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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연구가 조성관 “도쿄는 '하루키'다”
천재연구가 조성관 작가가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했다. photo=김재현 기자 조성관 작가 '도쿄가 사랑한 천재들' 펴내 무라카미 하루키 등 일본천재 5명 이야기 15년 동안 전 세계 49명 천재 취재, 연구 #하루키가 즐겨 찾은 재즈바 “더그는 유명세에 비해 몹시 비좁았다. 듣던 대로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계단을 내려오자 담배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진토닉을 시켰다. 하루키가 더그에 오면 즐겨 마신 칵테일이다.”(‘도쿄가 사랑한 천재들’ p116~117)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골 재즈 바인 더그(DUG)에 들른 저자는 현장을 이렇게 묘사했다. 더그는 도쿄의 대표적인 유흥가인 가부키초에 있다. 저자는 “대로변에는 양판점 ‘돈키호테’가 있는데 돈키호테를 등지고 10시 방향, 야쿠스니 대로가 시작하는 지점에 더그가 있다”고 썼다. 하루키 팬들이라면 저자의 이런 세심한 배려에 공감할 만하다. 하루키가 좋아했던 진토닉을 함께 마시고, 하루키가 좋아했던 프로야구 구단(야쿠르트 스왈로스)을 함께 응원하고, 하루키가 좋아했던 달리기(마라톤)를 함께 하는 기분. 이 책이 주는 디테일한 묘미다. #5가지 재미...‘도쿄가 사랑한 천재들’ 하루키 단행본? 아니다. ‘도쿄가 사랑한 천재들’(열대림)이라는 책 내용의 일부다. 책은 나쓰메 소세키(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작가), 구로사와 아키라(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애니메이션 거장), 토요다 기이치로(자동차왕) 등 일본의 다섯 천재들의 삶을 다뤘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저자의 방식이 이럴진대, 독자들은 마치 다섯 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저자는 천재들의 생가~활동 무대~묘지까지 찾아다니며 때론 길 안내자, 때론 맛칼럼니스트, 때론 인문학 여행가 등 각기 다른 잔재미를 전해준다. 조성관. 일간지에서 30년 기자로 일했던 저자는 이제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도시가 사랑한 천재 시리즈’ 책들을 15년 째 쓰고 있는 그는 빈, 프라하, 런던, 뉴욕, 페테르부르크, 파리(문인, 예술인편), 독일 편에 이어 최근 도쿄 편인 ‘도쿄가 사랑한 천재들’을 내놓았다. 도쿄 신주쿠 '소세키산방 기념관' 앞에 선 조성관 작가. photo=작가 제공. #‘천재연구가’라는 직업 그런 조성관 작가를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동 근처의 한 커피전문점(코피발리)에서 만났다. 무릎이 트인 청바지와 청자켓 차림의 작가는 아담한 규모의 커피가게를 둘러보며 “이런 곳이 있었느냐”며 반가워했다.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을 시킨 저자에게 ‘천재연구가’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먼저 물었다. “(웃음) 직업이라고 하니까 좀 그러네요. 자랑 같아서, 좀 그렇습니다만.(조금 머뭇거리다) 이렇게 천재를 연구해 책을 쓴 사람은 우리나라엔 없습니다. 영국의 앤드루 로빈슨이라는 작가가 천재 연구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앤드루 로빈슨의 천재 연구와 조성관의 천재 연구는 결이 다릅니다. 나는 생애사의 관점에서 천재를 연구했습니다.” 조성관 작가가 천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뭘까. 2005년 겨울, ‘모차르트 탄생 250년’ 특집기사를 쓰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당시 ‘뭔가’를 느꼈다고 했다. “그때 모차르트 전문 가이드와 함께 교향곡(39~41번)을 작곡한 집을 찾아가는데 교향곡 40번이 귀에 들렸습니다. 일부러 생각한 게 아닙니다. 그 집 앞에 가니 교향곡이 더 크게 들렸습니다. 모차르트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때 분명 모차르트를 느꼈습니다. 그때 천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 가면 천재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천재들과의 지적 교감 저자는 지금까지 책에서 49명의 천재를 다뤘다. 그는 “한 평생의 성취로 인류사회를 윤택하게 만든 사람을 천재라고 정의한다”며 “범위를 좁히면, 어떤 국가에서 국민의 삶을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풍요롭게 만든 사람을 말한다”고 했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천재가 많은 사회는 분명 뭔가가 다를 것이다. 작가에게 “천재가 많은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는 어떤 차이점을 보이느냐”고 물었다. “좋은 질문입니다.(웃음) 간단한 척도가 있습니다. 평화상을 제외한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천재입니다. 그러니까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나라는 천재를 많이 배출한 사회라고 보면 됩니다. 미국이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가장 많죠. 일본도 24명이나 됩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왜 미국 뉴욕이나 실리콘밸리로 갑니까? 미국 사회가 어느 나라보다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뉴욕이나 실리콘밸리에는 자극을 주고 배울만한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천재는 그런 환경에서 꽃을 피웁니다.” 조성관 작가는 천재들의 삶을 찾아 15년 동안 외국 현지를 취재하고 연구했다. 그런 노력은 1~2년마다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쉽지 않은 일이다. 조 작가만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는 “천재와 나눈 교감을 잊지 못해서”라며 이렇게 말했다. “성적 쾌락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지적 쾌락, 지적 희열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미적 쾌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천재와의 교감은 지적 쾌락의 엑스터시입니다. 이것을 한번 맛보면 다른 건 시시해집니다.” # ‘조성관 작가 스타일’ 이번에 나온 ‘도쿄가 사랑한 천재들’은 작가에겐 의미가 남다르다. 저널리스트 30년을 마치고 나와 전업작가로 쓴 책이기 때문이다. 과거 현직에 있을 때 쓴 책들과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오로지 연구하고 취재하고 쓰는 데만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러니 독자 입장에서 좀 더 읽기가 편하고 재미있지 않을까요.(웃음) 유럽과 미주를 돌아 처음 아시아권 도시로 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책 내용을 다시 들여다보자. 작가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묘지가 있는 가마쿠라에 가서 멸치덮밥을 먹으며 ‘아리가토 구로사와’라고 외친다. 무척 인상적인 대목이다. 작가는 천재들과 관련된 장소를 찾아가며 설명하는 부분이 ‘꽤나’ 친절하다. 저자는 “현장성을 가장 중요시한다”고 했다. 그에게 “이것이 ‘조성관 작가 스타일’이냐”고 물었다. 조 작가는 웃으면서 “그렇게 보셨다면 성공이다. 그게 ‘조성관 스타일’”이라고 했다. “여행을 하면서, 식도락을 즐기면서 그 길 위에서 천재를 보고 느끼게 하자는 게 집필 동기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한국인들이 세계를 여행하고 있지만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 가장 오래 남습니다. 그 사람이 나의 문화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천재들이라면 금상첨화구요. 성이나 궁전 같은 건물만 보는 여행은 조금 시간이 흐르면 남는 게 없어요. 아마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 일본의 천재들과 풍토 이웃나라 일본에는 수많은 천재들이 나고 죽었다. 저자는 이이토코토리(좋은 것을 가져다 배우기), 모노즈쿠리(장인 정신), 잇쇼겐메이(목숨을 다해 일하는 것), 오타쿠(마니아 기질) 등 일본을 정의할 수 있는 여러 표현들을 예로 들며 천재에 대해 설명했다. 기자가 가장 궁금했던 질문은 바로 이거다. “일본의 경우, 천재들이 지금의 일본을 만든 걸까요? 아니면 일본의 이런 풍토가 천재를 만든 걸까요?” 조성관 작가의 얘기를 들어보자. “일본의 풍토가 천재를 키웠고, 그 천재들이 일본을 만들었다고 봐요. 며칠 전 조선 도공(陶工)의 후예 14대 심수관이 별세했습니다. 여러 신문에 그의 부음기사가 실린 걸 보셨을 겁니다. 1980년대 중반, 14대 심수관이 주일한국대사관이 마련한 기자간담회에 나왔습니다. 그때 한 기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일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질문 앞에는 (1598년 14대조를 조선에서 강제로 끌고 온)이 빠져있었지요. 그때 14대 심수관이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일본이란 나라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우리 가문이 400년 가까이 이런 자부심을 갖고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 말은 현장에 있던 외교관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 이 말에 모든 게 들어있다고 봅니다.” # 일본을 배워야 하는 이유 일본에 대한 고민과 생각도 많아 보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선진국입니다. 국가의 역량은 결국 개개인 역량의 총합이라고 봅니다. 일본인이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얼마나 하는지 알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일본인에게 배울 게 많습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커피가게의 대표가 특별한 커피 한 잔을 내왔다. 맛을 본 조성관 작가는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별로인가요?”(대표) “아닙니다. 단맛이 나는데, 깊은 단맛이 있군요.”(작가) 조 작가의 이런 품평 덕에 기자도 새로운 커피 맛을 보게 되는 ‘작은 즐거움’을 누렸다. 작가는 ‘도쿄가 사랑한 천재들’에 저자 사인을 해주면서 ‘도쿄는 하루키다’라고 적었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①천재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세요. “2005년 겨울, ‘모차르트 탄생 250년’ 특집기사를 쓰려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모차르트 전문 가이드와 함께 교향곡(39~41번)을 작곡한 집을 찾아가는데 교향곡 40번이 귀에 들렸습니다. 일부러 생각한 게 아닙니다. 그 집 앞에 가니 교향곡이 더 크게 들렸습니다. 모차르트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때 분명 모차르트를 느꼈습니다. 그때 천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 가면 천재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②지금까지 49명의 천재를 다뤘는데, 천재를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한 평생의 성취로 인류사회를 윤택하게 만든 사람을 천재라고 정의합니다. 범위를 좁히면, 어떤 국가에서 국민의 삶을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풍요롭게 만든 사람을 말합니다.” ③천재가 많은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는 어떤 차이점을 보일까요. 그런 케이스가 있다면 좀 설명해주세요. “좋은 질문입니다.(웃음) 간단한 척도가 있습니다. 평화상을 제외한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천재입니다. 그러니까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나라는 천재를 많이 배출한 사회라고 보면 됩니다. 미국이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가장 많죠. 일본도 24명이나 됩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왜 미국 뉴욕이나 실리콘밸리로 갑니까? 미국 사회가 어느 나라보다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뉴욕이나 실리콘밸리에는 자극을 주고 배울만한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천재는 그런 환경에서 꽃을 피웁니다.” ④‘천재연구가’ 타이틀로 살고 계신데, 천재연구가라는 직업에 대해 좀 설명 부탁드립니다. “(웃음) 직업이라고 하니까 좀 그러네요. 자랑 같아서, 좀 그렇습니다만.(조금 머뭇거리다) 이렇게 천재를 연구해 책을 쓴 사람은 우리나라엔 없습니다. 영국의 앤드루 로빈슨이라는 작가가 천재 연구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앤드루 로빈슨의 천재 연구와 조성관의 천재 연구는 결이 다릅니다. 나는 생애사의 관점에서 천재를 연구했습니다.” ⑤천재연구가로서 강연에서는 무엇을 강조하고 계십니까. “강연에서는 관심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을 잡아 그들의 습관과 노력을 따라하라고 강조합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자주 보는데, 거기 보면 식당해서 돈 벌겠다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잘 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우겠다는 자세가 없어요.” ⑥천재들의 삶을 찾아 15년 동안 외국 현지를 취재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거라 봅니다. 1~2년마다 책을 낼 수 있는 작가만의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천재와 나눈 교감을 잊지 못해서입니다.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는 동물입니다. 