 연구와 일을 이어갈 것인가. 릴리언 길브레스는 남편의 모든 것을 자신이 잇기로 결심했습니다. 산업 공학의 퍼스트 레이디는 그렇게 탄생한 겁니다.
느린 엘리베이터
지금 같은 고속 엘리베이터가 없던 시절 어느 백화점에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리게 움직여서 고객의 불평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백화점 지배인은 이 문제 때문에 여러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 봐도 가장 현실적인 해결 방법은 최신형 엘리베이터를 새로 설치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보는 순간 지배인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이유는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공사 기간 손님들이 불편을 겪으며 나타날 매출 하락을 생각하면 새로운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지배인이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담당 청소부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나섰습니다. 지배인은 속는 셈 친다는 생각으로 한 번 원하는 대로 해보라고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정말로 고객들의 불평이 없어졌습니다. 청소부가 고안한 해결책은 엘리베이터 안에 큰 거울을 달아놓는 것이었습니다. 천천히 오르락내리락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두커니 서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고객들이 이제는 할 일이 생긴 것입니다. 거울 앞에 서서 머리도 쓰다듬어보고, 음식물이 이빨 사이에 끼었는지 체크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매를 보면서 시간 가는 줄 잊어버렸습니다. 호텔 지배인은 청소부보다 호텔경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엘리베이터 엔지니어는 청소부보다 엘리베이터 구조와 원리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느린 엘리베이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손님들의 마음은 바로 그 손님들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청소부가 가장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항상 문제 곁에 있다는 말처럼 멀리 돌아볼 필요 없이 편견 없는 마음으로 주변을 바로 살필 수 있다면 어떤 문제든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어떤 돌을 옮기려고 할 때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다면 주변의 돌부터 움직여라. - 비트겐슈타인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님들..'코즈믹 호러'라고 들어봤어..?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 말 그대로 해석하면 '우주적 공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ㅇㅇ 즉, 미지의 무.시.무.시.한 존재를 다루는 호러물을 말하지! 인간이 어찌할 도리가 없는 엄청난 힘을 가진 미지의 외계 존재나 초자연적인 현상이 가하는 공포를 다루는 장르라고 하징 벌써 오줌 찍... 코즈믹 호러의 핵심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야.. ㅎㄷㄷ 거대 괴수에 대한 공포만이 아니라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거대한 것 like 신, 운명, 죽음, 시간, 행성, 우주, 심해 등등의 존재를 보고 느끼는 공포지 예를 들어볼까? 영화 '그래비티'에서 우주로 튕겨나간 주인공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압박감도 코즈믹 호러라고 할 수 있어 인간은 우주의 티끌만도 못한 존재잖아..?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다구 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찌할 수 없을 때, 아득할 만큼 거대한 존재와 현상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이 사무치는 그 순간들도 코즈믹 호러의 범주 안에 들 수 있어. (+알 수 없는 매개체에게 느끼는 미지의 공포심도 포함) ㅇr.. 좃댓다..... 디스토피아st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코스믹 호러 쪽에 분명 관심이 있을거라고 생각해! 좀 더 하드코어 하긴 하지만 (시무룩) 아,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겠지! 엥? 그럼 디스토피아, 괴수물이랑 코스믹 호러는 뭔 차이야? 나의 짧은 지식으로 설명해보자면... 작품의 결말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어! 인류가 초월적 존재(괴수, 현상)을 극복 해냈느냐? 자자, 예를 들어보자 어벤져스 시리즈의 '타노스'를 보면, 그는 모든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면서 전 인류 아니 우주상의 모든 존재의 반을 싸그리 조사버릴 정도로 초월적인 힘을 가지게 되지! 히어로들마저 속수무책으로 당해서 ㅃ2...