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wk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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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맵 죽여버려를 외치며
여기가 거긴가 저긴가 두리번대다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서로 영어는 잘 안되니까 (나도 나지만 일본인 특유의 영어발음은 도통 못알아들겠다ㅠ)
목적지까지 데려다줌
아....그렇게까지 너무 친절하시다니..
미안하자나요ㅠㅠ
내가 인복이 남다르게 좋은가?
여행지마다 착한사람들 투성이자나~♡

내 입맛엔 너무 짠 음식이 많았지만 길거리 음식은 맛있었고 편의점 알러뷰였음.
옛것과 지금것의 어울림이 좋았고
아기자기 귀여운것들도 많아 눈이 즐거웠다.
이것저것 사고 싶은게 어찌나 많던지...ㅠㅠ
일본가면 길냥이 많을 줄 알았더니 그건 나만의 환상이었어 ㅋㅋ
일본은 봄에 가야 제맛(?)일듯 벚꽃 흐드러지게 피면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2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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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애들 영어발음이 좀 그렇긴하죠. 'i' 와 'L' ,'R' 발음을 길게 잇는 느낌에 짧게 하면 될걸 쭉 나열하는 느낌. 우리 발음도 그리 좋은건 아니라지만 서울 있을때 각국 유학생 친구들이 일본애들 영어발음에 못알아먹는게 참 많았슴. 그중에 잘하는 애들 드물게 한둘 있고 거의 영어발음이 나도 못알아먹던..ㅋㅋ
그러게나 말이에요. 왜 주르르륵 길게 나열하는지.. 제 발음도 거시기 하지만 r발음 하면 눈이 똥그래지더라구요.. 뭐야..ㅋㅋㅋ 왜 외국인이랑 영어로 말하다가 갑자기 귀여움폭발해~ 그래서 저두 구린 발음으로도 자신있게 말했던 기억이..ㅋ
받침 개념이 없으니까요 ㅎㅎ
반가운 구리코상^^
おさか
어우 깜짝이야.. 네이버에 찾아봤잖아요 ㅋㅋ
こょうと
교토다 ㅠㅠ 이뻤는데..
교토 정말 예쁨예쁨~♡
저도7월에갔다왔는데ㅎ 덥긴무쟈게덥죠.
가을에 댕겨왔는데 가을도 덥더라구요~ 계절마다 가보고 싶은 나라는 흔치 않는데 일본이 그래요!! 그래도 여름은 노노노~ㅋㅋㅋ
@dkwk444 저도다시가보고싶긴해요.아직못먹어본게많아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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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냉혹한 일본 채식주의의 역사 썰.txt
요즘 트위터 비건들 공통점이 있는데 공감능력 없냐고 하는 주제에 본인들이 공감능력이 개바닥났단 것이다 동물 고통이 안 느껴지냐면서 고기 처먹지 말라고 지랄질을 하는데 왜 고기를 안 처먹었을 때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못하는지 의문이다 근데 지금이야 비건들이 트위터에서 지들끼리만 저러니 다행이지만 비건들이 실제 권력을 잡아버리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냐 국가에서 고기를 통제한다고 생각해봐 나 같으면 차라리 딸딸이를 포기하지 고기는 포기 못한다 그리 먼 곳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다. 바로 옆 나라 일본에서 생긴 일이다. 일본놈들은 윗대가리 비건들이 맘대로 내린 명령 때문에 강제로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했다. 몇년 동안이나 그랬을까? 무려 1200년이다! 1675년도 아니고 675년의 일이다 당시 일본의 킹 오브 킹이었던 텐무텐노라는 비건이 있었다. 이 새끼는 그야말로 트위터 비건의 전형적인 예시였다. 내로남불이 개쩔었단 소리다. 텐무텐노는 즉위할 때부터 미친놈이었는데 딴 사람도 아니고 자기 조카 통수를 후려쳐서 덴노에 올라간 개새끼다. 불쌍한 조카는 어떻게 됐냐고? 억지로 할복시켜서 죽여버렸다. 뭐 여기까지야 개새끼긴 해도 옛날 정치인들이 다 하던 일이었으니 봐줄만한 일이긴하지만 그 다음이 가관이었다 흑흑 너무 슬퍼 조카는 니가 죽여놓고 이제와서 왜 우냐 처음부터 죽이질 말든가 아니 조카는 조까고ㅋㅋ;; 내가 슬픈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럼 니들 저기 소 보이지? 흑흑 음머 흑흑 저 소를 봐 눈물을 흘리고 있잖아 아마 농사일이 너무 힘들거나 바람막이가 너무 비싸서 그런가봐 근데 너희 농민 새끼들아 니들은 소의 눈물이 안 보여? 공감능력 없어? 어떻게 저렇게 힘들게 일하는 소를 잡아먹기까지 할 수 있어?? 그게 다 육식 때문 아닐까? 단백질을 너무 많이 섭취해서 공감능력이 휘발된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너희들도 동물의 감정을 존중하는 비건이 되면 어떨까? 니 새끼는 공감능력을 우리한테는 왜 발휘를 안 하는데 그 힘든 농삿일을 고기도 안 처먹고 어떻게 하냐 미친 새끼야 고기 처먹으면 니들도 고기로 만들어버릴 거야ㅠㅠㅠㅠㅠㅠㅠㅠ 정말 미친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조카한테 사시미 쑤셔넣은 놈이 살생은 나쁘다고 고기를 처먹지 말라니 근데 문제는 이 비건이 일본 역사상 최고의 권력을 가진 비건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내로남불 비건 새끼가 친 지랄질은 일본에 1000년이 넘는 육식금지시대를 만들어내고 만다. 