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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하는) 공부에 대한 오해 네 가지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공부와 연구에는 두 종류가 있다. 내향적인 공부와 탐구형 공부다. 내향적인 공부의 전형은 소위 말하는 오타쿠의 공부일 것이다. 그들이 취미 삼아 극히 협소한 사안에 대해서만 몰두하기 때문에 내향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에 있는 기성의 것에 대한 지식만 늘리기 때문에 내향적인 공부인 것이다. 좀 더 짓궂게 말하자면 오타쿠는 기존의 지식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내용도 상당히 불충분하다.

이를테면 어느 한 오타쿠가 애니메이션이나 군사, 철도 등에 대해 아무리 많은 지식을 축적해도 그 지식의 유용성은 어중간한 백과사전의 별책부록 정도밖에 안 된다. 그저 부분적인 동어만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 내향성의 대립에 선 탐구형 공부란 탐구를 통해 깊이 나아가는 공부다. 탐구란 대상 속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사실을 발견하는 것, 대상에 대한 지식을 새롭게 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보는 것,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여 또 다른 매력과 한계를 도출해 내는 것 등이다. 요컨대 지식들 사이에 지혜를 끼워 넣어 지식의 형태를 새롭게 정리하는 것이 탐구다.

[돈벌이가 안되면 공부가 아니다?]
이를테면 현대의 자본주의적인 지식에서는 경제적 유용성에 합당하다면 가치가 높은 것으로 여긴다. 다음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사회적 유용성이다. 가치의 히에라르키Hierarchie(피라미드 꼴의 계급 지배 제도. 상하 관계가 엄한 조직이나 질서를 가리키는 독일어-옮긴이)에서는 경제성이 늘 우선시된다. 이처럼 가치에 등급을 매기는 상황은 간단히 니힐리즘을 만든다. 이 경우로 말하자면 경제성과 관계없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에서는 가치를 찾아낼 수 없다. 현실 앞에서 돈벌이로 연결되지 않는 행동이나 생각은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
의미나 가치는 누군가가 부여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거기에서 의미나 가치를 찾아내지 않으면 주변에서 아무리 좋다한들 그 어떤 의미와 가치도 갖지 못한다. 그런 식으로 자신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면 니힐리즘에 빠지지 않는다. 니힐리즘에 빠지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무엇인가를 부여받고, 그 무엇인가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설명을 들은 다음 그것을 믿고 살아가려고 하거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읽는 이와 생각하는 이]
책을 읽는 것은 정말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책을 읽기 때문에 더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사람도 있다. 바로 책에 쓰여 있는 내용이 전부 옳다고 믿는 사람이다. 또는 책에서 전개하는 저자의 사고를 자신의 사고와 완전히 혼동해 버리는 사람이다. 이에 대해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지적했다.

‘……독서할 때는 생각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거의 없다. 스스로 사색하는 일을 그만두고 독서로 옮겨 갔을 때 안도의 기분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독서에만 전념하는 한, 사실 우리의 머리는 타인의 사상이 뛰노는 운동장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거의 통째로 하루를 다독에 허비하는 부지런한 사람은 서서히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 간다. (…)
끊임없이 계속 읽기만 할 뿐, 읽은 것을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정신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대부분 다 잃고 만다.’

[공부는 뇌의 문제가 아니라 고정관념이 방해한다]
왜 어렸을 때는 공부하는 게 쉬운데 나이를 먹을수록 어려워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자명하다. 생활환경에서의 경험과 지식이 늘어날수록 고정관념도 계속해서 늘어나는데 자신의 내부에 층층이 쌓여 있는 고정관념이 새로운 지식이나 사고방식의 흡수를 거부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노인들이 고집이 세다고 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에 대해 자각하지 못한다.

자신은 다른 사람들만큼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자만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고정관념에 싸여 있고 그 고정관념을 근거로 일상에서 많은 판단을 내린다. 이 고정관념을 보다 친근한 다른 말로 바꾸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고정(고착)관념이란 상식, 관습, 인습, 미신, 착각, 편견, 선입관, 일방적 평가, 틀에 박힌 상상력 등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상식이나 고정관념은 오히려 사회생활을 무리 없이 해나가는 데 있어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거의 비슷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으면 한층 수월하게 동료 취급을 받을 수 있고, 의견이나 가치관의 충돌 없이 잘 맞을 수 있다.

시라토리 하루히코가 쓴,
<지성만이 무기다> 중에서
: 읽기에서 시작하는 어른들의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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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총정리.jpg (초스압주의)
본 글은 신화에서부터 시작해서 현대철학까지 이어지는 어마어마한 스압글이니 클립해두고 두고두고 읽어보세요! 웬만한 책한권 내용이... ㅎㅎ 미리보기 먼 옛날 사람들은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세상이 돌아가는지에 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역할은 신화가 수행하였다. 제사장: 에헴 이 세상은 가이아 여신께서 만드셨고, 포세이돈께서 분노 하시면 파도가 치고, 제우스께서 분노하시면 번개가 치는 거요. 사람들: 오 위대한 제사장이여 하지만 세상에 대한 이러한 신화적 해석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탈레스, 그는 신화가 아닌 나름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해석하고자 했다. 그리고 훗날 그는 서양 최고 철학자라고 불리게 된다. 탈레스: 내 생각에 세상은 물로 이루어졌을 것 같아. 왜냐하면 물을 뜨거워지면 기체, 차갑게 되면 고체로 변하고, 씨앗에 물을 부으면 생명이 쏟아나지 않는가? 그의 제자들은 세상이 하나 혹은 소수의 물질로 이루어졌다는 탈레스의 의견에는 동의를 했지만 그것이 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저마다 이 세상은 아페아, 공기, 4원소,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그리스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꽃피우게 되면서 철학의 관심은 이 세계의 근원에서 인간으로 옮겨지게 된다. 이 시기에 그 유명한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가 등장하게 된다. 소피스트: 이 세상에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란 존재하지 않아. 특히 도덕이라는 것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변하는 거야. 사람들: 도덕이 상대적인 거라고요? 소피스트: 그렇다네, 여기서는 나쁜 행동 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다른 지역에 가면 아무 상관도 없는 행동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어떤 행동이 ‘착하다 나쁘다’를 판별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인간일세. 즉 다시 말해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소크라테스: 절대적인 도덕이 존재하지 않는다니 무슨 큰일 날 소리를 하는 건가. 당신들이 하는 이야기는 다 엉터리야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한다고!! 또 소크라테스가 말하길 소크라테스: 내가 충고하나 하지, 아는 것이 곧 행하는 것이네 우리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를 안다면 절대 악행을 저지르지 않을 걸세, 소피스트: 그럼 도둑질이 악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도둑질을 하는 도둑은 어떻게 설명이 되는가? 소크라테스: 그건 도둑이 착각을 했기 때문이네, 도둑은 도둑질이 악한 행동이기는 하지만 그 행동을 통해서 자신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야, 악한 행동은 영혼을 비참하게 만들 뿐 절대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네, 만약 도둑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도둑질을 하지 않았을 것이네. 소피스트: 웃기는 소리하지 말게, 절대적 진리나 절대적인 도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소크라테스: 내가 왜 그대들이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 알겠네, 그건 바로 그대들이 무지해서 절대적인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일세. 당신들은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마냥 떠들지만 내가 볼 때 머리가 텅텅 빈 무식한 사람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 드네, 너 자신을 알라고!! 소피스트: 뭐 우리보고 무지하다고? 이... 이런 건방진 놈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너무나 많은 적을 만들었고 결국 불경죄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는 배심원들에 의해서 사형을 집행 받게 된다. 젊은 플라톤: 이런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시민들이 위대한 스승님을 말도 안 되는 죄명으로 사형시켰다. 민주주의는 정말 최악의 제도야!! 한편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스승의 절대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이데아’론으로 발전시키게 되었다. 플라톤: 개, 사람, 사랑, 우정 등 이 세상은 모든 것들은 모두 각각 궁극적인 형상 즉 이데아를 가지고 있어.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한다는 스승님의 주장을 당연히 맞아 그게 바로 이데아인거야!! 젊은 아리스토텔레스: 스승님 이데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플라톤: 이 세계에 있는 것들은 모두 이데아의 허상에 불과하다네, 예를 들어서 자네 앞에 있는 의자는 의자 이데아를 조잡하게 모사한 거지. 이데아가 진짜인거고 현실세계에 있는 의자는 이데아를 조잡하게 베낀 가짜야. 이데아는 절대 우리의 감각으로 인식할 수 없어. 오로지 우리의 이성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고!! 젊은 아리스토텔레스: 우리의 이성을 통해서 만요? ===================== 이성: 우리의 지능을 통해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 예: 13+7은 20이다. 감각(경험): 눈, 코, 입, 귀, 피부를 통해 외부의 자극을 받아드리는 것 예: 저 책상에 있는 사과는 빨간색이다. ===================== 플라톤: 그렇지! 우리가 의자를 의자라고 인식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 이성이 의자의 이데아를 인식하기 때문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이데아가 진짜 세계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이데아를 조잡하게 베낀 가짜세계일세, 즉 이성을 통해서 얻는 이데아의 지식이 중요하며, 감각을 통해 이 세계에서 얻는 지식은 저급한 지식일세. 젊은 아리스토텔레스: 이 세계가 가짜라고요? 플라톤: 그렇다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동굴에 묶인 죄수라고 가정해보세, 우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기둥에 묶여서 벽만 바라보고 있고 우리의 뒤에 불이 있다네. 간수들은 말, 꽃 같은 사물을 가지고 불과 죄수 사이를 지나가는데, 불에 의해서 간수가 들고 있는 사물이 그림자로 벽에 비치게 된다네. 우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동굴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그림자가 진짜라고 생각하네. 이데아가 이 동굴의 예에서 말하는 실제 사물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그림자라고 할 수 있네. 그러므로 우리 철학자들이 할 일은 그림자를 보는 것이 아닌 등을 돌려 진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일세. 젊은 아리스토텔레스: 우리 이성은 어떻게 이데아를 인식 합니까? 플라톤: 사실 우리의 영혼은 육체에 들어오기 전에 이데아의 세상에서 거주하면서 이데아를 알게 된다네, 그러다가 영혼이 육체에 들어오면서 영혼은 이데아에 관한 상당수를 잊어버리게 되는 거야. 그래도 약간이나마 남은 이데아의 지식 때문에 이데아를 조금이나마 인식하는 거지,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성을 통해 잊어버린 이데아를 다시 떠올리는 것이네. 또 플라톤이 말하길 플라톤: 그리고 그 이데아 중에 가장 상위의 것으로 모든 이데아를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이데아가 있는데 그게 바로 ‘선함’의 이데아야. 마치 태양처럼 다른 이데아들을 비치는 존재지. 젊은 아리스토텔레스: 스승님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가장 우수한 정치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플라톤: 좋은 질문이다. 인간의 영혼은 욕망, 용기, 지혜로 구성되어 있는데 국가도 이에 대응하는 시민, 전사, 통치 3계급으로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계급은 그 사람의 출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사람의 역량(능력)에 따라서 해당 계급이 정해지는 거야. 만약 영혼에 욕망이 많다면 시민계급이 되는 거고, 영혼에 용기가 많다면 전사계급이 되는 거지. 젊은 아리스토텔레스: 계급이 순수한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건가요? 플라톤: 그렇다네, 또한 모든 아이들은 국가에서 양육하며 국가에서 교육을 해야 하네. 젊은 아리스토텔레스: 그럼 통치자는 누가 됩니까? 플라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지. 아주 이성이 뛰어나서 모든 이데아를 꿰뚫어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돼야만 한다네. 또한 모든 통치자들은 모든 사유재산과 배우자를 소유할 수가 없네. 이런 것들은 사적인 욕심을 만들기 때문이야. 또한 아무리 여자라고 하더라도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다면 마땅히 통치자가 되어서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네. 젊은 아리스토텔레스: 여자도요? 제 생각에 그건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받아드려지기 힘들 것 같은데요.. 플라톤: 하.. 나도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가 받아드려지기가 힘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네(플라톤이 실제로 한말)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훗날 플라톤에 버금가는 철학자로 성장하게 된다. 그는 플라톤의 이론을 계승하였지만 플라톤의 철학과 다소 다른 철학을 전개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스승님은 현실세계가 이데아의 모방한 가짜라고 하셨지. 하지만 난 스승님의 이론에 동의하지 않아. 현실세계는 절대 모조품 같은 것이 아니야. 현실세계야 말로 진짜 세계라고. 또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명하기를 아리스토텔레스: 이 세상 모든 사물에는 각각 형상인(플라톤의 이데아와 비슷하다), 질료인, 목적인, 작용인이 존재한다. 비너스 석고상으로 예를 들자면 형상인은 비너스 상(비너스 모습)이야, 우리가 비너스 상을 볼 때 이것이 비너스 상이라고 알게 해주는 것이 바로 형상인이야, 스승님 이데아가 이 세계를 떠나서 어떤 초월적인 곳에 존재한다고 했는데 나는 생각이 달라, 모든 물체마다 고유의 형상인이 존재하는 거야. 제자: 그러면 나머지 질료인, 목적인, 작용인은 어떻게 됩니까? 아리스토텔레스: 질료인은 그 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야, 예를 들어서 비너스 석고상의 질료인은 석고겠지. 목적인은 그 물체가 존재하는 목적이야, 비너스 석고상의 목적인은 아름다움으로 보는 사람들을 기분 좋도록 하는 것이지. 마지막 작용인은 그 물체를 만든 것이야, 비너스 석고상의 작용인은 장인이겠지. 제자: 플라톤 사조님은 이성만 중요하고 감각은 필요 없다고 말하셨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리스토텔레스: 물론 이성도 중요하지만 감각 역시 중요해, 현실세계에서 지식을 얻으려면 감각이 필요하니까. 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아리스토텔레스: 또 각 사물에는 이 4가지 말고 가능태와 현실태라고 하는 것이 있어. 가능태는 장래에 현실태가 될 수 있는 상태를 말하고 현실태는 목적을 달성한 상태를 말하지. 예를 들어서 나무의 씨앗이나 어린 아이는 가능태고 나무나 어른은 현실태야. 