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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까지 다룬 내용에서, 드디어 약 6개월에 걸친 우여곡절 끝에 꿈에도 그리던 '나만의 게임'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기획자 겸 작화가, 개발자로서의 여정이 일단락됐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판매자의 여정을 시작할 차례가 왔습니다. 게임을 만들었으면 세상에 공개해야죠!
게임을 어떤 식으로 판매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작업 초기 단계에서 이미 결론이 나와 있었습니다. CD를 생산할만한 여유는 없었고, 설령 CD를 만든다 쳐도 이걸 일본에 가져가서 팔 방법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불가능까진 아니겠지만, 예상 수익과 일본까지 오가는 비용을 비교하면 큰 손해만 볼 게 뻔했으니까요. 게다가 코미케 참가가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고요.
남은 답은 온라인 다운로드 판매였습니다.​ 


# 온라인 동인게임 샵을 알아보자!

일본에는 꼭 게임이 아니더라도 동인지나 음악, 보이스작품 등의 분야에 수많은 동인 크리에이터가 있었고, 이들을 위한 유통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다운로드 판매 사이트만 보더라도 DMM, DL겟츄, DLsite, 멜론북스, 픽시브BOOTH 등등 셀 수도 없이 많죠. 그동안 소비자 입장에서만 이용하던 이런 사이트들을 차례로 찔러볼까요?​ 
온라인 다운로드 샵에 작품을 등록하려면 먼저 서클 등록부터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필자의 여정은 여기서부터 막히기 시작했습니다. 서클 등록 시 필수적으로 입력해야 하는 사항 중에 '주소 입력'과 '계좌번호 등록'이 있었거든요.
주소 입력의 경우 일본 내 주소만 입력 할 수 있도록 도도부현(우리나라로 치면 시/도) 선택이 필수였습니다. 외국인 회원 가입을 허용하는 사이트의 경우 이 도도부현 선택 목록에 '해외'가 포함되는데, 서클 등록 화면의 선택 목록에는 해외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계좌번호.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에서 쓰던 계좌번호는 등록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각 샵마다 "외국인은 어떤 식으로 서클 등록을 해야 하는가" 하고 문의 메일을 보냈더니, 거의 모든 샵에서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해외 은행으로는 송금 하지 않으니 일본 내 은행 계좌가 필수"라고요.
해외 송금 수수료 등을 생각해 보면 나름대로 이해는 가는 부분이지만... 그렇다면 일본 내 은행 계좌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일본에 6개월 이상 거주해야만 계좌를 만들 수 있다"는 내용만 나옵니다. 아하하, 일본에는 여행만 몇 번 가본 게 전부인데, 아하하, 아하하하하.​
어떡하지? 일본에 사는 고모한테 계좌 하나만 열어달라고 부탁해야 하나...? 그러면 차명계좌가 되는 건데 법적으로 문제는 없나? 만약 수익금이 들어오면 통장 관리는 어떻게 하지? 괜히 귀찮게 민폐만 끼치는 건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메일을 보냈던 각 샵들 중 유일하게 DLsite쪽에서 다른 내용의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DLsite에 직접 서클 등록을 하는 건 무리지만, 자신들은 외국인 서클을 대상으로 하는 'Curious Factory'라는 별도의 대행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요.
답장을 받자마자 곧바로 Curious Factory 사이트를 열어보니 확실히 이쪽엔 길이 있었습니다. 수익금 송금 방식도 페이팔을 이용하기 때문에 일본 내 은행 계좌가 없어도 이용할 수 있었고요. 페이팔은 예전에 플레이스테이션4를 샀을 때 DLC 구매를 위해 가입해놨었는데, 그걸 이런 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었네요.​
대신 마음에 걸리는 건 대행 수수료. 이곳을 거쳐 게임을 등록할 경우, 그동안 알아봤던 각종 동인샵들 중 가장 비싼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멜론북스'의 경우 판매가격의 30%를 수수료로 가져갑니다. DL겟츄는 약 40%를 가져가고요. 픽시브BOOTH의 경우는 파격적으로 3.6%밖에 수수료를 가져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곳 대행사를 거칠 경우 DLsite와 대행사 양쪽에서 수수료를 제하기 때문에 판매 가격의 약 55%를 떼어가는 구조였습니다. (정확히는 가격표가 지정돼 있고, 가격대에 따라 수수료 비율이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국내에서 'for Kakao' 붙는 모바일게임의 판매 수수료에 비교한다면 그나마 상황이 낫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부담이 전혀 되지 않는 액수도 아니었죠. 비싼 건 비싼 거니까요.
하지만 별 수 있겠나요? 다른 샵이 아무리 수수료가 낮게 책정되더라도 그곳은 서클 등록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 필자와 같은 외국인 입장에선 이곳 외엔 일본에 게임을 발매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샵을 거치지 않고 직접 블로그 등 개인 사이트에서 판매하자니 세금이라든지 하는 게 이것저것 걸릴 것 같고, 개인 사이트의 방문자 수와 인지도가 유명 온라인 샵을 이길 것 같지도 않았고요.​