성적 쾌락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지적 쾌락, 지적 희열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미적 쾌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천재와의 교감은 지적 쾌락의 엑스터시입니다. 이것을 한번 맛보면 다른 건 시시해집니다.” ⑦가장 인상적이었던 방문지는 어디입니까. “오스트리아 빈입니다. 손바닥만한 작은 도시에 천재들이 우글거렸으니까요. 조금 과장하면, 한 집 건너씩 천재의 흔적이 있었으니까요. 도시가 작으니까 다니기도 편하구요.” ⑧그렇다면 가장 다루기 힘들었던 천재는 누구입니까. “(웃음) 지금까지 강연과 인터뷰에서 많은 질문을 받아봤지만 이 질문은 처음입니다. (조금생각하다가) 니체였습니다. 니체는 정신질환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스위스 알프스 산중으로 들어가 자연에 안겨 치유를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상 알프스의 니체 흔적을 좇지 못한 채 책을 써야 했습니다.” ⑨<도쿄가 사랑한 천재들>은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과거 현직에 있을 때 쓴 책들과는 느낌이 어떻게 다릅니까. “이번 ‘도쿄가 사랑한 천재들’은 저널리스트 30년을 마치고 나와 전업작가로 쓴 책입니다. 오로지 연구하고 취재하고 쓰는 데만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러니 독자 입장에서 좀 더 읽기가 편하고 재미있지 않을까요.(웃음) 유럽과 미주를 돌아 처음 아시아권 도시로 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⑩기자를 그만두고 1년 넘게 전업작가를 하고 있습니다. 전업작가의 삶은 어떤 겁니까. “전업작가는 연예인과 같습니다. 가수는 음반이 팔리고 공연을 계속 해야 살아남습니다. 전업작가 역시 꾸준히 글과 작품을 발표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디어가 주목하고 책도 팔립니다. 정해진 건 하나도 없습니다.” ⑪내년에 제10권 ‘서울편’을 펴내는 것으로 천재 시리즈 대장정을 마무리하실 것 같은데. 어떤 작가로 남고 싶습니까.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우리와 전혀 다른 인간으로 여겨졌던 천재들도 우리와 똑같은 흠결 많은 사람이었다, 다만 그들은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어마어마한 노력과 집중을 한 사람이다, 그 사실을 대중독자에게 알려준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⑫70세쯤에는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요. “(웃음) 글쎄요. 나는 15년간 세계를 떠돌며 요람에서 무덤까지 천재를 연구했습니다. 앤드루 로빈슨도 나처럼 천재를 연구하지 못했습니다. 49명의 천재는 내 인생의 스승입니다. 아마도 또다른 각도에서 천재 이야기를 쓰고 있지 않을까요?” ⑬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묘지가 있는 가마쿠라에 가서 멸치덮밥을 먹으며 ‘아리가토 구로사와’라고 한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천재들과 관련된 장소를 찾아가며 설명하는 부분이 꽤나 친절합니다. ‘조성관 작가 스타일’이라고 봐야 할까요? “(웃음) 그렇게 보셨다면 성공입니다. 그게 ‘조성관 스타일’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식도락을 즐기면서 그 길 위에서 천재를 보고 느끼게 하자는 게 집필 동기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한국인들이 세계를 여행하고 있지만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 가장 오래 남습니다. 그 사람이 나의 문화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천재들이라면 금상첨화구요. 성이나 궁전 같은 건물만 보는 여행은 조금 시간이 흐르면 남는 게 없어요. 아마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⑭<도쿄가 사랑한 천재들>에서 “천재들의 공통점은 자기 일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충실함과 집중력을 보인다는 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책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가장 특별한 천재’라고 표현했던데요. “책에도 썼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를 좋아해 만화를 그렸고, 처음에는 데즈카 오사무와 같은 만화가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애니메이터의 꿈을 키웠고 대학에 가서도 그쪽으로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토에이 애니메이션에서 들어가 뛰어난 선배들을 만나 조금씩 성장해갑니다. 그들은 나이 어리다고 하야오를 무시하지 않았고, 그의 재능을 이끌어내려 선배들이 기회를 주었습니다. 선배들이 하야오를 시기질투하지 않았습니다.” ⑮이이토코토리(좋은 것을 가져다 배우기), 모노즈쿠리(장인 정신), 잇쇼겐메이(목숨을 다해 일하기), 오타쿠(마니아 기질) 등 일본을 정의할 수 있는 여러 표현들을 예로 드셨습니다. 일본의 경우, 천재들이 지금의 일본을 만든 걸까요? 아니면 일본의 이런 풍토가 천재를 만든 걸까요. “일본의 풍토가 천재를 키웠고, 그 천재들이 일본을 만들었다고 봐요. 며칠 전 조선 도공(陶工)의 후예 14대 심수관이 별세했습니다. 여러 신문에 그의 부음기사가 실린 걸 보셨을 겁니다. 1980년대 중반, 14대 심수관이 주일한국대사관이 마련한 기자간담회에 나왔습니다. 그때 한 기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일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질문 앞에는 (1598년 14대조를 조선에서 강제로 끌고 온)이 빠져있었지요. 그때 14대 심수관이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일본이란 나라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우리 가문이 400년 가까이 이런 자부심을 갖고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 말은 현장에 있던 외교관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 이 말에 모든 게 들어있다고 봅니다.” ⑯대중적인 예술가(나쓰메 소세끼, 무라카미 하루키, 구로사와 아키라, 미야자키 하야오) 네 명과 대중적이지 않는 기업천재(토요다 기이치로) 한 명을 다뤘습니다. 너무 ‘인문계 예술가’에만 집중한 느낌도 듭니다만. “좋은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서문에 썼지만 마지막 한 자리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너무 문(文)으로 치우친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토요다 기이치로를 추천받았습니다. 그를 연구하면서 우리말로 번역된 자료가 없어 애를 먹었습니다. 현지 취재를 통해 힘들게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기이치로를 선택한 건 ‘신의 한 수’ 였다고 생각합니다. 토요다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토요타자동차가 세계 초일류가 된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생전에 자신의 롤 모델을 토요다 사키치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⑰<도쿄가 사랑하는 천재들>이 한국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지요.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선진국입니다. 국가의 역량은 결국 개개인 역량의 총합이라고 봅니다. 일본인이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얼마나 하는지 알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일본인에게 배울 게 많습니다.” ⑱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여전히 일본을 이중잣대로 바라보고 판단합니다. 이런 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14대 심수관이 1974년 서울대 강연에서 한 말은 지금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14대 심수관은, “일제 식민지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일본이 저지른 죄가 큰 것이기는 하나) 거기에만 얽매일 경우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여러분이 36년을 말한다면 나는 370년을 말해야 하지 않겠나.”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10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6장. Shall we begain? 동유럽 -36
오늘하루도 정신없이 흘러갔네요! ㅎㅎㅎ 완전 여름날씨네요. 다들 더위조심하세요 ㅎㅎ 그럼 6장 시작합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5달 전으로 돌아간다. 때는 3월. 새로 신입생으로 3학년들이 들어오고 동아리 가입도 마무리했으니 판을 키워볼까란 생각에 동아리에서 시간나는사람들 모아서 동유럽 여행을 추진하기로했다. 어차피 나는 아프리카에서 바로오니까(이때까지만해도 아프리카에서 크로아티아까지 만 하루가 걸릴줄은 상상도못했다) 거리가 가까운(가까워보이는) 크로아티아에서 시작해서 체코 프라하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로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참여했다. 아무래도 일찍 표를 예매하다보니 왕복 70만원정도? 물가도 매우 싼편이라 숙소도 인당 만원~2만원사이로 해결했다.(숙소는 항상 전날 예약했다) 몇몇은 미리 유럽에서 놀다가 두브로브니크에서 합류하기로 해서 만나는 날만 정해두고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가다보니 어느새 하라레에서 비행기에 몸을 싣고있는 나를 발견하게된다. 다시 35편으로 돌아와서. 대부분 짐바브웨에서 출국하는 비행기는 비슷한 시간이라 시간이 다른 친구들과 아프리카 여행을 더 하는친구들(이들은 남아프리카로 이동해서 트럭킹을 하기로 했다)과 작별인사를 하고 남아프리카로 이동한 뒤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아직은 이른 새벽. 어제 밤늦게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거의 노숙하다시피 시간을 보냈다. 비행기를 타려고 이동하다보니 저 멀리 동이트고있다.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하니 해가 떠있다. 거의 만 하루를 씻지 못했더니 찝찝해서 공항 인포메이션센터에서 혹시 공항내에 샤워할만한 공간이 있나 물어본다. 그리고 들은말은 화장실에서 샤워하란다. 네...? 그냥 세수만 하고 아직 체크인시간까지 한참 남았으니 올드타운으로 이동한다. 두브로브니크는 왕좌의게임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사실 크로아티아를 여행지로 잡은건 예쁜것도 있지만 왕좌의 게임에 영감을 받은것도 있다. 최애 미드였으니까. 시즌 8이 망하기전까지는...) 공항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다보면 좌측으로 두브로브니크 전경을 바라볼수있다. 그림과도 같은 풍경에 순간 말을 잊는다. 렌트를 했다면 중간에있는 전망대에 한번 들러보자. 올드타운은 성벽으로 둘러싸여있고 성문 앞에는 짐을 맡기는 곳이 몇개 있다. 그중 하나를 선택해서 짐을 맡기고 본격적인 투어를 시작한다. 올드타운 정문. 이 다리를 건너기 전에는 다양한 투어를 알리고있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선셋 카얔을 추천하고 왕좌의게임 팬이라면 왕좌의게임 투어를 선택해보자. 오늘은 나혼자 돌아다닐 예정이라 그냥 산책하듯이 돌아다니기로 한다. 왕좌의게임에서 봤던 그 우물 맞다! 이름은 오노프리오스 분수이다.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이다. 아직도 물을 마실수있는곳이다. 산책을 하다보니 항구에 다다른다. 물빛이 너무 아름답다. 바닥이 보일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바닷가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고있으니 천국이다. 벌써 점심시간이다. 문어가 유명한 곳인만큼 문어요리를 시킨다. 그리고 관광지에왔으니 맥주를 놓칠순없지! 이곳 특산 맥주를 주문한다. 레몬이 들어가있다는데 상큼한게 딱 내취향이다. 더운날에 청량감을 안겨준다. 음식이 나오는동안 두브로브니크에 대해 공부를해본다. 삶은 문어를 올리브유에 버무려놨다. 음! 맛있다. 신선한 문어가 그자체만으로도 맛있다. 밥도 먹고 휴식도 취했으니 다시움직여볼까. 골목골목을 지나며 올드타운 구석구석을 탐방한다. 딱히 목적지를 정해둔건아니고 그냥 정처없이 떠돌아다닌다. 유럽여행의 묘미가 아닐까싶다. 걷다보니 익숙한 계단이나온다. 성 이냐시오성당 앞 계단이다. 서세이가 수치의 행진을 했던 곳이다. 그 장면에 와있는듯한 기분이다. 성당내부는 다른 유럽성당에비해 단촐하지만 단아한 멋이있다. 계단 아래에서 바라본 모습. 지금은 노천식당으로 가득한 골목이지만 드라마촬영당시에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이제 성곽으로 올라간다. 내 눈앞에 킹스랜딩이 펼쳐진다. 킹스랜딩이나 다른 도시들은 CG로 완성되긴했지만 그 분위기는 느낄수있다. 성곽을 걷다보면 중간중간 카페가있다. 난 레몬주스를 시켜본다. 그러니 진짜 레몬을 갈아준다. 레몬 특유의 상큼함과 달달함이 매우 강렬히 느껴진다. 더위를 잊게만들어주는 맛이다. 석벽 위의 카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있노라니 행복감이 몰려온다. 성벽을 돌다보니 아까 점심을 먹은곳도 보인다. 성벽을 내려와 올드타운을 벗어나 주변을 돌아보기로한다. 다리를 건너 왼쪽 광장을 지나 조금들어가니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그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절벽위 벤치가 눈에들어온다. 바로 밑에는 조그마한 해수욕장이 있다. 벤치에 누워 풍경을 바라보다보니 잠시 잠이든다. 아직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이 잊혀지지않는가보다. 아프리카에서 오래있다보니 좋은 풍경이 있고 누울곳이 있으면 누워서 풍경을 바라보다 잠들곤한다. 한 30분 지났을까 이제 다들 비행기에서 내렸는지 연락이온다. 나도 짐을 찾고 숙소로 이동하기로한다. 오늘은 체크인하고 장보고 숙소에서 쉬기로한다.