☆하게 되지만 이는 코스믹 호러가 될 수 없어 ㅇㅇ 결국 히어로들이 이기게 되니까. 힝.... 노쓰.. 똑땅헤... 코스믹 호러는 대체로 해피엔딩과 거리가 멀어.. 햄보칼 수 업어.....ㅠ 설령 모든 사건이 해결된 거처럼 보여도 끝까지 공포, 파멸의 근원은 여전하다던가, 살아남더라도 미쳐버리거나 자살해버리던가.. 끔살은 기본... 보통 코스믹 호러작품은 극도의 찝찝함을 남기는 경우로 마감하는 게 정석이라고 해.. 영화 '미스트'가 떠오르지 않아? (입틀막) 미스트 또한 코스믹 호러 장르 중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어! 등장인물들이 뭐 어찌저찌해서 살아 남았다고 하더라도 그냥 뭐 운이 좋아서 살아 남았을 뿐... 사건을 파멸로 이끄는 공포의 존재와 근원은 여전히 남아있는채 막을 내리지... 우주적인 존재나 괴물들이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격퇴되는 대상으로 묘사된다면 그건 코스믹 호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돼! (간단) 딱 봐도 인간따위에게 지지 않게 생기셨잖아.... 코스믹 호러는 상당히 오래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작품은 적은 편이라고 해. (이 장르의 선구자이며 본격적으로 써먹고 유행시킨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슨상님은 1928년부터 본격적으로 크툴루 신화에 대한 작품을 연재했어) 초월적 존재의 으마무시~한 스케일을 묘사하면서 그것에게 무차별적으로 짓밟히는 필멸자의 극한의 공포와 절망을 묘사하는게 매우 어렵기 때문.이라고 나무위키가 말해주넹 쿄쿄 어지간한 필력과 능력치로 비벼볼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이뜻이지 ㅠ https://youtu.be/8OTO7Rqln9Q 코즈믹 호러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 - 한글자막 흐에 ㅠ 썸넬 이미지 극혐이지만 코스믹 호러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봐볼만한 영상이라 첨부할게! 마지막으로 코스믹 호러와 연관이 있거나 영향을 받은 영화 몇 편을 추천할게 ㅇㅇ 백번 설명하는 것보다 영화 한 두 편 봐보면 아... 이것이... 하는 늬낌이 퐉! 올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 미스트 미스트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로 거대한 괴물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코스믹 호러 작품 ㅠ 안개는 러브크래프트식 코즈믹 호러에서 절망감을 못 박게 하는 필수품 중 하나라고 해 원작 소설의 엔딩을 완.쥬.늬. 뒤틀어버린 충격적 결말 때문에 개봉 당시 호불호가 크게 갈렸지만!!! 지금은 상식을 초월하는 초자연적 세계와 맞닥뜨린 인간의 공포와 절망을 잘 그려낸 코스믹 호러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어 결말 후폭풍이 넘 쎄섴ㅋㅋㅋㅋㅋ 인생 최악의 영화라고 평하는 사람도 많궁..ㅠ 2. 서던리치 : 소멸의 땅 제프 밴더미어의 동명의 SF 소설을 원작으로 엑스카미나를 연출한 알렉스 갈랜드 감독의 SF 호러 영화야! 넷플릭스가 코스믹 호러 작품을 뿜뿜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유가 뭔진 모르겠엌ㅋㅋㅋㅋㅋ 갑자기 나타나 생물을 왜곡시키는 미지의 공간인 쉬머에 들어간 탐사대의 일을 그린 작품인데 비주얼 쇼크 ㅇㅈㅇㅈ 쌉ㅇㅈ 갠적으로 첨엔 이게 뭔 ㄱ ㅔ~~소리야앗!! 하면서 봤는데 한번 더 보면 왘 ㅆㅂ... 하고 보게되는 작품! 기과함과 경이로움이 공존하는 작품=33 3. 버드박스 미지의 ‘그것’을 본 모든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광기에 휩싸인 채 자살한다. 세상이 망하고 5년 후. 두 눈을 가리고 세상을 멸망시킨 존재가 활보하는 지옥과도 같은 집 밖으로 나선 멜로리. 멜로리 밖에 모르는 두 아이의 손을 꼭 쥔 채, 일말의 확신조차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고 희망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과 아이들. 버드 박스에 등장하는 '미지의 존재'가 무엇인지는 영화가 끝날 때 까지 등장하지 않아! 그러나 한 장면에서 고딕풍의 그림을 통해 그들의 모습이 암시되긴 허지.. 이 영화는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의 부름'과 많이 닮아있다고 해,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도! 흠,, 내가 소개하는 작품들 중 가장 순한맛이라 첨으로 코즈믹 호러에 도전한다면 추천할게 (씨익) 4. 이벤트 호라이즌 사라진 우주선 '이벤트 호라이즌' 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위해 떠난 구조팀의 이야기. 러브크래프트의 많은 소설처럼 이 영화는 우주 너머에 있는 공포의 존재를 등장시킨다. 감당할수 없는 공포로 미쳐가는 구조팀의 모습이 압권이야......ㅎㄷㄷ 오래된 작품이지만 쫄깃함은 진짜 역대급...ㅇㅈ 그런데 영화 중반에 '저 세상'을 보여주는 장며니 너~~~~~~~~~무 잔인해서 영화사가 액기스 30분 가량을 날려버렸다고 해.. ㅠ 유튜브에 아주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을 편집한 영상이 있긴 한데... 쨋든 아깝... 5. 매드니스 ‘서터 케인’이라는 유명 소설가가 <광염 속으로>라는 원고를 탈고 후 실종된다.