소, 닭, 돼지, 개, 원숭이, 말을 먹는 놈은 그날로 인생 종치는 거다. 이게 육식금지령도 아니고 살생금지령이라서 사냥도 마음대로 못했다. 뒤에 3개는 그렇다치고 소랑 닭이랑 돼지를 못 먹는다니 개같은 것도 정도가 있다. 처먹으면 어떻게 되냐고? 굶어죽으라고 바위밖에 없는 섬으로 귀양을 보낸다. 사실 말은 군사용도니까 못 처먹고 소는 농사지어야하니까 못 처먹으니 이 두 개 정도면 옛날 이라는 거 감안하면 설득력이 있는데 돼지랑 닭을 못 처먹는건 그냥 개같은 비건 심보다. 돼지랑 닭은 까마득한 고대시대부터 인간들한테 풍부한 영양분을 제공해주는 필수가축이었는데 이걸 억지로 단절해버린 거다. 당연히 영양상태가 바닥날 수 밖에 없지 당시 일본이 왜 왜소할 왜자 써서 왜놈이라고 불렸겠음? 영양보급이 박살나서 키가 크고 싶어도 못 컸던 거다. 어딜가나 윗대가리가 지랄하면 아랫놈들만 고생을 한다. 이리하여 세계역사에서도 기형적인 일본의 식사문화가 시작되는데, 고기를 못 처먹으니 도축문화가 실전되어버려서 막상 동물이 죽어있어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모를 지경이 되고 말았다 혹시 예전에 유행하던 엘프들 나오는 이세계 요리만화 기억하냐 그게 진짜로 일어나버린 거다 일본은 세상에서 가장 개같은 밥만 처먹는 이세계인들의 세계가 되고 만 것이다 ([맛없는 밥 엘프와 유목생활]이라는 만화. 주인공이 미개한 식문화를 가진 엘프들에게 음식을 전파해준다는 내용인데 유목민이 치즈도 못 만드는 등 인류학적으로도 너무 말이 안되는 전개 탓에 작가의 무식이 매번 비판받는 작품.) 이 이세계물을 처음으로 체험한건 다름 아닌 조선 사람들이었다 국사 정도는 들었을 테니 일본에 정기적으로 놀러가던 조선의 통신사란걸 기억할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조선은 아시아, 아니 세계를 통틀어서도 유난히 밥을 많이 먹는 파오후들의 나라였다. 당연히 고기도 자주 먹지는 못했지만 개 좋아했다. 이런 사람들이 강제비건화된 일본에 놀러갔으니 그야말로 이세계물을 찍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아아 이것은 [배고프다]라는 것이다. 밥을 내놓으란 뜻이지 오옷! 근데 배고픈게 뭔진 나도 알아 ㅄ아 맨날 그렇거든 아무튼 처먹으샘 뭐임 이건? ㅅㅂ 니들 우리 싫어하냐? 이게 뭔 밥이야 살무사 양식장이지 밑에서 뱀 나오겠다 개새끼들아 고기 없어? 먼 곳에서 온 사람들한테 이따구로 개같이 굴기임? [고기]...? [고기]란 것이 너희 세계에 있는 건가? 그렇다 지금부터 이세계 전개가 시작되기 시작한다 하아니 진짜 미친놈들인가 저기 닭도 있잖아 니들 닭 안 먹음? 안 먹을 건데 치킨 왜 키움? 닭...? 아아 저건 [시계]라는 거다 아침 시간을 알려주는 거지 너희들의 세계에선 [시계]를 먹는 건가...? 그렇다. 일본에게 닭은 먹는 용도가 아니라 자명종이었다! 하 ㅅㅂ 닭은 됐고 그럼 저기 있는 소나 한 마리 잡아서 구워와 님 어디 아픔? ? 아픈건 니들 미각 아님? 아니 소는 아플 때 먹는 거잖아 아프니까 약 찾는 거 아니냐고 아니 소를 왜 아플 때 처먹어 니들 농사 짓다 뒤진 소 안 먹었어? 스테이크 모름? [스테이크]...? 우린 소 뒤지면 그냥 태우는데 아 기름 많이 나와서 촛불 켤 때 개꿀임 ㅋㅋㅋ 이거 진짜 아픈 놈들이네 심지어 소가 그냥 죽어도 아무도 안 먹었다. 애초에 먹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소가 뒤지면 일본 사람들은 배고파서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한점 떼어먹을 생각은 못하고 그대로 태워서 기름만 가져다가 썼다. 고기 타고 남아있는 뼈도 고아먹긴 커녕 땅바닥에 그대로 묻어버렸다. 소를 아예 전혀 안 처먹은건 아니고 약재로 쓰긴 했는데, 이게 말 그대로 약이라서 맛 같은 거엔 1도 신경을 안 썼다. 그냥 고기 가루내서 뭉친 미트볼을 약이랍시고 팔았던 거다. 이 약을 얻는 과정도 가관인데 고기를 안 처먹으니 소를 어떻게 죽여야 할 지도 몰라서 도축기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약이 필요하면 소를 낭떠러지에 세워놓고 떨어뜨려 죽인 다음에 살점을 주먹만큼만 때어가는 식으로 비효율의 극치였다. 그만하자. 돼지는 있지? 삼겹살 정도로 타협하자 우리 돼지 안 키우는데 니들은 대체 왜 사냐? 소도 안 처먹고 닭은 시계로 쓰는데 돼지는 기르겠냐. 당연히 돼지고기 같은 것도 꿈도 못꿨다. 아 근데 돼지 먹을 방법은 있음 오 뭔데 멧돼지 산 채로 잡아옴 우리 어떻게 죽이는지 모르니 죽이는건 니들이 알아서 하샘 아니 미친놈아 어어억 하도 고기 내놓으라고 땡깡을 부리니 일본은 통신사들한테 멧돼지를 생포해서 가져다준다. 솔직히 이건 엿먹어보라는 의도도 좀 있는 거 같다. 아무튼 조선 통신사들은 이런 기괴한 식습관이 하도 기억에 남았는지 이 새끼들 처먹는거 존나 이상하다고 기록을 존나 남겼다.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이세계 기행이었던 것이다 물론 일본 사람들도 뇌가 있고 혀가 있는데 천년 동안이나 강제 비건질을 철저하게 지킨 것은 아니었다 고기를 원하는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시절부터 내려온 인류의 본능인데 그걸 어떻게 뿌리뽑냐 일본 서민들은 어떻게든 비건 파시스트들의 눈을 피해 고기를 처먹기 위해 온갖 꼼수를 다 부렸다. 