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영화에 톡톡히 한몫한 부산 맛집 BEST 4
영화 '바람', '친구', '올드보이', '아저씨'의 바로 그곳! 치킨 한 입에 추억과 세월도 한 입 보림치킨 스물셋엔 뭔가 있나보다. 아이유는 ‘스물셋’을 부르고 여성 보컬리스트로서 정상 궤도에 올랐고, 김승옥은 스물셋에 무려 소설 『무진기행』을 썼다. 범일 골목시장 입구에서 5분 남짓 걷다 보면 나오는 빨간 간판의 ‘보림치킨’에도 스물셋의 비밀이 숨어있다. 이곳의 주인 아주머니는 스물셋부터 범일동에서 닭을 튀기셨단다. 그것도 30년 넘게 한결같이. 배우 정우의 실제 경험담을 토대로 만든 영화 <바람>에 ‘보림치킨’이 잠깐 등장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닭을 사는 회상 씬을 이곳에서 촬영했는데, 정우가 어렸을 때 실제로 자주 놀러 왔던 추억의 장소라고. ‘보림 치킨’은 정우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들의 추억도 듬뿍 묻어 있는 진짜 로컬 맛집이다. 옛날 시장 통닭 맛을 그대로 내기 위해 여전히 야외에서 조리하고, 온도계 없이도 딱 알맞게 노릇노릇한 통구이를 내오신다. 30년 넘게 닭만 튀기셨으니 맛은 이미 보장됐고, 덤으로 추억까지 몽글몽글 피어오르게 한다. 통구이 1만 5000원, 똥집 치킨 7000원. ADD 부산 동구 범일4동 1308-14 TEL 051-632-3081 HOUR 매일 12:00~1:00매월 첫째 셋째 주 일요일 휴무 Intern 이연재 jae@univ.me 마이 무따, 더 무믄 안 되겠나 칠성식당 부산 문현동 곱창골목에 자리한 ‘칠성식당’은 60년 넘은 원조 곱창 맛집이자 추억 돋는 영화 <친구>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우연히 재회한 유오성과 서태화가 술을 마시러 가는 곳이 바로 ‘칠성식당’이다. 세월이 흘렀어도 이곳은 여전히 아침마다 연탄을 일일이 갈아 끼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덕분에 불 맛이 제대로 묻어난 쫄깃한 양념곱창을 맛볼 수 있다. 기름기를 쏙 빼기 위한 초벌구이 역시 신의 한 수. 곱 창은 흔히 몇 점 먹다 보면 느끼해서 콜라를 찾곤 했는데, 이곳 곱창은 탄산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 담백해서 물리지 않았다. 곁들여 나오는 특제 소스에 푹 찍어 입맛 따라 파무침, 무절임, 상추쌈을 적절히 조합하면 ‘혼곱’ 기준 2인분은 약간 아쉽고, 3인분은 먹어줘야 덜 아쉬운 마음으로 가게를 나올 수 있다는 것! 곱창 1인분 7000원. ADD 부산 남구 지게골로 7 TEL 051-632-0749 HOUR 매일 11:00~5:00 Intern 이연재 jae@univ.me 만두, 넌 대체 누구냐…! 장성향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최민식)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15년 동안 감금당한다. 그의 반복되는 일상을 상징하는 것은 8평짜리 단칸방, 텔레비전 그리고 ‘군만두’이다. 그는 성인 남자 주먹만한 만두를 입안 가득 넣고 복수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가 매일 먹던 군만두는 중국집에서 서비스로 넣어주는 흔한 만두와는 차원이 달랐다. 영화에서 만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닌 오대수가 중국집을 찾아내는 복선으로 기능하기 때문. 만두를 직접 빚는 집이라면 가게 마다 피를 다지고 속을 채우는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동안 만두란 다 똑같지 않나 여겼던 나는 ‘장성향’에 가서 만두에 새로운 눈을 떴다. 한눈에 봐도 거대한 만두는 표면이 노릇노릇했다. 이 집 만두는 젓가락으로 들기엔 무겁고, 손가락으로 집어 간장에 살짝 찍어 먹어야 제맛. 입에 넣자마자 만두피의 담백함과 두툼한 돼지고기 소의 충만함이 느껴진다. 