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그를 찾게 된 사설탐정 ‘존 트렌트’는 케인이 어디로 갔는지 실마리를 얻기 위해 그의 소설을 탐독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홉스의 끝’이라는 마을을 수상히 여긴 그는 케인과 절친했던 편집자 ‘린다 스타일스’와 함께 그곳으로 향하고, 마치 소설 속 세계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마을과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기괴한 광기에 휘말리게 된다. 거의 뭐 급행열차를 타고 속절없이 절망이라는 역을 향해 치닫는 전개와 이 거슨... 환상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극한의 연출로 ‘러브 크래프트’ 스타일을 가장 잘 살린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매드니스! 이것도 1995년도에 개봉한 고전작이지만 존잼이야.. 보고 있는 나까지 좀 미쳐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갓띵작 붐업! 붐업! (뭔가 줄거리가 길어지고 설명이 짧아지는 기분이라면.. 맞아.. 슬슬 쓰기 귀찮아짐) 6. 데스티네이션 시리즈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총 5편이 개봉된 호러 영화 시리즈. 우연히, 혹은 자력으로 재앙을 피한 사람들이 결국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죽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게 '죽음'이라는 현상을 다룬 데스티네이션! 옛날에는 그냥 단순한 공포영화라고 생각했는데 피할 수 없는 죽음이란 현상에 의해 속절없이 무너져내리는 인간을 다뤘다는 점에서 아주 신선한 코즈믹 호러 시리즈라고 말할 수 있지 큐큥 7. 캐빈 인 더 우즈 5명의 젊은 남녀가 시골 별장으로 휴가를 떠난다. 숲 속 낡은 오두막에 자리 잡은 이들은 지하실에서 신비롭고 무서운 골동품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결국 이상한 주문을 읽어서 좀비를 불러낸 것을 시작으로 온갖 괴물들이 일행을 덮치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오두막 밑에는 먼 옛날부터 고대신에게 인신 공양을 해온 거대 조직이 숨어 있었고, 주인공들은 공양을 위해 유인당한 미끼였던 것. 호러 영화를 자주 보고 즐긴 공포마니아라면 한번쯤 봤을만한 크리처와 살인마, 초자연적 존재들이 우당탕탕 몰아치는 영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좀 뻔하다 싶은 클리셰들이 모두 비틀어지는 것도 또 다른 재미ㅇㅇ 개인적으로 얘도 가볍고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 닥추 + 그 외 완전 붐업까지는 아니지만 꽤 괜찮은 코즈믹 호러 무비 추천이얌 1. 트라이앵글 2. 에이리언 3.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 4. 클로버 필드 5. 그래비티 6. 러브, 데스 + 로봇: '독수리자리 너머' 에피소드 7. 사일런트 힐 분명 코스믹 호러라는 장르는 잘 모르지만 이런 '미지의 존재'가 주는 위압감과 공포를 즐길줄 아는 챔피언들을 위해 주절주절 적어봤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장르는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 (눈치) 나만 좋아하는게 아니겠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큼큼.. 암튼 뭐 마무리는 대충 하련다. 혹시 문제가 있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콜드 체인, 세상을 바꾼 냉기의 혁명(3)
프레데릭 존스에게도 다른 위대한 발명가들처럼 영감이 불현듯 찾아온 순간이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밤, 호숫가에 차를 세워두고 잠시 운전석에 앉아 시간을 보낼 때였습니다. 창문을 열자 선선한 밤바람이 차 안으로 불어들어왔죠.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열린 창문으로 불청객도 들어왔거든요. 모기가 들어와 윙윙거리자, 프레데릭은 짜증이 나서 창을 닫아 버렸습니다. 그러자 차 안은 금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더워졌죠. 창을 열자니 또 모기가 들어올 것같고, 그렇다고 창을 계속 닫고 있자니 더워서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이 때에 프레데릭에게 한 영감이 찾아옵니다. 바로 차량용 에어컨을 만들어 팔자는 생각이었죠. 그는 자기 상사이자 파트너인 누메로를 찾아가 자기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걸 만드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으니, 분명 성공할 거라고요. 누메로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누메로는 프레데릭의 아이디어에 대해 시큰둥하게 굴었습니다. 어째서 누메로가 새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았는지는 모릅니다. 더군다나 당시 회사는 새로운 사업 분야를 찾아야 할 처지였는데도 말이죠. 누메로의 회사에서 개발한 극장용 음향 시스템 설비는 미 중서부 전역에서 팔려 나갔습니다. 곧 선발주자인 웨스팅하우스와 RCA가 그 존재를 의식하게 되죠. 치열한 경쟁과 소송전이 거듭되었습니다. 상대는 미 전역에 먼저 진출한 대기업들이죠. 누메로의 회사가 저렴한 가격과 품질로 승부를 거는 데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누메로에겐 대안이 필요했죠. 