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지도자의 리더십
프랑스의 제10대 대통령인 클레망소 수상은 1차 세계 대전 때 특유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프랑스를 이끈 정치가이기도 합니다. ​ 그는 전선을 자주 시찰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한 부대가 고전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갔습니다. ​ 그런데 포탄이 터지는 최전선이 가까워지자 그는 차에서 내린 뒤 전투가 벌어지는 부대까지 직접 걸어갔다고 합니다. ​ 그렇게 위험한 곳이라도 찾아와서 자신들을 격려하는 수상의 모습을 본 병사들은 환호성을 올린 후 재충전된 사기로 더욱 힘을 내 전투에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 또한, 클레망소 수상을 발견한 적군이 수상을 향해 집중적으로 포화를 퍼붓는 상황에서도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지 않고 그곳에 계속 남아 병사들의 사기를 돋워주었다고 합니다. ​ 그 결과 프랑스군은 독일군을 몰아내며 완벽한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 프랑스 군인들은 한 나라의 수상이 자신들과 함께 최전선에 있었다는 사실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힘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한 사회의 지도자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 권위도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 때문에 지도자는 항상 어떤 자리에 있든, 어떤 모습으로 있든 지켜야 할 사명이 있는데 그건 바로 신뢰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리더십은 말로 행하여지기보다는 태도와 행동으로 보여진다. ​ =Naver "따뜻하 하루"에서 이식해옴..... ​ ​ #리더#지도자#지도력#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우리나라에서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계기
연천 전곡리 유적은 세계역사학계에서 중요한 유적 중 하나인데, 이유는 전곡리 유적이 발견되기 전까지만해도 학계의 입장은 아슐리안 도끼 = 유럽, 아프리카만의 구석기 문화라고 여겼기 때문임. 즉, 우리가 한국사 공부할때마다 보는 이 주먹도끼를 유럽, 아프리카 지역에만 있었다! 고 생각한 거임. 1970년대 세계의 역사학자들: 아 RGRG 주먹도끼는 유럽, 아프리카에서 쓴거고 아시아지역에서는 찍개를 썼지 (모비우스 학설) 근데 우리나라에서 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이 학설은 완전히 전복되게 됨. 그럼 이 주먹도끼를 비롯한 전곡리 유적은 어떻게 발견되게 되었을까? 일단 미국으로 건너가봐야됨. 미국 빅터밸리 대학교 고고학과에 재학중이던 학생이 한 명 있었음.  그렉 보웬: (아 학비를 벌어야 되는데, 어떻게 벌어야 될까..) 미군: (학생들이여 군에 입대하면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당시 학비를 버는 방법을 강구했던 그렉 보웬 학생은 군대에 입대하게 됨. 군에 입대하고 해외 파견 업무를 나가게 되는데... 그렇게 가게 된 나라가 우리나라... 싸우쓰 코리아였던 것임.. 그렉 보웬: (열심열심) TMI. 공군 기상관측병으로 활동함. 그렉 보웬 상병은 한국에서 열심히 근무했고, 한국인 여자친구도 사귀게 됨. 그렉 보웬 상병 여자친구 이상미씨: 그렉! 그렉 보웬: 상미! 그러던 어느 겨울날, 둘은 한탄강변을 걸으며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는데 날씨가 진짜 겁내 추운거임. 이상미씨(그렉 보웬 상병 여자친구): 그렉... 날씨가 너무 춥다.. 그치? 그렉 보웬: 상미..... 우리 추우니까 몸을 좀 녹일 겸 커피 좀 끓여서 마실까? 이상미씨: 그래, 그러면 모닥불을 피우게 돌을 좀 모아볼게! 그렇게 돌을 모으게 된 그렉 보웬 상병과 이상미씨. 그러다 상미씨가 이상한 돌을 발견하게 됨. 이상미씨: (어머 이 돌 특이하게 생겼다 ㅎㅎ 그렉한테 보여줘야지 ㅎㅎㅎ) 그렉 보웬: 상미, 돌 다 주웠어? 이상미씨: 응! 근데 그렉 이 돌 좀 봐 ㅋㅋㅋ 되게 특이하게 생겼지? (상미씨가 주워온 돌) 그렉 보웬: 응 ㅎㅎ 진짜 특이하게 생겼다 ㅎㅎ 학부때 배웠던 주먹도끼처럼 생겼...... ??????????! 그렉 보웬: 이거...... 아슐리안 주먹도끼 아니야..? 고고학을 전공했던 그렉 보웬 상병은 이 돌이 뭔가 심상치 않은 돌임을 느낌.  아무리봐도 아슐리안 주먹도끼인거임.  그렉 보웬 상병은 여자친구 이상미씨와 함께 한탄강 주변을 다시 한 번 샅샅이 살폈음. 그래서 몇 점의 주먹도끼를 더 발견하게 됨. 그렉 보웬 상병은 주먹도끼 발견 지점을 지도에 표시하고 주운 주먹 도끼를 동봉하여 프랑스의 고고학 권위자 보르도 교수에게 보냈음. "선생님, 제가 한국에서 아슐리안 주먹도끼처럼 보이는 유적을 발견했습니다. 선생님의 의견이 필요합니다." 이 교수님이 보니까 찐 주먹도끼인거임.  그래서 당시 우리나라 고고학계의 거장인 김원용 교수님(서울대학교)에게 연락해 연천 전곡리 유적을 조사해야한다고 말했음. 보르도 교수: 프로페서 킴, 이것 좀 봐요. 찐 주먹도끼가 한국에서 나왔어요. 김원용 교수: 아니.. 주먹도끼가....????? 어디서요? 연천 전곡리요? 이래서 그 이후 10년간 서울대학교 주도로 연천 전곡리 유적을 발굴하게 됨. 이 이후로 모비우스 학설도 완전 전복되게 됨. 