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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모르면 시끄럽게 내려야 한다
정오가 채 못 된 시간이었다 이른 점심을 위해 학교를 나와 마트를 찾아 걸었다 학교에서 왼쪽으로 꺾어 휘 데 뾔쁠리에를 따라 걸어 올라가다가 그만 짙은 녹색 천에 담긴 죽음을 보았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한참을 뻔히 바라보았다 햇빛이 묻은 흰 주름을 따라 어림되는 덩치 아 그렇구나 더 이상 급할 일도 없어 쁘히베 데 뾔쁠리에 헝세 썽떼 병원 곁은 피가 흐르는 이에 내어주고  조금 떨어진 곳이라도 뭐 어때  수고를 감내하는 구조사의 배려 덕에 우리는 총총걸음 일상 위에서 그만 짙은 녹색 천에 담긴 이를 보았다 빛도 돌리지 않는 앰뷸런스에서 배송을 예약받은 택배처럼 차갑게 들것에 실려 천천히 길을 건너 가신 이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아무도 멈추지 않게 좋은 타이밍에 매끄러운 바퀴로 길을 건넜다 병원에는 달려 나오는 이가 없었고 문은 자동으로 열리고 닫혔다 죽음이 지나가도 아무도 멈추지 않는다 아무도 멈추지 않았고 그만이 조용히 내렸다 꿀렁이지 않았다 보도를 오르고 내릴 때도 길을 건너 오른쪽으로 틀고 병원을 향해 왼쪽으로 틀 때도 붙들고 있는 것들이 더는 필요가 없겠지만 다행히 우리는 점심을 거르지 않았다 때를 모르면 시끄럽게 내려야 한다 지하철은 늘 만원이라 때를 놓치면 모두를 밀치고 파흐동 소리를 연발로 내지르고 때를 모르면 시끄럽게 내려야 한다 갑자기 툭 내리면 남은 이에게는 얼마간의 상처가 생긴다 가방에 쓸리고 옷이 벗겨진다 달려 나가는 파흐동 소리에 괜찮다는 말도 못 해준다 괜찮다는 말을 못 해줬다 입술을 뗄 만큼 아프지는 않아서 몸을 돌릴 만큼 가까이 있지도 않아서 매일 문은 열리고  얼마 간의 소란이 있고 문은 닫힌다 조금 넉넉하다가 더 비좁아지기도 한다 글, 사진 레오 2019.12.05 시로 일기하기_오늘 날씨 흐림
그만이 조용히 열차에서 내렸다
Il fait beau. 드물게 맑은 날이었다. 햇빛이 색들을 제대로 드러내는 그런 맑은 아침이었다. 요즘은 파리에 제대로 적응을 했는지 자정이 훨씬 넘어서도 좀체 잠들지를 못해 아침마다 큰 전투를 치른다. 마치 수련회의 밤처럼 몇 초 간의 침묵이 이어지다가도 한 명이 말을 꺼내고 잠잠해지면 또 다른 한 명이 말을 꺼내고 하며 영화를 미련처럼 끌고 가는 것. 대단한 얘기들은 아니다. 그냥 학교의 같은 클래스의 누군가를 흉내 내거나 선생님의 흉내를 내곤 한다. 매일 반복되는 레퍼토리인데도 그게 또 너무 재밌다고 ‘미쳤다’ 며 웃고 한다. ‘Bonjour! Bonjour!’ ‘Ça va?’ 하는 인사말 같은 것들이 아이들처럼 귀에도 입에도 머리에도 마음에도 새로워서 자꾸 꺼내서 사탕처럼 빨곤 하는 것. 그러다가 자려는 어떤 마음도 먹지 않다가 갑자기 필름이 끊긴 듯 한쪽이 잠이 들면 다른 이는 놀라운 고요 속에서 이런저런 깊은 생각도 해보곤 하는 것. 언제나 답은 듣지 못하고 그만 멍하니 원치 않는 알람 소리만 듣고 만다. “학교를 가야겠지?” “응, 근데 죽을 거 같아.” 정말 못 가겠다고 머리를 파묻으면 엠마가 발을 올리고 엠마가 모르겠다며 머리를 파묻으면 내가 슬리퍼에 발을 욱여넣어 우리는 아슬한 출석률을 유지하는 중이다. 출석률이 너무 떨어지면 파리에 더 있고 싶어도 체류가 거절될 수 있기에 아침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후에도 늘 마음을 누르려고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안돼.” 드물게 맑은 날이었다. 환해서 왠지 비어 보이는 파리의 거리는 코가 따가울 만큼 기온이 떨어져 있었다. ‘서울만큼은 아닐 거야’라고 위로를 해보지만 파리의 겨울도 점점 만만치 않게 식어가는 중이다. 잠을 덜 깨고 오는 20대가 훨씬 넘은 어른들을 깨우려고 선생님은 목으로 심벌즈를 다 치신다. 한 글자 한 글자가 귀를 열고 들어온다. 아직은 모르는 말들이 너무 많아서 수업은 지겨울 새도 없이 끝이 난다. “Merci, Au revoir.” 매일 외식을 하면 생활비가 감당이 안되기에 점심은 다들 간단히 샐러드나 덮밥, 시리얼이나 빵을 싸와서 학교의 휴게실에서 먹곤 한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친구는 컵라면을 자주 먹는다. 처음에는 라면의 냄새가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에게는 힘겹게 느껴질까 봐 참곤 했는데, 다른 나라 친구들이 컵라면을 사 와서 먹는 모습을 보고 난 후론 가끔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한인마트에서 컵라면을 사 와서 먹곤 한다. 오늘은 날씨도 춥고 해서 컵라면을 사려고 한인마트로 가기로 했다. 은행도 들르고 해야 할 것들이 있어 엉덩이를 깃털처럼 날리며 현관문을 열고 거리로 나갔다. 학교에서 왼쪽으로 나 있는 뾔쁠리에 거리를 따라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총총걸음을 걸었다. 순간 우리의 앞을 매끄럽게 가르는 들것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학교에서 채 몇 분이 안 되는 거리에 쁘히베 데 뾔쁠리에 헝세 썽떼 병원이 있기에 구급차에 실려 온 응급환자인가 했지만 구급차는 그러기에는 병원에서 조금 멀다 싶은 곳에 마치 볼 일을 보러 온 사람의 것처럼 주차가 되어 있었고 들것은 한 명의 손에 너무 천천히 굴러가고 있었다. 덩치를 그리듯 달라붙어 있는 짙은 녹색의 비닐 백, 머리까지 채워진 검은색 지퍼. 그렇다. 지금 적당히 꿈처럼 부유하는 무릎도 아프지 않은 우리의 총총걸음 앞에 죽음이 흘러가고 있다. 바퀴는 소리도 내지 않았고 타이밍도 좋아 우리의 걸음도 바쁜 차들의 진행도 하나 끊어내지 않고 너무도 잘 보이면서도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이미 단단히 닫힌 죽은 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분명 죽음이 있지만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추위에 속도 붙은 걸음으로 은행까지 멈추지 않고 걸었다. 정오인데도 햇빛은 서서히 기울고 산책 나온 강아지들도 너무 많아 징그러운 비둘기들도 십 년을 훨씬 넘은 파리의 차들도 우리도 멈추지 않고 그만이 조용히 열차에서 내렸다. 인터넷에 이름이 뜨면 읽지 않아도 이유를 알 수가 있다. 여행을 하는 곳에도 구걸하는 이들, 몸을 내던지는 이들, 조용하거나 시끄러운 죽음들이 가득하다. 오히려 너무 많아 죽음조차 꿈처럼 흐릿하게 보인다. 가다 갑자기 덜컥 주저앉아도 이상할 게 없는 시절이다. “죽음이 실감 나지 않으면 정말 위험한 거야.” 끝이 없는 실로는 한 땀도 꿰맬 수 없다. 나는 끝이 날 것이다. 그러니 몰라도 써야 할 때가 곧 온다. 똑똑하지 않아도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아도 이름 아래로 묻히는 끝내지 못한 끝나버린 글들. 하지만 난 아직은 매일 밤 꿈을 꾼다. 웃긴 꿈도 이상한 꿈도. A 눈이 심판처럼 오는 날이었다. 서울은 통제 불가능으로 모두가 서둘러 뭐든 잡아 타고 서울을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버스를 얻어 타고 대피를 하고 있었는데 버스가 그만 눈에 파묻히고 말았다. 헛바퀴 굴리기를 여러 번 끝에 운전수는 버스를 포기한다고 선언했고 우리는 금방이라도 얼 것 같은 날씨를 뚫고 어디까지 걸어야 할지 막막했다. 눈이 버스를 점점 눈 아래로 파묻어 갔다. 사람들은 허리보다 높은 눈을 해치면서 길을 서둘렀다. 그때 누군가가 버스의 앞바퀴 쪽의 눈을 온몸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재난을 불러온 눈을 사람의 힘으로 이기기에는 무리였지만 그는 의미 없는 몸짓을 반복했다. 몇 사람이 의아함을 품고 돌아가 그에게 물었다. “의미 없어요. 이러다가 죽어요.” “안돼요. 난 엘지 트윈스를 버리고 갈 순 없어요.” 그렇다. 버스는 엘지 트윈스의 구단 버스였다. 그의 어이없는 말에 몇몇의 남자들이 감동하여 달려와 그와 함께 바퀴를 파묻은 눈을 온몸으로 파헤쳤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으면서 일어났다. B 하루는 엠마와 함께 육군사관학교를 다시 가는 꿈을 꿨다. 남녀 생도는 각 방을 쓰지만 왠지 모르게 우리는 룸메이트였다. 그날은 육사에 연예인들이 방문을 해서 떠들썩 한 날이었다. 문득 점호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어떤 준비도 없이 점호를 받았다. 상관이 들어오자 나는 버릇처럼 ‘필승’ 이라며 경례를 했다. “공군에서는 필승인지 몰라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합을 받았다. 엎드려뻗쳐를 하는데 침대 밑으로 수북한 먼지가 보였다.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상태 불량, 복장 불량, 태도 불량, 관등성명 불량!”