프레데릭의 아이디어가 묻히나 싶자, 곧 다른 방향에서 기회가 돌아옵니다. 1983년, 누메로는 골프 친구들과 경기를 하며 친목을 다지고 있었습니다. 개중 한 친구가 우연히 누메로가 듣는 앞에서 불평을 늘어놓죠. '요전번에 시카고에서 닭고기를 잔뜩 사들였는데 말야, 트럭이 길에서 퍼지는 바람에 고기가 다 상해버렸다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당시 운송용 냉각 시스템은 초보적이었고 취약했습니다. 트럭의 진동 때문에 민감한 장비는 쉽게 고장났고, 그나마도 차체와 독립된 동력원이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죠. 때문에 육류나 상하기 쉬운 상품을 육지에서 수송하는 데는 한계가 따랐습니다. 누메로는 친구 말을 듣고 농담조로 이렇게 말하죠. '혹시 그 문제, 전문가가 해결 못 하면 까짓거 내가 해 버리지.' 누메로에겐 농담이었지만 친구에겐 아니었습니다. 이제 누메로가 기댈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죠. 자신이 운영하는 영사 기기 회사에서 수석 엔지니어를 맡은 프레데릭 존스가 아니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기껏 제안한 차량용 에어컨 아이디어를 걷어찬 고용주가, 뒤늦게 와서는 세상에 없는 차량용 냉각 설비를 발명해 내라고 합니다. 프레데릭은 과연 어떤 생각으로 이 프로젝트를 맡았을까요? 그의 생각이야 어쨌건, 프레데릭은 자신이 맡은 일을 충실히 해냅니다. 1938년 최초의 육상 운반용 냉동장치 모델 A의 특허를 발표하죠. 1938년 발표된 모델 A는 냉각용 핵심 부품이 차체 하단에 설치되었습니다. 이것이 도로 사정에 따라 손상을 입는다는 사실을 알자, 프레데릭은 해당 유닛을 트레일러 상부로 옮깁니다. 무게가 2200파운드나 나갔던 초기 모델도 나중에는 950파운드까지 경량화하죠. 비록 우연히 이뤄진 개발이었지만, 누메로는 이 냉동 트레일러가 곧 자기 미래라고 판단을 내린 모양입니다. 그는 곧 자신이 운영하던 극장 설비 회사 Ultraphone과 보유하고 있던 음향 설비 특허, 티켓 발권 기계 특허를 RCA에 팔아치워 정리해 버립니다. 여기에 자신의 생명보험을 담보로 1만 달러를 빌려 자금을 융통하죠. 이 돈을 가지고 누메로는 몇몇 동업자와 함께 써모컨트롤 컴패니Thermo control company를 설립합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프레데릭이 개발한 냉동 트레일러에 올인한 거죠. 하지만 초기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못했습니다. 이전에도 냉동 트레일러 기술이 여럿 소개된 바 있지만, 사용자들이 원하는 대로 작동한 경우가 아직 없었던 거죠. 누메로는 고민 끝에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냅니다. 육류 포장 체인인 Amour 사와 접촉한 그가 담판을 짓습니다. '저희와 거래하시죠. 처음 트럭 두 대는 아무 비용 청구 없이 설치해 드리겠습니다. 혹시나 우리 장비가 고장나면 그로 인한 모든 손실도 보상해 드리죠. 어떻습니까?' 상대방 입장에선 손해보는 것이 없는 거래였습니다. 상대편 사장은 누메로의 제안을 받아들이죠. 얼마 지나지 않아, Amour 사는 트럭 8대를 추가 구매합니다. 누메로와 프레데릭의 상품이 비로소 시장에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겨우 첫 시작을 끊었지만, 회사 경영은 여전히 순탄치 못했습니다. 거기에 곧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죠. 이때 회사 사장인 누메로는 진지하게 자원 입대를 고민했습니다. 이미 한 번 군대를 다녀왔는데도 말입니다. 마치 그 결심이 허풍이 아니란 듯, 누메로는 지원을 하러 워싱턴 DC로 훌쩍 떠납니다. 그가 모든 것을 걸어 이제 막 반석을 닦아놓은 회사는 다시금 표류할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습관을 연구한 공학자, 길브레스 부부 (3)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면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눈에 띕니다. 각 캐릭터는 마치 살아있는 양 생생하게 움직이지만, 그런 동작 속에서도 확실하게 캐릭터 개개인의 성격이나 특성이 드러나도록 하죠. 애니메이터들의 갖은 연구와 아낌없이 들인 노고가 아니라면 분명 그같은 결실을 보기란 어려울 겁니다. 디즈니 스튜디오가 배우들의 실사 동작을 연구 분석한 사실을 아시나요?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었던 백설 공주에서 일곱 난장이 중 하나인 도피란 캐릭터는 코미디언 에디 콜린스의 연기를 모델로 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은 도피의 이미지에 가장 흡사한 에디 콜린스를 초청해 그에게 도피의 연기를 하게 하고, 이를 촬영해 프레임 단위로 분석하고 연구했습니다. 이를 통해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가 정말 살아있는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알아냈죠. 비록 지향점은 다르지만, 디즈니 애니메이터들도 길브레스 부부처럼 무척 세심하게 인간 동작을 연구하고 각자 자신들 목적에 맞는 최적의 동작을 도출해 낸 셈입니다. 서로 다른 분야라도 방법론에선 일견 비슷해 보일 수 있단 사실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에디 콜린스와 도피. 1934년작 백설공주를 제작하면서 디즈니는 다양한 기술과 역량을 활용했습니다. 세트장에서 실제 연기하는 배우들의 움직임을 따서 캐릭터에 입히는가 하면, 멀티플레인이란 기술로 배경에 깊이감과 입체감을 줬죠. 1924년 프랭크 길브레스가 급사합니다. 