사실 모비우스 학설이라는게 단순 아슐리안=유럽, 아프리카, 찍개=동아시아 이런 이론이 아니라 이것처럼 존나 인종차별적인 이론이었는데 (서양 우월... 동양 미개? 시벌롬들이..... 두 유 노 연천 전곡리...?) 더이상 서양 학자들은 "서양이 주먹도끼를 사용했으니까 역시 서양인이 인종적으로 더 우월했네~ㅋㅋ" 이따위 망언을 할 수 없게 된 거임.  왜? 동아시아에서 주먹도끼가 출토되었으니까 ㅡㅡ (그렉 보웬 상병이 주먹도끼 발견헀을 당시의 사진) 그 뒤 그렉 보웬 상병은 이상미씨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행복하게 사심. 그리고 200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 방문하시기도 했음. (왼쪽은 부인인 이상미씨, 오른쪽 그렉 보웬씨) (그렉 보웬님은 2009년에 지병으로 돌아가심 ㅠㅠ) 아무튼 연천 전곡리 유적이 발견이 되지 않았으면 아직도 사실이 아닌 인종차별적인 학설이 주류가 되었을 것이다 ㅡㅡ라는 이야기. 정말 중요한 유적임. 땡큐 그렉 보웬....앤 상미... 앤 유어 러브.... tmi2: 그렉 보웬님이 인생에서 두 가지 큰 행운이 있었다고 했는데, 첫번째가 한국에서 주먹도끼를 발견한 것... 두번째가 한국에서 부인인 이상미씨를 만나 결혼하게 된 것...... 출처 : 더쿠 글을 진짜 맛깔나게 잘 쓰시네요 핳핳 머릿속에 쏙쏙 고고학전공이었던 사람이 발견하고 또 적극적으로 알려서 다행이군요.. 본인도 얼마나 신기했을까..
16. 하루
5시 반쯤 이현이가 깬다. . 아빠아빠를 외치며 나를 두드려 깨운다. .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기저귀를 갈고 정신을 차린다. .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 계란후라이를 하고 밥을 데우고 아이들 가방을 챙긴다. . 어~ 하다보면 7시. . 첫째아이를 깨우고 아침식사를 하고, 양치를 시키고 옷을 갈아입힌다. . 아현이 머리를 정성스럽게 묶어준다. .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다. . 아이들을 어린이집 유치원에 보내고, 집에와서 밀린일을 한다. . 열시가되면 학원에 와서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한다. 배달앱을 켜놓고 중간중간 들어오는 배달도 한다. . 한시가되면 초등학생들이 등원을 한다. 지금부터는 수업에 집중을 한다. . 한아이 한아이 열심히 가르친다. 국어, 수학, 사회, 과학.. . 고등부 수업은 전부 정리를 했고 중등아이들 수업이 끝나면 7시. . 첫째 둘째 하원은 어머니께서 도와주신다. . 대충 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학부모상담을 한다. . 집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씻긴다. . 아이들이 자는 시간은 9시. 짧은 시간이지만. 자기전에 책도 읽어주고, 자장가도 불러주고,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사랑한다고 오늘도 아현이 이현이 덕분에 행복했다고 말해준다. . 아이들이 자면 살짝 나와서 빨래를 돌리고 청소도하고, 다음날 수업준비도 한다. . 열한시에서 열한시반이면 나도 잠자리에 든다. . 내일도 우리 아현이와 이현이가 행복 할 수 있길~♡
장애와 편견
우리나라 선조들은 장애를 질병 중의 하나로 여겨 단지 불편한 병이 있는 사람이라 여겨졌다고 합니다. ​ 그 때문에 조선 시대만 해도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덜 했다고 합니다. ​ 장애인과 그 부양자에게는 각종 부역과 잡역을 면제했고 장애인에 대한 범죄는 가중 처벌되었습니다. ​ 나라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점복사, 불경을 외워 읽어주는 독경사, 물건을 만드는 공방의 공인, 악기를 다루는 악공 등으로 장애를 가진 그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도 진행했습니다. ​ 그래서 비록 장애를 갖고 있지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뛰어난 공적을 이룬 사람들이 많습니다. ​ 실제로 오늘날의 장관이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높은 벼슬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 대표적으로 세종대왕의 정치사에서 황희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허조는 조선 건국 후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 큰 공을 세우며 세종의 큰 신임을 받았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체격이 왜소하고 어깨와 등이 구부러진 척추 장애인이었습니다. ​ 중종 때 우의정을 지낸 권균은 간질 장애를, 광해군 때 좌의정을 지낸 심희수는 지체 장애를, 그리고 영조 때 대제학, 형조판서에 오른 이덕수는 청각장애를 앓고 그들의 능력을 발휘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조선 시대 장애인에 관한 법령과 모습을 보면 지금 보다 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세종실록』에 전하는 박연의 상소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시각장애인 악사는 앞을 볼 수 없어도 소리를 살필 수 있기 때문에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 ​ # 오늘의 명언 장애는 불편하다. 하지만 불행한 것은 아니다. – 헬렌 켈러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장애#편견#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깨진 찻잔의 비밀