그중 대표적인게 위에도 나온 멧돼지다. 집에서 대놓고 돼지를 기를 수는 없으니 산에 올라가서 몬스터 헌팅을 해서 멧돼지를 얻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멧돼지를 '산고래'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바다고기는 금지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흙수저 새끼들이 고기 처먹고 ㅈㄹ이냐 뒤질래? 아니 이거 고래고긴데 이게 뭔 고래고기야 누구 눈깔을 ㅄ으로 암? 님 고기 종류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알음? 님 혹시? 일본 흙수저들이 이렇게 몰래몰래 고기를 먹는걸 '야쿠세키야'라 불렀다. 해석하면 약식이란 뜻이다. 즉 병 걸려서 약 처먹는다고 핑계대곤 마약거래하는 것마냥 어두운 곳에 숨어서 고기를 먹었던 것이다. 야쿠세키야를 하는 가게에는 주로 고래그림을 그려넣었는데,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단속 나왔을 때 걸리면 고래라고 구라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이렇게 야쿠세키야에서 밀매한 고기들은 소, 돼지 같은 맛좋은 정석 고기가 아니라 여우, 늑대, 곰 등의 육식동물이나 산양이나 물소 같은 생소한 동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요리법도 모르니 닥치고 굽거나 삶아버리는게 전부였는데 그걸 또 맛있다고 숨어서 먹어대니 참 불쌍하고 안타깝다. 이련 연유로 생선요리는 엄청 발전한 주제에 일본 고기 요리는 개박살이다. 뭐 천년만년 비건으로 살 순 없다. 텐무텐노가 비건 지랄을 친지 1200년이 지난 후 일본에서도 더 이상 비건질 못해먹겠다는 아우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사쓰마' 같은 밀매랑 깡패짓으로 유명한 동네에선 공공연하게 돼지고기를 처먹기도 했고 그러던 와중에 사건이 하나 제대로 터진다 배틀크루저 오뻐레이셔널 1800년대 초기까지 일본은 흥선대원군 시절 조선마냥 쇄국정치를 하면서 여전히 풀만 뜯어처먹는 중이었다 그런데 서양인들이 배틀크루저를 끌고 일본에 처들어와서 대포를 쏴갈기면서 개항하라고 지랄을 한 것이다 난생 처음보는 시꺼먼 배틀크루저에서 존나 큰 대포를 빵빵 쏴갈기면서 야마토포의 위용을 보여주자 일본 친구들은 개쫄아버린 나머지 바닥을 뒹굴면서 항복항복을 외쳤다. 이게 그 유명한 '흑선사건'이다. 배틀크루저의 위용을 보고 우린 진짜 아무것도 아닌 개ㅈ밥이었구나 이러면서 테크차이를 실감하게 된 일본은 적극적으로 서양인을 모방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메이지 유신이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은 그동안 개같이 굴었던 비건 파쇼들까지 개박살낸다. 가장 먼저 비건 파쇼들의 싸대기를 후려치고 삼겹살을 굽기 시작한 건 다름아닌 메이지 덴노였다 왜 우린 양키들한테 발렸을까 헤어스타일이 ㅄ같아서? 스크롤 늘리는덴 도움이 됨 아니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겠냐 양키들 앞에만 가면 우리 키가 땅딸만한게 실감되서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거야 우린 왤케 키가 작냐 진짜 진짜 이유 모름? 진짜? 알았어 ㅅㅂ 이제부터 고기 처먹자 1872년 1200년을 이어왔던 육식금지령이 드디어 취소된다. 일본이 고기를 제대로 먹기 시작한게 150년도 안 됐단 거지. 근데 1000년이 넘도록 채식주의자들한테 조교당하다보니 처음에 일본 사람들은 고기를 억지로 먹이는거에 존나 거부감을 느꼈다. 심지어 밀교에 심취한 비건들이 고기 먹지 말라며 황궁에 처들어가는 황당한 일까지 생겼다. 비건파쇼들이 지랄을 하건 말건 일본 윗대가리들은 이전까지와 180도 태세를 바꿔서 국민들한테 고기를 먹이려 안달을 내기 시작했다. 오죽 열성이었으면 그 당시 쇼군 별명이 '돈이치상', 즉 돼지씨였다.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이 만나는 사람마다 돼지고기를 츄라이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효과는 그다지 좋질 않았다 아니 먹으라고 하니까 또 지랄이네 도대체 왜들 그럼 먹는 방법도 모르고 익숙하지도 않은거 어떡함;; 아니 그동안 고기 몰래 존나 처먹은거 나도 다 안다 것도 돈 있는 새끼들이나 그랬거든 익숙하지않고 나발이고 일단 그놈의 돈이 문제였다. 애들 덩치 키운다고 육식을 장려하면 뭐하냐 서민들은 돈이 없는데...고기는 예나 지금이나 비싼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기 안 먹던 놈들한테 익숙함을 주거나 적은 고기로 양 많은 음식들이 발명되게 되는데 고기의 비린내를 일본에 익숙한 된장으로 가리고 값도 싼 '규나베'나(당시 서양 스테이크의 5분의 1 정도의 가격) 우리 지갑처럼 얇아터진 고기에 튀김을 두껍게 둘러 양을 늘린 '돈까스'가 탄생하게 된다 행-복 뭐 그렇게 비건 파쇼들의 천년이 넘게 이어진 지랄은 끝나게 된다. [출처-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 진짜 역대급 분량에 역대급 욕설... 필터링을 거치긴했으나 여전히 욕이 많읍디다...