동작 연구를 시작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으로 작업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했고, 이를 통해 회사와 노동자 양측 모두 윈윈할 수 있다고 믿은 인물이었죠. 자연히 그의 컨설팅 회사엔 그의 명성을 듣고 온 전미 유수의 기업들이 고객으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으면서, 이들 회사와 맺은 컨설팅 계약도 날아가 버립니다. 어쩌면 프랭크가 평생 세워 올린 업적은 이 때에 사라지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부인 릴리언 길브레스는 결코 그렇게 놔둘 생각이 없었죠. 그녀는 남편을 대신해 그가 참석하려던 체코슬로바키아의 <제 1회 국제 경영 컨퍼런스>에 참석해 논문을 발표합니다. 참석자들 중 유일한 여성이었죠. 또 때마침 출범한 영국 여성공학협회에도 <산업공학에서 여성을 위한 기회>라는 글을 기고합니다. 여기서 릴리언은 산업공학이 신생 분야이기에 기존 공학보다 여성 참여가 수월하며, 여성 노동자와 가사노동 분야를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 있고, 여성이 접근하기 쉬운 연구 방법을 활용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여성 공학도들의 참가를 촉구했죠. 1925년에는 퍼듀 대학 기계공학과에 동작연구 강의를 맡아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을 개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직접 기업체에 방문해 현장 실습을 해보는 기회를 가졌다고 합니다. 이렇듯 릴리언은 왕성한 활동으로 남편 못지 않은 업적들을 쌓아 올렸습니다. 길브레스 사 사장에 취임한 후 그녀는 '여성지향적 컨설팅'을 내세웠고, 여성들을 고객으로 한 기업들을 신규 고객으로 유치했죠. 한 예로, 1926년 존슨&존슨 사를 컨설팅할 때는 생리가 여성노동자 피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생리 기간 중 여성 노동자의 작업 시간을 융통성있게 조절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과학적 관리를 가정에 접목시키는 시도 또한 이루어졌습니다. 릴리언은 1927년 <가정주부와 그의 일>을, 1928년 <아이들과의 생활>을 출간했고, 가정학, 공학, 경영학 전공의 여자 대학원생들을 모아 가사 노동 분야에 대한 공동 연구를 했습니다. GE 사의 프로젝트에선 4천 명 이상의 여성을 인터뷰해 스토브, 싱크대, 주방 설비 등의 적정 높이를 설계하고 부엌 디자인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죠. 이전까지 부엌은 비효율적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음식 저장고는 집 어딘가에 따로 두고, 각종 가구들도 아무렇게나 집 여기저기에 연관성 없이 놓여 있었죠. 릴리언은 이것들을 한데 모아 현재도 쓰는 L자형 배열을 만들었습니다. 또 쓰레기통에 페달을 달아 밟으면 뚜껑이 열리게 했고, 냉장고 문 안쪽에 계란이나 버터를 보관할 선반을 추가했죠. 당대 남성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생활 속 불편한 부분들을 릴리언은 효율적으로 개선해 나갔습니다. 릴리언 길브레스의 연구에서 영감을 받은 부엌 디자인. 1930년대 후반이면 냉장고를 제외한 모든 주방 가구들이 마치 하나의 유닛처럼 통합되었다고 합니다. 해럴드 트리뷴에서 예전 주방과 길브레스가 고안한 주방을 비교한 결과, 이전보다 새 주방에서 걷는 거리가 1/6까지도 줄었다네요. 과거 주방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구조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페달식 쓰레기통의 유래엔 다른 설이 하나 더 있습니다. 1939년 스웨덴의 홀거 닐슨이란 사람이 아내의 미용실을 위해 발명한 Vipp pedal bin이 시초라는 설인데요.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따져봐야 의미없을지도 모르죠. 1929년 후버 대통령 영부인인 루 헨리 후버가 릴리언에게 걸스카우트의 컨설팅을 요청합니다. 이걸 계기로 릴리언은 행정부에도 발을 들이밀게 되죠. 1930년 대통령 직속 고용위원회에서 일자리 나누기 사업 여성 분과를 담당해 운영하는 등, 공공 분야에도 공헌을 합니다. 2차 대전 시기엔 정부 조직, 위원회, 군에서 조직 내 교육 및 노동 문제를 자문하는가 하면, 트루먼 행정부에선 민방위 자문 역을 맡기도 했죠. 한국전쟁 때도 그녀는 여군 국방 자문위에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1940년 퍼듀 대학은 릴리언을 정교수로 임용합니다. 이로써 그녀는 미 공과대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되었습니다. 릴리언은 퍼듀 대학에 산업공학 교육이 정착되는 데 공헌함은 물론, 공학을 전공하는 여학생들을 상담해 진로 지도에도 힘씁니다. 1948년에는 위스콘신 대, MIT 등 미국 내 여러 대학에서 산업공학 교수로 그녀를 초빙하죠. 처음엔 남편 그늘에 가려졌을지라도, 릴리언은 끝내 세상에 자신만의 업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릴리언이 없었다면, 오늘날 남편 프랭크 길브레스의 업적도 잊혀지지 않고 지금과 같이 남을 수 있었을까요? 릴리언 길브레스는 93세까지 장수합니다. 공학의 퍼스트 레이디란 별명에 어울리게, 1968년 은퇴하기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죠. 은퇴 후 요양원에 들어간 그녀는, 1972년 뇌졸증으로 사망합니다. 그녀가 죽은 후, 사회 각계에서 그녀와 그녀 남편을 기려 젊은 엔지니어와 여성 엔지니어를 표창하고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기념 사업이 지속되었습니다. 평생 자신들 분야를 개척하고 후학 양성에 힘쓴 부부에겐 아마도 기쁠 일이겠죠. 오늘날 미국과 세계의 모습을 만든 데에는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입니다. 길브레스 부부 역시 그들만의 괴짜같은 방법론으로 현대 문명에 기여했죠. 지금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보는 건 항상 흥미진진합니다.