하고싶은건 하고 살자 - 여행편 4. 여행은 여행을 낳고 #체코체고 1탄 (갈준비)
여러분 모두 헬로우입니다!! (헬요일은 존말루 할 때 눈을 깔으라는 뜻😞) 주말과의 생이별 후 맞는 헬요일은 매일 새롭고 짜릿하게 혐오스러울 테지만요, 백수에겐 매일이 헬요일이라는 것을 알아주세요^^!!!!!!!! 이거 눈물 아냐,,, 눈에서 흐르는 땀일 뿐이야...(ddo rue rook...💧) 네~ 한많은 취준생의 세상은 oz경 잘들었구요, 다름이 아니라 빙글러 분들의 핥❤️덕분인지 저의 주절력 때문인지 감사하게도 저의 미천한 Card가 명예의 전당에 등극되며 제 잉여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되었지 모에요!!!허맛! 빙구머니나!!🤭😨😱 헤..헤헤😳헤헤!!!!! ㅊ..최고의 빙글러라구우우~~? 헤,, ㅎ헤헤헤!! 칭찬은 돼ㅈ 아니 oz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도록 잉여춤으로 화답중입니다 헤헤💛 사실 주말을 겪고 나니 포스팅에 대한 마음가짐이 느슨해 지던 참이었는데 이런 차칸 췤!!!!찍질을 해주시니 이만한 동기부여가 읎슴니다☺️ 취준하다 답답한 맘에 써본 여행기인지라 동네 친구와 맥주마시며 털어놓듯 후두두둑 써내려 왔었는데, 관리자 님께서 친히 링크를 직접 첨부해 주시며 빙알못에게 찌인한 가르침 주시어 여윽시 삶은 배움 투성이구나라는 값진 교훈을 또한번 얻어가는 감사한 순간이어쓰미다😍 (빙글러 분들이 호좁한 저의 이전글까지 관심을 가지실까 하는 마음에 철저히 화자주의였던 어리석음에 인사 oz게 박것습니다 행넴들~!!) 따라서! 4편을 조금 더 효과적으로 읽으실 수 있도록! 말잘듣는 몹엄생 oz가 이전글 링크를 첨부해 둘테니 궁금하신 분들은 맘껏!마아아으으음꺼어엇! Explore해주시기 바랍니다!(강요임) <하고싶은건 하고 살자 여행편 이전 시리즈> 프롤로그: https://www.vingle.net/posts/2630466 1편: https://vin.gl/p/2630666?isrc=copylink 2편: https://www.vingle.net/posts/2630988 3편: https://www.vingle.net/posts/2632027 핳.. 본의 아니게 열심히 하는 바람에 역대급 서론이 되어버리고 말았네욥🤐 각설하고 본격 4편 포스팅을 시작해보겠습니다! 부족한 글 열심히 읽어주셔서 다시한번 감사해요🤗🤗🤗 자! 그럼 4편, 여행은 여행을 낳고 #체코최고 1탄 시작해보도록 하거씁니다!😉 “나는 프라하가 정말 잊혀지지가 않아. 오죽하면 프라하 갔다 와서 한달동안 우울증까지 겪었다니까?” 그래. 프라하 좋다는 말은 익히 들어 안다만, 우울증에다가 의욕 상실에다가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는 다 갖다 붙이며 ‘체코 없는 나의 삶은 치킨 없는 한국인이야~’하고 노래를 부를 정도는 아니지 않나? 술자리에서 매번 기승전체코로 끝내는 친구의 말에 ‘이shake it 체코 관광청에서 알바 시작했나’하는 생각에 괜히 체코가 미워질 지경이었다. 뭐만 얘기할라 치면 ‘야, 체코에서는’, ’야, 맥주는 역시’, ’야, 꼴레뇨가 진짜’ 해대는데 정말. 처음에는 ‘아니 이렇게까지 찬양할 일이야?’ 했는데 계속 듣다보니 ‘얘 진짠가..? 진짜가 낙타낳나?!?!!’ 싶은거다. 사실 나도 프라하에 로망이 있었다. 가본적도 없고, 딱 한번 본 것 말고는 인생에 그렇게 큰 접점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첫눈에 반하는 사람처럼, ‘프라하 만큼은 꼭 한 번 가고싶다’하는 생각이 항상 마음 한켠에 잔잔히 자리 잡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맘이 있는걸 내 스스로 알아채는 순간 그 마음이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리는것 처럼(감성 앤드 비유 무엇), 나의 짝국(작명 무엇) 프라하를 향한 마음을 인지한 순간 o첨z가 되어 운수좋은날 한편 찍게 될까 무서워 외면해왔다 이말썸. 내 소쯍한 쁘라하인뒝😿😿😿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프라하를, 너어어어무 가고싶어 질까봐 훔쳐만 봐왔던 프라하를! 저놈이 저렇게 쉽게 입에 올리니 배가 아팠던 모양이다(인성 무엇). 근데, 왜 하필 프라하? ‘설마...언제적 프라하의 연인 운운하면서 이 로망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는 진부한 발언은 하지 않겠지?’라고 생각 하셨다면 그것은 정말 오예(oh!yeah!)입니다. 맞았다. 그 인간 클리셰가 바로 나란 말이드아!!! 당시 드라마에 관심이 크게 없을때고 이미 파리의 연인이 한바탕 열풍을 일으켰었기에(무슨 상관일지는 알수 없을 무) 출연진이며 스토리며 관심도 없었고 기억도 안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까를교의 야경을 담아낸 그 장면, 정말 그거 하나 보고 이 짝사랑의 대서사시가 시작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 ! 그럼 가면 되지, 도대최 외않가🤔? “요번에 프랑스 오면 우리 그 주변 나라들도 여행하자! 가고 싶은 나라 없어!? 난 왠지 영국도 괜찮을것 같고..” 사실 마음속에선 남자친구의 질문과 거의 오버랩 되다시피 ‘난 프라하!!!!’ 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선뜻 입밖으로 외치지 못했다. 너무 오랫동안 마음속으로 그려와서 그랬는지, 이 지나친 기대가 나의 완벽한 프라하를 망칠까 겁이나서 그랬는지, 남자친구를 배려하고 싶어서 그랬는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글쎄”라고 말해버렸다. (사실 비행기 표값까지 다 보고 있었는데도!) 그렇게 여행일 바로 전 주 까지도 배려왕국 배려왕과 배려왕비인 우리는 ‘어디가고싶어!!’로 핑퐁을 하다가,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똥줄과 나도 모르는 새에 3단 진화를 마친 프라하를 향한 집념이 결국 ‘우리 오늘 저녁 프라하 해먹을까?’ 같은 식의 소리를 늘어놓게 했다. 그 바람에 결국 센스쟁이 남자친구는 영국? 스위스? 독일? 을 열심히 외치다가 모르는 척 프라하 행 비행기표 두장을 예매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간다 나. 프라하로. “이제 고민 끝! 나 비행기표 샀다!! 우리 4월 5일부터 6일간 프라하에서 꿀휴식하다 오는거야!!! 괜찮지?!” 괜찮다 마다, 너무 괜찮고 너무 행복해서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오 지저스 갓자친구님 날 가져요!!🙀😻😽 티 안내려고 했지만 한껏 상기된 모습으로 “아 뭐야아~! 나는 영국 가려고 했는데에~! 아 진짜아~! 아 그럼 내가 빨리 숙소 찾아보고 예약할께 아 진짜~!” 같은 쓸데없는 앵탤을 부리며 온갖 숙소 예약 어플을 이잡듯 뒤졌다. (비행기표는 역시 만인의 티케팅 어플 스카이 스캐너를 이용하니 새벽시간 출발에 왕복 2인 28만원 정도에 구해씁니당!) ⭐️집념의 사녀이 OZ가 장담하는 숙소 검색 꿀팁⭐️ 1. 아고다를 이용한다. 2. Agoda를 이용한다. 3. Dkrhekfmf dlsydgksek. 그렇다. 답은 아고다에 있었다. 숙소 예약에서 만큼은 의심병 말기환자 oz의 여행폴더의 모섭.jpg 한번 꽂히면 남의집 안방에 수맥 흐르는 자리까지 검색해서 찾아낼 정도의 집념이 있는 나 오처돌은 하루가 다르게 떡상하는 유로환율에 이미 대환장 파티중 이었던 지라 <최저가>가 최대 관심사였고 백만스물 하나, 백만스물 둘의 검색창으로 얻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과장계의 회장님) 내가 누울 곳은 <아고다>라는 역대급의 연구 결과를 낸 것이어따!!! (같은 방인데도 플랫폼 따라 방가격이 차이가 난다는 것이 어이가 아리마셍 입니다. 똑똑한 관광객 되기🤙) 와, 그때만 그런건가 싶었는데 요즘 시즌으로 검색해도 가격이 아직 정신 못차리고 있네요,, 계속 정신 못차려쥬세요~! 그중에서도 내가 꽂힌 숙소는 ‘a&o Prague Rhea’ 라는 곳인데, 여기 진짜 물건이다. 사장님이 땅파서 장사하시나? 싶을 정도로 가격이 진짜 미쳐버린 호스텔. 원체 미국에서 저렴한 맛에 호스텔 다인실 이용했다가 지옥을 경험한 이후로 호스텔은 믿고 거른다!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숙소보다 너~~무 싸서 한번 들여다 보기나 하자. 하고 왔더니, 왠걸! 심지어 다인실이 아니라 2인용 개인실이었던 것!!!!!!😱😱😱 남자친구랑 둘이 정말 벙쪄서 한참을 들여다 보고, 눈 비비고 다시 보고, 안약 넣고 다시 보고, 우리 장기를 미리 기증을 하고 방문해야 하는거 아니냐면서 한참을 혼란에 휩싸여 떠돌았다. 아무리 두뇌를 풀가동 시켜도 ⭐️이 가격에 2인실이 나올수가 없는 데다가, 지하철 역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이 코앞이며, 주변이 주택가와 공원, 마트, 음식점 등으로 구성되어있고, 후기마저 좋아서⭐️ 8대 불가사의가 여기서 나오는구나 싶을때쯤 ‘분명 사진이랑 다르거나 막상 가보니 무너져가는 곳인데 그냥 댓글 알바를 썼나 보구나’로 대충 타협을 하고 그렇다 하기에도 너무 감사한 가격이기에 흔쾌히 결제를 감행하였도다! 간다! 나 진짜 가는거다!! 19만원대에 깨로꼬롬하게 깨로꼬롬한 숙소 예약 완료우~! 숙소 예약까지 마치면 일단 여행 50프로 이상은 성공이라 생각하고 보는 여알못은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이라 괜히 돈 아낀 기분에 여알못 답게 예약시 선택 가능한 유료 택시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결정!!땅땅땅 프라하 레아와만 제휴가 되어 있는 것인지 Agoda 자체와 제휴가 되어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15.74유로에 공항픽업-숙소 코앞 드랍의 라이드를 제공해주는 차칸 서으비스에 역시나 ‘슈어! 와이낫?!’을 외치며 바로 카드 슬래시!! (워낙 새벽 비행기를 타는지라-아마 4시?비행기 였던걸로 기억-도착해도 비몽사몽 해서 사리분별 극불개능일 것을 느무도 잘알기에... 근데 정말 거리가 꽤 되더라구요! 3,40분 정도? 게다가 게이트에서부터 이름써들고 맞이해주시기 때문에 노헤맴+조용히 운행만 해주셔서 가는 동안 차에서 죽은듯이 숙면 가능한 각입니다 *기사분은 외국분 이십니당)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라하 여행 준비의 🤩하일라이똣!🤩 ‘프라하 카드’만들기 프라하 카드가 무엇이냐면요! 대충 이런 카드라고 할 수 있다! (귀찮은거 아님) 개인적으로 ‘00패스, 00 2일권 등등은 돈낭비이고 관광객을 상대로한 장사 술수이다!’라고 생각하는 주의라 구매를 굉장히 꺼려하곤 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구나, 자유 여행 일수록 이런게 더 필요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 알짜배기 카드라 이말입니다~! ⭐️여기서 프라하 카드의 혜택을 잠시 살펴보자면!⭐️ 1. 버스, 지하철, 트램 할 것 없이 대중교통 이용 가능 2. 프라하성(전부 다 관람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합니다), 유대인 박물관, 구시가지 시청사, 페트르진 타워, 동물원 등 60개 관광명소 무료 입장(카드 수령 시 사용 가능처가 적힌 팜플렛을 주기 때문에 선택해서 관람하시면 됩니다-오픈, 클로즈 시간 유념해서 효율적 동선 짜기!) 3. 2시간 관광버스 투어 무료체험 가능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되어 프라하를 속속들이 알 수 있어서 유익하더라구요!) 4. 유람선, 공연을 포함한 50개 이상 관광명소 할인 한군데 가는데에만 20유로 이상이 드는 것을 본 나는 맘 같아서는 4일권을 우락쟉쟉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애매한 날짜에 오스트리아 여행 일정을 끼워넣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으며 아랫입술을 깍 깨물고 2일권을 구매해 벌이고 말았다,, 큭흑 ㅜㅜ (여행기간 동안 날짜를 선택하여 카드 사용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연일로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즈이같이 중간에 타국 여행 일정이 낄껴한 경우에는 잘 고민하셔서 선택하는 것이 낭비를 막겠쥬!? +시간별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별로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저녁시간에 도착하시는 분들은 왠만하면 다음날 아침에 개통하셔서 이틀 꽉꽉 채워서 이용하시길 추천드려용!) 자 이렇게 바우처 구매까지 완료했으니 나의 여행은 이제 100프로가 되어 흑화하게 된 거..신.. 가...! 쿸훜... (으이구 인간아 ᕙ( ︡’︡益’︠)ง) *프라하 카드는 시내에 가셔서 골목 깊은 곳에 기념품점으로 위장한 곳에서 받으실 수 있는데 이거 무지 헷갈립니다! 따라서 길눈이 밝은 친구에게 의지하여 카드를 잘 찾도록 하세요!! (???? ㅇㅅㅇ??!!) 농담이고 프라하를 보운격쩌그뤄 즐기기 시작하는 다음 편에서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전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백수도 조금 더 힘든 요일인점 인정하는 삼각 사각 보성각 입니다) (막짤은 나의 므찐 프라하 여행기를 예고하는 비행짤) 다음에 또 만나요! A bientot!
일본 재정운용에 ‘호네부타’(骨太)란 말이 왜?
