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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 사랑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로라씨.”


로라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오히려 기태가 당황하며 로라의 팔을 쥐었다. 그러자 로라 앞에 서 있던 여자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로라를 바라보았다. 로라는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그대로 여자를 응시했다. 당황한 건 여자였다. 여자는 무슨 말을 하려고 입술을 달싹였는데,


“초면에 이런 말해선 죄송한데요. 제가 원래 하고 싶은 말 못 참고, 불의를 봐도 못 참고, 아닌 걸 아니라고 얘기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야 하는 이 상황이 달갑지 않네. 그래서 무척 짜증이 나네요.”
“뭐라구요?”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어요. 당신 참.”
“…….”
“다른 사람이 호감 가질 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거. 남자에게든 여자에게든 별로인 사람이라는 거.”
“이보세요!”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지려 하자, 기태가 그런 로라의 등을 토닥이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로라는 끝까지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에서 꾸역꾸역 내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처음 본 로라에게 영문 모를 비난을 들은 여자는 혼자 씩씩대며 ‘뭐 저런 미친 여자가 다 있어?!’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엘리베이터 문은 닫혀버렸다.


“로라씨. 괜찮습니까?”
“죄송해요. 팔 좀 부딪힌 걸로 오바 떨었죠, 제가.”


로라는 멋쩍게 웃으며 가방을 고쳐 맸다. 그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앞서 걸었다. 기태는 그런 로라를 말없이 바라보다 이내 휘적휘적 로라를 따라 잡았다. 로라 옆에 선 기태는 슬쩍 로라를 내려다보았다. 무표정이었다. 여전히 생채기 난 로라의 팔엔 빨간 피가 스며있었다. 기태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로라의 팔에 살포시 얹었다.

로라는 흠칫 놀라며 무표정으로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병원 들렸다 가게 가실래요? 밴드랑 간단히 바를 약 정도는 있을 건데.”
“아뇨. 이 정도쯤이야, 뭐. 하하핫.”


로라는 호탕하게 웃으며 손수건을 쥐었다. 그러자 기태는 그런 로라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입술을 달싹였다.



“부딪혔다고 그랬던 거 아니죠.”
“네?”
“서로 안면이…있는 사이인 건가요?”
“아…아뇨. 초면이에요.”


로라는 단번에 기태가 아까 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했던 그 여자를 말하는 것임을 알아챘다. 로라는 다시금 웃음기를 걷고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했다.


“그럼…왜 그랬던 건지, 말해줄 수는 없어요?”
“그냥.”
“…….”
“제가 성격이 좀…별루라서 그래요. 하핫! 놀라셨다면 죄송해요.”


하고 로라는 씩-, 웃으며 기태를 올려다보았다. 기태는 짐작했다. 로라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거라고. 기태는 알았다. 단지 부딪혔단 이유로 로라가 처음 보는 여자에게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다는 걸. 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그렇게 얘기했을 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었고, 지금 역시 이야기 하지 않는 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럴 것이었으니.


“내가 신경 쓰여서 그래. 병원 들렸다 가게가요. 놔두면 덧나.”


기태는 로라의 어깨를 슬며시 쥐었다. 갑작스런 스킨십에 적잖이 놀란 로라였지만 도헌이 그랬을 때처럼 빼진 않았다. 입술을 꾹 깨문 채 로라는 기태의 발걸음에 맞추어 걸었다.


* * *



- 거기도 비가 쏟아지고 있죠. 1시간 안에 도착하니, 기다리고 있어요.


기태의 문자였다. 오후 내내 하늘이 어두컴컴하더니 10분 전, 거짓말 같이 우악스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로라는 굳은 표정으로 쇼윈도를 바라보다 기태의 문자에 슬며시 미소 지었다. 요즘 들어 기태를 향한 감정이 홀로가 아닌 것 같아 자꾸만 웃음이 나는 로라였다.

그때, 로라의 휴대폰 벨소리가 빈 가게를 요란스레 메웠다.


“여보세요?”
“오호라 누나! 밖에 비 오는데! 우산 없죠?!”


도헌이었다. 갑자기 도헌의 목소리를 들으니 낮에 마주쳤던 그 엘리베이터의 여자가 떠올랐다. 로라는 눈을 번쩍 뜨곤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빡, 주었다.


“야! 구도발! 어떻게 됐어!”
“에? 뭐가요?”
“그 니 구 여친! 바람났다던 구 여친! 연락 왔어? 엉? 연락 왔지? 그치?!”


로라는 침 까지 튀겨가며 살벌하게 물었다. 휴대폰 너머의 도헌은 이 누나가 갑자기 왜 이러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로라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곤 기태가 붙여준 팔위의 밴드를 보며 입술을 슬며시 깨물었다.


“왜 그런데요 갑자기?”
“아 말해. 연락 왔었지?”
“연락이야 뭐…매일 왔던 걸요?”
“그러니까 오늘도 왔다 이거 아냐! 뭐랬어? 너희 부모님 만난다고 협박하지 않든?”
“에? 오호라 누나. 누나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로라는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곤 팔짱을 끼며 짝다리를 짚었다. 마치 앞에 도헌이 있는 마냥 고개까지 삐딱하게 하고선 입술을 달싹였다.


