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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는 다른 동물과 교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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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미있겠다 우와우와 하다가 맨밑에 보니 사놓고 안읽은 책이였다..
댓글들 보고 한마디 하고 가는데요 여기서 방대한 내용에 관해 시시콜콜 논하기는 조금 부적합하구요 그저 비전문가가 읽고나서 허술하다고 할만한 내용은 절대 아니라는 정도만 이야기 하고갈게요. 총균쇠의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다수의 세계 최고 석학들도 극찬한 내용입니다. 무명이었던 학자가 쓴 책 한권이 세계를 흔들어 놓았고 그의 이름을 떨치게 했습니다. 세계 30여개국에서 번역 출판 되었고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각국에서 올해의 책으로는 셀 수도 없이 선정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 책이 검증된 책 이라는것을 시사합니다. 허술한 내용으로는 이런 행보는 불가능 합니다. 읽어보면 생각보다 어렵지않고 굉장히 설득력 있고 재미있게 넘어갑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책 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호모데우스를 읽고 극한의 경험을 읽으세요 아니 읽게 될 것 입니다.
이제 원본도 없는 성경을 믿고 창조론 주장하는사람 나오겠네
읽어봐야지!!
흥미진진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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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에서 고려로 계승된 발해 문화 정리
발해가 멸망한 이래 많은 수의 유민들이 고려로 왔던 만큼 이들이 고려 사회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쳤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발해 문화의 영향인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단지 발해가 한국사라는 주장의 차원에서 고구려에서 발해로 계승된 문화만 다소 알려져 있지 발해에서 고려로 계승된 문화는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이 글에선 발해가 고려에 미친 물질문화에 대해 정리해 보았음 1. 발해계 막새기와 최근 수년 전부터 고려 시대 유적에서 발해 시기 전형적 와당 양식인 심엽형 연화문 와당들이 출토됐고 이에 따라 관련 연구 역시 진행되었는데 발굴 지역으로는 대표적으로 안양사지와 원지동 원지 등이었으며 안양사는 고려 왕실과 상당히 관계가 있는 유적이었고 원지동 원지 역시 원(院)의 특성상 고려 조정의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 점을 미루어 볼 때 고려 조정과 고려로 내투한 발해인들의 관계가 상당히 깊었다고 추정됨 박순우, 고려 내투 발해인들의 처치 지역 검토 - 고려시기 유적 출토 발해계 막새기와를 중심으로 – 백산학보, 2019, vol., no.114, pp. 97-120 (24 pages) 2. 고려 청자 백주는 고려사에서 발해 세자 대광현이 고려로 내투했을 때 왕건이 직접 내린 식읍으로 발해 유민 관련 유적이 상당수 존재하는 곳임 특히 대광현을 따라온 수만명의 유민 가운데 요업(도자기) 기술자가 많았는데 그들이 여전히 고려 왕실에 소요되는 자기 생산에 종사하였기 때문에 현 황해도 배천(백주) 원산리에서 출토되는 고려 자기가 발해의 것과 공통성(색, 형태, 무늬장식)을 지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눈여겨 볼 점이라 할 수 있음 리창진, 「고려푸른자기는 발해푸른자기의 계승발전」, 『조선고고연구』, 2001년-1호, 38쪽. 