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기합을 받았다. 간신히 점호가 끝나자 옆방의 한 학년 선배가 우리를 위로를 해주러 방을 방문했다. “필승. 아, 충성.” “괜찮아. 아직 익숙하지 않지?” 선배는 부드러운 말투로 우리를 다독이며 자신의 간식을 나눠줬다. “오늘 학교에 배우들 온 거 알아?” “이소라는 배우가 아니고 가수입니다.” 순간 선배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나는 끝이 없는 기합 끝에 나는 신음을 내며 일어났다. C 경찰서 안이었다. 한 스토커가 심문을 받고 있었다. 그는 형사의 심문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다. 지겨운 버티기가 이어졌고 형사들은 지쳐갔다. 그때 막내 형사가 각 자리의 쓰레기들을 수거해서 한데 모으고 있었다. 오래된 쓰레기 냄새가 방안에 가득했다. 그 순간 그 스토커의 신체가 변화했다. 그랬다. 그 스토커가 누군가의 방안을 몰래 훔쳐보는 곳은 그 건물의 쓰레기가 모여 버려져 있는 곳이었다. 나는 썸뜩하게 감탄하며 잠에서 일어났다. 매일 밤 꿈을 꾼다. 여전히 보고 싶은 게 많아서. 얼마 전에 갔던 오페라 가르니에는 너무 화려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거대한 공간임에도 여백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계단과 난관 벽과 천장의 모든 곳에 장식과 무늬가 가득했다. 빽빽한 욕심들. 눈이 부신 색깔들. 샹들리에들. 꿈같은 천장화. 최고이고 싶은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 외부에서 점수를 벌어온다. 그래서 늘 외부에다 최고를 주문한다. “최고여야 해. 제일 크고 거대하고 눈이 부시게..” 최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설득시킨 많은 ‘결과’ 들이 이곳에는 가득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여전히 지금까지도. 오페라 건너편에 있는 갤러리 라파예트에는 수백만 원은 기본으로 하는 명품들이 가득했다. 가격만큼씩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유명한 것들을 등 돌린 채 속으로 질투하던 나에게 이곳은 재판처럼 나를 온통 까발린다. 눈이 돌아가는 나를 욕심이 나는 나를. 나는 취한 듯 휘청이면서 걷는다. 마음에 물어보지도 않고서 감탄을 해버리고 할 수 있는지 가늠도 않고서 꿈을 꾼다. 정리를 해야 할 시기에 선이 보여야 할 시기에 나는 되돌아갈 듯 90도를 넘는 각으로도 흔들린다. 올 해가 이제 몇일이면 끝이 난단다. 한 해, 그 긴 시간 무엇도 들려주지 못했다며 미안해 해야 할 사람들이 있을까. 있다면 작은 카드를 보내드리리.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밥을 먹습니다 밥은 참 맛이 있습니다 밥을 먹으면 설거지를 합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하늘을 봅니다 산책하면 좋을 날씨라 산책을 다녀옵니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 다시 밥을 짓습니다 조금 더 든든한 것들로 준비를 해봅니다 밥은 참 맛이 있습니다 미루지 않기로 약속한 설거지를 합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달력을 넘깁니다 잠이 들어도 잠이 들지 않습니다 조금은 늦잠을 자겠습니다 건강하시죠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글 영상 레오 2019.12.10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생트 샤펠,
좁은 나선형 계단을 앞사람의 등만 보며 올랐다. 어디에선가에서 연이어 터지는 희미한 탄성이 우리의 귀에 조금씩 더 명확하게 들려오기 시작하자 이름 모를 우리 앞의 등들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졌고 우리는 이 짧은 고행이 곧 끝남을 알 수 있었다. “와아.”  우리의 뒤를 이어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도 깜빡 잊은 채 우리는 그만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우리에게 쏟아져 내려오는 것은 빛이 아니었다. 좁은 어깨를 하고 걷던 봄날, 우리의 머리를 뒤덮으며 내리던 시린 붉은 비, 그 여린 듯 진했던 벚꽃비처럼 그것은 한 뭉텅이로 우리의 추억 안에 지울 수 없는 색을 밀어 넣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이 비도 좀처럼 무뎌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한국에서 받아온 기본 서류들을 번역하고 공증을 받기 위해 트램을 타고 벼룩시장이 유명한 Vanve까지 갔다. 그리곤 다시 지하철 13호선을 타고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이 있는 Varenne역으로 갔다. Varenne역은 근처에 로댕 미술관이 있는 곳으로 지하철 출구로 나와 대사관들이 모인 거리로 걸어가다 보면 왼편으로 육군박물관이 보이고 그 앞 광장 너머로 에펠탑이 보이는 마치 서울의 광화문과 같은 느낌의 지역이다. 육군박물관 뒤편으로 황금색 돔이 유난히 눈에 띄는데 그곳이 바로 프랑스혁명의 영웅이자 동시에 역적인 애증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그의 일가가 묻혀 있는 Tombeau de Napoléon이다. 공증이 완료된 서류를 다음날 오전 11시 이후에 찾으러 오라고 해서, 다음날 오전 수업을 마치자마자 우리는 다시 트램에 올랐다. 트램은 전 세계 각국에서 지원을 받아 만든 그래서 각국의 이름을 딴 기숙사들이 모여 있는 씨떼 유니벡시떼를 지난다. 건물들은 조금 낡았지만 가격이 싸서 인기가 많고 따라서 입주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 곳이다. 하루를 다녀왔다고 익숙해진 풍경들을 지나 Porte Vanve역에서 메트로 13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는데 우리의 근처에 서있는 누군가의 인상이 문득 나의 눈을 잡아맸다. 오랜 시간 연기를 하고 또 영화를 만들다 보니 사람들을 관찰하고 혼자서 그들의 성격이나 처한 상황 그리고 감정이나 목적까지도 추측 추리 상상하는 버릇이 몸에 깊게 베여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많은 것들을 지레짐작하게 된다. 그것이 어떤 편견이 되진 않을까 싶어 절로 완료되는 짐작들을 애써 지워 버리려고 애먼 노력을 또 하곤 하는데 이곳은 낯선 땅이라 내 생각들이 편견일 확률 또한 높아서 여태껏 한국에서 보다 더욱 조심을 해왔다. 프랑스의 지하철에 대한 여러 글들을 많이 봤고, 소매치기와 거동이 이상한 사람들을 마주친 여러 사람들의 경험담도 또 그때 그들의 대처들도 지나치게 보고 이곳으로 왔지만, 지난 한 달간 딱히 위험한 상황을 만난 적은 없었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아무런 사건 없이 생활을 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방심했을 때 소매치기를 당하고 말았다는 글을 읽고는, 반은 장난으로 ‘방심하다 당한다’ 며 서로에게 잦은 주의를 주곤 했지만, 시간의 힘이 참 무서워 요즘은 긴장을 거의 안 한 채 지내고 있던 참이었다.  13호선은 우리가 주로 타고 다니는 7호선과는 다르게 의자가 한편으로는 한 열이 나있고 다른 한편으로 두 열이 나있는 비대칭 구조이다. 다른 호선의 지하철들처럼 정방향의 의자와 역방향의 의자가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는 구조는 마찬가지였다. 나와 엠마는 두 열의 의자가 나있는 쪽에 정방향의 의자에 나란히 앉았고, 그 남자는 다른 쪽 한열의 역방향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문득 들었던 부정적인 인상을 지워내고는 핸드폰으로 뭔가를 검색을 하고 있을 때, 어떠한 짐작되는 이유도 없이 그 남자가 불쑥 나의 앞자리로 자리를 옮겨 왔다. 다른 이곳의 사람들과 달리 나를 빤히 바라보는 모습에 혹 소매치기를 하려는 건 아닐까 싶어 하던 검색을 멈추고 핸드폰을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 남자의 목적은 우리의 물건이 아닌 건지 우리를 방심하게 만들려는 어떠한 수작도 없이 노골적으로 우리를 노려보는 게 아닌가. 우리는 괜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 남자는 계속 우리의 돌린 옆얼굴을 노려보다가 심지어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 창문에 비친 우리를 눈을 찾아내 노려보기 시작했다. 