그런데 모든 가능태는 현실태가 되려는 성질이 있어, 이게 바로 모든 사물이 변화하는(ex:나무나 아이가 자라는) 원리야. 제자: 스승님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모든 물체에 목적인(물체의 목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인간의 목적인은 무엇입니까? 아리스토텔레스: 좋은 질문이다. 인간의 목적인은 행복해지는 것이야.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덕을 따르는 중용의 삶을 살아야 돼. 제자: 중용의 삶이란 무엇입니까? 아리스토텔레스: 너무 지나치지도 너무 부족하지도 않는 중간의 자세이다. 예를 들어서 용기가 너무 부족하면 인간은 소심해지고, 용기가 너무 지나치면 인간은 만용에 휩싸이게 된다. 언제나 적절한 자세를 유지해야만 한단다. 제자: 스승님 국가란 무엇입니까?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네, 벌이나 양이 군집을 이루려는 습성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 역시 사회적으로 모이려는 본성이 있단다. 국가는 이러한 사람들의 본성 때문에 생긴 거야. 제자: 그렇다면 가장 우수한 정치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아리스토텔레스: 나는 긍정적인 정치체제로 군주정, 귀족정, 혼합정 부정적인 정치체제로 참주정, 과두정, 빈민정이 있다고 생각한단다. 부정적인 정치체제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지도자는 충분한 자격을 가져야 해, 또한 지도자와 시민들 모두 합의한 법을 따라야 하고, 마지막으로 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을 바람직한 인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외에도 물리학, 화학, 생물학, 천문학, 시학, 심리학 등 많은 학문들을 창시하였고 이런 학문들의 기초를 세우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업적으로 훗날 아리스토텔레스는 만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된다. 한편 이스라엘 베들레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게 된다. 그의 이름은 예수, 그리고 그는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놓게 된다. 그는 이스라엘을 돌아다니며 신의 말씀을 설파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장) 예수는 민중들을 억압하는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맹비난했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기득권 세력들은 예수를 죄인으로 몰아 십자가형에 쳐하게 한다. 베드로:(예수를 잡으러 오는 로마의 군인을 보고 칼을 꺼내며) 이 개자식들...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 칼을 다시 칼집에 집어넣어라,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할 것이다.(마테복음 26장) 예수는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지만 그의 제자들은 예수의 사상을 온 세상에 전파하게 된다. 온 인류 심지어 자신의 원수까지도 사랑으로 포용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일개 지방의 신화에 불과했던 히브리 신화를 세계구급 종교로 변신시켰다.( 비록 유대인들은 예수를 여전히 부정하기는 하지만..). 한편 기독교가 유럽에 전파된 후 콘스탄티누스에 의해서 공인되게 된다. 그러나 초기의 기독교는 정체성도 다소 모호하였고 철학적인 기반이 너무 약하였다. 그러한 기독교의 철학적 기반을 만드는 작업을 바로 교부철학이라고 부른다. 교부 철학자들은 플라톤의 철학을 기독교에 받아드리기 시작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 도대체 왜 악이 존재하는 것일까? 신이 세상을 만들 때 애초에 악을 만들지 않았으면 되는 일 아니었을까? 그러던 어느 날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의 철학을 접하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 바로 이거야, 플라톤은 선의 이데아가 다른 이데아들을 존재할 수 있도록 태양처럼 비쳐준다고 했지? 선의 이데아가 바로 신이 틀림없어. 신이 온 세상을 태양처럼 비쳐줌으로써 이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거야. 제자: 스승님 그럼 악은 무엇입니까? 아우구스티누스: 악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신의 빛이 닫지 않는 것이 악인거야. 빛이 닫지 않는 곳에 그림자가 생기는 것처럼 말이야. 즉 신이 악을 따로 만든 것이 아니라 선의 부재가 바로 악인거야!! 제자: 스승님 질문 있습니다. 신앙하고 이성하고는 어떤 관계입니까? 아우구스티누스: 당연히 신앙이 우위지, 이성도 신의 빛이 우리를 비춰줘야 가능한 거야. 즉 신이 없으면 우리는 어떠한 진리도 알 수 없어, 모든 지식은 신의 은총 때문에 가능한 거야. 한편 교부 철학에 의해서 기독교의 철학이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정리가 된 후, 이를 이성적인 사유로 논증하려는 했는데 이것이 바로 스콜라 철학이다. 한편 유럽에서 잊혀 졌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이슬람에서 다시 유럽으로 역수입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재조명을 받기 시작한다. 아퀴나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정말 위대해, 나는 이 철학이 기독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또한 아퀴나스는.. 아퀴나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해.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상 모든 물체에 작용인(그 물체를 만든 것)이 있다고 말했어. 예를 들어서 비너스 상의 작용인은 장인이지, 그리고 그 장인의 작용인은 장인의 부모님이겠지 그리고 그 부모님의 작용인은 조부모님이고 이런 식으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최초의 작용인이 있을 거야, 그게 바로 신이야! 제자: 스승님 질문 있습니다. 신앙하고 이성의 관계에 아우구스티누스님의 의견에 동의하시나요? 아퀴나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이 이성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봤지만 내 생각은 달라, 신앙하고 이성은 동등한 거야. 우리는 신의 개입 없이도 이성을 통해서 진리를 알 수 있어! 오히려 이성은 신앙을 보완할 수 있는 거라고, 내가 아까 이성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한 것처럼 말이야. 제자: 스승님, 국가는 법을 어떻게 제정하여서 국민들을 다스려야 합니까? 아퀴나스: 나는 법을 총 3가지로 분류하고 싶어. 첫째는 영원한 법으로 바로 신이 이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절대적인 법이야. 두 번째는 자연법이야. 자연법은 영원한 법의 일부분으로 우리의 이성을 통해 인지할 수 있는 법이야. 예를 들어서 국가에 형법이라는 것이 사라지더라도 살인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 그게 바로 자연법인 거야. 마지막으로 실정법이 있는데 바로 국가가 국민을 다스리기 위해 만든 법이야. 실정법은 반드시 자연법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야 돼. 중세시대에는 신을 위해 인간이 존재한다고 말할 정도로 기독교의 권위가 엄청났지만 종교 개혁, 과학 혁명 등 여러 가지 사건으로 기독교의 권위가 점차 떨어지게 된다. 아울러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나면서 신이 아닌 인간이 다시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드디어 근대철학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데카르트: 중세의 철학자들은 일단 신이 존재한다고 전제를 깔아버리고 철학사유를 시작하던데, 난 동의하지 않아, 막말로 신이 없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또한 데카르트는.. 데카르트: 내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한번 의심해 보자. 예를 들어서 1+1은 3인데 악마가 나에게 최면을 걸어서 2라고 믿게 하는 것 일수도 있어. 어쩌면 내가 보고 있는 이 세계는 악마의 환영이 아닐까? 이렇게 데카르트는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의심하고 제거해 나갔다. 모든 지식을 지워나갈 때 그는 마침내 도저히 거짓일 수가 없는 진리 한 개를 발견하게 된다. 데카르트: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거짓일 수가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 역시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야. 그래 그거야!!! 드디어 나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리를 알아냈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의 존재를 증명한 데카르트는 순차적으로 신의 존재와 세계의 존재를 증명하게 된다. 데카르트: 나는 불을 만져보고 뜨거움이라는 관념(생각)을 배우게 되고, 꿀을 먹어보고 달콤함 이라는 관념을 배우게 되지, 근데 나는 무한함을 경험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무한함에 대한 관념을 알고 있을까? 그래 그건 신이 우리에게 무한함의 관념을 넣어줘서 일거야. 고로 신은 존재한다. 그리고 신은 절대 선한 존재이니까 거짓된 세상으로 우리를 속이지 않을 거야, 고로 이 세상은 존재해!!! 이렇게 ‘나’, ‘신’, ‘세계’의 존재를 증명한 데카르트는 이어서.. 데카르트: 이 세상에는 정신, 영혼, 신처럼 부피와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정신계와 육체, 강아지, 나무처럼 부피와 공간을 차지하는 물질계 총 2가지로 구성되어 있어. 이렇게 정신의 영역과 물질의 영역을 철저하게 분리했던 사상을 이원론이라고 한다. 한편 국왕 찰스 1세의 조카딸 엘리자베스 공주는.. 엘리자베스: 데카르트 질문이 있어요, 도대체 정신계에 있는 나의 정신이 어떻게 물질계에 있는 나의 육체를 조종하는 것인가요? 데카르트: 공주님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의 뇌에 송과선이라고 하는 부위가 있는데 이 기관을 통해서 우리의 정신이 우리의 육체에게 명령을 내리는 겁니다. 엘리자베스: 송과선이라는 것은 물질계에 속하는 것인데 그럼 정신이 송과선에 깃드는 순간 정신도 물질계에 속하게 되는 것 아닌가요?  데카르트:...... 공주님 더 이상 그 문제로 어여쁜 머리를 괴롭히지 마십시오(데카르트가 공주에게 실제로 한 말) 한편 데카르트의 이러한 철학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철학자 스피노자는 아주 독특한 사상을 전개하게 되는데.. 스피노자: 신은 무한한 존재인데, 기독교의 신은 무한하기는커녕 너무나 유한한 존재 아닌가? 신이 정말 무한한 존재라면 이 우주, 이 세계전체가 신이 아닐까? 또한 스피노자는.. 스피노자: 데카르트는 이 세상이 정신계와 물질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는데 사실 이 정신과 물질이라는 것은 신의 수많은 속성들 중 2개에 불과한 거야, 인간의 인식능력이 미약해서 비록 그 2개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거고. 기독교 신자: 그럼 우리 기독교의 교리는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건가? 스피노자: 적어도 신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격신은 아닐 겁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은 너무나 인간답지 않습니까? 또한 신이 명령했다는 절대적인 도덕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선과 악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기독교 신자:(칼을 꺼내며) 이런 불결한 놈!!! (다행히 칼을 맞지는 않았지만 스피노자의 옷이 크게 찢어지게 된다.) 스피노자: ‘모든 인간이 이성적인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나는 죽을 때 까지 이 옷을 보관하겠다.(실제로 한말) 그리고 스피노자는.. 스피노자: 이 세계 전체가 신이라면 인간 역시 신안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야, 즉 우리는 신의 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지. 우리의 모든 행동, 감정 등이 신이 정한 필연에 의해서 움직이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분노, 슬픔 같은 불필요한 감정에 휘둘릴 필요가 없어. 이런 감정들에 대해서 초연해 진다면 잔잔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근대에 들어서면서 정치철학 분야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또한 국가가 왜 탄생하였는지에 대한 질문이 근대 정치철학의 주된 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제자: 스승님 국가란 어떻게 만들어 진 것 입니까? 홉스: 좋은 질문이다. 국가가 왜 만들어졌는지를 알려면 국가가 탄생하기 이전의 자연 상태가 어떤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본디 이기적인 존재다. 그러므로 국가가 탄생하기 이전인 자연 상태는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해치는 지옥과 같은 곳이었지. 어떠한 법이나 제약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살인, 강간, 절도 폭행이 난무했겠지. 제자: 정말 끔찍했던 곳이었겠네요.. 홉스: 그렇지, 결국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끔찍한 상황들이 계속 연출될 거야, 나는 이런 상태를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라고 부르겠네. 이런 지옥 같은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딱 한 개가 있다네. 제자: 그게 무엇입니까 스승님? 홉스: 바로 한명에서 모든 권력을 양도하고 왕으로 추대하는 것일세. 그리고 왕이 우리를 강력한 권력으로 다스림으로써 사회 전체의 평화를 유지시켜주는 것일세. 제자: 만약 왕이 너무 과도한 폭정을 행사하면 어떻게 됩니까? 홉스: 제아무리 과도한 폭정이라도 그 지옥과도 같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에 비하면 훨씬 나은 상태라네. 그러므로 나는 국가가 붕괴해서 다시 자연 상태로 돌아가지 않도록 왕의 권력이 더욱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네. 한편 이 시기에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우리가 얻는 지식들이 정말로 확실한지, 혹은 우리가 어떻게 지식을 습득하는지를 탐구하는 인식론이 철학의 주요 주제가 되게 된다. 플라톤을 계승한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같은 합리론 철학자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관념을 가지고 있으며 고로 이성을 통해 진리를 알 수 있다’라고 주장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를 계승한 로크, 버클리, 흄 같은 경험론 철학자들은 ’우리의 모든 지식은 감각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라고 주장하였다. 로크: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모든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참 웃기지도 않는 말이야. 인간이 태어날 때는 아무 가진 지식도 없는 백지와 같은 상태야. 그 후에 오로지 감각경험을 통해서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거야. 제자: 인간이 어떠한 방식으로 지식을 습득하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로크: 인간은 감각을 통해 단순관념을 받아드리고 이것을 복합관념으로 합체시켜서 지식으로 습득한단다. 내가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주지. 우리가 사과를 바라볼 때 감각기관을 통해서 ‘사과는 빨갛다, 사과는 둥글다, 사과는 꼭지가 달려있다’와 같은 단편적인 단순관념을 받아드린다네, 그리고 이런 단순관념을 사과라는 복합관념으로 합체시켜서 우리가 이것을 사과라고 인식하는 것이지. 제자: 스승님 질문 있습니다. 저는 한 번도 유니콘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저한테 유니콘이라는 관념이 있는 겁니까? 로크: 그 이유는 자네가 여러 동물들의 단순관념을 합체시켜서 유니콘 이라는 복합관념을 만들었기 때문일세, 말의 몸, 염소의 뿔, 새의 날개 같은 것들을 말일세. 제자: 스승님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국가란 어떻게 만들어진 것 입니까? 또 이에 대한 홉스의 답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로크: 홉스는 자연을 지옥 같은 곳이라고 말했지만 내 생각은 달라, 인간은 홉스가 생각했던 것처럼 마냥 쓰레기 같은 존재가 아니야, 나름 이성적인 존재라고.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어느 정도 평화롭게 공존해서 살았을 거야. 제자: 평화롭게 공존해서 살았다면 왜 국가가 탄생한건가요? 로크: 그러나 평화로운 곳이라도 인간관계라는 게 갈등이나 시비가 일어날 수 있거든. 때문에 이를 공평하게 중재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해진거야. 따라서 사람들은 그들의 편의를 위해서 국가를 탄생 시킨거지. 제자: 그럼 시민은 아무리 폭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왕한테 저항하면 안 된다는 홉스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로크: 왕의 권력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야, 만약 통치자가 폭정을 한다면 시민들은 얼마든지 통치자를 몰아내고 새로운 통치자와 사회계약을 맺을 수 있어. 한편 후대 경험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흄: 선대 경험주의 철학자들은 인식론을 관념이라는 것으로 너무 애매하고 뭉뚱그려서 설명했던 것 같아. 나는 기존의 이런 인식론을 인상과 관념 이 두 가지로 나누고 싶어. 