호네부타(骨太) 방침은 2001년 고이즈미 내각 때 시행된 경제운용을 말한다. 2001년 고이즈미 정부의 경제운용 방침 ‘성역없는 구조 개혁’ 차원에서 시작 매년 6월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의 뼈대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6월 21일 “일본 정부가 경제재정운영의 기본 방침(骨太の方針)과 성장전략을 각의결정 했다”고 보도했다. 각의결정의 핵심은 ᐅ10월 소비세율 인상(8%⤍10%) ᐅ30대 중반~40대 중반 취직빙하기 세대 3년간 집중지원 ᐅ최저임금 전국 평균 1000엔 조기 실현 등을 담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경제재정운영의 기본 방침’의 정의다. 이는 ‘성역없는 구조개혁’(聖域なき構造改革)을 실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으로, ‘호네부타의 방침’(骨太の方針)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그럼, 경제정책에 왜 ‘호네부타’라는 이상한 단어가 붙었을까. 호네부타는 한자 그대로 ‘뼈대가 굵다’는 뜻이다. 이 단어가 경제적 의미로 쓰인 것은 2001년 무렵이다. 그해 1월 자민당 내각 산하에 경제재정자문회의(経済財政諮問会議)가 설치되었다. 발족 초기는 모리 요시로(森喜朗) 정권 말기로, 자문회의는 거의 개점 휴업 상태였다. 당시 재무상은 오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재무성이 독점하던 예산편성권한에 내각이 관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는 “‘뼈대 굵은 논의’(骨太な議論)라도 해보자”는 느긋한 자세였다. 그러다 3개월 뒤인 2001년 4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정권이 출범했다. 경제재정장관이 된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蔵)는 “뼈대 굵은 논의 즉, 호네부타 논의(骨太な議論)를 호네부타 방침(骨太の方針)으로 바꿔놓았다. 논의(議論)보다는 방침(方針)이라는 단어에 힘이 실린 셈이다. 그러면서 자문회의는 총리 주도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자문회의는 고이즈미의 노련한 정치수법과 맞아 떨어지면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총리가 의장을 맡고 각료와 민간인들이 참여했다.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는 매년 6월, 경제 정책과 재정 정책의 기둥이 되는 기본방침을 최종적으로 정했다. 이는 이듬해 정부의 예산 등 각종 정책에 반영됐다. 고이즈미 내각에서 비서관을 지낸 이이지마 오사오(飯島勲)는 ‘고이즈미 관저 비록’(小泉官邸秘録, 2006)이라는 책에서 고이즈미를 인용해 호네부타(骨太)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호네부타 방침’이라는 건 큰 우산과도 같다. 총론을 확실히 억제하여 그 아래에 각 부처의 개혁 프로그램을 통합한다. 그러면 모두 싫어도 개혁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骨太の方針というのは大きな傘みたいなもんだ。総論をしっかり抑えてその下に各省の改革プログラムを組み込んでいく。そうすればみんないやでも改革案を考えざるを得なくなる) 고이즈미 정부에서 자리잡은 '호네부타'는 아베 정부에서도 여전히 경제운용의 굵은 축을 담당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6월 22일 사설에서 “‘개혁 없이는 성장도 없다’라는 기치를 내건 고이즈미 정권 시절에는 매년 ‘호네부타 방침’에 포함시키는 시책과 관련해 각료와 민간 멤버들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改革なくして成長なし」を掲げた小泉政権時代には、毎年度の「骨太の方針」に盛り込む施策について、閣僚や民間メンバーが激しい議論を闘わせた)고 했다. <김재현 기자>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11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 군국주의 시대
재팬올에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을 연재 중인 이훈구 시나리오 작가의 거주지는 미국입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활동 중이었던 작가는 최근 미국(LA)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훈구 작가는 “미국에서도 연재는 계속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군국주의 시대’ 이야기는 그가 미국에서 보내온 첫 글입니다. <편집자주> 일본이 1931년 중국 동북부를 침략(만주사변)하면서 1932년 만주국이 세워지고 1937년부터 중국과 전면전에 들어가게 된다. ‘민족주의’와 ‘군국주의’의 경계에서 일본의 지식인들은 협소해져 간다. 영화인들에게는 더욱 그 입지가 좁아지는 계기가 되는데 군국주의적 성격을 지닌 정부는 문부성을 통해 ‘새 민족적 천황정치’를 확립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윽고 1939년 10월, 영화산업은 직접적인 정부 통제를 받게 되고 정부 입장에서는 원활한 통제를 위해 영화사의 수를 축소하자는 의견이 대두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러한 통제가 어떤 영화인들에게는 기회가 되는 역설을 낳는다. 쇼치쿠의 전성기도 1930년대부터 50년대까지이기 때문이다. 쇼치쿠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 가운데 기도 시로(城戶四郞)라는 제작자가 있는데, 그는 이 암흑기에도 수많은 영화인들을 발굴해 냈다. 오시마 나기사(大島渚)의 재능을 알아보고 파격적으로 감독 데뷔를 시켜놓는가 하면 나루세 미키오를 “쇼치쿠에 2명의 오즈는 필요 없다”며 방출한 이도 그다. 역설적으로 그는 20∼30년대 쇼치쿠를 지휘하면서 감독 중심의 스튜디오를 확립하는가 하면 정부의 통제에 유연하게 대처한다. 신파극과 가부키의 묵은 유산을 털고 내용과 스타일 양면에서 ‘모던한’ 영화들을 제작하고자 했으며 쇼치쿠의 감독들과 조감독들은 기도 앞에서 토론할 기회를 가졌고 외국영화들을 보면서 콘티를 그려가며 연구를 했다. 1941년부터 1945년 사이, 4년간의 상황을 제외하고는 쇼치쿠는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영화제작을 했다. 그러나 1939년 10월, 일본의 영화산업은 직접적인 정부 통제를 받게 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되는데 ‘대형 영화사’의 수를 2개로 축소하기로 하는가 하면 영화검열을 강화해 나갔다. 1934년에 제정된 영화법은 영화제작을 완전히 국가의 관리와 통제 아래 두기로 하는데 예전의 검열보다 더 혹독했으며 감독과 배우는 모두 면허 등록제가 되고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검열을 받았다. 물론 독창적 발상은 아니었다. 나치독일의 영화통제정책을 역시 ‘일본화’하였다. 이와사키 아키라(岩崎昶)같은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영화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 확보와 새로운 경쟁자 제거를 위해 오히려 찬성하는 경향을 보였다. 심지어 1936년에는 나치 독일의 산악영화 감독인 아놀드 팽크(Arnold Fank)가 방일, 일본의 산악 풍경을 중심으로 한 ‘사무라이의 딸’을 제작하여 독일에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 이 때도 일본은 ‘일본화’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공동감독으로 선발된 이타미 만사쿠(伊丹万作)의 경우, 아놀드 팽크가 설명하는 낭만파적 숭고미학을 이해하기 보다는 자신의 특기인 풍자적 유머의 영화를 만들고야 말았다. 바로 ‘새로운 땅’이 그것인데 이 스토리는 문화 내셔널리즘 성격이 매우 강한 영화였다. 고스기 이사무(小杉勇)가 연기하는 주인공 야마토 테루오는 6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독일인 약혼자 게르다 슈톰을 데려오는데 이미 일본인 약혼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물론 독일인 여성과 결혼하겠다는 말에 야마토의 가정은 뒤집어지지만 게르다 슈톰은 오히려 “일본인의 전통과 가치를 지켜야 한다”며 “가족의 말을 들으라”고 야마토를 설득한다. 게르다 슈톰 역시 일본 여성의 아름다움과 총명함에 이끌려 약혼자 미치코와 화해하고 결혼을 하게 되는데 만주국에 정착하여 일본 병사의 보호를 받으며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데 정열을 불태운다는 이야기이다. 다분히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영화이지만 독일과 일본 양국에서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였다. 독일 관객에게는 일본인의 문화적 순수성, 인종적 순수성을 본받으라고 선전하고, 일본 관객들에게는 ‘신천지’만주로 떠나라는 선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놀드 팽크가 선택한 하라 세쓰코(原節子)는 서양인의 체구와 용모의 여배우이자 동양인으로서 그의 의도에 맞게 ‘전형적인 일본 여성’을 연기한다. 그녀는 전쟁 기간 내내 활약을 했으며 이후에도 일본의 대표적인 여배우가 되는 모순을 낳기도 하였다. 그녀는 오즈 야스지로(小津 安二郎) 감독이 연출한 영화 ‘만춘’, ‘동경 이야기’ 등에 출연했는데 그녀의 경력이 오즈 감독을 만나기 이전과 이후로 나눌 만큼 큰 영향을 줬다. 그는 오즈 감독 영화에서 착한 딸과 며느리 같은 이미지 덕분에 ‘영원한 처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라는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 감독과 나루세 미키오(成瀬巳喜男) 감독 영화에도 출연해 ‘일본 영화의 황금시대’를 이끈 배우로 평가받았지만 한편에서는 국민여배우 이전에 ‘파시스트 미소녀’로 불리기도 했음을 상기시킨다. 형부인 구마가이 히사토라(熊谷久虎) 감독의 권유로 배우가 되었고 그의 영향에 의해 흥행 여배우가 될 수 있었다. 반면 이타미 만사쿠는 일생동안 ‘새로운 땅’의 실패와 좌절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고 반전영화를 통해 참회하였고 아들 이타미 주조(伊丹 十三)를 통해 블랙코미디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해 나가게 된다. 영화계는 국가의 에누리 없는 통제에 질식하기 시작하고 쇼치쿠, 도호, 닛카쓰 등 대형영화사의 수를 2개로 축소하기로 결정하지만 당시 신코(新興)키네마의 사장이었던 나가타 마사이치(永田雅一)는 오히려 정부를 설득하여 ‘민족(民族)’이라는 제3의 영화사를 설립하는데 성공한다. 이 영화사는 훗날 전후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일본 최초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 기누가사 데이노스케의 ‘지고쿠몬’(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등을 제작해 나가타 마사이치를 ‘영화계의 아버지’로 불리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전후 연합군 최고사령부로부터 공직 추방 조치를 받기까지 하는데 막강한 정계 인맥 덕분에 일명 ‘픽서(fixer·해결사)’로 불리며 심지어 일본 프로야구단 ‘도쿄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 마린스)’의 구단주가 되기도 한다. 이 영화사는 다시 ‘다이니혼에이가(大日本映畵)’로 개명하게 되었고 오늘날 ‘다이에이(大映)’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불행하게도 전시영화가 제작되던 시절 재정난에 시달리던 닛카쓰는 다이에이에 흡수되게 된다. 1937년 중국과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사사키 야스씨(佐々木康), 구마가이 히사토라(熊谷久虎), 야마모토 가지로(山本嘉次郞), 아베 유타카(阿部豊), 다자카 도모타카(田坂具隆)등의 감독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다른 영화인들이 저항을 한 것은 아니었다. 아베 유타카는 남방으로, 우치다 도무(內田吐夢)는 협조 대신에 만주로 떠났다. 오즈 야스지로는 군복무를 두 번이나 했으며 미조구치 겐지는 외지로 파견 되었는데 장교 대우를 해주지 않자 국가주의에 호응하는 영화를 제작하려고 했다. 이마이 다다시(今井正)와 도요타 시로(豊田四郞)는 조선으로 건너와 영화제작을 이어갔으며 그 제작 기반은 조선영화인과 일본영화인의 협업으로 영화를 만들던 경성촬영소였다. 당시 경성촬영소에는 일본 쇼치쿠 출신의 야마자키 후지에가 감독으로 입사해 조선 이름 김소봉(金蘇峰)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중 가장 주목 받는 이는 다자카 도모타카로 ‘5인의 척후병’(1938)에서 호전적 영웅주의를 부정하고 전장에서의 고생과 신뢰 그리고 전우애를 그려내 베니스 영화제에 입상한데 이어 1939년에는 ‘땅과 병사’를 연출하는데 이 작품은 낙오자가 속출함에도 아무런 이유 없이 행군하는 병사들을 그려낸다. 이 두 작품은 모두 적군이 등장하지 않는다. 고통을 참고 자기 희생을 피할 수 없는 무영의 일본인들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다만 이 작품적 경향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덩케르크 (Dunkirk, 2017)’에서도 재현되는데 역시 적은 등장하지 않고 고통을 참으며 자기 희생을 피할 수 없지만 묵묵히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는 무명의 영웅들을 그려낸다. 도덕주의를 강조한 일본의 전시 하의 영화들은 따라서 전투의 비참함과 병사들의 고통을 강조하게 되면서 오히려 반전영화로 받아들여지는 역설을 낳게 된다. <미국 LA=이훈구 시나리오 작가>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08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일본료칸추천 - 슈젠지 아라이료칸
100년의 세월을 가진 아라이료칸, 주변하천에서 흘러들어오는 샘물이 료칸 내부를 맴돌고있다.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다는 노천탕, 여긴 또 다른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있는, 실내 탕이다. 돌들을 드러내지않고, 그 모양을 그대로 살려낸 탕들이 아름다웠다. 온천욕을 하며 보는 유리밖으로는 헤엄치는 잉어와 잔잔한 물이 보인다. 잉어가 곳곳에 많다.. 이친구들도 100년은 살았겠지, 방마다 테라스에서 이어져 밖으로 나가는 작은 정원들이 있다. (다른방이 다 보이는구나... ) 아침밥, 정갈한 도시락을 먹는기분 전체 지도, 탕들은 시간대마다 남탕과 여탕을 왔다갔다하기에, 시간체크를 잘하고 들어가야한다. 저녁산책, 이렇게 문 앞에 오늘의 숙박객들의 이름이 써져있다. 온천욕하고.들어오니 준비되어있던 간식, 방을비우는 새에 알게 모르게 이부자리도.펼쳐져있고, 간식과 차가 준비된다. 정말 배부르게 먹은 저녁 가이세키, 하나하나 정성이 깃든 맛이다. 여기는 프라이빗탕, 눈치싸움만 잘한다면...무료로 이용이가능하다. 생각보다 쉽게 이용가능했다. 사진에는 담을 수 없었지만, 가장 좋았던 부분은 온천수다. 물 속에 들어가자마자 여독이 씻기고, 살이 보들보들해진다. 집 앞이라면 매주 들어가고싶었던 온천수ㅠ.ㅠ.... 일본여행중 가장 일본같았던, 아라이료칸에 빙글러분들 꼭 가보길바래요.
