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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중국어 2편

드라마에서 자주 쓰는 상황별 중국어!
"저는 그녀에 대해 진지합니다."
[꽤, 매우] 중국어로 알아볼까요? ^^

중국어가 대세다! 중국어 강의 무료로 보기!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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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소통해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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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너무 예쁘네요! 소통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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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애니, 갈수록 답이 없음
제목을 솔직히 뭐로 해야 할까 생각보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글은 부담없이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주의라 사실은 써야 할 내용에 앞서서 제목 짓기가 어려운 모순된 상황이 연출 되었네요. 결론 부터 말씀드리면 한국 애니 산업은 가능성은 있지만 미래는 이대로 가면 매우 암울하다고 생각하는 취지에서 여러가지 주관적인 생각과 해결 실마리(?) 정도 화두로 남겨 놓고 싶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애니메이션 업계의 직접적인 종사자는 아니지만 간접적인 종사자로 실제로 관련 회사에서 여러가지 잡다한 일들을 심심풀이 삼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래 내용은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며, 한국 애니 업계에 계신 여러 선배님들이 보신다면 거북하실수도 있겠지만, ... 그런 분들은 개인적으로 연락주세요 ^^ㅋㅋ [ 이 부분 이미지가 스포인거 같아서 지웠는데 ㅋㅋ 블록이 날라갔네요 ㅎㅎ 다음부턴 주의를 해야겠습니다 ] # 중국 만화, 애니메이션이 몰려온다 중국의 웹툰은 구조가 인쇄를 하면 바로 만화책으로 발간할 수 있는 구조 입니다. 놀라운건 작품수도 많고 장르도 다양하지만 무엇보다 그 퀄리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 입니다. 대사를 빼고 보면 이게 일본 만화인지 중국건지 구분이 안갈 정도이고 애니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중국은 현재 고용창출과 문화정책육성산업에 대한 일환으로 엄청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박람회를 떠나서 실질적인 교육 방식의 세미나, 강연, 고수들과의 만남 조직적으로 주선하며, 거기에 세재 지원, 직/간접 투자, 매칭 투자등으로 분야를 계속 넓혀가고 있습니다. 최근에 나오는 작품들이나 중국의 선진 만화, 애니 회사들은 퀄리티와 작품성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수년내에 일본 애니에 이어서 중국 애니들을 계속 보고 문화적인 잠식이 이루어질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일본, 한국등과 교류하여 다양한 IP로, 컨텐츠로 무장하고 여기에 자본력과 역시나 인해전술(인재)을 겸비해 해외 시장을 넘보고 있는거죠. 실제로 미국의 수많은 작품들에는 중국 기업들의 문화 투자가 줄을 잊고 있습니다. # 한국 애니 업계 현실 일본의 환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고질적인 외주 관행에 힘들어하는 한국 업체들은 명목상으로 계속해서 일본 업체들과 관계를 맺어 오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사실 중국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는 것이 지금 애니메이션 비지니스의 현실입니다. 그게 지금은 그나마 답인것도 확실합니다(투자와 시장측면에서). 하지만 그나마 합작 모델도 기실 모두 외주의 형식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이것도 일반적인 대부분의 업체들에게는 요원한 이야기 입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창의적인 부분의 투자를 더 어려워지고, 하청업체의 현실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지만, 다행이도 정말 몇몇 업체들의 기술력, 기획력, 창의력은 국내외에서도 인정받아 승승장구 하고 있습니다. # 판도가 기존의 과거 다른 산업과 비슷 수년전의 게임업계등이 그랬던것처럼 일본과 중국에 끼어서 한번 반짝하고 지나갔듯이 웹툰이나 애니 업계도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가 지금은 강세이고 한류 영향 때문에 대세의 경향이 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그러저럭 될지는 의문입니다. 