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광동 헬카페 (HELL CAFE), 우연한 맛의 발견
커피를 좋아하고 대화를 즐기기에 카페를 자주 찾는다.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좀 여성적 취향이 있지 않은지 궁금해하는 지인들도 있지만, 다만 나는 일과 중 짧게라도 좋은 시간을 갖기 원할 뿐 이다. 그리고 이런 좋은 시간은 '맛'이 동반해야 온전히 완성된다. 그래서 커피 맛은 별론데 분위기만 좋은 카페는 나에겐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장소가 된다. 그래서 특정 카페에 대해 알기 전에는 길에서 만나는 카페에 들어가기가 꺼려진다. 일 얘기나 아는
카페가 없을 시에는 그냥 얘기하면 찾기 좋은 커피샵 체인이 오히려 괜찮은 선택이 된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골치 아플 필요가 없기 때문인다. 오버로스팅 한 원두나 교육도 잘 안된 알바들이 적당히 내린 커피가 역겨워도 이런 선택을 한다는 말이다. 얼마 전, 아직 여름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초 가을 밤에 이태원에서 저녁을 먹고, 같이 저녁을 먹은 이가 추천을 하여 보광동 헬카페를 찾아갔다. 처음에 추천을 받았을 때 솔직히 그리 믿지는 않았다. 남의 입 맛을 믿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이게 내가 짧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 습득한 몇 가지 않되는 지식 중 하나이다. 용산구청 인근 이태원 뒷 골목에서 요리 조리 구불구불한 길들을 따라 걸으니 이윽고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 정면 모습은 보기 좋았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이미 예전 홍대 카페들에서 수 없이 보아왔고, 그리고 그런 카페에서 '엣 퇴퇴~~ @#$&@#$@'를 수 없이 한 경험이 있기에 그 어떤 인상을 주진 않았다. 아니, 그 비주얼의 인상을 거부하고 있었다가 맞는 표현이다. 그러나 카페 내부로 발을 들여 놓았을 땐 이 카페가 왜 유명한 이유를 감지할 수 있었다. 좋은 커피를 만드는 곳은 냄새 또한 남다르다. 진하다라고 표현을 할 수 있지만, 좋은 커피의 향은 그 무게감이 들어난다. 헬카페에서 그런 향을 맡았다. 날 데리고 간 친구가 이 집은 로스팅을 직접한다고 했다. 뭐 그건 그리 큰 +가 되지 않는다. 커피는 쿨론 로스팅이 중요하지만, 어떻게 만들어 내는 가가 그 맛을 결정한다. 아무리 로스팅을 잘 한 커피라도 커피 만드는 기술이 모자라면 그 맛은 형편없어진다. 그러나 향이 좋아 커피 맛에 대해 기대는 하고 있었다. 카운터에 많은 커피가 메뉴에 적혀있는데 각 커피의 종류가 어떤 맛을 내는지 몰랐기에 내 취향을 말했다. "바디감이 있구요, 피니싱이 너무 짧지 않은 커피로 아메리카나 만들어 주세요." 이걸 한국말로 해석하면 "맛에 깊이가 있고 좀 중후한 느낌이 들면서 뒷 맛의 여운이 있는 커피를..."가 된다. 커피 맛은, 아니 거의 모든 술과 음료수는 그 맛을 스타팅, 바디 그리고 피니싱 테이스트로 구분한다. 즉, 처음 맛, 마시면서 입안에 담긴 맛 그리고 뒷 맛으로 와인과 매한가지다. 삭발한 헤어의 예사롭지 않은 스타일을 뿜뿜 나타내는 바리스타가 "인도네시아 만델링"을 추천했다. 좀 기다리니까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우선 컵이 마음에 들었다. 8온즈 (약 237 ml )까진 아닌 것 같고 7 온즈 (약 207 ml)크기의 작은 잔 커피가 나왔다. 작은 잔이 마음에 들었다. 여느 카페들에서 대책없이 큰 잔 때문에 꼭 샷 추가를 해야하는 나는 이 사이즈가 좋다. 아무래도 물과 커피 양을 늘리면 맛을 해칠 우려가 많은게 그 이유다. 크레마가 좀 없는 거 같아 의아하였지만, 일단 맛을 봤다. 크레마는 좀 깨질 때도 있고 어떤 원두는 그리 많지 않아 잘 안보일 경우가 있어 그리 신경쓰진 않았다. 입에 담았을 때 처음 맛은 부드러웠다. 향은 풍부했고 깊은 맛이 천천히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얻었다. 그러면서 약간, 아주 미약한 카라멜 향이 입안에서 느껴지고, 흙 내음과 같은, 그러나 매우 좋은 느낌의 맛이 꽨 괜찮았다. 여기에 매우 약한 신 맛도 느껴지면서 목 넘김을 하고 난 후 뒷 맛이 여운이 어느 정도 남았다. 유럽사람들은 신 맛이 강한 커피를 선호하는데, 우린 그렇지 않다. 구수한 맛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 커피는 매우 약한 산도가 있으나 캐러맬과 흙 내음이 살짝 섞인 맛으로 대표되는 구수함으로 균형이 잘 맞아 떨어지는 듯 했다. 매우 간만에, 아니 서울 바닥에서는 꽤 드물게 이런 좋은 커피 맛을 접해서 기분이 좋았다. 이 카페의 인테리어는 카운터 뒤의 커피 작업장에 그 특징이 보인다. 홀은 크기가 너무 협소하지 않고 딱 알맞은 듯. 위치가 보광동 폴리텍 바로 정면에 있고, 주위에 다른 음식점이나 샵들이 많지 않아 강남등에서 볼거리를 찾아 다니는 분들에겐 그리 인기가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난 이 위치 마져 좋았다. 아무래도 월세 부담이 적고, 소박한 인테리이로 '커피 맛'이외 투자한 금액이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야 이런 카페는 오래 간다. 특히 이렇게 좋은 커피를 내 놓는 집은 오래동안 갈 수 있었으면 한다. 특정 카페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알게 모르게 커피에 대한 생각이 있다. 그래서 그 맛을 좋아하고 그 맛을 매개체로 카페에 앉아 누군가와 혹은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한다. 그 시간이 길지 않아 단지 10여분 동안 만 허락되더라도, 그들은 미칠 것 같은 도시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특히 겉만 번지르르한 도시, 서울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