펄 정육점 식당
세부시티로 넘어와 몬테벨로에 숙소를 잡고 점심으로 저와 아들은졸리비를 와입과 딸 그리고 친구네 가족들은 냉면과 우동을 먹었습니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다보니 한국식당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세부시티에서의 첫날 저녁은 삼.겹.살... 아니 삼겹살? 그것도 세부까지 가서?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늘 가는 펄 정육점 식당은 맛집이었습니다. 솔직히 살짝 반신반의 했지만 저희 둘째날 저녁도 펄 정육점 식당에서 먹었습니다. 이틀 연속으로 세부에서 삼겹살을 먹다니 ㅋㅋㅋ 여깁니다 펄 정육점 식당... 가이사노 몰 바로 옆 1층에 있습니다. 숙소에서 걸어서 3분거리^^ 식당 앞까지 가서도 살짝 머뭇거리고 있으니 사장님같은 한국인분이 나오셔서 여기 고기 맛있다면서 먹어보라고 하시더라구요. 나중에 알고보니 사장님은 아니시고 사장님 지인쯤 되는 분이신데 본인도 여기온지 얼마 안된다고 하시더라구요. 매니저 역할을 하시고 계신듯 했어요. 그런데 가게 안으로 들어가보니 한국인들은 저희뿐이고 모두 현지인들이더라구요. 삼겹살과 목살을 조금씩 시켜서 먹어봤는데 삼겹살이 더 맛있더라구요. 한국에서도 삼겹살 좀 자주 먹으러 가는편인데 어, 여기 삼겹살 싸고 맛있는데요... 다들 맛있어 하더라구요 ㅎ. 아까 봤던 매니저님께서 저희 테이블에 거의 상주하시면서 여러가지 메뉴에 대해서 설명도 해주시고 세부 이야기도 많이 해주셔서 재밌었습니다. 한국말이 그리우셨던듯요 ㅋ. 소주도 시켜먹었습니다 ㅋ. 삼겹살 먹는데 소주가 빠질수 없잖습니까... 아, 그리고 여긴 쌈으로 배추가 나오는데 이날은 상추가 나왔어요. 사장님께서 한국갔다가 한박스 가져온 상추라고 하시더라구요. 다음날 갔을땐 상추가 떨어져서 없다고 하더라구요 ㅡ..ㅡ 그리고 매니저님도 다른 지점으로 가시고 안계셨어요... 둘째날엔 뼈해장국도 맛봤는데 ㅋ 맛있더라구요. 첫날에 매니저님께서 추천해주셨었거든요^^ 하, 이틀 연속으로 삼겹살로 저녁을 때우다니... 그래도 진짜 삼겹살은 맛있었어요... 숙소로 돌아와서 산 미겔로 마무리 합니다. 슈퍼드라이는 괜찮은데 라이트는 제입엔 좀 싱겁네요...
천국이 있다면 여기! 모리셔스 가볼 만한 곳 BEST 7
곧 다가올 여름 휴가, 어디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계시나요? 발리, 칸쿤, 보라카이, 보홀, 코사무이 등... 이미 많이 알려진 휴양지가 아닌 특별한 휴양섬을 찾는 분들도 많으실 것 같아요 :D 올여름 휴가를 특별한 곳에서 보내고 싶은 분들을 위해 소개하는 오늘의 여행지, 바로 모리셔스입니다- 모리셔스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섬나라로 허니문 여행지로 사랑을 받는 곳인데요. 그림 같은 바다와 초록빛의 숲 등 대자연에서 다양한 액티비티와 관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해요 :) 비행시간이 긴 편이긴 하지만, 경유지인 두바이에서 스탑오버 여행을 즐길 수 있어서 일석이조 여행을 원하는 분들에게 딱! 맞는 여행지가 아닐까 싶어요~ 그럼 지금부터 모리셔스에 대해 함께 알아볼까요? 모리셔스 꼭 가봐야 할 곳 BEST 7 #카젤라파크 처음으로 소개할 곳은 카젤라 파크입니다. 모리셔스 남서부에 있는 대형 사파리인 카젤라 파크는 모리셔스 여행 필수 코스로 손꼽히는 곳이랍니다. 카젤라 파크 인기 체험은 사자 체험인데요. 사육사와 동행하며 야생 동물인 사자와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은 물론이고 사자와 함께 걷기, 사자 만지기 등을 체험할 수 있어요 :D 또, 사자 체험 외에도 거북이, 기린, 공작새 등 다양한 야생 동물들이 우리가 아닌 드넓은 자연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쿼드 바이크를 타고 달리며 야생 동물을 보고 만질 수 있는 체험과 익스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짚라인도 마련되어 있다고 하니 자연과 액티비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가봐야겠죠?! * 예약 필수! #팜플무스식물원 #SSR식물원 모리셔스의 또 다른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죠, 팜플무스 식물원을 소개합니다. 팝플무스 식물원의 실제 명칭은 S.S.R. Botanic Garden(써 시우사구 라구람 식물원)이랍니다 :) 무려 250년의 역사를 가진 거대 식물원인 이곳에는 약 500여 종의 전 세계 희귀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고 해요~ 거-대한 나무부터, 난생처음 보는 비주얼의 열대 식물들을 보며 아프리카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이곳의 핫플레이스는 빅토리아 수련 연못인데요. 커다란 하트 모양 쟁반을 떠올리게 하는 빅토리아 수련 연못은 이곳을 찾는 많은 이들이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인기 포토존이라고 해요! #일로셰프섬 어느 바다를 가도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모리셔스지만, 더욱더 아름답기로 소문난 일로셰프 섬- 특히 신혼여행을 위해 모리셔스에 방문하는 신혼부부들이 빼놓지 않고 방문한다고 하는데요 :)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다양한 액티비티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한가롭게 맥주와 칵테일을 마시며 바다를 돌아보는 요트 체험부터, 드넓은 바다 위를 나는 페러세일링, 바다속을 거닐며 해양 생물을 마주할 수 있는 씨워킹까지... 모리셔스의 바다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일로셰프 섬에 꼭 방문해보세요 :D #포트루이스 #모리셔스의수도 자연을 느꼈으니, 도심을 느낄 차례겠죠?! 모리셔스의 수도인 포트루이스를 둘러보는 시내 투어를 떠나보세요- 포트루이스는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아델라이드 시타델 요새, 모리셔스 현지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중앙 시장, 현지 맛집, 쇼핑몰 등 모리셔스의 도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랍니다 :-) 쇼핑과 맛집을 충분히 즐긴 후에는 우산 거리에서 인생 사진을 찍는 것도 잊지 마세요! #캡멜로우성당 #빨간지붕성당 다음으로 소개할 곳은 모리셔스 인기 관광지인 캡 멜로우 성당입니다- 캡 멜로우 성당은 빨간 지붕이 참 인상적인 곳이에요 :D 이곳은 느긋한 여유가 느껴지는 바다의 푸른 빛과 성당 지붕의 쨍-한 빨간색이 조화를 이루는 모리셔스의 베스트 포토존이기도 해요. 베스트 포토존답게 웨딩 스냅을 찍으러 오는 신혼부부들도 많다고 하네요! 성당 근처 해변에서는 맥주와 길거리 음식(?)을 팔기도 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 한잔의 여유를 즐겨보시는 거 어떨까요~? #세븐컬러드어스 모리셔스의 신비로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 세븐 컬러드 어스입니다! 화산 폭발의 잔해가 만들어낸 독특한 지형의 언덕인 세븐 컬러드 어스는 이름처럼 다양한 색의 모래가 섞여 오묘한 느낌을 뿜어내는 모리셔스의 인기 관광지랍니다 :)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신비한 모래 언덕을 구경한 뒤,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샤마렐 폭포까지 보고 온다면 모리셔스 대자연 완.전.정.복! #도맹디오비뉴 \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도맹 디 오비뉴입니다 :) 도맹 디 오비뉴는 1800년대에 지어진 고택인데요. 오래된 저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내/외부가 잘 보존되어 박물관으로 개방되고 있는 곳이에요~ 1800년대 고택이라는 의미도 크지만, 이곳은 모리셔스 최초로 전기가 설치된 곳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잘 보존된 저택을 관람한 뒤 모리셔스에서 생산하는 티와 럼을 맛볼 수 있는 체험도 마련되어 있어 많은 여행객에게 사랑을 받는 관광지라고 하네요- 지금까지 아프리카 대륙의 천국, 모리셔스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자연과 역사를 모두 둘러볼 수 있고, 휴양까지 즐길 수 있다니 참 매력적인 나라인 것 같죠? 비행시간은 많이 길지만, 두바이를 경유해 가기 때문에 스탑오버로 2개 국가를 여행할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는 곳이니 다가오는 여름 특별한 휴가를 즐기고 싶다면 모리셔스로 떠나보세요 :D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 ios : https://goo.gl/kj0EjD android : https://goo.gl/X3xykZ
하고싶은건 하고 살자 - 여행편 4-1.여행은 여행을 낳고 #체코체고 2탄 (첫날은 역시 맛보기지!)