우즈베키스탄에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코칸트 지방에 난폭한 왕이 있었는데 그는 찻잔 하나를 유독 아꼈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왕은 잔치를 벌이던 중 찻잔을 떨어뜨려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크게 상심한 왕은 각 지역에 있는 도자기 공들을 불러 깨진 잔을 원래대로 만들어 놓으라면서 호통을 쳤습니다. ​ 왕의 명령에 당황한 도자기 공들은 100세가 넘은 장인 ‘우스만’을 찾아갔습니다. 우스만은 왕을 찾아가 일 년의 시간을 요청했고 그 뒤로 복원작업에 몰두했습니다. ​ 드디어 약속한 1년이 되는 날, 우스만은 손자 자파르와 함께 보자기를 들고 왕 앞에 나타났습니다. ​ 보자기 안에는 완벽하게 복원된 찻잔이 빛을 내고 있었고 왕은 너무도 흡족해했습니다. ​ 사람들은 찻잔을 어떻게 복원했는지 궁금해했고 우스만의 손자 자파르도 비술이 궁금해 작업실에 들어갔습니다. ​ 그런데 그곳엔 깨진 찻잔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사실 우스만은 일 년 동안 작업실에서 깨진 찻잔과 똑같은 찻잔을 만들기 위해서 시간을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 이를 보고 놀란 손자에게 우스만은 말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깨어진 조각을 붙이는 것보다 새로 시작하는 것이 더 이로울 때도 있단다.” 깨진 찻잔을 버리지 못한다면 때론 날카로운 조각에 상처가 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각을 완벽하게 이어 붙인다 해도 전처럼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 인생에서도 깨진 찻잔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미 내 손을 떠나간 것들에 대해서 미련을 갖기보다는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 때로는 다시 시작하는 것이 막힌 길을 열어주고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결실을 볼 수는 있다. – 카를 바르트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새로운시작#다시시작#시작#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짐은 서로 나누어지는 것
장편소설 ‘대지’로 193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펄 벅’ 여사가 1960년에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 그녀는 일행과 함께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경주 시골길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한 농부가 소달구지를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달구지에는 가벼운 짚단이 조금 실려 있었고, 농부는 자기 지게에 따로 짚단을 지고 있었습니다. ​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이상하게 볼 광경이었습니다. 힘들게 지게에 짐을 따로 지고 갈 게 아니라 달구지에 짐을 싣고 농부도 타고 가면 아주 편할 텐데… ​ 통역을 통해 그녀는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왜 소달구지에 짐을 싣지 않고 힘들게 갑니까?” ​ 그러자 농부가 대답했습니다. “에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저도 일을 했지만, 소도 하루 힘들게 일했으니 짐도 나누어서 지고 가야지요.” ​ 그녀는 농부의 말에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저 장면 하나로 한국에서 보고 싶은 걸 다 보았습니다. 농부가 소의 짐을 거들어주는 모습만으로도 한국의 위대함을 충분히 느꼈습니다.” ​ 당시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고국으로 돌아간 뒤 이 모습을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비록 말 못 하는 짐승이라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존귀하게 여겼던 농부처럼 우리는 본디 작은 배려를 잘하는 민족이었습니다. ​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요?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이기적인 사고로 꽉 차 있지는 않은가요? ​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고 함께 걷는 것. 말 못 하는 짐승이라도 존귀하게 여겼던 농부의 배려심을 닮아가는 것. ​ 배려심이 부족한 지금 우리에게 강한 울림을 줍니다. ​ ​ # 오늘의 명언 마음을 자극하는 단 하나의 사랑의 명약, 그것은 진심에서 나오는 배려이다. – 메난드로스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배려#배려심#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