“오늘 점심 먹으러 갔다가 우연히 니 구 여친 만났다. 지 친구한테 인가 하여튼 통화하는 걸 들었는데 너희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더라고?”
“…실화예요? 대박! 이 넓은 서울 땅에서 걜 마주쳤다고?”
“봤는데 딱 봐도 양다리 걸치게 생겼더라. 야시같이 생겨가지고는! 아까 나랑 부딪혔는데 미안하단 사과 한 마디 안 하는 거 있지?!”
“아 정말요? 걔가 근데 좀 원래 싹퉁 머리가 없긴 한데…부딪혀서, 다친 건 아니구요?”
“그냥 뭐 살짝 긁힌 거 빼곤. 그래서 넌? 어떻게 됐어? 부모님, 연락오신 거 아냐?”


로라의 말에 도헌은 깊은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때, 우르르쾅쾅 천둥 번개가 요란스레 하늘에 번쩍, 내려쳤고 로라는 흠칫 몸을 움츠렸다.


“한국 온 것…들켰지 뭐야. 내일이라도 당장 집으로 오라는데…하.”
“일단 들어가지 마. 지금 들어가도 좋은 소리 못 들을 것 같은데.”
“들어갈 생각 없다고 말씀은 드렸어요. 그리고 걔랑도 끝난 거라고 확실히 말했고.”
“…….”
“그랬더니 일단 만나서 얘기는 하자고 하니.”
“아니 근데 그 웃기는 여자애는 너희 부모님을 만나서 무슨 말씀을 드렸다는데? 지가 양다리 걸쳤다고, 그래서 구도헌이 헤어지자고 했다고 뻔뻔스럽게도 얘기했데? 아니 그 전에, 지가 할 말이라는 게 있긴 있는 거니?”


로라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쇼윈도에 바짝 다가섰다. 그러곤 디피되어 있는 마네킹의 손가락을 슬며시 쥐었다. 차갑고 딱딱한 촉감이 로라의 손바닥에 닿았다.


“그냥…자기가 실수해서…잠시 헤어져있다고…그래서 말도 없이 내가 귀국해서 앞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거라고.”
“뚫린 입이라고 지껄이는 꼬라지하고는. 어휴 아까 마주쳤을 때 확 센팅을 꽂아버리는 거였는데.”


로라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우악스럽게 비를 퍼붓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낫나…, 로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심란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덩달아 로라의 마음 역시 심각해지는 듯했다.


“그건 그렇고. 비 많이 온다. 우산 없죠? 데리러 갈까요?”


도헌의 말에 로라는 퍼뜩, 기태 생각이 나 쇼윈도를 바라보고 있다 빙그르르 몸을 돌렸다.


“아니. 괜찮아. 그 생각은 고맙다.”
“괜찮다구요? 누나 우산 집에 있는데?”
“벤츠남이 데려다 주기로 했어. 그러니 우산이 필요 없겠지?”


로라는 어깨를 으쓱하며 서랍에서 파우치를 꺼내 화장을 수정하기 위해 화장품을 꺼냈다. 휴대폰 너머의 도헌은 말이 없었다. 로라는 화장품을 꺼내던 손을 멈추곤 정면을 응시했다.


“왜?”
“아니 근데 누나.”
“응.”
“그 벤츠남은 진짜…아닌 것 같아.”


아닌 것 같단 도헌의 말에 로라는 피식 웃었다. 그리곤 다시금 화장품을 꺼내던 손을 분주히 움직였다.


“아니긴 니 구 여친이 더 아니다. 끊어, 나 화장 고쳐야 해.”
“집 바로 들어올 거예요? 또 술 마시고 들어올 거야?”
“몰라. 왜 물어? 내가 술을 마시고 들어가든, 물을 마시고 들어가든?”
“아 걱정되니까 그러지! 또 헤벌레 해가지고 여자 친구가 있는 지도 모를 놈이랑 무슨 사고라도 칠까봐!”
“아서라. 니 걱정이나 해, 구도발. 끊어!”



하고 로라는 입을 삐죽 내밀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화장을 고치기 위해 화장품을 들고서 전신 거울 앞에 섰는데, 다시금 전화벨이 울렸다.


“아, 왜 구도발!”
“아…로라씨?”


도헌인 줄 알고 큰 소리쳤던 로라는 기태의 목소리에 당황하며 팩트로 얼굴을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


“아…선생님이세요?”
“구도발…은 누구예요?”
“아…하하하, 그냥…친한 동생…요.”
“혹시 그 저번에 뵈었던…그 분인가요.”


기태의 목소리가 조금은 굳어 있었다. 로라는 잉? 하는 표정으로 거울 앞에 굳었다. 기분 탓일까. 왜 도헌의 이야기에 기태의 목소리가 굳는 걸까. 로라는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네…맞아요.”
“참….”


그리고 정적이 이어졌다. 괜히 덩달아 로라도 심각해졌다. 왜…그러는 거지? 이 반응은, 이 싸한 공기는 뭐지? 로라는 휴대폰을 쥔 채 입술만 질근질근 깨물었다. ‘나 뭐, 지금 혹시 실수라도 한 거야?’