제자: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흄: 인간은 눈, 코, 입 같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외부의 지식을 습득하지, 이때 감각기관을 통해서 뚜렷하게 받아드리는 것이 바로 인상이야, 그리고 인상이 사라진 후 상상이나 회상으로 떠올리는 것이 바로 관념이고. 예를 하나 들어주자면 네가 사과를 눈으로 볼 때 생생하게 보고 있는 사과의 이미지가 바로 인상이야, 그리고 네가 눈을 감았을 때 떠올리는 사과의 이미지가 바로 관념인 거고. 또한 흄이 이어서 말하길 흄: 나는 인과관계라는 것이 정말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해. 우리는 A에 의해서 B가 작동할 때 이 둘은 인과관계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A의 움직임과 B의 움직임만 봤을 뿐 이 둘의 인과관계에 대한 어떠한 인상도 얻을 수가 없어. 제자: 스승님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니요? 흄: 이해하기 쉽게 물이 100도가 되면(원인), 물이 끓는다(결과)로 예를 들어보지. 우리는 이 둘에 대해서 어떠한 인과관계에 관한 인상도 얻을 수 없어. 그냥 전에도 계속 물이 100도에 끓으니까 당연히 이 둘이 인과관계에 있다고 착각한 거야. 하지만 앞으로도 물이 항상 100도에 끓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지? 지금까지 100도에 잘 끓다가 갑자기 100도에 안 끓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우리는 ‘전에도 늘 그랬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만, 바로 이게 귀납법의 오류야! 앞으로 꼭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 없거든. =================================== 연역법 모든 사람은 죽는다. ->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니까 죽겠군. 귀납법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플라톤은 죽는다..... ->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는 거 보니까 모든 사람은 죽나보군. ================================== 제자: 하지만 스승님 그러면 우리의 과학지식이라는 것은 그러한 개개의 실험을 통해서 인과관계로 법칙화해서 가능한 건데요.. 그럼 우리의 과학은 불확실 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겁니까? 흄: 그건 나도 모르지(흄은 회의주의자였다.) 제자: 스승님 이번에는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어떠한 행동이 선한 행동이고, 어떠한 행동이 악한 행동입니까? 흄: 좋은 질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많이 알수록 선한 행동을 한다고 했는데, 천만의 말씀이야. 이성은 인간의 도덕성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해, 머리가 좋은 사람과 착한 사람은 다른 거야. 제자: 그럼 스승님 도덕성에 이성 말고 무엇이 중요합니까? 흄: 오히려 도덕성에서 이성보다 감정이 더 중요한 덕목이야. 타인에 대한 동정심과 공감능력이 바로 선한 행동의 원천인거지. 예를 들어서 우리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는 고아를 보면 동정심이 들고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즉 선한 행동은 이러한 도덕적인 감정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말일세. 한편 프랑스의 한 철학자는 홉스의 사회계약설에 불만을 제기하는데... 루소: 뭐 자연 상태가 지옥 같은 곳이라고? 천만의 말씀이야, 자연 상태야 말로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천국 같은 곳이라고. 제자: 그렇다면 왜 국가가 탄생한 겁니까? 루소: 자연 상태에서 인구가 늘어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이 발생하였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빈부격차가 발생하게 된 거네. 그러나 기득권층들은 평등과 보호를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사회계약을 맺는 것을 강요하게 되었지. 제자: 그리고요? 루소: 하지만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야!! 실상 이런 사회 계약은 재산 불평등을 영구화 시키며 기득권에게만 좋은 정책이라고!! 결국 국가란 이런 기득권들 때문에 탄생한 것이네.. 제자: 그러면 지금 사람들이 모든 국가와 법을 없애고 다시 자연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건가요? 루소: 현실적으로 다시 자연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무리가 있겠지. 그러나 어떠한 불평등도 없었던 자연 상태의 이상향을 국가가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러므로 국가에서 특정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력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네. 루소의 이러한 혁신적인 사회계약론은 당시 유럽을 강타하게 되었고, 이는 당시 유럽의 시민혁명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절대왕권 시대를 붕괴시키게 된다. 한편 독일의 한 철학자는 합리론과 경험론을 통합시키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게 되는데.. 칸트: 태어날 때부터 관념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합리론자들의 주장도 맞고, 관념을 얻으려면 감각경험을 통해 가능하다는 경험론자들의 주장도 맞아. 나는 사람이 지식을 얻으려면 이성과 경험 모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제자: 스승님 사람이 어떻게 사물을 인식하고 지식을 얻는지 알려주십시오. 칸트: 그 전에 내가 자네에게 질문 하나 하겠네. 자네는 자네가 보고 있는 이 사과와 실제 사과가 똑같다고 생각하나? 제자: 그.. 당연히 똑같지 않겠습니까? 칸트: 그런데 자네 그거 알고 있나? 인간의 감각이라는 것은 너무나 제한적인 것 일세. 우리는 모든 전자기파 중에 가시광선이라는 지극히 좁은 부분밖에 인식할 수 없다네. 일부 곤충이나 파충류가 적외선이나 자외선까지 인식이 가능하다지만 이 역시 모든 전자기파와 비교하면 매우 좁은 영역일세. 즉 자네는 이 사과의 매우 적은 부분밖에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일세. 나는 이런 감각을 초월한 진짜 그 사물 자체를 ‘물자체’라고 부르겠네. 제자: 물자체요? 칸트: 그래 그리고 자네가 감각으로 보고 있는 그 세계를 현상계라고 부르겠네. 즉 자네가 눈을 통해 보는 사과 이미지는 현상계이고 인간의 모든 감각을 초월한 그 사과 자체는 물자체인 것 일세. 그리고 칸트가 말하길.. 칸트: 그럼 우리가 어떻게 사물을 인식하는지 설명하겠네.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감각경험과 이성 두 가지 전부 필요하다네. 경험론자들은 인간이 태어날 때 백지와 같은 상태라고 말하지만 천만의 말씀이야,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다네. 제자: 선천적인 형식이요? 칸트: 내가 인식을 하기 위해서는 감각경험과 이성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지? 감각경험의 선천적인 형식은 바로 시간성(시간을 인지하는 능력), 공간성(공간을 인지하는 능력)일세, 시간성과 공간성은 어떠한 감각경험을 통해 받아드리는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가지고 있는 형식일세. 제자: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요? 칸트: 그렇지, 마찬가지로 이성의 선천적인 형식으로는 범주화를 통해 사물을 개념화 시키는 능력(분량, 성질, 관계, 양상)이 있다네. 그럼 사람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겠네. 자네는 자네의 눈을 통해 이 사과를 받아드린다네. 그렇게 받아드린 것을 감각의 선천적인 형식인 공간성과 시간성 그리고 이성의 선천적인 형식인 범주화 이 3가지를 통해서 자네의 머릿속에서 재구성을 시키는 거야. 즉 자네가 보고 있는 이 사과는 원래 이렇게 생긴 것이 아니라 자네가 재구성해서 만든 이미지일세.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사람을 사물을 인식하고 지식을 습득하는 거네. 제자: 스승님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어떠한 행동이 선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칸트: 좋은 질문이다. 어떤 행동이 선한지 나쁜지를 판별하는 기준은 그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선한 행동을 하겠다는 선의지가 중요한 거야. 특정한 목적을 위해 선한 행동을 하는 것(가언명령)은 선이 아니야. 어떠한 목적도 생각하지 않고 순수하게 선한 행동을 하는 것만이 선인거야. 예를 들어주지. 길을 가다가 한 노인이 쓰러졌다고 가정해보자. ‘착한 일을 해서 천국에 가려고 혹은 선행을 해서 주목받으려고’ 와 같은 의도를 가지고 심폐소생술을 했다면 그것은 선한 행동이 아니야, ‘그 노인을 살리기 위해서’와 같이 행동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될 때만 선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야. 제자: 스승님,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선한 행동을 해야 합니까? 칸트: 자네의 행위가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동해야한다. 쉽게 말해서 어떤 행동을 할 때 다른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되는 것만을 해야 한다는 뜻 인거야. 예를 들어서 길에 담배꽁초를 버리면 안 되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행위를 하면 길에 담배꽁초가 수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야. 경험론과 합리론을 통합한 칸트의 철학은 당시 유럽 철학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 후 셸링, 피히테, 헤겔 같은 독일 관념론 철학자들은 칸트의 철학을 계승한 철학을 펼치게 된다. 이런 철학을 독일 관념론이라고 부른다. 헤겔: 칸트는 정말 위대한 철학자이지만, 나는 사람이 감각할 수 없는 물자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칸트의 말은 동의하지 않아. 나는 이 세계가 우리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 제자: 그럼 물질이 정신에서 비롯된 거라고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헤겔: 그렇지, 우리의 정신은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을 거듭한다네. 정반합이란 정과 반의 대립에서 그 타협점인 합이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하네. 예를 들어서 정이 속박이고 반이 자유라면 합으로 타협점인 규칙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이 합은 또 다른 정이 되고 새롭게 나타난 반과 대립하게 되고 여기서 또 다른 합이 생기는 거네, 이런 정반합의 과정의 무수히 반복되지. 제자: 정반합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하게 되는군요. 헤겔: 그렇지. 그리고 정반합을 통해 주관적인 정신은 객관적인 정신으로 발전한다네, 객관적인 정신에서는 더 이상 한 개인에 속하지 않고 시민사회, 국가를 아우르는 정신으로 확대 되게 된다네. 그리고 계속된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달성된 정신의 가장 완성된 형태가 바로 ‘절대정신’ 이라네. 제자: 그럼 세계가 우리의 정신에서 비롯된 거고, 정신은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발전하니까 세계도 지속적으로 발전 하겠네요? 헤겔: 그렇지, 우리의 역사 역시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절대정신으로 나아가는 과정인거야.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전쟁, 폭정 같은 온갖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우리의 역사는 결국 점점 더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 갈 거야. 제자:스승님, 그렇다면 국가란 무엇입니까? 헤겔: 남성과 여성은 결혼한 후 자녀를 출산함으로써 가족을 구성하게 된 다네. 이 가족(정)과 시민사회(반)가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발전한 것이 바로 국가이네. 국가는 가족과 시민사회의 통합으로, 개인들의 유기체적 통일체이라고 할 수 있네. 이러한 국가를 통해 개인은 이성적 자유를 실현할 수가 있는 것일세. 제자: 앗 스승님 저기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이 우리 독일의 국경을 침공하고 있습니다. 헤겔: 내가 말했지, 세계는 점점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 갈 거라고. 나폴레옹이야 말로 우리 독일의 왕정을 무너뜨리고 더 발전된 국가로 만들어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네. (나플레옹을 보며) 저기 세계정신이 걸어가고 있구나(헤겔이 실제로 한말..) 제자:..(아무리 그래도 적군인데.. 너무 한 거 아닌가) 당시 근대철학자들 사이에서 이성에 대한 믿음은 엄청난 것이었다. 특히 헤겔은 이성이 우리 역사를 발전시킬 것이면 이를 통해 낭만적인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예언하였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헤겔의 철학에 열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성만능주의 특히 헤겔주의에 반발하는 3명의 철학자 니체, 마르크스, 프로이트가 등장하게 되고. 이들의 등장은 현대철학의 시대를 열게 된다. 니체: 플라톤!! 기독교인들!! 당신들이 서구 사회를 망쳤어!, 당신들은 있지도 않은 이데아나 천국 만들어서 사람들의 가치를 마구 짓밟아 놓았다. 플라톤은 이데아가 진짜며 현실 삶은 가짜라며 현실 삶을 비하했고, 기독교 역시 천국의 삶이 강조하고 현실에서는 희생과 인내를 강요하였다. 그러나 나는 오늘 선포한다. ‘신은 죽었다’! 더 이상 현실의 삶을 희생할 필요도 없고 등한시 될 필요도 없다. 또한 니체가 말하길 니체: 플라톤이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절대적인 도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기독교의 도덕은 노예의 도덕이야. 항상 우리에게 나약한 희생을 강요하게 되지. 지나가는 사람: 하지만 니체 천국이 없다면 우리는 왜 사는 걸까요?.. 만약 천국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 허무하지 않나요? 니체: 우리 인간에게는 존재를 뛰어넘어서 초월하려는 ‘힘에의 의지’ 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존의 기독교의 도덕관은 이러한 힘에의 의지를 억누르려고 했습니다.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런 힘에의 의지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초인’이 되어야 합니다. 초인이란 자신의 삶을 무한히 긍정하며 삶의 모순까지도 견딜 수 있는 존재입니다. 지나가는 사람: 그렇다면 니체, 우리는 이 세계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니체: 예를 들어서 우리의 인생이 완전히 똑같이 반복된다고 가정해 봅시다. 만약에 우리가 죽는다면 다시 태어났을 때로 돌아가 완전히 똑같은 삶을 무한히 반복해서 살아가는 겁니다. 만약 내가 삶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제 내 행동 하나가 무한히 반복될 것입니다. 그럼 나는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갈까요?  나는 나의 행동 하나 하나에 집중할 것이고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한편 니체와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독일 철학자가 등장하는데.. 마르크스: 헤겔은 정신이 이 세계를 만드는 거라고 했지. 참 웃기지도 않는 말이야. 정신이 물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물질이 정신을 만드는 거라고. 정신도 뇌라는 물질의 작용에 불과한데 말이야. 그리고 헤겔은 변증법에 의해서 우리 역사가 절대정신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보았는데 나는 역사란 공산주의를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지나가는 사람: 공산주의요? 마르크스: 그렇소, 우리의 역사는 원시공동사회- 고대노예사회- 중세사회- 근대자본주의사회의 순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저는 각 시대를 계급 간 투쟁의 장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자급자족을 하던 원시공동사회에서 농경기술의 발전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서 전쟁을 벌여서 노예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이 첫 번째 계급투쟁입니다. 노예들은 자신이 일해서 생산한 결과에 대해서 소유권을 받지 못하고 모든 것은 노예의 주인이 독식하게 됩니다. 중세시대에 들어서면서 농노들과 영주들 간의 계급투쟁이 발생하게 됩니다. 농도들은 노동의 결과들에 대해 아주 약간의 소유권을 얻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영주들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지나가는 사람: 그러면 근대자본주의사회에서 어떤 계급투쟁이 발생하게 됩니까? 마르크스: 현재 산업혁명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도시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동자들의 과잉공급은 그들의 임금을 최저수준까지 떨어뜨리게 됩니다. 한편 노동으로 생산된 물품들을 노동자들에게 지급된 임금보다 비싼 가격에 팔리게 되고, 여기서 차액인 잉여가치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 모든 잉여가치를 자본가들이 독식하게 됩니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노동자 계급은 가난해지고 자본가 계급은 부유해질 겁니다. 결국 빈부격차는 점점 더 커질 것 입니다. 