콜드 체인, 세상을 바꾼 냉기의 혁명(번외)
1. 세계 최초의 냉동선, 리퍼Reefer선이라고 불린 선박들에서 화물을 냉동하는 데엔 다양한 기술이 동원되었습니다. 암모니아 가스 방식, 암모니아-탄산가스 냉매 공기 순환 방식, 증기 기관을 이용해 압축된 공기를 화물칸에 불어넣어 급속한 공기 팽창으로 열을 식히는 방식 등 적용된 기술은 각양각색이었던 모양입니다. 오늘날 선박이나 비행기에 쓰이는 냉동 컨테이너도 Reefer container라고 불립니다. 2. 미 동부에 바나나를 소개한 유나이티드 후르츠 컴패니는 중남미 국가들을 상대로 정부와 결탁하고 농부들을 착취해 악명이 높았습니다. 콜롬비아에서는 고용된 현지인 농부들이 주 6일, 하루 8시간 근무와 배급표 아닌 현찰 급여 지급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지만 정부군은 이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죠. 또 과테말라는 유나이티드 후르츠 컴패니 및 미국 CIA 등과 연관된 쿠데타가 발발, 친미 독재 정권이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소설가 오 헨리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국가 자체가 다국적 기업에 장악당한 상태를 비꼬아 바나나 공화국이라고 칭했습니다. 물론 국가가 정상적인 상태라면 기업에 잡아 먹히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만... 3. 냉동/냉장 기술이 유통 과정에 결합하면서 언제나 사시사철 신선한 먹거리가 있는 슈퍼마켓과 대형마트가 곳곳에 생겨났습니다. 어떤 이는 냉동식품과 슈퍼마켓이 등장하면서 각 가정이 장을 봐야 하는 빈도가 줄었고, 덕분에 가정일에서 해방된 여성들이 맞벌이를 통해 노동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도 하네요. 각 가정에 냉장고가 필수품이 된 건 물론이고요! 4. 써모킹은 90년대 들어 발생한 환경 문제 해결에도 동참하려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인 듯 합니다.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가 오존층을 파괴하는 기존 냉매 사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하자고 규정한 후, 늦었지만 1994년에 써모킹은 오존층에 해를 덜 끼치는 새 냉매를 비로소 전 제품에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80년대부터 연구한 기술이 그때서야 겨우 결실을 맺게 되었다네요. 5. 국내에서는 삼원써모가드라는 회사가 써모킹의 국내 총판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트럭 냉동기 시장에서 국내 점유율은 2016년 기준 15% 정도였다네요. 제품의 장점으로는 정확한 온도 조절, 저연료, 저소음과 내구성 등 차별화된 기술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약점은 가격으로, 국산 타 제품군이 1000만원대 가격을 형성하는 반면, 써모킹 사 제품은 2000만원으로 비쌉니다. 과거 빙그레나 롯데같은 대형 빙과업체들이 직접 트럭을 구매해 운영했을 때는 장기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점이 어필했지만, 지금은 개인 업자들이 냉동차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서 아무래도 초기 구입비가 싼 제품을 더 찾는다네요. 6. 국산 냉동기 업체는 여러 곳이 있지만, 써멀마스터라는 회사의 창업 스토리가 흥미롭습니다. 지금 대한항공의 전신인 한진에서 20대 때 알바를 하던 창업주가 미군 식품납품용으로 쓰던 일제 스즈키 사 냉동차를 보고 이 사업에 대해 눈을 떴다네요. 당시 냉동기 관련 지식이나 기술을 접하기도 어렵고 교육기관도 전무해서 닥치는 대로 알 법한 사람을 찾아 다녔다는 사장님은, 재미있게도 군 입대를 통해 기회를 잡게 됩니다. 써모킹의 프레데릭 존스가 1차대전 당시 입대해 기술을 익혔듯, 또 누메로가 2차 대전 당시 자원 입대하려다 기회를 포착하고 회사를 성장시켰듯 여기서도 군대가 기회가 된 거죠. 입대 후 사장님은 배치된 미사일 부대에서 무기 냉각 장비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관련 기술을 익혔습니다. 제대 후에도 삼성종합건설 중동 건설 현장에서 4년간 냉동 관련 업무를 맡고, 87년 귀국해 창업한 후에도 첨단 기술 동향을 연구하고 조사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97년에야 겨우 자체 제품을 개발해 현대차에 납품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2007년 써멀마스터 사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태국,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에 납품할 UN 선정 냉동기 납품업체가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며 크게 성장했죠. 