순간 확실해지는 이상함에 나는 등이 굳었다. 평일 오전이라 객차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창문에 비친 남자를 주의 깊게 견제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남자는 왠지 모를 흥분까지 느끼며 우리의 돌린 얼굴과 창문에 비친 우리의 이미지를 번갈아 노려보는 일을 지속적으로 반복했고 급기야 몸을 조금씩 떨기까지 했다. 연기를 통해 익힌 경험을 비추어 보면 일반적으로는 감정이 신체의 징후를 만들어내지만 신체의 징후 또한 숨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나는 더욱 긴장을 했다. 남자의 신체 징후는 분명 이 감정이 그의 내면 안에 가만히 갇혀 있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남자의 감정과 신체가 서로를 계속 불러내며 확장을 해가고 있을 때 열차는 다행히 이름 모를 정거장에 멈춰 섰다. 나는 마치 이곳이 Varenne역인 듯, 당연한 듯 엠마를 데리고 열차에서 내렸다. 엠마도 긴장을 많이 했는지 놀란 얼굴을 쉽게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남자가 우리를 따라 내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끝까지 그를 살폈다. 다행히 그 남자는 열차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열차가 정거장을 떠날 때까지 남자는 우리를 노려 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굳었던 식은땀이 등줄기를 따라 서서히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잠자리를 설쳤다. 결국 다음날, 여러 번 울린 알람에도 우리는 침대 위를 떠나지 못했다. 오전 수업이 시작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뒤늦게 발을 돌려 올린 창문 밖에서 위로 같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햇빛을 받으며 숨을 좀 녹인 후 우리는 하나의 사건을 렌즈로 파리를 바라보진 말자고 다짐을 했다.  기왕 학교를 못 간 김에 우리는 파리의 동쪽 크레테유라는 곳에 위치한 우리 지역 CAF 아정스에 서류를 내러 가기로 했다. CAF는 주택보조금을 산정, 집행하는 기관으로 인터넷으로 가입, 신청을 한 후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서 우편을 통하거나 직접 제출을 하면 검토 후 각자에 맞는 보조금을 산정해준다. 아날로그의 나라 프랑스도 많은 변화가 있어 CAF도 모든 서류를 스캔한 뒤 온라인상으로도 제출할 수 있게 되었다지만 검토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기에 가장 빠르게 처리된다는 직접 제출을 하러 간 것이다. 파리가 아닌 외곽 지역은 위험한 곳도 많다고 들었기에 우리는 어제의 기억까지 더불어 떠올리며 긴장을 했다. CAF 아정스는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간 후 조금 걸으면 되는 곳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외곽지역을 둘러가는 동안 보는 풍경은 파리의 중심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공항을 오가는 도로에서처럼 거리에는 그래피티가 가득했고 현대식으로 지어진 커다란 아파트 단지도 높은 굴뚝이 있는 발전소나 공장 같아 보이는 곳도 자주 눈에 띄었다. 넓어진 센느강의 모습도 고풍스러운 건물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던 파리에서의 모습이 아니라 여느 곳에 흐르는 고요한 강 그 따름이었다. 강변은 온통 풀밭이었고 강 위에는 큰 새들이 앉아 먹이를 찾고 있었다. 낯선 거리의 모습에 경계와 신기함이 반쯤 섞인 시선으로 두리번거리며 CAF 아정스에 도착을 하자 먼저 건물 입구에 긴 줄을 선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파리의 주거비용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벅찬 짐이 되는지 아침부터 먼 곳까지 와 긴 줄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순서를 기다려 아정스의 직원에게 검토를 받고 제출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었지만 건물 밖에 장치해둔 CAF전용 우체통에 집어넣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글도 많아서 우리는 긴 줄에 두 명을 더 보태는 일을 포기하고 그냥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고 가기로 했다.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는 모습이 보여 우리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서류가 잘 검토되길 바라며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고 기념사진을 찍는데 아정스를 들렸다가 나온 한 흑인 아저씨가 우리를 응원을 해줬다. 그리고 홀로 줄을 서고 있던 한 한국 청년이 그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이신가요? 서류 그냥 여기에 넣고 가면 되는 거예요?” 서류를 봉투에다 넣어서 밀봉을 한 후 우체통에 넣어야 하는데 그 청년은 그런 사항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정스 안에 가면 봉투를 준다는 글을 본 것 같아 청년에게 알려주었다. 청년은 고맙다며 아정스 안으로 가고 우리는 남은 오후를 소중히 보내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먼저 파리의 동쪽에 있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들려보기로 했다. 내가 무척 가보고 싶어 하던 곳이었는데 영화의 성지에는 역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좋을 거 같아서 프랑스어가 조금 더 들릴 때까지 미뤄둬야지 했었다. 다만 오늘은 파리의 동쪽으로 나온 김에 인상적이라는 건물의 모습도 봐볼 겸, 영화 박물관이라도 봐보고 갈까 해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있는 Bercy역으로 갔다.  역에서 나와 조용하고 깨끗한 거리를 조금 걸으니 사진에서 봐왔던 역시나 다양한 곡선들이 인상적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눈에 보였다. 이곳은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은 프랭크 게리의 작품으로 원래는 미국 문화원이었던 곳이다. 2005년, 에펠탑을 마주 보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샤이요 궁 안에 있던 옛 시네마테크를 옭겨오기 위해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영화 몽상가들에 등장하던 68 혁명의 주무대였던 프랑스 영화의 최전성기를 지탱하던 ‘그 시네마테크’ 는 이 건물이 아니지만 시네마테크는 위치나 외형보다는 내용이 더 핵심이기에 Cinematheque Fracaise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처럼 들떴다. 시네마테크 앞에는 조용하고 예쁜 공원이 있었고 그 안에는 작은 회전목마가 있어 이질적인 건물과 함께 영화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을 거 같아 예고편처럼 사진 몇 장만 찍고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Bercy는 계획도시처럼 긴 공원을 따라 길고 낮은 아파트가 쭉 이어진 곳이었다. 공원이 끝나는 지점에 Bercy village라는 예쁜 쇼핑몰이 있었다. 이곳은 한때 세계 최대의 와인시장이 있었던 곳으로 건물의 외관을 최대한 유지한 채 내부만 리모델링을 해서 지금의 쇼핑몰로 꾸민 곳이다. 당시 와인을 운송하던 기찻길도 그대로 남아 있어 마치 파리가 아닌 지방 소도시의 번화가를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규모는 작지만 테라스 자리에 앉아 햇볕을 쬐기에는 좋은 곳 같았다. 햇볕은 좋았지만 날씨는 꽤 차가웠는데 테라스 자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우리도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남은 낮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해 보기로 했다. 