결론은 우수 IP 발굴, 즉 상대적으로 투자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웹툰이나 만화 시장이 한국에서 불붙어야 합니다. 국내에서 가장 부족한 컨텐츠의 경쟁력은 기본적으로 작가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많은 투자와 관심, 격려가 있어야 합니다. 아직까지 기획이나 시나리오 창작에 대해서는 능력을 인정 받는게 사실입니다. 이 부분도 앞서 말씀드리면 어려운 상황인데 그나마 인정 받으니 다행이지요. 그치만 이것도 몇년이 지나면 역전 되겠죠? 그래서 컨텐츠 깊이와 양으로 볼때 벤치마킹이 쉽고 용이한 일본이나 외국의 좋은 작품들을 널리 확인해야 합니다. 무조건 우리가 다 하는게 좋은게 아니죠. 같이 모색해서 시너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문화의 힘은 대단합니다. 여러분 만화나 애니, 게임등 많이 보고 많이 공감해 주세요~
현재 홍콩을 바라본 한 대학생의 외침
길기는 하지만 너무 명문이라 생각되어서 모두 가져옵니다 마땅히 시간이 나지 않는 분들은 클립해서 나중에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연대숲 #66147번째 외침: 콘스탄티노폴리스 1453, 광주 1980, 그리고 홍콩 2019. 인간은 현명하다. 그래서 가망이 있는 싸움인지 아닌지를 쉽게 안다. 인간은 어리석다. 그래서 가망이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죽으러 나간다. 인간은 고결하다. 그래서 가망이 없는 싸움에서 결국 승리한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한때 지중해를 빙 둘러쌌던 보편제국 로마의 마지막 조각, 그리스 끝자락의 ‘그리스도를 믿는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는 이제 십만 명이 넘는 투르크의 포위군과 거대한 대포에 둘러싸였다. 이에 맞선 방어군은 7000명 미만. 교황청과 베네치아가 보내 준 극소수의 병력과 한 줌의 의용군을 제외하면, 서유럽의 수많은 나라 중 단 하나도 도시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살고 싶으면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야 했다. 50여일의 처절한 공방전 후 다가온 투르크군의 총공격 전날 밤, 그리스 혈통의 마지막 로마인들은 살기 위해 성문을 열고 메카를 향해 절하는 대신 하기아 소피아의 그리스도 모자이크 아래에서 밤새 기도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음을 그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다음 날 도시는 함락되었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동방 정교회 신앙을 위해 가망 없는 싸움에서 싸우다 죽었다. 그렇게 이천년의 로마가 끝났다. 1980년, 광주. 도시는 계엄군의 탱크와 장갑차에 둘러싸였다. 학생들과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들로 구성되었던 시민군의 무장은 경찰서 무기고에서 얻은 소총 수준. 도시의 모든 통신시설은 차단되었고, 당시 평시작전권까지 가지고 있던 주한미군은 계엄군의 병력이동을 알면서도 저지하지 않았다. 그 어떤 서방 선진국들도 적극적으로 개도국 한국의 한 지방도시에 대한 군사작전에 개입하지 않았고, 도시 밖에는 빨갱이들과 북괴의 특수부대가 도시를 점령했다는 거짓 뉴스가 살포된다. 이런 사황에서 계엄군과 맞서면 죽을 것이란 것은 시민군 모두가 알고 있었다. 특히 군필자들은 더 확실히 다가오는 죽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탱크의 궤도 소리가 들려오던 전남도청의 마지막 밤, 시민군들은 도망치는 대신 애국가를 불렀다. 민간인들이 공수부대를 당해낼 수 있을 턱이 없었으므로, 광주시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가망 없는 싸움에서 공화국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저항권을 행사하다 죽었다. 그렇게 1980년 서울의 봄은 광주의 피바다로 끝이 났다. 2019년, 홍콩. 손바닥만한 도시는 인민해방군 특수부대에게 둘러싸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와 광주와는 달리, 이번에는 도시 밖의 사람들도 스마트폰으로 도시의 소식을 듣는다. 한 남자 대학생이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으며 열여섯 살 소녀가 경찰들에게 강간당했고 한 여자 중학생은 바다에서 알몸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2019년’에 들려온다. 시위대는 진압군에게 양궁으로 화살을 쏘고, 진압군은 시위대에게 총으로 실탄을 쏜다. 10대와 20대가 주축을 이루는 시위대는 이제 각 대학의 캠퍼스에 갇혔고, 마오쩌둥 꿈나무 시진핑은 전 세계에 강경진압도 불사하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영중공동선언과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정으로 보장되는 “주권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치권은 홍콩특별행정구가 각각 행사한다”는 일국양제의 약속은 시진핑의 말 한마디에 휴지조각이 되었다. 