# 대행사를 통해 다운로드 판매 사이트에 등록하다!

결국 최종적으로 Curious Factory를 통해 DLsite.com에 발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가격은 원래 천 엔 정도를 생각했는데, 수수료 빼고 필자한테 7천 원이라도 남으려면 1,300엔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일본에서는 여기에 소비세(소비자 부담)가 추가로 붙기 때문에 실제 판매 가격은 1,404엔(한화 약 14,000원)이 됐습니다. 게임 하나 판매 시 필자의 순수익은 705엔(한화 약 7천 원)이 되고요.
(※ 일반적인 동인 비주얼 노벨의 경우 보통 1,000~1,500엔 안쪽에서 팔리기에 비슷하게 가격을 설정한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훗날 재앙이 되어 돌아옵니다)
페이팔에 입금 계좌를 등록한 뒤 Curious Factory에 서클 등록을 하고, 게임 등록을 진행했습니다. 게임 구동의 최소 사양을 체크할 방법이 없어서 다른 비주얼 노벨 게임의 최소 사양을 참고해서 적고, 샵에 올라갈 샘플 이미지와 상품 설명도 적고요.
게임의 연령등급 심의는 1차로는 작가가 연령등급 신청을 하고, 그 뒤 각 샵에서 자체적으로 심의를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콘솔 게임의 경우 심의 기관에 따로 신청 해야 하는데, 동인작품의 경우는 이렇게 샵에서 자체 심의를 한다고 하네요.
필자는 R-15 등급으로 신청했습니다. 작중에 야한 장면은 따로 없지만 1~2줄로 생략된 베드씬이 있고, 전쟁을 묘사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몸이 어디가 잘려나가고 다치고 하는 텍스트 연출이 많았거든요. 게임 비주얼로 보면 배경에 피가 뿌려진 장면은 많지만, 실제로 사람이 다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는 없기 때문에 15세 이용가 정도가 적절하다고 생각됐습니다.​
대행사에 심의를 위해 게임을 전달하고 나니, 담당자로부터 다른 연락이 왔습니다. 게임을 등록할 경우 PV나 체험판이 있으면 판매량에 크게 영향을 주는데 혹시 준비해볼 의향이 있냐고요. 확실히 게임 홍보 측면에서 볼 때 PV와 체험판의 유무는 큰 차이가 있고요.
덥썩 물어버렸습니다. 대신 시간은 많지 않았습니다. 게임 심의는 DLsite쪽에서 진행하는데, 이게 끝나는 데에는 길어도 1~2주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거든요. 게임 홍보나 다른 일정들을 생각하면 4일 안으로 PV와 체험판 제작을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우선 PV는 제대로 콘티를 짤 틈도 없이 무작정 프리미어를 열고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필자의 게임에 Live2D처럼 움직이는 그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컬곡은 커녕 캐릭터 음성조차 없는 열악한 상황. 오로지 그림과 BGM만 가지고 매드무비 형식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급하게 다른 미소녀게임 PV를 찾아보면서 뚝딱뚝딱. 옛날에 한창 유행하던 매드무비도 찾아봤는데, 막 유리창이 깨지는 연출이라든지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연출 등은 필자가 따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당장 프리미어 자체는 조금이나마 쓸 줄 알지만, 그런 화려한 연출을 만드는 '애프터 이펙트'는 한 번도 다뤄본 적이 없었거든요. 지금은 그런 연습을 할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요.​
결국 여러 장의 투명한 png 이미지를 겹쳐서 움직이는 식으로 초 간단한 PV가 이틀 만에 완성됐습니다. 옛날에 취미로 온라인게임 동영상을 편집하던 때엔 재료로 쓴 원본 자체가 '움직이는 화면'이라서 간단하게 이어붙이기만 하면 됐는데, '움직이지 않는 그림'으로 뭔가를 만든다는 건 정말 까다로운 일이네요. 고수들이 제작한 영상을 보면 빈 곳에서도 움직이는 도형으로 감각적인 효과를 만들어내곤 하는데, 그런 센스도 부족했고요.
다음으로 들어간 작업은 체험판 제작. 이쪽은 오히려 어려운 게 전혀 없었습니다. 완성된 게임에서 초반 부분만 잘라내 별도의 프로젝트로 만들면 끝나는 일이었으니까요. 단지 용량을 줄이기 위해 초반 부분 스크립트에 필요한 캐릭터 이미지와 배경, 사운드 등을 하나하나 골라내는 작업이 '노가다'였다 뿐이죠.
렌파이로 만든 게임의 경우 보안이 약간 취약한 편이다 보니 체험판을 언패킹했을 때 후반부 콘텐츠가 노출되지 않도록 체험판 부분 외의 이벤트CG도 까만 이미지로 대체하고, 체험판용 안내 메시지까지 추가하고 나니 하루 만에 뚝딱 완성돼 버렸습니다. 이제 PV와 체험판을 대행사에 전달하면 게임 등록과 관련된 일은 끝!​