 엠마가 마침 지하철을 타면 한번 만에 가는 곳에 Châtelet역이 있다며 Sainte Chapelle에 가보자고 했다. 처음 어학교재를 사러 시떼섬에 갔을 땐 긴장된 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치기만 했던 곳이다. “Oui.” Sainte Chapelle은 고등법원 건물과 붙어 있어 파리의 관광지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보안 검사를 하고 있었다. 흡사 공항에서와 같이 짐 엑스레이 감사와 금속탐지 검사도 거친 후 부속 건물의 뒷문으로 나가자 센느 강 어느 다리에서도 보이던 날카로운 첨탑이 가고일 꼬리를 꽉 쥔 채 우뚝 서 있었다. 검은 괴수들이 사방으로 울부짖고 있는 검은 첨탑 너머의 하늘은 티 없이 파랬다. 그래 신은 이곳에는 없는 거지. Sainte Chapelle은 성루이라고 불리는 루이 9세가 동로마제국의 황제에게 금전적 지원의 형식으로 사들인 예수의 가시 면류관과 후일 모은 예수의 못 박힌 십자가 조각 등의 성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왕실 전용 예배당이자 보물창고이다. 티켓을 끊고 듣어간 곳은 성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은 높이에 기둥이 유난히 많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단출한 홀이었다. 심지어 그곳 안에 기념품을 파는 곳과 안내 전단을 배포하는 곳까지 같이 자리하고 있어 더욱 이곳이 사람들이 그렇게나 찾을 만한 곳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그곳은 궁중 관리들과 성당을 관리하는 이들을 위한 예배공간이고 왕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준비된 곳은 이 낮은 홀이 위층 공간이었다. 이곳이 보통의 성당들 보다 낮은 이유도 기둥이 많은 이유도 위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파리에 온 후 수없이 오른 나선형 계단을 앞사람의 등만 보며 올랐다. 위쪽 어딘가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연이어 들려왔다. 아래층의 모습에 실망해서인지 별다른 기대는 가지지 않고 허벅지를 손으로 도우며 계단을 오르는 일에만 집중을 하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뱉고 말았다. “와아.” 그곳은 그 안 든 것이 어떠한 모습의 어떤 마음의 사람이든 그 안에 든 것이 어떤 피비린내가 나는 프로필을 지닌 물건이든 아이들의 보석함의 고증 없는 ‘보석’ 들처럼, 모두를 모든 것을 그저 순수히 빛나게만 만들어버리는 섬뜩한 마법의 공간이었다. 15미터의 거대한 스테인글라스가 최소한의 테두리만 두른 채 공간 안으로 피할 수 없는 색깔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고개를 들고 오래도록 바라보게 하는 것들, 가령 하늘이나 별 같은 것들. 내가 한다던 비워내고 납득하는 그런 아름다움 말고 집요하게 강요하는 채우고 또 채워서 지나침을 훨씬 더 지나쳐 내가 모르는 곳으로 그곳으로 넘어가 버린 아름다움을 보면서 나는 내가 하는 예술이 미리 지고서 핑계만 오래 고민하고 있던 건 아닌지 조금 씁쓸했다. 이 곳은 온통 빼곡하다. 빈 손으로 꾸밈도 없이 걷기 위해 오랜 시간 나를 붙잡고 얘기를 해 왔는데 벌칙처럼 온통 내가 못하는 그저 아이처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어야 할 것이 가득한 이 곳으로 불쑥 와버렸다. 우습다. 사람은 그렇게 멋대로 걸어간다. 자기 물건이 가장 지겨워서, 자신과 다른 이의 품으로 기꺼이 간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낯설어진 나를 나는 또 가까스로 소개를 해야 하겠지. 내가 마치 이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돈도 잘 내고 길도 잘 찾고 하지만 내일에 해야 말만은 여전히 모른다. Oui ou Non 으로 대답하는 내 시꺼먼 마음에 뭐가 걸쭉하게 녹아 있는지 꺼내지 못해서 모르겠다. 가끔은 주말에 무엇을 또 보러 가기가 조금 겁날 때가 있다. 보고 좋아하는 거 말고 내가 해서 보여주고 싶어 그런 거겠지. 안다. 그 마음.  좋은 것을 보고 나면 우린 더 많이 지쳐 파리 지하철의 악명도 다 잊고서 머리를 붙여가며 졸기까지 한다. 안다. 당신의 그 마음도. 글, 영상 레오 촬영 레오, 엠마 2019.10.29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아무도 우리를 부르지 않는 곳에 우리가 있다.
3일 후면 이사를 해야 했기에 파리로 돌아온 다음 날 바로 매트리스를 사러 마들렌느 역에 있는 이케아에 다녀왔다. 시내에 자리 잡은 이케아여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지하철로 바로 올 수 있어 몇 번을 이곳으로만 와서 두 손으로 안고 갈 수 있는 만큼의 물건들만 사서 돌아가곤 했다. 오늘은 며칠 동안 고민하던 매트리스를 사러 온 것. 프레임은 전세입자가 우리에게 넘겨주고 가서 그 위에 얹은 매트리스만 사면 됐는데.. 어떤 매트리스가 좋을지 고민만 하다 지난번에는 미처 사지 못하고 돌아갔고 오늘은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어 결정을 하고야 말겠다며 두 손을 말아 쥐고 다시 이곳까지 왔다. 서울에 있을 때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그녀의 마음에 드는 물건이면 괜스레 나도 정말 홀린 듯 굴면서 억지로라도 그녀의 품에 안겨주고 했었는데 프랑스에서는 아무래도 모든 것을 다 터놓고 함께 의논을 하게 된다. 이제는 나의 돈도 아니고 그녀의 돈도 아니고 둘의 지속력의 관한 문제이다 보니, 서로 감정을 누르고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 그러다 보니 그녀는 ‘어때?’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되었다. 나는 서울과 다르지 않게 ‘좋은데?’라고 답을 해주지만 그녀는 좀처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늪과 같은 고민에 다시 빠진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나와는 다르게 호불호가 분명하고 취향이 확고해서 신기했었고, 그녀와 무엇을 보러 가고 또 자잘한 물건이라도 구경하고 홀리고 사고 만족하는 일들이 내심 즐겁기도 했었는데.. 무엇을 사고 돌아오는 날보다 무엇을 사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이 더 많아져 돌아오는 길 혼자 속으로 가슴이 쓰린 적이 많았다. 당연히 필요한 물건이라도 10유로 20유로가 넘어가면 고민을 하게 되는데.. 옷들도 집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그릇, 컵, 칼, 드라이버, 상자 등도 모두 모두 다 고민의 대상이 되니 큰일이다. 아무래도 규모가 작은 삶이라면 뜻과 다르게 뭔가를 포기를 하고 돌아가는 상황은 최대한 피할 수 있기에.. 나도 그녀도 스스로 모르게 그렇게 되고 마는 것. 하지만 버티기만 하는 삶은 얹는 게 없으니 자신감이 쌓이면 우리 꼭 공격도 하자. 조금 가격이 있는 매트리스를 집에서 같이 마음먹고 왔지만, 결국 이동과 처분의 가능성 등을 고려해서 기본 매트리스 하나와 쉬어 매트리스 하나로 쪼개어 사기로 했다. 상품을 결정하고 온라인으로 주문을 한 후에 유명하다던 이곳 이케아의 핫도그를 먹었다. 고기와 채소들을 섞어 만든 소시지에 튀긴 양파가 바삭해서 아주 맛이 있었다. 한국보다는 양은 작고 진한 카페 알롱제까지 마시니 얼마나 걸었는지는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매트리스와 여러 물건들을 한 번에 결정하지 못해서 몇 번이나 나를 이곳까지 끌고 왔다고 생각한 그녀는 미안한 마음에 내가 저번에 관심을 가지던 마들렌느 성당을 들렸다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난 성당 안은 굳이 지금 갈 필요 없으니 산책이나 하며 조금 돌아서 돌아가자고 했다. 마들렌느 성당의 정면을 지나가면서 성당을 배경으로 두고 걸어가는 그녀를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는데 엠마가 ‘왼쪽 봐봐’라고 들뜬 목소리로 나의 팔을 당겨댔다. 고개를 돌려보니 흐렸던 하늘은 어느새 개였고 노랗게 물든 하늘 아래로 노란 머리를 한 가느다란 바늘 같은 기둥이 서 있었다. “왼쪽 보라니까! 봤어?” “응, 근데 저게 뭐지?” 우리는 파리를 오는 동안 준비하는 것들에 치여 어디에 무엇 무엇이 있는지 전혀 조사도 못 하고 왔기에 마들렌느 성당이 무엇과 마주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몇 번을 이 곳에 왔는데 우리의 고개 너머로 이런 장면이 있을 줄이야.. 노란 하늘과 더 노랗게 빛나는 기둥에 이끌려 우리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차들이 분주히 돌아 나가는 거대한 광장.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둥글게 물러나 준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황금색 머리의 기둥. 우리가 멀리서 보고 따라온 노란 머리의 기둥은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 있다가 프랑스로 건너온 오벨리스크였다. 그리고 여기는 역사책에서만 봐 오던 프랑스혁명의 상징,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혁명 광장, 지금의 콩코흐드 광장이었다. 파리에 와서 집을 구하고, 매일같이 학교를 나가느라 여행이라면 당연히 갔을 곳들도 2주가 넘게 못 가보고 있었는데, 계획도 없이 이곳으로 걸어오게 됐다는 게 신기했다. 천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이 잘린 자리에 세워진 분수는 노을 빛을 그대로 받아 (아니러니하게도) 매우 아름다웠다. 배로 4년에 걸쳐 파리로 옮겨졌다는 오벨리스크는 그 과정이 그려진 기단 위에 아름다운 상형 문자 무늬를 하며 서 있었고 그 오른쪽으로는 파리라는 글자와 함께 가장 많이 본 상징, La Tour Eiffel 에펠탑이 나무 가지들 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넓은 직선대로의 끝에 개선문이 서 있는 것도 보였다. 그렇다면 저 넓은 대로는 Avinue des Champs-Élysées 샹젤리제 거리겠구나. 우습게도 우리가 지금 파리에 있구나. 아직은 실감이 가지 않아 서로에게 뻔한 질문을 하며 신기함을 즐긴다. 무엇을 하러 왔을까를 끝없이 물어야 하는 곳에 우리가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우리가 오기 전까진 우리의 자리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학교는 출석을 부르지 않는다. 결석을 해도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형의 결혼식을 위해 2일간의 수업을 빠진 것을 굳이 선생님께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우리를 부르지 않는 곳에 우리가 있다. 파리라는 곳에 우리가 있다. 부르지 않아도 많은 예술가들이 굳이 찾아왔던 곳. 더럽고 누추한 곳에서 생을 잘라먹으며 버티다 끝내 묻히기까지 한 이곳. 그 블랙홀 같은 곳에 지독한 중력을 간신히 이겨내고 날아오른 우리가 쉼표도 없이, 기꺼이 빠져들고 있었다. 글, 영상 레오 2019.11.12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저게 에펠이야?