또 고려도경에서 “고려는 장인[工技]은 매우 〈솜씨가〉 정교하여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이는 모두 관아[公]에 귀속된다. 복두소(幞頭所)註 ·장작감(將作監)註 이 그런 곳이다. 이들은 항상 흰 모시[白紵] 도포에 검은 두건을 쓴다. 다만 역(役)을 맡아 일을 할 때는 관에서 자주색 도포[紫袍]를 지급한다. 또한 거란(契丹)에서 항복한 포로 수만 명 중 장인이 열에 하나 꼴인데, 그 중 정교한 솜씨를 가진 사람을 뽑아 왕부(王府)에 머물게 하였다고 들었다.” 라는 구절이 존재하는데 고려 역사상 거란의 포로가 다수 잡힌 시기는 여요전쟁이고 당시 거란인들은 유목민족이였으므로 거란인 포로이면서 전문직인 장인은 매우 드물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거란이 여요전쟁을 수행할 당시,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발해인들을 다수 징집해 전쟁을 수행했던 만큼 결국 위 구절의 포로로 잡힌 장인들을 뜻하는 건 대다수가 발해인일 것으로 보이며 이 중 뛰어난 이들이 왕부에 속해 종사했으므로 고려의 기술력 상승에 전체적으로 기여했을 것임 더욱이 추가적으로 고려도경에서 서긍이 말하길 “근래에 기복(器服)은 더욱 정교해졌으나, 경박하고 겉치레[浮僞]가 너무 많아져서 예전의 순수하고 질박[純質]한 것을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라는 구절 역시 발해 문화의 유입에 인한 영향일 것으로 보임 渤海遺民의 高麗流入과 役割 - 북방사논총 10호, 우리역사넷 3. 머리 뒤꽂이 홍준어장고분과 러시아 크라스키노성 유적에서 청동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발해 여성 머리 뒤꽂이는 발해 ‘ㄷ’자형(혹은 U자형) 뒤꽂이에 ‘山’자 형태의 장식이 달려 있는게 특징인데 이러한 유물이 고려시대 유적지에서도 출토된 사례가 나와 발해 문화가 고려로 전승된 것으로 보이는 한 측면이라 할 수 있음 이블리예프 알렉산드르, 「러시아 연해주의 중세시대 성곽」, 『2013 ASIA ARCHAEOLOGY』(국제학술심포지엄 발표 자료집), 2013, 75·85쪽. 임누리, 『渤海 土器 硏究』,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4, 51~52쪽. 이효형, 「발해 문화의 고려 전승」, 『백산학보』67, 2003. 조선유적유물도감 편찬위원회 편, 『북한의 문화재와 문화유적-고려 편 Ⅳ』,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220쪽. 4. 기둥밑 장식기와(주초장식와) 발해의 기와 가운데 가장 독특한 것은 기둥밑 장식기와인데 건물을 장식하는 효과와 함께 빗물이 들이치지 않도록 기둥과 주춧돌이 만나는 부분에 도자기를 만들어 씌운 것이 특징이고 또 기둥이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커다란 고리형태인데 몇 개의 조각으로 나누어 조립하는 방식이 겉에 연꽃을 장식한 것이 있는가 하면 푸른색의 유약을 바른 것도 있으며 이러한 형태의 기와는 발해 상경성에서 발굴된 게 대표적임 그런데 고려의 개성 만월대 궁궐유적에서도 이와 비슷한 유적이 발견된 사례가 있어 두 나라 사이에 문화전승이 이루어 졌을 것으로 보여짐 東亞考古學會 編, 『東京城-渤海國上京龍泉府址の發掘調査』(東方考古學叢刊 甲種 第5冊), 1939, 58~60쪽 및 揷圖55 綠釉柱座實測圖, 圖版 91~95. 주영헌, 『발해문화』, 사회과학출판사, 1971 ; 在日朝鮮人科學者協會歷史部會 譯, 『渤海文化』, 雄山閣, 1979, 112~113쪽. 조대일, 「발해의 공예」, 『발해사연구론문집(I)』,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2, 226쪽. 서울대학교박물관, 『해동성국 발해』, 통천문화사, 2003, 70쪽 조선유적유물도감 편찬위원회 편, 『조선유적유물도감』10(고려), 1991, 274쪽. 사회과학원고고학연구소, 『고려의 유물』(고고학전서48, 중세편25), 진인진, 2009, 103쪽. 5. 