너 대체 누구냐…! <올드보이>를 처음 봤을 땐 만두 맛으로 가게를 구분해내는 게 억지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입 먹자마자 이 집 만두는 여느 가게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단짠궁합을 맞추기 위해 주문한 사천탕수육도 환상. 군만두 6000원, 사천탕수육 2만 4000원. ADD 부산 동구 대영로243번길 29 TEL 051-467-4496 HOUR 매일 11:30~22:00 Intern 윤소진 sojin@univ.me 돈가스빨 제대로 받은 아저씨 스완양분식 이미 품절남이 된 그이지만 덕후의 마음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으니, 그 마음 고이 담아 ‘스완양분식’ 을 찾았다. 이곳은 영화 <아저씨> 촬영 당시, 원빈의 끼니를 책임지던 곳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전당포는 ‘스완양분식’이 있는 건물 위층에 촬영용 세트를 만들고 3일 내내 촬영한 것이라고. 사장님 말씀을 빌리자면 ‘자~알 생긴’ 원빈을 무려 3일 내내 코앞에서 보았다고! “원빈이 먹었다던 그 돈가스요!”를 외치면 갈색 소스 범벅이 된 손바닥만 한 돈가스를 뚝딱 만들어주신다. 큼지막하게 썰어서 시원한 깍두기와 함께 먹으면 역시, 옛날 돈가스만큼 깔끔한 게 또 없구나 싶다. 먹고 보니 알겠다. 스완양분식의 돈가스가 없었다면 <아저씨> 속 원빈은 탄생하지 못했으리라. 아, <아저씨>가 원빈빨을 받은 게 아니라 원빈이 돈가스빨을 받은 게 분명하다. 돈까스 5000원. ADD 부산 동구 성남이로 22 TEL 051-634-2846 HOUR 매일 11:30~20:00 Break time 15:00~17:00 일요일 휴무 Intern 이연재 jae@univ.me 대학내일 이연재 인턴 에디터 jae@univ.me [대학내일] 20대 라이프 가이드 매거진
깐 영화제와 대통령
깐 영화제가 진행중이다. 왠지 깐 영화제가 프랑스의 대표적인, 아니 세계적인 영화제 중 하나이니 당연히 프랑스 대통령이 참석한 적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 1946년부터 시작됐으니 그간 대통령이 몇 명인가? 특히 1946년 첫 제1회 영화제에서는 당시 로베르 라코스트 산업생산부 장관이 개회사를 했었다. 미녀들에 홀렸는지 라코스트 장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 1회 농산물 축제를 개최합니다!(참조 1)” 아무튼 깐에 참가한 대통령은 단 1명, 자끄 시락이었다. 오히려 그간 대통령들은 깐을 무시하거나 다른 축제에 가거나 했었다. 단, 프랑수아 미테랑과 현 대통령인 에마뉘엘 마크롱은 관계자들을 불러서 저녁 만찬만 했다고 전해진다. 전해진다...라고 한 이유가 있다. 이를테면 마크롱과 깐 영화 관계자 만찬은 4월 26일 저녁에 엘리제 궁에서 개최됐는데(레몬 타르트(tartelettes au citron)가 유명했다고 한다), 여기에 소수의 관계자만 초대됐다. 알만한 초대 대상자는 모니카 벨루치와 장 뒤자르당, 제롬 세이두(Jérôme Seydoux, 참조 2) 등인데 언론인은 딱 4명 초대됐다고 한다. 다만 엄격한 조건이 하나 있었다. 누출 금지다. 공식 사진도 없고, 관련 기사도 안 나왔다(르몽드는 어떻게 알았지?). 심지어 마크롱은 4월 내내 장관 회의 때마다, 장관들에게 절대로 깐에 가지 말라고 거듭 명령하기도 했다고 한다(물론 문화부장관 딱 1명만 예외였다). 일종의 대통령 마케팅이었을까? 제일 오랫동안(14년!) 대통령을 지냈던 미테랑 역시 단 한 차례도 깐 영화제에 간 적이 없었다. 80년대의 깐은 아직 지금처럼 럭셔리하지도 않았지만 당시 문화부장관이었던 자끄 랑에 따르면 가면 안 된다는 직감이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까지 가서 연설할 곳은 아니라는 직감이다. 다만 제40회 영화제(1987년)는 아무래도 기념이 기념인지라, 위의 마크롱의 사례처럼 엘리제 궁에서 만찬만 가졌다. 나머지, 퐁피두나 VGE(지스카르 데스탕), 사르코지와 올랑드는 깐에 참석하지 않았다. 심지어 올랑드는 재임 중 두 번째 애인인 쥘리 가예가 배우였음에도 가지 않았었다. 아무래도 주된 이유는 국민정서법. 경제가 어려운데 웬 축제에 가서 희희덕거리느냐는 여론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게다가 깐 영화제는 프랑스만의 영화제도 아니었다. 