11월 11일은 1차 세계 대전이 종전한 날이어서 프랑스에서는 휴일이다. 올해는 그날이 마침 월요일이어서 토일월 3일간의 연휴가 생겼다. 지난주 서울에 다녀오고 또 바로 이사를 하다가 근육을 다쳐서 학교를 오갈 때 어려움이 많았는데 몸과 마음 모두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다행이었다. 토요일 정오에는 계좌 개설을 위한 헝데뷰가 있어 Place D’Italie역 근처의 LCL로 갔다. 담당 직원과 안 되는 영어로 소통을 하려니 등에서 식은땀이 다 났다. 이쪽도 저쪽도 영어가 완벽하지 않으니까 직원도 뭔가를 설명하려다 포기하는 듯하고 나도 뭔가 확실하게 들은 게 없어서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프랑스 은행은 한국과 다르게 계좌 유지비가 있고, 카드를 분실했을 때를 대비해서 드는 의무적인(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는) 보험이 있다. LCL은 학생의 경우 계좌 유지비가 거의 무료와 마친가지라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은데 직원이 나는 나이가 많아서 해당이 안된다고 했다.(그런데 결국 할인이 됐다.) 원래 엠마와 나 모두 선임급의 직원에게 헝데뷰를 잡았었는데 한 번에 한 사람씩 밖에 상담이 안된다 하여 나는 다른 신참 직원과 상담을 하게 되었다. 신참 직원은 머리와 생김새가 앙투완 그리즈만을 꼭 닮았는데 뭔가를 열심히 하긴 하고 또 꽤나 여유가 있는 척을 했지만 내 눈에 보기에도 많이 서툴렀고 계산이 자꾸 바뀌고 말도 자주 바뀌었다. 몇 번의 한숨, 포기, 번역기를 통한 번거로운 소통을 겪으며 나는 얼른 프랑스어를 잘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굴뚝 넘은 연기만큼 높아졌다. 결국 그 직원은 선임 직원에게 전화로 한소리를 듣고 또 한참을 헤매다가 수요일에 다시 오라는 말을 했는데.. 상담을 끝내고 받은 서류는 엠마와 틀린 게 없었다. 수요일 오라고 한 것도 맞긴 한 건지.. 찜찜한 마음을 안고 지하철을 탔다. 연휴의 시작을 앞두고 엠마가 물었다. “파리에서 제일 가보고 싶었던 곳이 어디야? 거길 가보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을 했다. Place D’Italie역에서 6호선을 타고 서쪽을 향해 갔다. 6호선은 우리가 늘 타는 7호선과는 다르게 문에 있는 손잡이를 위쪽으로 돌려야 문이 열린다. 연휴의 시작이라 그런지 나들이를 가는 연인과 친구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이 가득했다. 출근 시간과 다름없이 혼잡한 지하철이 Bir-Hakeim역에 도착을 하자 차 안의 승객 거의 대부분이 내렸다. 당연히 우리도 내렸다. 출구 번호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다들 La Tour Eiffel을 보러 온 거니까. 지하철 출구를 나와 센느 강변을 따라 오른쪽으로 발을 돌리자 거대한 철골구조가 두 눈에 들어왔다. “저게 에펠이야?” 가까이에서 본 에펠은 아름답기 보다는 조금 무서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서는 상징이 필요하니까 우리가 가지는 것은 결국 상징과 같은 그림들 사진들 그리고 몇 마디의 말이나 글뿐이니까. 상징이 상징다워질 수 있게 우리는 에펠을 지나 조금 멀리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센느강을 따라 예쁘다고 소문이 난 알렉상드르 3세 다리까지 산책을 하기로 했다. 한주 내내 흐리고 비가 오던 파리는 그날만큼은 맑았고 노을이 내려앉은 센느강은 서쪽 끝이 온통 노랗게 불타올라 강이 아니라 커다란 태양이 내뿜는 하나 은색 빛줄기인 것만 같았다. 군데군데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동쪽으로 조금 걸어 나가자 거대하고 검고 무섭기만 하던 에펠이 점점 친숙한 모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한 손에 잡힐 듯 작아진 에펠은 노랗고 푸른 하늘을 걸치고 ‘이젠 어때?’ 말하는 듯했고, 우리는 몇 걸음마다 멈춰 서며 상징을 가지려 애를 썼다. 센느강을 따라 걷고 강변에 앉아 싸온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으면서 다리와 탑 그 자체만이 아닌 그날의 다리와 탑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무척 행복했다. 돌아서 가고 돌아가고 다시 또 올 수 있다는 것. 문득 엠마와 처음으로 라오스 여행을 갔을 때, 함께 차를 탄 독일인이 우리의 10일간의 여행 일정을 듣고 매우 놀라워하던 생각이 났다. 어디를 가는 것, 무언가를 가지는 것만 아닌 어디에선가 지내고 무언가를 쓰는 것 그래서 삶과 삶 아닌 것 둘 사이에서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가볍게 살아가는 것. 그래 그것이 우선 내가 바란 작은 욕심이었지. 어느새 파리를 외쳐대는 풍경들보다 집에 가기 싫다고 부모의 반대로 달려대는 붉은색 패닝의 꼬마 아이, 파리 안의 (파리가 아니라 그 어디에라도 안의) 사람들에게로 시선이 옮겨갔다. 버리고 온 것도 포기하고 온 것도 아니구나. 어느 곳에서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이고 끊을 수 없는 관심이구나. “엠마, 나 잘해볼게.” ‘좋은 날이었다’ 라고 서로 말해주었고, ‘좋은 날이었다’ 고 쓰고 싶었다. 글, 영상 레오 2019.11.14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집을 계약했다.
프랑스의 가을은 하루 걸러 비가 온다.기온은 한국과 크게 차이가 없는 거 같은데 비가 자주 오고 바람이 많이 분다.역시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던 저녁,차가 막혀 40분을 늦은 므슈와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집을 계약했다. 몇 번, 신중히 생각을 해보려다 집을 놓친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집을 보고 현관을 나오기가 무섭게 므슈에게 ‘이 집을 계약하고 싶어요’라고 메일을 보냈다. 불안함에 곧장 전화까지 걸어 서툰 영어로 나의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을 시켜줬다. “므슈 나 정말로 이 집을 계약하고 싶어.” “그래? 그럼 월요일 5시에 사무실로 와.” 사무실로 오라는 말이 나와 계약을 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계약 전에 또 다른 절차가 있는 건지, 우리만 오는지 계약을 원하는 모든 사람이 오는 건지 확신할 수가 없어 주말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Ivry에 있는 므슈의 아정스에 15분 정도 일찍 도착했을 때, 므슈의 아정스 앞에는 이미 어떤 한국인 커플이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 순간 ‘아 오늘이 계약을 위한 날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어 가슴이 덜컹했다.얼핏 한국어로 ‘5시에 오기로 했어’하는 말이 들렸다. 그 순간 우리의 불안감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 갔고 해가 진 파리의 바람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아정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꼭 붙어 서서 서로의 체온으로 칼 같은 바람을 견디며 우리는 ’적’들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뭐지 오늘 계약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닌가..” “아닐 거야. 기다려보자.” “우리 뒤에 본 사람들도 계약하고 싶어 한다고 들었는데 그 사람들인가?” “오늘이 소문으로만 듣던 주인과의 면접인 건가? 제길.”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우리는 더욱 긴장을 했고 ‘적’들은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적’들이 아정스 옆 건물로 들어가더니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건물 안에서 편한 복장을 한 한국인 한 명이 ‘적’들을 뒤따라 내려오는 게 아닌가. “뭐지?” “세 명이면 우리 집 계약하러 온 건 아닌 거 같은데..” “아 혹시.. 계약할 때 프랑스어 잘하는 친구 데려가곤 하잖아. 그런 거 아니야?” “그런가? 아, 우리 또 졌다.” “근데 캐리어는 왜 가지고 왔지?” “오늘 바로 열쇠 받고 집 들어가는 걸로 착각한 거 아냐?” 불안함에 논리가 부족한 얘기들을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어가며 추위를 견디고 있을 때 검은색 도요타 프리우스가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그렇다. 그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었다.우버 기사가 그들의 캐리어를 드렁크에 실을 동안 그들은 편한 복장을 한 한국인과 포옹을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편안하게 시트의 몸을 기댄 채 꼭 붙어 바람을 견디는 우리를 바라보며 그곳을 떠나갔다. 그래, 서울이면 하지 않을 걱정들이 아직은 많다. 집을 구하는 일이 소문만큼 막막하긴 했다. 