이러한 모순으로 인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어나게 되고 이에 따라 사유재산을 없애고 모든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공산주의가 탄생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공산주의가 어떤 형태를 지닐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한 적이 없다. 따라서 여러 레닌, 스탈린, 마오쩌뚱 같은 공산주의자들은 독자적으로 공산주의를 해석할 수 밖에 없었다. 마르크스: 저런 것이 마르크스주의라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실제로 한말) 마지막으로 프로이트는 이성에 대한 근대인들의 믿음을 산산조각으로 부셔버리는 획기적인 이론을 제시한다. 프로이트: 인간은 이성을 통해 인식을 하고 판단을 하지. 아주 당연한 소리야. 근데 우리에게는 의식이 닿을 수 없는 무의식이라는 영역이 존재해. 우리가 지각하는 의식은 무의식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 또한 우리는 스스로를 자유의지와 이성을 가지고 판단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야 우리의 이성이나 의식은 사실 무의식에 의해 지배당하는 존재라고. 젊은 융: 스승님 그럼 우리는 인간의 무의식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프로이트: 무의식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꿈의 분석, 최면 같은 방법이 존재하네. 보통 사람이 살면서 겪는 끔찍한 기억들이 트라우마가 된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트라우마가 될 만한 기억은 무의식에 묻히게 되는데, 이렇게 무의식에 묻힌 기억은 정신질환을 야기하게 된다네. 히스테리가 대표적으로 무의식에 묻혀있는 기억 때문에 발생하는 정실질환이네. 나는 꿈의 분석이나 최면 같은 치료법을 통해 무의식에 묻힌 트라우마를 드러냄으로써 히스테리 치료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네. 또한 프로이트는.. 프로이트: 기존 사회에서 성욕은 부정적인 것으로 취급받았지만 나는 성적 충동이 인간의 무의식 형성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 어린아이는 ‘구강기-항문기-남근기’라는 성격발전 단계를 가지고 있어. 그리고 각 단계에서 성적 충동을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서 성격장애가 생기게 될 거야. 기자: 그럼 혹시 박사님이 항상 시가를 피는 것도 구강성교에 대한 무의식적 집착 때문입니까?(기자가 프로이트에게 실제로 한말) 프로이트:.... 한편 근대철학의 경험론은 실증주의와 공리주의로 계승되게 되는데, 이러한 실증주의는 우리의 현상계(칸트 참고)를 불확실하고 쓸데없이 주관적인 것이라며 깎아내리게 된다. 이를 보다 못한 후설은 우리는 현상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상학이라는 학파를 창립하게 된다. 후설: 바보들아, 니들 실증주의는 현상계를 마치 저열한 것 취급하지만, 철학의 진정한 목표는 바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현상자체를 탐구하는 거라고!! 한편 후설의 제자였던 하이데거는 스승의 세운 현상학에 큰 감명을 받는다. 그는 현상학적 방법을 통해 그의 철학을 시작할 결심을 하게 된다. 하이데거: 존재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 예를 들어서 ‘책상 위에 사과가 존재한다’ 라는 문장이 있다고 가정해보자고. 여기서 ‘존재한다’ 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나는 철학의 가장 큰 과제는 바로 ‘존재’란 무엇인가를 밝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또한 나는 과거 철학자들이 이 존재라는 것을 잘못 이해했다고 생각해. 제자: 과거 철학자들이 존재에 대해서 잘못 이해했다고요? 하이데거: 그래 과거의 철학자들은 존재를 너무 뭉뚱그려서 이해했어. 나는 존재와 존재자를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해. 존재자는 쉽게 말해서 존재하는 사물이야. 고양이, 나무, 책상 같은 것들이지. 그리고 존재는 우리가 탐구해야 하는 그 무언가지. 한마디로 존재자가 존재를 하는 거야. 인간은 존재자이기는 한데 다른 존재자들과는 좀 달라. 인간은 ‘우리는 왜 존재할까? 존재란 무엇인가’ 라면서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는 존재이거든. 그래서 나는 인간을 현존재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해. 제자: 현존재요? 하이데거: 그래 우리 중 그 누구도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어, 우리는 아주 우연히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연약하게 존재를 이어가다가 우연히 죽는 존재지. 따라서 우리 현존재들은 우리가 하필 왜 존재하는 지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거야. 그러나 모든 현존재들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것은 아니야. 자신의 삶에 대한 실존적인 고민 없이 삶의 방향성을 잃고 기계적이고 습관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지.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는 순간이 오게 돼, 바로 죽음과 직면 할 때야. 제자: 죽음과 직면 할 때요? 하이데거: 그래, 사람들은 마치 죽음을 자신과는 상관없는 아주 먼 미래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죽어. 즉 우리의 존재가 사라지는 거지. 우리는 부나 명예가 인생의 최고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막상 죽음과 직면하게 된다면 그런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 알게 될 거야. 현존재는 죽음을 통해 존재라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 알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우리가 평상시에 지나쳐가는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같은 존재자들이 모두 경이롭게 느껴질거야. 하이데거: 한국의 시인 김춘수의 꽃을 낭송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번 강의를 마무리 짓도록 하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하이데거의 이러한 존재의 철학은 현상학, 실존주의, 해석학 등 다양한 학파의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실존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철학자로 사르트르와 메를로 퐁티가 있다. 사르트르: 나 역시 하이데거처럼 존재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철학의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해. 의자의 존재목적은 앉는 거고 망치의 존재목적은 못을 박는 거야, 하지만 인간의 존재목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우리는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니야. 나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존재의 근거를 만들어 가야한다고 생각해. 또한 사르트르가 말하길 사르트르: 하이데거는 이 세계를 존재자와 현존재로 분류했는데 나는 더 세분화해서 사물, 나, 그리고 타자(나 말고 다른 사람)로 분류하고 싶어. 나는 그 중에서 타자에 집중하고 싶어. 제자: 나와 타자는 어떤 관계입니까? 사르트르: 자네 혹시 자네한테 갑자기 시선이 쏠렸을 때 수치심을 느낀 적 없나? 수치심이 생긴 이유는 타자의 시선을 통해 자네가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일세. 만약 내가 혼자 있다면 남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전혀 없겠지. 그러나 타자의 시선이 나를 바라본다면 나는 내 자신을 객체화해서 내 외모나 목소리 등을 신경 쓰게 되어 버리지. 나의 세계가 타자에 의해서 침범 당한단 말일세. 제자: 그러면 저는 타자의 시선에 대해서 어떻게 대항해야 합니까? 사르트르: 두 가지의 방법이 있네, 하나는 나 역시 타자를 바라보는 것으로 타자를 객체로 만들어 버리는 것 일세. 이 경우 나와 타자 사이에 시선 투쟁이 발생하게 된다네. 상대방에 대한 무관심이나 증오가 이 방법에 속한다네. 다른 하나는 상대방의 시선에 의해 객체화 된 나의 모습을 내가 받아드리는 것일세. 사랑이 바로 이 방법에 속한다네. 그리고 나는 이렇게 객체화 된 나의 모습을 받아드린다면 나의 존재 근거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네. 한편 프랑스에서 구조주의라는 독창적인 사상이 발전하게 된다. 구조주의란 나와 세계 사이에 하나의 구조를 놓고 탐구하는 방법론을 의미한다. 이런 구조주의는 철학뿐만 아니라 여러 학문에서 유행하게 되었다. 소쉬르는 언어학,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 라캉은 정신분석학, 알튀세르는 마르크스학에 구조주의를 접목시켰다. 그러나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들은 모든 것을 구조화시키고 획일화 시키는 이런 구조주의 철학에 반감을 들어내게 된다. 또한 그들은 구조주의 철학뿐만 아니라 데카르트부터 칸트, 헤겔로 이어진 모더니즘 철학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기존의 모더니즘 철학은 지나치게 이성과 합리성을 강조하였고 그 부작용으로 나치즘과 파시즘이 등장했고 세계 대전을 발생시켰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모더니즘의 대안으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을 제시하게 된다. 대표적인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로 푸코, 데리다, 들뢰즈 등을 뽑을 수 있다. 푸코: 근대철학자들이 근대화가 인류를 더 나은 상태로 진보시킨다고 보았지, 하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아. 근대화는 오히려 인류를 억압시켜 놓았다고 생각해. 제자: 근대화가 인류를 오히려 억압했다고요? 어떻게 억압했다는 건가요? 푸코: 내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보지. 이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인간 개개인 모두는 전부 수많은 개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지. 하지만 근대화에 들어서면서 권력을 가진 자들은 가장 이상적이고 표준적인 인간상을 만들게 되네. 제자: 왜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런 표준적인 인간상을 만든 건가요? 푸코: 바로 국민을 쉽게 통제하기 위해서지. 사람들은 사회, 학교, 미디어로부터 이러한 표준적인 인간상을 강요받게 된다네. 그 결과 수많은 개성을 가진 인간은 그 표준적인 인간상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되네, 그리고 이 표준적인 인간상에 들지 못하게 된다면 사회는 그 사람에게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찍게 되지. 제자: 결국 국가는 과거처럼 강압적으로 사람들을 복종시킬 필요가 없는 거네요. 권력이 자신의 입맛대로 표준적인 인간상을 만들고 사람들은 이 표준적인 인간상에 들기 위해서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되어 버리니까요. 푸코: 정확하네. 또한 나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지식들의 역시 권력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이라고 생각하네. 고정된 진리란 존재하지 않아. 진리라는 것은 권력층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것일세. 나는 대표적인 예로 정신병자 즉 광인을 들고 싶네. 제자: 광인이요? 미친 사람들을 말하는 건가요? 푸코: 그렇다네, 과거 광인은 전혀 부정적인 대상이 아니었어, 오히려 신통력을 가진 사람들이라 생각되었지. 그러나 근대로 들어서면서 광인들은 비정상적인 정신병원에서 격리 되어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네. 광인의 뜻이 완전히 달라져버린 것이지. 과거에는 정상으로 여겨졌던 광인들을 근대에 들어서 비주류라는 이유로 비정상으로 낙인을 찍어버린 걸세. 결국 권력이 모든 지식을 재생산 하는 거야. 한편 레닌, 스탈린은 마르크스를 잘못 이해했으며 서구 사회는 마르크스를 서구식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사상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네오 마르크스주의라 불리게 된다. 네오 마르크스 주의의 대표적인 철학가로 벤야민, 그람시, 루카치를 뽑을 수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이런 네오 마르크스주의의 사상을 이어받아서 독자적인 사회 철학을 펼치게 된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적인 1세대 철학자로 아도르노를 뽑을 수 있고 대표적인 2세대 철학자로 하버마스를 뽑을 수 있다. 하버마스: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자들은 근대화가 실패했고 이성을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했지만 내 생각은 좀 달라. 비록 현대에 들어서 근대화의 부정적인 측면이 들어났기는 했지만 긍정적인 측면 역시 있다고 생각해. 또 하버마스가 말하길.. 하버마스: 이전 철학자들은 근대화의 과정을 단순히 목적합리성(효율성)의 극대화라고 보았어. 예를 들어서 국가는 관료주의를, 그리고 시장은 자본주의를 극대화함으로써 효율성을 극대화 시켰던 거지. 그러나 이렇게 효율성만 극대화가 되게 된다면 인간이 도구처럼 취급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지. 하지만 근대화의 과정은 단순히 목적합리성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야. 제자: 그럼 근대화의 과정에는 목적합리성 외에 또 무엇이 있나요? 하버머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목적합리성과 함께 의사소통의 합리성 역시 발전하게 되지.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고 토론을 통해 더 나은 결론을 맺을 수 있는 능력 역시 발전한다는 거야. 다시 말해서 근대화 과정을 통해 목적합리성과 의사소통의 합리성 이 두 가지가 동시해 발전하는 것이야. 제자: 스승님 질문 있습니다, 그럼 근대화를 통해 일어났던 부작용들은 이 두 가지 합리성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하버마스: 우리 사회에는 두 가지 사회가 존재하네. 하나는 ‘사회체계’로 국가의 행정체계와 자본주의 시장체계가 속하는 곳이지. 그리고 근대화가 진행되면 이곳에서 목적합리성이 극대화된다네. 나머지 하나는 바로 ‘생활세계’, 말 그대로 우리 개개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근대화가 진행되면 의사소통의 합리성이 발전하는 곳이라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이 두 가지 사회의 균형이 깨지게 되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된 걸세. 제자: 어떤 문제가 발생한 것 입니까? 하버마스: 바로 사회체계가 생활세계의 영역에 침범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생활세계를 식민지로 만들어버린 걸세. 의사소통이 중요한 영역에서 지나친 효율성만을 강조했으니 사회적 문제가 생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시 이 두 가지 사회의 균형을 되찾아야 한다네. 생활 세계를 사회 체계로부터 독립시켜야 하는 것일세. 한편 유럽대륙에서 현상학, 실존주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구조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등 다양한 철학이 발달한 것처럼 영미권에서는 분석철학이라는 아주 독특한 철학이 발전하게 되었다. 분석철학은 프레게와 러셀에 의해서 만들어진 철학사조인데, 이 둘은 당시 영국에서 유행했던 헤겔의 관념론에 대항하여 분석적이고 실증적인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철학의 모든 문제는 언어에서 발생하였으며, 그러므로 언어를 논리적으로 분석한다면 모든 철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한편 비트겐슈타인이라는 한 오스트리아 청년이 나타나 분석철학의 기틀을 잡아놓기 시작하는데.. 비트겐슈타인: 러셀 스승님, 저는 언어가 우리 세계를 반영해주는 그림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복도에 고양이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나는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기 위해 그 사람을 복도로 데리고 갈 수도 있지만, ‘복도에 고양이가 있다’고 언어를 통해 말해줄 수도 있죠. 이것은 마치 복도에 있는 고양이를 그림으로 그려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다시 말해 언어란 세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그림인 셈입니다. 러셀: 음.. 그런가? (이 자식.. 감히 스승을 가르치려고 해? 많이 컸구나..) 비트겐슈타인: 그렇다면 우리는 왜 언어가 이 세계를 재현하는지 알 필요가 있겠죠. 그러기 위해 저는 언어를 4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먼저 가장 하위 개념인 단어가 있고요(탁자, 사과), 그 단어들이 합쳐져서 단일명제가 만들어 집니다.(탁자위에 사과가 있다.) 그리고 단일명제가 합쳐져서 복합명제가 만들어지고요.(탁자위에 사과가 있다, 그리고 탁자 아래 강아지가 있다.), 마지막으로 복합명제가 모두 모이면 언어가 되는 겁니다. 제 생각에 이 4가지 중에 단일명제가 세계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실과 대응되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단일명제가 모여서 생긴 언어는 사실이 모여서 생긴 세계를 재현하게 되는 겁니다. 러셀: 이봐 비트겐슈타인, 예를 들어서 책상 위에 사과가 있다고 가정해봤을 때 ‘사과가 책상위에 있다’라고 명제를 만들 수 있겠지. 그럼 이 명제와 대응되는 하나의 사실이 존재하는 것일세. 그럼 우리는 다른 사람을 직접 책상에 데리고 가서 책상 위에 사과가 존재하는 사실을 보여주던지, 아니면 그 명제를 다른 사람에게 언어로 말해주던지 둘 중에 하나를 하면 되겠지. 그러나 항상 하나의 단일명제에 하나의 사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예를 들어서 ‘이 그림은 아름답다’ 혹은 ‘기부는 착한 행동이다’ 같은 명제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대응하는 사실이 없지 않나? 