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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래미안 DMC 루센티아' 3.3㎡ 당 1746만원

▲ 래미안 DMC 루센티아의 견본주택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운니동 래미안갤러리. /김동우 기자

가을 분양시장이 본격 개막한 가운데 삼성물산이 가재울뉴타운의 마지막 분양단지인 '래미안 DMC 루센티아'의 견본주택을 개관했다. 이달부터 가점제 적용 등 개편된 청약제도가 시행되면서 지역별 커트라인에도 관심이 몰리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운니동 래미안갤러리에 마련된 '래미안 DMC 루센티아'의 견본주택을 찾았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견본주택 입구에는 이른 시간부터 많은 방문객들이 몰리며 긴 줄이 형성됐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대기부터 입장까지는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래미안 DMC 루센티아는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뉴타운 5구역을 재개발해 짓는 단지로 997가구 규모로 구성됐다. 일반분양 물량은 ▲59㎡ 63가구 ▲84㎡ 442가구 ▲114㎡ 12가구 등 총 517가구로 일반 분양분의 98%가 전용 85㎡ 이하 중소형 물량이다.
이 단지는 8·2 부동산 대책으로 개편된 청약제도가 처음으로 적용되는 분양단지이기도 하다. 청약제도가 바뀌고 가수요가 빠지면서 그동안의 청약열기가 이어지기 힘들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으나 개관 첫날부터 6000여명 이상이 입장하는 등 반응이 뜨거웠다는 설명이다. 특히 가점제에 유리한 중장년층 40대 이상 방문객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정부는 이달부터 분양에 들어가는 투기과열지구 내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에 대해 100% 가점제으로 당첨자를 결정하도록 했다. 가점제 만점은 84점(무주택기간 최고 32점, 통장 가입기간 최고 17점, 부양가족 최고 35점)이다. 부양가족 수는 가족 당 5점이 추가되고 무주택기간은 15년 이상이면 만점이다.
1순위 자격 요건도 바뀐다. 청약통장 가입 후 2년이 경과하고 서울지역 거주기간이 1년 이상이어야 청약 1순위(당해지역) 자격이 주어진다. 예비 당첨자도 모두 가점제 적용을 받는다. 만약 1순위 요건에 부합하지 않은 상황에서 1순위에 접수하면 부적격 당첨자가 돼 1년간 다른 청약 지원이 제한된다.
견본주택 내부 상담창구에서도 자신의 청약 1순위 요건을 확인하는 방문객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분양 관계자는 "자신이 청약 1순위에 해당하는지를 묻는 방문객들이 많았다"며 "서울에 1년 이상 거주해야 청약 1순위 대상이 되기 때문에 청약 전 반드시 조건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래미안 DMC 루센티아 당첨을 위해선 서울 거주자의 경우 최소 가점이 40점은 넘어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8월 인근에서 분양된 'DMC에코자이'의 가점제 당첨 커트라인은 48점이다.
래미안 DMC 루센티아는 또 한 아파트에 두 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부분임대형 특화평면(전용 84㎡ C·E 타입)'을 선보여 방문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부분임대형 옵션을 선택하면 현관문쪽 보조침실과 화장실을 다른 가구로 분리할 수 있다. 출입문과 주방, 욕실 등이 모두 2개로 나뉘는 만큼 임대인과 세입자의 독립된 생활이 보장된다.
인근에 명지대학교, 연세대학교 등 대학교가 다수 위치하고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는 물론 종로·광화문 등 서울 주요도심과도 인접해 있어 임대수요가 풍부한 만큼 주거와 동시에 임대 수익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평균 분양가는 3.3㎡ 당 1746만원으로 전용 84㎡ 분양가는 최저 5억3300만원에서 최대 6억4900만원이다. 지난 8월 분양한 'DMC 에코자이'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1866만원, 'DMC 파크뷰자이'가 3.3㎡당 2200만원대에 분양됐다는 것을 고려하면 저렴한 편이다. 분양가의 60%인 중도금 가운데 대출이 적용되는 40%는 이자후불제다.
청약일정은 오는 17일 특별공급을 시작으로 18일부터 1순위(당해지역), 20일부터 2순위 청약 접수를 진행된다. 당첨자 발표는 26일, 계약은 31일부터다. 예비당첨자는 일반분양 가구수의 40%를 선정한다.

메트로미디어=김동우 기자( dwk@metroseoul.co.kr)

기사출처=http://bit.ly/2yrdg9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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