파리는 생각보다는 작고 또 높은 건물들도 없어서 그런지 집을 구하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처럼 이 집 저 집 보면서 며칠간 고민을 하고 결정할 수 있는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한 집은 우리가 한 시간 정도 더 고민을 했을 뿐이었는데 이미 다른 누군가와 계약이 됐다고 했다. 프랑스에 파리에 처음으로 오게 된 우리 같은 학생들과 워홀러들은 집을 구하는 데 있어 몇 가지 큰 제약이 있는데, 이건 어쩌면 비단 프랑스와 파리 만의 일은 아니고 우리나라에 처음 오게 된 외국인들도 겪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집이 있고 출생신고가 되어 있고 나이가 차면 다 같이 주민등록증을 받고 또 은행 계좌까지도 함께 만든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에 직접 집을 구할 때 필요한 것들 중에 못 갖춘 건 돈 밖에는 없지만 외국에서 처음으로 집을 구하려고 할땐 우선 모순적인 상황을 먼저 맞닥뜨리게 된다. 임차인을 구하는 대부분의 집주인들은 우선 임차인의 은행 정보를 요구하고 집세와 보증금도 수표로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합법적인 거주에 관한 증명서가 꼭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처럼 아직 프랑스에서 긴 기간 동안 거주할 집이 없어서 거주증명을 하지 못했고 따라서 당연히 은행 계좌도 없는 처지들은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해주는 아정스와 주인을 만나야만 한다. 안 그래도 적은 파리의 집들 중에서 우리가 다가설 수 있는 곳이 매우 많이 사라지는 것이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임차인에 대한 보호장치가 많고 또 강력해서 집주인들이 임차인을 고를 때 매우 신중하게 여러가지를 고려한다. 한번 받은 임차인이 한두 달 임대료를 못 낸다고 해서 주인이 함부로 그들을 쫓아낼 수가 없고 특히 겨울에는 강제 퇴거 자체가 안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주인들은 임대료를 성실하게 낼 수 있는 임차인을 우선적으로 찾으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꼭 요구하게 되는 게 재정보증이다. 그중에서도 이들이 가장 원하는 재정보증은 임대료의 3배 이상의 월수입을 가지는 프랑스인의 재정보증이다. 당연히 우리가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안 그래도 얼마 안 되는 우리가 다가갈 수 있는 집들 중에서 또 많은 수가 사라진다. 우리처럼 재정보증이 없고 아직 거주지도 없고 은행계좌가 없는 처지는 불법 수수료를 주고(월세 한 두 달 치) 한국인 부동산이나 중국인 부동산을 이용하거나 발로 뛰며 저 모든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며 수많은 거절 끝에 이해를 해 줄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막막하고 불안하고 힘이 들 수밖에.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임대를 원하는 사람들이 거의 같은 시간에 모여 집을 구경한다. 같은 집을 두고 경쟁을 해야 하는 이들과 함께 집을 둘러보고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게 처음에는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파리에서 처음으로 집을 보러 갔을 때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성 한 분이 우리가 받은 주소의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서로 어색하게 서로를 탐색하며 아정스 므슈를 기다렸고 같이 나선형의 삐걱거리는 계단을 빙빙 돌아 5층의 집으로 올라갔다. 좁은 집 안에서 서로 '빠흐동'을 연발하면 화장실 봤다가 침실을 봤다가 퀴진을 봤다가 정신이 없었다. 집을 보러 오면 이것저것 물어봐야 할 것도 많고 확인해야 할 것도 많지만 우리는 아직 프랑스어를 잘하지 못하기에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다가 구석으로 자기를 옮겨 '어때?'하며 한국말을 속삭이고 할 뿐이었다. 하지만 함께 집을 보러 온 여성분은 프랑스에서 산 기간이 오래 되었는지 프랑스어가 매우 능통했고, 므슈의 곁에 붙어 수많은 질문을 하고 답을 들었다. 졌다. 이미 그 집은 그분에게 넘어간 것이다. 친절한 여성분이 '우리에게 뭐 물어볼 거 있으시면 물어봐 드릴게요.'라고 해주셨지만 의기소침한 우리는 별다른 질문을 떠올리지도 못했고 그분이 므슈대신 들려주는 기본적인 정보들만 듣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 근처에 여기보다 조금 더 큰 아파트가 있다는데, 두 분 괜찮으시면 므슈가 그 집을 바로 보여주실 수 있대요." 그 친절한 통역이 마치 이 집은 이미 결정이 났으니 그 집이라도 보고 가는 게 좋지 않겠냐는 듯 들려 힘이 빠졌다. 떠밀리듯 다음 집을 보긴 하겠다고 하고 나선형 계단을 다시 돌아 집을 내려오자 건물의 입구에는 프랑스물이 조금도 안 묻은 동양인 네 다섯 명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화기애애하게 둘씩 대화를 나누던 그들이 누군가 미리 집을 보고 있을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던 건지 므슈와 함께 내려오는 우리들을 보자 표정이 굳었다. 집 구하기가 쉽지 않구나. 몇 번의 실패 끝에 우리는 좀 더 귀찮은 고객이 되었고, 우리의 처지를 다 알고있는 이 므슈를 끝없이 괴롭혔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숙소 근처에 매물이 있다며 괜찮으면 집을 보러 가겠냐는 메일이 왔다. '좋다. 오늘 당장 가볼 수 있냐'라고 묻자, '오늘은 안된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도 한국인이니 직접 연락을 해 약속을 잡아서 집을 보고 연락을 하라.'고 했다. 므슈에게 이 답장을 받은 게 이곳 시간으로 저녁 10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집 방문 일정을 최대한 빨리 잡고 집 계약 의사를 조금이라도 빨리 밝혀야 집을 계약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겠다 싶어 고민 끝에 지금 살고 있는 세입자 분에게 '늦은 시간 너무 죄송하다'며 문자를 드려 보았다. 다행히 세입자분들은 자신들도 처음 집을 구할 때 같은 마음이었다고 괜찮다며 그 늦은 시간에 흔쾌히 방문 시간을 잡아 주셨다. 집은 므슈가 보내준 사진보다 훨씬 우리의 맘에 들었다. 창이 큰 도로로 향해 나 있었지만 이중창을 닫으니 도로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빛도 잘 들고 깔끔하고 적당히 낡은 게 마음에 들었다. 마치 이미 이 집을 계약한 사람처럼 쓰시던 가구까지 인계받았다.  "이 므슈는 보통 큰 문제가 없으면 선착순으로 계약을 하더라고요." 중요한 팁을 받은 우리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달리듯이 현관을 나와 부리나케 므슈에게 연락을 했다. “므슈 나 정말로 이 집을 계약하고 싶어.” “그래? 그럼 월요일 5시에 사무실로 와.” 아직 어떠한 확신도 할 수 없었지만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우리는 학원 선생님이 예쁘다고 추천해주신 오페라 가르니에를 보러 가기로 했다. 오페라 역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만에 열린 파리의 가을 하늘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미 늦은 오후라 오페라 내부는 다음에 다시 와서 보기로 하고 우리는 파리의 아이덴디티가 물씬 풍기는 거리를 여행자처럼 걸었다. 멀리 루브르가 보이는 온갖 이국 언어들이 난무하는 길을 어깨를 돌려 길을 내어주며 걸었다. 백년은 더 된 듯한 건물들 아래에 나란히 자리 잡은 키가 크고 멋진 흑인 가드들이 문을 열고 닫아주는 명품샵들을 크게 돌아, 다시 우리의 (적어도) 일 년을 품을 곳으로 어깨를 붙이고 덜컹거리며 돌아왔다. W, M 레오 2019.10.29 파리일기_두려운 날이 우습게 지나갔다
오늘 파리행 티켓을 끊었다