비트겐슈타인: 저는 하나의 사실에 대응할 것이 없는 명제를 ‘말할 수 없는 것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이런 명제들을 가지고 왈가왈부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명제들에 대응될 수 있는 사실이 없기 때문에 증명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나 기존 철학자들은 무슨 답이 있는 것 마냥 이 문제에 대해 떠들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선언합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되어야 합니다. 러셀: 그래 대단한 발견을 하느라 참 고생했네... 비트겐슈타인: 저의 이론을 더 알고 싶으시다면 제가 집필한 책인 ‘논리철학논고’를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모든 철학적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만 철학계에서 은퇴할 생각입니다. 러셀: (이런 싸가지 없는 놈..) 한편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은 당시 영미권 철학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여기에 자극을 받아 검증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사변은 모두 제거하고 검증할 수 있는 것만을 분석해야 한다는 논리실증주의 학파가 창설되게 된다. 한편 비트겐슈타인은 시골로 내려가 선생님이 되었는데. 논리실증주의자: 헉...저기.. 혹시 비트겐슈타인씨 인가요? 비트겐슈타인: 네 그런데요? 논리실증주의자: 우리는 당신을 신으로 숭배합니다. 비트겐슈타인: 네?.............. 그러나 모든 철학적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부했던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그림이론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는 철학적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다시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향하게 된다. 무어: 이봐 러셀, 비트겐슈타인이 다시 대학으로 돌아왔는데 말이야.. 박사학위를 따고 싶어 하더군, 그리고 자네에게 논문심사를 요청했네. 러셀: 논문 제목이 뭐지? 무어: ‘논리철학논고’, 20세기 초반 영미권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철학저서... 러셀: ........... 내 살면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논문심사는 처음이군(러셀이 실제로 한말) 한편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이 초기에 세웠던 철학 이론을 수정하게 되는데, 훗날 사람들은 이 시기의 비트겐슈타인을 후기 비트겐슈타인이라고 부른다. 비트겐슈타인: 예전에 나는 언어를 그림이라고 표현했는데, 잘못 생각한 거였어요. 언어는 게임 같은 겁니다. 그리고 나는 예전에 하나의 명제는 하나의 사실에 대응한다고 했는데 이 역시 잘못 생각한 거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명제는 서로 다른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 사실에 대응하거든요. 러셀: 하나의 명제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사실에 대응한다고? 비트겐슈타인: 네 맞아요, 예를 들어서 ‘이봐 자네, 망치!’ 라는 명제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만약 지금 상황이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 옆 사람에게 망치를 달라는 뜻이고, 망치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면 옆 사람에게 망치를 조심하라는 뜻이 되는 거죠. 다시 말해 명제는 상황에 따라서 대응하는 사실이 달라지는 겁니다. 마치 게임의 규칙 같은 겁니다. 러셀: 언어는 게임같은 거라고? 비트겐슈타인: 네 맞아요, 카드 게임을 할 때 게임의 참가자 모두 규칙을 알아야 게임이 가능한 거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대화를 할 때 같은 언어 규칙을 공유해야만 대화가 통하는 겁니다. 망치를 달라고 ‘이봐 자네 망치!’ 라고 했는데 상대방은 망치가 떨어지는지 알고 도망가면 대화가 되겠습니까?  논리실증주의자: 이럴 수가.. 우리의 신이 타락했다.. 한편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의 외도(?)에도 여전히 논리실증주의의 위세는 굳건하였다. 그러나 논리실증주의에 큰 타격을 입히고 마침내 무너뜨린 철학자가 등장하게 된다. 바로 콰인이다. 논리실증주의는 명제를 종합 명제와 분석 명제로 구분하였다. 종합명제는 그 문장이 사실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직접 외부의 세계에서 확인해봐야 하는 명제를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유재석은 총각’이다‘를 들 수 있다. 이 문장이 참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유재석이 진짜 총각인지 확인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분석명제는 참인지 확인하기 위해 외부의 세계에서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는 명제를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총각은 결혼하지 않는 남자이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총각과 결혼하지 않는 남자가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이 종합명제와 분석명제를 잘 분석해서 이를 통해 과학 같이 다른 분야를 돕는 것이 철학의 주된 목표라고 생각했다. 콰인: 당신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모든 명제는 종합명제와 분석명제 구분할 수 있다는데 내 생각은 좀 다릅니다. 논리실증주의자: 무슨 말씀입니까? 콰인: 제가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분석명제는 왜 외부세계에서 확인을 필요가 없는 겁니까? 논리실증주의자: 왜냐하면 주어와 주어 뒤에 있는 단어가 동의어(같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이다’는 분석명제입니다. ‘총각’ 과 ‘결혼하지 않는 남자’는 동의어이기 때문에 다른 문장에서 ‘총각’ 대신에 ‘결혼하지 않은 남자’를 대입해도 여전히 참이겠죠. 철수는 (총각)이다 -> 철수는 (결혼하지 않는 남자)이다. 어때요 대입해도 여전히 참이죠? 따라서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이다’는 분석명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논리실증주의자: 반면 종합명제는 주어와 주어 뒤에 있는 단어가 동의어가 아니므로, 다른 문장에 대입하면 참이 아닐 수도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모든 백조는 흰색 새이다’는 종합명제일까요? 분석명제일까요? 이때는 ‘백조’ 대신에 ‘흰색 새’를 대입해 보고 여전히 참인지 확인해 보면 됩니다. 한번 ‘(백조)는 목이 길다’에 대입해 봅시다. -> (흰색 새)는 목이 길다. 하지만 비둘기 역시 흰색 새지만 목이 짧지 않습니까? 결국 이 문장이 거짓이 되므로 ‘모든 백조는 흰색 새이다’는 종합명제입니다. 콰인: 이런 명제는 어떻습니까? ‘심장을 가진 동물은 콩팥을 가진 동물이다.’ 심장이 피를 온몸으로 뿜어내는 역할을 한다면 콩팥은 피를 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심장과 콩팥은 서로 필수불가결 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장을 가진 동물은 모두 콩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다른 문장에 ‘심장을 가진 동물’ 대신에 ‘콩팥을 가진 동물’을 대입해도 전부 다 참과 거짓이 변하지 하지 않습니다. 개는 (심장을 가진 동물)이다 -> 개는 (콩팥을 가진 동물)이다. 고로 이 두 개는 동의어고 ‘심장을 가진 동물은 콩팥을 가진 동물이다.’는 분석명제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논리실증주의: ...(이게 아닌데..) 콰인: 그런데 ‘심장을 가진 동물은 콩팥을 가진 동물이다.’ 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부세계에서 확인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럼 종합명제 아닙니까? 도대체 이 명제의 정체는 분석명제입니까? 종합명제입니까? 결국 저는 종합명제니 분석명제니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리실증주의: ....... 한편 물리학자였던 토마스 쿤은 어느 날 대학으로부터 과학사를 강의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토마스 쿤: 그래, 그럼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가르치면 되겠지?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술한 자연학을 핀다.) 응? 이 끔찍한 오류는 뭐야? 아리스토텔레스는 역학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잖아.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시대에서 나름대로 뛰어난 탐구방법을 가지고 과학을 연구했지만 지금 기준에서 보면 맞는 말 자체가 없는 것 같아.. 토마스 쿤: 지금 기준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시절의 과학을 보면 참 웃기지도 않는 말들이 많지만 어쩌면 미래의 기준에서 지금 과학을 보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현대 과학을 비웃지 않을까? 한번 과학이 어떤 식으로 발전하는 지 탐구해볼 가치가 있을 것 같아. 토마스 쿤은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저의 유명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을 저술하게 된다. 그는 이 책으로 인해 과학철학계의 거두로 떠오르게 된다. 토마스 쿤: 과학은 전 과학 -> 정상과학-> 위기-> 과학혁명 이렇게 총 4가지 과정을 통해 발전합니다. 전 과학은 아예 과학의 패러다임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원시시대를 의미합니다. 패러다임이란 과학자들이 공통으로 이해하는 과학적 틀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서 뉴턴은 시간과 공간이 절대 불변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뉴턴의 패러다임은 아인슈타인 이전까지 과학자들에게 너무나 당연하게 이해되는 상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패러다임이 확립되는 시기가 바로 정상과학 단계입니다. 청중들: 그럼 그런 정상과학에 어떤 위기가 오는 겁니까? 토마스쿤: 위기 단계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는 이상한 현상들이 지속적으로 관측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수성의 근일점 이동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뉴턴의 고전역학으로는 이 수성의 근일점이 이동하는 것을 설명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다가 과학혁명 단계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드디어 아인슈타인의 패러다임에서 상대성 이론을 통해 수성의 근일점 이동의 설명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그리고 과학혁명 단계에서 다시 정상과학단계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과학 단계들이 반복되는 됩니다. 청중: 그럼 우리의 현대 물리학도 언젠가는 그 패러다임이 깨질 것이라는 건가요? 토마스 쿤: 물론입니다. 대표적으로 표준모형에서 중력의 부재,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정체 등 현대 물리학의 패러다임으로 해결할 수 없는 현상들이 발견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들을 해결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때 한 수염 덥수룩한 남자가 일어난다. 청중: 앗! 20세기 후반 최고의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야! 스티븐 와인버그: 당신은 과학이 마치 상대적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나는 당신의 이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 현대 과학자들은 뉴턴의 고전역학을 다소 보완한 거지, 완전히 갈아 엎은게 아니란 말입니다!!!! 토마스 쿤: 훗 과연 그럴까요? 그거야 미래에 가면 알게 되겠죠. 한편 존 롤스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했던 정치철학자다. 그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시하였다. 존 롤스: 우리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 끼리 공정한 절차의 협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야 해. 그러나 현재 이 상태로는 합의점을 찾을 수 없을 거야. 제자: 합의점을 찾을 수 없다고요? 왜 그렇죠? 존 롤스: 인간은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 하려고 하고 타인의 이익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존재거든. 결국 서로의 이익만 극대화 하려다가 합의점을 찾을 수가 없는 거지. 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지의 베일’ 이라는 가상의 실험을 제의하고 싶어. 제자: 무지의 베일이요? 존 롤스: 그래 이 무지의 베일을 머리에 씌우게 되면 내가 누구인지, 내 사회적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게 돼. 일종의 기억상실증 같은 거야. 이렇게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머리에 무지의 베일을 씌우고 협의를 한다고 생각해봐. 그럼 사람들은 부자와 빈민들 중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결론이 날까? 제자: 자기가 빈민인지 부자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빈민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결론이 나지 않았을까요? 왜냐하면 부자의 경우 사회의 이익이 우선시 되지 않아도 원래 돈이 많으니까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지만, 빈민의 경우 이익이 우선시 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빈민일 때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요. 아무래도 사람들은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빈민의 이득을 극대화 하는 것으로 합의점을 잡겠죠. 존 롤스: 아주 정확해, 그리고 사람들은 바로 이런 협의를 통해서 두 가지 원칙에 대해 동의하게 될 거야. 첫째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거야. 그리고 두 번째로 유일하게 불평등이 용인되는 경우가 있는데 아까 말한 것처럼 사회적 약자에게 이익을 극대화 할 때야. 정리해서 말하자면 모든 사람에게 자유와 평등이 주어져야 하지만 약자를 배려하는 선에서 어느 정도 불평등은 용인될 수 있다는 거야. 존 롤스의 이러한 자유주의 정치철학은 영미권 철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곧이어 로버트 노직으로 대표되는 자유지상주의, 마이클 센델, 마이클 왈저 등의 공동체주의 등도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정치철학 이론을 발표하면서 소위 정치철학 논쟁의 불을 지피게 된다. 요약 출처
우울하고 무기력한 당신이 읽어볼만한 테일러 스위프트 앨범 소개글들.jpg