다만 예외는 자끄 시락, 제50회 영화제(1997)는 너무 상징성이 컸다. 다만 시락 대통령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 그래서 레드카펫 안 밟고 연설 없고, 경찰 호위도 없앴다(물론 금연도 포함). 그저 2시간 39분(!) 간의 오찬 식사 일정만 잡혔다. 시락 대통령은 짤방에 나온 이자벨 아자니와 공리 사이에 앉아서 식사를 했었다. 당시 시락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I'm a very very lucky man. ---------- 참조 1. Les drôles de débuts du Festival de Cannes(2017년 5월 14일): http://www.leparisien.fr/laparisienne/loisirs-detente/culture/les-droles-de-debuts-du-festival-de-cannes-14-05-2017-6946419.php 2. 이름 보면 아시겠지만, 레아 세이두의 친할아버지다. 파떼/고몽 회장을 지냈다.
꼬꼬舞飛의 강추영화 : <가버나움>
아트하우스 영화를 관람한지 오래되서(작년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후로 한달 넘게) 간만에 작정하고 <그린북>을 보려 했죠 그런데 작가와 감독에 얽힌 구설수때문에 망설여질 즈음 이 영화가 눈에 띄었죠 12살(로 추정되는) 레바논의 빈민 소년 자인이 자신의 부모를 고소하겠다는 법정 신에서 시작되는 <가버나움>은 레바논 빈민가 속으로 파고 들며 아동학대, 난민, 불법 체류자 등 엄혹한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 줍니다 자인의 부모는 자녀들이 양육이 아닌 가난 집안 생계를 위한 노동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여깁니다 당연히 학교 교육은 꿈도 못꾸는데다 출생 신고까지 하지도 않죠 우리나라에선 한창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어느 부모는 과잉적으로) 받고 자랄 나이의 자인은 본의 아니게 거칠고 반항적으로 성숙돼 버리죠 자식을 돈벌이 노동의 수단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부모의 울타리에서 늪 속에서의 삶을 지속하던 자인을 분노케 사건이 벌어집니다 애지중지하는 자신의 첫째 여동생 사하르를 부모님이 팔아버리듯 시집을 보내죠 고작 11살의 나이에... 사하르와 함께 집에서 '탈출'하려 했지만 눈물로 여동생을 떠나보낸 자인은 가출하고 무작정 도착한 곳에서 에티오피아 출신의 불법 체류자이자 미혼모인 라힐과 그녀의 아들 요나스와 함께 지내게 됩니다 소박했던 짧은 행복도 잠시, 라힐은 체포되고 어린 자인은 걸음마도 떼지 못한 요나스를 돌봅니다 <가버나움>은 자인을 바라볼때 카메라를 자인의 눈높이에 맞추듯 레바논 빈민, 불법 체류자들이 놓인 현실을 곁눈질하거나 관찰하지 않고 그속으로 들어가 드러냅니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본 일부 평자나 관객들의 불편한 시선도 있는 게 사실이죠 영화 촬영에 있어 윤리적인 부분이나 도덕적인 책임성을 거론하거나, 영화를 이끌어가는 방식이 서구인(프랑스가 공동 제작국입니다)의 시선으로 본 '빈곤 포르노'라는 지적 등이 있더군요 충분히 그런 지적이나 비판의 소지가 있는 가슴아픈 장면(누군가에겐 자극적이거나 신파적일 수도 있는)이 있기는 합니다 수입사에서도 이를 예상하고 의식한듯 영화 엔딩 크레딧에 자인과 요나스 역을 연기한 아역들의 실제 후일담을 자막으로 설명한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자극적이거나 신파적이라는 지적도 나름 일리가 있으나, 4년간 빈민가의 이야기를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는 가공되거나 가짜, 혹은 진짜인 척하는 허구가 아니라 '또 하나의 존재하는 현실'이라는 전제로 <가버나움>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똑바로 보기 힘든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런 장면들이 나온 것은 한편으론 시궁창같은 현실을 