보아하니 지난 학기 국제법 교과서에 쓰인 문장은 실로 참되다. “국제법은 법이 아니다.” 이처럼 베이징의 결단은 명징하다. 홍콩에서 밀린다면, 타이완에서, 티베트에서, 신장위구르에서, 광시좡족 자치구에서 똑같이 밀릴 것이고 그 순간 중화인민공화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시진핑에게는 1989년 천안문을 소규모로 재현하는 한이 있더라도,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제재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홍콩 시위를 진압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는 탱크를 구룡반도로 돌진시킬 정도로 멍청한 자가 아니므로, 유혈사태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시위를 분쇄하려 하겠지만. 중국 본토를 제외한 전 세계가 홍콩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나설 수 있는 그 누구도 감히 나서지 않는다. 워싱턴의 천자는 민주당의 탄핵 카드와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빨간불이 켜진 재선 상황에서 중국과 국력을 기울여야 할 정도의 극단적인 갈등을 빚을 여력이 없다. 중영공동선언에 의해 홍콩의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개입할 의무가 있는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외무장관 시절 보여주던 보리스의 현란한 막말실력은 감히 베이징을 향하지 않는다. 유럽과 이혼중인 이빨 빠진 사자 대영제국은 이제 자신의 손을 떠난 도시 하나 때문에 굴기하는 중국과 맞설 의지도 힘도 없다. 모스크바의 차르는 그의 신민들이 홍콩을 따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가 홍콩을 위해 힘을 써 줄 이유 같은 건 없다. 예배당과 성당에 경찰이 난입하여 시위대를 끌어내는 상황 속에서, 즉위 이래 평화를 위해 싸워온 로마의 프란치스코도 이번에는 중국을 소리높여 강하게 비난하지 못한다. 수십 년의 갈등 끝에 중국과 바티칸의 주교서임권 정교협약 물밑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라 있는 상황에서, 그 어떤 전임자들보다 미디어와 도덕성이라는 소프트파워를 잘 다뤄온 교황이 적극적으로 홍콩 편을 든다면, 안 그래도 그리스도교를 체제의 위험분자로 인식해 탄압하는 중국 정부에 의해 본토의 수천만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들은 지금보다 더한 극도의 박해에 직면할 테니까 말이다. 1980년 광주를 두 눈으로 지켜본 ‘인권변호사’ 출신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2016년 사드배치로 인한 경제보복의 기억이 생생한 상황에서, 한국에게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도시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거대한 중국과 맞서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자살행위일 테니까. 그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홍콩에 대한 그의 침묵을 도덕적 이유가 아니라 현실정치적 이유로 욕하기는 어렵다. 여당도 제 1 야당도 제 2 야당도 이 지점에 있어서는 꿀 먹은 벙어리일 수밖에. 이렇게 전 세계가 보고 있지만, 홍콩의 시위대를 위해 중국과 맞서 줄 세력은 없다. 시진핑은 시위대를 탱크로 밀어버리지는 못하겠지만 이미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실탄사격 개시 명령을 내려놓았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슬프고 두렵고 안타깝지만 시위대는 아마 이 싸움에서 이기기 힘들 것이다. 며칠 안으로 홍콩 각 대학의 마지막 저항은 진압되고, 추가적인 사망자가 나올 것이며, 중국은 언제나 그랬듯이 적당히 유화적인 조치와 시위대 사면이라는 당근을 통해 세계에 변명하리라. 아마 홍콩에서 지금 시위하는 10대 소녀 소년들과 20대 남녀 대학생들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거대한 괴물 중화인민공화국을, 자신들이 ‘지금’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민주주의를 공기처럼 누리는 우리도 그들만큼 잘 알고 있다. 홍콩의 우리 또래, 우리 동생 또래들이 왜 가망이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서고 캠퍼스에서 농성하는지를. 그렇다면, 홍콩의 시위는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일까? ‘고결한 희생’ 일 뿐일까? 결국 홍콩의 민주주의는 인민해방군의 군화발에 무너질까?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이스탄불로 바뀌어, 영원히 터키의 수중에 남았다. 하지만 함락으로부터 4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기억하는 그리스의 동방 정교회 신도들은 ‘자유가 아닌 죽음을!’을 외치며 가슴에 도시의 회복을 품고 독립운동을 벌여 투르크와 싸웠다. 이번에는 바이런을 필두로 유럽의 열강들이 달려왔고, 그리스인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되찾지 못했으나 자유는 되찾았다. 