한때 써멀마스터 회사 정문에는 '써모킹이 가장 부러워하는 써멀마스터가 되자'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걸려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껏 써모킹의 역사를 훑어본 탓인지 저 슬로건이 유독 주목을 끄네요. 7. 예전에 전지현이 출연한 광고로도 화제를 끌었던 유통 스타트업 마켓컬리는 국내 최초로 새벽배송을 시작한 업체로 유명합니다. 이 회사가 내세우는 게 자사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을 유통 전 과정에 걸쳐 가장 적정한 온도로 관리해 가장 신선한 상태로 고객에게 전달한다는 풀 콜드체인인데요. 유통 산업은 투자 비용이 워낙 커서 스타트업을 시작하기 힘들다는 시각에도 사장님의 뚝심으로 현재도 계속 성업 중에 있습니다. 지난 물류센터 코로나 확진자 발생 때는 세심한 고객 관리로 좋은 평판을 얻기도 했죠. 스타트업의 본래 의미처럼, 우리가 전에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서비스를 이렇게 계속해 제공받을 수 있는 것도 앞서 소개했던 수많은 선구자들이 헌신하고 궁리해 혁신한 덕분입니다. 오늘날에도 그 혁신은 계속해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요. 앞으로도 계속해 나올,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줄 신기술과 새 산업에 기대하며 또 응원을 보냅니다.
실수에 대처하는 자세
날마다 가족을 위해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는 그날도 정성스럽게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웬일인지 평소보다 더 분주했던 엄마는 식초병을 참기름병으로 착각하고 찌개에 넣고 말았습니다. 순간 아차 했지만,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차마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는 아까운 마음에 그냥 식탁에 내놓았습니다. 식구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중학생 큰딸이 찌개 맛을 보더니 잔뜩 찌푸린 채 말했습니다. “엄마 찌개 맛이 너무 이상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요.” 그러자 초등학생 둘째 딸도 기다렸다는 듯이 언니가 했던 말을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자식들의 쏟아지는 음식 불평에 엄마는 미안해서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그런 두 딸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빠가 딸들에게 말했습니다. “어디, 맛 좀 보자. 조금 시큼하긴 하지만, 먹는 데는 문제가 없구나. 그리고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를 한 것 보니 엄마에게 걱정거리가 있는 듯하구나. 음식 맛을 말하기보다 먼저 엄마의 걱정거리가 뭔지 여쭤보지 않겠니?” 순간 딸들의 얼굴에 죄송함이 묻어났습니다. 딸들은 엄마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엄마를 감싸주는 아빠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금세 식탁 분위기가 달라진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어느 순간에도 서로를 신뢰하고 아끼며 존중하며 그 모습을 자녀에게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자녀 인성교육의 가장 기본이 되며, 엄한 훈육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말도 아름다운 꽃처럼 그 색깔을 지니고 있다. – E.리스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상실은 새로운 기회입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세상을 떠난 해인 1642년 영국 동부지역 울즈소프에서 우울한 환경 속에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 유복자로 태어난 아이는 미숙아였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가 겨우 말을 배우려고 할 때 다른 남자와 재혼해 아이를 떠났습니다. 부모에게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며 자란 아이는 혼자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괴상한 상상을 하며 사과나무 아래 혼자 앉아 있는 소년에게는 변변한 친구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사이가 나쁜 학교 친구에게 성적으로 업신여김을 당한 것이 분해서 공부를 시작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한 공부는 아이의 인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잘 이끌었습니다. 그 후 천신만고 끝에 열망하던 대학에 들어가 학업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지식을 원하여 박사학위 과정을 들어가려고 할 때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했습니다. 지역의 모든 대학이 문을 닫았고 성인이 된 그는 아무것도 못 하고 낙담하며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몸과 마음은 이미 청년이 되었지만, 그는 아이였을 때와 똑같이 사과나무 아래 주저앉아 푸념하는 것 말고는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뭐람. 