보여주거나 나열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자인으로부터 고소당한 부모들은 찢어지게 가난한 자신들의 처지로 스스로를 변호합니다 물론 자인의 부모 입장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처럼 가난하게 살아보지 않고 함부로 비난하지 말라는 항변도 이해가 됩니다 자인의 부모의 삶이나 선택을 섣불리 비난할 수 없으면서도 완전히 공감할 수 없는 것은 자인의 선택과 행동 때문입니다 지키내지 못한 여동생때문인지, 라힐의 보살핌에 대한 보답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인은 엄마와 생이별한 요나스를 친동생처럼 돌봅니다 요나스의 엄마 라힐도 자인과 요나스를 친형제라고 증언할 정도였죠 나아가 자인은 적극적으로 사회를 향해, 무책임한 어른들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토해냅니다 힘들고 팍팍한 현실에서 각자가 불가항력의 선택을 내리는 것에 덮어놓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인은 불가항력의 현실에서도 무엇이 최선이고 자신과 요나스를 비롯한 많은 동생들을 위한 선택에 따라 행동한 것이 부모님과의 결정적인 차이(제가 비슷한 상황이었어도 자인과 달리 현실에 순응한 부모님과 같았을 거란 생각이...)였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우리와 먼 지구 반대편 나라의 현실에 대한 신파나 동정이 아니라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약자나 소외된 이들에게 공감하고, 이 사회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 주변 혹은 내 자신을 향해 들려오는 올바른 변화의 목소리를 듣고 들려주는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역시 <가버나움>의 미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가버나움>에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 아역 배우들은 실제 난민 어린이를 캐스팅했다고 합니다 애어른이 아닌 이미 다 커버린 어른이 된 자인을 연기한 아역의 연기는 일반적인 대중 영화에서 빛나는 아역 배우과는 결이 다른 차원을 보여줍니다(누가 연기력이 더 낫다의 차원이 아닌) 특히 이제 걸음마를 떼려는 요나스를 '연기한' 아역은 비슷한 연령대의 아기들 가운데 단연코 최고의 연기를 해냅니다 가공하지 않은 듯 현실적임을 흉내내지 않고, 실제인 듯하게 꾸며서 연기하지 않은 '날 것'을 표현하는 아역의 연기는 <가버나움>의 주제와 미덕을 더욱 가슴깊이 새기게 해줍니다
하정우의 인간관계
아버지는 김용건. 하정우의 본명은 김성훈. 동생은 차현우(본명 김영훈). 그러니까 연기자 집안. 어린 시절부터 연기자 집안에서 자랐고, 주위에 잘 나가는 무용가와 운동선수 등 감성과 외모 모두를 도와줄 환경이 갖춰져 있던 게 하정우의 삶이다. 사실 좋은 배우가 되는데 필요한 조건을 타고 난 운좋은 남자인 셈인데,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밤샘 촬영하고 낮에 자다가 아버지 전화를 받아도 피곤한 티를 못 내요. 10년 전 집에 닥친 경제적 어려움을 복구하는 데 6년이 걸렸는데 그동안 아버지는 드라마를 20편 했어요. 5편 겹치기 출연을 하면서도 집에서도 밖에서도 내색하지 않으셨어요. 저희 형제도 잘 이겨낸다는 걸 아버지에게 보여드리고 싶었고요." 씨네21 인터뷰에서 하정우가 했던 말. 외가에서 벌이던 사업이 망했던 때인데, 연기가 직업인 사람들은 이 때 묵묵히 연기를 했다. 연기자 집안의 강점은 화려한 인맥이라거나, 타고난 재능보다는 위기를 겪어도 연기자 집안이니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 줄 수 있다는 점 아닐까. 대학 인맥들도 하정우에게 큰 도움이 되곤 한다. 이번 부산영화제 감독작인 롤러코스터의 주연배우를 맡은 정경호가 대표적 사례. 링크된 인터뷰에도 둘이 함께 술 마신 얘기가 나오지만, 학교 때부터 친했다고. 한성천, 최규환, 이지훈 등 다른 출연진들 또한 하성우의 중앙대 연극과 후배들이다. 