“다…오신 거예요?”
“이상하죠.”
“네?”


로라는 팩트를 카운터 위에 놓곤 쇼윈도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곤 혹시 기태의 차가 보이나 싶어 빗속을 유심히 살폈다. 아까보다 빗줄기가 더 굵어져 있는 것 같았다.


“나 왜…로라씨 입에서 그 친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
“심장이 철렁철렁 내려앉는 거죠.”
“…네?”
“이상하긴 한데…그래서 신기하기도 한데.”
“…….”
“그런데 썩 기분은 좋지 않다는 겁니다.”



로라는 기태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어머 이 남자…지금 질투하는 거야?’ 로라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수줍음에 몸을 베베 꼬았다. 하지만 티내지 않기 위해 치맛자락을 꾹 쥐었다.


“아무 사이도 아닌 걸요? 그저 친 동생의 친한 친구일 뿐…인데요.”
“10분 뒤에 도착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빨리 왔어요. 병원에서 기다리다가 나올까요?”
“아니에요! 비도 오고 손님두 없는데…일찍 마감하고 나갈게요!”


하고 로라가 전화를 끊고 얼른 화정을 마저 고치기 위해 카운트로 서둘러 걸어갔는데 그때, 딸랑 가게 문이 열렸다. 로라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가게 앞엔 그때 그 여자가 서 있었다. 마감 시간이 다되어 비를 홀딱 다 맞고서 들어왔던 그 손님, 그리고 어제 횡단보도에서 마주쳤던, 울고 있던, 어쩐지 마주하고 있음 묘한 기분이 드는 여자 손님.

로라는 잠시 그녀를 보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다, 이내 미소를 머금고서 몸을 돌려 세웠다.


“아…안녕하세요!”
“오늘두…마감 하시려나 보네요. 하핫, 제가 또 늦게 왔나봐요.”
“아, 아니에요! 아직 마감하려면 멀었어요. 천천히 둘러보세요.”


로라는 생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러자 여자 역시 생긋 웃으며 비에 젖은 우산을 우산꽂이에 조심스레 꽂더니 이내 매장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왔다.


“사실…옷을 사려고 온 게 아니라.”
“네?”
“그땐…좀 당황스러우셨죠.”


하며 가방에서 곱게 포장된 사각의 무언가를 꺼내 로라에게 건넸다. 로라는 여자를 한 번, 포장된 상자를 한 번 바라보곤 쭈뼛쭈뼛 받아 들었다. 여자는 로라를 응시한 채 여전히 싱그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채였다. 여자의 머리끝이 조금 젖어 있었다.


“고맙기두 했구…뭔가 민망하기두 했어요.”
“아…뭘 이런 걸 다.”
“드리고 싶어서요.”
“아…네, 뭐 감, 감사해요! 하하!”


로라는 머리를 긁적이며 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여자는 그런 로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젖은 머리를 매만졌다. 여자에게서 좋은 샴푸향이 났다. 로라는 그런 머리를 매만지는 여자의 손끝을 바라보다 이내 여자의 까만 눈동자를 응시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저번에 왜…우셨는지 여쭤봐도…될까요.”


로라가 조심스레 여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여자는 쑥스럽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짓더니 이내 음…, 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남자 친구 때문에요.”
“…아.”
“남자 친구랑 다툰 건 아닌데…그냥…좀 헤어질 위기였어서.”
“그러셨구나. 그래서 남자 친구 분이랑은 얘기 잘 하셨구요?”
“네…다행히 헤어지진 않았네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의 검은 눈동자엔 그때의 일을 회상하고 있는 듯 뿌연 눈물이 슬며시 고이는 듯 했다. 로라는 애써 하하하, 소리 내어 웃으며 다행이에요! 여자의 팔을 슬며시 쥐었다. 그리고 그때, 로라의 휴대폰이 울렸다. 로라는 잠시만요, 하며 휴대폰을 쥐었는데 기태였다. 로라는 빙그레 웃으며 휴대폰을 귓가에 가져다 댔다.


“도착하셨어요, 선생님?”
“네. 가게 아직 불 켜져 있네요?”
“네. 잠시 누가 오셔서요!”


로라의 통화를 듣던 여자는 ‘아, 아니에요. 볼 일 보셔요. 저 이제 가보려던 참이었어요, 그럼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하며 로라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곤 가게를 나섰다. 로라는 황급히 사라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손님오셨어요?”
“아뇨. 뭐 그냥…조금 아는 사람? 근데 방금 갔어요. 이제 마감 시작하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가게를 나선 여자는 앞에서 우산을 활짝 펼치곤 또각또각 오른쪽으로 꺾어져 사라져 갔다. 로라는 그런 여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동시에 기태의 차가 로라 가게 앞에 섰다. 로라는 반가운 마음에 쇼윈도로 달려가 기태의 차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여자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기태의 차를 발견하지 못한 듯 파란 우산을 쓴 채, 빗속을 뚫고 또각또각 로라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여전히 오늘도 로라는 그 여자가 이상하게도 신경 쓰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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