아직도 그리스에서는 이스탄불을 콘스탄티노폴리라고 부르며, 동방 정교회의 세계총대주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라고 불린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그렇게 이름 그대로 그리스인들에게 영원히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의 도시, 그들의 마음 속 도시로 남았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학살극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1980년을 잊지 않았다. 그 후 7년 동안, 수많은 대학생들은 독재정권과 지속적으로 가망 없어 보이는 싸움을 했다. 대공분실에서 코로 설렁탕을 마셔야 했고, 최루탄 연기를 마셔야 했으며, 고문으로 장애를 얻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1980년 광주에서의 싸움은 전남도청의 피바다로 끝난 것이 아니라 1987년 백양로의 이한열의 피로 끝났다. 그 피로써 공화국은 다시 민주주의와 자유를 얻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광주는 빛고을이라는 이름 그대로, 우리에게 자유의 빛을 다시 밝혀 주었다. 7. 나는 하느님을 믿는 만큼이나 기적을 믿는다. 그래서 홍콩 시위대가 승리하기를, 더 이상 홍콩의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기를, 중화인민공화국이 무력진압 대신 타협과 협상을 선택하기를,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정말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2019년의 홍콩 시위가 진압당한다고 할지라도, 소녀들과 소년들, 남녀 대학생들이 인민해방군의 군화에 짓밟히고 체포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끝은 아닐 것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가 그랬고 광주가 그랬듯이, 그것이 홍콩의 끝은 아닐 것이다. 만약 중국이 홍콩을 짓밟는다면, 온 세상이 ‘중화인민공화국’이 빛나는 중화문명의 계승자도, 인민을 위한 나라도, 공동선을 추구하는 공화국도 아닌 시황제의 진나라의 21세기 복제판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고, 중국 대륙에서 중국 공산당에 의심을 품는 모두의 마음 속에 홍콩이 흘린 피와 눈물이 영원이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기억했고, 한국인들이 광주를 기억했듯. 그리고 그 기억이 결국 절망적인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음을 우리는 보았다. 그렇게 2019년의 홍콩에서 벌어지는 이 절망적인 싸움을 통해, 온 세상은 ‘빛나는 중화 문명’의 계승자들이 바다를 등지고 자유와 민주를 위해 싸울 때 얼마나 고결한 향기를 뿜는지를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진핑이 아니라 마오쩌둥이 살아돌아와도, 폭력과 살육의 악취로 그 향기를 가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홍콩 사람들도 결국 가망 없는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다. 8. 홍콩은 향항, 향기로운 항구라는 뜻이다. ------------------------------------------------------------------------------ 中华人民共和国宪法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第三十三条  ....... 国家尊重和保障人权 제33조 ........국가는 인권을 존중시하고 보장한다. 第三十五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有言论、出版、集会、结社、游行、示威的自由。 제35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언론, 출판, 집합, 결사, 행진, 시위의 자유를 가진다. 第三十七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的人身自由不受侵犯。任何公民,非经人民检察院批准或者决定或者人民法院决定,并由公安机关执行,不受逮捕。禁止非法拘禁和以其他方法非法剥夺或者限制公民的人身自由,禁止非法搜查公民的身体。 제37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의 인신의 자유는 침해받지 아니한다. 어떠한 공민도 인민검찰원의 승인이나 결정 또는 인민법원의 결정을 거친 후 공안기관의 집행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되지 아니한다. 불법구금 및 기타 방법으로 공민의 인신자유를 불법으로 박탈 또는 제한하는 것을 금지하며 공민의 신체를 불법으로 수색하는 것을 금지한다. 第三十八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的人格尊严不受侵犯。禁止用任何方法对公民进行侮辱、诽谤和诬告陷害。 제38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인격의 존엄성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공민에 대하여 모욕, 비방 및 무고, 모함하는 것을 금지한다.