일본에 남아있는 양심
남자들은 학창시절 대부분 한번쯤은 본 영화 배틀로얄에 나오는 '카와다 쇼고' 본명 : 야마모토 타로 작중 으리남에 상남자기믹을 가지고 있으며 마지막에 죽어갈때 슬픔을 자아낸 캐릭터 이 사람은 이 배틀로얄 말고도 한국영화 ' 마이웨이' 에서도 등장 여기서는 악질적인 일본군의 이미지로 연기하였다 그는 현재 연예계를 떠나 정치인이 돼었다  그리고  자민당 입장에선 답정너를 해야하는데 자꾸 팩트로 뚜들기니까 브레이크 거는거에 개빡친 타로의원 국회에서 이렇게 자민당의 막장행보에 극대노를 하며 항의 하고있다. 그리고 아베 앞에 걸어가 염주를 들고 묵념까지 했다 (사실상 너네(자민당)의 미래는 정해져있다 인정하라는 의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단 최면에 걸린거마냥 방사능에 대해 너무 무지해서 이렇게 전국을 돌면서 방사능의 심각성과 일본 아베정부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올바른 소리를 했다고. 탈원전 발언을 했다고, 자민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연예계에서 강제 퇴출당했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에 전혀 부끄럽지 않다며 누군가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은 나이들어서도 좋은 인생을 살고싶고 좋은 배우로써 살고싶은데 방사능이, 일본의 거짓된 역사인식과 현 정권이 자신의 꿈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이런 심한말까지 듣는게 일상이다.. 살해협박까지 받고있다.. 진실을 말해도 먹혀들지 않자 레이와 신센구미라는 정당을 아예 만들어버렸다. 오늘날 그대들(국민)이 이렇게 힘든건 그동안 정치에 너무 무관심했던 너희와 나의 잘못이며 이제부터라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일본의 미래를 정상적으로 돌려내자고 연설한다. 그리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별빛 밤 아래 위스키, 몽골#2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한시간정도 달려서 테를지 국립공원에 들어섰다. 국립공원이라고는 하지만 국립공원 내 풍경과 오면서 본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초원 한가운데 저 멀리서 보이는 징기스칸 동상하나가 주변 풍경과는 다른 모습으로 반겨주고 있다 징기스칸 동상 주위로는 여전히 광활한 초원이 펼쳐져 있어 동상이 더 웅장해 보이긴 하다 이런 주변 풍경 가운데 서 있다. 내부에는 징기스칸 박물관처럼 그당시 몽골 생활 모습과 유목 가옥인 게르도 전시되어 있었다. 징기스칸 동상의 말부분에도 올라가서 전망을 구경할 수 있다. 올라가면 바람이 강하게 분다.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막힘없이 달려와 징기스칸 동상을 감싸돌고 있다. 간단한 구경과 함께 나오면 한화5천원에 독수리를 팔에 올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코스도 있다. 팔에 보호대를 차고 독수리를 올려놓으면 끝이 아니라 날개를 펄럭일 수 있도록 팔을 높이 흔들어야 한다. 하지만 바로 내 오른손 위 눈앞에서 보이는독수리의 부리의 반짝임에 자꾸만 팔의 움직임이 작아진다 독수리를 뒤로 하고(?) 둘째날 숙소를 향해 오프로드를 다시 달리고 달렸다. 초원 중간중간 게르들이 있는 것을 보며 문득 궁금해 땅 소유에 대해 물어보니, 원하는 땅에 게르와 울타리를 치고 일정기간 지내면 그 땅의 소유가 된다고 한다. 물론 수도인 울란바토르는 우리나라 서울과 마찬가지로 땅값과 집값을 비싸게 내야한다고 했다. 다시 한시간 가까이 달렸을까. 정면에 보이는 커다란 바위하나가 산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묘한 모양을 닮은듯 하여 봤더니 이름 또한 거북이를 닮아 거북바위라 불리고 있었다. 늦겨울에 울란바토르보다 조금 더 북쪽으로 오니 벌써 눈꽃들이 피어나있다. 거북바위 근처에 바로 숙소가 있었다. 첫날과 마지막날을 제외하고는 전부 게르에서 여정을 쉴 예정이라 기대가 됬다. 나름 여행자를 위한 게르라 화장실도 별도로 있다. 외부에.. 푸세식.. 더욱더 신기했던건 여행기간 내내 화장실이 있던 곳에는 남녀 구분도 없을 뿐더러 화장실 문이 없다;;;; 심지어 문이 있어도 안에서 닫을 수 있는 손잡이가 없어서 집중시간 내내 문이 열린다.. 참으로 자연에 활짝 열린 개방적인 집중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숙소 근처에는 사원이 하나 있어서 가이드의 안내로 산책겸 구경갔다 사원에 올라 바라보는 모습이 장관이다. 북쪽에는 이런 산악지대가 많아서 초원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시 게르에 내려와 준비하는 저녁 메뉴는 삼겹살, 양고기등 몽골음식에 적응하기 힘들까봐 가이드분이 특별히 준비해주셨다. 게르안에는 나무때는 난로 하나와 침대가 끝이다. 이땐 몰랐지만 조명불이 들어오고 콘센트가 있으면 A급이다. 전가, 조명이 없어 랜턴으로 생활한 게르가 대부분이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어둠이 내려앉기를 수다를 떨며 기다렸다. 유심을 사도 터지지 않는 인터넷에 스마트폰은 카메라와 mp3로 전락한지 오래됬다. 별도로 저장한 노래는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7일간 무한 반복되어 팝송 가사도 다 받아적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장실이 있으나 수도가 없어 씻는건 무조건 도시 마트에서 사온 생수로 해결해야한다. 생수로 아껴가며 씻고 나오는데 추운날씨 때문에 얼굴에 하얀 김들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드디어 몽골 밤하늘과의 첫대면!! 굳이 카메라없이 눈으로 다 담아내기에도 부족할정도로 빼곡하게 별들이 박혀있다. 출시된지 10년도 더 된 카메라에도 별들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나온다 이 화려한 은하수 아래 한병 귀하게 사온 이름 모를 위스키 한잔을 마시며 추위를 몰아냈다. 하염없이 별을 보고 싶은 마음과 추위와의 인내심 대결에 위스키 한 잔은 바닥에 주저 앉아 몇 분이라도 더 하늘을 바라보게 만들어 주었다.