저가항공을 이용하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저가항공이 나에게 왕관을 씌워주는건 아니지만 항상 짐을 지운다. 서비스를 받는다 보다는 대가를 치른다는 느낌? 😂😂😂 하지만 나는 끝없는 욕심을 갖고 있는 명백한 닝겐으로써 요번에도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하였도다.. 벌이가 빈곤한 수준이 아니라 그냥 0인 취준생과 학생들에게는 최상의 항공이 곧 저가항공 아니겠습니까! 무튼, 살때는 조오오타고 어휴 이 가격에 즈이들을 체코까지 옮겨다 주신다는데 출발 시간(새벽 5시? 6시?)이 대수여유 저 원래 잠 없슈~ 비행기에서 냅다 자면 돼유~ 해놓고서 막상 당일에 잠 한숨 못자고 반 혼수상태로 우버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날지마!!!! 승질이 뻗쳐가지고.. 씨.. 싶은거다. 이와중에도 눈은 감겼지만 평정심을 유지하며 작두날같은 나의 신경을 곱게 갈으려 노력해주시는 미륵보살 같은 남자친구님 덕분에 컴컴한 새벽 공항가는 길 또한번 깨달음을 얻습니다,,(깨달음충) 약 15-20분 정도 우버를 타고 오를리 공항에 도착하여 겉모습과 반비례하는 친절함을 보유하신 기사님께 메흐씨 오흐부와를 외치고 무사히 검문을 마친 뒤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공항내 매점들을 주욱 거쳐 transivia 항공 게이트로 향했다. 내가가는 이길이..맞는가..? 너무 잠잠해서 이거 혹시 나는 전설이단가? 곧있으면 윌 스미스가 몰래카메라였습니다 짝짝~! 하면서 풍차돌리기 하며 나오는 각인가? 하고 반신반의하며 쫄래쫄래 걸어가 보니 마치 차원의 이동 수준으로 분위기가 급 전환되어 빛과 커피내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따...! 덕분에 우리와 같이 눈치게임1! 눈치게임2! 하고 계셨던 승객 여러분들께서도 마찬가지로 쓱쎄스풀한 차원의 이동을 마치시고 삼삼오오 모여들어 어느새 카페에 줄이 늘어서 있었다. 여기서 문제! 여행 준비편에 왜 그 중요한 일정짜기가 없었던 걸까요?! 왜냐하면 바로 지금(기다리면서) 짜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깔깔. 그럼 또 문제!! 그래서 진짜로 짰을까요 안짰을까요?! 말해 뭐해~ 안짰지 뭐예요. 깔깔깔. 원!래!(강원래 아님) 여행은 그냥 그까이꺼 대애충 그날 삘꽂히는 플레이스에 삘루다가 댕기면 되는거예요~! 몇군데만 그냥 찍어 놓으면 절루 완성되는 것이 진정한 여행객의 자세 아니게씀니까~?! (이 반(反)유노윤호 마인드는 나중에 남자친구와 파국을 겪는 사건의 복선이 됩니다..) 일단 시작하면 끝장은 봐야겠는데, 아직 덜 깬 뇌로 (사실 온전히 깨어있는 적이 더 드뭄) 최적의 동선을 짜기위해 짱구를 좌로굴러!우로굴러!한다는건 극불gae능 이란 것을 진즉 깨달은 나는 블로그를 몇 번 뒤적이다 과감히 랩탑 뚜껑을 닫았다. 에라 모르겠다! 즐겨요 이기분!! 프라하 사모곡을 3절까지 부르던 사람이 갑자기 에라 모르겠 뚜와응~! 으로 갈아탄게 어쩐지 앞뒤가 ‘안’똑같은 전화번호~같이 들릴수 있겠지만 나는 분명 내가 해낼거라 믿기에 (이래서 내가 사람을 안믿음) 일단은 설레는 이기분을 즐기고 보자! 하고 신난다고 여행 영상이나 라차라차타타 찍으며 게이트가 열리길 기다렸다. 후후,,그래 맞아,,고생하는건 어찌됐건 미래의 나의 문젠거라구우~!!! (한-심) 여행 소감을 묻는 인터뷰로 시작하여 유도신문 및 취조로 끝을 맺는 때아닌 납량특집 동영상을 몇 편 찍고 나니 금방 게이트가 열렸고 탑승장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기에 만원버스에 몸을 실었다. 당시 프랑스가 유난히 추웠는 데다가 새벽 이기도 했고, 체코는 따듯 하다는 정보에 (따듯은 무슨 추위한테 호신술 쓰느라 바빴다) 옷을 되도록 얇게 입은 지라 밖에서 기다리는데 정말 ‘극한의 상황에 인간의 생존 본능이 어떤 행동결과를 나타내는가’를 주제로 생체실험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양악으로 캐스터네츠를 치기 바로 직전 드디어 문이 열렸고 속으로 지저스 치즈 크러스트를 무한 반복하며 계단을 미친듯이 올랐다!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그날의 추위..🌬) 비상시 대비 안전 교육을 욜띠미 보여쥬시는 스튜어드 님을 보며 실감이 나기 시작🤩🤩 승무원 분들의 환영 인사를 받으며 자리에 착석 왠료우. 로고부터 시작해서 아무래도 트란시비아의 상징색이 초록색 임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안겨준 알록달록 시트! 알록달록한 항공사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왠지모르게 새로웠다. 생각 해보니 근 5년간 경비행기로 이동하는 여행을 단1도 할 기회가 없었어서 그런지 (호마이 갓낌치ㅠㅠ) 생각보다 괜찮은 퀄리티와 좁지 않은 레그룸에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주관주의⭐️저는 후에 이용한 저가항공사들을 통틀어 트란시비아가 제일 좋게 기억이 되네용😉) 헤헤 다른 분들은 타임 랩스로 이런거 잘만 찍으시던데 똥손은 오늘도 웁니당 헤헤헤 (웃어도 눈물이 나는 중) 나름 뭐 한번 해보겠다고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엎치락 뒷치락 하는 중에 번번이 ‘응~ 아니야~ 안돼~’를 말씀처럼 귀에 때려박아주는 사춘기 폰의 반항적 면모에 툴툴툴툴 대다가 남자친구의 달램빔-⭐️을 맞고 금방 또 헤헤거리며 둘다 잠에 빠졌다 (기면증 아님 주의). 그!런!데! 눈 감은지 한 30초쯤 지났을까. 그래도 기내니까 몸이 조금 뎁혀지겠지~한 나의 기대를 개이~박살 내듯 어디선가 들려오는 그 노래.. 씽~씽~불어라~씽씽 하우젠~ ?????? 잠시만여 여기 창문 덜닫긴거 가튼데여???? 슨새임 에어컨좀 꺼주시면 안댈까여???예??? 안틀었어여?!!? ㅇㅅㅇ?!!!??! 그랬다. 바람 잘 날 없는 내 여행기에 한줌의 바람이 되어 주고자 진짜 바람을 넣어주신 것이어따*^^* 아닌 밤중에 찾아온 손님이 외풍 이라니^^! 베란다도 아니고 비행기에 찾아온 손님이 외풍 이라니^^!!!!!!!!!!! (곧죽어도 창가석을 외치는 낭만객 분들께서는 여름이 아닌 이상 댐요를 챙겨주시기 바람니다..) ㅎ..괘.. 괜찮아..ㅎㅎ... 다들 수명 연장을 위해 냉동인간 기술에 목을 맬때 난 공짜로 냉동인간이 될 수가 있는 거시다! ㅎㅎ..!! ㅎㅎㅎ!!! 추위에 파묻혀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떠오르는 해. 비몽사몽해서 찍은 사진이 엄지검지에 힘 빡주고 안간힘으로 찍은 50장 보다 훨씬 분위기있게 잘나온 것은 나의 기분탓이려나..? 사진첩의 스크롤을 죽죽 내릴때 마다 매번 흠칫 하게되는 놀라운 비행샷..❤️ 내가 마니 쪼아해!!! 우와.. 우리 진짜 왔나봐!!! 정말 너무 예쁘다 😍 미니어처 효과가 자동 적용되어서 그런지 그저 평화롭고 아기자기한 프라하의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10년이 넘도록 갈망했던 프라하에 내가 진짜로 왔구나...(감격) 도착했다는 안내방송과 함께 빨리 내리고 싶어 마음이 급해져서 그런지, 깨어 있는지 약 20시간이 넘어가서 그런지 어질어질했다. 그래도 서둘러 프라하 땅을 밟아 보겠다는 마음에 무거운 배낭을 가뿐히 짊어지고 성큼성큼 공항을 나섰다. (얼마나 성큼성큼이었는지 남자친구가 신기해서 끼득끼득대며 찍어놓은 사진. 나중에 받고 나서 어이 없긴 했는데 그때의 신나는 마음이 사진 넘어서 느껴져서 항상 볼때마다 웃게 되는 사진이다) 도착해도 여전히 아침 8시여서 그런지 공항은 아직 한산했고 이제 막 하루가 시작되고 있는 풍경이었다. 택시 픽업 시간을 조금 빠듯하게 맞춰놓은지라 혹시 엇갈려서 놓칠까 불안불안한 마음도 나의 축지법에 어느정도 기여를 한 것 같다. 걱정과 달리 출구를 나서자 마자 조그마한 초등생용? 가정용? 화이트 보드에 쓰여진 내 이름 영어 알파벳을 보았고 반가운 마음이 입이 귀에 걸려 “쩌기 있따!!!”하고 남자친구의 손목을 냅다 잡고서는 기사님께 달려가서 인사를 나눴다. 주차되어진 차로 이동해서 짐을 실어 넣고(생각보다 차도 크고 아름다워서 공간이 아주 넉넉했음) 목적지를 확인한 뒤 출발~! 나만큼 잠을 못잔 남자친구이기에 내가 길을 잘 보고 있을테니 눈을 좀 붙이라고 말을 한 뒤 눈을 세번정도 깜빡이자 숙소에 도착해 있었다. ???? 벌써 다왔다고 ??? ?? 어떻게??? 실실 웃기만 하는 남자친구에게 눈을 흘기고 후다닥 내려서 짐을 받은 뒤 땡큐 바이 해버나이스데이!!를 외치고 바로 남자친구를 추궁하니 키득키득하며 이따가 ‘보여’줄게 라는데 .. 대체 뭘요..? 뭐긴 뭐야 목돌아간 잠귀신이지!!!!! ㅋ.. ㅋㅋ..; 저는 이제부터 권유같은거 잘 안하려구요..ㅎ..; 잘못한 건 아니지만 괜시리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아니잉~ 그게아니라앙~’ 하고 해명을 하려는데 생각해 보니 아까부터 주위가 웅성웅성 복작복작한 것이었다. “뭐야? 여기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은 데였어?!” 당황스러웠다. 사람이 바글바글 한 것 뿐 아니라 연령대도 다양하고 혼여행부터 그룹 여행, 가족 여행 까지 이용객들의 스펙트럼이 아주 다양해 보였다! 밝고 젊은 분위기에 좋았지만 반면에 시끌벅쩍 한거 아닌가 순간 사서 걱정.. 오른쪽 건물이 프라하 레아 건물. 외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고층 빌딩이기에 조금 신기했다. 건물 외관은 굉장히 세련되고 깔끔했다. 입구에 진을 치고 담배를 피며 우리를 아래위로 훑어보시는 여러분들 때문에 살짝 ‘머..머지! 해.. 해보자는 건가!! 나 ㅌ.. 태권도 3단, 절권도 5단, 줄넘기 7단, 주부 9단 쉬익 쉬익..!’을 속으로 되뇌이다 한쪽손에 담배를 들고 다른 손으로 문을 잡아주시는 분에 의해 또한번 ‘나만 쓰레기지~’를 느끼며 미안한 맘에 괜히 더 웃어보이며 고마움을 전했다. 건물 뒤편으로는 주상 복합의 형태를 띄고 있는 아파트? 빌라?가 마찬가지로 굉장히 감각적인 외관으로 지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광장과 비슷한 곳에서 주민 분들이 아가들과 강아지들을 데리고 나와 놀며 산책도 하시고 햇볕을 받고 계시는 모습 덕에 만족감 및 행복 지수가 각각 120%를 돌파해따..! 하..진짜 내스타일이댜..! (말잇못) 건물 안으로 들어서서는, 정말... 진짜... 모르겠다.. 내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맘에들어하는 바이브라 그런지 짐 들고 낑낑 대고있는 내 육신보다 심장이 더 헐떡거려서 어이가 없었다.. (나대지마 심장아) 넘모넘모 신선하고 세련되었을 뿐 아니라 진짜 깔끔하고 어떻게 이런 시설에 이 가격이 나오지?? 논문 하나는 써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 의심적(?)감격이었다..😭😭😭 (손가락 열개 다 엄지로 바꿔서 따봉 해도 모자름) 더군다나 쿨내 풀풀 풍기시는 리셉셔니스트 분이 그에 친절함까지 동반해 주시니 ‘뭐지.. 어떤 똥이 뿌려지려고 지금 내 인생이 이러케 탄탄대로지..?’ 싶어서 불안해 지기까지 할 참이었다. (으떤일이 있었냐면요, 저희가 체크인 시간보다 하아아안참 일찍인 9시? 쯤 도착했는데 너~무 피곤했던 지라 그냥 10유로 내고 얼리 체크인 하자.. 한 마음으로 갔단 말입니다.. 근데!! 니네 방이 지금 입실 가능한 상탠가 일단 보겠다더니, ‘응 되네 들으가!’하고 10유로도 안받고 무려 5시간 일찍 들여보내주셔따~ 이말이에요 이 슨생님께서!! 운이 좋은거 였을지 몰라도 무튼 넘 감사해여 흑흑 길가다가 10억짜리 로또 종이 주우세요,, 조개구이집 가서 조개 먹다가 진주 발견하세요 슨새임!!!!) 땡큐 땡큐 체코 만세!!! 를 소리치며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 중 다시 봐도 감격적인 라운지 모습 한컷..⭐️ (라운지에는 코인 라커, 생활용품 자판기, 바, 카페테리아 등이 있고 필요에 의해 쇼핑백?비닐봉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차칸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었어용) ㅋㅋㅋㅋ이분 너무 행복하신 나머지 창문에서 스파이더맨 되심ㅋㅋㅋㅋ 그렇게 방에 도착한 우리는 신개념 카드 터치 체리의 방문 봉인 해제 방식에 한번 놀라고 열자 마자 펼쳐진 장관에 떨어트린 아랫턱 줍느라고 아주 진을 뺐다. 아니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이 퀄리티가 나올 수가 없는거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있을 거 다있고, 티비, 침대 옆에 바로 위치한 콘센트 부터 따듯하고 청결한 화장실까지..(냉장고는 읎었음 ㅠㅠ) 감각적인 미니멀리스트의 방에 돌발 난입 하였을 때 딱 이렇겠다 싶은 그런view..도랏view.. (영상으로 만나보시죠!) 암막커튼 하나라면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를 매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마으법! 