9만 살 차이나는 연상연하 커플??
사랑이란 본래 도덕을 논할 수도, 옳고 그름을 나눌 수도 없는 것. (...)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최선을 다해 모든 마음을 쏟는 거예요. 남들 앞에서는 사랑하고 뒤에서는 사랑하지 않고, 절대 그럴 수 없어요.” 당칠공자가 쓴, <삼생삼세 십리도화> 중에서 . . . 수많은 신들이 쇠락하고 몇몇 신족만이 평화롭게 사는 가운데, 오만 살의 철부지 신선 백천은 수련을 위해 남장을 하고 ‘사음’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의 신 묵연의 제자로 들어간다. 사음은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이경에게 마음을 내어주지만 이내 버림받는다. 그러고는 자신의 겁운을 대신 겪은 후 큰 위기에 빠진 스승 묵연을 돕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사음의 이름을 버리고 원래의 신분 백천으로 돌아가 묵연을 보살피길 칠만여 년. 신선의 기억과 능력을 잃고 속계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외로이 살아가야 하는 또다른 겁운이 백천에게 닥친다. 그러다 천족의 야화를 만나고, 그로부터 ‘소소’라는 이름을 얻어 신선계 최상위 계층인 천족과 속인의 사랑이라는,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랑은 오해와 모략에 휘말린다. 삼백 년 후, 야화는 백천을 다시 만난다. 그녀는 십사만 살의 상신으로, 그는 오만 살의 천군 태자로. 속인 시절의 기억을 모두 잃은 백천에게 야화는 매번 새로이, 하지만 찬란하고 올곧게 구애하고, 둘은 처음처럼 사랑에 빠지지만 운명은 이들의 사랑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여자 주인공 백천은 십사만 살, 남자 주인공 야화는 오만 살. 둘의 나이 차는 구만 살이다. 연상연하 커플이라고 하기엔 “연배로는 고모뻘, 연수로는 조상뻘이고”, “오만 살밖에 되지 않은 옥 같은 청년이 십사만 살이나 되는 노인과 결혼해야 한다”는 설정이다. 이러한 『삼생삼세 십리도화』속 시간 설정은 얼핏 보면 호쾌한 중국적 상상력의 끝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실은 일반적인 연애소설 문법에서 벗어난 과감한 도전이다. 시한부 삶이나 짧은 만남 같은 시간적 제약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애절함을 극대화하는 것이 흔히 볼 수 있는 연애소설 서사라면, 『삼생삼세 십리도화』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신선’이고, 이들은 영원에 가까운 삶을 영위한다. 작가는 무한대로 늘어난 시간 속에 캐릭터를 놓아두고 계속해서 두 주인공을 시험에 들게 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과감한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시간’이라는 제한이 없다면 우리는 그 사랑에 얼마나 일관되고 진실하게 매달릴 수 있을까? 십사만 살의 나이. 삼생삼세, 세 번의―사음, 소소, 백천―삶 동안 각각 다른 신분으로 살며 산전수전을 겪은 여주인공 백천은 “나에 대한 마음이 아직은 깊지 않을 때 그만두는 게 좋을지도 몰라요. 내 나이가 되면 알 거예요. 이렇게 오래 살면 사랑이라는 것에 덤덤해지고 아무 흥미도 없게 된다는 것을”(268쪽) 이라 건조하게 말하기도 하며 “사랑의 나무가 있다면 내 나무는 몇 만 년이 지나도 꽃을 피우지 못하는 말라비틀어진 늙은 소철”(266쪽)이라는 둥, “거동도 굼뜬 상늙은이”(346쪽)를 자처한다. 반면 이런 백천의 눈에 고집불통 애송이 같은 야화는 “절절히 사랑하면서 오래 함께하면 좋겠군요”(267쪽)라든가 “당신 한 사람만 사랑해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269쪽)라고 일관되게 자신의 사랑을 고수하는 직진남이다. 이러한 야화의 ‘진심’에 꽉 닫혀 있던 건어물녀 백천의 마음은 조금씩 열려가는데…… <출판사 책 소개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