3장. 오하요 일본 -22
어제는 잘 쉬셨나요! ㅎㅎ 오랜만에 일찍 퇴근하고 집에가니 어색하네요. 그럼 오늘부터 교토여행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게요! ㅎㅎ 오늘은 교토의 도심에서 갈수있는 곳 위주로 가기로했다. 그래서 과감히 걸어다니기로 결정! 제일 먼저 간 곳은 은각사이다. 은각사에서부터 시작해서 걸어서 철학의 길을 통해 법연원, 난젠지, 청수사를 간 뒤 청수사에서 버스를 타고 토후쿠지를 갔다가 다시 헤이안신궁으로 돌아와 기온거리에서 어제 예약해둔 장어를 먹는 일정이다. 오늘 아침식사는 어제 사온 빵과 계란, 과일로 때우기로 한다. 물가가 비쌀까봐 걱정했는데 식재료는 그렇게 비싸지도 않다. 오늘 많이 걸어야하니 든든하게 먹고 길을나선다. 은각사는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다. 다행히 날씨도 맑다. 오히려 햇볕이 너무 강해 걱정이다. 은각사로 가는 길에 녹차모찌와 과자를 팔고있다. 놓칠수없지. 하나를 사서 나눠먹기로 한다. 말차향이 강한게 모찌가 참 맛있다. 과자도 고소하고 그렇게 달지도않은게 딱 내 취향이다. 이제 은각사로 들어가보자. 티켓을 사고 들어가니 대나무 울타리가 쳐져있는 정원이 나타난다. 조금 더 들어가보니 전형적인 일본의 정원이 나타난다. 정돈되고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특히 눈에 띈다. 혹자가 말하길 일본과 한국의 건축물과 정원의 가장 큰 차이점중 하나는 한국은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고 일본은 자연을 정복하고 통제하고 싶어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그래서 일본의 정원에는 작은 자연이 있고 한국의 정원은 주변환경과 함께봐야한다했던가. 이곳에서도 그러한 특징이 느껴진다. 마침 간 날에 정원을 한참 꾸미고있다. 일본 정원 특유의 추상화되고 축소된 정원의 모습이다. 교토여행을 하면서 자주 본 풍경중하나가 이런 모래로 만들어진 정원이다. 무언가 함축적이고 추상적인 느낌이 강하다. 은각사는 작은 연못옆에 서있다. 주변의 정원과 참 잘어울리는 사찰이다. 금각사의 화려한과는 다르게 소박함마저 느껴진다. 은각사를 돌아다녔더니 너무 덥다. 은각사를 나와 조금 걸어가자 빙수집이 보인다. 우린 들어가서 녹차빙수 하나를 시킨다. 말차의 향이 강한게 참 맛있다. 빙수를 먹고 힘을 찾은 우리는 본격적으로 철학의 길을 걷기로 한다. 철학의 길은 작은 수로 옆으로 난 산책길인데 봄의 벚꽃이 그렇게 예쁘다고 한다. 조용한 길을 걷고있으니 절로 사색을 하게된다. 조금 걸어가다보면 법연원(호넨인)이 나온다. 사실 이곳은 목적을 하고온곳은 아니고 걸어가다보니 예쁜 절이있길래 들어온 곳이다. 나무그늘이 울창한 길을 통해 들어가다보면 작은 절이 나온다. 옛 일본 건축물에 우리를 반긴다. 수수한 절이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평온함마저 느껴지는 이 공간은 철학의 길에 참 잘어울리는 절인것 같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편안해지는 신기한 곳이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고양이들이 자주 보인다. 본체만체 갈길을 가는 모습이 무심하다. 우리의 두번째 목표인 난젠지에 도착했다. 거대한 사찰로 입구인 산몬과 수로각이 유명하다. 산몬은 2층의 거대한 문으로 위에 올라가면 도심을 조망할수있다. 문을 건물로만들다니 신기한 곳이다. 난젠지 내부에는 난젠인이라는 정원도 있어 구경해보면 좋다. 아직도 물이 흘러가고있는 수도각이다. 위로 올라갈수있는데 맑은 물이 흘러내려간다. 난젠지에서 나와 기요미즈데라로 이동하려고 하는데 걸어가자니 너무 멀고 피곤하다. 그래서 버스를 타러간다. 우리랑 루트가 비슷한 사람이 꽤 있는가보다. 버스정거장에서 같이 이동하는 사람이 많다. 버스에 내려 기요미즈데라로 올라가는길(산넨자카)에는 많은 상점들이 우릴 반긴다. 먼저 호빵? 만두? 비슷하게 생긴 간식을 먹는다. 맛있다! 특히 고기가 들어간게 내 취향이다. 산넨자카에는 46개 돌계단이 있는데 여기서 넘어지면 3년 이내로 죽는다나 뭐라나. 그래서 주변에 액땜을 위해 호리병박을 파는 가게가있단다. 청수사를 올라가다보면 제일 먼저 절 2개를 만나게 된다. 고다이지라고 한다. 조금 더 올라가다보면 청수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청수사 옆의 작은 신사인 지슈진자가 있다. 이곳은 사랑을 이루어준다고 한다.(!) 위 사진과같은 돌 2개가 있는데 그 두개사이를 눈감소 건너가면 이루어진단다. 나도 신사에 왔으니 미쿠지(운세뽑기) 하나를 해본다. 대길! 올해는 좋은일만 있을것같다. 청수사를 내려가면 오타와 폭포가 있는데 건강, 학업, 연애에 효과가있다고 하며 셋 다 마시면 불행해진다니 한두개만 마시자. 난 건강과 연애를 마신것같다.(학업따위 과감히 포기한 학생) 다시 산넨자카를 내려와 도후쿠지로 이동한다. 넓은 절 내부는 예쁜 정원과함께 시원한 숲의 바람이 인상적이었다. 