을 부릴 수 이써,, 원래대로라면 들어와서 바로 짐 풀고 씻고 준비 해서 10시 반쯤 나가서 프라하 카드 만들고, 2일권의 첫날을 아주 알차게 보낼 계획이었으나 역시나 또한번의 자기과신은 나를 파국으로 몰아세웠고^^,, 죽이 참 잘맞는 좀비 듀오는 일단은 자야 한다. 아니면 고장 난다.라는 의견에 빠르게 동의하여 1시쯤 나가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세상 모르고 쿨쿨 자고 아 이쯤은 일어나는 것이 양심상 맞겠다 싶어 주섬주섬 일어나니 응~ 지금이 한시야~ 헤헤! 괜차나여! 이것이 자유여행의 맛 아니게씁니까?! 헤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자유여행의 맛,,) 아까 언급한 광장길(?)을 지나쳐 아가들과 강아지들로 사기 충전 하고 버스타러 가는 길! 어차피 5박 6일 여행이고 프라하에만 5일 있을 예정이라,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첫날은 슬렁슬렁 마실간다 생각하고 차분히 준비하고 나오니 아주 첫인상 지대로 심어주시겠단 듯 넘넘넘 너~~엄 조은 날씨 ㅠㅠ!!! 증말 환상이다😍😍 우리가 첫날 갈 곳은 바츨라프 광장. 시계탑, 틴교회 등 볼거리 다양한 바츨라프 광장에 가려면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Zelicekeho 역으로 가야 한다. 나름 두달 전이라 아주 자세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체코는 버스-지하철 환승이 가능하고 사용 기한은 탑승 라벨이 찍힌 시점부터 30분간으로 기억한다. (이것을 노리고 호? 그럼 타고 모르는척 라벨 안찍으면 이거 무한으로 쓸 수 있는건가?!하시고 안찍었다가는 대참사 날 수 있습니다.. 검사를 그렇게까지 하려나? 싶었는데 하더라구요.. 그것도 랜덤으로..! 저희는 첫날 숙소로 돌아오는 길게 바~ 로 확인하는 모습을 본 덕분에 정신 바짝 차리고 성실하게 구매해서 다녔습니다!) 1회권이 인당 24코루나(1200원 정도?)로 파리해 비해 상대적으로 갱쟁이 착한 가격에 부담없이 팍팍 끊어서 시내로 향했다. (버스는 구글 맵에 목적지를 치면 몇 번 버스들을 이용하면 되는지 으아주 친절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구글맵에 무적권 매달리세욧!) 약 10분? 20분 정도 가니 역에 도착했다. 역 입구가 어디지?! 으디로 가야하는 거지?! 하고 당황한 나와는 달리 아주 침착하게 “이럴 땐 사람들이 많이 가는 쪽으로 가다 보면 목적지가 있느니라.”라는 침착한 남자친구님의 인생 2회차 같은 발언에 인파에 이끌려 흘럴러 가다보니 진짜 목적지가 있더이다...(의심의 아이콘 oz는 이슥기 이러다가 아주그냥 지구 반대편 가봐야 정신 차리지! 했던 맘에 말없이 머쓱타드를 맴껏 뿌렸다..) (목적지에 따라 a-초록, b-빨강, c-초록 라인의 플랫폼이 다 다르므로 이거 방향 잘 확인하시고 타셔야 합니당) 체코도 파리와 마찬가지로 메트로 이용시 수동으로 문을 열어야 하는데, ‘지저분, 낙후’등의 키워드가 떠오르는 파리 지하철 과는 달리 플랫폼부터 지하철까지 굉장히 채도가 높고 레고 같은 아기자기한 면모를 보여줬다. 의식하지 않고 싶지만 역시나 외곽이라 보기드문 동양인들이 둘씩 전철에 타있으니 굉장히 탐구스런 눈빛들을 꽤 목격할 수 있었다. 근데 웃긴건 서로 그러다 마주치면 당황해서 지하에서 산보는 척 함 ㅋㅋㅋㅋㅋㅋ 호에에에😳 모야! 굉장할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굉장하자나..!!!! Muztek역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는데 에릭남씨가 갑자기 내 무등을 타고 천국의 문을 연다~ 하고 노래를 부르시는 기분이었다. 이 화사함 무엇.. 역시 번화가에 도달하니 관광객분들 뿐 아니라 여기에서만큼은 보기 싫은데..! 하면서도 반가운 애증의 스타벅스, 풋라커 등 여러 프렌차이즈 매장 들을 보며 제대로 왔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의 4시가 다 되어서 도착한 우리는 우선 프라하 카드를 받기 위해 인포센터로 가야겠다! 하고 뚜벅초 모드 진입 전에 근데 거기가 어디지..? 하고 있던 차에 역 바로 앞에 비슷한 것이 있어서 “헐 저긴가봐! 오늘 진짜 왜이리 잘풀려~?!”는 혹시나가 역시나 그럼 그렇지로 끝을 맺으며 “요귀는 지도를 주는 곳이다. 프라하 카드는 구시가지 쪽에 가야지만 받을 수 있다”, ”근데 오디 가려 그러냐? 프라하 성이나 다른 명소들은 보통 여섯시면 닫는다.” ”근데 오디 가려 그러냐? 프라하 성은 여섯시면 닫는다.” ”근데 오디 가려 그러냐? 프라하 성은 여섯시면 닫는다.” ... ...... 헤헤. 그런거죠 뭐 인생이.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헤헤. 미리미리 동선 짜라 했는데.. 무시한.. 나레기... 풍선을 들기 싫어 얼굴에 껴놓은 대배우 황정민님의 대충성을 존중한 나레기... 급진당황으로 급속도로 말이 줄은 남자친구 님께 얾.. 얾... 안되면 되는거 하기 시전!!!! 맛보기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나는 첫날 기념 맛보기 여행을 제안하였고 진심은 통한다고 하였던가 (ㄴㄴ아님 그냥 남자친구가 착해서 그런거임 고타마싯다르타의 환생이심) 흔쾌히 승낙해준 남자친구님과 얄리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를 부르며 흘러흘러 바츨라프 광장으로 향했다 (여기 부터는 그냥 구글맵에게 조종 당하는 중에 찍어놓은 사진이므로 아~ 프라하가 이렇게 이쁘구나 정도만 알아주셨으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돌길이 많아 캐리어를 지참하실 여행객 분들에게 주의를 예고했던 블로그 글에 완벽 공감 하면서도 그로 인해 풍겨오는 고풍적 분위기에 캐리어만 없으면 아름답기 그지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라하 건물들을 보며 올드 앤 뉴가 위화감 없이 시너지를 내고 있는 모습에 감탄함과 동시 우리나라도 백년, 이백년 전에 지어진 건물들이 도심에 같이 남아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함의 끝에 아쉬움이 조금 남았다. 시내에 들어서도 그렇게까지 규모가 방대하지 않고(유명 관광지들이 다 둘러둘러 붙어있는 듯 하다), 관광지는 명백하게 여기 관광지예요~ 하고 손을 흔들고 있기 때문에(+안녕하쎄요우~ 반가워요오! 코마워요!가 심심찮게 들림) 우리 엄마 아빠 세대 분들도 어렵지 않게 프라하를 즐기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마음이 훨씬 좋았다. (나중에도 얘기 하겠지만, 프라하는 정말 나중에 부모님 모시고 꼭한번 오고싶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 곳이었다) 지나치다가 본 랜덤한 시장. (우리나라로 치면 화요시장? 수요시장? 같은 느낌이려나?ㅎㅎ) 벼룩시장, 중앙시장 등 시장에 관심이 많은 나 라는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고 싱그러운 과일들+저렴한 가격표에 눈이 팔려 오 이거 하나 사먹을까?하고 다가갔다가 그 저렴함은 단지 100g에만 해당하는 저렴함이었음을 깨닫고 배신감에 어얼른 빠져나왔다.⭐️마트가 훨씬 싸더라구요.. 지금 당장 과일을 안먹으면 죽을 수도 있겠다 싶지 않으신 분들은 믿고 스킵 하시길 바랍니다!!⭐️ 주제가 다양한 가게들이 즐비한 골목을 지나~ (프라하 카드 만들 때 여기를 지나쳐야 했던거 같은 기억이..나는데 나의 뇌피셜은 오로지 운에 의해 조종되기 때무네 구글맵을 믿도록 하자^^ 기술 체고^^!!!) 바츨라프 광장 입성 틴 교회가 아름답고 도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츨라프 광장은 프라하 신시가지의 일각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인싸 플레이스라는 것을 오기 전부터 마르고 닳도록 읽어뒀다. 그리고 직접 방문한 결과 그 말은 사실이었도다!! 보아라! 이 인싸들의 플레이를!! 맥주를 들이키며 페달을 열심히 구르시며 2050년을 살고 계시는 이분들을!!!!!! 그리고 프라하 와서 안먹고 가면 한국 와서 떡볶이 안먹고 가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이 뜨르들로를!!!! 굴뚝 빵이라길래 모양이 굴뚝 빵인줄 알았는데 진짜 굴뚝에서 굽는것 마냥 검은 재가 다 달라붙는 이 뜨르들로를!!!!! 예? .. 빵 구우시는 분이 저 꼬챙이를 이리저리 돌리시며 피토하실 것 같은 기침을 하실 때, 밑에 깔린 숯의 재가 나발리며 뜨르들로의 위에 안착할 때에!! 나는!! 이것을 먹지 않겠다고!!! 결단을 내려야 했었다!!! 내가 죄인이다 내가!! 내가!!!!! 글을 쓰는 지금도 콧구멍 너머로 훈연 향기가 나는 내가!!!! 내가 대역 죄인이란 말이드아아아아!!!!!! 공지합니다. 바츨라프 광장에 있는 뜨르들로는 드시지 마세요. 두번 말합니다. 드시지 마세요. 이거 한입 하고 바로 그자리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만큼 실망한 우리는 나중에 지대로된 뜨르들로를 먹어보고 비록 한입 먹었음에도 차오르는 분노에 몸이 부덜부덜 떨렸다. 특히 배고플 때 이런거 먹으니까 진짜 화딱지가..하.. 후... 그래서 어떻게했냐? 지옥 참마도를 꺼내다가 흑맥주에 꼴레뇨 썰으러 갔습죠!!! 여어어기는 진짜 몸에다가 입을 한 7개 붙여다가 “꼭 흑맥주랑 꼴레뇨는 이집가서 드세요 “하고 각각 10번씩 말하게 시키고 싶을 정도로 진짜 너무너무너무 맛있는 곳이었습니다... 바로 코젤다크 직영점인 “Kozlovna Apropos” 입니다! (저는 이 맛을 도저히 못잊겠어서 넷째날 또 먹으러 갔는데 이날따라 꼴레뇨가 진짜 맛있게 된 거 더라구요.. 그렇다고 넷째날 먹은 꼴레뇨는 최악이었냐? 그건 아닙니당! 근데 첫날에 비해 조금 껍질이 질기고 딱딱했어요! 가능 하다면 종업원 분께 크리스피, 벗 텐더 플리즈 하고 말씀해 보시면 아마 첫날 제가 먹은 맛으로 드실 수 있으실까요 ㅠ? 진짜 이맛 너무 나누고 싶은데!!) 사실 맛보다 더 먼저 놀란건, 싼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쌀 줄은 몰랐던 물가였다. 거짓말 안치고 왠만한 성인 남성 얼굴만한 꼴레뇨랑 흑맥주 큰거 두잔, 필스너 작은거 한잔 먹는데 둘이 20유로? 정도 냈다. 진짜 미친 가격....어느새 족발이 고급음식이 되어버린 우리나라 물가때매 서운한 이마음 꼴레뇨로 달래고 가 봅니다.. 겉바속촉의 정석인 꼴레뇨,,! 넘후 부드러운 것의 부작용으로 많이 먹다 보면 살짝 느끼함을 느낄 수 있다. 이때 이제 흑맥주로 호로롯 입가심을 해주면 진짜 천국을 느낄 수 있다. 사실 나는 흑맥주를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라 흑맥주가 살짝 아킬레스건으로 다가왔는데 왠걸!! 한잔을 다 비워내는 동안 “우리 잘못 시켰나? 우리 흑맥주 시킨거 맞아??”를 귀찮을 정도로 물었다.(아니 나는 너무 신기해가지구,,) 진짜 인생 맥주다. 인생 맥주. 앞으로도 이거보다 맛있는 맥주는 못찾아 낼 것이라 확ㅋ신ㅋ 그렇게 신기해서 한입, 맛있어서 두입, 왈칵왈칵 마시다 보니 한잔을 홀라당 다 비우고 아쉬워 필스너 작은잔을 하나 더 시켰다. 꼴레뇨 본연의 맛을 본 후 겨자 소스와 절인 양배추랑 같이 먹어보니 아~ 역시 느끼한건 꼴레뇨 잘못이 아니라 내잘못이지. 꼴레뇨는 잘못이 없지. 하고 때찌 때찌 하며 접시를 싹싹 비웠다. 한참을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남아있는 꼴레뇨의 자비로움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포장을 부탁했고 마지막까지 포장 봉투에 장미를 넣어주며 빠름+친절함+멋있음(?)의 삼박자를 자진모리 장단으로 맞춰주신 서버 분께 기쁜 맘으로 팁을 드리고 가게를 나섰다. 실컷 배부르게 먹고 더이상은 안들어간다고 포장까지 부탁해놓고 막상 집에 가려니 서운해서 디저트 배가 따로 있는 것은 과학임을 어필하며 근처 마트에 가서 맥주 두캔과 과자를 샀다. 아니~ 제가 아니라~ 배에 있는 먹순이가 먹고싶다 해서~ 헤헤~ 해 떨어지니 제법 쌀쌀해진 체코의 밤공기를 들이마시다 코피날뻔한 것을 겨우 막고 역으로 향했다. 조금 걸어 도착한 역에서 전철 열심히 타고 또 버스 열심히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낮이랑은 또 다른 분위기. 카운터 옆에 작은 바에서 앳되보이는 남학생들이 나름 재미있게 저녁을 즐기는 것을 보고 우리도 나중에 한번 가보자! 하고 엘레베이터에 올랐다. 방에 들어서자 몸이 녹는 기분에 아까 분명히 잤는데도 지금 누우면 30초만에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노곤함에 씻고 나와서 맥주타임을 갖고 내일을 준비했다! 버벅 대긴 했지만, 나름 즐길 것 다 잘 즐기고 느낄 것 다 느끼고 온 첫날 맛보기 여행.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첫날 같아서 행복에 젖었다. 이제 맛은 다 보았으니 본격적으로 프라하를 누려야지!! 또 만나요! A bientot!