고누 국내에 발견된 고누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신라시대에 조성된 경북 칠곡 송림사 내의 전탑에 고누가 새겨진 벽돌인데 유물들의 시기가 고려, 조선 등으로 각기 달라 고누 벽돌 역시 도중 중건했던 시기의 것으로도 볼 수 있으므로 통일신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임 발해에서의 고누 놀이는 크라스키노성 유적에서 나온 바위에 새겨진 고누 그림과 다수의 놀이 알을 통해 알 수 있고 국내 유적의 경우 북한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초기 고누의 발견 장소는 황해도 봉천군 원산리(현재 배천군 원산리)  도자기가마터 갑자의 밑창 바깥면에 참고누판이 새겨져 있었던 것으로 배천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왕건이 대광현에게 식읍을 내린 곳이니만큼 발해 고누 놀이는 결국 이곳에 내투한 발해인들에 의해 고려로 퍼진 것으로 추정됨 또한 고구려 국내성에서 자기와 석재로 만들어진 고누놀이용 말을 보았다는 견해와 도편을 연마하여 만든 말의 도면을 제시하고 있어 고누가 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졌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는 측면이라 볼 수 있음 V.I.볼딘·E.I.겔만, 『2004년 러시아연해주 발해 유적 발굴 보고서』, 고구려연구재단, 2005, 178쪽. 김은국·E.I.겔만 외,『연해주 크라스키노 발해성 2012년도 발굴조사』,동북아역사재단·러시아과학원 극동 역사고고민족학연구소·극동연방대학교,2013,128쪽. 김영진, 『도자기가마터 발굴보고』, 사회과학출판사, 2002 ; 백산자료원, 2003, 203~204쪽 V.I.볼딘·E.I.겔만, 『2004년 러시아연해주 발해 유적 발굴 보고서』, 고구려연구재단, 2005, 30쪽.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編著(宋玉彬 主編), 『國內城 : 2000-2003年集安國內城與民主遺址試掘報告』, 文物出版社, 2004. 발해 유민사 관련 고고학 자료의 검토 - 고구려발해연구 2015, vol.52, pp. 297-333 (37 pages) 이효형 현재 국내의 열악한 발해 연구 환경상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이 정도이지만 앞으로 더욱더 발해 연구가 진전될 것으로 기대되기에 단순히 발해가 고구려 계승국이므로 한국사라고 주장하는 영역에서 발해에서 고려로 전파된 문화들로 인해  고려의 발해 계승국으로서의 면모로 점차 영역이 확대될 전망임 이종격투기카페 펌
일본 창작물에 가장 먼저 등장했던 한국인 캐릭터
복숭아에서 태어난 동자가 개, 꿩, 원숭이와 함께 귀신섬에 찾아가 오니를 물리친다는 내용의 동화 모모타로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섬 오니가시마는 사실 실존하는 장소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그것은 놀랍게도 일본에 지어진 백제식 산성인 키노조(鬼ノ城, 귀신성)를 바탕으로 하고있다. 키노조는 백제부흥군이 왜국(야마토)와 손을 합쳐 나당연합군과 치뤘던 백강 전투로 인해 멸망한 백제의 유민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축조한 성으로,  이를 거점으로 하여 당시 일본의 야마토 정권과 세력다툼을 하다 몰락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일본의 원주민들에게 있어 발전된 철기 문화와 각종 도구를 사용하는 백제인들은 문화충격의 대상이었고 그들과 맞서 싸운 이야기가 각색에 각색을 더해 현재의 "모모타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뭔 억지스런 국뽕인가 싶을 사람이 있을테지만 놀랍게도 이 내용은  일본 현지에서도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야기이다. 키노조 근처에 세워져 있는 전철역인 핫토리역에는 이러한 내용의 표지판이 붙어있다. "동화 모모타로에 등장하는 오니들의 수장 "우라(温羅)"는 사실 백제의 유민들을 이끌던 왕자로, 당시의 야마토인들이 이 인물을 토벌한 이야기가 바로 모모타로의 원전이 되었다." 라는 내용. 오늘날에 전해지는 모모타로 이야기 속 '우라'는 성질이 흉폭하여 사람들을 괴롭히는 존재로 표현되지만 사실은 일본에 철기 문화를 전파한 '착한 귀신'이었다는 설명으로 결론을 짓고 있다. 도탁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