테일러가 가사 잘 쓰는것도 유명하지만 머릿말들이 너무 좋아서,,, 각 앨범의 머릿말마다 앨범에서 뭘 보여주려는지 느껴지고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게해서 읽어보길 추천! 갓구팔구 1989  (Blank Space, Shake it off 외) 2014 이 노래들은 한때 거의 제 인생이었어요, 그리고 이제 그것들은 당신의 것이죠.  I was born in Reading, Pennsylvania on December 13, 1989. 저는1989년 12월 13일 펜실베니아 레딩에서 태어났어요.  In the world we live in, much is said about when we are born and when we die.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언제 태어났고 언제 죽었는지 말해요.  Our birthday is celebrated every year to commemorate the very instant we came into the world. 우리의 생일날은 매년 우리가 세상에 온 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축하받아요.  And a funeral is held to mark the day we leave it. But lately I've been wondering... 그리고 장례식은 우리가 떠난 날을 기억하기 위해 열리죠. 그렇지만 최근에 제가 궁금해했던 것은.... what can be said of all the moments in between our birth and our death? The moments when we are reborn... 우리의 삶과 죽음 사이의 모든 순간들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다시 태어났던 순간들은.... The debate over whether people change is an interesting one for me to observe because it seems like all I ever do is change. 사람이(테일러가) 변했냐는 것에 대한 토론은 제가 보기에는 흥미로운 주제에요,  왜냐면 제가 변하기 밖에 안한 걸로 보이거든요.  All I ever do is learn from my mistakes so I don't make the same ones again. 제가 배운것이라곤 제 실수들로부터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게끔 한 것 뿐이에요.  Then I make new ones. I know people can change because it happens to me little by little every day.  그리고 전 새로운 것들을 만들죠. 전 사람들이 바뀔수도 있다는 걸 알아요, 왜냐하면 저도 매일 조금씩 바뀌고 있으니까요.  Every day I wake up as someone slightly new. Isn't it wild and intriguing and beautiful to think that every day we are new? 매일 전 일어나서 조금씩 새로운 사람처럼 변해요. 매일 우리가 새로워진다는 생각을 하는건, 정말 와일드하고 흥미롭고 아름답지 않나요?  For the last few years, I've woken up every day not wanting, but needing to write a new style of music. 지난 몇년 동안, 저는 매일 일어나서,  '제가 원해서'가 아니라 '필요'로 인해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들을 썼어요.  I needed to change the way I told my stories and the way they sounded. 저는 제 이야기를 하고 그것들이 들리게 하는 방식을 바꿔야만 했어요.   I listened to a lot of music from the decade in which I was born and I listened to my intuition that it was a good thing to follow this gut feeling. I was also writing a different storyline than I'd ever told you before. 저는 제가 태어난 년대의 음악을 아주 많이 들었고 그 풍의 음악을 따라가는게 좋을거라는  이 직감에 대한 저의 통찰에 귀를 기울였어요. 또, 저는 여태 말한적 없었던 방식으로 스토리라인을 썼었어요.  I wrote about moving to the loudest and brightest city in the world, the city I had always been overwhelmed by... until now. 저는 세상에서 가장 시끄럽고 밝은 도시로 이사간것에 대해 썼어요, 그 도시(뉴욕)는 항상 저를 압도했었던 곳이죠...지금까지도요.   I think you have to know who you are and what you want in order to take on New York and all its blaring truth. 저는 여러분이 당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뭘 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뉴욕에서 뭔갈 얻고 모든 사실을 울리기 위해서요.  I wrote about the thrill I got when I finally learned that love, to some extent, is just a game of cat and mouse. I wrote about looking back on a lost love and understanding that nothing good comes without loss and hardship and constant struggle.  저는 사랑에 대해 마침내 제가 깨달았던 스릴에 대해 썼어요, 어떤 사랑이던간에, 그건 고양이와 쥐의 게임이라는 걸요.  저는 잃었던 사랑을 되돌아보는 것에 대해 썼고,  거듭되는 고군분투와 고통과 잃는 것 없이는 어떤 좋은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There is no "riding off into the sunset," like I used to imagine. We are never out of the woods, because we are always going to be fighting for something.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는건 없어요, 제가 상상했듯이. 우리는 절대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거에요,  왜냐하면 우린 항상 뭔가를 위해 싸울테니까요.  I wrote about love that comes back to you just when you thought it was lost forever, and how some feelings never go out of style.  저는 영원히 떠날거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때 돌아온 사랑에 대해 썼어요, 그리고 절대 벗어날 수 없는 형태의 감정들에 대해서도요.  I wrote about an important lesson I learned recently... that people can say whatever they want about me, but they can't make me lose my mind. I've learned how to shake things off. 저는 제가 최근에 배운 중요한 교훈에 대해 썼어요...  사람들은 제게 원하는 걸 말할 수 있지만, 그들이 절 미쳐버리게 할 순 없는걸요.  저는 어떻게 떨쳐내는지에 대해 썼어요.  I've told you my stories for years now. Some have been about coming of age. Some have been about coming undone. This is a story about coming into your own, and as a result... coming alive. 저는 제 이야기를 몇년째 말해왔어요.  어떤 것들은 거의 성년이 되었어요.  어떤 것들은 미성숙하고요.  이건 당신의 고유한 , 그리고 어떤 결과로서의... 살아있는 이야기에요.  I hope you know that you've given me the courage to change.  I hope you know that who you are is who you choose to be, and that whispers behind your back don't define you.  You are the only person who gets to decide what you will be remembered for. 저는 여러분이 제게 변화할 용기를 줬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전 당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누가 되기로 했는지를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당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은 당신을 정의할 수 없다는 것도요. 여러분만이, 당신이 어떻게 기억될지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From the girl who said she would never cut her hair or move to New York or find happiness in a world where she is not in love... 절대 머리를 자르지 않을 거라고 하거나, 뉴욕으로 이사가지 않을 거고 혹은 사랑에 빠지지 않은 곳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소녀로부터... Love, Taylor 사랑을 담아, 테일러가  테일러의 앨범 중 가장 어두운 분위기의 앨범 Reputation (Look What You Made Me Do , End game 외) 2017 Here's something I've learned about people. 사람들에 대해 깨달은 것들을 여기에 적어봤어요.  We think we know someone, but the truth is that we only know the version of them they have chosen to show us. We know our friend in a certain light, but we don't know them the way their lover does. Just the way their lover will never know them the same way that you do as their friend. Their mother knows them differently than their roommate, who knows them differently than their colleague. 우리는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기로 선택한 버전'의 모습만을 알 뿐이에요.  우리는 우리의 친구들이 어떤식으로 비쳐보이는지를 알지만, 그들의 연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알지 못하죠.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그들의 연인은 우리가 그들을 친구로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절대 알지 못하죠.  그들의 어머니는 그들의 룸메이트가 바라보는 것과 다르게 그들을 알고,  그들의 룸메이트는 그들의 직장동료와는 그들을 다르게 바라보죠.  Their secret admirer looks at them and sees an elaborate sunset of brilliant color and dimension and spirit and pricelessness. And yet, a stranger will pass that person and see a faceless member of the crowd, nothing more. We may hear rumors about a person and believe those things to be true. We may one day meet that person and feel foolish for believing baseless gossip. 그들을 비밀스럽게 짝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바라보면 빛나는 색깔들의 색으로 이뤄진 노을과 차원  그리고 영혼,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귀중한 것들이 보일거에요.  그러나, 낯선이들은 그저 그 사람을 지나쳐가고 무표정한 관중 속의 얼굴만 보겠죠, 그 이상은 없어요.  우리는 아마 살면서 어떤이에 대한 루머들을 듣고 그런 것들을 사실이라고 믿었을거에요.  그리고 우리가 언젠가 그 사람을 실제로 만나고나면 그런 근본도 없는 가십을 믿은 게 바보같았다고 느껴질거에요.  This is the first generation that will be able to look back on their entire life story documented in pictures on the internet, and together we will all discover the after-effects of that. Ultimately, we post photos online to curate what strangers think of us. But then we wake up, look in the mirror at our faces and see the cracks and scars and blemishes, and cringe. We hope someday we'll meet someone who will see that same morning face and instead see their future, their partner, their forever. Someone who will still choose us even when they see all of the sides of the story, all the angles of the kaleidoscope that is you. 우리는 인터넷에 기록된 우리 삶 전체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첫번째 세대에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의 후유증도 함께 알게되겠죠.  궁극적으로, 우리는 낯선이들이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들을 보여줄 사진들을 온라인에 올리죠.   그렇지만 그러고 난 뒤 우리는 일어나서,   거울 속 우리의 얼굴을 바라보고 얼굴의 갈라짐과 흉터, 흠집과  움츠린 모습을 봐요.  우리는 언젠가 이런 아침 맨얼굴을 바라봐줄 사람을 만나길 기대해요,  전망이나, 파트너나, 아주 오랜 시간 뒤를 바라보는 것 대신에요.  우리 이야기의 모든 면을 보고난 뒤에도 여전히 우릴 선택해줄 그런 사람이요,  당신이라는 만화경의 모든각도를 바라본 뒤에도요. The point being, despite our need to simplify and generalize absolutely everyone and everything in this life, humans are intrinsically impossible to simplify. We are never just good or just bad. We are mosaics of our worst selves and our best selves, our deepest secrets and our favorite stories to tell at a dinner party, existing somewhere between our well-lit profile photo and our drivers license shot. We are all a mixture of our selfishness and generosity, loyalty and self-preservation, pragmatism and impulsiveness. 모든걸 간단하게 정리하고 일반화시키고자하는 우리의 욕구에도 불구하고,  사람이라는 존재는 본질적으로 간단화시키는게 불가능해요,  거의 우리 삶 속의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는 절대 완전히 착하거나 완전히 나쁠 수가 없어요.  우리는 우리의 최악과 최고의 모습들의 모자이크에요,  우리의 가장 두려운 비밀들과 우리가 디너 파티때 말하고자 하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들,  어딘가에 존재하는 우리의 인생짤 프로필 샷과 운전면허증 사진(보통 못나옴)  그 사이의 어딘가에요. 우리는 모두 이기적임과 관대함, 의리와 자기보호, 실용성과 충동성의 혼합체에요.  I've been in the public eye since I was 15 years old. On the beautiful, lovely side of that, I've been so lucky to make music for living and look out into crowds of loving, vibrant people. On the other side of the coin, my mistakes have been used against me, my heartbreaks have been used as entertainment, and my songwriting has been trivialized as 'oversharing'. 저는 15살 때부터 공인으로서 살아왔어요. 그것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면으로 바라봤을 때, 저는 엄청나게 행운이었어요,  음악을 만들기 위해 살아갈 수 있었고,  활기차고, 저를 사랑해주는 관중들을 바라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동전의 다른 면에서는, 제 실수들은 저를 향해 돌아왔고, 제 고통과 슬픔은 오락거리로 여겨졌으며,  제 작곡은 '너무 과하게 공유하는'것으로 치부되어왔어요.  When this album comes out, gossip blogs will scour the lyrics for the men they can attribute to each song, as if the inspiration for music is as simple and basic as a paternity test. There will be slideshows of photos backing up each incorrect theory, because it's 2017 and if you didn't see a picture of it, it couldn't have happened right? 이 앨범이 나오면, 가십 블로그들은 가사들을 샅샅이 뒤져서 곡에 해당하는 남자를 찾아낼거에요, 마치 이 음악의 영감이 무슨 친자테스트마냥 간단하고 기본적인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이 앨범 매거진에는 틀린 이론들에 대해 말해주는 슬라이드 쇼가 있을거에요, 왜냐면 2017년이잖아요 만약 사진이 없다면, 일어난 일이 아닌게 되잖아요?  Let me say it again, louder for those in the back... 다시 한번만 더 말할게요, 더 크게,  안쪽에 있는 것들을 위해서... We think we know someone, but the truth is that we only know the version of them that they have chosen to show us. 우리는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기로 선택한 모습만 알고 있는거에요. There will be no further explanation. 더 이상의 설명은 없어요. There will be just reputation. 오직 평판만 있을 뿐.  가장 최근 앨범 Lover (Lover , Daylight 외) 2019 When I found old diaries from my childhood and my teens, they were covered in dust. I'm not just saying that for poetic effect, they were truly dusty with pictures drawn of first day of school outfits and inspirational quotes I used to retrace over and over to get me through doubtful moments.  제가 제 어린시절과 십대시절의 오래된 일기장들을 발견했을 때 그것들은 먼지로 뒤덮여 있었어요.  제가 무슨 시적 효과를 위해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제 일기장들은 정말로 학교에 처음 가던 날 교복을 입은 모습이 그려진 사진들,  제가 몇번이고 되짚었던, 제 불안했던 순간들을 견디게 해줬던 인상깊은 명언들과 함께 먼지투성이였어요. I'd practice my autograph and tape my guitar picks to the pages. In the entries, I daydreamed on paper and mused about who might ask who to the dance or how nervous I was saying the national anthem at the local baseball game. 전 사인하는 걸 연습했고 제 기타 피크를 일기장에 붙여뒀었어요.  앞부분에서, 저는 몽상에 빠져 글을 적었고 누가 누구에게 춤추러갈지를 골똘히 생각해보거나  지역 농구대회에서 국가를 부르는게 얼마나 긴장되었는지도 적어놨어요.  I frequently and drastically changed my opinions on love, friends, confidence and trust. I vented, described memories in detail, jotted down new song ideas and questioned why I would ever try to shoot for a career I had such a small chance of ever attaining. 저는 자주, 그리고 과감하게 사랑, 우정, 자신감과 신뢰에 대한 제 생각들을 바꿔왔어요.  저는 울분을 토해놓거나, 기억들을 디테일하게 묘사해놓았고, 새로운 노래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대강 적어놓기도 했고,  적은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는데 왜 이렇게 커리어를 위해 열심히 달려야하는지 의구심을 품기도 했었어요. But what shocked me the most was how often I wrote down the things I loved. Writing a new song, riding in the car with my mom, the purple-pink skies of the soccer field on the walk home, the one night in middle school when none of my friends were fighting, the dazzle of opal necklaces I couldn’t afford gleaming from a department store jewelry case. 