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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이 최불암 씨가 가장 아끼는 사진입니다"

그의 사진 스튜디오는 외관부터 달랐다. 
배우 신성일·김영철·나문희 ….
얼굴만 봐도 알만한 배우들의 사진이 크게 내 걸려져 있다.
▲ 어느 날 불쑥 쌍마스튜디오를 찾아와 내민 사진 한 장, 배우 최불암은 이 사진을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진이라 말했다./사진=정용부 기자

30여 년간이나 TV 방송국과 관련된 사진을 찍어오고 있는 사진작가 황수연(57) 씨를 만났다. 그는 서울 여의도 옛 MBC 방송국 앞 네거리에서 '쌍마스튜디오'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30년간 TV 드라마 소품용 사진, 연예인 수첩, 출입증, 촬영 현장 스케치 등 방송국에 필요한 모든 사진을 찍어 왔다. 그는 지상파 3사(KBS, MBC, SBS) 방송국에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할 만큼 연기자와 방송 현장 관계자들에게 친숙한 존재다.
스튜디오 내부는 들여다봤다. 사방면을 빼곡하게 채운 사진들이 여기가 박물관인가 할 만큼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흑백과 컬러사진이 공존하는 사진들을 보니 시간을 초월케 했다.
당시에는 ‘17분 칼라’ 사진을 찍어서 자전거로 방송국이건 증권가건 여의도 전체를 다니면서 배달하곤 했어요. 그러면서 모든 옷에 ‘쌍마스튜디오’를 붙었어요. 그러면 ‘아 저 사람이 쌍마스튜디오구나’ 싶게끔 다녔었죠. 한 마디로 날아다니는 광고판이었어요.
그가 방송국에서 필요한 사진을 찍기 시작한 때는 1987년 부터다. 그해 MBC에선 지정 사진관 모집 공고를 냈고 낙찰금액, 견적서, 사진 결과물 등에 의해 최종적으로 쌍마스튜디오가 선정되었다. 당시 여의도에는 53군데나 사진관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사진관이 선정된 건 그의 성실함과 기술력을 인정받고 행운이 더해진 것이다.
방송국에서 가장 많이 필요한 사진은 출입증과 드라마 소품용 사진이에요. 그러면 연기자나 관계자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우리 사진관으로 찾아왔어요. 드라마 속 가족사진을 찍으러 들어오면 어떤 배우들은 진짜 가족 같고 어떤 가족은 가짜 가족 같았어요. 사진을 찍는데도 분위기가 좋으면 그 드라마는 잘 되더군요.
그의 성실함이 통했을까. 이후 MBC를 시작으로 KBS, SBS, 한국방송연기자협회,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서 의뢰가 왔고 꾸준히 일을 해오다 보니 30년이 흘렀다. 그는 자신의 사진관을 두고 “아마 전 세계에서 배우 사진을 가장 많이 찍은 곳은 여기뿐이지 않을까요”라고 설명했다.
“방송국은 바로 뽑아줘야 해요. 급할 때는 새벽 2시라도 나와서 가져다줘요. 어떤 때는 바쁜 연기자를 위해 직접 현장에 찾아가서 찍는 등 한 번도 납기일을 약속을 어긴 적이 없어요.”
그러다 황 작가는 인터뷰 도중 사진 뭉텅이를 들고 왔다. 그가 들고 온 사진은 ‘전원일기’(1980, MBC), ‘사랑이 뭐길래’(1991년, MBC), ‘별은 내 가슴에’(1997년, MBC), ‘허준’(1999, MBC),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 KBS) 등 당대 최고의 드라마들의 종방 사진들이다.

이 중에서 배우 이순재가 1980년대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체육대회 당시 모습과 1999년작 ‘사랑밖엔 난 몰라’에서 찍힌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왼쪽) 1980년대, (오른쪽) 1999년 드라마 ‘사랑밖엔 난 몰라’ 시절 배우 이순재의 모습
“한국방송연기자협회는 매년 소속 연기자들과 방송국 PD의 연락처가 담긴 수첩을 만들어요. 당시에는 인터넷도 잘 안됐으니 전화번호부 같은 거였죠. 그런데 한 여성 연기자가 아무리 연락해도 연락이 닿지 않는 겁니다. 그 연기자를 찾으러 촬영장을 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냅다 카메라를 뺏어서는 안 주는 거예요. 아무리 설명을 해도 믿지 않았는데 나중에 매니저가 와서 결국 오해를 풀 수 있었어요. 그 배우가 조민수 씹니다.”
최근에는 배우 최불암과 얽힌 사연도 있다.
"어느 날 최불암 씨가 스튜디오에 찾아왔어요. 그리고 한 장의 사진을 꺼내 놓곤 이 사진을 크게 다시 뽑을 수 있겠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봤더니 최불암 씨가 드라마 ‘수사반장’ 촬영 당시 찍은 사진이었어요. 최불암 씨는 이 사진을 가장 아끼는 사진이라며 혹시 잃어버리거나 훼손될까 봐 사진을 다시 뽑아야겠다고 오셨죠. 그러고 얼마 안 지나 아내와 손자 둘을 데리고 가족사진을 찍고 가셨어요.”
▲(왼쪽) 젊은 시절, (오른쪽) 2016년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촬영 당시 배우 고 김영애 모습.

그는 얼마 전 작고한 탤런트 김영애의 이야기도 꺼냈다. 그는 췌장암으로 투병 중에도 마지막까지 연기 혼을 불태웠던 고 김영애를 이렇게 회상했다.
"한 번은 KBS2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현장 스케치를 갔어요. 그런데 김영애 씨가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앉아 계시더군요. 그때야 투병 중인 걸 알았어요. 그래서 그날 밤 그분 사진을 모조리 찾아서 사진 한 묶음을 다음날에 가져다 드렸어요. 그랬더니 얼굴이 활짝 펴지면서 그렇게 좋아하시더군요.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그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김영애는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사진관에는 고 김영애뿐만이니라 스타들의 증명사진을 다닥다닥 붙어 놓았다. 고 최진실, 김무생, 최주봉, 이은주, 이주일 등 눈으로 보기에도 족히 100여 명 이상이다. 방송국에서 오래 일한 만큼 세상을 떠난 스타를 지켜보는 일도 많아졌다.

특히 그가 찍은 사진은 살아생전 가장 멋진 모습을 담은 탓일까, 영정 사진으로 쓰인 사례도 많았다. 고 김대중 대통령, 배우 조경환, 김상순, 여운계가 그랬다.
▲ 사진작가 황수연 씨가 배우 김태은 씨의 사진을 찍고 있다.
그에게 사진은 무엇일까.
“사진은 역사예요. 사람만 변하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도 늘 변하고 있잖아요. 남들은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변해가는 그 무엇을 담는 게 일이에요. 제가 늘 얘기하는 게 자식들 예쁜 얼굴만 찍지 말고 밥 먹는 모습, 걷다가 넘어진 모습 그리고 어수선한 집안 살림들 이런 게 다 삶의 흔적 아닌가요. 나중에 보면 이런 사진들이 더 큰 의미로 다가와요. 오히려 요즘엔 휴대폰으로 사진으로 많이 찍는다 해도 사진이 더 없어요. 마음에 안 들면 싹 다 지워버리고, ‘풍요 속의 빈곤’이 따로 없어요.”
이날 황 작가의 사진관에는 배우 김태은이 오디션용으로 쓸 사진을 부탁한다며 찾아왔다. 그는 이날도 한 사람의 역사를 기록했다.
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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