다시 교토 시내. 헤이안 신궁을 왔다. 전에 왔을때는 정원이 별로란 말이있어 안갔었는데 올해는 가보고 싶어도 문을 닫았다... 너무 늦게온듯하다. 입구에는 사케통이있다. 사케땡기네... 어제 예약해둔 카네쇼에 왔다. 100년 정통의 장어덮밥집이라고 하는데 냄새가 기가막힌다. 안에 들어가면 요리하는 모습을 직접 볼수있다. 정갈한 요리가 나온다. 하지만 맛은... 난 그냥 그랬다. 기온을 돌아다니며 당고가게를 찾았다! 일본까지왔으니 당고하나 먹어야지. 아까 장어의 양이 좀 적었나보다. 우리는 KFC가 보이길래 세트하나와 맥주를 사서 돌아왔다. (근데 KFC양이 왜이래... 살인지 피부인지... 맛도 별로고... 다음부터는 안먹는걸로) 이런저런 이야기를하다보니 벌써 밤이 깊었다. 내일을 위해 잠들기로 한다.
별빛 밤 아래 위스키, 몽골 #4
아직 어둠이 채 가시기전에 침낭속에서 눈을 떴다. 싸늘하게 식은 난로에 추워서가 아니라 아침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게다가 생수로 씻어야되서 바빠지기전에 가볍게 세수라도 해야했다.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 바로 아래 직사각형 모양이 화장실이다. 저곳이 이 게르 숙소의 핫 플레이스다. 아침에 화장실에 일을 해결하고 있으면 지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정면에서 볼 수 있다. 문이 없는 화장실 특성상 일출의 햇살을 실시간으로 반겨줄 수 있다. 게르 주변에 낡은 차량 한 대가 타이어 하나를 마냥 기다리며 멈춰서 있었다. 그 옆에 병원 침대처럼 보이는것도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니 조만간 차량이 치료 받고 다시 움직이지 않을까 싶다. 참 간단하게도 광활한 초원과 구름 몇 점 떠있는 깊고 푸른 하늘만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곳이지만 카메라를 대는 곳곳 마다 미소짓게 만드는 사진이 나온다. 카메라가 무엇이든간에 상관이 없다. 성능이 낮거나 오래되어 낡은 카메라, 스마트폰도 풍경 한순간 한순간을 나름의 매력으로 담아낸다. 비포장길을 하루 6시간이상 달리다 보니 다리 떠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버릇이 사라질 것 같다. 다리 뿐만이 아니라 온몸이 쉴새없이 떨리고 떨린다. 바얀작에 도착해서 구경하는데 차강소브라가와 비슷한 모습에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너무 초원이 많다 보니 바람의 섬세함으로 조각된 이런 언덕과 계곡들이 관광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볼일 없고 웅장한것도 아닌 하나같이 멋있고 웅장하게 서 있는 모습들이 새삼 진부하게도 자연의 위대함을 깨닫게 해준다. 가이드 해주신 분이 하나하나 포토존을 알려주고 시크하게 앞장서서 지나갔다. 우리야 신기하고 속까지 개운해지는 모습이지만 자주 본다면 우리나라 올레길, 둘레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산책길이 아닐까 싶다. 왜 자꾸 높은 곳에 올라서서 멀리멀리 바라보게 되는지 알 것 같다. 고개를 숙여 바로 아래의 땅부터 서서히 고개를 들어 끝없는 지평선과 맞닿아 있는 하늘까지 한 편의 파노라마 사진처럼 눈에 담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너머를 1cm라도 더 보고 싶지만 굳이 애써서 강제로 보고 싶은 생각은 없는 스스로의 관용의 마음이 생긴다. 신기한게 관광지라고 입구도, 관리인도 없어 단지 여행가다 잠시 쉴려고 근처 언덕에 들른듯한 느낌이었다. 다 왔다~ 하는 소리가 관광지에 들어가는 입구를 만들어주었다. 여행하는 사람마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다르고 사진 찍는 스타일이 다르니 총 5가지 방법으로 몽골여행 사진을 즐기고 있다. 넓은 지평선 만큼이나 파노라마의 시원한 사진도, 360카메라를 사용한 기묘한 사진도, 직접 눈으로 봤었던 장면들을 아른거리며 떠오르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쩌다 아스팔트 위를 달리게 되면 새상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몸의 모든 긴장이 풀어지며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길을 가다 휴게소 같은 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밖에 있는 주유소가 그렇게 생뚱맞게 보일수없었다. 진짜 이 주변 모습에서 가장 생뚱맞을게 스마트폰으로 사진찍는 우리 모습일지도 모르겠지만 멀뚱히 있는 주유소가 어쩌다 지나갈 차량의 소중한 쉼터와 보충의 공간이 되어 주고 있었다. 양고기로된 덮밥과 고기 튀김,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수테차로 간단히 요기를 끊내고 다시 푸르공에 짐처럼 몸을 싣고 움직였다. 