하정우는 정경호 선배 시절 "너희 학번에서도 연예인이 한 명 나와야 할텐데, 잘 생긴 네가 가망있겠다"며 정경호를 감금해놓고 연기훈련을 시키던 선배였다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니콜라스 케이지, 윤종빈. 하정우의 영화 선생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선 적은 표정으로 많은 감정을 전달하는 모습을,(그리고 아마도 연출가로서의 배우 또는 배우로서의 연출가를) 로버트 드 니로에게서는 배우가 자신의 육체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해가면서 다양한 모습에 도전하는 변화를 배운다. 알 파치노에게는 하나의 모습을 거의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정렬을, 니콜라스 케이지에게서는 연기의 자세를 배운다. 심지어 니콜라스 케이지가 '첫 촬영현장으로 향하던 긴장을 매일 되새기기 위해' 직접 차를 몰고 다니는 것까지 배워서 따라한다. 윤종빈은 그의 연기 초기 시절부터 주요작, 문제작을 함께 만들어 온 영화의 동반자다. 두 사람은 서로를 스콜세지-드 니로의 관계에 비유한다. 또는 그런 관계가 서로에게 되고 싶은 관계로.
일본 영화 경제학’을 연재하며…
1989년, 세계 영화업계에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일본 기업 소니가 ‘미국 영화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콜롬비아 영화사를 인수해 버린거다. 메이지 유신 이전, 쇄국(鎖國)적이던 일본의 문을 강제로 연 ‘미국 흑선(黑船) 사건’과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본 기업이 호황기 경제력을 포문 삼아, 미국 영화 산업의 거점을 함락시켜 버린 셈이다. 소니의 콜롬비아 인수 2년 전인 1987년, 한국에도 충격에 가까운 일이 벌어졌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영화제에서 배우 강수연(임권택 감독 작품 ‘씨받이’)이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면서다. 정말로 반가웠다. 해외에 한국 영화를 알리는 첫 신호탄, 변방이던 한국 영화의 해외 데뷔는 정말로, 너무나 반가웠다. 하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서양의 눈에 한국과 일본 영화는 분명 같은 변방이었지만, 두 변방 사이엔 36년이라는 간극이 존재한다. 무슨 얘기일까. 한국동란이 한창이던 1951년, 일본의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일본 최초로 강수연과 같은 베니스영화제에서 그랑프리(작품 ‘라쇼몽’)를 수상했다. 1951년의 일본(구로자와)과 1987년의 한국(강수연) 사이엔 이렇게 36년이라는 시차가 생긴다. 여기에 우연치곤 묘한 숫자놀음이 등장한다. 두 나라 영화의 해외 데뷔 시차가 공교롭게 일제강점기(1910~1945)의 기간인 36년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충무로의 걸어 다니는 영화 사전’이라 불리는 영화 연구가 정종화씨는 이렇게 말한다. “분명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 영화는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다. 그만큼 제작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광복 이후 또 한국전쟁으로 발목이 잡혔다. 그만큼 해외영화제 수상 등 세계 무대 데뷔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재팬올 발행인‧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기사 더보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86 )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재우 기자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