‘중국파’가 득세하는 혼다의 속사정
하치고 사장과 부사장 쿠라이시는 입사동기 중국시장 총괄했던 '중국파'...인사권 장악 주류였던 북미시장파의 불만 표출 등 위기 # 창업가문이 경영하지 않는 혼다 일본 자동차 메이커 혼다(혼다기연공업:本田技研工業)는 창업 가문이 경영을 하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그게 전통이었다.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65세(1973년)에 용퇴했다. 그는 회사에 혼다(本田) 성을 가진 친인척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했다. 혼다 소이치로가 후계자로 뽑은 사람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45세에 불과한 가와시마 기요시(河島清好)라는 사람이 경영을 이어 받았던 것.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를 포함한 혼다의 사장 계보는 아래와 같다. ᐅ초대 사장 (한자명과 재직 기간)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1948~1973) ᐅ2대 사장 가와시마 기요시(河島清好:1973~1983) ᐅ3대 사장 구메 타다시(久米是志:1983~1990) ᐅ4대사장 카와모토 노부히코(川本信彦:1990~1998) ᐅ5대 사장 요시노 히로유키(吉野浩行:1998~2003) ᐅ6대 사장 후쿠이 다케오(福井威夫:2003~2009) ᐅ7대 사장 이토 다카노부(伊東孝紳:2009~2015) ᐅ8대 사장 하치고 다카히로(八郷隆弘:2015~현재) 오너 자녀들이 회사에 발을 못 붙이는 전통을 이어온 혼다는 그동안 별다른 잡음 없이 경영이 유지돼 왔다. 하지만 8대 사장 하치고 다카히로가 취임하고부터는 내부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과거 혼다는 주력차 피트의 대규모 리콜 사태를 겪었다. 당시 경영자가 7대 사장인 이토 다카노부(伊東孝紳)다. 이토 사장은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바통을 이어받은 이가 현재 사장인 하치고 다카히로다. <혼다 사장 하치고 다카히로(八郷隆弘)와 부사장 쿠라이시 세이지(倉石誠司). 두 사람은 혼다의 중국시장을 총괄한 '중국파'다. photo=혼다 홈페이지> # 입사동기가 나란히 사장, 부사장 혼다는 현재 입사 동기가 나란히 사장, 부사장을 맡고 있다. 전 세계 글로벌기업 어디를 봐도 찾기 어려운 희귀한 케이스다. 현사장 하치고 다카히로(八郷隆弘)와 부사장 쿠라이시 세이지(倉石誠司)는 1982년 혼다에 함께 입사했다. 하치고가 1959년생, 쿠라이시는 1958년생이다. 둘은 혼다의 중국시장을 총괄했던 대표적인 ‘중국파’다. 승진은 ‘앞서거니 뒤서거니’했다. 2013년엔 쿠라이시가 하치고의 상사였다. 쿠라이시가 중국 총괄 사장(유한공사총경리), 하치고가 총괄 부사장(유한공사부총경리)을 맡았다. 그러다 2014년엔 똑같이 상무로 승진했다. 이후엔 상황이 역전됐다. 하치고는 2015년 전무에 이어 같은 해 사장에 올랐다. 쿠라이시도 2016년 전무로 승진, 곧바로 부사장 자리에 오르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 하치고 사장은 2017년 4월, 최고경영책임자(CEO)까지 맡게 됐다. 쿠라이시 부사장 역시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취임해 2인자 지위를 굳혔다. 입사 동기생에다 ‘중국파’인 두 사람이 인사권을 장악하게 된 셈이다. # 전무가 회장으로 기용 재밌는 인사 올해 2월엔 혼다에 재미있는 인사가 났다. 전무가 회장으로 승진 기용된 것. 미코시바 도시아키(神子柴寿昭) 전무는 2016년부터 공석이었던 회장을 맡게 되었다. 미코시바는 1957년생으로, 사장과 부사장보다 연장자다. 입사(1980년)도 두 해 더 빠르다. 미코시바 회장 역시 중국파로 분류된다. 2014년 6월까지 중국 합자회사의 총경리(사장)를 맡았다. 이후 그는 북미혼다와 아메리칸혼다 사장 겸 CEO를 지냈다. 사실 하치고 사장 이전까지 혼다 경영진의 주축은 북미담당 출신자들이었다. 그런데 하치고가 사장에 오르면서 무게중심이 중국파로 기울었다. 미코시바의 회장 기용을 두고 이런 목소리(혼다 전직 임원)도 있다. “(실은 부사장인) 쿠라이시가 회장이 되는 안도 있었지만, 이러면 점점 더 미국파의 불만이 심해지기 때문에 그 절충안으로 미국과 중국 모두를 경험한 미코시바 도시아키가 회장에 선임된 것이 아니겠느냐.” # 혼다 최초의 여성 임원도 ‘중국파’ 하치고 사장 체제에서는 2016년 혼다 최초의 여성 임원도 탄생했다. 주인공은 스즈키 아사코(鈴木麻子, 55)로, 그 역시 ‘중국파’로 통한다. 1987년 혼다에 입사한 스즈키 아사코는 해외 영업을 오래 했다. 2014년부터는 동풍혼다자동차유한공사(東風本田汽車有限公司) 총경리(사장)을 맡았다. 동풍혼다는 중국 동풍자동차그룹과의 합자회시다. 이처럼 중국 시장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출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주류였던 ‘미국파’와의 대립과 갈등이 깊어졌다. 게다가 실적이 떨어지고 평균 연령이 높다는 점도 혼다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 “'기술 혼다'에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혼다가 5월 8일 발표한 2019년 3월기 결산 매출액은 전분기 대비 3.4% 증가한 15조 8886 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영업 이익은 12.9% 감소한 7263억 엔으로 집계됐다. 영업 이익률은 4.6%로, 도요타(8.2%)나 경차 중심인 스즈키(8.4 %)보다 훨씬 낮았다. 혼다의 평균 연령은 45세로, 39세인 토요타보다 고령화 집단이다.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인 경제저널리스트 이노우에 히사오(井上久男)는 혼다의 이런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일본 시사매체 주간현대 6월 20일)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가 구축한 ‘기술의 혼다’에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本田宗一郎が築き上げた「技術のホンダ」に危機が忍び寄っている)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12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5장. 야생. 그곳의 이름은 아프리카 -35
역시 월요일은 힘드네요 ㅎㅎ 그럼 오늘도 계속가볼까요! 오늘은 그 유명한 잠베지강 레프팅을 하기로했다! 어제 예약해둔대로 아침에 우리를 데리러 사람들이 왔다. 그렇게 차를 타고 탑승지로 이동한다. 우리는 모두 4개조로 나눠서(영상을 팔기위해서인지 우리끼리 앉게는 안했다. 그래봐야 어차피 하나로만 찍으니 사고싶은사람은 하나만 사서 복사하는걸 추천) 배를 탔다. 세계 최고난이도를 자랑하는 이 래프팅은 스릴감이 엄청나다.(근데 물이 깨끗한건 아니라 친구는 두드러기가났다고...!) 속도도 속도지만 물살이 너무 격렬하다. 우리배는 다행히 남자가 많아서(매우 무거워서) 전복된적은 없지만 다른 배는 몇번이고 전복되어서 건져주기 바빴다. 거의 3시간 이상 배를 타고 내려가는데 지루할새없이 지나간다. 액티비티를 좋아한다면 꼭 해보는걸 추천한다. 아쉽게도 이때는 액션캠이 없어서 촬영한게 없다. 이 여행을 계기로 다음여행부터는 꼭 액션캠을 챙긴다. 아침부터 래프팅을 하고나니 매우 배가 고프다. 그래서 마무리지점에서 식사를 제공하는데 그렇게 꿀맛일수가없다. (열심히 노젓고 물먹고했으니 지칠만하다) 우리가 식사를 했던 움막. 움막 앞에는 직접 고기를 구워서 우리에게 준다. 움막에서의 뷰. 저 밑에 강에서 래프팅을했다. 그리고 밥먹기위해 노와 구명조끼를 들고 산을 올랐다. 다시생각해보니 엄청난 강행군이잖아...? 밥을 다먹고 나니 다시 숙소로 데려다준다. 그냥 숙소에 들어가 쉬려니 아쉬워서 번지점프하는데로 이동해본다. 목적지는 빅토리어 폭포 다리. 이곳 한중간에는 번지점프를 할수있는 장치가 있다. 다리는 잠비아와 짐바브웨 국경 한중간이라 다리를 가기 위해서는 출입국 신고를 해야한다. 약식으로 간단히 여권확인만 하기도 한다. 저 사이에 튀어나온곳에서 번지점프를 한다.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은 절경이다. 건기라 아쉽게도 물줄기가 많지는 않았다. 우기에는 저 절벽 전체에서 물이 쏟아진다고한다. 다리에서 걸어서 짐바브웨 경계로 걸어가는길. 입국장이다. 가끔 짐검사도 하기도하는데 우리는 짐이랄게없어서 무사히 통과. 오늘은 래프팅도하고 많이 걸어다녀서 피곤하다. 그래서 플리마켓에서 쇼핑만하고 숙소로 이동해서 쉬기로한다. 다음날 아침. 오늘은 다시 하라레로 돌아가는 날이라 서둘러 움직인다. 나랑 같이 비행기를 타고 가기로한 사람은 아직 시간이 많아 여유롭지만 버스를 타고가기로 한팀의 경우 점심때 이동하기로 해서 바쁘다. 어제 번지점프를 못해 이른아침에 번지점프장소로 이동한다. 역시 풍경은 끝내준다. 어제 이곳을 지나갔다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근데 아래에 악어가 배를 까고 누워있다. 진짜 악어가 살긴 하는구나... 이제 제일 중요한 빅토리아 폭포로 이동하자. 입구에는 우리를 환영하는 표지판이있다. 사진 한장 남겨야지. 저 멀리 폭포가 보인다. 건기인데도 장관이다. 우기때는 저것보다 더 많이 떨어진다니 놀라울따름이다. 혹시 몰라 우비를 쓰고 걸어다니는데 몇몇구간빼고는 물이 튀지않았다. 그래도 압도적인건 변하지않는다. 나이아가라를 처음 봤을때도 놀라웠는데 규모는 그 2배는 되어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긴 폭포답게 낙차는 어마어마하다. 버스를 타고(24시간 걸린단다...!) 가는 팀을 배웅하고 간단히 점심을 먹고 이젠 잠비아로 넘어간다. 다시 빅토리아 폭포 다리를 건너 잠비아 국경으로 들어간다. 생에 처음으로 걸어서 국경을 넘는 순간이다. 느낌이 신기하다. 우리는 항상 국경을 넘기위해 비행기를 타야했는데 이곳은 걸어서 넘기도하고... 언젠가 그런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국경을 통과하면 바로 앞에 잠비아방면 빅토리아폭포 매표소가있다. 매표소를 통과하면 기념품샵이 늘어서있다. 나도 이곳까지 보고가면 시간이 빠듯할듯하니 기념품은 구경부터하고 사기로 한다. 산길을 지나가다보니 어렴풋이 폭포가보인다. 수량은 짐바브웨방면에서 보는게 더 좋은듯하다. 잠비아쪽에는 원숭이들이 많다. 짐도 많이 털린다고하니 주의하자. 원숭이가 길을막고있다. 귀여운녀석들 풍광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벤치에앉아 멍하니 바라만보고있었다. 저 멀리 왼쪽편에 보이는곳이 아까 짐바브웨쪽에서 걸었던 곳이다. 무지개다! 이곳은 항상 무지개가 떠있다고 한다. 운좋은 날은 쌍무지개가 보이기도 한단다. 다시 짐바브웨 국경으로 돌아와 택시를 타고 빅토리아 폭포 공항으로 이동한다. 작은 공항이지만 사람이 많다. 다들 비슷한 시간대였는지 익숙한 얼굴이 많이보인다. 하라레공항까지 순식간에 도착한다. 저멀리 해가지기시작한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한다. 그리고 잠시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고 제안을 받는다. 그렇게 동서양 할것없이 단체로 밥먹으로 시내로 이동한다. 아프리카에서의 마지막밤이 이렇게 흘러간다. (그리고 늦은 밤 버스를 타고 간 팀이 합류하게 되고 인사만하고 내일 아침을 기약하고 잠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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