내 인생은 출생부터 지금까지 모두 변변치 못하네.’ 그때 사과 한 개가 ‘툭’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청년은 생각했습니다. ‘왜 사과는 옆으로 안 떨어지고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걸까?’ 이 의문이 인류 과학사의 흐름을 바꿨습니다.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탄생시킨 의문이었습니다. 사후 300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 세계 과학자들의 칭송을 받는 뉴턴이지만 그의 인간으로서의 삶은 불행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꾼 만유인력이 탄생한 사과나무 아래는 뉴턴에게 있어 최악의 낙담의 현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곳에서 역사에 남을 과학지식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꿈을 잃었다고 절망할 일이 아닙니다. 상실은 새로운 기회입니다. # 오늘의 명언 좌절의 시간은 잊으라. 그러나 그것이 준 교훈은 절대 잊지 말라. – 하버트 S. 개서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콜드 체인, 세상을 바꾼 냉기의 혁명 (1)
오늘날 에어컨을 발명한 윌리스 캐리어의 업적에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특히나 요즈음처럼 장마에 무더위가 이어질 한여름철에는 에어컨 없이 지내기가 여간 곤욕스럽지가 않죠. 바깥 열기에 잔뜩 데워진 몸을 끌고 집 안에 들어와서, 벽걸이 에어컨에서 새어나오는 냉기 아래 땀을 말리고 있자면 그제서야 겨우 살 것 같다는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이 얘기는 에어컨에 대한 게 아닙니다. 어쩌면 그것보다 중요할, 우리 일상 생활 모습을 완전히 뒤바꿔놓은 또 한 명의 기술자 얘기입니다. 혹은 기술자와 기업가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네요. 혹시 아르헨티나나 브라질같은 중남미 국가들이 세계 대전이 있기도 전부터 각국에 소고기를 수출해 왔단 걸 아셨나요? 미 동부 사람들이 1800년대 후반부터 자메이카산 바나나를 별미로 먹어온 것은 어떤가요? 1870년, 남미 오리노코 강에 금 채굴업자들을 수송해주고 뉴잉글랜드로 돌아가는 와중에 벌어진 일입니다. 복귀 도중 선원들은 배가 침수하고 있단 걸 깨닫죠. 그들은 할 수 없이 가까운 자메이카에 정박해 배 수리를 합니다. 이때 로렌조 베이커라는 남자가 바나나를 보고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리죠. '혹시 이걸 사서 배에 싣고 돌아가면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아시다시피 바나나는 빨리 익고 잘 물러집니다. 배 선창에 잔뜩 싣고 항구까지 운반하는 동안 과연 상태가 멀쩡할지 장담할 수 없었죠. 도박이나 다름없었지만, 베이커는 바나나를 잔뜩 사서 배에 싣고 뉴잉글랜드로 돌아갑니다. 다행이 바나나는 문제 없었죠. 너무 익어서 도저히 내륙에는 옮길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인근 뉴욕, 보스턴 등지엔 팔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바나나는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자메이카에서 미 동부로 바나나를 옮기는 건 성공했지만, 남미에서부터 소고기를 옮기는 일은 또 다른 도전일 겁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1868년 상금까지 걸고 소고기를 해외로 옮길 방법을 공모했죠. 이전에도 우루과이, 쿠바, 브라질 등에서는 소고기를 해외에 수출했습니다. 단, 소금에 절인 후 건조한 후였죠. 얼음 상자에 보관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얼음이 긴 항해 동안 무사히 버티려면 아주 많은 양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니 오늘날처럼 신선한 고기를 수출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당대 급속도로 발전해가는 과학기술에 희망을 걸어본 거죠. 사실 액체가 증발하며 열을 빼앗아 기온을 내리는 매커니즘은 이미 규명되어 있었습니다. 단지 상용화된 기술이 아직 없었죠. 1876년, 프랑스 기술자 찰스 텔리에가 아르헨티나 정부가 공모한 프로젝트에 도전합니다. Le Frigorifique라는 배에 고기를 싣고 무려 105일간 항해를 개시하죠. 배가 항구에 도착했을 때, 실린 고기들은 모두 무사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냉장선, reeefers의 등장입니다. Le Frigorifique호. 프랑스 루앙에서 출발한 배는 악천후와 충돌로 인한 손상 등 악조건 속에서도 대서양을 가로질러 아르헨티나에서 유럽으로 육류를 운송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후 1902년엔 무려 460척의 냉장선들이 세계를 누비며 과일과 육류 등을 운반합니다. 찰스 텔리에의 성공은 곧 과학 기술과 자본의 승리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건 냉장 역사상 서막에 불과합니다. 현대 냉장 기술을 창안해 세상을 진정으로 바꾸어놓은 건 어느 사업가와 한 천재 기술자가 손을 맞잡은 결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