오늘 파리행 티켓을 끊었다. 며칠 전 새벽 괜찮은 가격에 괜찮은 항공사의 티켓이 보인다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래, 이거 라면 끊을 수 있겠다 싶어 결제를 하려다 덜컥 이게 맞을까 겁이 나서 이것저것 조금만 더 알려보자 하던 참에 가격이 많이 올라버렸다. 탓할 일은 아니랬지만 미안했고 속이 많이 아팠다. "이렇게 오래도록 기다렸는데 뭘 더 망설이는 걸까." 그런데 오늘 아침, 그때 본 가격보다 훨씬 싸게 같은 시간 같은 항공사의 티켓이 풀려서 잠도 못 깬 얼굴로 서둘렀다. 복잡한 화면들이 채 지나가기 전에 카드사에서 친절한 문자가 왔다. 됐구나. 그렇게 서른여덟의 가을, 나는 그녀를 따라서 이유 없는 유학을 떠난다. 몇 해 전에 그녀가 갑자기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을 했을 때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함께 가자는 말을 돌려주었다. 혼자서 이런저런 걱정을 했던 그녀는 그만큼 많이 놀랐지만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걷고 있던 삶이다. 마지못해서 집을 나서고 카페와 공원을, 다른 이의 학교에서 또 걷던 삶이다. 어렵지 않다. (고 생각 했다 그때는.) 서른일곱 해 동안 나는 끈질기게 삶을 미정의 상태 속에 녹여 두려고만 했다는 것을 안다. 무엇이 되려 하기보다 무엇도 안되려고 했었던 나날들. 나의 가장 강력한 마음은 나를 구속하려는 힘들 앞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안다. 나는 사관학교 전체와 싸워 본 적이 있고, 도와준다는 수많은 손들을 적으로 돌리기도 했었다. 붙잡힐 거 같아서 여기에서 이렇게 살면 된다고 혼 내려는 거 같아서 모래 장난처럼 쌓다가도 발로 으깨 버리고 엄마의 한숨을 벽 너머로 들으며 반성하듯 씻고 잠든 나날들. 그곳에서는 우리가 마음먹고 준비를 기다리는 사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테러가 일어났고 매주 노란 조끼를 입은 분들의 격렬한 시위가 있었고, 공짜와 다름없던 학비가 올랐고, 가장 높은 첨탑이 무너져 내렸다. 그곳은 이제는 더 이상 세상을 이끌어 가는 곳도 아니고 새로운 시도들이 움트는 곳도 아니다. 예술적이기보다는 상업적이고 새롭기보다는 보수적일 수 있다. 넥타이와 턱시도를 강요하고. 시네마를 고정하려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괜찮다. 그곳은 내게는 가장 먼 서쪽. 핑계 없이 감내할 삶을 이제야 가져 볼 이곳 아닌 저곳. 누가 떠민 것도 아니고 그곳의 누구도 나를 받아주겠다고 하지 않는 우리가 억지로 날아가서 내린 땅이기에 괜찮다고. 눈을 뜨고 느껴지는 낯선 공기에 날을 세우고. 오랫동안 끓이기만 하던 죽에 불을 끄고. 우리 함께 먹자. 안전한 나는 삶을 그리지 않고 구상만 하다 잠만 잤으니까. 위험한 우리는 우리보다 조금씩 더 큰일을 해야 할 거라고. 우리는 뭘 모르는 아이들처럼 서로를 안심시켰다. W 레오 P Earth 2019.05.21 파리일기_두려운 날이 우습게 지나갔다
피의 언덕, 몽마르뜨
파리의 집들은 건물에 창을 가리는 가리개가 장착이 되어 있다. 오래된 집들은 나무판자로 짜인 나무 덧창이 유리창 바깥쪽에 달려 있고, 우리 집처럼 발같이 내렸다가 올렸다가 할 수 있게끔 되어 있는 곳도 많다. 우리 집은 큰 도로를 끼고 있어, 밤늦은 시간까지도 오가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우리 집 벽에다 침입자를 풀어놓는다. 하여 내가 좋아하는 노을이 흩어지고 나면 덧창을 돌돌 돌려 빛과 집을 갈라 둔다.  불을 끄면 그야말로 암흑이다. 서로를 더듬어야 찾을 수 있을 만큼 어둡다. 처음에는 이러한 어둠에 적응이 안되었지만 지금은 금세 그녀의 온기에 기절을 해버린다. 아침이 오면 소리는 아침을 알려도 빛은 어떤 소식도 전해줄 수가 없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어두운 방을 더듬어 창가로 가 무거운 발을 천천히 돌려 열 때면 일종의 기대감이 생긴다. 오늘 날씨는 어떨까? 프랑스의 겨울은 거의 흐리고 비도 잦기 때문에 기대는 자주 무너지지만 오늘처럼 맑은 날이면 어디론가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날이 아주 좋았다. 이틀 전만 해도 소나기가 같은 비가 내리다가 해가 지자 파리에서는 무척 귀하다는 눈이 되어 내렸다. 파리에서 맡는 첫눈이라니. ‘신기하다’ 라는 말을 또 버릇처럼 뱉으며 우리는 아이처럼 팔을 우산 밖으로 내밀어 내리는 눈을 일부러 옷에 묻히곤 했다.  날이 아주 좋았다. 오늘은. 구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햇빛은 어떻게든 틈을 찾아 땅을 노랗게 다 칠을 해두었다. 엠마도 오랜만에 밝은 날에 기분이 좋은지 오늘은 조금 먼 곳까지 가보자고 했다. 어디가 좋을까 하다가 몽마르뜨가 눈에 걸렸단다. 관광객들에겐 악명 또한 높은 곳이라 우리가 여태껏 가볼 생각도 않았던 곳. 우리 집은 파리의 남쪽에 있어서 몽마르뜨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프랑스의 겨울은 낮이 짧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부터 서둘렀다. 혹시 몰라 돗자리와 커피, 따뜻한 차까지 챙겨 들고 집시들과 팔찌를 강매하는 이들이 있다는 곳, 몽마르뜨를 향해 겁 없이 발걸음을 서둘렀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2호선의 Anvers역이 아니라 14호선의 Abbesses역에서 내렸다. 노을이 내리는 시간에 맞춰 몽마르뜨에 오르기 위해서 시내에서 상점들을 둘러보며 시간을 조금 보냈다. 어제는 노란 조끼 시위 때문에 시내의 주요 역들이 문을 닫았다는데.. 오늘도 알 수 없는 시위가 있어 시내에는 무장한 경찰들이 가득했다. 아직은 본격적인 세일 시즌이 아니어서 쇼핑에는 별달리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거리의 건물들에 내려앉은 귀한 햇빛이나 구경하면서 몽마르뜨 언덕 쪽으로 걸었다.  중간에 생라자흐 역이 있어 화장실도 들를 겸 들려보았다. 생라자흐역의 대합실은 2012년에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해 깔끔한 현대식 상점들이 벽을 온통 차지하고 있었다. 모네의 그림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과 같은 분위기는 적어도 쇼핑몰로 바뀐 지금의 대합실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이미지와 삶의 장소에서 사람들은 전혀 다른 것을 바란다. 유지와 변화, 낡음과 새로움, 불편과 편리 사이의 갈등은 모든 오래된 도시들에겐 쉽게 가라앉힐 수 없는 문제들일 테다. 사람들이 바라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모인 도시의 매끄럽고 조용한 하루도 누구에게는 견딜 수 없는 병실 같은 곳이 될 테고. 아무래도 테러가 일어난 지 몇 년이 안 되어서인지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4명씩 짝을 이뤄 역 안을 순찰하고 있었다. 베레모를 쓰고 있지만 허리에 철모를 차고 있었다. 어깨를 뭉치게 할 한 팔 길이의 자동소총을 매고 주변을 둘러보는 병사는 여드름이 다 지워지지 않은 금발의 청년이었다. 역시나 이곳도 파리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화장실이 유료였다. 1유로나 하는 통에 줄까지 길어 우리는 화장실 가는 것을 포기하고 생라자흐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Abbesses역으로 곧장 가기로 했다.  Abbesses역에서 몽마르뜨 언덕으로 나가는 출구는 무척 독특했다. 병원에서와 같은 육중한 엘리베이터가 두 개쯤 있고 계단은 중세 시대 성처럼 나선형으로 빙빙 돌아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스무 번도 더 꺾이는 나선형 계단에 어지러움마저 느끼며 허벅지를 부여잡고 지상으로 나가자 아이들이 졸라대는 회전목마 너머로 기대하지 않았던 ‘사랑해 벽’ 이 보였다. 굳이 가봐야지 하는 생각은 안 했었는데 막상 보니 파란색 벽이 무척 예뻤고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아 슬쩍 들려서 사진을 찍고 찍어주었다. “자, 이제 긴장해.” “응, 긴장해.” 서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인을 해달라는 꼬마들이 천사 같은 웃음을 띄면서 달려들었고, 우리는 ‘농, 파흐동.’을 연발하면서 아이들을 벗어나 좁은 언덕길을 향해 총총걸음을 걸었다.  걱정과 달리 Abbesses역에서 사크헤 쾨흐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는 집시들과 팔찌를 강매하는 무리들이 없었다. 좁은 골목들이 갈라진 틈으로 파리의 시내들이 조금씩 내려다 보였다. 좁은 길에는 카페와 빵집, 작은 레스토랑 그리고 중고의류와 액세서리들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가 들려 본 한 가게는 옛 창고를 그대로 고쳐서 쓴 듯 철제로 된 나선형 계단을 서로 비켜주면서 내려간 지하 쇼룸은 오래된 지하무덤에 온 것만 같았다. 좁은 쇼룸 안에는 한 벌씩 밖에는 없을 듯한 옷들이 적당히 진열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커플들과 부부들이 그러하듯 여자들은 옷을 고르고 남자들은 통로와 구석에서 자신들의 파트너를 넌지시 바라보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길을 내어주느라 또 나름 바빴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어색해서 한 두 번을 옷을 찾는 듯 뒤적거리는 것도 꼭 같았다. 나도 엠마가 옷을 고르면 가서 한마디 의견을 보태주고 다시 물러나서 여러 사람에게 길을 내주고 다시 자리를 잡고 하는 일을 반복했다. 내심 마음에 드는 옷이 있는 듯했지만 한국과 달리 구입은 하지 않고 나의 손목만 잡고 상점을 빠져나가는 엠마였다.  또 두어 번의 긴 계단을 기어가듯 오르자 하얗고 이질적인 사크헤 쾨흐 대성당이 우리의 눈을 찔러댔다. 대리석 안에 함유된 방해석 성분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하얀빛을 잃지 않는다는 모스크를 닮은 신기한 이름의 거대한 성당. 마치 파리의 자잘한 건물들을 피해 언덕에 내린 우주선 같은 이 이상한 성당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자 성당을 등 뒤에 두고 어디론가로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산 하나 없는, 같은 높이의 건물들로 대지를 말끔히 지워 놓은 파리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우와.” 우린 우리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우리의 뒤쪽에서 걸어오던 여러 국적의 사람들도 연이어 탄성을 질렀다. 