그렇지만 절 가장 놀라게 한 건, 제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써놓았었다는거에요. 새로운 노래를 쓰기, 엄마와 함께 차타고 달리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축구장에서 본 보랏빛ㅡ핑크 하늘, 친구들이 아무도 싸우지 않았던 중학교때의 어느 날,  백화점 쥬얼리 샵 케이스 속의 감당할 수 없이 빛나던 오팔 목걸이의 반짝임.  I wrote about tiny details in my life in these diaries from a bygone age with such...  wonderment. Intrigue. Romance. I noticed things and decided they were romantic, and so they were. 전 이 다이어리 안에 들어있는 제 삶의 세세한 디테일을 썼어요,  지나간 세월과... 그에 대한 경이심, 흥미, 로맨스들과 함께요.  제가 뭔가를 인지했었고 그것들이 로맨틱하다고 마음먹었었으면, 그건 그랬던거에요. In life, we grow up and we encounter the nuanced complexities of trying to figure out who to be, how to act, or how to be happy. Like invisible smoke in the room, we wonder what kind of anxiety pushes you forward and what kind ruins your ability to find joy in your life. We constantly question our choices, our surroundings, and we beat ourselves up for our mistakes. All the while, we crave romance. We long for those rare, enchanting moments when things just fall into place. Above all else, we really, really want our lives to be filled with love. 삶 속에서, 우리는 자라고 어떤 사람이 될것인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혹은 어떻게 행복해지는지의  미묘한 복잡성과 맞닥뜨려요.  마치 방에 보이지 않는 연기가 자욱한 것처럼,  우리는 어떤 류의 불안이 당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고  어떤 것이 당신의 삶의 즐거움을 찾게해주는 능력을 망치는지 궁금해해요.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선택, 우리 주변의 것들에 의문을 품을거고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실수로 스스로를 다치게 하기도해요.   그러는 내내, 우리는 로맨스를 강렬히 원하죠.  우리는 로맨스가 찾아올때의 소중한, 마법 같은순간을 열망해요.  모든 것들을 뛰어넘어, 우린 정말 정말 우리의 삶이 사랑으로 채워지길 원하죠. I've decided that in this life, I want to be defined by the things I love- not the things I hate, the things I'm afraid of, or the things that haunt me in the middle of the night. Those things may be struggles, but they're not my identity.  전 이 삶속에서 이렇게 결론지었어요,  저는 제가 사랑하는 것들로 정의되고 싶어요  - 싫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혹은 한밤중에 날 시달리게 하는 유령같은 것들 말고요.  이런 것들은 힘든 것들이지만, 그것들이 제 정체성은 아니에요. I wish the same for you. May your struggles become inaudible background noise behind the loud, clergies voices of those who love and appreciate you. Turn those voices up in the mix in your head. May you take notice of the things in your life that are nice and make you feel safe and maybe even find wonderment in them. May you write down your feelings and reflect on the years later, only to learn all the trials and the tribulations you thought might kill you... didn't. 저는 당신도 그러길 바라요. 당신의 힘든 일들은 큰 배경음들,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에게 고마워하는 기도의 목소리에 가려져서 들리지않게 될수도 있어요.  그 목소리들의 소리를 키워서 당신의 머릿속에 섞어두세요.  당신은 아마 당신의 삶 속에서 좋고 당신을 안심시켜주게 만들고  심지어 경이로움을 발견하게 해주는것들을 알아차리게 될 수도 있어요.  당신은 아마 당신의 감정들과 몇 년후의 미래를 투영시켜 쓸수도 있어요,  오로지 이걸 배우기 위해서요.  당신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모든 시험들과 시련들.. 그것들은 그러지 못해요.  I hope that someday you forget the pain ever existed. I hope that if there is a lover in your life, it's someone who deserves you. If that's the case, I hope you treat them with care. 언젠가 당신이 그 고통이 존재했다는 것 조차 잊길 바랄게요.  만약 당신의 삶에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당신이라는 사람과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길 바래요.  만약 그렇다면, 당신이 그들을 신경써서 대우해주길 바랄게요. This album is a love letter to love itself- all the captivating, spellbinding, maddening devastating red, blue, gray, golden aspects of it (that's why there are so many songs) 이 앨범은 사랑 그 자체에 대한 러브레터에요 - 모든 매혹적인,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 미친듯하고 파괴적인  빨간색, 푸른색, 회색, 황금색 측면의 사랑이요 (수많은 사랑노래가 있는 이유랍니다.) In honor of fever dreams, bad boys, confessions of love on a drunken night out, Christmas lights still hanging in January, guitar string scars on my hands, false gods and blind faith, memories of dumping into an icy outdoor pool, creaks in floorboards and ultraviolet morning light, finally finding a friend, and opening the curtains to see the clearest, brightest daylight after the darkest night. 강렬한 꿈들과, 나쁜 남자들, 술에 취한 날 밤 밖에서 한 사랑의 고백들,  1월까지 걸려있는 크리스마스 조명들, 손 위의 기타줄 흉터들,  가짜 신과 맹목적인 믿음, 패기있게 얼어붙은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던 기억들,  마룻바닥의 삐걱임, 아침의 강렬한 햇살, 마침내 발견해낸 한 친구,  어두운 밤을 지나 찾아오는 가장 밝고도 선명한 햇빛을 보려고 젖혀둔 커튼.  그 모든 것에 경의를 표하며.... We are what we love.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우리에요. This is Lover. 이게 Lover에요. 출처
'가난'에 대한 어록, 명언, 속담, 격언.txt
가난은 결코 매력적인 것도 아니고, 교훈적인 것도 아니다. - 찰리 채플린 가난은 단순히 돈이 없음을 뜻하지 않는다. 그 것은 인간으로서 가지는 가능성이 박탈되는 것을 뜻한다. (Poverty is not just a lack of money. It is not having the capability to realize one's full potential as a human being.) - 아마르티아 센 부자는 전 세계 구석구석 친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친구는 오직 불행뿐이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란 말을 모두가 입에 담지만, 마음 속으로는 그 누구도 납득하지 않는 말이다. - 코체부 부자는 결코 천국 속에 들어가지 못하겠지만, 가난한 사람은 이미 지옥을 체험하고 있다. - 체이스 악마는 부자가 사는 집에도 찾아가지만, 가난한 사람이 사는 집에는 두 번 찾아간다. - 스웨덴 속담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에게 고상한 정신이 깃들기는 어렵다. - 공자 가난한 자는 항상 유지되는 마음(恒心)이 없다. - 맹자 빈 자루는 서 있지 못한다. - 영국 속담 가난하고 빈천한 자가 인의를 말한다면, 그 것은 위선이다. - 사마천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분명 당신의 잘못이다. - 빌 게이츠 가난한 자의 불편함은 끊임 없이 참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 칸트 빈 자루가 똑바로 서 있기 어려운 것처럼, 가난한 사람이 끊임 없이 정직하게 지낸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 프랭클린 가난은 명예가 아니다. - 유대 격언 사람들은 부자가 넘어지면 재난이라고 말하고, 가난한 자가 넘어지면 술에 취했다고 말한다. - 터키 속담 사람들은 부자가 뱀을 먹으면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가난한 자가 뱀을 먹으면 배가 고픈 것이라고 말한다. - 집시 속담 사람들은 내가 부유할 때는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아도 절대 떠나가는 법이 없지만, 내가 가난할 때는 아무 요구를 하지 않았음에도 서슴 없이 떠나가곤 한다. - 디미트리우스 부귀를 누리는 자의 주변에는 생면부지의 남들도 모여들고, 빈궁한 자의 곁은 친척들도 거들떠보지 않는 법이다. - 문선 부를 경멸하는 사람이 있다. 그 것은 부자가 될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부를 경멸하는 사람의 말을 믿지 마라. 부를 얻는 데 실패한 사람이 부를 경멸한다. - 프란시스 베이컨 난은 온갖 질병들 중에서 가장 무섭고, 가장 환자가 많은 것이다. - 유진 오닐 가난하게 살면 번화한 저자에서 살아도 서로 아는 사람이 없다. 부유하게 살면 깊은 산골에서 살아도 먼 곳에서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 - 명심보감 당신이 아무리 불행한 부자라 할지라도, 가난한 자보다는 행복하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설파하는 것은 일종의 정신적 허영이다. - 알베르 카뮈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지만, 가난으로도 살 수 없다. - 레오 로스텐 지갑이 가벼우면 마음이 무겁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돈에 관한 금언들 중 대부분은 가난한 작자들이 지어낸 독설에 지나지 않는다. 흠, 그들이 돈에 대해서 독설을 퍼붓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돈이 가장 좋다는 역설이겠지. - <금언> 中에서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손에 넣는다. 조금 밖에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것마저 빼앗긴다. - 하인리히 하이네 부자는 행복을 선택할 수 있지만, 가난한 자에게는 불행이 강요된다. - 미상 가난한 자는 언젠가 미래에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부자는 당장 보상을 받는다. - 게오르규 돈에 관한 욕심은 모든 악의 근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돈이 없는 것도 이 점에서는 똑같다. - 버틀러 찰나에 떠오르는 걱정들 중 제일은 텅 빈 지갑이다. - 유대 격언 가난이 오래 지속되면, 향락이 오래 지속된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망친다. - 에센바흐 신은 가난한 자를 도와 준다. 부유한 자는 스스로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 스코틀랜드 속담 가난이야말로 가장 나쁜 종류의 폭력이다. - 마하트마 간디 쌀독에서 인심 난다. - 한국 속담 출처 : 도탁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이루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이루었다 관현악단의 세계적인 명 지휘자로 모든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이탈리아의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는 태어날 때부터 불행하게도 아주 심한 근시안으로 악보를 잘 볼 수 없는 약점을 가졌다. 집안이 가난하여 정규 공부는 못했지만 음악을 매우 좋아하여 틈만 나면 스스로 음악에 심취했다. 특히 악기를 잘 다루었다. 그래서 음악으로 성공 하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였다. 그는 ´나의 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지 않아도 되는 수고를 기꺼이 해야 한다.´ 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남이 알면 일에 지장을 줄까봐 혼자 되새기며 더 열심히 노력했다. 그 후 뼈를 깎는 노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여 첼로 연주자가 되었다. 관현악단의 일원으로 연주할 때마다 눈이 나빠 보면대 위의 총보를 볼 수가 없어서 아예 악보를 통째로 외워 자신의 약점을 덮었다. 그는 모든 악보를 완전히 암기한 후에 연주에 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토스카니니는 이탈리아의 클라우디오 롯시라는 흥행주가 조직한 가극단 ´롯시 오페라단 및 오케스트라´ 소속으로 첼리스트 겸 부합장 지휘자로 편입되어 브라질로 공연하러 갔다. 이 때 지휘자는 브라질 태생의 레오폴드 미게츠이었고 공연할 곡은 오페라 ´아이다´ 였다. 그러나 레오폴드 미게츠는 가극단과 문제를 일으켜 공연을 앞두고 지휘봉을 던져 버렸다. 공연 직전에 일어난 불의의 사건이라 당황한 가극단은 다급한 나머지 부지휘자를 지휘대에 세웠다. 그러나 청중들의 심한 야유를 받고 물러나고 말았다. 이번에는 부지휘자를 대신하여 합창단의 지휘자가 지휘봉을 잡았으나 합창단 지휘자마저 관중들의 야유로 쫓겨나고 말았다. 그 많은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서 그 날 연주한 음악회 프로그램의 작곡들을 음표 하나 빼지 않고 전부 외우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가장 나이 어린 토스카니니뿐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단장과 단원들의 권유로 우여곡절 끝에 그가 임시 지휘자로 단상에 서서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그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19세밖에 되지 않았다. 토스카니니가 지휘대에 올랐지만 관중들의 야유는 그치지 않았다. 아직 무대에서 지휘하기가 낯설고 어색하여 맨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지만 곧 침착하여 보면대의 악보를 덮어 버렸다. 이때 청중들의 야유는 웅성거림으로 바뀌어 갔지만 그는 단 한번의 리허설도 없이, 그리고 단 한번도 악보를 펼쳐 보지 않고 평소 암기한 악보를 떠올리며 대곡 ´아이다´ 를 완벽히 지휘했다. 관객들의 웅성거림은 점차 침묵으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감탄의 함성으로 변해 갔다. 1악장이 끝난 뒤 관객들은 기립 박수로 새로운 마에스트로maestro의 탄생을 아낌없이 축하해 주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제대로 지휘 공부를 받은 적이 없었던 첼로 연주자가 세계적 지휘자로 탄생한 순간이었다. 첫 무대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그의 미래는 단원의 첼리스트가 아닌 단원을 이끄는 명지휘자로 뒤바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시력이 나빴지만 초인적인 암기력을 발휘하여 토스카니니가 악보를 일체 안 보고 지휘할 수 있었던 곡은 자그마치 교향곡 200여 곡과 오페라 100여 곡 이상이나 되었다. 만일 토스카니니가 심한 근시안이라는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 채 원망만 하면서 처지를 한탄만 했다면 그는 첼로 연주자로서 관현악단의 한 사람이 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를 악물고 악보를 외웠던 난관이 없었다면 오늘날까지 마에스트로 중 마에스트로로 불리는 대가 토스카니니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악보만 암기하면 자신의 약점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무조건 노력했다. 토스카니니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이러한 그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약점을 딛고 더 강하게 살려고 노력한 집념 어린 결실이 그를 세계 최고의 명 지휘자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인생에서 성공의 기회를 잡는 일은 남보다 선점하는 것에서부터 나온다. 선점이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앞서기 위해서 늘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 준비된 자에게 늘 새로운 기회는 온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항상 맡은 바 일에 게을리 하지 말자. 더 아름다운 미래를 위하여 오늘을 투자하자. 기회는 노력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인 것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준비하는 것이 성공비결이다.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토스카니니의 이 말을 가슴에 새기자. 자신이 머물고 있는 터전에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열심히 내공을 갈고 닦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귀하게 쓰임을 받을 날이 찿아온다.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반복의 힘!> 매일 하루 좋은글을 보내드립니다. https://healthcommunity.page.link/R6GT
그대 곁에 가는 날 입니다.