길 가다 보면 이런 낙타와 말, 소들이 초원을 활보하며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다시 시골의 구멍가게 같은 정겹게 생긴곳에 들러 물과 술을 보충하고 푸르공에 기름도 보충했다. 게르에 도착 했을 땐 해가 어느새 뉘엿뉘엿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이날의 밤 하늘 별사진 주인공은 360카메라 였다. 같이 여행간 친구가 가져온 360카메라로 보는 별 사진은 화려하게 빛나는 별과 함께 화려한 시선으로 보게 해주는 마성을 지녔다. 역시나 보정은 못해 기계에만 의지하는 곰발곰손이다. 신기하게도 사진을 찍어보니 스마트폰의 화면 색이 다 다르다. 25초로 길게 설정해놓은 카메라 세팅값에 각자 화면이 꺼지지 않도록 부지런히 터치 하느라 엄지 손가락이 바빴다. 두번 째 사진은 360카메라로 찍었다. 달이 완전히 지지않아 지평선 끝에 달도 함께 사진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빼먹을 수 없는 위스키, 보드카 한잔... 공기가 좋아서인지 매일밤 마셔도 숙취가 없어서 참 다행이다
오사카 여행지는 남들과 다른 코스로~
안녕하세요~ 잇님들!! 오늘 낮 기온이 아주 따뜻하여 놀라신 분들 많을 텐데요! 저녁에는 기온이 다시 뚝 떨어지니.. 집 들어가실 때 동안 긴장 풀지 마시고!! 그래도 따뜻하게 입고 다니셔야 해요~ 저는 엊그제 집에서 샤워를 끝내고 나와 환기시킨다고 창문 다 열어놓고 반팔에 반바지만 입고 1시간을 있었는데요.. 그러다가... 급변한 추위에 몸이 적응을 못했는지 신체기능이 다 떨어지면서 소화도 안되고.. 설사만 하고.. 지금도 고생하고 있습니다 ㅠㅠ 그럼에도 우리 잇님들을 위해~ 오늘은 저의오사카 여행지를 얘기하려고 해요!! 이번 해 8월 초에 가~~~장 더운 날 일본을 가게 되어.. 걱정이었지만 즐거운 맘으로 인천공항으로 가서 멋있는 척!!^^ ( 저의 여자친구가 저의 포토그래퍼죠^^;;) 저는 일본은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거라 조금 설레는 마음도 있었고 비행시간이 엄청 짧아서 지치지 않고  오사카 여행을 시작할 수 있어 좋았던 것 같아요! 오사카 여행지로 가장 필수인 곳이 있죠! 바로 도톤보리~ 일본 여행은 한국인들이 워낙 많이 가니 SNS에서 도톤보리는 질리도록 보았지만 직접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기대가 되었었어요! 일본에 도착하여 공항을 나섰을 때 생각보다 습도가 높지는 않고 덥지 않아 한국보다 뭐.. 날씨는 덥지 않네~하며 긴장을 풀었었죠! 기차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오사카 여행지인 도톤보리 주변 호텔에 도착! 바로 짐을 정리하고 땀을 조금 흘렸기에~바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도톤보리로 향했어요~ 여기는 강이 있어서인지... 와..습도가 장난 아니어서 저녁인데도 땀이 주르륵 흐르더라구요.. 이때부터 저를 놓고 그냥 즐기기로 했었어요 ^^;; 더위를  많이 타고 땀 흘리는 걸 싫어하지만... 여행이니깐요^^ 그래도 오사카 여행지인 도톤보리의 아름다운 저녁의 전경을 보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힐링이 되더라구요~ 강 바로 옆에 있는 카페테라스에 앉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며 갈증해소를 했을 때의 그날이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마치 연등축제를 하는 것처럼 강을 따라 연등들이 촤~~~악 걸려있고 딱~SNS를 위한 사진을 찍어 올리기 좋은 스팟이더라구요!! ( 다 여기서 사진을 찍는 이유가 있었군요^^) 도톤보리에는 맛집도 많아 맛집을 잘 찾고 일본을 몇 번 와본 여자친구가 다 안내를 해주어 맛있게 많이 먹고 살도 좀 더 찌었네요 ㅎㅎㅎㅎ 하지만~~!! 대부분의 분들은 맛집과 볼거리를 관심을 두고 오사카 여행지를 찾고 오시겠지만!! 저는 라스토리아의 바이어이지 않습니까?!!^^ 저희 회사를 전세계를 알리기 위해선 저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해외 맨즈웨어 편집샵, 테일러샵 등을 돌며 바잉을 위한 제품들을 찾는것과 해외에 있는 맨즈웨어 관련자들과의 소통 이기에 일본 맨즈웨어 샵들을 방문하는게 목적이었죠~ 그래서 일본 오사카에서 유명한 백화점들을 다 둘러보고 그 중 우메다한큐백화점에 방문하여 이탈리아에서 만났던 일본 친구들을 만나러 갔었어요! 제가 선택한 오사카 여행지중 가장 중요한 곳! 바로!!!! 'CentoTrenta' 라는 맨즈웨어 셀렉샵에 방문하였어요~ CentoTrenta팀은 이미 피렌체에서 개최되는 피티워모에서 동양인으로 잘 알려진 팀들중 한 팀 입니다! 일본에서는 본점과 백화점에 들어가있는 지점을 합치면 4개의 Centotrenta 매장이 있구요~ 오사카에 본 매장과 1호점이 있고 도쿄에 나머지 두개의 지점이 있는 맨즈웨어 셀렉샵 입니다! 