마치 넓게 덮인 구름의 무게에 눌린 듯 지독히도 같은 높이의 건물들이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조금씩 다른 아이보리 빛을 반사시키면서 번져 있었고 간혹 보이는 뾰족하게 높은 성당의 첨탑들과 두드러지게 높아 보이는 에펠탑의 머리만이 이곳도 역시 하늘을 탐하는 ‘인간’의 도시임을 외치고 있었다. 산도 없고 어떠한 굴곡도 없는 평평하고 둥근 판이 우리를 바늘로 하여 천천히 돌고 있는 듯 어지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아직은 노을도 시간이 남아 우리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사크헤 쾨흐 대성당은 게임의 속 배경인 것만 같은 둥근 모양의 외형과는 달리 실내는 성당 안에 든 사람들에게 강제로 숭고함을 쥐어주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넓은 성당의 한가운데에 거대한 돔이 서 있었고 그 돔의 가슴쯤을 갈라 낸 창문들에서 내려온 빛들이 반사와 반사를 이어가면서 성당 전체를 같은 밝기로 밝히고 있었다. 어두운 벽 곳곳에 모자이크된 성화들은 어두운 색들로 채색되어 있어 그림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기보다는 모두가 성당 안의 어떤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다만 중앙 제대 위의 작은 돔을 가득 덮은 예수의 성심을 나타난 거대한 모자이크화만은 사람들에게 이 성당의 존재 이유를 강변하고 있는 듯 강렬했다. 대성당은 미사와 기도를 드리는 성당 중앙을 비어 두고 관람객들이 그 주변을 한 바퀴 둘러 나갈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우리가 성당 안을 천천히 돌아나가는 동안 1885년부터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는 성체조배가 행해지고 있었다. 수녀님이 부르는 성가는 조금 섬뜩하게 아름다워 잠시 멈춰 바라보는 사이 하마터만 나의 죄를 다 고백할 뻔했다.  대성당이 자리 잡은 몽마르뜨 언덕은 지금은 낭만과 예술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역사적으로는 파리 전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파리를 온통 불태울 수 있는 포대가 설치되어 있었던 곳이다. 그런 이유로 이곳은 파리의 최후의 보루였고, 이곳을 차지한 이들이 곧 파리의 주인이기도 했다.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에게 무력하게 항복을 한 후 세워진 제3공화정은 프로이센에 대한 항전을 계속 이어가지만 곧 파리를 포위당하고 만다. 프로이센 군에게 사방을 포위당한 채 132일 동안 외부로부터 어떠한 물자도 공급받지 못한 파리의 시민들은 동물원의 동물들, 거리의 고양이, 심지어 숨은 쥐까지 잡아먹어야 할 만큼 비참한 상황이었다. 이에 결국 3공화정부는 프로이센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이후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정부는 왕당파등 보수파가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정부를 차지한 보수파들은 대혁명의 유산이자 프로이센에 대항해 최후까지 항전을 하던 파리를 오히려 적으로 여기며 파리를 무력화시키고자 몽마르뜨의 포대를 장악하고 파리에 있는 국민 의용군의 무장을 해제하려고 했다. 그런 공화정부에 반대해 일어난 파리 시민들의 봉기는 세계 역사 상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인 파리 코뮌을 출범시키게 된다. 지금 봐도 놀랄만한 여러 가지 진보적인 정책들을 펼치며 시민들에 의한 정부를 꿈꾸었던 파리 코뮌은 72일 만에 사회주의 혁명을 두려워하는 유럽의 지원에 힘입은 보수적인 공화정부에 의해 잔인하게 진압되었다. 당시 175만 정도였던 파리의 인구 중에 2프로에 가까운 3만여 명의 시민들이 한 번에 학살을 당했다. 코뮌에 대한 보수파의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끝난 후 보수파 정부는 프로이센에 대한 굴욕적인 패배를 포함한 이 모든 비극이 자신들의 도덕적인 타락의 징벌이라는 교회의 믿음에 따라 다분히 의심스러운 속죄하는 마음을 담아(속죄하는 말 아래 기존의 질서로 다시 정리되길 원하는 보수파의 의도 또한 담아) 피의 언덕 꼭대기에 이 대성당의 건립을 추진했다. 대성당은 30여 년의 시간 동안 진짜로 징벌을 받고 있었을 민중의 기부금만으로 만들어졌다. 건축가가 이 지독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건물을 나와 전망대로 유명한 대성당의 돔에 오르려다 6유로나 하는 가격과 가득한 사람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낮 등을 이유로 우리는 그만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이 다 보는 곳 말고, 나만이 발견한 것 같은 착각이라도 가질 수 있는 곳을 원하는 건 바꿀 수 없는 나의 혹은 우리의 버릇이다. 어릴 적부터 예술하는 사람을 꿈꾸면서 처음에는 지독히 노력을 했고 마침내는 지울 수 없는 강박이 되어 버린 것이 바로 ‘나만의 것’이라는 환상이다. 어릴 때는 남들이 따라 할까 무서워서 무슨 생각이 들면 남들에게 심지어 선생님에게도 의견을 구하지 않았고 남들을 따라 하게 되는 일도 무서워서 사람들의 충고 또한 흘려듣고 보고 배워야 할 작품들 또한 일부러 보지 않으려 하면서 스스로를 작은 감옥에 가뒤 놓곤 했었다. 이제 와서 보면 예술이라는 것은 자기 안에서 시작하는 것은 맞지만 오로지 자기 안에서만 결정되어 나오는 것은 아니고 문제로 가득한 어떤 가여운 자아가 세상과 부딪히는 순간, 누구의 결재도 없이 어지럽게 튕겨 나오는 것들, 다만 그것 중에 무엇일 뿐인 것을 안다. 그 여러 잔해들 속에서 또 마치 자신 능력 안에서 키워 낸 자신만의 것인 듯 하나를 골라 몰래 적당히 망쳐가다가 너무 늦었다며 께름하게 자기 이름을 써 놓고 뒤돌아 울곤 하는 거겠지. 아름다움은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그저 순수함 그 자체이니까. 아름다움은 순수함을 잡으려는 욕심이고 그래서 순수함을 결국 훼손시키는 폭력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시선은 한계가 있다. 너비와 깊이 또 지속시간에서 모두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결국 바라보는 행위조차 순수함을 잘라내는 것이다. 아름답다면서 무엇과 무엇을 갈라놓고 무엇만을 더 오래 기억하려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일종의 불순함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것 자체가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자신을 아름다움의 시작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그 누구도 자신만의 힘으로는 아름다움을 얻어낼 수 없다. 무엇보다 일단 만나야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어떤 단계에서 조차 순수한 자기만의 의견을 가질 수도 없다. 오래된 무한에 가까운 기억들이 나를 속이고 나의 의견에 남들의 의견을 섞고 티가 나지 않게 흔들어 놓는다.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모르겠다고 하고 내 이름을 써 놓았지만 그게 나의 것일까 나는 결국 무엇일까 하는 질문만은 절대로 지울 수가 없다. 순수하게 넓은 지평에서 나의 우연한 위치와 나의 보잘것없는 선택이 실은 내가 하는 건지도 모를 선택이 모여서 만든 조악한 형상. 그러니까 무엇도 열광할 만큼 대단하지 못하고 또 무엇도 경멸할 만큼 나쁘지 않다. 결국은 하나의 다 우연한 조각일 뿐.  하지만 길을 즐긴다는 불순함은 길을 하나로 보지 않는 일에서만 가능한 것. 한 걸음이 한 걸음과 다르다고 믿게 만드는 몹쓸 자의식이 결국 오해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를 한 걸음과 다른 한 걸음이 있다고 믿게끔 만드어 주는 것. 결국 예술이 종교에 기대어 생명을 이어왔지만 그것은 일종의 기만이었고 예술은 종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차라리 다른 종교 인지도. 예술을 한다는 것은 내가 우연한 기회에 잘라 가진 무엇으로 ‘이건 정말이지 ‘무엇’ 을 의미하고 있어!’ 라며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일. 그러니까 그것은 곧 위험한 포교인 거다. 성공하면 권력을 가지지만 실패하면 돌을 맞거나 쫓겨나 굶주리게 되는 것. 돌아가는 길에 난관을 붙잡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따라 나도 난관에 붙어 노을 안에 선 에펠탑을 찍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쓰고 그래서 결국 무엇이고 싶은 걸까. 바람이 차서 상점에 들려 털모자를 사려다가 맞는 것이 없어 두고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작은 광장에 모여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을 지나 또 두어 번 긴 계단을 걸어 육중한 엘리베이터가 있는 Abbesses역으로 돌아갔다. 글, 이미지 레오 2019.11.25 파리일기_두려운 시간들이 우습게 지나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