그대 곁에 가는 날 입니다. 오늘은 그대에게 가는 날 입니다. 내 오늘은 그대에게 가서 내 가슴에 맺혀있는 아픔과 슬픔, 서러움과 외로움을 하나도 남김없이 털어놓을 것입니다. 그대 오늘은 마음을 비우고 종일 나를 기다려 주십시오. 오늘은 그대에게 가는 날입니다. 내 오늘은 그대에게 가서 내 마음에 쌓여있는 미움과 욕심과 질투와 교만의 못된 모습들을 다 고해 바칠 것입니다. 그대 오늘은 문을 활짝 열어 두고 내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달려 나와 나를 꼬옥 껴안아 주십시오. 오늘은 그대에게 가는 날입니다. 내 오늘은 그대에게 가서 내 삶을 둘러싸 고 있는 겹겹의 갈등과 무거운 일들을 모두 일러바칠 것입니다. 그대 오늘은 멀리 가지 마시고 집에서 겨울준비를 하고 계십시오. 그리고 내가 가면 나를 따뜻한 곳에 앉게 해 주십시오. 오늘은 그대에게 가는 날입니다. 내 오늘은 그대에게 가서 내 착한 마음과 남몰래 베푼 선행과 눈물의 기도를 모두 말해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오늘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 내 등뒤에 서서 지친 내 두 어깨를 다독거려만 주십시오. 오늘은 그대에게 가는 날입니다. 내 오늘은 그대에게 가서 모든 것 털어 내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내 사랑의 소식을 전할 것입니다. 그때 그대는 "가슴이 설렌다" 는 한마디만 해 주십시오. 차마 "사랑한다" 는 말은 기대하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그대에게 가는 날입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날씨는 맑고 바람 한 점없습니다. 다리는 튼튼하고 몸은 가볍습니다. 이미 문은 얼렸고 나서기만 하면 됩니다. 아! 그러나 오늘도 떠나지 못하겠습니다. 내 마음의 아픔들을 전하고 돌아올 때 그 아픔들이 그대 가슴에 남을 일이 걱정되어 오늘도 그대에게 가지 못하고 문을 닫습니다. 출처 : 정용철 《마음이 쉬는 의자》중에서 <반복의 힘!> 매일 하루 좋은글을 보내드립니다. https://healthcommunity.page.link/R6GT
인간처럼 길러진 특별한 침팬지, 님프로젝트(Project Nim)
인간과 유전자 98%가 일치하는 침팬지 그런 침팬지를 인간처럼 키운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실제 1973년 미국에서 이루어진 실험이야 뉴욕 컬럼비아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하버트 테라스 교수는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밝히기 위해 한 침팬지를 일반 가정에서 인간 아이와 똑같이 키우고 언어를 가르치는 실험을 시작해 당시 언어가 인간이란 종족만이 가질 수 있는 내재적 특성이라 주장했던 '노암 촘스키'의 언어이론에 대한 반박실험이었기 때문에이 실험에 참여하게 된 침팬지는 ' 님 침스키 ' 라는 이름이 붙게 돼 그렇게 해서 시작된 실험 님프로젝트 (Project Nim) 총 책임자인 하버트 테라스 교수의 지휘아래 침팬지의 어머니로 선택받은 사람은 평범한 주부였던 '스테파니'였어 스테파니는 이미 여덞남매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님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어 실험체인 님은 출생 직후 어미와 의도적으로 떨어져  인간을 어미로 인식하게끔 모유를 먹고 인간아이와 같이 자라게 돼 님은 스테파니 가족과 문제없이 잘 지냈고  스테파니 가족 또한 님을 가족으로 여기며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돼 그리고 님이 어느정도 성장하자  실험팀은 님을 스테파니 가족에게 독립시켜 본격적으로 수화 교육을 시작해 아주 간단한 것들부터 어려운 것들부터 차근차근 가르쳤어 님은 생각보다 배움이 빨랐고 이걸 본 하버트 교수는  컬럼비아 대학에 재학중이었던 학생을 님에게 가정교사로 붙여주었어 수화로 소통하는 님 가정교사를 붙여주자 님은 더더욱 빠르게 배우기 시작했어 수백개의 단어까지 습득하는 님에 실험팀은 기쁨을 감추지 못해 그리고 이런 사실이 금방 퍼져 님은 유명세를 타게 되고  공중파 티비에도 출연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돼 당시 방송에 나왔던 모습 하지만 곧 님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반항기가 찾아왔어 공격성을 드러내는 님을 실험팀들이 강하게 대하며 컨트롤 하려 하지만 인간이 아닌 침팬지기에 결코 쉽지 않았어 실험팀들은 이러한 모습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을 알면서도 님을 포기할 수 없었지 님은 점점 더 심해져서 가정교사가 상처가 날 정도로 거센 공격을 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동시에 님의 마음에도 상처가 남게 돼 그런 님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건 다름아닌 고양이 고양이를 아주 좋아해서 수화로 자주 고양이를 안을 수 있게 해달라 부탁을 했다고 해 고양이를 안고 행복해하는 님 이후에도 님의 실험을 계속 되었고 수화뿐만 아니라 인간처럼 식기를 쓰는 법도 배우게 되는데 식기를 드는 손과 음식을 먹는 손을 따로 썼다고 해 이렇든 평범해보이는 일상이 이어지던 중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아 베이비시터이자 친구였던 그녀가 학교 갔다 돌아온 님을 그저 안아주려 팔을 벌렸는데 님이 달려들어 구멍이 날 정도로 볼을 세게 깨물었어 피가 철철 흘렀고 그 모습을 본 님이 미친듯이 " sorry "라며 사과했지만 그 사과가 받아질리 없었어 그리고 님에게 한계가 찾아오기 시작했어 단어의 뜻을 알고 사용하지만 문장구조에 대한 이해를 전혀 하지 못했어 예시 총 책임자였던 하버트 교수는 결국 1977년 실험중단을 선언해 하지만 이미 인간세상에서 사회화가 되어버린 님이 갈 곳은 많지 않았어 완전한 인간도, 완전한 침팬지도 아닌 너무나 애매한 존재였던 님 실험팀들은 어릴 때 떨어졌던 님의 어미가 있는 사육장에 님을 다시 돌려보내기로 했어 하지만 자신의 종족인 침팬지를 본 님의 표정은 어리둥절하기만 했어 공격성이 낮고 소심한 수컷개체를 친구로 만들어주려 하지만 님은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단독 우리에 넣어지게 돼 가족, 친구들과 지내다 갑작스레 갇히게 된 철장 속 님의 마음을 헤아릴 순 없지만 비극임은 분명했어 물론 이런 상황을 반대했던 연구원들도 많았어 하지만 총 책임자인 하버트의 결정이었고 대안이 없었기에 달리 방법이 없었지 연구팀은 님이 가장 아꼈던 인형 한개를 우리 안에 놓아둔 채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어 차가운 철창 속 님은 그들에게 가족이었을까 실험체였을까 시간이 지나 님이 지내는 사육장에 한 손님이 찾아왔어 그건 바로 당시 총 책임자였던 하버트 교수 님은 하버트를 알아보고 너무 반가워하며 안겼지만 하버트가 온 이유는 순전히 언론을 위해서였어 하버트에 실험에 관심을 가진 매체들이 그에게 먼저 연락을 했고 비난을 피하기 위해 언론사들을 대동해 님을 찾아왔던 거야 그 사실을 몰랐던 님은 아직 기억하고 있는 수화로 하버트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을 거야 하지만 짧은 시간만 보내고 냉정하게 님을 남겨두고 다시 돌아가버린 하버트 또 한번 버려진 님은 한동안 먹지도 않고 철창 속에서 울기만 했어 그런 님을 위로해주었던건 바로 사육사 '밥'이었어 님이 수화를 하는 침팬지였던 걸 알았던 밥은 님과 수화로 소통하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어 이후 사육장에서 여자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그림놀이도 하며 님은 그럭저럭 잘 지내는듯 했어 하지만 비극은 끝나지 않았어 1982년, 님이 지내고 있는 사육장이 재정적 위기로 인해 더이상 운영할 수가 없었던 거야 경영자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침팬지들을 모두 뉴욕대학교 임상실험실에 매각해버려 물론 님도 예외는 아니었어 인간에게 안전한 약을 만들기 위해 쥐와 침팬지에게 실험을 해야했기 때문에 특별했던 침팬지인 님도 그곳에선 겨우 침팬지에 불과했어 동족들이 비명을 지르고 축 늘어져 실려져가는 걸 지켜만 봐야했던 님 직원들은 님이 수화를 할 줄 안다는 걸 들어서인지 벽에 이렇게 그림을 붙여서 님에게 명령을 했다고 해 님이 여러 약물 투여를 받으며 실험을 당하던 중 사육사였던 밥과 실험팀의 일부 연구원들은 사랑하던 님을 구해주기 위해 법정 싸움도 벌였지만 결국 패소하고 말았어 하지만 이 법정싸움이 미국 전역에서 유명해져 한 부유한 농장주가 거액을 주고 님을 연구에서 빼내오는데 성공했어 이 농장주가 운영하는 농장은 상처입고 불구가 된 동물들이 여생을 보낼 수 있는 그야말로 낙원같은 곳이었어 연구실을 벗어나 새로운 집으로 오게 된 님 하지만 님은 이미 너무나도 우울감에 빠진 상태였어 이런 님을 위해 농장주는 님을 철창에 가두지 않고 원할 때 밖으로 나갈 수 있게 언제든 문을 열어놨어 하지만 님은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어 너무나 망가져버린 님의 마음 이후 폭력성을 계속 보이다 결국 사육장에 마련한 티비를 부수고 농장주의 반려견을 집어던져 죽이기까지 한 님은 쭉 철장에 갇혀살아야만 했어 그때 농장주는 농장 앞에 현판을 걸어놨었는데 뜻은 이러했어 '저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의 이야기는 끝납니다' '나의 비극들이 모두 끝났고 나는 집에 있습니다' 마치 님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글이었어 그러던 어느날 농장에 뜻밖에 손님이 찾아오게 돼 바로 님을 처음 만나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던 스테파니였어 님은 스테파니를 알아보자마자 격렬하게 화를 내기 시작했어 농장직원들에 만류에도 스테파니는 우리안에 들어가겠다며, 걱정말라며 안심시키곤 님이 있는 철장의 문을 열고 들어갔어 스테파니가 들어가자마자 사고가 터져 님이 그를 쓰러뜨려 바짓가랑이를 잡고 우리 안을 미친듯이 돌아다니기 시작한 거야 그 모습을 본 직원들이 총을 다급하게 꺼내왔지만 님은 거기에서 멈췄어 내팽겨쳐버리곤 몸을 돌렸어 님은 애초에 스테파니를 죽일 마음은 없었던 거야 쓰러진 스테파니와 그런 스테파니를 본 님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 이후 님은 우리안에 통을 마구 옮기며 지냈다고 해 그리고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뒤에 또 다른 손님이 님을 찾아와 바로 사육장에서 님과 깊은 교감을 나누며 친구가 되어주었던 밥이었어 밥은 우리 안에 들어가길 원했지만 일전에 사고 때문인지 농장주는 허락해주지 않았어 그래서 둘은 철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게 돼 밥을 단번에 알아보는 님 스테파니때처럼 화는 내지 않았어 밥을 본 님은 수화로 '놀자'라는 말을 했고 둘은 짧은 시간이지만 아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 밥이 돌아간 이후 님에게는 변화가 찾아왔어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재밌게 공놀이도 하며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었어 재회 이후 밥은 자주 님을 보러왔고 님의 마음은 또 다시 밥으로 인해 치유 받은 듯 했어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다시 치유받는 님 그리고 2000년 님은 2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돼 인간의 아이로 자라 침팬지로써 많은 절망감을 겪어야했던 님 그저 한마리의 침팬지가 아닌 좀 더 특별한 영혼을 가진 무언가로 만든 인간은 그것에 대한 확실한 책임을 지지 못했어 님은 인간다운 침팬지보단 침팬지로 살았다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