# 게임을 홍보할 수 있는 채널을 찾아라!

완성된 게임과 체험판, PV를 대행사에 전달함으로써 '개발자'로서의 할 일은 대부분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제는 유저들에게 게임을 알리고 구매하게 만드는 '판매자'로서의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필자가 제작한 게임은 앞서 연재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상업성과는 거리가 있는 게임입니다. 우선 전 연령 노벨 게임이라는 비인기 장르라는 점과 유명 IP를 이용한 2차 창작물도 아니라는 점과 스토리 분기가 다양하지 않은 단일노선 진행 방식이라는 점, 여기에 캐릭터까지 소수 취향을 위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잘 팔리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게임이죠. 야한 게임이면 소수 취향이든 어떻든 그거대로 수요층이 있겠지만 동인 시장에서 전 연령은 인기가 없거든요.
하지만 잘 팔릴 것 같지 않은 게임을 만들었다곤 해도 '판매를 포기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었습니다. 필자는 필자 나름대로 "스토리엔 자신감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부분을 잘 어필하면 소수 취향을 가진 유저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게임이 욕을 먹는다면 그건 단점에 대한 지적이니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정말로 싫었던 건 게임이 알려지지도 않고 플레이되는 일도 없이 땅속에 묻혀버리는 것이었거든요.​
(성냥팔이 소녀도 차라리 '성냥이라도 팔리고 품질로 욕먹었으면' 덜 억울했을텐데...)

동인계에는 "정말 좋은 게임은 사람들이 알아봐 준다"는 미신(?)이 있지만, 그건 전제부터 잘못된 믿음입니다. 좋은 게임, 나쁜 게임을 논하기 이전에 사람들은 그 게임의 존재조차 모르니까요. 어떻게든 홍보를 해서 이 게임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대행사 쪽에서는 자체적인 서비스로 SNS, 니지에(픽시브 같은 그림 커뮤니티 중 하나), 니코니코동화, 유튜브 등 몇몇 채널에 홍보를 진행한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프로세스일 뿐이고, 하루에만 수십 개의 동인 작품이 동시에 공개되는 안쪽에서 필자의 게임이 눈에 띄기는 어렵겠죠.
게다가 본격적으로 홍보에 들어가는 시기는 게임 발매 후 약 2주 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DLsite에는 일본인용 페이지 외에도 외국인용 영문 페이지가 따로 있는데, 필자의 게임은 일본인용 페이지에 먼저 등록되고 약 2주 뒤에 영문 페이지에 등록된다고 합니다.​
대행사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중점적으로 하는 만큼, 홍보도 영문 페이지 등록 이후 해외 유저를 대상으로 진행한다는 얘기죠. 바꿔 말하면 본래 타겟층인 일본 내 유저를 대상으로 하는 홍보는 부족하기도 하고 시기적으로도 늦어진다는 게 됩니다.
그렇다면 필자는 자체적으로 어떤 홍보를 할 수 있을까요? 곰곰이 생각하니 내가 곰...이 아니라, 일본 웹도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게임을 홍보할 수 있는 채널을 물색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능력으로 손댈 수 있는 채널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죠.
우선 인터넷 커뮤니티의 성격이 한국과 많이 달랐습니다. 국내에선 게임 웹진 게시판에 홍보 한다든지, 네이버 카페 같은 커뮤니티에 가입해 홍보하는 등의 방법이 가능하죠. 반면에 일본의 게임 웹진은 대부분 그 '게시판'부터 없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뉴스만 보는 사이트죠.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사이트 자체도 많지 않았습니다. 일본 웹에서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은 2ch이나 SNS(주로 트위터)로 통하고, 그 외엔 각자가 개인 블로그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형태였습니다. 네이버 카페처럼 '모임'이 형성된 공간은 많지 않았죠.
그 와중에 2ch은 해외에서 접속한 사람은 글을 쓸 수 없도록 막혀있는 구조. 프리미엄 회원 결제를 하면 해외에서도 글을 남길 수 있긴 한데, 정작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동인 게임 스레드는 반쯤 죽어있는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일본 내에서도 홍보 채널로는 별로 좋지 않다는 평을 듣고요. (익명 악플이 워낙 많아서...)​
남는 건 그림 커뮤니티인 픽시브와 SNS인 트위터뿐. 다행히 이 2가지 채널에서는 필자도 예전부터 일본어로 활동해오며 비슷한 취향을 가진 동인계 사람들과 나름대로 연결고리가 형성돼 왔습니다. 주로 덕질하느라 썼던 트위터가 이런 곳에서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요.
픽시브나 트위터나 양쪽 모두 홍보를 위해서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만한 그림이 필요했습니다. 그 때문에 게임 본편과는 별개로 홍보용 일러스트를 추가로 준비하고 있으니 어느덧 대망의 게임 발매 순간이 왔네요. 연령 등급은 별다른 이슈 없이 R-15. 이제 발매 일정에 신경 쓸 것 없이 게임을 홍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오랫동안 꿈꿔온 '내 게임'의 정식 발매. 스스로에겐 경사스러운 순간이기도 했지만, 이날을 기점으로 정말로 피 말리는 하루하루가 시작됐습니다. 사람들이 게임을 구매하도록 하는 건 개인의 의욕만으로 해결될만한 부분이 아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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