제품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바잉한 제품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Centotrenta에서 자체 제작한 기성제품들도 있고 본점에서는 맞춤정장도 진행하고 있는 곳이라 이런것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방문하시면 볼거리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봐서 즐거운것도 잠시 어떤 제품들이 들어와있는지 궁금하여 바잉한 제품들 목록표도 잠시 봤었는데... 저희 나라에 없는 제품들도 많았고 제가 모르는 브랜드들도 있어 뭔가 신선했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리고 다음날에는 바로 본점으로 가서 CentoTrenta 수장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며 유익한 시간을 보냈었어요~ 여자친구한테 미안했지만.. 여자친구도 제가 하는 일은 적극적으로 도와주려하고 이해도 해주기에.... 그래서 휴가때 겸사겸사 오사카 여행지인 이곳에 놀러와 친구들도 만나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할 수 있었던거죠~ 다음 여행은 완전한 여자친구만을 위한 여행으로 갈거에요^^ ( 엄청...더웠는데..제 사진찍어 남겨준다고 고생하셨거든요..ㅠㅠ) 저는 해외를 돌며 맨즈웨어 샵들을 방문할때 항상 필기할 종이와 펜을 들고 다니며 그때 그때 알게된 새로운 브랜드들과 그 브랜드들의 특징을 적곤 합니다! 그래서 지금 위의 사진의 손에도 종이가 있는거죠^^ 이번 오사카 여행지인 CentoTrenta도 예외는 아니죠~ 일본을 옛날 역사적인 사건에서 보면 증오하고 때려 죽여도 모자랄 나라이지만.. 이런 패션에 관련된건 아시아에서 가장 선진화된 곳이기에.. 더군다나 수트쪽에는 훨씬 더 발전한 곳이고 저희들도 일본에게 배웠기에.. 무시할 수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직접 가서 보니 들었어요! 솔직히 저의 개인적인 생각에서 말씀드리면..^^ CentoTrenta의 수장은 그렇게..멋있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ㅎㅎㅎㅎㅎ 수트의 원단과 장착하는 아이템들이 다 고가의 제품이고 좋은 브랜드들이기에 옷이 날개다 라는 말을 확실히 보여주는 '예' 라고나 할까요?!^^;; ( 저희 블로그를 봐도 한국말 모를꺼니깐..미안해요..수장님..) 잇님들도 솔직히 그런생각 드실거라 생각합니다 ㅎㅎㅎㅎㅎㅎ 밑에 사진은 제가 추천하는 오사카 여행지인 CentoTrenta 본점의 매장 내부 감성이에요~ 그렇게 본점은 자그마한 맨즈웨어 셀렉샵으로 되어있지만 아주 알차게 제품들이 들어와있어 볼거리가 많아요! 여러분들도 시간 되시면 오사카 여행지인 CentoTrenta 본점으로 구경이라도 가보세요~ 이렇게 제가 가고 싶었던 곳의 일정은 끝이나고 다음날은 당일치기로 교토에 있는 '아라시야마' 라는 곳으로 출바알~~~~ 와...습도 엄청나게 높고.. 온도38도인 곳에서..지금 위의 사진처럼 입고 다니시면 얼굴에 엄청난 열이 올라온다는거~~ 참고하세요...^^;;; 반팔에다가 셔츠자켓과 바지는 모두 린넨이지만..죽겠더라구요.. 그런데 태양이 너무 강해서.. 저렇게 입는게 오히려 자외선을 피하는데 더 좋은 방법일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어요 ㅎㅎ 오사카 여행지인 도톤보리 주변보다 교토가 훨~~씬 더웠다는건 사실.. 오사카 여행지와 다르게 교토는 제가 더 좋아하는 분위기 였어요! 시골마을 같은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요?! 고층건물이 없었고 낮은 전통 일본식 집들과 계곡들~ 그리고 제가 갔었던 '아라시야마'는 대나무 숲으로 유명한 곳 이었는데요! 담양 죽녹원과 비슷하여 마치 한국에 있는 듯 한 느낌이었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 처럼 오사카 여행지인 도톤보리보다  훨~~씬 더워서.. 지금 위의 사진에서 제 광대뼈 보시면 빛이나죠?! 저거 땀이에요....ㅠㅠ 그래도 사진 찍어 남기겠다는.. 저 불타는 의지 ㅎㅎㅎㅎㅎ 추워진 지금에와서 저때를 생각하니 다 추억이네요^^ 이렇게 저의 첫 일본여행은 교토를 마무리로 끝이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오사카 공항에서 또 한 컷~ ( 노을 빛이 좋더라구요^^) 여러분들 모두를 만족시킬 정보는 아니었지만 맨즈웨어에 관심 있으신 분들에게는 일본 오사카 여행지로 좋은 정보를 얻었지 않았나~ 싶네요!!! 그럼 오늘도 하루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한 저녁되세요^^ BLOG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